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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사제 본문
【사제
[한문]四諦
[팔리]cattāro ariyasaccāni
[범어]catur-āryasatya
[티벳]phags pa'i bden pa bzhi
[영어]the four truths】
❋추가참조
◎[개별논의]
○ [pt op tr]
○ 2019_1106_113509_nik_BW25 화순 영구산 운주사
○ 2019_1106_130159_can_ct1_s12 화순 영구산 운주사
○ 2019_1201_143951_can_ct19_s12 원주 구룡사
○ 2019_1201_152444_can_bw24 원주 구룡사
○ 2020_0904_090859_can_bw5 여주 봉미산 신륵사
○ 2020_0905_103554_nik_AB7 오대산 월정사
○ 2020_0907_122021_nik_Ab31 양산 보광사
○ 2020_0907_150243_nik_CT33 양산 통도사
○ 2020_0907_185437_nik_ct18 양산 통도사
○ 2020_0908_142129_can_BW25 합천 해인사
○ 2020_0910_184347_can_bw5 제천 월악산 신륵사
○ 2020_1017_171800_nik_ct18 삼각산 화계사
○ 2018_1023_154823_can_CT33_s12 예산 덕숭산 수덕사
○ 2018_1023_163639_can_ar9 예산 덕숭산 수덕사
○ 2020_1114_114612_nik_bw4_s12 삼각산 도선사
○ 2020_1114_133354_nik_bw0_s12 삼각산 도선사
○ 2019_1104_100231_can_exc_s12 구례 화엄사
○ 2019_1104_113103_can_ar38 구례 화엄사 구층암
○ 2019_1104_122645_can_Ar26_s12 구례 화엄사
● [pt op tr] fr
○ 2019_1106_161526_can_CT33 화순 계당산 쌍봉사
❋❋추가참조 ♥ ◎[개별논의]
○ [pt op tr]
● From 고려대장경연구소 불교사전
사제
사제[한문]四諦[팔리]cattāro ariyasaccāni[범어]catur-āryasatya티벳]phags pa'i bden pa bzhi[영어]the four truths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로서 불교의 근본 진리.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로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과 고통을 없애는 여덟 가지의 길을 말한다.
고(苦),
집(集),
멸(滅),
도(道),
네 가지로 요약된다.
제1 고제(苦諦)란 미혹의 세계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하는 진리이다.
제2 집제(集諦)란 고통의 원인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즉 갈애(渴愛)라고 하는 진리이다.
제3 멸제(滅諦)란 갈애를 없앤 상태가 구극의 이상 상태라고 하는 진리이다.
제4 도제(道諦)란 구극의 이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의 바른 행위 즉 8정도(正道)를 따라야 한다는 진리이다.
[원]사성제(四聖諦) , 사진제(四眞諦).
● From 운허 동국역경원 불교사전
[한문]四諦
【범】catvāri-āryasatyāni 【팔】cattāri-āriyasaccāni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함.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불교의 강격(綱格)을 나타낸 전형(典型)으로서 유력(有力)한 것.
제(諦)는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상(眞相)이란 뜻.
(1) 고제(苦諦).
현실의 상(相)을 나타낸 것이니,
현실의 인생은 고(苦)라고 관하는 것.
(2) 집제(集諦).
고(苦)의 이유근거(理由根據) 혹은 원인(原因)이라고도 하니,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業)을 말함.
위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
(3) 멸제(滅諦).
깨달을 목표.
곧 이상(理想)의 열반.
(4) 도제(道諦).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
위의 2제는 오(悟)의 인과.
이 사제설(四諦說) 자신에는 아무런 적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지만,
후대에 이르면서 매우 중요시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체계를 포괄(包括)하여 조직적으로 취급한 것이 있다.
고제는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5온(蘊) 설(說)을,
집제ㆍ멸제는 연기설(緣起說)을,
도제는 8성도(聖道) 설을 표하는 것.
그리고 고제ㆍ집제는 12인연의 순관(順觀)에,
멸제ㆍ도제는 역관(逆觀)에 각각 해당함.
● 사성제 네이버백과 사전참조
● 홍법원 구판 사제【四諦】 ( 사체 )
① 제(諦)는 범어 satya, 파리어(巴利語) sacca의 번역이다. 진리란 뜻이다.
자세히는 4성제(四聖諦)ㆍ4진제(四眞諦)라 한다.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4제(四諦)는 대체로 12연기(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이다.
원시불교의 교리 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석존 최초의 설법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석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그리고 초전법륜은 '최승법설(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진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미혹(迷惑)의 이 세상은 다 '고'(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2는 「고(苦)의 인(因)은 집착(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즉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집착이 고통을 받게 하는 원인이다라는 내용이다.
제3은 그 집착(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고(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이상경(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4는 「이와같이 고(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팔정도(八正道)의 옳은 수행(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 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 가지는 순서와 같이 고성제(苦聖諦)・고집성제(苦集聖諦)ㆍ고멸성제(苦滅聖諦)ㆍ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라고도 한다.
이 고(苦)ㆍ집(集)ㆍ멸(滅)・도(道)의 4제(四諦) 가운데 고(苦)와 집(集)은 미망(迷妄)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그리고 멸(滅)과 도(道)는 증오(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4제(四諦)의 이치가 3 단계(三段階)이다.
여기에 각각 4 가지의 행상(行相)을 붙여서 설한다.
그리고 이를 3전12행상(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여기서 3전(三轉)이란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을 말한다.
「이것은 고제(苦諦)<집(集)ㆍ멸(滅)ㆍ도제(道諦)> 이다」라고 하는 것이 시전(示轉)이다. 그리고 이것이 제1전(轉)이다.
한편「이 고제(苦諦)<집(集)ㆍ멸(滅)ㆍ도(道)>는 변지(徧知) [영단(永斷)ㆍ작증(作證)ㆍ수습(修習))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권전(勸轉)이다.
그리고 이것이 제2전(轉)이다.
그리고 「이 고제(苦諦)<내지 도제(道諦)> 는 이미 변지(徧知)<내지 수습(修習)> 되었다」고 하는 것이 증전(證轉)이다.
그리고 이것이 제3전(轉)이다.
이 3전(三轉)에 각각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의 4행상(四行相)을 가설(假設)한다.
여기서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은 옳은 지혜(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한다.
즉 이는 옳은 지혜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동의어(同義語)다.
그리고 12 행상(行相)이란 4제(諦)에 각각에 이러한 3전* 4행상이 있어서 12 행상(行相)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견해(見解)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하나의 제(諦)에 단순히 3전(三轉)이 있게 된다.
그래서 4제(四諦) 전체(四諦全體)로서 모두 12 행상(行相)이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은 따로 고려(考慮)하지 않는다. **
② 유부교학(有部敎學)의 수증론(修證論)에서는 4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4선근위(四善根位)에서 4 제(諦)의 하나를 관(觀)한다.
그런데 4제 각각에 4종(種)의 행상(行相)이 있다.
그래서 합하여 16행상(十六行相)이 있다.
그래서 이 16행상을 가지고 4제(四諦)를 관(觀)한다.
곧 고제(苦諦)에서는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의 4행상(四行相)이 있다.
즉, 망집에 바탕해 대하는 현실은, 항존성(恒存性)이 없는 고(苦)이며 본 바탕이 공한 가(假)의 존재(存在)로 실체성(實體性)이 없음을 나타낸다.
집제(集諦)에서는 인(因)ㆍ집(集)ㆍ생(生)ㆍ연(緣)의 4행상(四行相)이 있다.
즉, 집착(執着)은, 고(苦)의 원인(原因)이고, 고(苦)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조연(助緣)임을 나타낸다.**
멸제(滅諦)는 멸(滅)ㆍ정(靜)ㆍ묘(妙)ㆍ 리(離)의 4행상(四行相)이 있다.
즉, 고멸(苦滅)의 이상경(理想境)은 계박(繫縛)을 끊고 번뇌(煩惱)를 가라 앉혀서 수묘(殊妙)의 경지(境地)에 이르러 재화(災禍)를 여읨을 나타낸다.
도제(道諦)에는 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의 4행상(四行相)이 있다.
즉, 고멸(苦滅)의 성도(聖道)는 성자실천(聖者實踐)의 정도(正道)이고 정(正)과 리(理)가 합하여 미(迷)의 생존(生存)을 초출(超出)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이 4선근위(四善根位)의 다음에는 견도(見道)에 들게 된다.
여기서는 무루(無漏)의 진지(眞智)를 가지고 4제(四諦)를 현관(現觀)한다.
이 견도(見道)는 예류향(預流向)에 속한다.
예류과(預流果) 이후로는 수도(修道)에 속한다.
이 예류향(預流向)・예류과(預流果)를 통하여 16심(心)으로 4제(四諦)를 현관(現觀)한다.
이것을 성제현관(聖諦現觀)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최후의 제16심(心)만이 예류과(預流果)에 속한다.
그리고 앞의 제15심(心)은 견도(見道)에 속한다.
먼저 욕계(欲界)의 4제(四諦)를 관(觀)하는 지(智)를 법지(法智)라 한다.
그리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4제(四諦)를 관(觀)하는 지(智)를 류지(類智)라고 한다.
색계 무색계는 상(上) 2 계(界)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법지(法智)와 류지(類智)에 각각 인(忍)과 지(智)가 있다.
곧 무간도(無間道)에서 인(忍)을 가지고 번뇌(煩惱)를 끊는다.
이를 단혹(斷惑)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탈도(解脫道)에서는 지(智)를 가지고 진리를 깨닫는다.
이를 증리(證理)라고 한다.
즉, 고제(苦諦)에는 고법지인(苦法智忍) 고법지(苦法智) 고류지인(苦類智忍) 고류지(苦類智)가 있다.
그리고 이들 4심(四心)을 가지고 고제(苦諦)를 현관(現觀)한다.
고법지인(苦法智忍)은 약하여 고법인(苦法忍)이라고도 한다.
이에따라 욕계(欲界)의 고제(苦諦)를 현관(現觀)한다.
이로써 고제(苦諦)에 미혹(迷惑)되어 있는 번뇌(煩惱)를 끊는다.
고법지(苦法智)는 이것으로 욕계(欲界)의 고제(苦諦)를 현관(現觀)한다.
그리고 고제(苦諦)의 이치를 깨닫는다.
고류지인(苦類智忍)은 약하여 고류인(苦類忍)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상(上) 2계(界)의 고제(苦諦)를 현관(現觀)함으로 번뇌를 끊는다.
고류지(苦類智)는 이것으로 상(上) 2 계(界)의 고제(苦諦)를 현관(現觀)함으로 진리를 깨닫는다.
집(集)ㆍ멸(滅)ㆍ도(道)의 삼제(三諦)의 경우도 앞 고제의 경우와 같다.
즉, 다음처럼 각각의 4 심(心)을 설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집법지인(集法智忍)ㆍ집법지(集法智)ㆍ집류지인(集類智忍)・집류지(集類智)ㆍ
멸법지인(滅法智忍)ㆍ멸법지(滅法智)ㆍ멸류지인(滅類智忍)ㆍ멸류지(滅類智)ㆍ
도법지인(道法智忍)ㆍ도법지(道法智)ㆍ도류지인(道類智忍)ㆍ도류지(道類智)
그래서 모두 16 심(心)이 된다.
위 각각에서 지인(苦類智忍)은 모두 간단히 인(苦類忍)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것을 8인8지(八忍八智)라고도 한다.
또 4제(四諦)를 관하는 무루청정(無漏淸淨)의 지(智)를 제(諦)에 따라 나눌 수 있다.
그러면 고지(苦智)ㆍ집지(集智)・멸지(滅智)*도지(道智)가 되어
법지(法智)ㆍ류지(類智) 등과 같이 10지(智)로 된다.
③ 대승불교(大乘佛敎)에 따르면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권7(卷七)에서는
4제(四諦)의 내용을 전개시켜 8제(諦)를 든다.
8제(諦)는 다음과 같다.
행고체(行苦諦)ㆍ괴고체(壞苦諦)ㆍ고고제(苦苦諦)ㆍ류전체(流轉諦)
잡염제(雜染諦)
류식체(流息諦)
청정체(淸淨諦)
정방편체(正方便諦)이다.
이 가운데 행고체(行苦諦)ㆍ괴고체(壞苦諦)ㆍ고고제(苦苦諦)ㆍ류전체(流轉諦)는
고제(苦諦)를 전개(展開)한 내용이다..
잡염제(雜染諦)는 고(苦) 집(集) 2제(諦)에 해당한다.
류식체(流息諦)는 멸제(滅諦)에 해당한다.
청정체(淸淨諦)는 멸도(滅道) 2제(諦)에 해당한다.
정방편체(正方便諦)는 도제(道諦)에 해당한다.
한편 소승(小乘)의 4제관(四諦觀)은 불완전하다고 본다.
그리고 유작사제(有作四諦)라 하여 낮추었다.
그리고 대승사제관(大乘四諦觀)은 완전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무작사제(無作四諦)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8제(八諦)라 한다.
또 천태종(天台宗)에서는
제1의 생멸(生滅) 4제(四諦)
제2의 무생4제(無生四諦)
제3의 무량4제(無量四諦)
제4의 무작4제(無作四諦)를 든다.
그리고 이를 4종(四種)의 4제(四諦)라고 한다.
또 이것을 또 장(藏)ㆍ통(通)ㆍ별(別)의 4교(四敎)에 배당한다.
여기서 제1의 생멸(生滅) 4제(四諦)는 다음을 의미한다.
즉, 4제(四諦)의 인과(因果) 그대로 생(生)이 있고 멸(滅)이 있다고 하는 4제관(四諦觀)이다.
제2의 무생4제(無生四諦)는 무생멸(無生滅) 4제(四諦)라고도 한다.
4제미오(四諦迷悟)의 인과(因果)는 다같이 공무(空無)하다. 그래서 생멸(生滅)하는 일을 얻을 수 없다는 4제관(四諦觀)이다.**
제3의 무량4제(無量四諦)는 다음을 의미한다.
일체(一切)의 현상(現象)은 무명(無明)에서 생긴다. 그래서 무량(無量)의 차별이 있다.
따라서 4제(四諦)에도 무량(無量)의 상(相)이 있다고 하는 4제관(四諦觀)이다.
제4의 무작4제(無作四諦)는 다음을 의미한다.
