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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12-22_불설고음경-K0692-001 본문
『불설고음경』
K0692
T0053
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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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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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고음경』 ♣0692-001♧
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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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說苦陰經
K0692
불설고음경(佛說苦陰經)
역자 미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는 사위성(舍衛城)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에 비구들은 오후가 되어,
약간의 일이 있어서 모두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때에 여러 외도(外道)들은 오후에 천천히 걸어 그 비구들에게 가서 비구들과 서로 위로하고 한쪽에 물러 앉았다.
“여러분,
사문 구담께서는 지혜로써 음욕을 설명하고,
지혜로써 몸과 느낌을 설명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지혜로써 음욕을 설명하고 지혜로써 몸과 느낌을 설명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거기에는 무슨 차별이 있고 무슨 우열이 있으며,
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사문 구담과 우리는 다 같이 지혜를 가졌습니다.”◂
그 때에 비구들은 이 여러 외도들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옳다고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저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세존께 여쭈어 그 이치를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곧 세존께 나아갔다.
그들은 세존께 나아가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그 외도들의 하던 말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었다.
그들이 그와 같이 자세히 아뢰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때에 너희들은 그 외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몸의 맛이며 어떤 것이 몸의 맛이 허물어지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버리는 것인가.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이 멸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을 버리는 것인가.’◂
너희 비구들은 이렇게 물어야 했을 것이다.
그 외도들은 이 말을 듣고는 제각기 서로 바라보면서 다른 말을 하려 하다가 반드시 성낼 것이다.
그리고 분해 하고는 잠자코 있으면서 몹시 불쾌히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온몸에서 땀이 흘러 그 등과 얼굴을 더럽힐 것이요,
또 얼굴빛이 변하면서,
잠자코 자리에서 일어나 곧 돌아갈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어떤 하늘이나 세상의 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과 모든 하늘과 인간으로서도 내 말을 듣고,
나처럼 그 이치를 아는 이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여래나 여래 제자를 따랐더라면 그들은 이것을 듣고 여기서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다섯 가지 음욕[婬]을 말한다.
혹은 즐거움을 내고 혹은 기쁨을 내는 것이니,
이런 것이 음욕의 맛이다. ◂
선남자로서 혹은 공교한 기술[功技]로써 스스로 살아가며,
혹은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혹은 글씨를 배우고 산술을 배우며
혹은 수학을 배우고 시 짓기를 배우며
그는 추울 때에는 추위 때문에 괴롭고,
더울 때에는 더위 때문에 괴로우며,
굶주림과 목마름을 억지로 참고,
모기ㆍ등에ㆍ파리ㆍ이한테 물린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을 참고 재물을 구한다.
그 선남자는 이렇게 일어나고 이렇게 다니면서 이렇게 일한다.
이렇게 일하여도 재물을 얻지 못하면
그는 근심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 울고 제 몸을 치면서 어리석게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리석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또 어떤 족성자는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여 큰 결과를 얻는다.
그는 재물을 얻으면 그것을 지키고 잘 감추어 둔다.
‘내 재물을 왕에게 빼앗기거나 불에 태우거나 썩어 없어지게 하지 말자.
남에게 빌려 주면 이자를 떼이지 말자.’
그러나 그가 이렇게 재물을 지키지만
어쩌다가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둑에게 도둑맞거나 불에 태우거나 썩어 없어지거나
남에게 빌려 주어 이자를 떼이면
그는 곧 근심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 울고 제 몸을 치면서 더욱 어리석은 짓만 행한다.
그는 다시 긴 밤 동안에 사랑하고 기뻐하던 것이 무너지고 없어지면 성을 낸다.
그것은 현재 몸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을 인연하고 보다 더한 음욕 때문이다.
이것이 음욕의 인연이니라.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을 일으키고
그 음욕 때문에 어머니는 자식과 다투고 자식은 어머니와 다투며,
아버지는 자식과 다투고 자식은 아버지와 다투며,
형은 아우와 다투고 아우는 형과 다툰다.
그들이 다툴 때에는
어머니는 자식의 허물을 말하고 자식은 어머니의 허물을 말하며,
아버지는 자식의 허물을 말하고 자식은 아버지의 허물을 말하며,
형은 아우의 허물을 말하고 아우는 형의 허물을 말한다.
집안끼리 그렇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과는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현재의 괴로움의 무더기요,
그것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니라.
또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으로 말미암아
왕과 왕이 서로 다투고 바라문과 바라문이 서로 다투며 거사와 거사가 서로 다투고,
천인(賤人)과 공인(工人)을 부리는 관리[工師]는 천인과 공인을 부리는 관리와 서로 다툰다.
그들이 서로 다툴 때에는 제각기 여러 가지 싸우는 기구를 만든다.
혹은 주먹ㆍ돌ㆍ칼을 쓰며 혹은 막대기를 쓴다.
그래서 거기서 죽고 죽을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현재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니라.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으로 말미암아,
투구를 쓰며 활을 잡고 갑옷을 입으며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서로 포위하여 싸운다.
