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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4-20_우바새계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4-20_우바새계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4. 20. 05:42



®

『우바새계경』
K0526
T1488

우바새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우바새계경_K0526_T1488 핵심요약





『우바새계경』 ♣0526-001♧





우바새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우바새계경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 제1권

 

담무참(曇無讖) 한역

 

1. 집회품(集會品)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림(祇樹林) 아나빈지1) 정사(阿那邠坻精舍)에서
대 비구승 천 2백 5십 인과 5백의 비구니와 천명의
우바새(優婆塞)와 5백의 걸식하는 아이[乞兒]들과 머물고 계셨다.

 



그때 그 모임 가운데 장자(長者)의 아들로
이름이 선생(善生)이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말씀을 올렸다.

 

“세존이시여, 

외도육사(外道六師)들은 항상 법을 설하고 중생을 가르치기를, 

‘만약 이른 아침에 여섯 방향[六方]에 경례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동방의 땅은 제석(帝釋)에게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곧 보호하고 도우며, 

남방의 땅은 염라왕(閻羅王)에게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염라왕이 곧 보호하고 돕는다.

서방의 땅은 파루나(婆樓那)2) 천신에게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파루나 천신이 곧 보호하고 도우며, 

북방의 땅은 구비라(拘毘羅)3) 천신에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가 있으면 저 구비라 천신이 곧 보호하고 돕는다.

하방의 땅은 화천(火天)에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화천이 곧 보호하고 도우며, 

상방의 땅은 풍천(風天)에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풍천이 또한 보호하고 돕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불법 가운데에도 이와 같은 6방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 “선남자여, 

나의 가르침 가운데에도 역시 6방이 있으니 이른바 6바라밀이 이것이니라.


동방은 단(檀)바라밀4)이니 왜 그런가? 

시초(始初)에 나오는 자는 지혜 광명의 인연을 내기 때문이니라. 

저 동방은 중생의 마음에 속하는데, 

만약 중생이 능히 저 단바라밀에 공양하면
곧 수명과 재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방은 시(尸)바라밀5)이니 왜 그런가? 

시바라밀은 이름하여 우(右)라고 하는데, 

만약 거기에 공양하면 역시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은 찬제(羼提)바라밀6)이니 왜 그런가? 

저 서방은 이름하여 후(後)라고 하는데
모든 나쁜 것을 뒤에 버리기 때문이니라. 

만약 거기에 공양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방은 비리야(毘離耶)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저 북방은 이름하여 승제악법(勝諸惡法)이라고 하는데, 

만약 거기에 공양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방은 선(禪)바라밀7)이니 왜 그런가? 

능히 3악도를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양하는 사람은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방은 반야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상방이라는 것은 곧 무상(無上)이니라. 

무상이기 때문에 만약 공양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 이 6방이라는 것은 중생의 마음에 속하는 것이어서
외도 6사의 말과 같지 않느니라. 

이러한 6방을 누가 능히 공양하는가, 

선남자여, 

오직 보살만이 능히 공양하느니라.”

 


■ “세존이시여, 

어떤 의미에서 보살이라고 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며, 

보리의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만약 보리를 얻어야만 보살이 된다고 한다면
만약 저 6방에 공양하지 못하였을 때 어떻게 보살이라고 하겠습니까? 

만약 성품 때문에 보살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 이 성품이 있습니까?

 

이 성품이 있는 자라야 능히 공양을 한다면 만약 이 성품이 없는 자는 능히 공양을 못 할 것이니, 

여래께서는 마땅히 저 6방이 중생의 마음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므로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왜 그런가? 

보리를 얻은 자는 부처라고 하나니
아직 보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또 보리의 성품이 없으므로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에게 보리 성품이 없는 것이
모든 중생에게 사람이나 천신의 성품이나
사자나 호랑이 개 따위의 성품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 현세에서 여러 선업(善業)의 인연이 모여 사람이나 천신의 몸을 얻고, 

불선업(不善業)의 인연이 모여 사자 따위의 축생의 몸을 얻나니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선업의 인연이 모여,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모든 중생에게 보살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은 그렇지 않으니, 

왜 그런가? 

만약 성품이 있다면
마땅히 선업의 인연을 닦고 6방에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여, 

만약 성품이 있다면 초심(初心)도 또 퇴전심(退轉心)도 없으리라. 

한량없는 선업의 인연으로 발한 보리심을 보살성품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느 중생들이 외도(外道)를 받아들여 행하다가
외도의 전적(典籍)의 전도된 학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기도 하고, 

혹 어느 중생은 적정처(寂靜處)에 머물러서 선(善)을 받아들이는 인연으로 보리심을 발하며,

혹 어느 중생은 생사의 허물을 관하다가 보리심을 발하고, 

혹 어느 중생은 악을 보거나 악을 듣거나 하여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깊이 자신의 탐욕과 성냄과 우치와 인색과 질투가 가책(呵責)이 되어, 

보리심을 발하고,

 

어느 중생은 모든 외도들의 5통(通) 신선을 보고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세간에 끝에 있는지 끝이 없는지를 알고자하여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여래의 불가사의함을 보고 듣고 하였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고, 

어느 중생은 연민(憐愍)의 생각을 내어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느니라.

 

선남자여, 

보리의 마음에 대체로 세 가지가 있으니
하(下)와 중(中)과 상(上)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에게 정해진 성품이 있다면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중생의 하심(下心)이 능히 중심(中心)이 되고, 

중심이 상심(上心)이 되며, 

상심이 중심이 되기도 하고 중심이 하심으로 되느니라.

 

중생이 부지런히 한량없는 선한 법을 닦으면 그 때문에 능히 더 높아지고,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그 때문에 퇴보하여 떨어지나니
만약 잘 닦아 나아가면 불퇴전(不退轉)이라고 하며, 

닦아 나아가지 않으면 퇴전(退轉)이라고 하느니라.

 

언제든지 항상 모든 가없는 중생을 위하여
선행을 닦고 복덕을 쌓으면 그것이 불퇴전이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을 퇴전이라고 하나니
이러한 보살은 퇴보하는 마음과 공포심이 생기느니라.

 

만약 항상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선한 법을 닦고 복덕을 쌓으면 불퇴전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대희지(大喜地)에서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내가 수기한 것이니라.

 


■ 선남자여, 

세 가지 보리에는 정해진 성품이 없나니
만약 정해진 성품이 있다면
이미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의 마음을 낸 자가
능히 보리의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뭇 승려에게 정해진 성품이 없는 것처럼, 

이 세 가지의 성품도 마찬가지이니라.

 

■ 만약 정해진 성품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외도이니라. 

왜 그런가? 


모든 외도들은 인과(因果)가 없기 때문에
자재천(自在天)이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라고 한다.

 

선남자여! 혹 어떤 사람이 보살의 성품을 설하는데
비유하건대 돌 가운데에는 반드시 쇠[金]의 성품이 있어서
공교한 방편을 인연으로 발하면
쇠의 작용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보살의 성품도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은 범지의 설이다.

 

왜 그런가? 

범지들은 항상 말하기를, 

니구타(尼枸陀)8)종자에 니구타 나무가 있고
눈[眼]에 불[火]과 돌[石]이 있다고 하나니
이러므로 범지는 인이 없고 과가 없어서
인이 곧 과요 과가 곧 인이기 때문에, 

니구타 종자에 니구타 나무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니라.

 

마땅히 알라. 

곧 이것이 범지의 인과설인데, 

이것은 옳지 않나니, 

왜 그런가? 

인은 미세하고 과는 추조(麤粗)한 까닭이니라.

 

만약 눈 속에 결정코 불이 있다고 한다면 눈이 탈 것이며, 

눈이 만약 탄다면 어떻게 능히 보겠느냐.

 

눈 속에 돌이 있다면 돌이 곧 눈을 막을 것이고, 

눈에 만약 막는 것이 있다면 또 어떻게 보겠느냐.

 

선남자여, 

만약 범지의 말대로 유(有)는 유(有)이고, 

무(無)는 무(無)라면, 

무(無)는 생(生)을 하지 않고 유(有)는 멸을 하지 않으리라.

 

만약 돌 속에 금의 성품이 있다면
금이 그 성품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 성품이 금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 선남자여, 

인연(因緣)이 있기 때문에 화합이 있고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본디 없다가도 뒤에 있느니라.

 

만약 범지의 말대로 무(無)가 아주 무(無)라면 이 뜻은 어떠한가, 

금이 수은(水銀)과 합하면 금이 없어져야 하리라.

 

만약 유(有)는 당연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뜻은 어떠한가.

 

만약 중생에게 보살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은 외도라고 하고
불도라고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돌의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금으로서의 쓰임이 있는 것처럼
보살의 성품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중생에게 의사가 있는 것을 가리켜 욕심이라 하는데, 

이와 같이 선업을 행하고자 하는 인연으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일러
보살의 성품이라고 한다.

 

■ 선남자여, 

마치 중생이 먼저는 보리가 없다가 뒤에는 바야흐로 있는 것처럼, 

성품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먼저는 없다가도 뒤에는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정된 것이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니라.

 

■ 선남자여, 

큰 지혜를 구하므로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일체 법의 진실을 알고자하고, 

크게 장엄(莊嚴)하고, 

마음이 견고하고, 

많이 중생을 제도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일러 보살이 대승(大乘)을 수행한다고 하느니라.

 


■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퇴전(退轉)이요, 

두 번째는 불퇴(不退)니라. 

이미 32상(相)의 업을 닦은 자는 불퇴전이라고 하고, 

아직 닦지 못한 자는 퇴전이라고 하느니라.

 

■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출가(出家)요, 

두 번째는 재가(在家)이니라. 

출가 보살은 8중(重)을 받들어 지켜서 청정함을 구족하니 이것을 불퇴전이라고 하며, 

재가 보살은 6중(重)을 받들어 지켜서 청정함을 구족하니 역시 불퇴전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외도가 욕심을 끊고 얻은 복덕은
욕계(欲界)의 일체 중생이 소유한 복덕보다 낫고, 

수다원은 모든 외도의 이견(異見)보다 나으며, 

사다함은 일체 수다원의 과보보다 낫고, 

아나함은 일체 사다함의 과보보다 나으며, 

아라한은 일체 아나함의 과보보다 낫고, 

벽지불은 일체 아라한의 과보보다 나으며,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하면 일체 벽지불의 과보보다 나으니라.

 

출가한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불가사의라고 하니, 

왜 그러한가, 


재가자는 많은 악한 인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니,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할 때는
4천왕으로부터 아가니타(阿迦膩吒)9)까지의 모든 천신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기뻐하고 이러한 말을 하느니라. 

‘우리가 이제 인간과 하늘의 스승을 얻었다.’”




 

■ 2. 발보리심품(發菩提心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어떻게 보리심을 발하나이까?”