즉, 미(迷)와 오(悟)와 같은 대립모순(對立矛盾) 상태 그대로가 모순(矛盾)이 아니라고 관(觀)하는 4제관(四諦觀)이다.
법상종(法相宗)에선 4제(四諦)가운데 멸제(滅諦)에 3멸제(三滅諦),
도제(道諦)에 3도제(三道諦)를 세운다.
3멸제는 자성멸(自性滅)・이취멸(二取滅)・본성멸(本性滅)을 든다.
3도제는 변지도(徧知道)ㆍ영단도(永斷道)ㆍ작증도(作證道)를 든다.
이것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 각 3성(三性)을 갖추고 있는 것에 연유한다.
여기서 3성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ㆍ의타기성(依他起性)ㆍ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 『성유식론』(成唯識論) 권(卷)8 } .
● from 한국 위키백과
한국 위키백과 사전참조 [불기 2567-07-22일자 내용 보관 편집 정리]
사성제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四聖諦, 산스크리트어: catvāri āryasatyāni) 또는 사제(四諦)는 《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원시 불교 가르침으로 불교 기본 교의 가운데 하나이다.
"제(諦 · 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한다.
사성제는 "네 가지 높은 깨우침(Ārya: 높은, Satya: 깨우침)"이라는 뜻이다.
또는 "4가지 고귀한 진리(Four Noble Truths)"라는 뜻이다.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의 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한다.
흔히 이 네 가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른다.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緣起)하는 항목을 합하여 나란히 늘어놨다.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한편, 고타마 붓다는
"우주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인 십사무기(十事無記)는
사성제와는 달리 1
지혜(智) · 깨달음(覺) ·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거나 배울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십사무기와 사성제
고타마 붓다는 십사무기(十事無記)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다운 길이 아니며,
반면 사성제는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사성제에 대해 늘 말하고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십사무기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사성제라는 실제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고타마 붓다 견해는 십사무기 줄거리가 들어 있는 《중아함경 제60권 전유경(箭喻經) 제10》에 잘 나타나 있다.
「世有常者,有生、有老、有病、有死,愁慼、啼哭、
憂苦、懊惱,如是此淳大苦陰生。如是, 世無常,世有底,世無底,命即是身,為命異身異, 如來終,如來不終,如來終不終, 如來亦非終亦非不終者,有生、有老、有病、有死, 愁慼、啼哭、憂苦、懊惱,如是此淳大苦陰生。「世有常,我不一向說此。以何等故, 我不一向說此?此非義相應,非法相應, 非梵行本,不趣智、不趣覺、不趣涅槃, 是故我不一向說此。如是,世無常,世有底, 世無底,命即是身,為命異身異,如來終, 如來不終,如來終不終,如來亦非終亦非不終, 我不一向說此。以何等故, 我不一向說此?此非義相應,非法相應,非梵行本, 不趣智、不趣覺、不趣涅槃, 是故我不一向說此也。何等法我一向說耶?此義我一向說,苦、苦習、苦滅、苦滅道跡,我一向說。 以何等故,我一向說此?此是義相應, 是法相應,是梵行本,趣智、趣覺、趣於涅槃, 是故我一向說此。是為不可說者則不說, 可說者則說,當如是持,當如是學。」
"우주 시간은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도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 · 울음 · 근심 · 괴로움 · 번민이 있으니, 이리하여 이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
이와 같이 "우주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주 공간은 유한하다. 우주 공간은 무한하다. 자아와 육체는 같다. 자아와 육체는 다르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도 있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여기 없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없는 것도 아니고 없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도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슬픔 · 울음 · 근심 · 괴로움 · 번민이 있으니,
이리하여 이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
"세상 시간은 영원하다"는 말을 나는 언제나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로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이치(義)에 맞지 않고 법(法)에 맞지 않으며 또한 범행(梵行)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주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주 공간은 유한하다. 우주 공간은 무한하다. 자아와 육체는 같다.
자아와 육체는 다르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도 있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없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느 따위 말을 나는 언제나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치(義)에 맞지 않고 법(法)에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어떤 법을 언제나 말하는가? 나는 다음과 같은 이치(義)를 언제나 말하는데,
그 이치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苦習)과 괴로움의 소멸(苦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跡)이다(사성제). 나는 언제나 이것들(사성제)을 말한다.
무슨 이유로 나는 언제나 이것들(사성제)을 말하는가?
이것들(사성제)을 말하는 것은, 이것들(사성제)은 이치(義)에 합당하고 법(法)에 합당하며 범행(梵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고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며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이것들(사성제)만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이 바로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러한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와 같이 진정 가져야 할 것을 가지고 진정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사성제
고제
이 부분의 본문은 고제, 3고 및 8고입니다.
즉, 인간은 색 · 수 · 상 · 행 · 식의 오온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깨치지 못한 사람, 즉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삶은 고통이라는 통찰이다.
삼고와 팔고
고통은 크게 누구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생로병사의 고고(苦苦),
변화하고 무너지는 괴고(壞苦),
오온으로 이루어진 존재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행고(行苦)등의
3고(三苦)로 분류된다
.
3고는 8고(八苦)로 세분되기도 한다.
고고
고고(苦苦)는 누구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인 생로병사의 고통을 말한다.
생로병사 중 특히 생과 사는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며,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는 배움을 위해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생고(生苦):
태어나는 고통
노고(老苦): 늙는 고통
병고(病苦): 병드는 고통
사고(死苦): 죽는 고통
괴고
괴고(壞苦)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무너지는 고통"인데,
모든 것이 인과 연에 의해 발생한다는 연기의 법칙 즉 인과의 법칙과 모든 존재가 고정됨이 없이 항상 변화한다는
무상(無常)의 법칙에 바탕하여 일어나는 "변화하고 무너지는 고통"이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고통
행고
행고(行苦)는 오온(五蘊) 또는 오취온(五取蘊)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 자신에 대하여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고통으로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도 한다.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온(五蘊: Paňca Sakandha) 또는 오취온(五取蘊)은 다음과 같다.
색(色: Rūpa · 루빠) 수(受: Vedanā · 웨다나) 상(想: Saññā · 싼야) 행(行: Sankhāra · 쌍카라) 식(識: Viññāna · 윈냐나)
집제
집제(集諦, Samudaya Satya)는 고통의 원인에 관한 진리로,
범부(凡夫), 즉 깨치지 못한 사람이 겪는
고고 · 괴고 · 행고 등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업(業)과 번뇌(煩惱)에서 비롯됐다는 통찰이다.
남방상좌부 불교에서는 번뇌 중에서 인간의 갈애(渴愛, 갈망함) 또는 망집(妄執)을 핵심적인 고통의 원인으로 본다.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나" 또는 "나의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무지(無知) ·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을 고통의 주 원인으로 본다.
멸제
멸제(滅諦, Nirodha Satya)는 고통의 소멸에 관한 진리, 혹은 고통의 원인의 완전한 소멸에 관한 진리다. 고통의 원인인 갈애(渴愛) · 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이 완전히 소멸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열반(涅槃) 또는 해탈(解脫)이라 한다.
도제
도제(道諦, Mārga Satya)는 고통을 소멸시키는 행을 하는 진리를 말한다.
즉, 도제를 행함으로써 실제로 멸제("고통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이런 면에서 도제는 멸제의 원인이 되는 실천 또는 수행을 의미한다.
불교의 모든 교의는 사실상 도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원시 불교에서는 도제를 팔정도(八正道)인 것으로 설명한다.
정견(正見) · 정사(正思)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이 그것이다.
남방상좌부 불교에서는 도제를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인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사념처(四念處) · 사정근(四正勤) · 사여의족(四如意足) · 오근(五根) · 오력(五力) · 칠각지(七覺支) · 팔정도(八正道)를 의미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도제를 37조도품 외에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보살의 원행(菩薩의 願行:)을 담은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반야(般若: 지혜)를 말한다.
또는 십바라밀(十波羅蜜)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십바라밀은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의 네 가지를 추가한다.
보살의 원행은 서원과 수행을 말한다. 간단히 보살행 또는 보살도라고 한다.
같이 보기
오온과 사성제 원시불교 십이연기설 팔정도 연기 (불교) 인과관계 십사무기
각주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12인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중아함경 제60권 전유경(箭喻經) 제10 Archived 2007년 10월 8일 - 웨이백 머신》, 대정신수대장경, T1 No. 26, CBETA. T01n0026_p0805b16(02) - T01n0026_p0805c07(02).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원시불교의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참고 문헌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네 가지 고귀한 진리
73개 언어
기사
말하다
읽다
편집하다
기록 보기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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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ur_Noble_Truths 관련단어 사전참조
● from 영어 위키 백과https://en.wikipedia.org/wiki/Four_Noble_Truths
translated by 구글번역 https://translate.google.com/
산스크리트어 원고. Nālandā , 비하르 , 인도 .
사성제(四聖諦) 의 번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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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 | 츄라리스타니 (caturāryasatyāni) |
팔리 어 | 카투라리야사카니 |
벵골 사람 | চতুরার্য সত্য (Chôturarjô Sôtyô) |
버마 사람 | သစ္စာလေးပါး ( MLCTS : θɪʔsà lé bá ) |
중국인 | 四聖諦(T) /四圣谛(S) (병음: sìshèngdì ) |
인도네시아 인 | 엠팟 케베나란 물리아 |
일본어 | 四諦 (로마지: shitai ) |
크메르어 | អរិយសច្ចបួន (areyasachak buon) |
한국인 | 사성제
(四聖諦) (sa-seong-je) |
몽고 어 | Хутагт дөрвөн үнэн (Khutagt durvun unen) (ᠬᠤᠲᠤᠭᠲᠤ ᠳᠥᠷᠪᠡᠨ ᠦᠨᠡᠨ) |
싱할라어 | 차투라랴 사티야 ( Chathurarya Sathyaya ) |
티베트어 | Wylie : ' phags pa'i bden pa bzhi THL : pakpé denpa shyi ) |
타갈로그어 | Ang mga Apat na Maharlikang Katotohanan |
태국어 | 아리야사트
시이 (Ariyasat sii) |
베트남어 | 뜨디에우다 (四妙諦) |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dukkha (문자 그대로 "고통"; 여기서 '편안하지 않음', [주 1] dush-stha 에서, "불안정하게 서 있음", [3] [4] [5] [6] )
윤회 영역에 존재하는 타고난 특성입니다. [웹 2] [7] [8]
samudaya (기원, 발생, 조합; "원인"): dukkha (불안)는 taṇhā ("갈망, 욕망 또는 애착, 문자 그대로 '갈증')와 동시에 발생합니다. [web 3] [9] [10]
dukkha를 문자 그대로 고통으로 받아들일 때 , taṇhā는 서양 언어에서 종종 "고통"의 "원인"으로 해석되지만,
tanha는 또한 우리를 육체적, 감정적 고통, 또는 육체적, 정서적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그것을 피하려는 시도;[11] [ 12 ]
nirodha (종료, 종료, 감금): 고는 이 갈애 를 포기하거나 놓아줌으로써 끝나거나 억제될 수 있습니다 . [13] [14] [15] [16]
갈애 의 구속은 괴로움 의 과도한 속박을 풀어줍니다. [11] [12]
마르가 (길, 고귀한 팔정도 )는 갈애 와 괴로움 의 감금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17] [18] [19]
네 가지 진리는 고대 불교 경전 에서 많은 문법적 형태로 나타나며 [20]
전통적으로 부처님이 주신 첫 번째 가르침으로 확인 됩니다 . [주 2]
종종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로 불리지만 [21]
상징적 기능과 명제적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22]
상징적으로 그들은 붓다의 깨달음과 해방,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이 그와 같은 해방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나타냅니다. [23]
명제로 네 가지 진리는 팔리어 경전 과 초기 하이브리드 산스크리트 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개념적 틀이다.[24]
더 넓은 "가르침의 네트워크" [25] (" 담마 매트릭스")의 일부로서 , [26] 함께 취해야 합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거나 "경험"해야 하는 불교 사상을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공합니다. [27] [주 3]
명제로서 네 가지 진리는 정확한 정의를 무시하지만 불교 의 기본 방향을 참조하고 표현합니다 . [28]
방심하지 않는 감각적 접촉은 갈애를 일으키고 무상 한 상태와 사물 에 집착 하고 , [29] 괴로움 , [30] "불만족", [4] "만족할 수 없음" [웹 4] 및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29] [31] [32] [주 1]
이 갈망은 우리를 삼사라 에 가두게 합니다 . [주 4]"
방랑"은 일반적으로 반복되는 재생 의 끝없는 순환 [주 5] 및 그에 수반되는 계속되는 괴로움 [주 6] 으로 해석 되지만,
자아 마음을 영속시키는 끝없는 끌림과 거부의 순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주 5]
이 주기를 끝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 [34] [주 7]
즉, 갈애의 소멸 인 열반을 얻음으로써 , 그 후에 재생과 수반되는 괴로움이 더 이상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 8] [35]
이는 여덟 가지 경로 [주 2]를 따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억제하고 규율과 건전한 상태를 기르고 마음 챙김 과 명상 을 수행함으로써
감각 접촉에 대한 우리의 자동 반응을 제한합니다 . [36] [37]
네 가지 진리의 기능과 그 중요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했고
불교 전통은 천천히 그것들을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으로 인식했습니다. [38]
이 전통은 prajna 또는 "자유로운 통찰"이 dhyana 의 수행 대신에 또는 추가로 [39] 53-0[40]
그 자체로 해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을 때 확립되었습니다 . [39]
이 "해탈하는 통찰"은 경전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얻었고,
붓다의 깨달음 이야기의 일부로서 네 가지 진리가 이 해방하는 통찰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41] [42]
네 가지 진리는 기원후 5세기 경까지 불교의 상좌부 전통 에서 중심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 [43] [44]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은 그 자체로 해방적이라고 주장합니다. [45]
그들은 순야타 에 대한 통찰력 , 공허함, 보살의 길을 따르는 더 높은 목표를 그들의 가르침과 실천의 중심 요소로 보는 대승 전통에서는 덜 두드러집니다. [46]
대승 전통은 해방된 존재가 어떻게 여전히 "이 세상에서 널리 활동"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네 가지 진리를 재해석했습니다. [47]
불교 탐구를 시작으로19세기 서구 식민주의자들 과 불교 모더니즘 의 발전에 힘입어 서양에서는 종종 불교의 중심 가르침으로 제시되었고 [48] [49]
때로는 아시아의 역사적인 불교 전통과는 매우 다른 참신한 모더니즘적 재해석으로 제시되었다. [50] [51] [52]
[ 필요한 예시 ]
네 가지 진실 [ ■편집 ]
네 가지 진리는 법문경 (Dhammacakkappavattana Sutta) 텍스트 [주 9] 에 제시된 내용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 9]
에는 네 가지 진리 중 두 세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53] [54]
다양한 다른 세트는 상좌부 불교 전통 의 경전 모음인 빠알리 경전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40]
현대 설명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체 집합 [주 9] 에는 이 집합에 대한 여러 출처를 가리키는 문법 오류와 고대 불교 공동체 내의 번역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리어 전통에서는 그것들이 옳다고 여겨졌으나 그것들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58] 53-1
불교 전통에 따르면, Dhammacakkappavattana Sutta , "Setting the Wheel of Dhamma in Motion", [웹 7]에는 부처님이 완전한 각성 과 재생에서 해방을 얻은 후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LS Cousins 에 따르면
많은 학자들은 "이 법문은 나중에야 비로소 부처님의 첫 번째 설법으로 확인되었다"는 견해를 갖고 있으며 [59]
종교 교수 인 Carol S. Anderson [주 10] 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원래 이 경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나중에 일부 버전에 추가되었습니다. [60]
이 담론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bhikkus "는 일반적으로 "불교 승려"로 번역됩니다.):
비구들이여, 이제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태어남이 괴로움이고, 늙음이 괴로움이며, 질병이 괴로움이고, 죽음이 괴로움이다.
