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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12-20_불설도조경-K0701-001 본문
『불설도조경』
K0701
T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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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도조경』
♣0701-001♧
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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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說兜調經
K0701
불설도조경(佛說兜調經)
역자 미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에 계셨다.
그 나라에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을 도조(兜調)라 하였고,
그 아들은 이름을 욕(谷)이라 하였다.
도조는 사람됨이 몹시 폐악하여 항상 사람에게 욕설하기를 즐겨,
그가 죽어서는 도로 그 집 개로 태어났는데 그 개 이름을 나(騾)라 하였다.
그 아들 욕은 그 개를 매우 사랑하여 금 사슬에 매어 두고 평상에 누울 때에는 털로 짠 요를 깔아 주며,
금 쟁반에 맛난 음식을 담아 주었다.
욕곡이 저자에 나간 뒤에 부처님은 욕의 집 문앞을 지나셨다.
그 흰 개는 부처님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네가 전에 사람으로 있을 때에는 항상 손을 들고 성을 내어 고함치더니,
지금은 개가 되어 으르렁거리는구나.
너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느냐.”
개는 부끄러워 곧 달아나 평상 밑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뒤에도 그 개는 항상 눕는 평상에 올라오지 않고,
맨땅에 누워 밥을 주어도 먹지 않았다.
욕은 밖에서 돌아와,
개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집사람에게 물었다.
“개가 왜 저러는가?”
집사람은 대답하였다.
“아까 어떤 스님이 지나갔는데 무슨 말을 하였는지,
저 개가 평상 밑으로 달려 들어가 맨땅에 누운 채 밥을 주어도 먹지 않습니다.”
“그 스님은 어느 길로 가던가?”
“동쪽으로 갔습니다.”
욕은 곧 뒤를 따라 쫓아갔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나무 밑에서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욕이 오는 것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욕이 여기 오기 전에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비구들은 여쭈었다.
“왜 지옥에 떨어지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악의를 가지고 와서 사람을 해치려 하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욕은 부처님 앞에 와서 이내 여쭈었다.
“아까 우리집 문앞을 지나면서 우리 개를 꾸짖어,
먹지도 않고 제자리에 눕지도 않게 한 스님이 누구입니까?”
부처님은 곧 말씀하셨다.
“내가 네 집 문 앞을 지날 때,
그 흰 개가 나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나는 곧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전생에 사람으로 있을 때에는 항상 손을 들고 성을 내어 고함을 지르더니,
지금은 개로 태어나 으르렁거리는구나.
너는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가.’
그랬더니,
그 개는 곧 부끄러워 달아나,
평상 밑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욕은 여쭈었다.
“그 개는 내게 무엇이 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을 것 없다.
네가 들으면 매우 불쾌할 것이다.”
욕은 말하였다.
“원컨대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말하면 네가 성낼 것이다.”
욕은 말하였다.
“감히 성내지 않겠습니다.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네 아비 도조니라.”
욕은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 계실 때 경전에 밝았고 경전에 도통하였습니다.
개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제가 안다고 너무 뽐내었기 때문에 개가 되었느니라.
그것이 참으로 네 아비인 줄 너는 알고 싶은가?
그렇거든 너는 집에 돌아가 그 개를 보고 말해 보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 도조라면 전에 먹던 밥 그릇의 밥을 먹고,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전에 눕던 자리에 돌아가 누워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전생에 가졌던 보물을 감춰 둔 곳을 내게 알려 보아라.’”◂
욕은 곧 집으로 돌아가 개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나(騾)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 도조라면 이 밥을 먹어라.”
개는 곧 그 밥을 먹었다.
욕은 다시 말하였다.
“나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전에 눕던 자리에 누워라.”
개는 곧 옛 자리에 누웠다.
욕은 다시 말하였다.
“나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전생에 가졌던 보물을 감춰 둔 곳을 내게 알려 보아라.”
개는 곧 입으로 평상 오른쪽 발 밑을 가리키면서 두 앞발로 땅을 긁어 보였다.
욕은 나가 긁던 땅을 파고,
보배와 진주 등 많은 물건을 얻었다.
욕은 매우 기뻐하면서 곧 부처님께로 돌아갔다.
부처님은 멀리서 욕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저 욕이 여기 오기 전에 죽으면 곧 천상에 날 것이다.”
비구들은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천상에 나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선의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천상에 날 것이다.”
욕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아뢰었다.
“진실로 부처님 말씀과 같았나이다.”
욕은 이어 여쭈었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에,
왜 장수[壽]하는 이와 장수하지 못하는 이가 있고,
병이 많은 이와 병이 적은 이가 있으며,
얼굴이 좋은 이와 나쁜 이가 있고,
높은 이와 낮은 이가 있으며,
아름다운 이와 아름답지 않은 이가 있고 부한 이와 가난한 이가 있으며,
지혜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가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생을 좋아하여,
인자한 마음이 없으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오래 살지 못한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생하지 않고 자비심이 있으면 죽어서 천상에 올라간다.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오래 사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싸우기를 좋아하여,
칼이나 막대기를 가지고 사람을 두렵게 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병이 많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서 화합을 좋아하여,
칼이나 막대기를 가지고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지 않으면 죽어서 천상에 난다.
또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더라도 병이 적으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성내기를 좋아하여,
좋은 말을 들어도 성을 내고 나쁜 말을 들어도 성을 내며,
현명한 이를 보아도 성을 내고 어리석은 이를 보아도 성을 내면서 선ㆍ악을 분별하지 않고,
다만 성만 내려 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또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얼굴에 좋은 빛이 없고 누르퉁퉁하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서 성내지도 않으며 짜증 내지도 않고 어진 이를 보면 공경하고,
어리석은 이를 보아도 참으면,
죽어서 천상에 올라간다.
또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인간에 나더라도 얼굴 빛은 언제나 좋고,
사람됨이 온화하고 어질고 착하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노인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고,
부모에게는 효도하지 않으며,
부모를 보아도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부모에게나 장로에게 효순하고 공경하는 사람을 보고 항상 성내고 원망하면,
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또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아름답지 않아서 여러 사람의 미움을 받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서 보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혹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어른 공경하지 않으면,
곧 그에게 가서 가르쳐 주고 남에게 착한 말 하기를 좋아하면,
그는 죽어서 천상에 난다.
또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인간에 나더라도 남의 사랑과 존경을 받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교만하여 높은 이를 공경하지 않고 스스로 방자하게 날뛰면,
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또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이내 하천하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서 교만하지 않아 항상 높은 이를 공경하고 남에게 방자하지 않으면,
그는 죽어서 하늘에 올라간다.
또 그는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에 나더라도 이내 존귀한 이가 되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인색하고 탐욕이 많아 부자로 살면서도 가난한 이에게 베풀어 주지 않고,
친척들을 돌보지 않으며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음식을 아껴 사문이나 도인에게 베풀어 주지 않고,
또 스스로도 배불리 먹지 않으면 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또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빈천한 거지가 되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인색하거나 탐내는 마음이 없어 남을 위해 빈부를 가리지 않고 사문이나 도인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가난한 이에게 베풀어 주고 친척들을 사랑하여 돌보며 스스로도 배불리 먹으면,
그는 죽어서 천상에 올라간다.
또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세상에 나더라도 부하고 즐기면서 남의 존경과 사랑을 받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경전에 밝아 유명하거나 혹은 사문이나 도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그에게 가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묻기를 좋아하지 않고,
마음으로 미워하면서 제가 잘난 체하면 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
또 그는 지옥에서 죄를 마치고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아주 어리석고 무지하여 축생과 같이 된다.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이가 경전에 밝아 유명하거나 혹은 사문이나 도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에게 가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묻기를 좋아하고,
마음으로 질투하거나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는 죽어서 천상에 난다.
또 그는 천상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더라도 경전에 밝고 도를 깨달아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느니라.”
▸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천상에 나게 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지옥에 난다.
사람은 장수하기를 구하여 장수하게 되고 장수하지 않기를 구하여 장수하지 않게 되며,
병을 구하여 병을 얻고 병들지 않기를 구하여 병들지 않게 되며,
좋은 얼굴을 구하여 좋은 얼굴을 얻고 나쁜 얼굴을 구하여 나쁜 얼굴을 얻는다.