 

■ “선남자여,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니, 

첫 번째는 수명을 늘어나게 하기 위함이요, 

두 번째는 재물을 늘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 다시 두 가지 목적이 있으니, 

첫째는 보살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두 번째는 중생의 죄와 고통 번뇌를 끊기 위함이다.

 

■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무량한 세상에서 큰 고통과 번뇌를 받으며
이로움을 얻을 수 없음을 스스로 관찰하기 위함이요, 

두 번째는 비록 항하사와 같은 많은 무량한 부처님들이 계시지만
모두 우리 몸을 해탈케 할 수 없고
우리 스스로 해탈케 해야 한다는 것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선한 업을 짓는 것이요, 

두 번째는 짓고 나서 잃지 않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인간과 천신의 과보보다 나은 것이요, 

두 번째는 모든 2승의 과보보다 나은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깨달음의 도를 구하기 위하여 큰 고뇌를 받는 것이요, 

두 번째는 무량한 큰 이익을 얻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과거와 미래의 강가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가 다 내 몸과 같음이요, 

두 번째는 깊이 보리를 관찰하여, 

이것이 얻을 수 있는 법이며 이러한 까닭에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10주(住) 중 6주(住)에 머무는 사람이 비록 전심(轉心)이 있으나 모든 성문이나 연각보다 뛰어남을 관찰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힘써 마음으로 무상과(無上果)를 구하여 찾기 때문이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여 외도들이 얻은 과보보다 뛰어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모든 번뇌를 버리고 여의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중생의 현재의 고뇌를 끊기 위한 것이요. 

두 번째는 중생의 미래의 고뇌를 막기 위한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지혜의 장애를 끊기 위한 것이요. 

두 번째는 중생의 몸의 장애를 끊기 위한 것이다.

 

선남자여, 

보리심을 내는 데 다섯 가지가 있어야 하니, 

첫 번째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성내는 마음을 끊는 것이요, 

세 번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요, 

네 번째는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힘써 정진하는 것이다.

 

또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비록 남의 허물을 보더라도 마음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이요, 

세 번째는 선법을 얻고 나서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의 선한 행위를 보고 시기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모든 중생을 보기를 외아들을 보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보리심을 내고 나서 수미산과도 같은 악업의 과보들을 파괴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 가지 일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나니, 

첫 번째는 악세의 오탁중생(五濁衆生)을 보았기 때문이요, 

두 번째는 여래에게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요, 

세 번째는 불, 여래의 여덟 가지 묘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자신의 몸에 괴로움이 있음을 스스로 명료하게 아는 것이요, 

두 번째는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알고
그 고통을 끊는 것을 자신의 고통을 끊는 것과 다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보리심을 발하면
이 사람은 6방에 예경하여 수명과 재물을 늘어나게 하는 것이니
외도가 말하는 것과 같지 않느니라.”

 





■ 3. 비품(悲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육사(六師)들은 인과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래께서는 인(因)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생인(生因)이요, 

두 번째는 요인(了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생인입니까 혹은 요인입니까?”

 


■ “선남자여, 

나는 중생을 위하여
혹은 한 가지 인(因)을 말하고, 

혹은 두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네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다섯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여섯과 일곱 가지부터 열두 가지의 인까지 말하느니라.

 


한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생인이요, 

두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생인과 요인이며, 

세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와 업(業)과 기(器)며, 

네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4대(大)이다.

다섯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5지(支)10)이며, 


여섯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계경(契經) 중에 말한 6인(因)이며, 

일곱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法華)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여덟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8지(支)11)이다.

아홉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대성경(大城經)』에서 설한 바와 같으며, 

열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마남(摩男)우바새를 위하여 설한 것과 같으며, 


열한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지인(智印)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열두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12인연과 같으니라.

 

■ 선남자여, 

모든 유루법(有漏法)의 무량무변한 인과, 

모든 무루법(無漏法)의 무량무변한 인을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 알고자 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를 일체지(一切智)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보리심을 발하는데
혹은 생인이 있고, 

혹은 요인이 있고, 

혹은 생인과 요인이 있느니라.

 

너는 이제 마땅히 알라, 

대저 생인이라고 하는 것은 곧 대비(大悲)이니라. 

이 가엾어(悲)함으로 인하여 능히 발심하나니, 

이러므로 비심(悲心)은 생인이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심을 닦을 수 있나이까?”

 

“선남자여, 

지혜로운 자는 깊이 모든 중생이 생사고뇌(生死苦惱)의 큰 바다에 빠진 것을 보고 건져내고자 하나니
이러므로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10력ㆍ4무소외ㆍ대비의 3념(念)을 지니지 못하였음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로 하여금 그런 것을 갖추게 할까 생각하나니 이러므로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비록 원한과 삼독심이 많더라도 역시 친밀한 생각을 하나니 이러므로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바른 길을 모르며 보이고 인도하는 것이 없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5욕(欲)의 진흙탕에 누워서 능히 나오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방일(放逸)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항상 재물과 처자 때문에 얽매이고 능히 버리고 여의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미모와 직업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악지식(惡知識)에게 미혹되어 친근한 생각을 내는 것이 6사(六師)등의 예와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생유(生有)의 계(界)에 떨어져서 모든 고뇌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즐기고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선하지 않은 악업을 지어서 많은 고과(苦果)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즐거워하고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오욕을 갈구(渴求)하는 것이 목마를 때 짠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비록 즐거움을 구하고자 하나 즐거움의 인을 짓지 못하고, 

비록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으나 괴로움의 인을 잘 지으며, 

천상의 낙을 받고자 하나 계행을 구족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는데 아와 아소라는 생각을 내는 것을 보고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정해진 성품이 없어서 5유(有)에 유전(流轉)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생ㆍ노ㆍ병ㆍ사를 두려워하면서 다시 생ㆍ노ㆍ병ㆍ사의 업을 지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다시 업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애착하는 것과 이별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애착을 끊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무명(無明)의 어둠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지혜의 등불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번뇌의 불속에서 활활 타면서도 삼매 수행의 물을 구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오욕락을 위하여 한량없는 악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오욕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이를 구하는 것이 마치 굶주린 자가 독이 들어있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악한 세상에 살면서 가혹한 임금을 만나 많은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방일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8고(苦)에 유전하면서 그 괴로움의 원인을 끊어 없앨 줄을 모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굶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에서 자유스럽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금계(禁戒)를 위반하여 마땅히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질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색력(色力)과, 

수명과 안온과, 

변재에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모든 근(根)을 갖추지 못한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변두리 지방에 태어나서 선법을 닦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기근이 만연한 세상에서 몸도 수척하면서도 서로 위협하고 빼앗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칼과 군사의 위협에 처하였으면서도 다시 서로 잔혹하게 해치며 악한 마음이 더 성해져서 한량없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만나서 감로정법(甘露淨法)을 설하신 것을 듣고도 이를 받아 가지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사악(邪惡)한 벗을 믿고 마침내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많은 재보(財寶)를 가지고도 능히 희사 보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장사하여 팔고 사고 하는 것이 모두 괴로운 것임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부모ㆍ형제ㆍ처자ㆍ노비 권속과 친척을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땅히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처에서의 정(定)의 즐거움도 지옥의 괴로움과 같은 것이어서 모든 중생들이 함께 지녔음을 관하여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아직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이러한 관을 하는데 이것을 비(悲)라고 하고, 

만약 도를 얻으면 곧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왜 그런가?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비록 이러한 관을 하여도 그 관이 모두 끝이 있고 중생계도 또한 끝이 있으나, 

이미 도를 얻고 나면 관도 중생도 모두 끝이 없나니 이러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가엾어 하는 마음이 흔들리므로 비(悲)라고 하고, 

도를 이미 얻고 나면 흔들림이 없으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모든 중생을 능히 구제하지 못하므로 비라고 하고, 

이미 도를 얻고 나면 능히 크게 구제하기 때문에 대비라고 하느니라.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지혜가 함께 행해지지 못하므로 비라고 하고, 

도를 얻고 나면 지혜가 함께 행하므로 대비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로운 자는 가엾어 함을 닦나니 비록 능히 중생의 고뇌를 끊지 못하여도 이미 한량없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육바라밀은 모두 가엾어 하는 마음으로 짓는 생인(生因)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출가한 이요, 

두 번째는 재가보살이니라.

 

출가하여 가엾어 하는 것을 닦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로서 가엾어 함을 닦는 것은 어려우니라. 

왜 그런가? 

재가자는 악한 인연이 많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재가자로서 만약 가엾어 함을 닦지 않으면 우바새계(優婆塞戒)를 얻을 수 없으나, 

만약 가엾어 함을 닦으면 이미 곧 얻은 것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출가한 사람은 오직 오바라밀을 구족할 수 있으나 단바라밀은 구족할 수 없다. 

그런데 재가자는 능히 구족할 수 있으니 왜 그런가? 

언제든지 무엇이나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재가자는 마땅히 먼저 가엾어 함을 닦을 것이니 만약 가엾어 함을 닦으면 이 사람은 능히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갖출 것이다.

 

만약 가엾어 하는 마음을 닦으면 베풀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베풀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으며,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하리니, 

그러므로 온갖 선한 법은 가엾어 함이 근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이러한 가엾어 하는 마음을 닦으면 이 사람은 능히 수미산과 같은 악업을 부수고,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아뇩다라샴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이 사람이 지은 것이 적은 선업일지라도 과보로 얻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리라.”

 





4. 해탈품(解脫品)

 

“선남자여,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가엾어 함을 닦는 자가 있으면
이 사람은 모든 법의 체(體)인 모든 해탈분(解脫分)을 얻으리라.”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체(體)라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선남자여, 

몸과 입과 뜻을 말한 것이니라. 

이 몸과 입과 뜻은 방편에 따라 얻느니라. 

방편에 둘이 있으니
첫 번째는 귀로 듣는 것이요, 

두 번째는 사유(思惟)하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요, 

두 번째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요, 

세 번째는 많이 듣는 것이니라.”

 


선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바와 같이 세 가지 방편으로부터 해탈분을 얻는다면 이 세 방편에 정해진 수가 있나이까.”

 

“그렇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왜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비록 한량없는 세상에 한량없는 재물을 한량없는 사람에게 보시하여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한 때 한 줌의 보릿가루를 한 거지에게 베풀어도
그와 같은 해탈분법을 얻으며, 

어떤 사람은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계율을 받아 지켜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한 낮 한 밤 동안 8계를 지키고도
 능히 해탈분법을 얻으며, 

어떤 사람은 한량없는 세상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12부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도
해탈분법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오직 네줄로 된 게송 하나만을 읽고도
능히 해탈분법을 얻나니 무슨 까닭인가, 

일체 중생의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누구든지 일심으로
생사의 허물과
열반의 안락함을 관찰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비록 혜시(惠施)와 지계(持戒)와 다문(多聞)이 있어도
마침내 해탈분법을 얻지 못하느니라.