불쾌한 것과의 결합은 괴로움이다.
즐거운 것으로부터의 분리는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요컨대,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 괴로움입니다
.
비구들이여, 이제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고귀한 진리입니다.
여기저기서 기쁨을 추구하는 환희와 욕망을 수반하는 재생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이 갈애[ taṇhā , "갈증"] 입니다.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되고자 하는 갈애, 타락하려는 갈애입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동일한 갈애가 남김 없이 사라지고 소멸하며,
그것을 포기하고 포기하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웹 10]
이 경전에 따르면, 이 네 가지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여 윤회 의 해탈을 얻었습니다.
내 안에 지식과 비전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탄생입니다.
이제 더 이상 생성이 없습니다. [웹 7]
청중이 이 네 가지 진리를 이해하면 담마 눈(Dhamma Eye)이 열리게 됩니다 .
발생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멸하는 것입니다. [웹 7]
기본 세트 [ ■편집 ]
KR Norman에 따르면 기본 집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
idam dukkham , "이것이 고통이다"
ayam dukkha-samudayo ,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ayam dukkha-nirodha , "이것은 고통의 소멸이다"
ayam dukkha-nirodha-gamini patipada , "이것이 고통의 소멸로 이끄는 길입니다."
이 표현의 더 긴 버전인 dukkha-nirodha-gamini Patipada 의 핵심 용어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Gamini : 이끌어가다, 만들기 위해 [web 11]
Patipada : 도로, 경로, 방법; 목표 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수단 [web 12]
니모닉 세트 [ ■편집 ]
KR Norman 에 따르면 , 팔리어 정경은
"듣는 사람에게 신약의 완전한 형태를 상기시키도록 의도된"
네 가지 진리의 다양한 축약형인 "기억의 모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61]
니모닉 세트의 가장 초기 형태는 "dukkham samudayo nirodho magga" 였으며 ,
나중에 공식에 추가된 Pali 용어 sacca [62] 또는 arya [58] 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 네 개의 니모닉 용어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Dukkha – "만족할 수 없음", [web 4] "불만족스러운 본성과 모든 조건부 현상 의 일반적인 불안정성";
"괴로운". Dukkha 는 가장 일반적 으로 "고통"으로 번역됩니다.
Khantipalo에 따르면 이것은 유쾌하지만 일시적인 경험을 포함하여 일시적인 상태와 사물의 궁극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특성을 언급하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입니다.
Emmanuel 에 따르면 Dukkha는 "즐거움"인 sukha 의 반대이며 "고통"으로 더 잘 번역됩니다. [31]
사무다야(Samudaya) – "기원", "원천", "발생", "존재하게 됨"; [웹 13] "어떤 존재나 존재의 구성 요소 또는 요소의 집합", "클러스터",
"함께 오는", "결합", "생산 원인", "결합", "상승". [web 14] 접속사: 샘 - "함께, 함께"; [64]
udaya -
"일어나다", "부풀어 오르다"; [65] "일어나다, 나오다"; "고양, 승영, 상승; 성장"; "결과, 결과"; [66]
Nirodha –
중단; 풀어 주다; 제한하다; [11] "예방, 진압, 둘러싸기, 구속" [웹 15]
마르가 – "경로". [웹 12]
대체 공식 [ ■편집 ]
LS Cousins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괴로움이 주제인 잘 알려진 형식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
다른 형태는 "세계, 세계의 발생" 또는 " 아사바 , 아사바의 발생"을 주제로 삼는다.
Cousins에 따르면 "잘 알려진 형식은 모든 형식의 약칭입니다." [67]
"세상"은 상 카라(saṅkhāras) , 즉 모든 합성물, [웹 16] 또는 여섯 감각 영역을 가리킵니다 . [68]
다양한 용어는 모두 5개의 스칸다 와 12개의 nidānas 에 설명된 것과 같이 불교의 동일한 기본 개념을 가리킵니다 .
오온에서는 대상과의 감각 접촉이 감각과 지각으로 이어집니다.
상 카라 ('경향', cq 갈애 등)는 이러한 감각과 인식의 해석과 반응을 결정하고 특정 방식으로 의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12 개의 nidānas는 추가 과정을 설명합니다.
갈애와 집착( upādāna )은 bhava (생성)와 jāti (탄생)로 이어집니다.
정통 해석에서 bhava 는 kammabhava , 즉 karma 로 해석되는 반면 jāti 는 재생으로 해석됩니다.
불교의 길의 목표는 이 인과관계의 사슬을 뒤집는 것입니다.
감각(반응)이 없을 때 갈애, 업, 재생이 없습니다. [69] [70]
태국 불교에서 bhava는 갈망과 집착에 봉사하는 행동으로 해석되는 반면,
jāti 는 이기적인 반응과 행동의 과정을 영속화하는 자아 또는 자기 감각의 반복되는 탄생으로 해석됩니다. [33] [웹 5]
고귀한 자들을 위한 진실 [ ■편집 ]
팔리어 용어인 아리야 사카 (산스크리트어: arya satya )는 일반적으로 "고귀한 진리"로 번역됩니다.
이 번역은 불교 경전을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번역가들이 시작한 관습입니다.
KR Norman에 따르면 이것은 가능한 여러 번역 중 하나일 뿐입니다. [1] 폴 윌리엄스 에 따르면 , [1]
팔리어 표현인 ariyasaccani가 '숭고한 진리'로 번역되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없습니다.
그것은 '귀족의 진리' 또는 '귀족을 위한 진리' 또는 '고귀하게 만드는 진리' 또는 '귀족이 소유한 진리'로 동등하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1]
"arya"라는 용어는 나중에 네 가지 진리에 추가되었습니다. [58] 53-2[40] [71]
용어 아리야 (Sanskrit: arya )는 "고귀한", "보통이 아닌", "귀중한", "귀중한"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주 11] "순수". [73] 폴 윌리엄스:
아리아는 '도의 과보', '시력과 지혜를 촉진하고 평화, 더 높은 지혜, 깨달음, 열반에 이르는 중도'를 여래가 이해한 중도'를 성취한 고귀하고 성자입니다. [74]
sacca (산스크리트어: satya ) 라는 용어 는 인도 사상과 종교의 중심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진실"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현실과 일치하는 것" 또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루퍼트 게틴(Rupert Gethin) 에 따르면 , 네 가지 진리는 "네 가지 '참된 것' 또는 '실재'이며, 우리는 부처님이 깨어난 밤에 마침내 그 본질을 이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들 은 "불교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편리한 개념적 틀"로 기능한다. [75] [주 3]
KR Norman에 따르면 아마도 가장 좋은 번역은 "고귀한 자(부처님)의 진리[들]"일 것입니다. [1]
그것은 부처가 사물을 보는 방식, 올바르게 볼 때 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진술입니다.
그것이 진실을 보는 방법입니다. [주 12]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고통을 겪습니다. [1] [주 13]
상징적 명제적 기능 [ ■Edit ]
고귀한 팔정도를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 되는 Dharmacakra Anderson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상징적 기능과 명제적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정의상 신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징이자 교리이며 올바른 관점의 영역 내에서 변형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의 본문 내에서 진정으로 구분됩니다.
사성제(四聖諦)는 깨달음을 구해야 하는 구조를 명시합니다.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상징으로 깨달음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킨다.
둘 다로서 그들은 Theravada 정경과 전통 내에서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단일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44]
상징으로서 그들은 붓다로 대표되는 각성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가장 중요합니다.
사성제(四聖諦)가 정경에서 붓다의 첫 번째 가르침으로 간주될 때 그것들은 상징적 기능을 하는 견해나 교리로 기능한다.
빠알리 경전의 경전 과 율장 에서 종교적 상징의 모습으로 사성제가 등장하는 곳은 부처님의 깨달음 체험과 우주 안의 모든 불교도의 깨달음의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77]
명제로서, 그들은 매트릭스 또는 "가르침의 네트워크"의 일부이며, "특별히 중심은 아니지만" [25]
다른 가르침 옆에 동등한 위치를 가지며 [78] 갈망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44]
소승 경전의 오랫동안 인정된 특징은 " 열반 에 이르는 길의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구조 "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경전 은 네트워크 또는 매트릭스를 형성하고, 함께 취해야 하는 이 "가르침의 네트워크" 내에 네 가지 진리가 나타납니다. [25] [주 3]
이 네트워크 내에서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다른 교리 중 하나이며 특별히 중심적인 것은 아닙니다", [25]
그러나 "전체 담마 매트릭스" 의 일부입니다 . [26]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그 네트워크에서 설정되고 학습되어
"다양한 가르침이 서로 교차하는 방법"을 배우고 [80] 다양한 불교 기술을 참조하며,
이는 모두 명시적이고 암시적으로 네 가지 진리를 언급하는 구절의 일부입니다.
앤더슨 에 따르면,
가르침을 이해하는 단일한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의 가르침은 한 구절에서 다른 가르침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관계는 다른 대화에서 반전되거나 변경될 수 있습니다. [26]
네 가지 진리에 대한 설명 [ ■편집 ]
둑카 와 그 결말 [ ■편집 ]
명제로서 네 가지 진리는 정확한 정의를 무시하지만 불교 의 기본 방향을 참조하고 표현합니다 . [28]
감각적 접촉은 일시적인 상태와 사물에 대한 집착과 갈망을 일으키며 ,
이는 궁극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고(dukkha ), [82] bhava (되기, 습관적 경향) 및 jāti ("탄생")의 반복 주기인 윤회를 유지합니다 .
정신적 현상 으로서의 자아감 [33] [web 5] ). [주 6] 불교의 길을 따르면 갈애와 집착이 제한되고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82] [주 7]
되풀이되는 생성과 탄생의 순환이 멈출 것입니다. [노트 2]
dukkha , "만족할 수 없음", [web 4] "고통스러운", [29] [31] [주 1] dush-stha , "서 있는 불안정 " , [3] [4] [5] [6] 의 진리는 무상한 상태와 사물 에 대한 집착과 갈망이 있는
이 "세상"의 삶인 samsara가 dukkha , [ 30 ] 라는 기본적인 통찰입니다 .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럽다 [ web 4] [29] [31] [32] [92] [web 18]
우리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는 상태와 사물에서 행복을 기대합니다.
고(dukkha )의 발생 또는 발생을 의미하는 사무 다야( samudaya ), "일어나다", "함께 온다" 또는 dukkha-samudaya의 진리는
삼사라 (samsara )와 이와 관련된 고 (dukkha)가
이러한 무상한 상태와 사물에 대한 갈애와 집착 으로 인해 taṇhā ("갈증")와 함께 발생 하거나 지속된다는 진리입니다 . [주 4]
정통적인 관점에서 이 집착과 갈망은 카르마를 생산하고 , 이는 우리를 재생 과 새로운 불만 에 가두어 새로운 존재로 이끕니다 . [98] [웹 6] [주 15]
갈애에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인 kama-tanha가 포함됩니다.
bhava -tanha , 재생을 포함하여 삶과 죽음의 순환을 계속하려는 갈망;
그리고 vibhava-tanha , 세상과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하지 않으려는 갈애. [98] [101] [102]
네 가지 진리의 기본 세트에 있는 용어인 dukkha -samudaya는 전통적으로 "괴로움의 기원(또는 원인)"으로 번역되고 설명되는 반면,
화로와 Batchelor 는 "함께 존재하게 됨"이라는 용어의 더 넓은 의미를 지적합니다.
dukkha 와 함께 tanha 가 발생합니다 ., 갈증. 갈애는 고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고, 즉 오온 과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 [11] [12]
꼰단나가 법문경 (Dhammacakkappavattana Sutta) 의 말미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친다" 고 이해한 것처럼 제한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갈애입니다 . [103]
nirodha , "멈춤", "억제", [13] "포기", "놓음", [14 ]
또는 dukkha -nirodha , 즉 고 의 소멸의 진리는 갈애와 집착을 포기하거나 제한하고 열반에 도달할 때 고가 그치거나 제한 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 [35] [11]
또는 괴로움 에 대한 반응인 갈애 자체가 제한됩니다. [11] [12]
열반은 성취의 순간 자체와 그에 따른 마음의 평화와 행복( khlesa-nirvana) 을 의미합니다. ), 뿐만 아니라 죽을 때 오온( skandha-nirvana 또는 parinirvana )의 최종 소멸까지;
Theravada 전통에서 그것은 또한 "깨어나는 순간에 알려진" 초월적 현실을 의미합니다. [104] [105] [106] [107]
Gethin에 따르면, "현대 불교의 용법은 '열반'을 깨달음의 경험으로 제한하고 '반열반'을 죽음의 경험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08]
열반에 도달하면 더 이상 카르마 가 생성 되지 않으며 재생과 불만이 다시 발생하지 않습니다. [주 8]
소멸은 열반 , "분출" 및 평화입니다. 마음의. Joseph Goldstei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지난 세기의 유명한 태국 거장인 Ajahn Buddhadasa는 인도의 마을 사람들이 쌀을 요리하고 식을 때까지 기다릴 때
"쌀이 열반이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그래서 여기서 닙바나는 번뇌 의 불이 없는 냉정한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
Ajahn Buddhadasa가 말했듯이 "마음이 차가울수록 그 순간에 더 많은 열반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루를 지내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상대적으로 냉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12]
도의 진리는 dukkha cq tanha 의 소멸 또는 해탈에 이르는 길을 의미합니다 .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을 따름으로써 목샤 , 해탈, [89] 자신을 억제하고, 규율을 기르고, 마음챙김 과 명상을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갈애에서 벗어나
무상한 상태와 사물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재생과 불만이 끝날 것입니다. [36] [37]
"도"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고귀한 팔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도"의 다른 버전 도 Nikaya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13]
Theravada 전통은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을 그 자체로 해방시키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45]
잘 알려진 팔정도(八正道)는 이 세상이 덧없고 불만족스럽다는 이해와 갈애가 어떻게 우리를 이 덧없는 세상에 묶어두는지에 대한 이해로 구성됩니다
. 타인에 대한 우호적이고 자비로운 태도;
올바른 행동 방식; 부정적인 생각을 먹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키우는 것을 의미하는 마인드 컨트롤;
발생하는 감정과 반응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
그리고 dhyana , 명상 의 연습 .