존귀하기를 구하여 존귀하게 되고 하천하기를 구하여 하천하게 되며,
아름답기를 구하여 아름답게 되고 아름답지 않기를 구하여 아름답지 않게 되며,
부를 구하여 부자가 되고 가난을 구하여 가난하게 되며,
지혜를 구하여 지혜를 얻고 어리석음을 구하여 어리석게 되느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선악을 짓는 것은
마치 곡식을 심으면 곡식을 얻고,
보리를 심으면 보리를 얻으며,
벼를 심으면 벼를 얻는 것과 같아서,
선을 지으면 선을 얻고 악을 지으면 악을 얻느니라.”◂
욕은 곧 물러나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아까 올 때에는 개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을 보았으므로 마음으로 성내었으니,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부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장님이 보게 된 것 같고 귀머거리가 듣게 된 것 같으며,
깊은 물에 빠진 사람이 나온 것 같고 미치광이가 나은 것 같으며,
어둠 속으로 가는 사람이 해나 달을 본 것 같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이 여겨 주소서.
허물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나이다.
다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곧 5계(戒)를 받들어 행하여 우바새가 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후세 사람으로서 이 경을 외우거나 그 외우는 소리를 듣는 이는
모두 마음이 측연(惻然)하여 털이 일어서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니,
그런 사람은 장차 미륵불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잘 살아갈 것이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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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과정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하는 사정
<차례>
● 생사과정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하는 사정
- 생사과정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하게 하는 기준
- 개가 된 도조와 계의 관계
- 수많은 장소에서 한 장소의 위치를 특정하게 하는 기준
- 오랜 기간 달라지는 건물을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로 관하게 되는 기준
- 블록으로 만든 두 형체간의 부품 변화
- 블록으로 만든 두 형체간의 형태 변화
- 식물의 성장과정과 이숙
- 각 주체의 식사 소화 흡수 배설과정과 부품 및 형태 변화
- 거리 이동시 다양한 모습을 한 주체로 관하는 근거
- 한 생내 각기 다른 시점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하게 하는 기준
- 생사과정에서의 이숙
- 한단면에서 정체 파악문제
- 매순간 다른 내용에서 대표가 되는 내용 정하기
- 매 순간 얻는 감각현실(현량)이 표준적으로 옳은 내용인가의 판단 문제
-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
- 한 단면에서 격자 이론과 정체 파악문제
- 변화과정에서 격자 이론과 정체 판단문제
- 생사과정에서 생사와 생멸 분별 문제
- 현실 내용의 한 단면과 본 바탕 실재의 관계
- 생사윤회 과정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자신으로 취하게 하는 정신구조와 기제
-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이나 영희 등으로 잘못 판단하게 하는 사정
-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이나 영희 등으로 잘못 판단하게 하는 사정
- 2차 분별기 신견이 형성되는 배경사정
- 상일
- 주재
- 주관과 대상관계에서 주관
- 변화과정에 불변하는 공통요소가 있는가의 문제
- 변화과정에서 공통점을 기준으로 한 주체로 판단할 경우의 문제점
- 비슷한 성품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경우
- 인과로 이어지는 내용을 모두 한 주체로 판단할 때의 문제
- 매순간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 취하게 하는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
- 보이지 않는 마음을 있다고 시설하게 되는 사정
- 다른 주체의 정신을 시설하는 배경 사정
- 마음을 시설하는 근거로서 마음내용과 마음의 관계
- 유식무경와 외부 대상의 존부문제
- 무의 극단에 치우쳐 유식을 주장하는 입장
- 무의 극단에 치우쳐 유식을 주장하는 입장의 문제점
- 실재가 전혀 없지 않음 그러나 현실과는 엉뚱하여 실답지 않음 - 집착제거
○ 일체가 마음인 상황에서 수행의 의미
- 생사윤회과정과 수행의 목표
-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자신으로 취하는 부분의 중요성
- 생사고통의 기본적 예방방안 - 10 선법등
- 생사현실이 공함과 망집의 제거
- 생사현실이 차별없이 공함과 악취공견의 입장
- 생사 즉 열반관
- 생사현실의 2 중적 측면과 생사현실내 무량한 선법의 중요성
-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과 생사현실의 중요성
- 생사과정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하게 하는 기준
어떤 사람이 개가 되었다고 하자.
마찬가지로 생사과정에서 사람이 나중에 개도 되고 아귀도 되고 지옥 중생도 된다.
또는 하늘 중생도 된다.
이런 내용을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 개가 된 도조와 계의 관계
『불설도조경』 (K0701)에 사람이 개가 된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일반적으로 잘 이해해 받아들이지 못한다.
경전에 대강 그 개가 그 사람인 것을 확인할 3 요소를 제시한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가 안다고 너무 뽐내었기 때문에 개가 되었느니라.
그것이 참으로 네 아비인 줄 너는 알고 싶은가?
그렇거든 너는 집에 돌아가 그 개를 보고 말해 보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 도조라면 전에 먹던 밥 그릇의 밥을 먹고,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전에 눕던 자리에 돌아가 누워라.
네가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전생에 가졌던 보물을 감춰 둔 곳을 내게 알려 보아라.’”◂
...
그래서 이런 사실을 통해 그 개가 전생의 아버지였음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 수많은 장소에서 한 장소의 위치를 특정하게 하는 기준
현실에서 어떤 위치를 확인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기준이 되는 3 지점 정도가 필요하다.
어떤 이가 만날 장소를 잘 몰라 묻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다음처럼 답할 수 있다.
시청역과 광화문 중간 지점이다.
그런데 종각역 반대쪽 방향에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해준다고 하자.
그러면 위치 파악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처럼 판단할 준거 기준이 중요하다.
- 오랜 기간 달라지는 건물을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로 관하게 되는 기준
어떤 건물이 재건축되었다고 하자.
즉 과거 건물이 오래 되어서 헐렸다.
그리고 그 장소에 새로운 형태의 새 건물이 세워 졌다.
이런 경우 과거에 이 장소에 이러이러한 건물이 있었음을 제시한다고 하자.
즉, 그런 건물이 헐리고 지금과 같은 새로운 건물이 올려졌음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현재의 건물만으로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곤란하다.
새 건물이 세워진 때에는 과거 건물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한편 과거 건물이 있던 때는 아직 새 건물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다음처럼 말을 한다.
이 장소에 과거에 이런 건물이 있었었다.
이런 내용을 현실에서 제시한다.
이런 경우 앞에 제시한 기준점으로 그 사실을 제시한다고 하자.
즉 좌 우 전면의 다른 건물과 함께 있는 과거 건물 모습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과거 건물이 지금 건물이 있는 장소에 있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런 다른 기준을 통해 그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이 건물 장소에 앞으로 설계도에 그려진 다음 건물이 새로 세워질 것이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 블록으로 만든 두 형체간의 부품 변화
위 문제를 쉽게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처럼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장난감에 블럭으로 만드는 놀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블록으로 각 형체를 만든다.
그래서 한쪽에는 노란 블록으로 사람형체를 만든다.
또 다른 한쪽에 하얀 블록으로 개를 만들어 보자.
그 상황에서 사람은 개가 아니다.
또 개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후 사람에 붙어 있는 블록을 하나씩 떼어 낸다.
그리고 또 개에 붙은 블록도 하나씩 떼어 낸다.
그리고 이것을 곧바로 서로 옮겨 하나씩 바꿔 붙인다고 하자.
처음 노란 블록으로 된 사람형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형체에서 하얀 블록 부분이 하나 바뀐다.
그렇다고 사람형체가 사람형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을 꾸준히 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느 순간 사람 형체는 온전히 하얀 블록으로만 바꿔진다.
그래도 형체는 사람형체다.
그러나 그 형체를 구성한 블록은 알고 보면 개를 처음 만들었던 블록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이제 사람 형체 안에 다 들어와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자.
실질적으로 사람형체를 구성했던 블록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후 개의 형태로 된 것이다.
그래도 이 과정을 계속 이어 본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사람 형태는 단지 그 구성 부품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대로 사람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하게 된다.
- 블록으로 만든 두 형체간의 형태 변화
이제 또 다른 실험을 해보자.
앞과 같이 블록으로 사람과 개의 형태를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히 각 부분을 조금씩 형태를 바꾸기만 한다.
그래서 처음의 사람 형체를 조금씩 개의 형태로 바로 바꾼다고 하자.
그리고 개의 형태는 사람 형태로 바로 바꾸어 간다고 하자.
이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사람의 생사과정이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 문제부터 잘 살필 필요가 있다.
- 식물의 성장과정과 이숙
봄에 씨를 뿌린다. 가을에 열매가 맺는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를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관계를 잘못 판단한다.
예를 들어 봄에 씨를 뿌리고 열매가 열리기 전까지만 관찰한다고 하자.
씨를 뿌린후 며칠간 아무리 살펴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씨에서는 어떤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길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씨에서 어떤 열매가 나타남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협단천 관찰과 광장심 관찰의 차이다.
한편 이 경우 씨와 열매를 서로 비교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원인과 결과사이에서 그 모습이나 성품이 다 다르다.