또 그들은 거기서 코끼리로 싸우고 말이나 수레로 싸우며,
보병으로 싸우고 여자를 내세워 싸우며,
혹은 장정을 내세워 싸운다.
그래서 거기서 죽거나 죽을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현재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니라.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으로 말미암아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높은 성으로 가서 그것을 치려고 한다.
그들은 거기서 고동을 불고 북을 치며 혹은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한다.
혹은 몽둥이를 쓰고 창이나 도끼를 쓰며 날카로운 바퀴를 쓰고 혹은 화살로 서로 쏜다.
혹은 돌을 어지러이 던지고 쇠뇌[弩]를 쓰며 혹은 구리쇠를 녹인 물을 쏟는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서 죽기도 하고 죽을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현재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니라.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으로 말미암아 왕의 성읍에 들어가
담을 뚫거나 창고를 부수며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길을 끊으며
남의 성을 부수거나 남의 마음을 휩쓸면서 사람을 죽이면,
유사(有司)는 그를 잡고 끌고 가서 갖가지 고통을 준다.
머리를 베기도 하고 손ㆍ발을 자르기도 하며 귀를 베기도 하고 코를 베기도 하며 혹은 귀와 코를 벤다.
상투를 자르기도 하고 머리털을 끊기도 하고 옷깃[衣]으로 죽이기도 하여,
모래나 돌 위에 두기도 하고 혹은 풀 위에 두기도 한다.
쇠로 만든 나귀 입에 넣어 두기도 하고 쇠로 만든 사자 입에 넣어 두기도 한다.
혹은 구리쇠로 만든 가마솥에 넣기도 하고 쇠로 만든 가마솥에 넣기도 하며,
동강동강 베기도 하고 날카로운 꼬치로 찌르기도 하며,
뜨거운 쇠 평상 위에 눕히고 뜨거운 기름을 쏟기도 하며,
혹은 절구통에 넣고 쇠 절구로 찧기도 한다.
혹은 뱀에 물리게 하기도 하고 막대기로 치기도 하며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다가 혹은 사형장으로 끌고 가서 그 목을 칼로 벤다.
이것이 현재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니라.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으로 말미암아,
몸의 괴로운 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괴로운 행을 행한다.
그러다가 만일 병을 얻어 고통을 당하면,
평상에 누웠다가 자리에 누웠거나 혹은 그늘 밑에 눕게 된다.
그는 몸의 고통이 너무 심해 목숨이 끊어지려 한다.
즉 그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그의 몸의 괴로운 행과 입과 뜻의 괴로운 행은,
그의 앞에 거꾸로 달려 밑으로 내려온다.
그것은 마치 저녁 때에 큰 산과 큰 산 사이로 해가 지려 할 때에
그 산 그림자가 거꾸로 달려 기어 내려오는 것처럼
그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그 몸의 괴로운 행과 입과 뜻의 괴로운 행은 거꾸로 달려 밑으로 내려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몸의 괴로운 행과 입과 뜻의 괴로운 행이 거꾸로 달려 밑으로 내려온다.
나는 이전에 좋은 행을 짓지 않았고 복도 짓지 않았다.
나는 온갖 악을 많이 지었다.
이른바 나쁜 짓을 하였고 탐욕을 내었으며 흉포한 짓을 하였다.
나는 불행을 짓지 않았고 선행을 짓지 않았으며,
또 돌아갈 곳을 마련하지 않았다.
나는 반드시 나쁜 곳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곧 후회한다.
후회하기 때문에 죽는 것도 좋지 않고 나는 것도 좋지 않다.
이것이 현재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니라.
중생들은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으로 말미암아 몸의 괴로운 행을 짓고 입과 뜻의 괴로운 행을 짓는다.
그는 몸ㆍ입ㆍ뜻의 괴로운 행을 짓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져 죽을 때에는 나쁜 곳 지옥에 난다.
이것이 그 몸의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음욕과 보다 왕성한 음욕 때문이다.
이것을 음욕이 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음욕에서 구하는 것이 있으면,
그 구하기를 그쳐야 하고
그 음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이렇게 음욕을 맛본다.
거기는 멸망이 있지만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그 진실을 알 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어찌 스스로 음욕을 버리고 또 남을 버리게 할 것인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음욕을 그친다는 것은 그리 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음욕을 맛보고는
곧 그것의 멸망을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리고 그 진실을 안다.
그래서 스스로도 음욕을 그치고 또 남도 그치게 한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음욕을 그친다는 것은,
그리 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것이 몸의 맛인가.
찰리(刹利) 여자나 바라문 여자나 공인을 부리는 관리의 여자나 서민의 여자로서,
나이 14, 5세 때에는 아름다운 얼굴을 두루 갖춘다.
그 때의 얼굴에는 즐거움도 있고 기쁨도 있다.
그러나 그 때의 그 몸의 맛에도 허물어지는 것이 많이 있다.
어떤 것이 몸의 허물어짐인가.