열 가지 길은 바른(해탈하는) 통찰과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더합니다. [113] [주 16]
네 가지 진리를 내면화하고 개인적으로 이해하거나 "경험"하여 살아있는 현실로 바꿔야 합니다.
151-0[114] 53-3[40]
환생을 끝내다 [ ■편집 ]
Tibetan Bhavacakra 또는 "생명의 수레바퀴" 네 가지 진리는 괴로움 과 그 종말을 이생에서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설명 하지만 재생을 끝내는 수단으로도 사용합니다.
Geoffrey Samuel에 따르면,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재생으로부터 해방의 길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설명합니다." [89]
사제를 이해하면 이 집착과 갈애를 멈출 수 있고, 평화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며, 재생과 재생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web 18] [32] [note 2]
Patrick Olivelle은 목샤 가 인도 종교의 중심 개념이며 "문자 그대로 삼사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web 21] [note 17]
Melvin E. Spiro는 "욕망이 재생의 원인이기 때문에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욕망 이 그치면 재생과 그에 수반되는 괴로움이 멈춥니다. [90][참고 18]
Peter Harve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과 죽음"과 다양한 다른 괴로움 상태가 뒤따릅니다.
출생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말은 다소 단순하게 들릴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진술입니다.
태어나는 것에 대한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열반을 얻는 것이므로 재생과 재생의 과정을 끝냅니다. 열반은 시간과 변화의 대상이 아니므로 '태어나지 않은 것'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죽지 않는"이라고도합니다.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태어날 수 있는 모든 현상, 즉 칸다 와 니다나를 무집착 으로 초월해야 합니다 . [115]
마지막 설법인 Maha parinibbana Sutta (Last Days of the Buddha, Digha Nikaya 16)"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이 긴 탄생과 죽음의 과정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에 의해 통과되고 겪어지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사성제를 꿰뚫지 못함으로써입니다. [...]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제 이것들이 실현되고 침투되었고, 존재에 대한 갈애가 끊어지고,
재생[재생]으로 인도하는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생성이 없습니다. [웹 20]
다른 해석 [ ■편집 ]
Bhikkhu Buddhadasa 에 따르면 , "태어남"은 육체적인 탄생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아 개념의 탄생과 죽음, 즉 "자아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붓다다사에 따르면,
... 연기는 순간적으로 지속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생사(生死)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의존적 발생과정의 현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바른 마음챙김은 뿌리와 주변이 접촉하는 동안 상실됩니다.
그 후 탐욕과 성냄과 무지로 인한 번뇌를 경험할 때 자아는 이미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의 '출생'으로 간주됩니다." [web 5]
일부 현대 교사들은 괴로움 을 삶의 육체적 고통에 더하여 정신적 괴로움을 의미하고 [116] [117]
네 가지 진리를 이생에서 행복을 얻는 수단으로 해석함으로써 네 가지 진리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118]
소승불교에서 나온 현대의 위빠사나 운동 에서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재생의 끝이 아니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주요 목표가 되었습니다. [119] [주 19]
그러나 자유와 행복은 불교 가르침의 일부이지만, 이 단어는 전통적인 아시아 불교에서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Gil Fronsdal 에 따르면 , "아시아인 교사들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주로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것, 즉 탐욕, 증오, 망상, 집착, 집착, 잘못된 견해, 자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재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열반은 최후 의 자유이며 그 자체를 넘어서는 목적이 없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한 창의적 현대적 해석에서 자유는 "생활 방식의 급격한 변화 없이" 행복하고 현명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120]
이러한 자유와 행복은 전통 불교의 사성제 및 관련 교리의 목표가 아니지만
서양의 위빠사나 가르침은 전통적인 상좌 교리를 언급하지 않고
대신 청중의 현재 삶에 대한 치료의 형태로 실용적이고 경험적인 목표만을 제시합니다. [121]
불교의 기본 전제가 아시아 이외의 청중에게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창의적인 해석이 부분적으로 추진됩니다. [주 20] [주 21]
스피로에 따르면 "불교 메시지는 단순한 심리적 메시지가 아니라" 종말론적 메시지이다. [90]
초기 불교의 역사적 발전 [ ■편집 ]
참조: 종파 이전의 불교
Anderson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아마도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1935년 Caroline Rhys Davids는 Theravada 불교의 핵심 가르침에 대해 Pali 정경의 중요한 구절에서 누락되었다고 썼습니다. [124]
Gethin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와 팔정도는 "고대 불교의 이론과 실천의 전체 범위를 포함하는 문자 그대로 수백 개의 유사한 목록"의 두 목록일 뿐입니다.
정경 내 네 가지 진리의 위치는 의문을 제기하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조사되었습니다 . [126]
가장 오래된 문헌에 대한 학문적 분석 [ ■편집 ]
학자들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문헌의 불일치는 가장 오래된 가르침의 발전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127] [주 22]
상좌부 전통에서는 경장경이 "불서의 결정적인 개정판"이라고 주장하고, [ 128]
상좌부에서는 경전 이 부처 자신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끊이지 않는 구전 전승의 사슬을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성제(四聖諦)와 같은 불교의 가장 오래된 가르침에 대한 정보는 가장 오래된 경전과 이러한 불일치를 분석하여 얻었으며 지속적인 논의와 연구의 문제입니다. 151-1[114] 151-1' [129] [130] [131]
슈미트하우젠(Schmithausen)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불교에 대한 지식을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하여 불교 학자들의 입장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32]
"Nikayic 자료의 적어도 상당한 부분의 근본적인 동질성과 실질적인 진정성에 대한 강조;" [주 24]
"초기 불교의 교리를 되찾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 [주 25]
"이 점에서 신중한 낙관주의." [주 26]
개발 [ ■편집 ]
중요성 증가 [ ■편집 ]
불교학자 Eviatar Shulman은 원래 형태에서 Four Truths가 정신적 사건에 대한 명상적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제안하며,
그가 주장하는 Pāli 용어 ayam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인식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137]
Bronkhorst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초기 불교에서 이미 공식화되었을 수 있지만 후기 불교에서 획득한 중심 위치는 없었습니다. [138]
앤더슨에 따르면, 서기 5세기 주석서가 나올 때까지 소승 전통에서 붓다의 중심 가르침으로 네 가지 진리가 확인되었습니다. [43] [주 27] 앤더슨에 따르면,
...
사성제(四聖諦)는 아마도 불교로 인식하게 된 초기 지층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다양한 불교 경전의 최종 편집 이전에 여전히 약간 더 늦은 기간에 중심 가르침으로 나타났습니다. [139]
피어(Feer)와 앤더슨(Anderson)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아마도 수도승의 규칙인 율장(Vinaya)에서 경장(Sutta Pitaka)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140] [주 28]
그것들은 "자유로운 통찰"이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사선정을 포함하는 계몽 이야기에 처음으로 추가되었습니다. [143] [주 29]
거기에서 그들은 부처님의 전기 이야기에 추가되었습니다. [144] [주30]
"자유로운 통찰"로 대체 [ ■편집 ]
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경전에서 부처의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불교의 길을 설명하는 데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불일치가 불교의 가르침이 부처님의 생애 동안이나 그 이후에 진화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주 22]
일본 학자 우이(Ui)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장 먼저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대신 그들은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에 대한 다소 늦은 이론입니다. Vetter와 Bronkhorst에 따르면 초기 불교의 길은 마음의 고요와 자각 (마음 챙김) 으로 이끄는 디야나 수행으로 절정 에 이르는 일련의 수행으로 구성 되었습니다 .
Vetter에 따르면추구되는 해방 입니다 . [147] [주 31] 나중에 "해방적인 통찰"은 동등하게 해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41] [42]
이 "해방적인 통찰"은 반야(prajna) , 즉 "네 가지 진리"의 통찰로 예시되지만 [41] [42]
불교 가르침의 다른 요소로도 예시됩니다. [147] [150] Vetter와 Bronkhorst에 따르면, "해방 통찰"의 중요성이 커져가는 것은 인도의 다른 종교 단체에 대한 반응 이었습니다 .[주 32]
이 변경 사항은 브롱크호스트에 따르면 정경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성제를 포함하는 설명은 해방 과정에 대한 개념이 사선(Four Dhyanas)과 중독자의 파괴를 포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가졌습니다. [154]
Vetter와 Bonkhorst에 따르면 이 "자유로운 통찰력"을 정확히 구성하는 아이디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했습니다. [147] [150]
Bronkhorst에 따르면 초기 불교 에서 네 가지 진리는 "자유로운 통찰"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에 prajna 라는 용어는 이 "해방적인 통찰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나중에 반야는 경전에서 "네 가지 진리"로 대체되었습니다. [39]
53-4' [40]
이것은 "해방 통찰"을 얻기 전에 사선정 수행이 선행되고 이 사선정 수행이 "해방 통찰"에서 절정에 이르는 경전에서 일어났습니다. [155]
이 "해탈하는 통찰"은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로 정의되는데, 이는 붓다의 깨달음 또는 "깨달음"을 구성하는 "해탈하는 통찰"로 제시됩니다.
그가 이러한 진리를 이해했을 때 그는 " 깨달음"을 받고 해방되었습니다 . [159]
Bronkhorst는 여기서 네 가지 진리가 해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덟 가지 길을 언급하는 반면,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의 성취는 그 자체로 해탈하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불일치를 지적합니다. 151-3' class=reference >
Bronkhorst 에 따르면 이것은 경전의 구성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생한 변화를 드러내는 불일치입니다.
이 대체 및 그 결과의 예는 부처님의 각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Majjhima Nikaya 36:42–43입니다 151-4' . [160]
Schmithausen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pratityasamutpada 로 대체되었고, 나중에는 소승 학파에서 실체적 자아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리로 대체되었습니다 . [161]
슈미트하우젠은 불교 정경에 이 "자유로운 통찰"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존재한다고 덧붙입니다.
"다섯 개의 스칸다(Skandha)는 영원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며, 자아도 아니고 자신에게 속한 것도 아닙니다."; [주 34] "
다섯 가지 스칸다의 발생과 사라짐( udayabbaya ) 에 대한 관조 "; [주 35] "빈 것( rittaka ), 헛된 것( tucchaka ) 및 어떤 핵심이나 실체( asaraka )도 없는 스칸다스의 실현 . [주 36] [162]
대조적으로 Thanissaro Bikkhu는 네 가지 진리, pratityasamutpada 및 anatta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 [웹 25]
법안(法眼)을 얻고 아사바 ( āsavaās) 를 멸함
상징적 기능에서 경전은 깨달음에 이르는 붓다의 길의 절정으로서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합니다.
Vinayapitaka 와 Sutta-pitaka 에서 그들은 동일한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청취자들이 담마 의 눈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깨달음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
대조적으로 여기에서 이 통찰은 그의 청중을 위한 경로 진입의 출발점 역할을 합니다. [163] [164] 이 경전들은 사건의 반복되는 순서를 제시합니다: [165]
붓다가 네 가지 진리를 설명하는 Annupubbikathā ("점진적인 이야기"); 이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장애물로부터 자유롭게 해줍니다.
이 이야기는 dhammacakkhu ("담마의 눈")를 열고 지식이 일어납니다. [81] [주 37]
불교 교단의 일원이 되려는 요청;
āsavās , 불순물을 파괴하는 부처님의 두 번째 이야기 ;
"지금 세상에 x 아라한이 있다 ."
그러나 다른 경전에서는 사제(四諦)가 명제적 기능을 하는 데 있어서 사제(四諦)를 이해하면 번뇌를 소멸한다. [166]
그들은 jhanas 의 실천과 신성한 눈의 달성과 결합하여 전생과 재생의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167]
Anderson에 따르면 Schmithausen과 Bronkhorst에 이어 이 두 프레젠테이션은 상징과 제안으로서의 기능을 반영하여 해방으로 가는 길에 대한 두 가지 다른 모델을 제공합니다.
아마도 네 가지 진리는 처음에 아사바(āsavās) 의 파괴에서 경로의 절정과 관련되어 불특정 "해방 통찰력"을 대체했습니다.
캐논이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불교도의 시작과 더 논리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68] [164]
서양에서의 대중화 [ ■편집 ]
앤더슨에 따르면 불교의 가장 본질적인 가르침으로 네 가지 진리를 제시하려는 학문적 경향이 강합니다. [49]
앤더슨에 따르면, "불교를 통제하려는 식민 프로젝트"로 인해 서구 문헌에서 네 가지 진리가 단순화되고 대중화되었습니다. [169] [170]
크로스비에 따르면 불교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단일한 합리화된 설명"으로 축소되며 이는 서양 문학에서 부처를 재해석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169]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로 네 가지 진리를 제시한 것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접근하기 쉽고 유연하며 따라서 비불교인이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으로 축소하기 위해 [완료]되었습니다." [171]
불교 문헌에는 매우 다양한 가르침이 있는데, 이러한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49]
이 네 가지 진리는 이와 관련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불교 전통 밖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합니다. [172]
예를 들어 비불교인을 위한 널리 사용되는 입문서인 Walpola Rahula의 What the Buddha Taught는 불교 가르침의 개요를 제시하는 틀로 네 가지 진리를 사용합니다. [171]
해리스에 따르면 19세기 영국인들은 불교와 부처의 새로운 표현을 만들었다.