그래서 열매는 씨와 모습과 성품이 다르다.
그런데 그런 열매가 그런 씨에서 나오게 된 사정이 문제될 수 있다.
이처럼 인과 과정에서 모습과 성품이 달라진다.
이를 한자어로 '이숙'이라고 표현한다.
- 각 주체의 식사 소화 흡수 배설과정과 부품 및 형태 변화
사람은 일정 시기마다 식사를 한다.
이 때 배추밭에 있던 배추, 축사에 있던 축생의 살 들이 섭취된다.
그리고 체내 일부는 배설된다.
또 사람은 매 순간 호흡을 한다.
외계에 있던 공기가 들어와 섭취된다.
그리고 내부에 있던 공기가 대신 나간다.
그래서 이 호흡과정도 사정이 같다.
의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이처럼 활동하면서 한 7 년 정도를 경과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전과 완전히 구성물질이 다 달라진다.
- 거리 이동시 다양한 모습을 한 주체로 관하는 근거
한편 한 3 분 사이의 변화만 놓고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100 m 앞에 영희가 서 있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 쪽으로 달려온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영희의 형체나 크기가 매 순간 다르다.
글자로 표시하면 매 순간 형태는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다
α,β,γ,δ,ε,ζ,η,ι,κ,λ,μ,ν,ξ
이 경우 처음에 볼 때는 자신의 손가락보다도 사람이 작게 보인다.
그런데 자신 앞에 다가올 때는 대단히 크게 보인다.
그리고 달려오는 매 순간 그 모습이 다르다.
그런데 이것을 모두 현실에서 하나의 영희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 한 생내 각기 다른 시점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하게 하는 기준
각기 다른 내용을 한 주체로 관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문제는 한 생의 현실에서도 발생한다.
갓난아이가 청소년이 되었다가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갓난아이가 노인이 되는 과정부터 먼저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노인이 되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린 아이와 노인의 모습은 다르다.
또 그 당시 마음 속 생각도 다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왜 그 노인이 한 주체라고 관하게 되는가.
이 문제도 사실은 성격이 비슷하다.
그렇게 볼 근거가 무엇인가를 제시해보자.
- 생사과정에서의 이숙
한편 생사과정에서 매 생마다 생명형태가 달라진다.
이 역시 '이숙'이라고 표현한다.
현실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단면에서 정체 파악문제
이 각 경우 처음 한 단면부터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 경우 처음 각 블록덩어리가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각기 사람이나 개로 보는가가 먼저 문제된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상황과 비교해보자.
- 매순간 다른 내용에서 대표가 되는 내용 정하기
한 주체는 매순간 모습과 크기가 다 다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떤 모습이 과연 영희의 대표인가도 문제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정체가 무언가부터 먼저 잘 확인해야 한다.
- 매 순간 얻는 감각현실(현량)이 표준적으로 옳은 내용인가의 판단 문제
여기에는 조금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인명론에 현량은 '옳은' 지식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있다.
여기서 현량이란 감각으로 직접 얻게 되는 내용 등을 가리킨다.
그런 경우 손가락만한 영희모습부터 큰 영희모습까지 다 옳은 내용이라고 제시한 것이 된다.
그런 경우 그 근거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즉 무엇을 대상으로 어떤 내용을 얻은 것이기에 그것을 옳다고 하는가를 밝혀야 한다.
『금강경』에서는 상은 실로 상이 아니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주장은 사실은 잘못된 주장임을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또 이 각각의 모습이 다 영희라고 일반적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
그래서 이 문제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한 정지단면에서 무엇을 과연 영희라고 보는가부터 해결해야 한다.
현실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영희를 안다고 여기는 이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영희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영희를 가리킨다.
이 현상부터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영희라고 가리킨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 때 그 부분의 정체가 무언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물론 영희라고 여기는 내용은 눈으로 본 내용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색성향미촉 법의 내용이 모두 해당된다.
그런데 눈으로 본 내용을 놓고 살피는 내용들은 이 각 경우에 준용된다.
따라서 눈으로 본 내용을 놓고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그래서 어떤 이가 눈으로 그런 내용을 보았다고 하자.
이 경우 눈으로 본 내용은 눈을 감으면 얻지 못한다.
그래서 눈으로 본 내용은 알고보면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 안 내용이다.
이는 다음을 판단하면 이해하기 쉽다.
영희를 대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자신 외 철수가 보는 상황을 놓고 판단해보자.
이 상황에서 철수가 눈을 감는다.
그러면 영희를 보지 못한다고 보고한다.
또 눈을 뜬다고 하자.
그러면 영희가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런 변화는 철수에게서 있었던 일일 뿐이다.
따라서 철수가 눈을 떠서 영희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 경우 철수가 본 내용은 철수가 얻어낸 내용이다.
즉 철수의 마음이 얻어낸 철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자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를 놓고 자신이 영희라고 여기며 가리키는 그 부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알고보면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즉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안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어떤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가운데 일 부분을 취해 평소 영희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의 본질은 하나의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리킨 부분은 자신의 마음내용이다.
한편,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대하며 일정한 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분별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그런 분별내용인 것도 아니다.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자신의 분별 내용에 그런 감각현실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분별 내용이 곧 그런 감각현실인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가운데 그런 분별을 일으켰을 뿐이다.
따라서 이 두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연필을 보며 이를 통해 기차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고 연필에 기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연필이 기차인 것도 아니다.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를 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일정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이 때 그 부분은 감각현실 부분이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는 그런 관념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경우 그런 내용이 없는 부분을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는 현상이다.
또 그런 내용이 아닌 부분이 그런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래서 이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사정이 이와 같다.
한 단면에 그가 생각하는 모습이나 성품을 얻을 수 없다. [ 언설명자 성상 불가득]
또한 현실에 오고감이나 생멸변화는 얻을 수 없다. [불생불멸]
그런데 현실에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임한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현실에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 한 단면에서 격자 이론과 정체 파악문제
그런 가운데 어느 한 블록 부분을 넣고 뺀다고 하자.
이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지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은 정체 파악과정에서 격자 이론과 관련된다.
한 부분을 취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을 A 라고 판단한다고 하자.
이는 그 부분이 그런 a의 성품과 모습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다시 수없이 작은 부분으로 격자 형태로 나눈다고 하자.
이 경우 한 부분 전체를 대해 일정한 성품과 모습을 분별해 일으키게 된다.
또 전체부분를 대해 일정한 성품과 모습을 분별해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같은 성품과 모습을 얻기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집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집을 구성하는 창문이 집인가.
또는 천장이 집인가.
또는 문이 집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을 다 제외하면 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손이 영희인가.
다리가 영희인가.
이런 식으로 각 부분을 붙잡고 살핀다고 하자.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을 다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영희가 그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일정 부분을 다 함께 묶어서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 전체는 영희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앞의 문제가 다 이와 관련된다.
- 변화과정에서 격자 이론과 정체 판단문제
즉 그 영희가 매 순간 형체와 크기를 달리 하면서 달려온다.
그 상황마다 다 내용이 다르다.
그리고 어느 한 단면에도 오고감은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상황에 오고감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는 변화과정에서의 격자이론에 해당한다.
각 단면 하나하나에 그런 오고감이나 생멸 변화는 없다.
그런데 이들 단면을 함께 모아 묶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여기에 그런 변화나 생멸이 있다고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각 단면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분별하게 된다.
처음 한단면의 각 부분에 그가 일으킨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 각 부분을 묶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모습이나 성품이 있다고 잘못 분별한다.
이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런 부분을 대해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곧 그런 부분에 그 내용이 '있다'고 잘못 분별하는 것이다. [망상분별]
- 생사과정에서 생사와 생멸 분별 문제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제각각 다른 형태의 모습을 모두 하나의 영희로 여기게 된다.
매 순간 조금씩 다른 부품이 영희에게 섭취된다.
또 조금씩 다른 부붐이 대신 빠져 나간다.
그런 가운데 점차 형체가 크게 달라진다.
그런 가운데 갓난아이가 노인으로 변해간다.
그래도 이 모두를 영희라고 현실에서 여기게 된다.
그러다가 이제 완전히 질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그러면 이제 영희는 사망했다고 여긴다.
생사현실에서 한 주체의 생사는 사실 이런 문제다.
- 현실 내용의 한 단면과 본 바탕 실재의 관계
한편, 현실에서 자신이 얻은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내용 밖의 본 바탕 실재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자신이 감각한 감각현실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이런 감각현실에 상응한 어떤 내용이 따로 있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리고 또 자신이 일으킨 관념분별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관념분별에 상응한 어떤 내용이 따로 있는가등이 문제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실재는 무엇인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앞과는 일단 별개 문제다.