젊던 여자가 나이 많아 이가 빠지고 머리털이 빠지며
굽은 등에 지팡이를 짚고 몸을 폈다 굽혔다 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면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전날의 아름다운 얼굴 빛이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온몸의 고통이 너무 심해 목숨이 끊어지려 하는 것을 본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전날의 아름답던 얼굴빛이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젊은 여자가 죽어 하루 내지 이레가 되어 까마귀나 솔개가 쪼고,
개나 여우가 뜯어 먹으며,
불에 살리거나 땅에 묻어 벌레가 파먹는 것을 본다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전날의 아름답던 얼굴빛은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젊은 여자의 시체의 뼈가
푸르뎅뎅하거나 허옇게 되어 벌레가 파먹는 것을 본다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전날의 아름답던 얼굴 빛이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젊은 여자의 시체에 가죽이나 살은 없고 다만 힘줄만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보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전날의 아름답던 얼굴빛은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젊은 여자 시체의 뼈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을 때
다리뼈가 딴 곳에 있고,장딴지뼈ㆍ넓적다리뼈ㆍ
허리뼈ㆍ등뼈ㆍ어깨뼈ㆍ목뼈ㆍ머리뼈들이 각각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본다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겠는가.
전날의 그 아름답던 얼굴빛이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젊은 여자 시체의 뼈가 조개처럼 희고 비둘기처럼 푸르며 붉은 기름 같거나 혹은 썩어 부서진 것을 본다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전날의 얼굴 빛이 과연 허물어진 것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색(色)의 허물어짐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몸을 버리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색에 대하여 어떤 욕구가 있더라도 그 욕구를 멈춰야 하고,
일체의 욕구에서 벗어나 그 색을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색을 즐기고,
거기에 허물어짐이 있지만 그것을 버릴 줄 모르고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색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또 남도 버리게 하겠는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어떻게 그 색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그와 같이 색을 즐기지만 그 허물어짐을 알고
그것을 버려 그 진실을 안다.
그는 스스로도 그 색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또 남도 애착을 버리게 한다.
그는 거기서 색에 대한 애착을 버린다면 그것은 그리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통의 맛[氣味痛]인가.
비구로서 음욕에서 벗어나고,
4선정(禪定)에 머무른다.
거기에 머무를 때에는
스스로도 허물어지지 않고 또 남도 허물어지지 않게 한다.
그래서 그 허물어지지 않는 데서 곧 즐거움을 얻는다.
즐거운 느낌을 얻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것을 통[通: 受]의 맛이라 한다.◂
어떤 것이 통이 멸하는 것인가.
이른바 통이란 덧없는 것이요 괴로움이요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통이 멸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통의 버림이라 하는가.
이른바 통에서 구함이 있으면 그것을 멈추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통의 버림이라 한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그와 같이 통을 맛보면서
그 허물어짐을 알지 못하고 그것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스스로 그 통을 버리고 또 남도 버리게 하겠는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통을 버린다는 것은 그리 될 수 없는 일이다.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그와 같이 통을 맛보면서도
그것의 허물어짐을 알고 그것을 버려 그 진실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도 통을 버리고 또 남도 버리게 한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통을 버린다는 것은 그리 될 수 있느니라.”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Vanessa Paradis - Marilyn Et John.lrc
● 탐욕의 부작용과 수행
탐욕에 대해 세간에서도 알만큼 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무슨 특별한 내용이 있다고 하는가?
이런 내용이 『불설고음경』 첫 부분에 제시된다.
경전이나 세속 지혜나 대부분 좋음을 얻고자 하고
나쁨을 제거하고자 하는 목표 자체는 같다.
그런데 그 방안이 다르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사정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세속에서 고통과 즐거움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 어떤 좋은 상태가 있다.
건강하여 질병도 없고
온갖 즐거움을 맛보고
지혜로운 가운데 지식도 많이 갖추고 있고
용모도 아름답고 멋있고
성품이나 인격도 아름답고 선하고
건전한 직업을 갖고
풍요로운 물질적인 부를 갖추어 편하게 지내고
명예도 높고 대인관계도 좋고
심지어 남자는 멋있고 잘생기고 여인은 여인대로 예쁘고 아름답고
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가정을 형성한 가운데
가족간의 관계도 화목하고 부러울 것이 없다.
그리고 좋은 지위를 차지하고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런 식으로 세상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나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향해 분주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선 이런 상태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갖는 소원의 성취가 쉽지 않다. [구부득고]
그리고 간신히 성취해 얻어져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허물어진다. [괴고, 행고]
그리고 장구하게 고통을 겪고 지낸다. [고고]
이런 등등의 문제가 있다.
그런 가운데 세간에서
이에 대해 인생지사 새옹지마, 고진감래, 감진고래등을 말한다.
이는 현실에서 고락이 빈번하게 오고가는 현실 사정을 나타낸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부터 검토해야 한다.
처음 새옹지마라는 표현을 보자.
한번은 말을 공짜로 얻었다.
그런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들이 발이 부러졌다.
그런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들이 전쟁에서는 살아 남았다.
그런데 그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 말이 다른 암말까지 데리고 왔다.
이런 식으로 좋고 나쁨이 번갈아 나타난다.
한편 고진감래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가 지겹다 힘들다.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것을 견디고 지내니 입학, 취직 시험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좋은 직장을 얻고 봉급도 많이 받고, 결혼도 하게 되고 잘 지내게 되었다.