 

■ 만약 능히 생사의 허물을 싫어하고
깊이 열반 공덕의 안락함을 관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비록 베푼 것이 적고 계를 지킨 것이 적고 들은 것이 적어도
능히 해탈분법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이 법을 얻는 자는 세 때 중에, 

즉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때나, 

연각(緣覺)이 나오는 때나 만약 이 두 때가 없으면
아가니타(阿迦膩吒)하늘이 해탈을 설할 때에
이 사람이 듣고는 해탈분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옛날에 처음 발심할 때 전혀 부처님과 벽지불은 보지 못하였고, 

정거천(淨居天)이 해탈법을 설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그 때, 

듣고는 곧 발심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은 법은 욕계천(欲界天)이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왜 그런가? 

방일(放逸)하기 때문이니라.

 

또 색천(色天)이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왜 그런가? 

세 가지 방편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무색천(無色天)이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왜 그런가? 

몸과 입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 법의 체(體)는 이 몸과 입과 뜻이니라.

 

울단왈(鬱單曰)12)사람도 역시 얻지 못하나니 왜 그런가? 

세 가지 방편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 해탈분은 세 사람이 얻을 수 있으니, 

이른바 성문, 

연각, 

보살이니라.

 

중생이 만약 선지식을 만나면 성문의 해탈에서 전환하여 연각의 해탈을 얻고, 

연각의 해탈에서 전환하여 보살의 해탈을 얻는데, 

보살이 얻은 해탈분 법은 퇴전할 수 없고 잃거나 무너질 수 없느니라.”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설법하는 사람이 다시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해탈분이 있으며, 

저러한 사람들은 해탈분이 없다고 잘 분별 하나이까.”

 

“선남자여, 

이와 같은 법은 두 종류의 사람이 얻을 수 있으니, 

재가자와 출가자이니라. 

이러한 두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듣고 받아 지니며, 

삼악도의 고통을 듣고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서 몸의 털이 모두 일어서고 눈물이 흐르며, 

재계를 굳게 지키고 작은 죄일지라도 감히 위반하지 않나니 이러한 사람은 해탈분법을 얻느니라.

 

■ 선남자여, 

모든 외도들이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어서 수명이 무량겁이라 하더라도
만약 해탈분법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이 사람은 지옥 에 떨어질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아비지옥에서 무량겁을 지내면서 큰 고뇌를 받더라도
능히 이러한 해탈분법을 얻으면
마땅히 이 사람은 열반할 사람(涅槃人)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선남자여, 

그러므로 나는 울두람불(鬱頭藍弗)13)에게는 가엾은 마음을 내지만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는 불쌍한 생각을 내지 않노라.

 

선남자여, 

사리불등이 6만 겁 동안 보리도를 구하였으나 퇴전한 까닭은
해탈분법을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비록 그렇지만 이근을 가진 연각보다 나으니라.

 

선남자여, 

이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하ㆍ중ㆍ상이다. 

하는 성문이요, 

중은 연각이며, 

상은 붓다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우바새계를 구하여 무량한 세상에서 들은 대로 행하여도
계를 얻지 못하고
어느 출가한 사람은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구하여 무량한 세상에서 들은 대로 행하여도
역시 얻지 못하니 왜 그런가? 


해탈분법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계를 닦는다고 할 수 있고
계를 지킨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여, 

■ 만약 모든 보살이 해탈분법을 얻으면
마침내 업을 지어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나기를 구하지 않고, 

항상 중생에게 유익한 곳에 나기를 원하느니라. 

만약 스스로 하늘에 날 업이 있음을 확실히 안다면
곧 이 업을 돌리어 인간 가운데 나기를 구하느니라. 

업이란 이른바 보시와 지계와 수정(修定)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성문인으로서 해탈분법을 얻으면 3신(身)을 지나지 않아 구해탈을 얻을 것이며, 

벽지불인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해탈분을 얻으면 비록 무량한 몸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항상 퇴전하지 않나니
퇴전하지 않는 마음이 모든 성문이나 연각보다 뛰어나니라.

 

선남자여, 

■ 만약 이와 같은 해탈분법을 얻으면 비록 조금 베풀어도 한량없는 과보를 얻나니
계행이 적고 들은 것이 적어도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이 사람은 비록 삼악도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삼악도 중생과 같이 괴로움을 받지 않느니라.

 

만약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해탈분법을 얻으면 조유지(調柔地)라고 한다. 

무슨 이유로 조유지라 하는가, 

일체 번뇌가 점차로 미약해지기 때문이니, 

이를 역류(逆流)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네 종류의 사람이 있나니 첫 번째는 생사의 흐름에 따르는 사람이요, 

두 번째는 생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이요, 

세 번째는 (생사의 흐름을) 따르지도 거스르지도 않는 사람이요, 

네 번째는 피안에 이르는 사람이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법은 성문에게는 유연지(柔軟地)라고 이름하고, 

모든 보살에 있어서도 역시 유연지라고 하며, 

또 희지(喜地)라고도 하는데, 

무슨 뜻으로 희지라고 하는가? 

들은[聞] 것에서 퇴전하지 않으므로 희지라고 하느니라.

 

어떤 뜻으로 보살이라고 이름하는가? 

능히 항상 중생의 마음을 깨우치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보살은 비록 외전(外典)을 알아도 스스로 수지(受持)하지 않고 또 남에게 가르치지 않느니라.

 

이러한 보살은 인간이나 하늘이라고 하지 않고, 

오도(五道)에 포함되지 않나니 이를 수행(修行)에 장애 없는 길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 대저 보리에 네 가지 종자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수행하고 인욕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 이러한 보살의 종자를 키우는 데는 다시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첫 번째는 제 몸에 대하여 경멸하는 생각으로
나는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자신이 괴로움을 받아도 마음으로 싫어하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요,

 

세 번째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쉬지 않고 멈추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중생의 한량없는 고뇌를 구제하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항상 삼보의 미묘한 공덕을 찬탄 하는 것이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보리를 닦을 때 항상 이러한 다섯 가지를 닦느니라.

 


■ 보리의 종자를 키워 성하게 함에는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이니라.

 

■ 이 여섯 가지는 한 가지로 인하여 증장되는 것이니 바로 불방일이다. 

보살이 방일하면 이러한 여섯 가지 일을 증장(增長)할 수 없고
만약 방일하지 않는다면 능히 증장할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보리를 구할 때에 또 해야 할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는 선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마음이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는 것이요, 

세 번째는 능히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라.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는 남이 이로움을 얻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항상 다른 사람의 공덕을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세 번째는 항상 6념처법(念處法)을 즐겨 닦는 것이요, 

네 번째는 힘써 생사의 허물을 설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이 여덟 가지 법을 떠나서 보리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어느 보살이 처음 위없는 보리심을 발할 때, 

곧 최고의 복전이라고 말하니 이러한 보살은 일체 세간사와 모든 중생보다 뛰어나느니라.

 

선남자여, 

비록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량없는 세계에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불도는 심히 얻기가 어렵나니 왜 그런가? 

세계가 가없고 중생이 또한 그러하며, 

중생이 가없고 붓다도 또한 이와 같기 때문이니라.

 

만약 불도가 얻기 쉽다면 한 불세존이 곧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세계의 중생이 유한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 능히 9만 9나유타 인을 제도하고, 

성문제자는 1나유타 인을 제도하지만
모든 중생을 오히려 다 할 수 없으므로 한이 없다고 하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성문경(聲聞經)』에서는 시방불이 없다고 설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중생이 불도를 가볍게 여길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성스러운 도는 세간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말씀에는 허망함이 없고, 

여래 세존께서는 투기하는 마음이 없으며, 

얻기 어려운 것이므로 시방에 여러 불세존이 없다고 설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한량없는 중생이 보리심을 발하여도 능히 보살도를 다 행할 수 없느니라.

 

만약 어떤 이가 힐난하여 말하기를, 

만약 현재에 한량없는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경에 다만 과거와 미래에 한량없는 부처가 있음을 말하고
현재에 한량없는 부처를 말하지 않았겠느냐.

 

선남자여, 

나는 한 나라에도 과거와 미래에는 항하사 부처님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재 세상에는 오직 한 부처뿐이니라.

 

선남자여, 

진실한 뜻이 있으면 능히 불도를 얻나니, 

한량없는 중생이 불도를 수행하다가 많이 퇴전하는데
때로는 한 사람이 능히 득도(得度)하는 것이
망고나무꽃[菴羅花] 및 물고기의 알[魚子] 등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인데, 

출가 보살은 해탈분법을 얻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로서 얻는 것은 어려우니라. 

왜 그런가 하면, 

재가자는 많은 악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니라.”

 



■ 5. 삼종보리품(三種菩提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이며, 


보리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성문 보리요, 

두 번째는 연각 보리요, 

세 번째는 제불 보리입니다. 


그런데 만약 보리를 얻으면 부처라고 이름하는데
어찌하여 성문ㆍ벽지불들은 부처라고 이름하지 않습니까?

 

만약 법성(法性)을 깨닫는 것을 부처라고 한다면, 

성문ㆍ연각도 법성을 깨닫는데 어찌하여 부처라고 이름하지 않습니까?

만약 일체지(一切智)를 부처라고 한다면, 

성문ㆍ연각도 역시 일체지인데, 

또 어찌하여 부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일체(一切)라고 하는 것은 곧 4제(諦)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리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듣는 것을 따라서 얻는 것이요, 

두 번째는 사유(思惟)하는 것에 의해 얻는 것이며, 

세 번째는 닦는 것에 따라서 얻는 것이다. 


성문인은 듣는 것에 따라서 얻으므로 부처라고 하지 않으며, 

벽지불인은 사유하는 것에 의해 조금 깨달으므로 벽지불이라고 하는 것이며, 

여래는 스승이 없으므로 듣는 것과 사유에 의지하지 않고 닦는 것에 따라서 얻는데, 

일체를 깨닫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법성을 완전하게 알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는데 법성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전체상을 알되 듣는 것에 의하지 않으므로 벽지불이라고 하고 부처라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여, 

여래 세존은 전체상과 개별상등 일체를 깨달아 알되
듣는 것과 사유에 의하지 않고
스승 없이 홀로 깨닫되 닦음을 쫓아서 얻는 것이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 세존은 연기의 지혜(緣智)를 갖추고 있지만 성문이나 연각은 비록 4제(諦)는 알되, 

연기의 지혜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지 않으며, 

여래 세존은 연기의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저 항하의 물을 토끼와 말과 향기를 내는 큰 코끼리 세 짐승이 함께 건너는데, 

토끼는 밑에 이르지 않고 물에 떠서 지나가고, 

말은 혹 밑에 닿기도 하고 닿지 않기도 하며, 

코끼리는 다 밑에 닿느니라.

 

항하수란 곧 십이인연의 강이다. 

성문이 건널 때는 마치 저 토끼와 같고, 

연각이 건널 때는 저 말과 같고
여래가 건널 때는 향기를 내는 큰 코끼리와 같으므로 여래를 부처라고 이름하느니라.