19 세기 선교사들은 보다 효과적인 선교 활동을 위해 불교를 공부했습니다. [174] 부처는 신비화되지 않았고 "초인"에서 "자비롭고 영웅적인 인간"으로 축소되어
"서양의 역사적 방법과 부처를 신성보다 확고하게 위치시키는 선교 의제"에 봉사했습니다. [173]
네 가지 진리는 불교 경전을 읽음으로써 영국인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나중에 그들이 받은 중심 위치를 즉시 부여받지는 못했습니다. [173]
영국 선교사들의 글은 네 가지 진리를 불교의 중심으로 점점 더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다소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48] [주 38]
이 식민지 프로젝트 는 서면 텍스트에 대한 강조와 같이 종교에 대한 몇 가지 본질적으로 개신교적 태도를 통합한
소위 개신교 불교 로 절정에 달하는 일부 불교 분야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175] [176]
기멜로에 따르면, 라훌라의 책은 이 개신교 불교의 한 예이며 "서구의 기대에 부응하고 전통적인 소승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불교에 거의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 39]
헨드릭 컨(Hendrik Kern)은 1882년에 네 가지 진리의 모델이 고전 인도 의학과 유사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여기서 네 가지 진리는 의학적 진단으로 기능하고 부처님은 의사로 제시됩니다. [178] [주 40] [주 40]
컨의 비유는 다소 대중적이 되었지만 [178] [주 41] "부처님이 인간의 고통에 대한 그의 4중 분석을 위해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의학적 모델을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릴 충분한 역사적 증거가 없습니다." [178]
앤더슨에 따르면 불교의 중심에 네 가지 진리를 두지 않은 학자들은 "상좌 경전과 남아시아 문학의 더 큰 맥락에 대한 완전한 독해에서 네 가지 진리를 찾았거나" "현대 환경에서 수행되는 불교의 경험 내에서 가르침을 찾았습니다." [182]
앤더슨에 따르면, "이 작가들은 가르침을 불교의 대계획의 열쇠 또는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사람들보다 사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더 복잡한 해석을 제안합니다." [182]
담화 속의 모습 [ ■편집 ]
발전하는 불교 전통은 다양한 공식을 사용하여 다양한 경전에 네 가지 진리를 삽입했습니다. 53-5'
그것들 은 모든 담마와 붓다의 깨달음의 상징으로, 그리고 가르침의 모체 내에서 기능하는 일련의 제안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Anderson 에 따르면 가르침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의 가르침은 다른 가르침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침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다양한 가르침이 서로 교차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합니다. [184]
상징적 함수 [ ■편집 ]
Mahasccaka Sutta [ ■편집 ]
Mahasaccaka Sutta ("The Greater Discourse to Saccaka", Majjhima Nikaya 36)는 해탈에 이르는 부처님의 길에 대한 여러 버전 중 하나를 제공합니다. [주 42]
그는 세 가지 지식, 즉 그의 전생에 대한 지식, 죽음과 재생에 대한 지식, 오염의 소멸에 대한 지식, [주 43] 사성제 를 얻습니다.
네 개의 디아나를 거쳐 처음 두 가지 지식을 얻은 후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253-0' class=reference >.
나는 중독자의 파괴에 대한 지식으로 내 마음을 지시했습니다 [고통 ... 기원 ... 중단 ... 경로]
[취중 ( 아사바 ) ... 기원 ... 중단 ... 경로] 내 마음은 해방되었습니다 [...]
그것이 해방되었다는 지식이 일어났습니다. [160]
Bronkhorst는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처음 두 지식을 일축하고 취하게 하는 물질의 인식이 네 가지 진리를 모델로 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Bronkhorst에 따르면 다리에 "나는 취한 물질의 파괴에 대한 지식으로 내 마음을 지시했습니다. 내 마음은 해방되었습니다"라는 원래 시퀀스가 추가되었으며 네 가지 진실이 추가되어 중단되었습니다.
Bronkhorst는 네 가지 진리가 따라야 할 길에 대한 지식에서 정점을 이루는 반면
붓다 자신은 이미 그 지점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186]
Dhammacakkappavattana Sutta [ ■편집 ]
2세기(쿠샨)의 붓다의 첫 번째 설법을 묘사한 부조. [웹 26]
월터스 미술관. 오른쪽에 부처님의 손이 보입니다.
불교 전통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한 이야기는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etting in Motion the Wheel of Dhamma", Samyutta Nikaya 56.11)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Dhammacakkappavattana Sutta는 총 12개의 통찰을 위해 각 진리를 이해하는 세 단계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제공합니다.
각 진리를 이해하는 세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87] [188] [189] [190] [191]
sacca-ñāṇa – 진리의 본질을 아는 것(예: 인정, 견해, 성찰)
kicca-ñāṇa – 그 진리와 관련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예: 연습, 동기 부여, 직접 경험)
kata-ñāṇa – 해야 할 일을 성취함(예: 결과, 완전한 이해, 앎)
이 세 단계의 이해는 특히 상좌부 전통에서 강조되지만 일부 현대 대승 스승들도 인정합니다. [191] [192]
Cousins에 따르면 많은 학자들은 "이 법문은 나중에야 부처님의 첫 번째 설법으로 확인되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59]
Stephen Batchelor에 따르면 Dhammacakkappavattana Sutta는 부조화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 번째 법문은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가르치신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취급할 수 없으며,
불특정한 기간에 걸쳐 진화하여 오늘날 여러 불교 종파의 경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에 도달한 문서로 취급됩니다. [193]
Bronkhorst에 따르면 이 "첫 번째 설교"는 중요한 변형과 함께 여러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54]
율장 경전과 율승 경전의 영향을 받은 법문경(Dhammacakkappavattana Sutta)에는 네 가지 진리 가 포함되어 있으며,
콘단 냐는 "담마의 시각" [195] 이 그에게 일어날 때 깨달음을 얻습니다. [주 44]
그러나, 아리야파리예사나 숫타 ("성스러운 탐구", Majjhima Nikaya 26)에는 네 가지 진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 45]
그리고 부처님은 다섯 고행자에게 차례대로 개인 지시를 내리는데, 그들 중 두세 명은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구걸하러 나갑니다.
Dhammacakkappavattana Sutta 와 같은 네 가지 진리를 포함하는 "첫 번째 설교"의 버전은 이 지침을 생략하여 다음을 보여줍니다.
...사성제를 포함하는 설명은 해방의 과정에 대한 개념이 사선(Four Dhyanas)과 그에 따른 취하게 하는 물질의 파괴를 포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가졌습니다. [154]
Bronkhorst에 따르면, 이것은 원래 아르사바를 파괴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던 4개의 디아나를 실행함으로써
해방에 대한 초기 설명에 나중에 4개의 진리가 추가되었음을 나타냅니다.
Norman 을 따르는 Anderson은 또한 네 가지 진리가 원래 이 경의 일부가 아니었고 나중에 일부 버전에 추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60] [주 46]
Bronkhorst에 따르면 "12가지 통찰"은 아마도 나중에 추가된 것일 수 있으며, 보다 구체적인 "네 가지 진리"를 "prajna"라는 일반적인 용어로 대체하여 불편함에서 태어났습니다. [199]
Maha-parinibbana Sutta [ ■편집 ]
불교 전통에 따르면, Maha-parinibbana Sutta (부처님의 마지막 날, Digha Nikaya 16)는 부처님의 생애 말년에 주어졌습니다.
이 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좋은 일반적인 개념을 제공합니다." [web 20]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이 실현되고 스며들었고, 존재에 대한 갈애가 단절되고, 새로워지는 것으로 인도하는 것은 파괴되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행복하신 분, 스승님이 더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四聖諦)를 보지 못함으로써
롱은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때까지 지친 길이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재생의 원인이 제거되고
근심의 뿌리가 뽑히며 그런 다음 중생을 종료합니다.
명제 함수 [ ■Edit ]
Maha-salayatanika Sutta [ ■편집 ]
Maha -salayatanika Sutta , Majjhima Nikaya 149:3과 149:9는 다음 네 가지 진리를 대안적으로 제시합니다.
사람이 탐욕에 사로잡혀 머물고, 속박되고, 미혹되고, 만족을 생각하면, [...] [...]
사람의 몸과 마음의 고통이 증가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이 증가하고, 몸과 마음의 열이 증가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사람이 실제로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는 [느낌]이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으로 느껴지면,
그때 그는 눈에 대한 욕망, 물질에 대한 욕망, 안식성에 대한 욕망, 눈맞춤에 대한 욕망,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느낌]
또는 눈맞춤을 조건으로[코, 혀, 몸, 마음에 대해 반복됨] 발생하는 [느낌]에 대한 욕망으로 염증을 일으킵니다.
정욕에 불타지 않고, 속박되지 않고, 열광하지 않고, 위험을 생각하면서 [...] 갈애[...]가 버려집니다.
몸과 마음의 번뇌가 없어지고, 몸과 마음의 번뇌가 없어지고, 몸과 마음의 열병이 끊어지고, 몸과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 눈맞춤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그 느낌]이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으로 알고 볼 때,
그러면 그는 눈에 대한 욕망, 물질에 대한 욕망, 눈의 의식에 대한 욕망, 눈맞춤에 대한 욕망,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느낌]
또는 눈맞춤을 조건으로[코, 혀, 몸, 마음에 대해 반복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으로 느껴지는 [느낌]에 염증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200]
다른 전통 내에서의 강조 [ ■편집 ]
초기 인도 불교 [ ■편집 ]
Ekavyāvahārika 종파는 부처가 영원히 깨달음을 얻었고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부처 의 초월성을 강조했습니다 .
Ekavyāvahārika에 따르면, 부처님의 말씀은 하나의 초월적인 의미로 말씀하셨고,
사성제(四聖諦)는 통찰의 한 순간에 동시에 이해되어야 합니다. [201] Mahīśāsaka
분파 에 따르면 , 사성제(四聖諦)를 동시에 명상해야 합니다. [202]
소승 [ ■편집 ]
참조: 위빠사나 운동
캐롤 앤더슨(Carol Anderson)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는 "Theravada 정경과 전통 내에서 단일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Theravada 전통은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을 그 자체로 해방시키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45]
Walpola Rahula가 말했듯이, "진실이 보일 때, 환상 속에서 삼사라 의 연속성을 열정적으로 생성하는 모든 힘은 침착해지고
더 이상 카르마 형성을 생성할 수 없게 됩니다 .
[...] 그는 [...] 되고자 하는 '갈증'에서 해방됩니다." [web 27] [note 47]
이 해방은 네 가지 진리가 함께 이해될 때 한 순간에 달성될 수 있습니다. [45]
상좌부 내에서전통적으로 사성제를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법문 및 기타 경전을
읽고 숙고하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
예를 들어 Ajahn Sumedho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성제 (四聖諦)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인 담마차카파왓따나경( Dhammacakkappavattana Sutta)은
수년 동안 내가 수행에 사용했던 주요 참고 자료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국의 수도원에서 사용한 가르침입니다.
소승불교는 이 경을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로 간주합니다. 이 하나의 경에는 담마를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204]
Theravada-tradition 내에서 열반 에 대한 세 가지 다른 입장과
Arhat 사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질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04] [105] [106] [107]
열반은 번뇌의 소멸과 그로 인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 khlesa-nirvana )을 의미합니다.
죽을 때 다섯 가지 스칸다( skandha-nirvana 또는 parinirvana )의 최종 소멸까지;
그리고 "깨어나는 순간에 알려지는" 초월적 실재에. [104] [주48]
Gethin에 따르면,
"현대 불교의 용법은 '열반'을 깨어나는 경험으로 제한하고 '반열반'을 죽음의 경험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08]
Geisler와 Amano에 따르면
, "최소한의 Theravada 해석"에서 열반 은 심리적 상태이며,
육체의 해체와 존재의 완전한 소멸로 끝납니다. [105] [ 107]
Geisler 와 Amano에 따르면,
"정통 Theravada"는 Bronkhorst에 따르면 "불교는 이생에서, 즉 죽기 전에 해방을 설파했습니다", [ 205 ]
또한 불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해방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Bronkhorst에 따르면 이것은
...니르바나(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서 "나머지 우파디/우파디 없이"(anupadhisesa/anupadisesa)로 자격이 부여된 열반과
"가장 높고 완전한 깨달음"(anuttara samyaksambodhi/sammasambodhi)을 구별하는 정경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죽을 때, 후자는 삶에서 일어난다. [206]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 에 따르면 괴로움 의 소멸은 불교의 최고 선인 열반( nirvana ) 이며 ,
죽을 때가 아니라 이생에서 얻는다. [web 27]
Nirvana 는 "완벽한 자유, 평화, 평온 및 행복", [web 29] [web 27] 및 "절대적 진리" 입니다 . [웹 27] [주 49]
Jayatilleke는 또한 "궁극적 현실의 달성"에 대해 말합니다. [208]
비구 보디(Bhikkhu Bodhi)에 따르면, "갈애의 소멸은 슬픔, 고뇌, 괴로움의 소멸에서 절정에 달할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재생의 끝에서 얻어지는 무조건적인 열반의 자유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211]
Spiro에 따르면 대부분의 (재가) Theravada 불교도는
열반 과 완전한 소멸을 열망하지 않고 천국에서 즐거운 재생을 열망합니다. [212]
스피로에 따르면 이것은 불교 경전과 가르침이 "인생을 고통으로 묘사하고
열반을 최고선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나타냅니다. [213]
이러한 편차에 대해
"승려와 다른 사람들은 열반에 대한 희망이 불교 행동 에 대한 유일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강조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Spiro에 따르면 대부분의 버마 재가 불교도는 열반 인 존재의 소멸을 열망하지 않습니다 . [213] [주21]
인도의 불교 달리트 지도자 BR 암베드카르 에 따르면 ,
네 가지 진리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의 일부가 아니라 힌두교의 영향으로 인해 나중에 통합된 것입니다.
Ambedkar에 따르면 고통의 완전한 중단은 환상입니다 .
그러나 불교의 중도는 슬픔과 행복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15]
대승 [ ■편집 ]
네 가지 진리는 Śūnyatā 와 Bodhisattva 경로 에 대한 통찰력을 가르침의 중심 요소로 강조하는 대승 전통에서 덜 두드러집니다 .