매번 시간내 운동하기가 힘들다. 운동하면 땀도 나고 숨이 가쁘다. 근육통도 느낀다.
반대로 감진고래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책상에 앉아 지겹게 공부하지 않고 밖에 나가 놀았다. 너무 신나고 즐겁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입학, 취직 등이 잘 안된다.
그래서 좋은 직장도 얻지 못하고 봉급도 적고, 결혼도 힘들고 생활전반이 힘들다.
운동하면 땀도 나고 숨이 가쁘다. 근육통도 느낀다.
그래서 운동을 하지 않고 조금 피곤하면 무언가를 찾아 주어 먹거나 곧바로 누어 잔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보니 몸이 비만해지고 다양한 질병이 생겨 고생하게 되었다.
약값도 많이 들고 조금만 활동해도 피로를 쉽게 느끼고 아무래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현실이 전개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임하는 것이 좋은가가 현실 생활 퀴즈다.
먼저 고진감래나 감진고래라는 표현을 놓고 생각해보자.
지금 50 의 나쁨이나 고통을 지금 겪으면 나중에 50의 좋음이나 즐거움을 얻게 된다고 하자.
또는 지금 50 의 좋음이나 즐거움을 얻으면 나중에 그로 인해 50 의 나쁨이나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하자.
이는 일종의 zero sum 이론이기도 하다.
무언가 50의 좋음을 얻으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50의 나쁨이 있다.
반대로 무언가 50의 나쁨을 얻으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50의 좋음이 있다.
어떤 주체가 50의 좋음을 얻으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해 다른 주체가 50의 나쁨을 얻는다.
또 어떤 주체가 50의 나쁨을 얻으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해 다른 주체가 50의 좋음을 얻는다.
현실을 살피면 그런 측면이 파악되기도 한다.
탁자에 보물이 하나 있다. 그런데 둘 다 이를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측면이 나타난다.
현실 사정이 정말 그렇다고 하자.
만일 사정이 이렇다면 어느 경우나 별로 현명한 선택이 되지 못한다.
종합하면 어느 경우나 0 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50 의 즐거움을 얻고 그로 인해 나중에 50 의 고통을 겪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를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각 경우가 다르다.
경전에는 이런 내용이 소개된다.
무진등과 관련된 내용이다.
한 사람이 등불이 있다.
그런데 이 등불을 다른 등에 옮겨 켠다.
그래서 무한히 등불이 켜진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등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없어지게 되면 다시 다른 등불이 자신의 등불을 다시 켜서 무한히 등이 켜지게 된다.
이는 앞의 ZERO SUM 이론과는 다르다.
한편 예를 들어 아름다운 꽃이나 약초를 따려다가 낭떨어지에서 떨어져 척추가 부러지는 상태를 놓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그로 인해 겪는 고통이 50 이라고 표시해보자.
그러면 그가 이로 인해 어떤 즐거움이나 좋음을 50 얻는가를 헤아려 봐야 한다.
한편 응용문제로 다음도 살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이에게 50의 좋음을 베풀었다.
그랬는데 그로 인해 다시 다른 이가 자신에게 50 의 좋음을 베푼다.
그래서 이런 관계로 무량하게 지낸다.
이제 반대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어떤 이에게 50 의 나쁨을 가했다.
그랬는데 그로 인해 다시 다른 이가 자신에게 50 의 나쁨을 되돌려 준다.
그래서 이런 관계로 무량하게 지낸다.
이 두 경우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두 경우 다 0 의 상태로 수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의 성격이나 내용이 그렇지 않다.
앞 경우는 서로 선을 행하는 상태다.
그리고 그것을 키워 나가는 형태다.
그러나 뒤 경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악을 행하는 형태다.
그리고 그것을 키워 나가는 형태다.
그런 가운데 이 관계를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계속 이어나간다고 해보자.
그 경우 차이는 더 크게 된다.
그런데 두 경우 다 결과가 같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 여기는 가운데에서도 대부분 뒤의 경우에만 열중한다.
자신이 먼저 다른 이에게 50 의 좋음을 베풀려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자신이 가진 좋음을 대단히 집착하고 아낀다.
그래서 그렇게 베푸는 경우는 대단히 희박하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가 자신에게 50 의 좋음을 주었다고 하자.
이 경우는 또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쉽게 잊는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미 각 경우 달리 임한다.
한편 젝각가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등은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며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50 의 좋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른 생명이 가장 집착하는 생명이나 신체를 빼앗고 희생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각 개인이 하루 한끼 식사하는 과정을 살피면 그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 반대로 다른 생명이 자신이 아주 작은 피해를 입히고 고통을 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불같이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사소한 일이라도 미움과 원망을 오래 오래 깊게 간직해 갖는다.
예를 들어 어떤 상대가 자신에게 50의 고통을 주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대부분 최소한 그 이상의 고통을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대단한 집착을 갖고 이에 집중한다.
그래서 끝내 상대에게 그에 상응해 최소한 50 의 고통이라도 되돌려 주고나서야 비로소 만족하게 된다.