 


■ 성문이나 연각은 비록 번뇌는 끊었으나 습기(習氣)는 끊지 못하였는데, 

여래는 능히 일체 번뇌와 습기의 근원을 뽑아 없애었으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 선남자여, 

의심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번뇌의(煩惱疑)요, 

두 번째는 무기의(無記疑)인데, 

2승의 사람들은 번뇌의만 끊고 무기의는 끊지 못하였으나
여래는 이 두 의심을 모두 끓었으므로 부처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성문들은 많이 듣는 것에 싫증을 내고 연각들은 사유하는데 싫증을 내는데, 

부처님은 이 두 마음에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으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깨끗한 물건을 깨끗한 그릇에 두면 겉도 속도 모두 깨끗하다. 

성문이나 연각은 지혜는 비록 청정하나 그릇이 청정하지 않은데, 

여래는 그렇지 않아서 지혜와 그릇이 모두 청정하므로 부처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청정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지혜가 청정한 것이요, 

두 번째는 행동이 청정한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은 비록 청정한 지혜가 있으나 행동이 청정하지 못한데, 

여래 세존은 지혜와 행동이 모두 청정하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성문ㆍ연각은 그 행함에 끝이 있지만
여래 세존은 그 행함에 끝이 없으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 선남자여, 

여래 세존은 능히 일념(一念)에 두 가지 장애[二障]를 파괴하나니, 

첫 번째는 지혜에 대한 장애요, 

두 번째는 해탈에 대한 장애이다. 

그러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여래는 지혜의 인(因)과 지혜의 과(果)를 갖추었으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말씀에는 두 말씀이 없고, 

잘못이 없고, 

허망함이 없다. 

지혜에 걸림이 없고 설법하기를 좋아함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지(因智)와 시지(時智)와 상지(相智)를 갖추어 덮어 감춤이 없고 수호(守護)하는 것도 필요치 않으며, 

능히 허물을 말할 수 없다.

 

일체 중생의 번뇌의 결박을 일으키는 인연과 결박을 없애는 인연을 모두 알고, 

세간의 팔법(八法)에 염오되지 않으며, 

큰 연민의 마음으로 고뇌를 뿌리 뽑아 구체하며, 

십력ㆍ사무소외ㆍ대비삼념(大悲三念)을 갖추어 몸과 마음의 두 힘을 모두 갖추었느니라.

 

몸의 힘을 갖추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선남자여, 

33천에 한 큰 성이 있으니 이름은 선견(善見)이다. 

그 성의 세로와 가로가 모두 10만 리이고 궁실이 백만이며, 

하늘들의 수가 1천 66만 6천6백66이다.

 

여름 석 달 동안은
석제환인이 파리질다(波利質多)14) 숲 속으로 가서 즐기고자 하는데, 

건타산(乾陀山)에 한 향기를 내는 큰 코끼리가 있으니
이름은 이라발나(伊羅鉢那)15)이고 일곱 개의 머리를 갖추었느니라. 


제석이 생각을 내면 코끼리가 알고 곧 오는데
선견 성중에 있는 모든 하늘들은 그 코끼리의 머리 위에 올라서 가느니라. 

그 숲은 그 성에서 50유연(由延)이나 떨어졌느니라.

 

이렇게 이 코끼리는 몸의 힘이 모든 향기를 내는 큰 코끼리보다 뛰어난데, 

이러한 향기를 내는 큰 코끼리 1만 8천을 합하여야만
그 힘이 겨우 부처님의 한 마디의 힘과 맞먹느니라. 

이러므로 몸의 힘은 일체 중생의 힘보다 뛰어난 것이니라.

 

세계가 가없고 중생이 또한 그러하듯이
여래의 마음의 힘도 또한 한이 없나니
이러므로 여래만을 부처라고 하고, 

2승의 사람은 부처라고 하지 않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이름이 무상사(無上師)요, 

대장부요, 

인간 중에 향기를 내는 큰 코끼리요, 

사자요, 

용왕이며, 

마부(調御)요, 

시도(示導)요, 

대선사(大船師)요, 

대의사(大醫師)요, 

대우왕(大牛王)이요, 

인간 중의 우왕이요, 

또 청정한 연꽃이며, 

스승이 없이 홀로 깨달아서 모든 중생의 안목(眼目)이 되었다고 하느니라.

 

이는 대시주(大施主)요, 

대사문(大沙門)이요, 

대바라문으로서
고요히 계를 지키고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저 언덕에 이르러 해탈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성문이나 연각은 비록 보리가 있으나 도무지 이런 일이 없나니, 

이러므로 부처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인데, 


출가한 보살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보리를 분별하되 이는 어렵지 않으나
재가한 이가 분별하기는 어렵나니, 

왜 그런가 하면 재가자는 많은 악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니라.”

 







■ 6. 수삼십이상업품(修三十二相業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보살의 몸의 힘은 언제 성취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처음 32상의 업을 닦을 때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러한 업을 닦을 때 보살이라고 이름 할 수 있고 겸하여 두 정(定)을 얻나니, 

첫 번째는 보리정(菩提定)이요, 

두 번째는 유정(有定)이니라.

 

또 두 정이 있으니, 

첫 번째는 숙명(宿命)을 아는 정이요, 

두 번째는 정법인(正法因)을 내는 정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32상의 업을 닦는 것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많이 듣되 싫어함이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하나하나의 상을 닦는데
백 가지 복덕으로 둘러싸게 하나니
수심(修心)의 50과 구심(具心)의 50을 백 가지 복덕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세간이 소유한 복덕이 여래의 한 터럭의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여래의 일체의 터럭구멍의 공덕이 하나의 수형호(隨形好)의 공덕만 못하며, 

80가지 수형호의 공덕을 모아도 한 상(相)의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모든 상의 공덕이 백호상(白毫相)의 공덕만 못하며, 

백호상의 공덕은 또 무견정상(無見頂相)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항상 한량없는 겁 동안 모든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주고자
지극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모든 선한 업을 짓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갖추나니 이 32상은 곧 대비의 과보이니라.

 

전륜성왕도 비록 이 상이 있으나 이 상을 명료하게 갖추고 있지 못하느니라.

 

이 상의 업의 체는 곧 몸과 입과 뜻의 업이니라. 

이 업을 닦을 때 하늘이거나 북울단월(北鬱單月)에서 하지 않고 오직 세 곳에서 남자의 몸으로만 가능하나니, 

여인의 몸으로는 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업을 닦고 나면 3아승기겁이 찼다고 하는 것이며, 

차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예전에 보정불(寶頂佛)처소에서 2아승기겁을 채웠고, 

연등불(然燈佛)처소에서 2아승기겁을 채웠으며, 

가섭불(迦葉佛)처소에서 3아승기겁을 채웠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예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처소에서 비로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고, 

이 마음을 발하고는 한량이 없는 항하사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모든 선근을 심었으며,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많이 들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32상(相)의 업을 닦고 나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분명히 스스로 아나니, 

마치 손바닥 안의 암마륵과(庵摩勒果)를 보는 것과 같으니라.

 

그 업은 비록 정해져 있으나 닦을 때의 차례는 반드시 정해진 것이 아니다.

 

혹은 말하기를, 

‘여래는 먼저 우왕의 안상(牛王眼相)을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선한 눈으로 중생을 화평하게 보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먼저 우왕의 안상을 얻는다. 

그리고 차례로 나머지 상호를 얻는다’고 하느니라.

 

혹은 말하기를, 

‘여래는 먼저 8범음상(梵音相)을 얻고, 

나머지를 차례로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에
한량없는 세상에서 항상 부드러운 말과 진실한 말로 중생을 교화하였으므로
먼저 팔범음상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혹은 말하기를, 

‘여래는 먼저 무견정상(無見頂相)을 얻고 나머지를 차례로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에 한량없는 세상에서 스승 이신 모든 불보살께 공양하고
정수리로 예배하여 교만을 없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먼저 무견정상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혹은 말하기를, 

‘여래는 먼저 백호모상(白毫毛相)을 얻고 나머지를 차례로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일체 중생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먼저 미간의 백호상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이 아니고는 다른 이가 능히 이와 같은 상업(相業)을 능히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혹 또 어떤 사람이 차례를 말하기를, 

‘여래는 먼저 발밑이 평평한 상을 얻고 나머지를 차례대로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보시하고 지계하고 도를 닦을 적에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먼저 발밑이 평평한 상을 얻는 것이며, 

이 상을 얻고는 다음에 족하륜상(足下輪相)을 얻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부모와 스승과 윗사람과 착한 벗에게 공양하고
법대로 일체 중생을 옹호하였으므로
다음에 수족에 윤상(輪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섬장지상(纖長指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지극한 마음으로 첫 번째와 네 번째의 우바새계(優婆塞戒)를 받아 지켰으므로
다음에 섬장지상과 족근장상(足跟長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신용만상(身傭滿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스승과 부모와 윗사람과 착한 벗의 가르침을 잘 받았기 때문에
다음에 신용만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수족합망만상(手足合網縵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4섭법(攝法)으로써 중생을 거두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다음에 수족망만상(手足網縵相)을 얻는다.

 

이 상을 얻고 나면 다음에 수족이 유연(柔軟)함이 다른 몸보다 뛰어난 상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손으로 스승과 부모의 몸을 씻어서 깨끗이 하고 향유를 발랐으므로
다음에 수족 연상(手足軟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신모상향미상(身毛上向靡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항상 중생을 교화하여 보시와 지계와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게 했으므로
다음에 모상미상(毛上靡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녹왕천상(鹿王腨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설하여서
생사의 모든 허물을 없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다음에 녹왕천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은 신방원상(身方圓相)을 얻어서 마치 니구타수왕(尼枸陀樹王)과 같아지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항상 일체 중생의 병에 약을 베풀었으므로 신방원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수과슬상(手過膝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끝까지 일체 현성(賢聖)과 부모와 스승과 선지식을 속이지 않았으므로
다음에 수과슬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으면 다음에 상왕마왕장상(象王馬王藏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포외(怖畏)하는 자를 보면
능히 구호하며 참괴심을 내고 남의 허물을 잘 덮어 주었으므로
다음에 상마장상(象馬藏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엔 부드러운 몸과 털구멍마다 한 터럭이 나는 상호를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지혜 있는 자를 친근히 하여
듣기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듣고는 닦기를 좋아하며
길을 닦아 가시를 제거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다음에 피부가 유연하고 털구멍마다 한 터럭이 나는 상호를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몸이 금빛인 상호를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항상 중생에게 방사(房舍)와 침구(臥具)와 음식과 등불(燈明)을 베풀었으므로
다음에 몸빛이 금색인 상호를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칠처만상(七處滿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성낼만한 곳에서도 진심(瞋心)을 내지 않고
중생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필요한 것을 주었으므로 다음에 칠저만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결골만상(缺骨滿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을 잘 분별하여서
말에 잘못이 없고 옳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으며, 