따라서 이들 문제를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그런 가운데 마음 밖의 실재는 자신이 끝내 얻어내지 못한다.
자신은 자신의 마음이 관계한 내용만 마음에서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재는 마음과의 관계를 떠나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실재는 그 주체로서는 끝내 얻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난다.
그러나 이는 그런 실재 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떤 주체가 이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마음 밖 실재는 얻지 못하고 공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다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색과 소리의 관계와 같다.
눈으로 색을 본다.
그런데 다른 영역에서는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귀로 소리를 듣는 영역만 놓고 보아도 사정이 그렇다.
이 경우 눈으로 소리 영역의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소리 영역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한편 눈으로 색을 못 얻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눈으로 얻는 색은 소리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반대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마음 밖 실재 영역과의 관계는 그 사정이 더욱 그렇다.
이 경우 얻을 수 없음[불가득]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즉, 전혀 아무 것도 없음[무]과 혼동하면 안 된다.
공함은 있고 없음의 2 분법을 모두 떠나는 것이다.
다만 현실은 그런 바탕에서 자신이 얻어낸 내용 일부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영희라고 여기는 것이다.
평소 스스로 자신이라고 파악하는 부분이 있다.
이 경우도 그 사정이 같다.
그래서 평소 영희나 자신이라고 가리킨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각 부분의 본 정체를 잘 확인해야 한다.
이 한 단면에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 생사윤회 과정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자신으로 취하게 하는 정신구조와 기제
한 주체가 현실에 임하게 된 데에는 그 배경이 되어주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가 있다.
이런 바탕에서 각 주체는 생사현실에서 매 순간 엉뚱한 일정한 내용을 붙잡고 그것이 곧 영희나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런 판단은 본래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그런 망상분별을 그처럼 매순간 일으키게 하는 기제가 바로 위와 같다.
즉 그런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매순간 일정한 부분을 취해 붙잡고 그것이 영희라고 여긴다.
한편 매 순간 이렇게 붙잡는 내용은 매순간 각기 달라진다.
그런데 이처럼 각기 다른 내용을 놓고 하나의 영희로 여기고 매 순간 대한다.
그런 가운데 매 순간 영희로 여기고 대하는 내용을 붙잡아 나열한다고 하자.
α,β,γ,δ,ε,ζ,η,ι,κ,λ,μ,ν,ξ
그런데 이렇게 각기 다른 내용은 하나같이 매순간 위와 같은 기제를 바탕으로 그렇게 붙잡아 취하는 것이다.
즉, 매 순간 그처럼 엉뚱한 내용을 취해 영희로 여기고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나열하면 위 형태로 이어 나열하게 된다.
또 이는 영희가 갓난아이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도 마찬가지다.
갓난아이 => 청소년 => 노인
그리고 이 과정 하나하나가 다 그런 기제에 바탕해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런 주체가 생멸한다거나 생사를 겪는다고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바로 이런 기제와 구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앞에서 영희에 대해 제시한 이들 내용은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평소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취하는 부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기제를 바탕으로 일정한 부분을 취해 영희나 자신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바로 그 바탕에서 그런 주체의 생사나 생멸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생사나 생멸은 바로 그런 망집에 바탕한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 현실 상황에 본래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런 기제를 바탕으로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는 그렇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자신이나 영희나 다 마찬가지다.
한편 이런 망집을 일으키는 이런 기제 자체는 생사전후를 거쳐 이어진다.
즉, 위 그림에서 눈으로 보게 된 내용 가운데 a! 부분을 붙잡고 평소 그 부분이 영희라고 여겼다고 하자.
그런데 이 부분이 어느 순간 완전히 질적으로 달라지는 상황에 처한다.
즉 현실에서 영희가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하자.
그래서 화장터에 들어가서 재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도 사정이 같다.
또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와 같은 변화를 겪었다고 하자.
즉,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눈으로 보게 된 내용 가운데 a! 부분일 수 있다.
그런 부분을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어느 사고를 통해 마찬가지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그것이 생사현실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그런 생사과정 전후에도 위 기제는 이어진다.
그리고 사후에는 또 다시 a1 와 같은 또 다른 부분을 붙잡고 또 망상분별을 평소처럼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제 그 모습이 전과 완전히 다른 강아지 형태가 된 것이다.
이 경우에도 망집을 바탕으로 할 때 평소 자신으로 여기게끔 되는 특성을 그런 부분이 갖는다.
즉 움직이자고 하고 뜻을 일으킨다.
그러면 그런 일정부분이 움직인다.
그런데 그 형태가 강아지 형태다.
이런 뜻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이제 그는 강아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영희나 철수 등도 그 사정이 이와 같다.
-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이나 영희 등으로 잘못 판단하게 하는 사정
[im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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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분별기 신견이 형성되는 배경사정
현실에서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임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켜 판단을 행한다.
그런 상태에서 2 차적으로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을 다시 자신으로 분별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그렇게 판단하게 하는 사정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이 나타나는 데에는 역시 처음의 배경사정이 작용한다.
즉 현실에 처음 태어나 임하기전 갖추고 있던 정신구조와 기제 때문이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그런 바탕에서 감각현실을 얻고 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해 다시 그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임하게 된다.
이는 분별기 신견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종합해 위 그림처럼 표현해보자.
1! 는 눈으로 본 내용을 얻는 부분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가운데 일부를 영희나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한다.
위 그림에서는 그런 부분을 a!로 표시했다.
그런데 a! 부분을 영희나 자신으로 여긴다고 하자.
물론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판단을 하게 되는 데에는 일정한 사정이 있다.
이 부분을 그런 내용으로 파악하게 하는 여러 특징이 파악된다.
그래서 이런 여러 특성을 과거에 '상락아정'에 대응시켜 살핀바 있다.
이는 다음 문제다.
평소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은 알고보면 모두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 상일
그런데도 자신이 감각할 때는 그런 부분이 늘 일정하게 파악된다.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다.
또 자신이 움직이려고 하면 그 부분만 변화한다. 다른 부분은 또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영희가 자신쪽으로 오겠다고 하면서 달려온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에 영희라고 손으로 가리킨 그런 부분만 변화한다.
그 상황에서 다른 주변의 거리나 건물은 대부분 그대로다.
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자.
이 경우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만 주로 변화한다.
역시 나머지 거리나 건물은 대부분 그대로다.
이런 사정들로 그런 부분을 영희나 자신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영희나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 데는 그런 사정들이 있다.
- 주재
한편 평소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이 뜻을 일으켜 어디론가 움직이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평소 자신으로 여긴 부분만 자신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자신 뜻대로 움직여 즐거움을 주는 부분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곧 그런 부분은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 주관과 대상관계에서 주관
또 그 부분이 다른 부분과 닿을 때 촉감을 느낀다. 다른 부분은 또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공을 창에 던지면 그 경우 촉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또 다음 실험도 함께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사과를 하나 손으로 붙잡고
우선 눈으로 본다.
또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
또 코로 냄새 맡는다.
또 입으로 맛을 본다.
또 손으로 만져 촉감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자신이 사과를 집어 옆에 영희에게 건넨다고 하자.
이 때 영희가 사과를 받고 또 마찬가지 보고를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사과나 영희로 여긴 부분들이 알고보면 모두 자신 마음내용이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왜 이렇게 되는가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위 실험에서 처음 색성향미촉을 얻는다.
즉, 각 감각을 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눈으로 본 사과를 대상으로 얻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자신이 손으로 사과를 만질 때 촉감을 느낀다.
그러나 촉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시각 정보가 아니다.
위 상황에서 눈을 감아도 촉감은 느낀다.
따라서 자신이 눈으로 본 그 부분들이 촉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나 감관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각 감각현실은 단지 서로 동시 부대상황의 관계에 놓이는 것 뿐이다.
즉 인과의 관계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왜 그 부분이 그런 특성을 갖게 되는가 그 배경사정을 다시 살펴야 한다.
그런데 여하튼 이 한 단면에서 그런 특성에 의존해 그런 일정 부분을 영희나 자신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판단은 잘못이다.
이 사정을 이미 앞에서 살폈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이 그런 특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게끔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이는 이미 한 주체의 정신구조와 기제로 살폈다.
------
다음 내용은 조금 복잡하다.
다만 여기에 일단 제시해 놓는다.
------
- 변화과정에 불변하는 공통요소가 있는가의 문제
갓난아이가 노인이 되었다.
그래서 갓난아이와 노인은 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 내용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 때 어떤 a 가 있었다고 하자.
그런 a 가 노인이 된 상태에 그대로 들어 있다.
그래서 그런 A가 갓난아이 시점부터 노인된 시점까지 꾸준히 있어 왔다.