또 한번 그렇게 갚았다 해도 기회될 때마다 그런 자세로 상대를 반복해 대하게끔 된다.
그런 형태로 대부분 매순간 분주히 임한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바탕으로 하면 그 이후 다음 형태로 전개되어가는 사정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처음 자신의 좋음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의 생명, 신체, 재산을 함부로 침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대도 역시 다른 상대에게 다시 그 이상의 나쁨과 고통을 되롤려 주고자 한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서로 집착하고 분주히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후 단계로 나아가면 이 상태가 무량하게 증폭되어 나간다.
그리고 원래 세상이 이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여기며 매순간 함부로 행해 나간다.
그런데 대부분 위와 같은 관계나 계산을 마치고 세상의 좋고 나쁨을 파악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것은 킹콩이나 원숭이 계산식이라고 할 만하다.
이는 대단히 어리석다. 또한 그로 인해 장구하게 고통을 겪어나간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무량한 고통은 남김없이 제거하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얻는 상태를 얻는 것은 본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또 그런 것을 성취하기 위해 수행하는 일도 엉터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
우선 현실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과정에서는
이익 = 수익- 비용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만일 현실에서 50 의 좋음을 얻으려고 하면 50 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하자.
그려면 이익도 남지 않는다.
그것이 지혜다.
그래서 단순히 고진감래 감진고래 새옹지마 이런 내용만 붙들고
어느 경우나 결과적으로 다 마찬가지가 된다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익 = 수익 - 비용의 계산식에서
우선 어떤 활동으로 얻게 되는 수익은 무량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그런 수익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들이는 비용은
단순히 0 에 가깝게 만들거나 0 의 상태가 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이 비용부분도 다시 무량하게 마이너스(-)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바람직하다.
그래서 결국 그 수익 - 비용 양 측면에서 모두 무량한 수익을 얻어야 한다.
현실에서 고통을 제거하고 무량한 선법을 닦아 나가는 수행은 바로 이런 상태를 목표로 한다.
한편 어떤 수익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한 희생과 고통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있다.
한편 그런 노력에 들어가는 고통만큼 가치가 얻어진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부터 생각해보자.
극단적으로 다음 예를 살펴보자.
온갖 노력을 다해 박물관에 몰래 숨어 들어간다.
그리고 박물관에 보관된 고려 청자를 찾아내 망치로 깨뜨린다.
이 과정에도 그런 수고와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가 과연 가치가 있는가를 살펴보자.
마이너스다.
반대로 이런 경우를 살펴보자.
어떤 이가 그저 심심해서 진흙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리고 심심해서 즐겁게 거기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을 심심해서 불로 구었다.
그랬더니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소더비경매장에서 하나에 수천억원의 가격으로 팔린다고 해보자.
이 두 경우는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사례다.
그런데 이 두 경우가 서로 다르다.
어떤 이는 대단히 수고스럽게 하루 종일 노력했는데 독과 쓰레기만 만들어 냈다.
반면 대단히 즐겁게 잘 쉬며 노는 가운데 세상에 필요한 약과 보물만 만들어 냈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두 경우를 놓고 잘 살펴봐야 한다.
세상에 어떤 가치있는 상태나 재화가 나타난다고 하자.
예를 들어 현재 세계에서 내전을 벌이는 국가가 있다.
한 순간에 수십조원의 건물이나 공공시설이 파괴된다.
그리고 서로간에 수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하고 죽어간다.
그래서 다시 화학무기도 사용하고 비행기로 공습도 한다.
그런 내전을 수년간 계속 이어간다.
이렇게 큰 희생을 치룬다.
여기에도 수많은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그로 인해 얻는 가치는 더 증폭된 상호간의 증오와 원한만 증폭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세계에서 그 반대 현상도 역시 찾을 수 있다.
어떤 나라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다.
그래서 조금 상태가 좋은 이들이 이들을 돕기 위해 구호품을 보낸다.
그래서 가난과 질병을 해소하고 이후 건강하고 안락하며 풍요롭고 서로 잘 살아간다.
이런 사례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얻는데 들이는 고통과 희생에 비례헤서 가치가 있다는 내용은 잘못된 생각이다.
현실에서 고통이나 희생이 없이 소득을 얻는 것을 일반적으로 불로 소득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수익 - 비용의 측면을 놓고 보면 바람직하다.
그런 가운데 가장 높은 불로소득을 얻어야 한다.
이념상 수행과정에서 수행자가
가장 높은 가치를 얻는 수행에 임할 때 매순간 유희 자재 신통하게 임해야 함을 강조하는 사정도 이와 같다.
또 다른 사례를 찾아보자.
힘들게 육체를 움직이고 활동한다는 측면만은 같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경우는 그 활동으로 수입을 얻는다.
그런떼 어떤 이는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설을 찾아가 돈을 지불하고 행한다.
현실에서 이런 대표적 사례가 있다.
막노동을 하루 종일 행하면 하루 30 만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가 골프장에서 하루 골프를 치려면 최소한 30 만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하자.
이런 사례가 이와 가깝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렇게 각기 하는 사정이 있다.