일반적 으로 경전을 연구한다면 다양한 대승 주석을 통해서이다. [216]
Makransky에 따르면 대승보살의 이상은 네 가지 진리를 설명하는 데 긴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승 의 관점에서 완전히 깨달은 부처는 삼사라를 떠나지 않고 모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삼사라 를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네 가지 진리는 이러한 견해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으며 재해석되어야 했습니다.
오래된 관점에서 klesas 와 karma는 오래 지속되는 원인입니다. Makransky에 따르면, "[t]o
그러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육체적 죽음에서 자신의 조건부 존재를 소멸시키는 것이므로
세상에 대한 참여를 영원히 끝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진리)." [218]
Makransky에 따르면 해방된 존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널리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인도와 티베트 대승의 역사를 통틀어 불성(佛性)에 대한 지속적인 교리적 긴장의 중대한 원천"이었습니다. [47]
티베트 불교 [ ■편집 ]
Lamrim 전통 의 기초를 형성하는 그의 Bodhipathapradīpa ("A Lamp for the Path to Awakening")에서 Atisha는 불교 수행자를 위한 세 가지 수준의 동기를 분별합니다.
동기 부여의 초기 수준에서 사람은 삼사라 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합니다 .
중급 수준에서는 삼사라의 존재로부터의 해방과 모든 고통의 종식을 위해 노력합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동기에서는 모든 중생의 해방을 위해 노력합니다.
텍스트에 대한 주석에서 Tsenshap Serkong Rinpoche는 네 가지 진리가 중급 수준의 실천 수단으로 명상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221]
Geshe Tashi Tsering 에 따르면 티베트 불교 내에서 보살의 길의 일부로 네 가지 고귀한 진리가 연구됩니다. 그
들은 Prajna Paramita 경전 의 요약 및 주석 인 Abhisamayalamkara 와 같은 대승 주석에서 설명되며 ,
여기서 그들은 낮은 소승 가르침의 일부를 형성합니다.
도의 진리(네 번째 진리)는 전통적으로 상좌부 에서 제시하는 팔정도보다는 오도의 진보적인 공식에 따라 제시됩니다.
체링 에 따르면, 네 가지 진리에 대한 연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16가지 특성 에 대한 연구와 결합됩니다.[223]
일부 현대 티베트 불교 교사들은 서양 학생들에게 다르마를 가르칠 때 Dhammacakkappavattana Sutta 와 고귀한 팔정도 에 대한 해설을 제공했습니다 . [224] [225] [226]
니치렌 불교 [ ■편집 ]
Nichiren 불교는 Lotus Sūtra가 Gautama Buddha의 모든 가르침의 정수를 포함한다고 믿었던 일본의 승려이자 교사인
Nichiren 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합니다. [웹 31]
법화경의 세 번째 장에서는 사성제(四聖諦)가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인 반면, 법화법은 "가장 훌륭하고 위없는 대법"이라고 말합니다. [web 32]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백성의 능력에 따라 설하신 잠정적 가르침이며, 법화경은 석가모니 자신의 깨달음을 직접적으로 진술한 것이다. [웹 33]
서양 불교 _ _
많은 서양 불교도들에게 사성제 가르침의 윤회 교리는 문제가 있는 개념입니다. [51] [227] [228] [웹 34] [주 50]
램에 따르면, "현대 서구 불교의 특정 형태는 [...]
순전히 신화적이고 따라서 없어서는 안 될 개념으로 본다." [228]
Coleman에 따르면, 서양에서 대부분의 위빠사나 수행자들의 초점은 "주로 명상 수련과 일종의 현실적인 심리적 지혜에 있습니다." [229] [주 51]
Damien Keown 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 카르마 와 중생 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럽다"고 말합니다. [50]
Gowans에 따르면 많은 서양 추종자들과 불교 탐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사성제(四聖諦)의 근간이 되는 카르마와 재생에 대한 믿음에 회의적이며 반대합니다. [230] [주 52] Konik에 따르면,
초기 인도불교와 현대 서구불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같지 않기 때문에 전자가 개발한 일련의 해결책을 후자의 상황에 적용하는 타당성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단순히 환생을 끝내는 것이 초기 인도 불교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구 불교도들에게는 반드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51]
Keown에 따르면 고통의 문제에 대한 최종 목표와 답은 재생 이 아니라 열반 이기 때문에 사성제와 같은 불교 교리를 재해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일부 서양 해석가들은 때때로 "자연화된 불교"라고 불리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재생, 카르마, 열반, 존재의 영역 및 기타 불교 개념이 없으며, 현대적 용어로 재구성되고 재설명된 사성제와 같은 교리가 있습니다. [231] [232] [주 53] [주 54]
이 "수축된 세속적 불교"는 연민, 무상, 인과성, 사심 없는 사람, 보살 없음, 열반 없음, 재생 없음, 자신과 타인의 안녕에 대한 자연주의자의 접근을 강조합니다.[234]
멜포드 스피로(Melford Spiro)에 따르면,
이 접근법은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자살하지 않는가? 삶을 끝냄으로써 현재 삶의 고( dukkha) 의 종말을 앞당긴다"는 불교도의 실존적 질문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사성제(四聖諦)를 훼손합니다.
전통 불교에서 재생은 괴로움을 계속 하고 괴로움 의 소멸로 가는 길은 자살이 아니라
사성제(四聖諦)의 네 번째 실재입니다. [234]
Gowans에 따르면 "귀화 불교"는 전통적인 불교 사상과 실천에 대한 급진적인 수정이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의 전통 불교도에 대한 인간 삶의 현실에 대한 희망, 요구 및 합리화 뒤에 있는 구조를 공격합니다. [231]
Keown에 따르면, 불교도가 되기 위해 일부 핵심 불교 교리를 믿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윤회, 카르마, 존재 영역 및 순환 우주 교리는 불교의 사성제를 뒷받침합니다. [50]
전통적인 불교 학자들은 이러한 현대주의적 서구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비구 보디(Bhikkhu Bodhi)는 "불교의 현대주의 해석가"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재생이 경전에서 발견되는 불교 가르침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web 34] [note 55]
또 다른 예로서 Thanissaro Bhikkhu는 "재생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수행의 모든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현대적 주장"을 거부합니다.
그는 "재생은 항상 불교 전통의 중심 가르침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웹 35] [주 56] [주 57]
Owen Flanagan에 따르면 Dalai Lama는 "불교인들은 환생을 믿는다"고 말하며
이러한 믿음은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믿음은 환생 과 같지 않기 때문에 일반 불교도보다 더 정교하다고 Flanagan은 덧붙입니다.
불교 에서 환생은 "아트만, 자아, 영혼"이라는 가정 없이 " 아나트만 라인을 따라 생각된 의식" 을 통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35] [주 58]
재생의 교리는 티베트 불교와 많은 불교 종파에서 필수로 간주됩니다. [237]
크리스토퍼 고완스(Christopher Gowans)에 따르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일반 불교도들의 기본적인 도덕적 성향은 카르마와 환생에 대한 믿음에 의해 좌우됩니다." [230]
불교의 도덕은 금생이나 미래의 재탄생에 대한 희망에 달려 있으며,
열반(깨달음)은 내생을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카르마와 환생에 대한 부정은 그들의 역사, 도덕적 지향 및 종교적 기반을 약화시킵니다.
Keown 에 따르면 아시아의 대부분의 불교도는 이러한 전통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재생을 추구합니다. [50] [주 60]
나바야나 불교 [ ■편집 ]
인도의 지도자이자 불교학자인 BR Ambedkar 가 불교 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나바 야나( Navayana) 는 [241]
사성제(四聖諦), 카르마(karma), 환생(再生)을 포함한 전통 불교의 많은 부분을 거부하여
그의 새로운 종교를 계급 투쟁 과 사회적 행동을 위한 수단으로 바꾸었습니다.
Ambedkar에 따르면 Four Noble Truths는 "머리 가 잘못된 승려의 발명품"이었습니다. [243]
[ ■편집 ] 도 참조하십시오.
불교 주제 목록
해방을 향한 불교의 길
종속 발생
고귀한 팔정도
파리야티
세 가지 존재의 흔적
참고 [ ■편집 ]
^^이동:a b c Dukkha는종종 "고통"으로 번역되지만 이 번역은 일반적인 의미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확한 번역은 문맥에 따라 다릅니다. Peter Harvey, Dukkha, Non-Self, and the Teaching of the Four Noble Truths , in Steven M. Emmanuel, A Companion to Buddhist Philosophy , p.30: ""고통"은 일반적이고 부정확한 의미에서만 적절한 번역입니다. [...]
첫 번째 True Reality 에 대한 구절에서 "탄생은 dukkha"의 dukkha는 형용사입니다. 다양한 것들 에 . "
아날라요(2013b): "Dukkha는 종종 "suffering"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고통은 dukkha의 한 측면만을 나타내며, 그 의미의 범위를 영어 단어 하나로 포착하기 어려운 용어입니다. Dukkha는 "바퀴의 축 구멍"을 의미하는 Sanskrit kha와 "어려움" 또는 "나쁨"을 의미하는 대조 접두사 duå(= dus)에서 파생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완전한 용어는 축에 제대로 맞지 않는 축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킵니다. 구멍. 이 이미지에 따르면, dukkha는 "부조화" 또는 "마찰"을 암시합니다. 또는 dukkha는 동일한 대립 접두사 duå와 결합된 산스크리트어 "서 있는" 또는 "지속되는" stha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Dukkha는 "나쁘게 서 있다"는 의미에서 "불안" 또는 "불편"의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dukkha"의 다양한 뉘앙스를 파악하기 위해,가장 편리한 번역은 "불만족"이지만 번역하지 않은 상태로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Dalai Lama, Thubten Chodron, Approaching the Buddhist Path , p.279 note 2: " Duhkha (P. dukkha )는 종종 "고통"으로 번역되지만 이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더 미묘하고 모든 불만족스러운 상태와 경험을 지칭하며 그 중 다수는 명시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인생은 고통이다."
Gombrich, What the Buddha Thought , p.10: "dukkha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번역의 선택은 문맥에 크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표현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Khantipalo(2003 , p. 46) 에 따르면 , "고통"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은 즐겁지만 일시적인 경험을 포함하여 일시적인 상태와 사물의 궁극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특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Emmanuel(2015 , p. 30) 에 따르면 Dukkha는 "즐거움"인 sukha 의 반대이며 "고통"으로 더 잘 번역됩니다.
Huxter(2016 , p. 10): "dukkha(불만족 또는 고통)...";
Anderson(2013 , pp. 1, 22 with note 4): "(...) 삼사라/상카라(재생의 영역)의 세 가지 특징: anicca(무상), dukkha(고통) 및 anatta(무아)."
^^이동:a b c d Graham Harvey: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 고통의 세계에서 재생의 끝을 찾았습니다. 불교에서 달마로 알려진 그의 가르침은 사성제(四聖諦)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88]Geoffrey Samuel(2008):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환생에서 해방되는 길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설명합니다." [89]참조[90][91][27][32][92][88][93][web 18][web 19]
Theravada 전통은 이 네 가지 진리에 대한 통찰이 그 자체로 해방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팔리어정경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94]도널드 로페즈(Donald Lopez)에 따르면, "부처님은 첫 번째 설법에서 네가지 진리에 대한 절대적이고 직관적인 지식을 얻었을 때 완전한 깨달음과 내생의 자유를 얻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web 18]
Maha -parinibbana Sutta 는 또한 이 해탈을 언급합니다. [web 20] Carol Anderson: " Vinaya-pitaka 에 네 가지 진리가 나타나는 두 번째 구절은 Mahaparinibbana-sutta (D II 90–91) 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
여기에서 부처님은 재생이 계속되는 네 가지 진리를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설명합니다." [95]
대열반경(Mahaparinibbana-sutta) : 사성제(四聖諦)를 보지 못함으로써
롱은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때까지 지친 길이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재생의 원인이 제거되고
근심의 뿌리가 뽑히며 그런 다음 중생을 종료합니다. [웹 20]
중생으로부터의 해방으로서 목샤의 의미에 대해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패트릭 올리벨을 참조하십시오. [웹 21]
^^이동:a b c Gethin: "satya(Pali sacca)라는 단어는 확실히 진리를 의미할 수 있지만 '실제' 또는 '실제적인 것'으로 동등하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아야 하는 명제적 진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은 밤에 마침내 이해하셨다고 말하는 네 가지 '진실' 또는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 그것의 소멸, 그리고 소멸로의 길,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불교 신앙의 교리라기보다는 불교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편리한 개념적 틀로서 기능합니다." [75]
^^이동:a b 참조:
* Gogerly(1861): "1. 그 슬픔은 모든 형태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슬픔의 지속은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욕망의 결과입니다." [96]
*Perry Schmidt-Leukel: "갈증은 일시적으로 해소될 수 있지만 결코 최종적인 고요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갈증은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duhkha. 그리고 이 갈증 때문에 중생은 윤회, 끊임없는 재생과 재죽음의 순환에 묶여 있습니다. 이 갈애는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로서 새로운 존재로 이끄는 것입니다." [85]
* 또한 Williams & Wynne,[97]Spiro 참조. [90]
^^이동:a b 불교 모더니즘과 일부 Theravadins는 이러한 가르침을 "자아의 탄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Payutto,[33][웹 5]및불교 모더니즘#서부: 귀화 불교를 참조.