받아야 할 법을 항상 말하고 받아서는 안 될 것은 망령되이 선전하지 않았으므로
다음에 결골 마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두 가지 상호를 얻나니, 

하나는 상신(上身)이요 하나는 협거(頰車)인데 모두 사자의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무량한 세상에서 스스로 두 말이 없으며 남에게도 하지 않도록 가르쳤으므로
이러한 두 가지의 상호를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는 다음에 세 가지 상호를 얻나니, 

첫 번째는 40치(齒)요, 

두 번째는 백정상(白淨相)이요, 

세 번째는 제밀상(齊密相)인데,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10선법(善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이 받아들이면 환희심을 내며, 

항상 다른 사람의 공덕을 칭찬하고 선양하였으므로 다음에 이러한 세 가지 상호를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엔 4아백상(牙白相)인데,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욕계의 자애심을 닦고 즐기어 선법을 생각하였으므로
다음에 사아백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엔 미중최상미상(味中最上味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자기를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보시하였으므로
다음에 미중최상미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엔 두 상호를 얻나니, 

첫 번째는 육계(肉髻)요, 

두 번째는 광장설(廣長舌)이다.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10선법(善法)을 받아 지키고
더불어 중생을 교화하였으므로
다음에 이러한 두 상호를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엔 범음상(梵音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나쁜 말을 하지 않았고 남도 하지 않게 가르쳤으므로
다음에 범음성상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으면 다음엔 우왕감색목상(牛王紺色目相)을 얻나니, 

왜냐 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자애심과 선심으로 원수와 친한 이를 보았기 때문에
다음에 우왕목상(牛王目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고 나면 다음에 백호상(白毫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바른 법과 진실한 법을 선설(宣說)하여 허황되지 않았으므로
다음에 백호광상(白毫光相)을 얻는다.

 

이 상호를 얻으면 다음엔 무견정상(無見頂相)을 얻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세상에서 머리와 이마로
일체 성현과 스승과 부모께 예배하고
존중, 

찬탄, 

공경, 

공양하였으므로 무견정상을 획득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인데, 

출가한 보살은 이 같은 업을 닦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는 어렵나니, 

왜냐하면 재가자는 악연으로 얽힌 바가 많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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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어로는 Anāthapiṇḍada, 

Anāthapiṇḍika이고 팔리어로는 Anāthapiṇḍika 이다. 

기원정사를 지어 붓다에게 바친 수닷타[須達, sudatta]의 별칭이다. 

의역은 단여(團與), 

급고독(給孤獨), 

무의단시(無依團施)이며, 

아나분제(阿那分提), 

아나빈기(阿那邠祁), 

아나빈제(阿那邠提), 

아나빈지(阿那邠坻, 阿那邠持, 阿那邠池) 아나타빈다타(阿那陀擯茶陀) 등으로 음역된다.

2 범어와 팔리어로 Varuṇa이다. 

리그베다에서 인드라 다음가는 위대한 신으로 사법신(司法神)이다. 

후대에는 수신(水神), 

그리고 서방을 수호하는 신으로 성격이 변하였다. 

파루나(波樓那, 

婆婁那), 

박루나(縛樓那), 

박류나(縛留那) 등으로 음역된다.

3 범어로는 Kubera이며 팔리어로는 Kubera이다. 

4천왕천 중 북방을 수호하는 천신으로 다문(多聞), 

보문(普門)으로 의역되며, 

구비라(拘毘羅), 

겁비라(刼比羅), 

교미로(嬌尾嚕) 등으로 음역된다.

4 범어와 팔리어로 Dāna pāramitā이다. 

보시바라밀을 말한다. 

다른 음역은 타나바라밀다(陀那波羅蜜多),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 

단바라밀(檀波羅密) 등으로 음역된다.

5 범어로는 Śīla pāramitā이며 팔리어로는 Sīla pāramitā이다. 

지계바라밀을 말한다.

6 범어로는 Kṣānti pāramitā이며 팔리어로는 Khanti pāramitā이다. 

인욕바라밀을 말한다. 

의역은 인도(忍度)이며, 

찬저파라밀다(羼底波羅蜜多), 

찬제파라밀다(羼提波羅蜜多) 등으로 음역된다.

7 범어로는 Dhyāna pāramitā이며 팔리어로는 Jhāna pāramitā이다. 

선정바라밀을 말한다.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 

지하나바라밀(持訶那波羅蜜) 등으로 음역된다.

8 범어로는 Nyagrodha이며 팔리어로는 Nigrodha이다. 

나무의 이름이며 니구로타(尼拘盧他, 

尼拘盧陀), 

니구타(尼枸陀, 

尼拘陁) 등으로 음역된다.

9 범어로는 Akaniṣṭha이며 팔리어로는 Akaniṭṭha이다. 

색계천의 가장 상층에 위치하여, 

색구경(色究竟), 

선구경(善究竟)으로 의역되고 아가니타(阿迦膩吒), 

아가니사타(阿迦尼師吒) 등으로 음역된다.

10 12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분류하였을 때, 

미래의 두 가지 과보인 생(生)과 노사(老死)와 여기서 생기는 번뇌인 애(愛), 

취(取), 

유(有)를 말한다.

11 12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분류하였을 때, 

현재의 다섯 가지 과보인 식(識), 

명색(名色), 

6처(處), 

촉(觸), 

수(受)와 현재의 번뇌인 애(愛), 

취(取), 

유(有)를 말한다.

12 범어로는 Uttarakuru이며 팔리어로는 Uttarakuru이다. 

불교 우주론에서 수미산의 북쪽에 위치하는 곳으로 4대주 중 가장 수승한 곳으로 묘사된다. 

온전한 음역은 울다라구루(欝多羅拘樓)이며 울단월(鬱單越), 

울단왈(鬱單曰) 등으로 축역된다.

13 범어로는 Udrakarāmaputra이며 팔리어로는 Uddakarāmaputta이다. 

정각이전에 붓다가 선정을 배웠던 수행자의 이름이다. 

우타라라마자(優陀羅羅摩子)로 합역되며 울두람불(鬱頭藍弗), 

울타라가(欝陀羅迦) 등으로 축역된다.

14 범어로는 Pārijāta이며 팔리어로는 Pāricchatta이다. 

제석천이 머무르는 33천에 있다는 산호나무이다. 

원생수(圓生樹), 

향편수(香遍樹)라고 의역하며, 

온전한 음역은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이며, 

파리질다(波利質多), 

파라실다(波羅悉多), 

질다라(質多羅) 등으로 축역된다.

15 범어로는 Airāvaṇa이며 팔리어로는 Erāvaṇa이다. 

제석천이 타고 다니는 코끼리의 이름이다.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4/04/21/화/10:00



● 환골탈태 

이번에 돈황 천불동을 살펴봤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서 특이한 사진을 하나 보았다. 
돈황석굴에 예수님 초상화가 있다. 

원래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가르침을 펼쳤다. 
그래서 원래 의도대로라면 구약성경을 믿던 대다수가 
그대로 신약성경을 믿고 행하는 이들이 되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오늘, 우바새계경에는 6 방 예경이 나온다. 
이것도 성격이 비슷하다. 
부처님이 6 방 예경을 6 바라밀다 실천수행으로 그 실질을 바꿔 제시한다. 
그런 결과 외도들이 모두 불교를 믿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도는 여전히 힌두교가 대세다. 

그래도 전혀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



◆vmhv1702

◈Lab value 불기2564/04/20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tienne Daho - Le Grand Sommeil.lrc




○ 2019_1004_161910_canon_ar47.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ovanni-Battista-Piranesi-ground-plan-of-the-circus-of-caracalla-in-today-capena-outside-the-porta-s-sebastian-in-the-two-2.jpg!H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uschia-1409803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eide_Fields_Visitor_Centre



♥Musée alsacien (Haguenau) ,France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buddhism007.tistory.com/4207


♥ 잡담 ♥ deep fake 기술의 보편화와 그레샴의 법칙 

몇장의 사진만 있으면 진짜와 같은 동영상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tts 기술은 50 분 정도만 말한 내용만 있으면 그것으로
음성폰트를 만들어 온갖 말을 다 말하게 한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현 주소다. 

이런 기술이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많기에 우려가 크다. 
그러나 이미 이런 기술이 보편화되었는데 어떡할 것인가. 


 
Few-Shot Adversarial Learning of Realistic Neural Talking Head Models 


https://en.wikipedia.org/wiki/Deepfake


생각해보면 이런 deep fake 기술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경험한 바 있다. 
영화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 년대 말에 나타난 영화 스타워즈가 있었다. 
이 스타워즈 장면이 현실이라고 여긴 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영화만 보면 정말인 것처럼 여겨진다. 

쥬라기공원에서는 공룡들이 뛰어다녔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당시는 영화제작자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간신히 그런 화면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영상을 쉽게 만들어 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인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영상이나 음성이 주요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쉽게 위조된다. 
사인이나 지문 홍채 인식마저도 미션 임파서블 팀이 아니더라도 
쉽게 위조한다. 
최근 범죄사건을 살펴보면 그런 사례를 수없이 볼 수 있다. 

문제는 범죄를 수사하고 변호하고 재판하는 이들이 
모두 현장 부재인들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런 가운데 가짜뉴스나 가짜 동영상 증거물이 제출되어 
수많은 이들이 법정에 서게 될 수 있다. 
어떡해야 하는가. 

이런 deep fake 는 문제가 많으니, 
이런 이상한 앱을 일체 사용하지 말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미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어느 한 부분을 깜쪽같이 진짜처럼 쉽게 위조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머지 영역도 사정이 다 같다. 
특히 이해관계가 민감한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것은 방안이 못 된다. 

원칙적으로 인감이나 사인 또는 지문등을 위조할 수 없어야 한다.
또 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사기범들은 위조된 계약서를 법정에 제출한다. 
증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문제는 문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reille Mathieu - La Chanson De Notre Amour.lrc



● 수행과 가짜의 문제 




가짜가 범람하게 되면 그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가짜가 오직 부작용만 갖는 것은 또 아니다. 가짜가 갖는 장점도 많다. 


○ 가짜가 갖는 두 측면의 기능 - 구축과 구축 



그런 가운데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그레셤의_법칙

여기서 구축한다는 말은 원래 내몰아 쫒아낸다는 구축(驅逐)의 의미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쌓아 만든다는 구축(構築)이란 의미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공교롭게 이 경우에 모두 적용된다. 