즉 그런 A는 갓난아이시점부터 노인이 된 시점까지 옮겨 왔다고 이해하기 쉽다.
그런 사정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은 하나의 주체라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러나 갓난아이와 노인의 상태를 놓고 살필 때 그런 내용은 찾기 곤란하다.
갓난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없어졌다. 노인이 나타났다.
그런데 여하튼 그 갓난아이가 노인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이 경우 노인 안에 갓난아이가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또 갓난아이 안에 노인이 들어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야 이를 바탕으로 사람이 개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 사정도 없이 개가 되는 것은 또 아니다.
또 사람이 개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도 아니다.
가능하면, 사람은 이후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거기에는 제각각 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살펴야 한다.
- 변화과정에서 공통점을 기준으로 한 주체로 판단할 경우의 문제점
이 상황에서
처음 영희라고 붙잡은 내용을 다음처럼 표시한다고 하자.
abcdefghijklm
그런데 이 과정을 꾸준히 살피면 매 순간 그 내용이 조금씩 변화한다.
그래서 그 이후 내용을 다음처럼 표시한다고 하자.
bcdefghijklm1
cdefghijklm12
cdefghijklm123
defghijklm1234
efghijklm12345
fghijklm123456
ghijklm1234567
.......
이런 과정을 살피면 어느 하나를 영희의 대표라고 정하기 곤란하다.
설령 정한다해도 나머지 경우가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경전에서 이런 측면으로 영희를 찾으면
호흡 한번 하는 순간에 생사가 이뤄진다고도 제시한다.
호흡 한번 들이쉬고 내 쉬는 사이에만 그런 영희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앞 순간의 영희는 사라진다.
그리고 다른 존재가 되어 나타난다.
엄밀하게 보면 그렇다.
그런데 대강 비슷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엇비슷하게 이들이 다 함께 공통적으로 찾아내려면 곤란하다.
비슷한 성품을 갖는 것만으로 이들을 함께 영희라고 판단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다 엇비슷하다.
그래서 그 가운데 일정한 내용들만 영희라고 하기 곤란해진다.
또 그렇게 찾으면 평소 영희가 아니라고 보았던 철수나 영자 영숙... 들도 다 영희라고 여겨야 한다.
또 갓난아이와 노인을 살핀다고 하자.
이런 경우 육체적 형체나 구성물질이나 정신적 내용이 하나같이 다 다르다.
물론 약간의 유사성은 찾아진다.
다리가 있다. 손이 있다. 얼굴에 점이 있다.
그런데 이런 유사성만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이 같은 사람이라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세상에 같다고 할 사람이 무량하다.
그런데 그렇게 제시한 것은 또 아니다.
이들도 다 그 정도의 공통성은 파악된다.
예를 들어 다 손과 발이 있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동이 경우는 더욱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은 곤란하다.
그렇지만 한 주체의 변화과정을 앞 뒤로 이어보면 대강 비슷하다.
달라도 아주 미세하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뚝 끊어서 보면 대단히 다르다.
이는 '갓난아이 => 노인'으로의 변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왜 이 둘을 하나의 영희라고 여기는가가 문제다.
송충이에서 나비가 나타나는 과정은 그 사정이 더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영희가 갓난아이에서 노인이 되는 문제를 살펴야 한다.
또 100 m 를 달리는 상황에서 매순간 다른 모습을 다 함께 영희라고 여기는 현상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영희가 개가 된다거나 하늘에 태어나는 문제도 살펴야 한다.
이런 변화과정에서 각 내용이 갖는 유사성이나 공통성만 가지고 이 모두를 영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 인과로 이어지는 내용을 모두 한 주체로 판단할 때의 문제
변화과정에서 각 과정에 들어가는 요소 b + a => 변한 결과 a'' + 나오는 요소 d 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렇게 인과로 이어지는 각 내용을 모두 한 주체의 일로 여긴다고 하자.
이렇게 이어서 살피면 앞 문제처럼 판단이 곤란해진다.
이는 자신을 찾아나설 때 배설시마다 배설물을 자신이라고 여겨 쫒아 갈것인가의 문제도 된다.
또 예를 들어 30 년전에 깍은 손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길 것인가.
또 화장터에 들어가고 난후 남은 재를 자신이라고 여길 것인가.
이런 문제도 일으킨다.
그런데 앞 변화가 아주 많이 진행된다고 하자.
그래서 어느 순간
처음의 abcdefghijklm 가
이제는 1234567890 의 형태가 되었다고 하자.
그래서 질적으로 완전히 서로 달라졌다고 하자.
그래도 이들이 하나의 영희라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이 경우도 첫 문제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또 그런 사정으로 영희가 다른 생명 형태 예를 들어 개로 될 수도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한편, 앞에서 식사 배설 과정을 살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영희는 매 순간 조금씩 그 구성부분이 달라진다.
그런데 매 순간 어떤 내용을 영희라고 여길 때 이 과정의 인과를 따라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파악한다고 하자.
그러면 영희가 식사해 섭취하는 배추밭의 배추나 축생의 살을 영희라고 해야 할 듯하다.
또는 영희가 호흡하거나 배설시마다 외부로 배출하는 것도 영희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인과과정을 살피면 그렇게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한 단면에서
어떤 사정으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또 일정 부분을 영희나 철수로도 판단한다.
그 사정도 잘 파악해야 한다.
- 매순간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 취하게 하는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
여하튼 결국 처음 영희나 자신으로 여기고 손으로 가리킨 부분의 정체는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래서 처음 판단 자체는 잘못이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을 영희나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 데에는 위와 같은 배경 사정이 매 순간 작용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매 순간 그런 일정 부분을 영희나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매순간 그렇게 영희나 자신으로 파악하는 내용을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제시한 내용처럼 된다.
α,β,γ,δ,ε,ζ,η,ι,κ,λ,μ,ν,ξ
또는
갓난아이 => 청소년 => 장년 => 노인
이런 내용이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매 순간 정지단면에서 파악하는 내용의 정체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에 그 사정을 밝혔다.
이렇게 매 순간 파악하는 내용이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파악하게 되는 배경 사정은 위 그림에서 표시한 배경 사정 때문이다.
[img9]
08pfl--image/8식-9.jpg
그러나 여하튼 각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1,2,,3,4,5,6,7,8 과 같은 다양한 마음을 시설해 표시하는가가 처음에 문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제시하는 사정은 이전에 살폈다.
이를 이해하려면 예를 들어 『수능엄경』이나 『해심밀경』 『유가사지론』 등을 함께 참조해야 한다.
내용이 조금 복잡하다.
그래서 여기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그리고 간단히 그 대강만 약술하기로 한다.
이런 마음을 이런 구조로 시설해 제시하는 기본 사정은 다음이다.
우선 각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위와 같은 각 마음을 시설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현상 자체를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 보이지 않는 마음을 있다고 시설하게 되는 사정
물론 그 내용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은 복잡하다.
그런데 현실에 그런 사정이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 이런 마음을 있다고 시설해 벌려 세우게 되는 사정이 있다.
이는 예를 들어 외부 물질과 육체내 내부물질간의 자극 반응 쳬계로 정신현상을 이해하는 생리학자의 입장과 다르다.
즉, 이런 마음을 굳이 시설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입장과 다르다.
이런 경우 생사현실의 현상을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을 만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본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다시 보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이를 그림의 1과 같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전제해본다.
그러면 우선 현실에서 행하는 감각 현상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이런 뜻이다.
그래서 처음 눈을 떠 내용을 얻게 하는 마음이 따로 있다고 시설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다해도 다시 귀로 듣는 소리는 이로써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 1,2,3,4,5 를 하나씩 시설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그렇다해도 분별 작용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또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제 7 식과 제 8 식을 따로 시설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런 마음을 시설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행하는 작용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어떤 주체의 육체나 물질적 상황은 같다고 하자.
그런데 이 상황에 놓인 경우는 이런 소리를 듣고
다른 상황에 놓인 경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왜 그런가.
또 의식을 상실해서 감각 및 분별을 다 함께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그 주체는 일정한 생체기능을 계속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또 감각 자체는 별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물건을 등에 던졌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경우에서는 그 감각을 통해 그는 반갑고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다른 상황에서는 그 감각을 통해 그는 불쾌감을 느끼고 화를 내고 벌덕 일어난다.
그것은 왜 그런가.
이런 등등의 문제가 여기에 관련된다.
그리고 이 차이를 하나하나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국 위와 같은 마음과 작용을 시설하게 된다.
그런 뜻이다.
- 다른 주체의 정신을 시설하는 배경 사정
그런데 처음 자신이 얻는 일체는 자신 마음내용이라고 했다.
그런 가운데 여기서 어떻게 자신 외 다른 생명의 정신을 자신 마음 밖에 따로 시설하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자신이 평소 영희라고 여긴 부분이 있다.
