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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신구의 삼업의 정화 본문
작성자 Prajna Citta :
손으로 때리는 것
말로 욕하고 비난하는 것
마음으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
이 가운데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직접 손으로 때리는 것보다는
덜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손으로 때리거나
말로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미움 때문에 행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늘 마음안의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나머지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집착하고 사랑하는 것도 비슷하고,
또 반대로 미워하는 것도 엇비슷하다.
따라서 이들이 얽혀서
서로 갈등을 겪고
충돌하고 해치는 모습의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늘 생각해야 할 바는
마음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없애고,
말도 그에 따라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들끼리 싸우게 하는 말,
남을 욕하는 말,
공연히 행하는 기이한 말을 하지 않고,
남이 아끼는 생명, 재물, 타인의 부녀를
빼앗거나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금 휴게소라고 하여
편하게 아무렇게 글을올리면
누군가는 보지 않겠는가..
그 말이나 글부터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주지 않는 말이면,
결국 자제해야만 한다고 본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언젠가
자신이 말한 진리와
자신이 말하지 않는 진리를
손바닥에 흙을 올려 놓고
자신이 말한 진리는
손바닥안의 흙의 분량이며
말하지 않는 진리는
저 산과 같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법문이
그 분량이라면
또 말씀하지 않는 진리는
얼마가 될 것인가?
그런데 말씀을 하지 않는 분량과
말씀을 하신 분량의 비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 말씀하시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이다.
그것은 석존께서
중생에게 이롭고 도를 깨치는데
이로운 말만을
석존께서 가려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으레 남의 잘못을
들춰내고 비난하고 욕하는 데
빠르고
자신의 잘못은
감추는데 빠르다.
어떻게 보면
무언가 말만 하면
결국 다 넓게 남의 잘못과 연관되는 것 같지만,
결국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되는 내용인가.
그리고 올바른 도를 깨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인가를
판단하지 않고 행하는
마음, 말, 행동, 태도는
모두 올바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본 블로그에
누군가라도 해를 받거나 기분이 상하거나 할 글들을
그래도 써야 할 필요가 굳이 있다면
그것을 비공개로 가리고 하기로 한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비난과 욕은
고래마저도 움추리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서로 잘 되게 만드는 방향이 무엇인가.
좋음을 서로 지금 보다 더 키우는 방향은
무엇인가..
이렇게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말과 글에 옮긴다면,
좋을 것이다.
비록 서로 의견이 다르고
갈등이 본래 내재되어 있는 분야도
사정이 그렇다 해도
똑같은 원칙에 입각해 판단하고
말과 글로 옮겨야 한다고 본다.
세살 짜리 아이가 사탕이 없어져 느끼는 슬픔이나,
어른이 자신의 사업의 실패에서 느끼는 슬픔이나
똑같다.
결국 모든 생명에게 이롭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좀 더 많은 이에게 이익을 주려 하는 것은
결국 입장을 바꾸면
다 똑같은 해악을 행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소수거나 다수거나를 따지지 않고
모든 생명에게 도움을 주는 어떤 내용이 아니라면,
그것이 비록 단 한 생명이라도
똑같은 배려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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