처음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게 되면 
가짜만 유통되고 진짜가 사라지게 된다. [=>구축 (驅逐)]
왜냐하면 가짜로도 충분히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사정으로 보다 실질적 가치를 갖는 내용은 그런 영역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종이에 1 억이라고 쓴 돈[악화]도
시장에서 금화[양화]처럼 1억짜리 보물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굳이 황금을 가지고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금화는 시장에서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종이에 숫자를 적은 돈만 돌아다니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대신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 것들이 따로 활동하는 무대가 새로 만들어지게 된다. => 구축(構築)  
금화로만 물건을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금화는 공연히 시장에서 물건 사고 파는 부분에서는 사라진다. 
그런데 대신 금으로만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장식품 분야 등이다. 
이는 종이돈으로는 할 수 없는 분야다.
그래서 금은 이런 분야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명제에는
이런 두 의미가 함께 관련된다. 
이런 현상을 일찍이 mun 님이 제시한 적이 있다. 

사진기와 그림을 놓고 생각해보면 쉽다. 
사진기가 나오기 전에는 화가는 보이는 형태대로 잘 그릴 때 존중받았다. 
그런데 근대부터 사진기가 보급되었다. 
그러다보니 보이는 형태 그대로 그리는 것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미술계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측면은 내쫒아내는 구축의 의미다. 

대신 미술계에서는 또 다른 활동이 존중받게 되었다. 
사진기나 포토샵으로는 하기 힘든 아름다운 작품 창조가 존중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측면은 앞과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지는 구축의 의미다. 


과거에는 인간이 돌을 들어 날르고 올리면서 성을 쌓고 건물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게차나 기중기가 등장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분야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런 측면은 내쫒고 몰아내는 구축의 측면이다. 
그런데 대신 사람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전념하게 된다. 
이런 측면은 새로운 분야를 쌓고 만들어내는 구축의 측면이다. 

요즘 산수계산이나 오목이나 장기나 바둑 등 분야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런 분야에서 컴퓨터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람이 주산이나 암산을 통해 계산했다. 
그런데 계산기가 등장해서 이런 노력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대신 사람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분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측면은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는 측면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잘 살펴야 한다. 
가짜가 쉽게 만들어지고 그 효용을 발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현상이 일으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갖는다. 

그리고 긍정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현상의 두가지 구축 측면이
모두 긍정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건만 교환하면 되는데 무엇하러 무거운 금화를 굳이 사용할 것인가.
그래서 시장 교환과정에서 무거운 금화는 사용되지 않도록 몰아내는 것도 긍정적이다.
오늘날 화폐나 동전도 사정이 같다. 
무엇하러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 그래서 가급적 화폐나 동전은 교환과정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종이는 종이대로 
그것들이 원래 갖는 가치가 잘 발휘되도록 다른 분야에서 잘 사용되어야 한다.
동전을 만든 금속은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가짜의 범람으로 인해 나타나는
구축(驅逐)과 구축(構築) 두 측면은 모두 긍정적이다. 

그런데 각기 그렇게 잘 되지 못하면 또
각 즉면이 다 문제가 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Nicolas Peyrac - Meme S'il N'en Reste Rien.lrc 




● 가짜와 수행의 관계 

○ 가짜의 범람과 수행의 방향 

수행자 입장에서는 가짜의 문제를 불교 경전의 입장에서 살피게 된다. 
그래서 수행에 있어서도 가짜의 문제는 중요하다.  
이런 현실을 놓고 수행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현실은 꿈과 같다. 
결국 현실이 본래 fake다. 
그리고 fake에 너무 집착하고 휘둘리고 몰입하면 어느 경우나 곤란하다. 

결론만 먼저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현실 일체에 진짜가 없다.
따라서 무아, 무자성, 공한 현실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측면을 잘 파악해서
이를 통해 일체 망집 번뇌와 그에 바탕한 업 그리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무량한 생사고통을 자신의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 [구축(驅逐)]


그러나 그렇게 생사고통의 측면에서는 벗어나오는 대신 
무량한 선법과 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를 쌓게 된다. 

현실에 진짜가 없다. 그리고 실답지 않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무량한 선법을 함께 제거하면 안 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본 바탕의 사정을 잘 이해한 가운데
생사현실에 임해 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런 가짜에 집착해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무량한 선법을 닦고 수행에 임해야 한다.
[구축(構築)]

그리고 이 두 부분을 수행자는 다 함께 잘 갖춰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부족하면 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수행자가 이 문제에 전념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수행자라고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가짜와 진짜의 문제를 다시 한번 잘 살펴야 한다. 


우선 관념상 진짜는 가짜와 상대적인 관념이다. 
그래서 무엇인가가 가짜가 있다면 그로 인해 어딘가에 반드시 진짜가 있다고 여기기 쉽다. 
관념영역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현실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부터 혼동하지 않고 잘 파악해야 한다. 

만일 관념영역에서 진짜라는 관념을 상대적으로 가질 수 이 있기에
진짜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관념영역에서 일으키는 온갖 것은 다 있다고 해야 한다. 
무언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생각하는 한 그런 의미에서는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경전에서 진짜가 없다고 하는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관념영역에서 생각을 통해 진짜에 해당하는 것에 대한 몽타쥬는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몽타쥬에 해당하는 것을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가가 본 문제다. 
그리고 진짜라는 관념은 사실은 
실답지 않은 꿈과 같은 것을 놓고 상대적으로 만들어낸 관념이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꿈을 생생하게 꾼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꿈을 깨고나면 그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꿈이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일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다른 영역 예를 들어 그 꿈을 꾼 침대에서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꿈에서 본 황금이나 바다는 현실에서 보는 황금이나 바다와 일정 부분 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현실의 황금이나 바다에서 기대하는 성품도 없다. 
무겁지도 않고, 물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런 식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기에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 대신 이런 꿈과는 다른 성품을 갖는 것을 진짜라고 하게 된다. 
그래서 꿈이 갖는 속성은 갖지 않고 그 반대의 속성을 갖는 것을 진짜라고 관념해 찾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진짜에 해당하는 것이 현실에 있는가를 문제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다음이다.
진짜라는 관념은 꿈과 같이 실답지 않은 것과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관념이다. 
일종의 몽타쥬다. 
그래서 이 몽타쥬를 가지고 현실에서 그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진짜가 어디에도 없다고 경전에서 제시하는 제법무아, 무자성은 다음 의미다.
진짜라는 몽타쥬는 관념영역에서 그렇게 만들어 찾는다.
그렇지만, 그 몽타쥬에 해당하는 것은 현실 어느 영역에서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런 사실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또 반대로 다음 혼동도 일으키면 안 된다.
어디에도 진짜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꿈을 가짜라고 할 것이 무엇인가. 
진짜가 없는데 왜 꿈을 가짜라고 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제기다. 
이는 가짜 진짜가 상대적인 관념이라는 점에서 다시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진짜 가짜 관념은 각기 그렇게 상대적으로 있다. 
그런 가운데 꿈은 그 가짜라는 그 관념에 해당하는 성품을 갖는다.
그래서 꿈은 그런 가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라는 관념에 해당하는 성품을 갖는 것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제법무아, 무자성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러해서 진짜가 없다고 
앞과 같은 꿈을 자신이 찾던 진짜에 해당하는 진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진짜라는 관념은 그렇게 만들어갖고 찾는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는 것이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대신 그전까지 가짜에 해당한 꿈이나 엉터리 내용이 모두 다 진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실답지 않은 꿈과 다른 성격을 갖는 무언가를 진짜라고 관념하자.
그리고 현실 내용이 그런 것인가를 먼저 검토해보자.

아침에 눈을 떠 바위를 본다고 하자. 
이 바위는 꿈은 아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결국 꿈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 모습은 오직 눈을 떠 관계하는 조건에서만 얻는다. 
눈을 감으면 곧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아침에 본 바위 모습은 저녁에 해가 진후 보는 모습과도 다르다. 
또 맨 눈으로 본 모습과 안경을 쓸 때 보는 모습이 다르다. 
한편 눈으로 본 모습은 손을 통해 얻는 촉감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각 감각은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결국 현실은 사정이 꿈과 같이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현실은 꿈과 상대적 질적 차이는 있다. 
즉 그런 내용을 다수 주체가 일정 시간 공간 상황조건에서 비슷한 관계로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하나하나 실답지 않지만 실답게 여기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것이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생사고통의 문제가 된다. 
정말 꿈처럼 완전히 성격이 같다면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하나하나 실답지 않은 측면에서 현실은 꿈과 같지만 정작 꿈과 다르다. 그리고 꿈은 또 아니다. 
그런데 결국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 대해 다음처럼 제시하게 된다.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은 진짜가 아니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현실은 꿈과 같다. 

그러나 또 꿈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방치해둘 수는 없다. 
꿈과 달리 이는 수행을 통해 잘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를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 현실 내용을 대할 때 이렇게 잘못 생각하게 된다.
앞처럼 매 순간 대하는 바위모습을 매순간 같지 않다. 
그러나 매번 바위를 보면 대강 바위는 바위라고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비록 그것은 진짜가 아니어도, 
그 안팎 어딘가에 그렇게 각 내용을 여기고 대하게 하는 그 진짜 뼈대가
실체로 있기에 그렇다고 추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동굴에서 보는 그림자 비유가 가리키는 내용과 사정이 같다. 

그런데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것은 어디에서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몽타쥬에서 요구한 내용과 현실 내용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몽타쥬에서 찾고자 한 진짜의 내용은 
결국 어떤 조건과 관계없이, 늘 일정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이 있다고 하면 현실은 극히 작은 부분 하나도 끝내 얻을 수 없다. 
사정이 그렇다. 

또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이를 살필 실용적 의미도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살피는 주체 자신이 그런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그런 것이 있어도 그 주체는 그런 상태가 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진짜가 있다고 해도 그와 관련성이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만일 노력해서 지금은 변화하는 상태인데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말은 곧 그렇게 된 상태는 지금 찾는 진짜는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실용적이지도 않다. 


『우바새계경』에서도 이런 사정이 제시되고 있다. 

...

선남자여, 

세 가지 보리에는 정해진 성품이 없나니 

만약 정해진 성품이 있다면 

이미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의 마음을 낸 자가 

능히 보리의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


만약 정해진 성품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외도이니라. 

왜 그런가? 


...

선남자여, 

인연(因緣)이 있기 때문에 화합이 있고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본디 없다가도 뒤에 있느니라.

 ...

『우바새계경』 ♣0526-001♧


이는 다음 뜻이다.
만일 사정이 그렇지 않고 진짜에 해당하는 진짜에 해당하는 본래 고정된 성품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수행이란 의미가 없다. 이런 뜻이다. 

예를 들어 그런 경우는 한번 악마는 영원한 악마고 
한번 착한 이는 영원히 착한 이다. 
이런 식의 입장이 된다. 
그래서 문제가 있게 된다. 
그런데 현실이 본래 그렇지도 않다는 뜻이다. 

물론 그 논증은 별도로 자세히 살펴야 할 주제가 된다. 
그런데 여하튼 무아 무자성이라고 단정해서 제시하는 사정은 그와 같다 .