이는 그 정체가 자신 마음안 내용[감각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 마음 밖에 그런 영희의 마음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의 경우와 이는 사정이 같다.
우선 평소 현실에서 처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는 영희와 자신의 사정이 같다.
우선 처음 그렇게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부분은 자신 마음안 내용[감각현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성격을 갖는 부분을 바탕으로 위와 같은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파악해 시설하게 된다.
그런데 영희의 마음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즉 현실 상황에서 영희의 마음을 따로 시설하는 과정은 이와 성격이 같다.
그래서 이 구조는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생명에도 적용된다.
- 마음을 시설하는 근거로서 마음내용과 마음의 관계
이것을 다음처럼 제시하기도 한다.
4대大를 빌려서 몸이라 하니
마음은 본래 생함이 없는데 경계 따라 있다.
눈앞의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없으니.
죄와 복이 허깨비 같이 일어나고 또한 멸한다.
假借四大以爲身 心本無生因境有
前境若無心亦無 罪福如幻起亦滅
...
『조당집』
이는 비사부 여래님의 게송이다.
그리고 이 게송은 처음 이와 같은 마음의 구조나 기제를 시설하게 되는 배경 사정을 제시한다.
생사과정을 전후해서도 이 구조가 이어진다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처음 1-2-3-4-5-6-7-8 을 하나하나 찾고 시설하는 과정은
현실 내용 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상 발생과정은 이 역순이다.
현실에서 어떤 기기를 조립하는 과정과 분해하는 과정과 순서는 서로 역순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주체의 출생 이전과 직후
또 한 주체의 사망과 그 직후 단계를 놓고 살피면
근본식 자체는 계속 이어짐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정 자체는 생사현실 안에서 또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망집에 바탕해 현실 단면에서 일정한 A 를 있다고 취한다.
또 그렇게 취한 A 로 인해 마음도 또 그처럼 있다고 취한다.
그러나 이처럼 있다 없다라는 내용은 분별 내용이다.
그 분별로 일정한 부분을 각기 가리킨다.
그러나 정작 그 부분에는 그런 분별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다만 이는 다음과 혼동하면 안 된다.
그런 분별로 일정 부분을 가리킨다고 하자.
이 때 그렇게 가리켜지는 일정부분은 그처럼 얻어진다.
그러나 그 부분에 분별한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즉 그것이 자신이라거나 바위라거나 마음이라는 등의 분별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끝내 그처럼 모두 함께 제거해야 할 망집의 한 부분이 된다. [경식구민]
- 유식무경와 외부 대상의 존부문제
한편, 이는 유식이론에서 유식무경의 의미해석과 관련된다.
유식무경은 우선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일체 내용은 그 본질이 마음내용임을 나타낸다. [유식]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얻어낸 일체 내용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무경]
즉 평소 그런 감각을 얻게 한 대상으로 여긴 내용은 알고보면 그런 대상이 아님을 나타낸다.
- 무의 극단에 치우쳐 유식을 주장하는 입장
그런데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세계에는 오로지 마음만 있다.
그래서 마음은 오로지 단독으로 자체분열해 내용을 얻어낸다고 해석하기 쉽다.
또는 마음은 오로지 마음을 서로 관계해서 내용을 얻어낸다고 해석하기도 쉽다.
그래서 즉 마음 밖 실재 영역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잘못 치우쳐 해석하기 쉽다.
그것은 마음 밖 실재가 불가득 공하다는 내용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얻는 일체가 모두가 마음 내용인 것만은 사실이다.
즉 평소 자신이 사과나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의 본 정체는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사과나 영희를 포함해 한 주체가 얻는 일체 내용은 모두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위아 같이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기 쉽다.
그리고 이들은 오직 자신의 마음만으로 자신 마음이 자체 분열해 이런 내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입장에 치우칠 수 있다.
이는 마음 밖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극단적 입장이 된다.
처음 마음 밖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필 때 마음 밖 내용을 한 주체는 끝내 얻지 못한다고 제시했다.
그런데 얻지 못하여 공하다[불가득 공]는 표현은 아무 것도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눈으로는 귀도 듣는 소리는 얻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눈으로는 소리 영역의 내용을 얻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소리 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을 통해서는 소리 영역의 내용을 얻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또 소리 영역에는 색을 얻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이런 사정을 통해 얻지 못함[불가득]과 아무 것도 전혀 없음[무]를 혼동하면 안된다.
그렇게 혼동하면 곤란하다.
- 무의 극단에 치우쳐 유식을 주장하는 입장의 문제점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현상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즉 자신이 사과를 집어 영희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처럼 한 주체가 보는 내용은 모두 그 마음 내용이다.
그런데 그 마음안의 각 부분내용이 왜 특성이 달리 파악되는가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즉 영희나 사과나 또 자신이라고 여기는 각 부분의 특성이 제 각각 다르다.
이 내용을 이미 살폈다.
이들은 모두 마음 내용인 것만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것만으로는 각 부분이 다른 사정을 설명할 수 없다.
한편 이들이 오직 자신의 마음내용인 만을 강조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상황에 영희나 다른 생명도 역시 자신 마음일 뿐이라고 하게 된다.
그리고 영희나 다른 생명이 자신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 마음 밖에 전혀 없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현실에서 영희나 다른 이로 보는 부분의 특성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그런 생명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그 근거는 평소 자신이 본 영희 모습 때문에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마찬가지로 평소 자신이 본 바위 등등의 다른 내용들도 역시 그에 상응한 내용들이 마음 밖에 따로 있다고 시설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영희에게 사과를 건네는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은 자신 마음 내용일부인 사과를 자신의 마음내용 일부인 영희에게 건넨 것이 아니다.
또는 자신이 자신은 자신의 마음 내용 일부를 떼어 자신 마음 밖 영희에게 건넨 것이 아니다.
한편 자신은 자신 마음이 다른 마음안의 어떤 내용(종자)를 대상으로 이런 내용을 얻어낸 것도 아니다.
또 마음이 아예 처음부터 오로지 마음 자체만으로 단독해 분열해 이런 내용을 얻어내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마음안에 들어 있던 종자가 그것만으로 자체 분열해서 매 상황의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현실에서 건물을 하나 세운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뿐만 아니라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다 이 모습을 본다.
이 경우 자신이 건물을 지은 것은 이 거리를 지나갈 모든 사람의 마음안에 그런 종자를 변화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또는 오직 자신의 마음안에 종자를 변화시켜 건물을 지어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오직 마음만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극단적으로 임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입장을 취하기 쉽다.
그래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신과 영희 철수가 하나의 조각품을 놓고 바라본다고 하자.
자신이 조각품을 본다고 할 때 자신이 본 내용을 영희나 철수가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경우 자신은 조각품의 앞에서 조각품을 볼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철수는 뒤에서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또 영희는 옆에서 조각품을 볼 수 있다.
이 경우 제각각 보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
서로 각기 보는 내용을 보고하면 이런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우선 자신이 본 내용은 그 상황에서 철수나 영희가 다 함께 대하는 객관적 실재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이 조각품의 한 부분을 몰래 떼어 냈다고 하자.
그러면 나중에 철수나 영희도 그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마음안의 어떤 종자[공종자]를 변화시켜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각 주체의 내용은 그렇게 모두 제각각의 마음의 분열로 얻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경우 그는 전시장에 오갈 수많은 사람의 마음안 종자를 다 그렇게 변화시킨 것이라고 또 해야 한다.
그런 해석은 지나친 해석이다.
이는 모두 현실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극단적으로 나아간 것이다.
즉 마음 밖에는 일체 아무 것도 없다.
세상에는 오직 마음만 있다.
자신의 마음이던 영희의 마음이던 철수의 마음이던 모두 마음뿐이다.
또는 오로지 세상에는 자신 마음 하나 뿐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 된다.
이 경우 현실 내용은 마음이 자체 분열했다거나,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무언가 얻는다거나
마음이 다른 마음의 어떤 요소에 의해 얻어진다거나
이렇게만 해석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내용을 설명해가야 한다.
문제가 있다.
자신이 사과를 영희에게 건넨다.
영희가 그 사과를 받고 보고 한다.
또는 자신과 영희 철수가 모두 다 함께 축구 경기를 본다.
이런 각 상황을 설명하기 곤란해진다.
이 각 경우 제각각 오로지 각각의 마음의 분열로 이들 내용을 엇비슷하게 같은 형태로 함께 얻어낸다고 하기 힘들다.
또 한편 현실에 오직 자신만 존재한다고 극단적인 독아론을 취하기 곤란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영희나 소나 양 등을 본다고 하자.