하나는 수입은 얻지만 위험도 많고 힘들다고 여기게 된다.
반대로 하나는 수입은 없고 비용이 들어가지만 위험이 없이 안락하고 즐겁고 다양한 좋음을 얻는다고 여긴다.
그런데 다시 좀 더 극단적인 사례를 놓고 한번 더 살펴보자.
한 쪽은 그냥 쉽게 30 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
예를 들어 남의 물건을 그냥 쉽게 훔친 경우다.
그런데 그로 인해 피해자와 다툼을 벌이게 된다고 하자.
한쪽은 그냥 30 만원이 없어졌다.
예를 들어 그저 무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 베푼 경우다.
그런데 그 주체가 그로 인해 흐뭇함을 느끼고 평안하게 지낸다고 하자.
심지어 그 주체가 나중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일로 도움을 받고 벗어나기도 한다.
이런 각 경우를 놓고 이익 = 수익- 비용의 관계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고사에는 이런 사레가 있다.
절영지연(絶纓之宴) 또는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가 있다.
초나라 장왕이 투월초의 난의 평정한 뒤 연회를 베풀었다.
그런데 연회 도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졌다.
그런데 총희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희롱한 이가 있어 갓끈을 잡아 뜯었노라고 고했다.
그러나 장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하고는
3년 뒤, 초나라가 진(晉)나라로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장수가 선봉에 나서 죽기를 무릅쓰고 분투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장수가 그 장수였다는 고사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군주 위무자에게는 애첩이 있었다.
어느 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위독해진 위무자는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전혀 다른 두 유언 사이에서 고민하던 위과는 애첩을 다른 곳에 시집보냈다.
그러면서 “난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에 남기신 말씀을 따르겠다.”라고 하였다.
한편 세월이 흐른 후 이웃 진(秦)나라에서 진(晉)나라를 침략했다.
한 전투에서 위과가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적장 두회의 뒤를 쫓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무덤 위의 풀이 묶여 올가미를 만들어 두회의 발목이 걸려 넘어졌다.
그날 밤 한 노인이 위과의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시집보낸 아이의 아버지다. 오늘 풀을 묶어 네가 보여 준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반면 이런 사례도 있다.
어떤 왕의 후궁들이 서로 왕의 총애를 차지하느라 서로 시기하고 다퉜다.
그러다가 왕비가 쫒겨나고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그 후 그 왕비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
이 사정을 알고 분노를 일으키고 자신의 어머니를 모함했다며 당시 다른 후궁이었던 이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해 수많은 대신을 살해했다.
그리고 그 왕은 왕대로 이후 향락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왕위에서 쫒겨 났다.
그리고 갇혀 지내다 죽게 되었다.
또 초나라 재상이 연 연회에서 장의라는 이가 술을 마시다 보물이 하나 없어졌다.
그런데 장의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런 가운데 매를 호되게 맞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그 일을 언급하며 초나라에 전쟁을 일으켜 보복을 했다는 사례가 있다.
또 비슷한 사례도 있다.
범수라는 이는 위 나라 대부 수가를 수행해 제나라와 교섭 과정에서 환대를 받아 수가의 오해를 사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일로 돌아와 위나라 재상 위제에게 그 일로 고문을 당했다.
범수는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하고 탈출해 나중에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
그후 진나라에 사신으로 온 수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수가는 과거 일을 사과하고 솜옷을 선물한다.
이후 범수는 사과를 받아 목숨은 살려주지만 사신 접대시 말먹이를 음식으로 내어 보복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에게 고문을 가한 위제의 목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후 결국 위제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런 사정으로 범수가 밥 한그릇을 얻어 먹어도 잊지않고 보답하고 눈 한번 흘긴 일에도 보복을 했다는 말이 전한다.
이런 여러 사례들을 놓고
이와 함께 현실에서 망집을 갖고 임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고 장구하게 겪어가는 사정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 어리석게 즐거움이나 좋음을 추구하는가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가도 함께 잘 살펴야 한다.
경전에서는 현실의 일반적인 사정을 먼저 살핀다.
현실에서는 예를 들어 자신이 가진 금강석을 없애고, 그 대신 짚더미만 잔뜩 얻어서 좋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없어진 금강석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짚더미는 당장 눈에 보인다.
그래서 그렇게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소원을 추구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그는 소원의 성취를 집착하면서 온갖 수고를 다 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소모해간다.
그런데 이 비용을 현금으로 계산하면 하루당 137 억원을 상회하는 생명 신체 감가상각비용이 소모되어 간다.
이는 다음 식에 의해 도출된다.
자신의 생명 신체 > 우주 전체의 가치 > 세계의 총 자산의 가치 > 1 국의 1년 예산총액 ( 2020 년 한국 예산액 대략 500 조 )
=> 자신의 생명 신체 > 최소한 500 조원
그런데 이런 생명 신체가 그런 활동을 통해 100 년이 지나지 않아 폐기처분된다. 0 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 주체가 어떤 활동을 하는 경우 매 기간별 감가상각비를 계산해 반영해주어야 한다.