한편 진짜가 없다고 제법무아 무자성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는 실재가 공함을 밝히는 일체 개공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어떤 내용을 얻는다. 
이 때 그 주체와 관계없이 있다고 할 본 바탕은 어떤 것인가가 다시 문제된다. 
이런 경우 그 본 바탕인 실재의 내용을 그 주체는 끝내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각 주체는 그 주체과 관계하여 화합을 통해 얻는 내용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관계를 떠난 내용이 무언가를 찾고 문제삼으면 
그런 주체는 끝내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필경리]
따라서 그 내용은 무엇이 있다 없다 ~이다 ~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을 일체 분별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자체는 2분법적인 언설분별을 떠난다. [불이]
그래서 본래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란 표현을 빌려 이를 나타낸다. 
그렇지만 본 바탕에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무언가 있고 없음을 그런 상태로 분별해 문제삼는 각 주체는 끝내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것 뿐이다.
이것이 일체개공이 나타내는 의미다. 

그런데 이는 진짜가 있고 없음을 따지는 무아 무자성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다. 
그러나 실재의 공함은 무아무자성과 다음 관계성이 있다.
예를 들어 만일 진짜의 내용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본 바탕이 무언가라고 할 때 공하다고 답하지 않고 
그 진짜의 내용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무아 무자성이다.
그런 한편 문제삼는 그 본 바탕의 내용은 얻지 못한다. 이런 의미다. 
그래서 공하다라고 제시하는 것은 그 안에 무아 무자성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공하다는 표현이 나타내는 뜻이 무아 무자성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무아 무자성은 앞에서 문제삼은 것처럼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뼈대로서 실체가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 것이다. 

그리고 실재가 무언가는 
어떤 주체와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 무엇인가를 문제삼은 것이다. 
그래서 문제삼는 측면이 조금 다르다. 
그러나 이 두 내용이 앞과 같은 사정으로 서로 관계가 된다. 

>>>
참고로 이런 내용은 과거에도 많이 반복했다. 
글 내용을 조금 체계를 세워 정리하려다 보니 다시 이 내용을 적게 된다. 
이런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 과거 조각글을 정리중이다. 
그래서 차후에는 이런 경우 과거 조각글 부분을 찾아 링크를 걸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일단 요약해 제시한다는 뜻에서 적게 되었다. 
>>>


여하튼 경전의 결론적 입장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제법무아, 무자성]
그렇다고 꿈이나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대신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현실은 비록 매 순간 생생하게 반복해 얻지만,
꿈처럼 하나하나 실답지 않다. 
그런 성격때문에 현실은 꿈과 '같다'.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그렇지만, 또 현실은 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꿈과 달리 다수 주체가 일정 조건과 관계로 반복해 무량하게 얻어나간다. 
그래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이 안에서 겪는 생사고통이 방치하기 곤란한 문제로 남는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이를 수행을 통해 잘 해결해야 한다. 

이런 뜻이다. 



결국 현실에서 그 존재를 문제삼는 각 내용을 나열하면
이 일체에 진짜라고 할 내용이 없다.
다 실답지 않다. 
그런데 서로 질적 차이가 조금씩 있다. 
그래서 이 가짜들의 처리가 문제된다. 


이것을 나열해 보자. 

본 바탕[무아 무자성이면서 공한 실재]
=> 각 주체가 각 감관으로 얻는 감각현실 ,
색, 성, 향, 미, 촉, 

=> 각 주체가 일으키는 느낌 , 좋고 나쁨 
=> 각 주체가 일으키는 관념분별 


크게 보면 이와 같다. 

현실에서 진짜 가짜 문제를 같이 살피기 위해
조금 더 자세히 나열하면 다음 내용도 덧붙일 수 있다. 

=> 생각 관념 => 시나리오, 소설, => 만화, 연극,영화,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놓고 한 주체가 상대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결국 이들 각 내용을 놓고 선악의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선악은 좋고 나쁨과 관련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매순간 얻는 좋고 나쁨의 느낌을 곧 선악과 동일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 좋고 
지금 좋고 나중 좋고 오래오래 무한히 좋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좋은 경우가 있다고 하자. 
다시 그 상태를 그런 형태로 좋게 성취하는 경우가 또 있다고 하자. 

이것은 다음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좋은데, 상대인 남은 극히 고통받고 나쁘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당장은 좋은데 나중에는 나쁘게 되고 오래오래 무한히 나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초점을 맞추고 대하는 한 측면은 좋다.
그런데 다른 측면은 나쁘다. 그리고 그외 나머지 측면이 다 그렇다.
이런 경우와 앞은 다르다. 

심지어 나도 나쁘고 남도 나쁘고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 나쁘다.
지금도 나쁘고 나중도 나쁘고 오래오래 무한히 나쁘다.
이 측면도 나쁘고 저 측면도 나쁘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나쁘다. 
또 어떤 상태를 대단히 안 좋은 방안으로 성취하는 경우도 이와 다르다. 
간단히 말해 나 죽고 너 다 함께 죽자 이런 경우와 앞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한 측면 한 주체입장에서
한 순간 좋고 나쁨의 문제와 선악의 문제는 다르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모두 가짜다. 
그래서 이것을 놓고 수행자가 어떻게 대해야 
무량한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대신 무량한 복덕과 수명 지혜를 구족할 수 있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먼저 가짜가 갖는 효용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 가짜의 효용 


앞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살폈다.
이 현상을 통해 가짜가 갖는 효용을 살필 수 있다. 

화폐가 물건을 사고 파는 기능만 하면 된다고 하자. 
그런데 왜 굳이 무거운 금을 사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서로 믿고 종이에 숫자를 적어 사용하면 충분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무겁고 소지가 불편하고 매번 진짜 가짜를 판별하기 곤란한 금을 몰아내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또 종전에 구매에 사용되던 금화는 이제
금으로만 할 수 있는 좀더 가치가 있는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장식품 시장과 같은 부분에서 더 많이 활용되게 된다.
이것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따라서 가짜가 범람한다고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짜가 범람할 때 그것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잘 취해서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수행도 사정이 비슷하다. 
현실에서 오히려 종이에 적힌 숫자로도 충분한 영역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런 영역에서 공연히 금을 구해 사용하려고 무리하면 안 된다.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무슨 노래를 들으려면 
옆에서 노래 잘 부른ㄴ 이가 서서 노래를 한곡씩 불러야 했다. 
또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를 보고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서 말이나 문서를 전해야 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연극이나 예술작품 감상 등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연기하는 이를 직접 무대에서 대면하면서
연극 작품 감상을 해야 했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노래는 그냥 테이프나 cd 등으로 가장 질좋은 상태로 무한히 반복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극도 이제 영화화면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대부분 내용이 가짜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영화 주라기 공원에 나타난 공룡은 가짜다. 
그리고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도 가짜다. 
그런데 그 가짜를 통해서 관객은  감흥을 받는데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진짜보다 더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측면은 잘 살려서 사용해야 한다. 
 
현실에 그런 측면이 대단히 많다. 
그것이 가짜라고 해서 그것을 배척하고 
꼭 진짜만 고집하면 오히려 문제가 수없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노래를 듣고 싶다고 
유명가수가 꼭 하루 종일 자신 옆에 서서
그것도 립싱크도 아니고
진짜로 목소리를 내어서 노래 불러주면서
춤까지 추어줘야 한다고 고집하면 난감해진다. 

그리고 영화도 사정이 같다. 
그렇게 고집하면 영화 하나 찍을 때마다 영화 극본에 따라 
수백만명이 매번 죽고 부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것없이 효용만 얻게 하는 가짜가
오히려 이런 측면에서는 더 기능이 많다고 해야 한다. 

그런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땅을 갑이나 을의 이름으로 등기하는 일은 
현실에서 생활할 때 각 개인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몇 평 짜리 아파트가 자신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는가 아닌가는 큰 의미차이가 있다. 
그리고 거울로 보는 자신 모습이 어떤가도 그 의미차이가 크다. 

그러나 세상의 땅이 수없이 갑, 을, 병....의 이름으로 바뀐다해도 
그 땅이 크게 늘고 줄지 않는다. 

요즘 아파트 시세가 비싸다. 
단위면적 1평 (3,3 m2) 당 거의 1 억원 가까이 된다. 

그런데 쉬고 잠자고 생활하는 용도만 놓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비쌀 필요는 없다. 
시세로 보면 그 1/100 의 가격인 주거시설도 더 편안함을 줄 수 있다. 

여기서 무엇을 가지고 진짜 가짜를 판단하는가는 문제다. 
진짜 판단기준이 교환가치인가 사용가치인가도 문제된다. 
그런데 여하튼 어떤 것을 가짜라고 해도 
그 가짜가 다른 것과 거의 비슷한 효용을 준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 경우는 그 내용이 장점도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성격을 갖는 것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몰입하면 위험해진다. 
알고보면 그런 내용은 다른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서 대량 보급한 무한카드와 무한화폐가 사실은 그런 기능을 한다. 
알고보면 엉터리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국립공원, 도서관시설, 쳬육시설을 보유 사용하게 하는 카드다. 
또는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거리를 이용하게 하는 카드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빌딩과 건물에 대해 단지 소유권만 갖고
그로 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계속 재투자를 자동으로 수행해주는 카드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단 한채도 자신명의로 등기는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들어가 살지는 못한다. 담보 대출도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보면 이는 일종의 fake 소유다. 

그런데 이 경우 fake 카드가 진짜 카드와 거의 같은 기능을 한다. 
마치 fake 영화화면이 진짜 현실 모습과 거의 같은 기능을 하는 측면과 성격이 같다. 

알고보면 빌딩이나 토지 등을 진짜 자신 명의로 등기한 소유자도 앞 상태와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오히려 관리나 자산의 효율적인 재투자를 행하고 
효용을 얻는 측면에서는 무한카드가 더 효용이 많다. 

주택 주거도 사정이 비슷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고급 주택의 소유자가 아니고 진짜 명의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주거시설이 주는 효용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런 성격을 갖는 부분에 너무 몰입하면 안타깝게 된다. 
앞에서 살핀 금화와 종이 즉 양화와 악화의 관계를 이에 적용하면 그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요즘 가보기 힘든 곳을 
위키백과나 구글맵을 이용하여 종종 방문한다. 
위키백과와 구글맵을 통해 우연히 돈황을 방문했다. 
이는 물론 가짜 여행이다. 

그래도 대단히 피곤하다. 
가짜 guide라고 할 백과사전으로부터 설명을 장황하게 많이 들어서 피곤하다. 
그리고 가짜 풍경에 해당하는 사진들을 많이 살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직접 가서 본 것과 큰 의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fake 기술이 주는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련 내용에 대해 위키백과를 살피면
몇몇부분은 조금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누구나 위키백과 편집을 할 수 있기에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그런 부분을 발견하면 열심히 해당 부분을 고쳐 넣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방문해보면 또 다시 원래대로 고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또 매번 정확한 출처를 요구해서 번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위키백과사전은 fake 불량 백과사전 같다. 
그렇지만,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많이 준다. 
그래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단지 명백히 오류인 부분이나 오타가 있는 부분만 잘 찾아 약간 구분표시를 해서 사용한다. 