이 경우 처음 자신이 마음안 내용을 놓고 그것이 곧 영희나 소 양이라고 이해한 것은 문제다.
이들은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 마음 밖에 어떤 내용이 전혀 없다고 여기면 지나치고 곤란하다.
또 영희나 소 양은 본래 자신 마음안에 있었던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곤란하다.
자신의 마음에 영희나 철수가 본래 들어 있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영희가 보고하는 그 이전 경험내용 등 다른 내용을 왜 자신은 경험하지 못하는가를 다시 해명해야 한다.
이런 여러 문제들이 있게 된다.
- 실재가 전혀 없지 않음 그러나 현실과는 엉뚱하여 실답지 않음 - 집착제거
이들 문제는 다음처럼 이해하는 것이 낫다.
예를 들어 현실의 결합 화합 관계를 살펴보자.
H + O => HO2 수소 + 산소 => 물
C + O => CO2 탄소 + 산소 => 이산화탄소
Fe + O => Fe2O3 철 + 산소 => 산화철
...
이런 형태를 놓고 살펴보자.
여기에 산소가 다 관여한다.
그런데 산소가 각 경우 무엇과 관계하는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내용이 화합물로 나타난다.
이는 다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내용이다.
우선 현실에서 마음이 관계해 마음안에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마음안 각 부분 내용을 살피면 각 부분의 특성이 다르다.
어떤 부분은 자신의 뜻에 따라 변화한다. ( 자신의 팔 다리 )
그런데 어떤 부분은 다른 주체의 뜻에 따라 변화한다. ( 영희의 팔 다리)
또 어떤 주체와 관계없이 변화하는 부분도 파악된다. ( 바위 .)
또 이 각 부분이 관계할 때도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자신의 마음안에 얻어진 부분들이다.
그런데 마음은 각 경우 제각각 다른 내용을 그러나 일정하게 얻는다.
즉 여러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 조건이 되면
엇비슷한 내용을 일정하게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이것을 오로지 자신의 마음 만으로 단독해 그렇게 얻게 된다고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 경우는 앞의 화학식을 비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도움된다.
그렇게 이해해야 현실에서 자신이 영희에게 사과를 하나 건네는 상황조차도 설명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우선 자신이 자신 마음 일부분을 영희에게 건네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상황에서 사과를 받는 영희도 자신 마음안에 들어 있는 마음의 한 부분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희는 이를 통해 자신과 엇비슷한 사과를 얻는다고 보고한다.
이런 현실 상황은 다음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해하면 쉽다.
+ O => HO2 수소 + 산소 => 물
H
+ O =>HO2 수소 + 산소 => 물
여기서 처음의 O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하자.
두번째 O는 영희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하자.
여기서 H 는 제각각 사과로 여기고 대하는 마음밖 그 무엇이다.
이렇게 놓고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낫다.
이 경우 반야경전이나 중관론에서 설명하는 내용도 적절하게 된다.
H + O => HO2 수소 + 산소 => 물
이 식을 하나 놓고 우선 반야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부터 이해해보자.
위 식에서 물을 얻는다.
그런데 정작 위 관계식 앞 부분에서는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
즉 산소에서도 그 물은 얻지 못한다.
또 수소에서도 물은 얻지 못한다.
위 식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위 식에서 O 를 마음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나타나는 화합물은 마음안에 얻어지는 마음내용이라고 놓고 살펴보자.
그리고 현실에서 마음이 어떤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마음밖 실재 영역에 그런 물이 그대로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
실재가 공하다는 내용은 이런 사정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마음에서 사과나 영희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고 마음 밖에 그 내용이 그대로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
우선 그런 내용은 귀로 듣는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더 나아가 마음 밖 실재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공]
그렇지만 그렇다고 마음 밖에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영희에게 사과를 건넨다면
자신의 마음안 내용을 건네는 것이 아니다.
또 이들 상황이 오로지 자신 마음만의 독립된 분열도 아니다.
이렇게 이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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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내용은 일단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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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체가 마음인 상황에서 수행의 의미
- 생사윤회과정과 수행의 목표
생사현실 일체가 본래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도 생사현실에서는 이런 차별이 나타난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도 어떤 경우는 하필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또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하필 하늘에서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
그런데 왜 그런 차별이 다시 나타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일체가 본래 차별없이 공하다.
그러나 현실의 차별이 그렇다.
그래서 또 수행을 즐겁게 잘 성취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누구나 현실에서 자신이 좀 더 나은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또 자신의 것들이 조금 더 나은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제각각 분주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뜻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엉뚱하게 잘못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과 관찰을 잘못하기 때문이다.
좁고 짧고 얕게 관찰[협단천관찰]하면 잘못된 인과판단을 하게 된다.
이는 넓고 길고 깊게 관찰[광장심관찰]한 내용과 대부분 반대된다.
또 그것이 수행에서 중요하다.
자신이 현실에서 병들기 원하지 않는다.
또 감옥에 갇혀 지내길 원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후 축생 형태로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또 고통받고 지내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생사현실이 그런가부터 잘 살펴야 한다.
즉 이번 생에 사람으로 살았다고 하자.
그런데 생사과정을 통해 아귀나 축생 지옥 중생이 되는 일이 있는가.
또는 사람이 욕계의 하늘이나 색계 무색계의 하늘에서 살아가는 일이 있는가.
또 아귀나 지옥 하늘과 같은 세계가 있는가.
이런 내용들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아귀, 축생, 지옥 3 악도에서는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
따라서 그런 3 악도의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 바람직한 형태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수행이다.
-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자신으로 취하는 부분의 중요성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는 여하튼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내용을 놓고 임한다.
이것은 이미 보았듯, 잘못된 망상분별이기는 하다.
그런데 여하튼 생사현실에서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자신이 좋고 바람직한 형태가 되길 원한다.
그런 바탕에서 한 주체가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부분을 자신이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내용이 사고나 질병으로 훼손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추하게 변하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나중에 그런 부분이 축생의 형태로 변하게 되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자신이 어디에 갇혀 묶여 고통받는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또는 어느 고문대에 묶여 사지를 잘리우면서 고통을 받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또 어떤 도마위에 올려져 칼로 잘리우는 상태에 처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과 자신의 것이 하나같이 모두 좋고 바람직한 형태가 되기를 원한다.
이들은 망집에 바탕한 것이다.
그러나 생사현실 안 사정이 이렇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대부분 곧바로 이 망집을 쉽게 제거하지 못한다.
그 망집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이 진행된다.
- 생사고통의 기본적 예방방안 - 10 선법등
따라서 일단 차선책으로 이런 망집을 전제하고 고통을 벗어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즉 그런 망집을 바탕한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에방해야 한다.
또 망집을 제거하는 경우에도
고통을 직접 받는 상태에서 제거하기 보다는
그 전에 제거하는 것이 더 낫다.
생사고통도 생사고통에 처한 후에 벗어나는 것보다
그 전에 미리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 훨씬 낫다.
낭떨어지에 떨어져 허리가 부러진후 치료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낭떨어지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나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위와 같은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매순간 망집에 바탕해 각기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어떤 과정으로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는가를 또 다시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축사에 갇혀 고통스럽게 지내는 닭이나 소 양 돼지를 볼 수 있다.
또 한편 아주 좋은 곳에서 즐겁고 편하게 지내는 어떤 이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이가 낭떨어지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그 후 허리가 부러져서 장애가 발생했다.
그 이후 남은 생을 장애상태로 지내게 되었다고 하자.
이런 전후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변화가 아무 원인 없이 그렇게 되었다고 보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특히 매 생마다 질적으로 다른 생명 형태로 변화해 생을 출발하는 과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아무 원인 없이 이번 생에 이런 형태로 태어나 살아가게 된 것이 아니다.
다음 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사정을 넓고 길고 깊게 잘 관찰해야 한다.
이런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예방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생사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3 악도에 처하게 되는가 사정을 또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3 악도의 상태에 처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그것이 곧 무명 망상분별 탐진치 번뇌 => 업[신구의 3업] => 고통
의 관계다. [혹-업-고]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예방하려면 망집에 바탕한 행위[업]을 중단해야 한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해소할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10 선법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계를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일단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3 악도에 처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하늘과 인간을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일단 망집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그런 고통을 예방하는 조치다.
그런 가운데 점차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계-정-혜 3 학의 수행방안이 있다.
이들 수행을 잘 성취하려면 먼저 계의 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이런 계의 덕목이 원만히 성취되면 업의 장애가 해소된다.
그리고 복덕자량을 쌓게 된다.
그리고 이들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 해탈을 얻게 된다.
- 생사현실이 공함과 망집의 제거
수행과정에서 생사현실 자체가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본 사정이 그와 같다.