대략 계산해도 1년당 '최소' 5 조원을 초과하는 감가상각비용을 계산해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용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 주체가 그런 활동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그는 활동할 수 있다.
사정이 그렇기에 이 소모비용이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는다. 그리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활동을 분주하게 해서 1년에 한 100 억 정도 소득을 얻었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대단히 좋은 것을 많이 얻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것이 그런 사례다.
즉, 5 조원의 비용을 들여서 고작 100 억 정도의 수익을 얻고 잘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통해 그보다 못한 수익을 얻는 경우가 오히려 허다하다.
그런 경우는 더 안타깝다.
그래서 현실의 이런 경우가 다 문제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어떤 활동을 하던
1 년간 5 조원을 초과하는 생명 신체의 감가상각비용이 소모된다.
그렇다면 그런 활동을 통해 최소한 그 이상의 가치를 얻어내야 한다.
그래서 이런 현실 사정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이 과정에서 고통 일체를 잘 제거하고 없애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매 상황에서 대부분 세상 사람들이 행하듯 어리석게 그대로 행하게 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매순간 그렇게 임하면 그 상태로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그렇게 임하면 곤란하다.
결국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고통을 제거하고
대신 무량한 선법을 닦아서
그로 인해 무량한 복덕과 무량한 수명와 지혜를 유희 자재 신통하게 잘 얻어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곧 경전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 실천해가는 것이 수행이다.
욕계 생사현실에서는 서로 좋음을 많이 차지하려고 서로간에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업을 분주히 행한다.
그런 가운데 업장이 쌓여서 3 악도에 처한다.
그런 가운데 무량한 고통을 무량한 기간에 걸쳐 반복해 받아나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에 반해 무량한 선법을 수행을 통해 즐겁게 잘 닦아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가운데 극락이나 하늘에서 처한다.
그래서 무량하게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고 안락하게 지내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이런 차별이 나타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지장보살님은 이 사정을 이렇게 제시한다.
처음 이 두 차이는 아주 작은 물방울의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방향이 달랐다.
그리고 이후 계속 그것이 증폭되어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처음 일반적으로 세속 현실에서
각 주체가 좋은 상태를 희망한다.
즉 자신과 자신의 것이 모두 좋은 형태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앞에 나열한 것처럼 여러 소원이 나열된다.
자신이 질병을 치유하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자신이 더 많은 수입을 얻고 풍요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 등등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되지 않는 사정이 있다.
그런 상태는 오직 그 주체만 원하는 내용이다.
그 소원의 형태가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그 주체가 희망하는 만큼
다른 생명은 그런 상태를 그처럼 절실히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대가 그런 희망을 성취하면 그 만큼 자신이 불쾌해지거나, 피해를 보게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 소원을 성취시키기를 희망하는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반면 그 소원의 성취를 장해하고 방해하려는 주체는 많고 그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그런 소원의 성취가 대단히 힘들다.
그리고 성취되더라도 곧바로 허물어지게 된다.
그것을 허물려는 에너지가 더 크고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현실에서 구부득고의 고통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소원 내용을 검토해보면 그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좋은 내용이 나열된다.
그런데 그 문장의 주어는 모두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으로 되어 있다.
즉 자신이 부자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가족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좋은 직장에 취직했으면 한다.
자신의 질병이 빨리 나았으면 한다.
이런 형태로 되어 있다.
물론 이는 그 자신의 입장만 놓고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입장에서 이를 보면 그것은 자신의 소원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때로는 그 소원이 그렇게 성취되면 곧바로 자신의 고통이 시작된다고 여기게도 된다.
예를 들어 매일 낚시를 즐기는 이가 병이 회복되면
호수에 살아가는 물고기는 더 걱정이 심해진다.
이런 사정이 있다.
또 그런 형태의 소원은 범위가 조금 넓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범위가 조금 넓은 경우에도 그 주어가 자신의 국가, 자신의 민족 등으로 닫혀 있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행하는 업은 그로 인한 해악이 앞 경우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아리안 인종의 영광을 위한다는 히틀러가
이를 위해 주변 국가를 침략하고 유대인을 학살한다.
이런 경우와 같다.
그래서 처음의 경우보다 그 해악이 훨씬 막대하게 커진다.
그리고 그런 형태로 소원을 만들어 집착해 추구해가는 것이 욕계내 현실 사정이다.
수행자도 좋음을 원한다.
그런데 이와는 형태가 다르다.
소원에서 '소'라는 글자를 떼내고 '서'자로 바꾼다.
그래서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한 일체의 희망 소원을 다 제거한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던 활동을 모두 중단하다. [무원무작해탈삼매]
그런 가운데 다시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자비심을 바탕으로 임한다.
이 경우 앞의 소원 내용과의 차이는 다음이다.
우선 주어부분을 바꾼다.
처음의 소원은 주어가 대부분 '자신'으로 되어 있다.
자신이 좋음을 많이 갖고 자신이 나쁨을 많이 갖지 않기를 바라는 형태다.
설령 그것이 조금 넒어도 그것은 여전히 자신의 가족이나 친족 또는 민족 이런 형태로 닫혀있다.