과거에는 소수 전문가가 편집한 브리태니커와 같은 백과사전이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위키백과가 훨씬 많은 정보를 주고 도움도 많이 준다. 
심지어 복사 이용도 자유롭다. 
이런 것은 일종의 fake 가 갖는 장점이다. 


한편, 외국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fake 번역가라고 할 구글번역기나 파파고 번역기로 번역해 사용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약간씩 전혀 엉뚱한 의미로 번역을 해 놓는다. 
그렇지만, 상당히 번역을 잘 한다. 
그래서 맥락상 이상한 부분만 원문을 참조해서 보게 된다. 
앞에서 살핀 가짜 fake가 갖는 장점과 사정이 같다. 


한편, 수행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진짜 부처님이 설한 진짜 경전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경전 자체와 관련해 가짜 경전 즉, 위경 문제가 늘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경전을 대할 때 
경전에 나오는 내용이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내용들로만 느껴지게 된다. 
더욱이 그 내용들이 자신이 이해가 잘 안되고 마음에 안 든다. 
그런 경우 이들 경전은 환상을 믿는 소설가가 상상으로 꾸며낸 위경이라고 의심하기 쉽다. 
그것도 아니면 영향력이 있는 부처님에 가짜로 의존해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세상에 펼치려고 그럴 듯하게 꾸며낸 내용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사실 그런 경우 왜 그렇게 할것인가가 오히려 의문이 된다. 
그 자신은 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경이야 어떻든 여하튼 자신이 대하는 경전이 거짓된 내용을 전하는 위경이면 곤란하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 내용은 
세상에 어떤 것에도 진짜는 없다고 제시한다 .
예를 들어 부처님 자신이 설한 내용이 평생동안 전혀 없다고 제시한다. 
또 부처님이 설했다고 사람들이 여기는 것은 그 일체가 모두 희론이라고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지 망집과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임을 제시한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뗏목의 비유가 나타내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부처님을 포함한 일체가 모두 환이라고도 제시한다. 
그래서 어떤 것을 진짜라고 하고 어떤 것을 거짓이라고 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반야경전 전반에 걸쳐서 부처님과 보살을 포함하여 
수행덕목이나 수행을 통해 얻는 상태 일체가 다 환임을 강조해 제시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수행을 더 열심히 행해 원만히 성취해야 함을 제시한다. 

이런 사정은 다른 경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법화경에서도 그런 사정을 제시한다. 
부처님의 설법은 모두 알고보면 방편이다. 
그런데 그 방편이 있어야 중생들이 이를 의존해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 방편은 단순한 방편은 아니다. 
중생이 생사고통을 건너게 하는 뗏목 기능을 하는 방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방편을 부처님이 제시해주지 않으면 중생이 생사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경전은 높은 가치를 갖는다. 
즉 만화나 공상소설과는 다르다. 


『우바새계경』에서도 이런 사정이 제시되고 있다. 

...
선남자여, 

마치 중생이 먼저는 보리가 없다가 뒤에는 바야흐로 있는 것처럼, 

성품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먼저는 없다가도 뒤에는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정된 것이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니라.

 ...

『우바새계경』 ♣0526-001♧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Volo - La Mienne !.lrc 




○ 가짜의 문제점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부터 스스로 잘 파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가짜로도 충분한 것은 
굳이 자신이 힘들여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정말 의미있고 실질적 가치가 있는 부분을 찾아서 행해야 한다. 

경전에서 자신의 정체 찾기를 강조한다. 
평소 생활하면서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가짜다. 
거울을 보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런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정을 깨달아 아는 것이 수행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은 간단히 실험해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 눈을 감아보자. 
눈을 감으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그런 모습은 일체 보지 못한다. 
그래도 자신은 계속 있다. 
이를 통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것은 가짜임을 알아야 한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어디엔가 부딪혀 의식을 잃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도 마찬가지다. 
이를 간호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가 일정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깨날 때 그 자신도 여전히 이어서 생활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계속 존재한 것이 무언가를 또 찾아야 한다. 

한편 한 주체가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는 상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내용은 물론 화장을 한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은 알고보면 자신이 망집을 바탕으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 가짜 자신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 자신으로 여긴 내용은 실답지 않은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런 가짜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에 평소 너무 몰입하면 그만큼 손해가 된다. 

앞의 실험에서 한번씩 단계를 거칠 때마다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계속 가지고 갈 수 있는 내용과 없는 내용이 구분된다.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내용을 기준으로 파악하면
자신이라고 여긴 내용 대부분이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또 평소 자신의 것이라고 여긴 것들 대부분이 또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오히려 가짜로도 충분히 효용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한 영역을 옮겨 갈 때마다 그것들은 다 한계가 있게 된다. 
다른 영역으로 못 간다. 못 지니고 간다. 

따라서 별로 의미없다.
물론 그 제한된 영역에서는 그런 것들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그래서 완전히 그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가 등도 제한된 영역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런 내용도 일정한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오로지 그 부분에만 투자를 하면
다른 영역에서는 그만큼 손해가 된다.
더 나아가 오직 그런 것만 의미가 있다고 잘못 여기고 
그것만 붙잡고 임하면 결국 가짜에 쉽게 농락당하게 된다. 

따라서 평소 이를 함께 적절히 잘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 문제되는 어느 영역에나 가고 지닐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 
그래서 어느 영역에서나 다 지니고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신의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위조될 수도 없다.
그리고 가짜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있는 한 언제나 지니고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잘 찾아 확보해야 한다. 

알고보면 그것이 경전에서 수행자가 지녀야 한다고 제시되는 재물의 내용들이다. 
그것은 그런 성격을 갖는다. 

‡칠재

‡십무진장
ω십무진장


보물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보물이 있다. 
그리고 이런 보물에서 기대하는 일정한 성품이 있다.

그런데 정작 비싼 가격에만 거래될 뿐 
보물에서 기대하는 성품은 거의 없는 품목도 있다. 
오히려 그 반대 내용만 얻는 경우도 있다. 
또 그에 반해 시장에서는 전혀 비싼 가격에 거래되지 않지만, 
보물에서 기대하는 성품만 무량하게 지니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교환가격이 너무 높은 품목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로 인해 그 주인이 도둑이 들까 불안하게 늘 지냈다고 하자.
그리고 어느날 강도가 들어와 그 주인을 해치고 그것을 뺏어갔다고 하자. 
그런 경우라면 이것이 교환가격이 높다고 과연 보물이라고 할 것인가가 이 문제다. 

그런데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그 정체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대할 때마다 늘 만족과 즐거움 기쁨, 재미, 웃음, 보람, 가치, 
평온함, 안정감,  아름답고 선한 희망에 대한 의욕과 그에 대한 노력,
이런 것을 늘 일으켜 갖게 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막상 시장에 갖고 가면 가격이 너무 싸다. 
또는 아예거래도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무엇을 보물이라고 해야 하는가부터 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노력해 가치있는 보물을 찾고 얻어내려면
먼저 이 구분부터 잘 해야 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왜 3보를 3 보라고 제시하는가
그 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에 비해
현실에서 재산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그런 것은 보물도 아니다.
보물에서 기대하는 기능을 대부분 갖지 못한다.
조금은 있다해도 오래 많이 갖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그것을 집착해도 어느 한 순간에 다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지니고 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런 것에 집착하고 임하면 그 만큼
결국 가짜에 농락당한 결과가 된다. 
이것은 가짜가 갖는 부작용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은 삶에서 빼내야 한다. 
대신 그렇지 않은 것을 쌓는 활동에 노력애야 한다. 

이런 문제는 예를 들어 사진기가 대량 보급된 상황에 놓인
미술가의 입장과 마찬가지라고 여기면서 생각해야 한다. 


가짜가 효용을 더 잘 발휘하는 부분에서는 
그런 가짜만으로 얻고자 한 효용을 잘 얻고 그치는 것이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귀족부인이 모조품 보석을 차고 다니는 상황과 같다. 
모파상이 쓴 목걸이는 이 반대로 임한 경우의 부작용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임하면 또 적절하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그렇지 못하고 부작용과 문제만 
붙잡고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어가는 측면이 있다. 
그런 부분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영역에서 제거되고 벗어난 한편, 
다시 그 반대 성격을 갖는 측면에서는 
또 그런 부분대로 새로 영역을 구축해서 쌓아가야 한다. 

결국 이부분이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는 수행부분이다. 
이를 통해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쌓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해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한다. 
한마디로 환이고 가짜다. 
그래서 집착을 잘 제거한다. 
그래서 그에 바탕한 업과 생사고통을 다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 두 측면을 다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이번에 방문한 돈황 막고굴에 대해 구글과 위키백과에서 내용을 복사해  페이지로 올렸다. 

http://buddhism007.tistory.com/16624

오늘날 이처럼 돈황석굴을 구글 검색으로 쉽게 살필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석굴 안에서 직접 수행자가 행하는 수행내용을 
그처럼 쉽게 취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정이 다르다.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여행에 들어가는 수고는 가짜로 제거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수행 측면은 수행자가 직접 쌓아나가야 할 부분이다. 


한편, 이에 관련된 백과사전 내용 가운데
영어 위기백과 내용은 번역기를 돌려 그냥 붙였다. 

시간이 더 나면 일일히 원문과 대조해서 교정을 해야 할 듯도 하다. 
그러나 단순 참조용으로는 대단히 유용하다. 
불교 용어 공부도 상황이 비슷하다. 

‡아승기
‡옴마니반메훔

이런 부분을 살폈다. 
그리고 영어 위키백과도 번역기를 돌려 붙여서 살폈다. 
몇몇 부분은 문제가 있는데 그냥 두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대단히 도움이 된다. 

이처럼 요즘 모든 정보는 컴퓨터가 더 확실하게 기억하고 보존한다. 
그리고 검색도 더 빠르다. 
경전 내용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렇다고 검색창만 갖고 있으면
그것으로 자신이 이들 내용을 다 안 상태가 되고 실천 성취한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정보를 얻고 보관해두는데 들이는 수고는 위와 같이 덜어야 한다. 
이들 내용이 가치있다고 지금 나무 조각을 붙들고 글자를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그대로 새기면서 경전을 공부해야겠다고 임하면 곤란하다. 

그렇지만 수행자가 이런 노력을 더는 대신 
힘써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 
그 부분은 쉬지 않고 또 노력해야 마땅하다. 





♥ 잡담 ♥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16622#1702
sfed--우바새계경_K0526_T1488.txt ☞우바새
sfd8--불교단상_2564_04.txt ☞◆vmhv1702
불기256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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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욕계와 색계에 사는 이를 말함.


답 후보
유색(有色)
유식종(唯識宗)
유심위(有心位)
유여(有餘)
유원무행(唯願無行)
유유력대연(有有力待緣)
유쟁(有諍)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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