그런데 매 순간 엉뚱한 내용을 붙잡고 그처럼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배경 사정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신견도 함께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본래 생사현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불이법이다.
즉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모든 2 분법상의 분별을 본래 떠난다.
본 사정은 그렇다.
그런데 생사현실 사정이 또 그렇지 않다.
즉 생사현실은 꿈과 같지만, 정작 꿈은 아니다.
즉 생사현실은 꿈과 달리,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에 따라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무수하게 반복해 겪어 나간다.
만일 반대로 생사현실 측면을 완전히 100%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문제해결이 곤란하다.
즉 생사현실을 그대로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망집을 갖고 생사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처럼 대부분 임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받지 않아도 될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어 나간다.
우선 생사고통을 예방할 수행부터 잘 실천하지 못하게 된다.
더 나아가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생사현실안의 고통도 잘 해결하지 못한다.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그 안에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생사고통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고,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관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을 하나하나 잘 극복하고 벗어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 경우 부작용이 심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처음과 같이 방편을 취해 일단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 생사현실이 차별없이 공함과 악취공견의 입장
한편 본 바탕 실재가 차별없이 공한 사정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래서 이 측면을 100 % 붙잡고 생사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생사현실에서 문제삼을 것은 일체 없다.
이런 측면에서는 생사현실은 꿈과 같다.
꿈에서는 바다나 황금꿈을 비록 생생하게 꾼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일체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꿈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래서 현실 측면을 붙잡고 살피면 꿈 안의 내용은 일체 거론할 것이 못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사현실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악취공견의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한편, 생사현실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아무 일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생사현실에서 아무 것이나 기존처럼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아예 적극적으로 악행을 심하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이런 경우 이런 잘못된 견해로 생사현실에서 심한 고통을 더 빨리 받게끔 된다.
수행을 행함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른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주로 이런 예방과정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그보다 더 심한 고통에 처할 경우 이를 위 내용만으로 잘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 생사 즉 열반관
생사현실은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그대로 방치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생사현실 사정이 또 그렇지 않다.
즉 생사현실은 꿈과 같지만, 정작 꿈은 아니다.
즉 생사현실은 꿈과 달리,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에 따라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무수하게 반복해 겪어 나간다.
그 하나하나 그 성격이 꿈과 같다.
그러나 이런 특성으로 꿈과 달리 대단히 진짜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래서 진짜처럼 여겨지게 그 정도에 비례헤서
현실안의 고통 문제를 수행을 통해 잘 해결해야 한다.
- 생사현실의 2 중적 측면과 생사현실내 무량한 선법의 중요성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이 문제된다.
이 경우 생사고통만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비유하면 몸에 종기가 났다고 하자.
이 경우 몸 안의 종기를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종기를 제거하기 위해 몸까지 다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너무 지나친 것이다.
그래서 종기는 제거하지만, 다른 몸부분은 남겨 놓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한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나머지 무량한 선법까지 함께 제거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도 무량한 선법을 성취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상황에서 앞 내용이 대단히 필요하다.
현실이 진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이 꿈처럼 본래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현실의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물론 앞 내용을 100 % 취하면 현실을 완전히 꿈으로 대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생사현실은 꿈과는 또 다르다.
그래서 앞 측면을 대략 99% 정도 취한다.
그리고 다시 생사현실을 대략 1% 정도 취해서 생사현실 문제를 대해야 한다.
『유마힐소설경』에서 유마힐거사는 불이법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나중에 침묵으로 답한다.
이는 생사현실이 알고보면 불이법이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내용을 이 생활퀴즈에 적용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가.
우선 생사현실이 본래 불이법이고 공하고 차별이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계를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침묵상태가 불이법을 나타낸다고 해서 침묵만 불이법은 아니다.
사실은 생사현실 일체가 불이법을 떠나지 않는다.
사정이 그렇다.
생사현실 안에서는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계를 잘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계를 잘 실천하기 위해서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과 생사현실의 중요성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중생이 처한 생사현실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중생 스스로 이 사정을 깨닫고 벗어나오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수행자 자신부터 이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잘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을 통해 복덕 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후 중생을 제도할 방편과 지혜자량도 잘 구족할 수 있게 된다.
이것도 그 순서가 있다.
이론상은 다 함께 동시에 구족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자신부터 계의 덕목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부터 업장이 해소되지 않고 생사에 묶여 있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개로 지낸다고 하자.
또는 그런 상태에서 자신부터 극심한 질병에 시달리고 감옥에 묶여 지낸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힘들다.
또 수행자 자신부터 계의 덕목을 닦지 않았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부터 복덕자량이 갖추지 못했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부터 매 순간 궁핍하고 고톻을 겪는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어떤 수용소에서 갇혀 묶여 지내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자.
그래서 한시도 쉴 틈이 없이 분주하게 임해야 겨우 지낼 수 있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정려나 반야 수행을 닦아나가는 것도 곤란하다.
그런 상황에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지혜를 구족하는 것은 현실상 곤란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계의 덕목을 잘 성취해서
우선 업장을 해소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다음 이제 복덕자량을 잘 구족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지혜자량을 잘 구족해 중생을 제도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곧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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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fm1939
◈Lab value 불기2564/12/20 |
○ 2018_0419_125321_can_ar45.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ophile Steinlen-chansons-de-paris-1 ○ 2018_0419_085332_nik.jpg ♥Musée international de la Parfumerie ,France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harles Aznavour - Los Placeres Antiguos ♥단상♥코로나로 갇혀 지내는 상황 겨울 날씨가 상당히 춥다. 그런데 오늘 소바면을 끓여 먹었다. 여름에 많이 사놓은 소바면이 몇개 남아 있어 처리하자는 취지였다. 겨울에 소바면을 먹는 것도 특히하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갇혀 지내는 듯 느껴진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평소 연구실에서 주로 지냈을 것이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심리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숙왕화님에게 가까운 둘레길이라도 함께 갈 생각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니 바빠서 곤란하다고 한다. 스키도 잘 타지 못하는데 업무관계상 불가피하게 스키장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도 함께 갈 수 없는가 물었다. 그러니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업무 때문에 가는 것이라 곤란하다고 한다. 무슨 업무가 스키장에서 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가. 그러나 여하튼 요즘 그런 곳에서 코로나가 많이 전염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는 2 주간 격리후에 조심스럽게 다시 만나자고 전했다. 요즘 코로나에 걸리면 병상이 없어 치료 자체가 곤란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위험하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Keren Ann - Reste-La.lrc ♥단상♥노상방뇨와 침묵 여행을 다니다보면 소변이 마려울 때가 있다. 소변은 참는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참기 힘들다. 하루를 참으면 설령 1조원을 준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길어도 30 분 안에 여하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화장실이 또 마땅히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숲이나 한적한 곳이 있으면 또 해결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시에서 거리 한 가운데에서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조금 어렵다. 여행을 다니다 그런 경우를 한 번 겪었다. 화장실이 있을만한 건물을 들어가 찾아 보면 화장실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있어도 닫혀 있다. 그렇게 이 건물 저 건물 들어가 화장실을 찾아 헤메다 나중에 길까지 잃어 버렸다. 그런데 연락을 하려니 핸드폰 배터리까지 달아 꺼졌다. 주머니를 보니 지갑과 현금도 하나 없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다닌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가 어려운 생활퀴즈가 된다. 당시는 길을 한참 헤메다 다시 찾았다. 그래서 다시 음식점에 들어가서 해결하기는 했다. 그러나 잘못 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노상방뇨를 주제로 글을 적는데 소변과 관련된 듯한 노래를 듣는다. 그런 주제를 놓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들으니까 그렇게 들리는 현상이다. 그런데 노상방뇨란 주제를 놓고 글을 적는 사정이 있다. 현실에서 소변이 마려울 때 소변을 며칠 씩 참는 것은 본래 곤란하다. 그리고 경전에서 부처님이 소변마려울 때 소변을 참고 보지 말라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또 소변 하나를 볼 때도 아무렇게 함부로 보아도 된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생사현실에 처한 중생이 각 상황에서 만나는 문제의 성격이다. 그래서 이런 현실 문제에 준해 온갖 생사현실안의 문제를 잘 대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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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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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도의 하나. 죄악을 지은 중생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 도는 인(因)을 말함이니, 선악업이 중생으로 하여금 괴롭거나 혹은 즐거운 곳에 가게 하는 뜻으로 도(道)라 하며 이 도로 나아갈 곳이란 뜻으로 지옥도라 함.
답 후보
● 지옥도(地獄道)
진공(眞空)
진능립(眞能立)
진실(眞實)
진언(眞言)
진여삼매(眞如三昧)
진제(眞際)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불설도조경_K0701_T0078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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