그런데 수행자는 이 부분에서
주어 부분을 =>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의 형태로 달리해 갖는다.
그래서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 나쁨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좋고 좋음을 다 함께 얻는 가운데
끝내 깨달음(보리)를 얻고 생사고통을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 함께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 다시 다른 중생을 제도하고
다함께 성불의 상태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런 형태의 서원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성취하기 위해
상을 취하지 않고 집착을 제거한 가운데 수행에 임한다.
이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수행자가 보리심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임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임하므로 수행자의 서원은 광대무량 무변하다.
그럼에도 그 서원은 쉽게 잘 성취된다.
그 사정이 위와 반대다.
그 서원의 성취를 장애하는 에너지는 극히 적다.
반대로 그 서원의 성취를 돕는 에너지는 크다.
더 나아가 부처님의 가피가 여기에 더해진다.
그런 사정으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다른 차이가 나타나는 데에는
다시 동가홍상의 원칙이 적용된다.
본래 생사현실 자체는 그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즉 일체가 그 본 바탕은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본래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나 생멸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키고 현실에서 상을 취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각 주체는 그런 생멸과 생사가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좋고 나쁨이 있다고 여기면서 각 경우 탐욕과 분노를 일으키며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어 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수행자는 생사현실이 본래 차별없이 공함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제거하고 그에 바탕한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대신 업장을 해소하는 계의 수행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중생을 제도하려는 서원을 일으킨다.
즉 보리심을 일으켜 깨달음을 얻고 나면 생사현실이 본래 공함을 이해하게 된다.
즉,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망집을 일으킨 중생들이 본래 받지 않아도 될 생사고통을 그처럼 장구하게 겪는다.
따라서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이런 중생을 제도하려는 자비심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임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생이 스스로 깨달아 벗어나오기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생사현실은 차별없이 공한다.
그런데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망집을 일으켜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하필이면 받지 않아도 될 무량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이런 사정을 잘 깨닫는다고 하자.
그래서 현실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 임한다고 하자.
또 그런 가운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차피 차별없이 가운데에서도 하필이면 무량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하게 된다.
그리고 무량한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해서 중생을 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에서도 생사현실에서 이런 차별이 나타나게 된다.
즉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무량한 선법을 닦고 수행을 잘 성취하면 무량한 복덕을 얻게 된다.
그러나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반대로 망집을 일으켜 업을 행하면 무량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에서도 수행의 방향으로 임하게 된다.
즉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바탕에서 하필이면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는 방안은 취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바탕에서 이왕이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방향을 취해 수행을 닦아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수행자가 동가홍상의 원리를 적용하는 사정이다.
즉, 어차피 공한 가운데 하필이면 또는 이왕이면 수행의 방향을 취한다.
그리고 어차피 공한 가운데 유희 자재 신통하게 수행해간다.
즉 어차피 공한 가운데 즐겁게 잘 수행을 해나간다.
그래서 어차피 공한 가운데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쌓아 나간다.
이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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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4/12/22 |
○ 2019_1004_171456_can_AR35 ○ [pt op tr]gustave-dore-combat-between-soldiers-of-ish-bosheth-and-david.jpg!HD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ophile Steinlen-la-catastrophe-1907 ○ 2018_0419_130602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aras_Shevchenko_painting_0181 ♡Suma-dera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768px-Sumadera_201404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lsa & Glenn Medeiros - Un Roman D'amitie.lrc Elsa & Glenn Medeiros - Un Roman D'amitie ♥단상♥탐욕산업과 경쟁적인 수행 현실에 탐욕을 부추기고 충족시키는 산업이 성행한다. 그런데 탐욕산업은 결국 그 끝에 이르러 수행의 필요성을 일깨우게 된다. 그래서 그 정도에 비례해서 수행 산업이 요구된다. 세상에 만일 처음부터 고통이 아예 없었다면 수행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탐욕을 추구하는 행위를 처음부터 굳이 말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세상에 일체 탐욕산업이 처음부터 없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있다. 그것은 또 어느 정도 좋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좋음만 주지 않고 그 부작용이 많이 있다. 또 그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에 고통이 있다. 그런 사정으로 고통의 해결노력으로 수행이 요구된다. 이 상태에서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완전히 고통을 제거하려면 좋음까지도 완전히 제거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또 그렇게 하면 아쉬어하게 된다. 고통이나 나쁨만 없애지 왜 좋음까지 없애는가. 그래서 다시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 |
문서정보 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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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e Leotard - Je Chante Pour Passer Le Temps
【범】Saṃjña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5변행(遍行)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상상(像想)ㆍ감상(感想)ㆍ사상(思想) 등의 말과 같은 뜻. 곧 객관적 부산한 만상(萬像)의 모양을 남자ㆍ여자ㆍ풀ㆍ나무 등이라고 생각하는 정신 작용. ⇒<유사어>승야<참조어>승야(僧若)
답 후보
● 상(想)
상무성(相無性)
상위결정과(相違決定過)
상품상생(上品上生)
색계(色界)
색심불이문(色心不二門)
색처(色處)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불설고음경_K0692_T0053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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