^^이동:a b 삼사라, 재생과 재사에 관하여:
* Mahasatipatthana-sutta: "그리고비구들이여, 괴로움이 일어나는 고귀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재생에 이르는 갈애입니다." [83]
* accesstoisight.org: "이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우리의 무지(avijja) 때문에, 세상을 그들의 용어로 구성하는 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남, 늙음, 질병, 죽음, 재생의 지루한 순환인 삼사라에 묶여 있습니다." [웹 17]
* 폴 윌리엄스: "모든 환생은 카르마로 인한 것이며 영원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각각의 환생에서 사람은 자신의 카르마의 완전히 비인격적인 인과 관계에 따라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태어나고 죽습니다. 탄생, 중생 및 재사의 끝없는 순환은 삼사라입니다.[32]
* 버스웰과 로페즈는 "재생"에 대해: "불교 언어에서 정확한 상관 관계가 없는 영어 용어로, 대신 산스크리트어 PUNARJANMAN("다시 태어나다") 및 PUNABHAVAN("다시 태어나다"), 덜 일반적으로 관련된 PUNARMRTYU('재죽음')와 같은 다양한 전문 용어로 번역됩니다 . " [84] [85] [86]
용어 Agatigati 또는 Agati gati (및 몇 가지 다른 용어)는 일반적으로 '중생, 재사'로 번역됩니다. Pali-English 사전을 참조하십시오. 예를 들어 Rhys Davids & William Stede의 94-95, 여기서 그들은 재생과 재사 의미가 있는 5개의 Sutta 예를 나열합니다. [87] 푸남리튜
참조
^^이동:a b Warder는 Majjhima Nikaya 75를 언급합니다. "나는 쾌락에 대한 욕망을 포기했습니다. [...] 나는 그들을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 이제 원인이 무엇입니까? 쾌락과 분리되고 나쁜 원칙에서 분리된 그 기쁨, Māgandiya는 신성한 행복을 완전히 능가하며 열등한 것을 갈망하지 않은 기쁨을 즐기며 그것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82]
^^이동:a b 재생 종료:.
부처님은 고통의 끝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고, 열반입니다. 열반은 삼사라의 삶에서 촛불이 바람에 꺼지듯이 "분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생의 끝을 의미합니다." 만족되지 않는 욕망은 좌절을 낳는다 확실히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말론적 메시지다 욕망은 환생의 원인이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이며 욕망의 소멸은 환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된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된다.[90]
* 존 J. 마크란스키(John J. Makransky): "세 번째 고귀한 진리인 소멸( nirodha ) 또는 열반은 아비달마 전통에서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를 나타냅니다. 윤회를 만든 조건에서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열반은 초세속적인 요가의 길이 완성되었을 때 도달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상태입니다. 그것은 윤회 원인과 조건의 사슬로부터 완전한 자유의 상태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윤회로부터의 구원을 나타냅니다. 무조건 ( asamskrta ) . " [27]
* Walpola Rahula: "팔리어 원문[...]에서 발견되는 열반에 대한 몇 가지 정의와 설명을 살펴보겠습니다. [...] '이 집착의 다섯 가지 집합체에 대한 갈애의 버림과 소멸: 그것이 괴로움 의 소멸입니다 . [...] '지속성과 생성( Bhavanirodha )의 소멸이 열반입니다.'" 145-0' [109]
^^이동:예 : _
Ven. Rewata Dhamma 박사: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 dukkha ); 2. 괴로움의 근원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samudaya ); 3. 괴로움의 소멸( nirodha )의 성스러운 진리; 4.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 마르가 )의 성스러운 진리. [55]
Bhikkhu Bodhi: "사성제(四聖諦)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의 진리, 2. 고의 기원에 관한 진리, 3. 고의 소멸에 관한 진리, 4. 도의 진리, 고에서 해탈하는 길." [웹 6]
Geshe Tashi Tsering: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2.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3.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근원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4.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원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 [56]
조셉 골드스타인: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고통의 진리, 그 원인, 끝, 그리고 그 끝으로 가는 길입니다. [57]
^ Kalamazoo College의 종교 교수; 불교-기독교 연구 저널의 공동 편집자. [웹 8] [웹 9]
^ Ajahn Sucitto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진실", satya (산스크리트어), sacca (팔리어), sat 에서 파생됨 , 존재, 그것이 어떻게. [1]
^ 현대 불교 교사인 Mingyur Rinpoche는 4개의 아리아 사티아를 "사물의 존재 방식에 대한 4가지 순수한 통찰"이라고 설명합니다. 현대 학자 Peter Harvey는 arya satya를 "영적으로 고상한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현실"로 번역합니다. [76]
^ Gogerly(1861): "1. 슬픔은 모든 형태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슬픔의 지속은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욕망의 결과입니다." [96]
↑ James egge가 인용한 Schmitthausen에 따르면, [99] 네 가지 진리는 카르마를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갈애가 고통과 환생의 원인이라고 선언합니다. [100]
↑ 팔정도나 열정도로 압축될 수 있는 또 다른 변종은 여래가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속인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재가자의 삶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계율에 따라 생활하기 시작하고, 감각의 문을 지키고, 마음챙김과 사선정을 수행하고, 삼지(三知)를 얻고, 사성제(四聖諦)를 이해하고 번뇌를 멸하고, 해탈함을 지각 합니다 . [113]
^ 패트릭 올리벨: " 목샤(moksha) 는 인도 철학과 종교에서 죽음과 재생(samsara)의 순환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묵티(mukti)라고도 합니다. 산스크리트어 muc("자유롭게 하다")에서 파생된 용어인 목샤(moksha)는 말 그대로 삼사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해방 또는 해방의 개념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를 포함한 광범위한 종교적 전통에서 공유됩니다. [web 21 ]
^ Melvin E. Spiro: "욕망은 재생의 원인이기 때문에 욕망은 고통의 원인입니다. 욕망의 소멸은 환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90]
↑ 위빠사나 운동은 영국 식민지 체제에 대응하여 식민지 버마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상좌부에서는 수행의 여지가 적고 재가불자의 부수적 역할을 하며 열반 의 성취가 우리 시대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반면, 개혁주의자들은 불교에 기초한 식민지 이전 질서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가불자의 수행을 옹호했습니다. 열반은 재가 불교도들에게도 갑자기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버마의 개혁가들은 불교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를 형성하면서 1970년대부터 미국과 테라와다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웹 22]
^^ 그런 다음 고대 인도 구원론의 교리를 고수하지 않는 한 법을 '정말로' 수행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거의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거짓된 것으로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견해가 그들 자신과 세상의 본질에 대해 그들이 알고 믿는 다른 모든 것과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더 이상 일하지 않으며, 그들이 일하게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지적 체조는 인과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들은 (신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설득력 있게 입증되거나 반박될 수 없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거짓된 것으로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견해가 그들 자신과 세상의 본질에 대해 그들이 알고 믿는 다른 모든 것과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더 이상 일하지 않으며, 그들이 일하게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지적 체조는 인과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들은 (신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설득력 있게 입증되거나 반박될 수 없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거짓된 것으로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견해가 그들 자신과 세상의 본질에 대해 그들이 알고 믿는 다른 모든 것과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더 이상 일하지 않으며, 그들이 일하게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지적 체조는 인과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들은 (신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설득력 있게 입증되거나 반박될 수 없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믿음입니다."[122]
^^이동:a b B. Alan Wallac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탄생, 그리고 축적된 공덕 카르마와 함께 유리한 재탄생과 장기적으로 궁극적인 해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카르마의 효능에 대한 믿음의 직접적인 결과로 테라와다 재가 불교도들은 일반적으로 성임된 승가에게 음식, 상품 및 돈을 바칩니다.
이러한 공덕은 이 공덕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공덕을 바치느냐에 따라 자신이나 돌아가신 사랑하는 사람을 더 나은 재생으로 이끄는 것으로 생각됩니다."[123]
^^이동:a b 참조: La Vallee Possin(1937), Musila et Narada ; Gombrich(2006), 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부록 에 재출간
Erich Frauwallner (1953), Geschichte der indischen Philosophie , Band Der Buddha und der Jina (pp. 147–272)
Andre Bareau(1963), Recherches sur la biographiedu Buddha dans les Sutrapitaka et les Vinayapitaka anciens , Ecole Francaise d'Extreme-Orient
슈미트하우젠, 초기불교의 '해탈적 통찰'과 '깨달음'에 대한 기술이나 이론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 에서: Studien zum Jainismus und Buddhistus (Gedenkschrift für Ludwig Alsdorf), hrsg. von Klaus Bruhn und Albrecht Wezler, Wiesbaden 1981, 199–250.
Griffiths, Paul(1981), "집중 또는 통찰; 테라바다 불교 명상 이론의 문제", The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4): 605–624, doi : 10.1093/jaarel/XLIX.4.605
KR 노먼, 네 가지 고귀한 진리
Bronkhorst 1993 , 8장
Tilman Vetter(1988), Tilmann Vetter 저, 초기 불교의 사상과 명상적 실천
리처드 F. 곰브리치(2006) [1996]. 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초기 가르침의 조건화된 창세기 . 루틀리지. ISBN 978-1-134-19639-5., 4장
앤더슨 1999
윈 2007
^ Bhikkhu Sujato & Bhikkhu Brahmali, p. 4: "대부분의 초기 불교 학자들은 EBTS에 부처님의 진정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조심스럽게 단언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증거를 크게 과소평가한다고 주장합니다. 관련 증거에 대한 공감적인 평가는 EBTS에서 부처님이 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말씀이 실제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말씀의 대부분이 진짜가 아닐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web 24 ]
^ 첫 번째 위치의 잘 알려진 지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AK Warder . AK Warder에 따르면, 그의 1970년 간행물 "인도 불교"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경전에서 공통 핵심, 즉 Bodhipakkhiyādhamma 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의 출판사인 Warder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교리의 핵심은 아마도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의 대분열 이전 기간의 일반적인 불교일 것입니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으로 붓다 자신의 불교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것은 붓다의 열반 후 약 100년 후에 존재하는 것으로 학파에서 전제하는 불교이며, 붓다와 그의 직계 추종자 외에 다른 사람에 의해 공식화되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133]
* 리차드 곰브리치 : "저는 주요 건물이 한 천재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 건물"이란 설교 본문, 4대 니까야, 수도원 규칙 본문의 모음집을 의미합니다.
↑ 두 번째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은 Ronald Davidson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비교적 초기의 공동체가 (논쟁의 여지가 있는)(원문 그대로) 유지하고 전수한 대략적인 신성한 문헌(논쟁의 대상)(원문 그대로)이 있었다는 데 동의하지만, 우리는 남아 있는 불교 경전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 역사적인 부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거의 없습니다." [134]
^ 세 번째 입장의 잘 알려진 지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JW de Jong: "초기 불교의 교리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선일 것입니다. [...] 정경 저술에서 발견되는 불교의 기본 사상은 [부처]에 의해 선포되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달되고 발전되었으며 최종적으로 고정된 공식으로 성문화되었을 수 있습니다." [135]
* Johannes Bronkhorst: "이 입장은 순전히 방법론적인 이유로 (ii)보다 선호됩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찾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132]
* 도널드 로페즈(Donald Lopez): "역사적인 부처의 원래 가르침은 복구하거나 재구성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극도로 어렵습니다." [136]
^ 앤더슨: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에 사성제가 항상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특징은 사성제가 특정 시점에서 정경 전통으로 등장하여 천천히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으로 인식되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초기 및 후기 가르침에 대한 추측은 지원하는 텍스트 외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팔리어 경전의 다른 구절과 비교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리어 경전 내에서 사성스러운 진리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을 암시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은 CE 5세기 주석서가 나올 때까지 붓다의 중심 가르침으로 확인된 교리입니다."[43 ]
^ 앤더슨은 이미 1870년에 " 비나야 컬렉션을통해 불교 문학에 사성제(四聖諦)가 나타날 가능성을 제시한" 레옹 피어(Léon Feer)를 언급합니다[141] 그녀는 또한 Vinaya 의 일부인 Mahavagga 와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Dhammacakkappavattana-sutta의 두 가지 버전 사이의 일관성을 발견한 Bareau를 언급 합니다 .
Leon Feer는 이미 1870년에 경전과 경전에서 발견되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의 버전이 더 큰 규모의 불교 문헌에 있는 율승에서 파생되었다고 제안했습니다. Bareau의 결론은 이 주장을 기반으로 합니다." [142]
↑ 슈미트하우젠(Schmithausen)에 따르면 초기 불교에서 '해탈하는 통찰'과 '깨달음'의 설명 또는 이론의 일부 측면에 대한 그의 자주 인용되는 기사에서 루빠 선정을 습득한 후 달성되는 "해탈하는 통찰"을 구성하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에 대한 언급은 나중에 Majjhima Nikaya 36과 같은 텍스트에 추가됩니다. [130] [114] [ 151-2' 129 ]
^ Anderson은 KR Norman, Bareau, Skilling, Schmithausen 및 Bronkhorst의 연구를 말합니다. [145]
^ dhyana는 집중에 의한 마음의 고요함인 samatha 와 동일하지 않다는점에 유의하십시오디아나는 또한 마음의 고요함을 가져 오지만, 불안하고 이기적인 생각과 감정의 발생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마음챙김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Wynne: "...부처님은 순수한 명상과 인지적 수행 사이의 '중간 길'을 가르쳤습니다. 명상에 의해 유도된 몰두 상태는 유용하고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명상 주류와는 달리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통찰력이었습니다. 부처님에게는 명상 숙련자가 자신의 집중 상태를 마음챙김 수행에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Sn 1070: satima; Sn 1111 :ajjhattañ ca bahiddha ca nabhinandato ; Sn 1113: ajjhattañ ca bahiddha ca natthi ti passato ), 통찰의 성취를 향해 노력하십시오. 이 관점의 명상에 따르면 명상 주류의 목표는 초기 불교에서 가혹하게 비판되었을 것입니다." [149]
^ Tillmann Vetter: "그 원인은 비불교적 영적 환경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들은 오직 어떤 진리나 더 높은 지식에 의해서만 해탈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대안적인(때로는 경쟁적인) 통찰 식별 방법(네 가지 고귀한 진리의 도입 이후 완전히 확립됨)은 이 주장에 매우 잘 부합하는 것 같았습니다." [153]
Bronkhorst에 따르면 이것은 "명상의 주류", 즉 행동이 완전히 멈출 수 없기 때문에 행동의 중단이 해방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Vedic-Brahmanical 지향 그룹의 영향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들의 해결책은 내면의 영혼 또는 자아와 신체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면의 자아는 변하지 않으며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 차이에 대한 통찰력으로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통찰에 대한 이러한 강조와 동등하게 하기 위해 불교도들은 그들의 가장 본질적인 가르침에 대한 통찰을 동등하게 해방시키는 것으로 제시했습니다. 정확히 중심적인 통찰로 간주된 것은 "붓다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으로 간주된 것과 함께 다양했습니다." [152]
^ "계몽"은 전형적인 서양 용어로, 고유하고 특정한 서양식 의미, 의미 및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156] [157] [158]
^ Majjhima Nikaya 26
^ Anguttara Nikaya II.45 (PTS)
^ Samyutta Nikaya III.140–142(PTS)
^ Dhammacakkappavattana Sutta 에 제시된 바와 같이 사실상 네 가지 진리에 대한 설명에 대해"먼지 없는, 스테인리스 담마의 눈"이 Kondañña에게 일어나 말했습니다. [웹 7]
↑ Gogerly는 1861년에 "슬픔은 모든 형태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지속성은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욕망의 결과"라고 썼고, Spencer Hardy는 1866년에 "모든 존재 방식과 연결된 슬픔이 있으며, 슬픔의 원인은 욕망이다"라고 썼습니다. Gogerly와 Hardy를 그린 Childers 는 "존재는 고통입니다. 인간의 열정 ( tanhā – 욕망)은 지속적인 존재의 원인입니다." [174]
^ Taylor(2007)에서 인용한 Gimello(2004). [177]
^ 컨의 모델: [179] [180] [181] 괴로움의 진리: 질병과 질병의 본질을 확인( 진단 )
기원의 진실: 질병의 원인 규명
중단의 진실: 질병의 치료법 확인( 예후 )
경로의 진실: 치료를 가져올 수 있는 질병에 대한 치료 권장( 처방전 )
↑ [179] [180] [181] 참조
^ Majjhima Nikaya 26, "The Noble Search"는 금욕적인 수행과 네 가지 진리를 생략하고 현저하게 다른 설명을 제공합니다.
^ 삼사라 에 갇힌 사람을 유지합니다.
^ 번역 Bhikkhu Bodhi (2000), Samyutta Nikaya , SN 56.11, p. 1846. Anderson(2001), Pain and its Ending , p.도 참조하십시오. 69.
^ MN 26.17은 단지 "[']이것은 노력하려는 씨족의 노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6] Bhikkhu Bodhi Majjhima Nikaya 36에 따르면 극도의 금욕적 수행이 이어지며 MN 26에서는 생략됩니다. [197] 18절에서 부처님은 열반을 얻었고, 태어남, 늙음, 질병, 죽음의 속박에서 안전해졌습니다. ." [198 ]
↑ 커즌스에 따르면 앤더슨은 이 점에서 노먼을 오해하고 있지만 "노먼의 입장에 대한 이러한 오해가 앤더슨의 논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이 네 가지 진리가 분명히 법륜경에 나중에 삽입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경 자체가 비교적 늦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확실히 가능하다." [59]
↑ 월폴라 라훌라: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다음에 취할 것)에 따라 지혜가 계발되고 계발될 때, 그것은 삶의 비밀, 사물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봅니다. 비밀이 발견되고 진리가 보일 때, 환상 속에서 삼사라의 연속성을 열정적으로 생성하는 모든 세력은 침착해지고 더 이상 카르마 형성을 생성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환상이 없고 지속성에 대한 '갈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웹 27]
"나머지 두 가지 요소, 즉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이해는 지혜를 구성합니다." [웹 28]
"올바른 이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사성제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이해는 궁극적으로 사성제에 대한 이해로 귀결됩니다. 이 이해는 궁극의 실체를 보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웹 28]
^ Gethin: "(I) 탐욕, 성냄, 미혹의 번뇌의 소멸, (2) 번뇌의 소멸에 따른 붓다와 아라한의 사후 상태, (3) 깨달음의 순간에 알려진 조건 없는 영역입니다.[104 ]
^ Rahula에 따르면, 부처가 가르친 것에서 , ... 열반이 긍정적인 용어로 표현되고 설명된다면, 우리는 그 용어와 관련된 생각을 즉시 파악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용어로 표현됩니다." [web 27]
Gombrich에 따르면 무신론적 접근과 격변적 접근 사이의 이러한 구분은 모든 종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Rahula 는 열반 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며 그 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반은 이와 같이 부정적인 용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자기 소멸을 표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반은 분명히 자아의 소멸이 아닙니다. 소멸시킬 자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것은 자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의 환상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Nirvāṇa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정적'과 '긍정적'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며 이중성의 영역 내에 있습니다. 이 용어는 이원성과 상대성을 초월하는 절대 진리인 열반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
Nirvāṇa는 원인도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넘어선 것입니다. 진실은 결과도 결과도 아니다. 그것은 디야나(dhyāna)나 삼매(samādhi)와 같은 신비적, 영적, 정신적 상태처럼 생성되지 않습니다. 진실은. NIRVĀṆA IS. [웹 27]
Rahula는 Dhātuvibhaṅga-sutta (Majjhima-nikāya 140)를 참조하여 "절대 진리로서의 열반"에 대한 그의 해석에 대해 Rahula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구여, 비현실(모사담마)은 거짓입니다. 실재(amosadhamma)인 것, Nibbāna는 진리(Sacca)입니다. 그러므로 비구여, 그렇게 부여받은 사람은 이 절대 진리를 부여받았다. 절대적인 성스러운 진리(paramaṃ ariyasaccaṃ)는 실재인 열반이기 때문입니다.' [웹 27]
Jayatilleke는 amosadhamma를 "ineffable"로 번역하지만 [208] Thanissaro Bhikkhu는 다소 다른 번역을 제공합니다.
그의 석방은 진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속박 해제(Unbound)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부여된 수행자는 진리에 대한 최고의 결단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속박 해제, 속이지 않는 것)이 가장 고귀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웹 30]
Rahula에 대한 응답으로 Richard Gombrich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실은'이라고 (대문자로) 선언하면서 Rahula는 잠시 우파니사드 양식에 빠졌습니다. 진리는 주어와 술어가 있는 명제의 속성일 뿐이고 열반은 명제가 아니므로 열반이 진리라는 말은 영어로 말이 안 된다. 산스크리트어 satyam과 해당 Pali 단어 saccam이 참으로 '진실' 또는 '실재'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우리 언어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209]
Richard Gombrich는 또한 Rahula의 책 제목이 What Buddhagosa Taught 가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 David Kalupahana에 따르면, Buddhagosa는 대승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Sarvastavadins와 Sautrantikas의 본질 주의적 관점뿐만 아니라 실체 주의적 관점"을 도입했습니다. [210]
^ 참조:
* James Ford , The Karma and Rebirth Debate within Contemporary Western Buddhist: Some Links to Follow
* Manon Welles, 세속 불교 vs. 전통 불교: 6 주요 차이점
* Alan Peta, Reincarnation and Buddhist: Here We Go Again
↑ Coleman에 따르면, Theravada 불교의 목표는 "열반(산스크리트어로 열반)을 얻기 위해 욕망과 번뇌를 뿌리 뽑고 죽음과 재생의 끝없는 순환으로부터 해방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 위빠사나 교사는 재생과 열반과 같은 개념의 형이상학적 측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물론 그들의 제자 중 극소수만이 금욕적인 승려입니다. 그들의 초점은 주로 명상 수련과 일종의 실제적인 심리적 지혜에 있습니다." 그 결과," 존경받는 한 위빠사나 스승은 "더 많은 유럽 혈통의 미국인들이 자신을 소승불교의 제자라기보다는 위빠사나 제자라고 부릅니다."라고 썼습니다. [229 ]
^ Gowans는 이의 제기를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합니다. 첫 번째 이의는 "일관성 이의"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아트만, 영혼)가 없다면 무엇이 다시 태어나고 카르마는 어떻게 작용하는가?"라고 묻는다. 두 번째 반론은 "환생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지, 환생이 일어난다는 증거가 무엇인지"를 묻는 "자연주의적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반대는 예를 들어 Majjhima Nikāya 섹션 3.204 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질병을 안고 태어난 아기가 전생의 업장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이유"를 묻는 "도덕적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Gowans는 불교 신자들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답변, 설명 및 설명에 대한 요약을 제공합니다. [230]
^ Prothereo는 신지학자 Henry Steel Olcott (1832–1907)이 불교를 어떻게재해석했는지 설명합니다. [232]
↑ Owen Flanagan에 따르면 천국을 믿는 북미 사람들의 비율은 환생을 믿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비율과 거의 같다. 그러나 '환생'은 서양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천국'은 그렇지 않다고 Flanagan은 덧붙입니다. 반성적 자연주의적 접근 방식은 '천국'과 '환생' 모두에 똑같이 의문을 제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233] Donald S. Lopez에 따르면 서양의 불교 운동은 아시아에 알려지지 않은 "과학적 부처"와 "현대 불교", "19세기 후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현대 불교"를 재구성했습니다. [ 52 ]
^^ 붓다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존중하여 유지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정신 상태의 변화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며, 환생의 영역은 심리적 원형의 상징으로 간주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환생에 관한 텍스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삽입된 내용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빠알리 경전을 훑어보면 이러한 주장 중 어느 것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회에 대한 가르침은 경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며, 다른 많은 교리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것을 제거한다면 사실상 담마를 너덜너덜하게 만들 것입니다. 더욱이 경에서 지옥, 동물계, 영계, 인간계, 하늘의 다섯 가지 영역으로의 재생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이 용어들이 상징적으로 의미한다는 것을 결코 암시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죽은 후에 몸이 분해되면서" 재생이 일어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재생의 개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의도가 있음을 분명히 암시합니다." [web 34 ]
^ Thanissaro Bhikkhu: "깨달음에서 알려진 것, 특히 깨달음에서 성취되는 재생에 대한 지식에 대한 정식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하는 현대의 두 번째 주장은 재생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수행의 모든 결과를 여전히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통으로 이끄는 모든 요소는 모두 즉시 자각에 나타나므로, 그것들을 버리려고 할 때 그것들이 미래에 어디로 이끌지 않을지에 대한 전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반대는 경로에 대한 적절한 관심의 역할을 무시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 역할 중 하나는 개인 정체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관점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조사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무엇이며 왜 윤회가 불가능한지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이러한 검토를 거치지 않는 한, 당신의 길에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부적절한 관심의 문제에 계속 얽히게 될 것이고, 그것은 당신이 실제로 고통의 원인을 확인하고 포기하고 수행의 완전한 결과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할 것입니다.
또한 적절한 관심의 조건인 사성제(四聖諦)는 단순히 현재 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러한 사건들 사이의 인과적 연결, 즉각적인 현재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생하는 연결에 초점을 맞춥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결을 무시하면서 현재의 연결에만 초점을 맞추면 갈애가 고통을 유발하는 방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웹 35]
↑ Konik에 따르면: 초기 인도 불교 전통에 따르면, 의심할 여지 없이 열반의 경험에 압축된 부처님의 위대한 발견은 깊은 불안의 근원으로서 끝없는 재생 과정의 현실을 사실로 전제하고 부처님이 그 운명을 극복한 것을 궁극적인 해탈로 받아들이는 그의 많은 이전 존재에 대한 기억을 포함했습니다. [51]
^ 달라이 라마 자신은 관세음보살 의 현현인 13명의 이전 달라이 라마의 화신으로 간주됩니다. [236]
^ Merv Foweler: "그러나 Theravadin 국가에 있는 대다수의 불교도에게 승려의 순서는 더 나은 환생을 위해 좋은 카르마를 축적하기를 바라며 가장 공덕을 얻는 수단으로 평신도 불교도로 간주됩니다." [239]
^ 케빈 트레이너(Kevin Trainor)에 따르면 대다수의 불교 평신도는 역사적으로 데바 영역으로의 재탄생을 동기로 하는 불교 의식과 수행을 추구해 왔습니다. [238] Fowler와 다른 사람들은 열반이 아닌 더 나은 재생이 대다수의 재가 불교도의 주요 초점이었다고 Trainor와 동의합니다. 그들은 공덕 축적과 선업을 통해 이것을 시도 합니다 . [239] [주59]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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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erson 2004 , pp. 295–297. 인용문: "두 번째 진리는 사무다야(일어남 또는 기원)입니다. 괴로움을 끝내려면 괴로움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네 가지 고귀한 진리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두 번째 고귀한 진리는 괴로움이 갈애, 욕망, 집착 때문에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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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erson 2004 , pp. 295–297, 인용: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인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이것은 성스러운 자들의 여덟 가지 길입니다: 바른 견해, 바른 의도,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 부처님은 네 번째 진리인 마아르가(Pali, magga)를 가르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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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 ■편집 ]
인쇄 소스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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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읽기 [ ■편집 ]
역사적 배경과 발전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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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해석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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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학술적 설명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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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 ■편집 ]
Wikiquote에 Four Noble Truths 관련 인용문이 있습니다 .
Wikisource 에는 이 문서와 관련된 원본 텍스트가 있습니다. 상육타 아가마 379: Dharmacakra Pravartana Sūtra
"사성제(四聖諦)란 무엇입니까?"
" 네 가지 고귀한 진리: 개요" , Berzin Archives
사성제(四聖諦). 학습 가이드 , Thanissaro Bikkhu
네 가지 고귀한 진리 , Rigpa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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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대만불광사전
사제
【四諦】 p1840-上≫
諦,
梵語 satya,
巴利語 sacca,
審實不虛之義.
卽指苦․集․滅․道四種正確無誤之眞理.
此四者皆眞實不虛,
故稱四諦․四眞諦 ; 又此四者爲聖者所知見,
故稱四聖諦.
四諦大體上乃佛敎用以解釋宇宙現象的「十二緣起說」之歸納,
爲原始佛敎敎義之大綱,
乃釋尊最初之說法.
四諦依次稱爲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聖諦,
或苦聖諦․苦習諦․苦滅諦․苦滅道聖諦,
或苦諦․苦集諦․苦盡諦․苦出要諦,
或苦聖諦․集聖諦․眞聖諦․道聖諦.
其中,
苦與集表示迷妄世界之果與因,
而滅與道表示證悟世界之果與因 ; 卽世間有漏之果爲苦諦,
世間有漏之因爲集諦,
出世無漏之果爲滅諦,
出世無漏之因爲道諦.
據中阿含卷七分別聖諦經․大毘婆沙論卷七十七․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七等所說四諦之義,
卽 : (一)苦諦(梵 duḥkha-satya),
苦,
泛指逼迫身心苦惱之狀態.
審實世間事物,
不論有情․非情悉皆爲苦 ; 亦卽對人生及環境所作之價値判斷,
認爲世俗之一切,
本質皆苦.
苦諦卽關於生死實是苦之眞諦.
(二)集諦(梵 samudaya-satya),
集,
招聚之義.
審實一切煩惱惑業,
實能招集三界生死苦果.
集諦卽關於世間人生諸苦之生起及其根源之眞諦.
(三)滅諦(梵 nirodha-satya),
滅,
卽寂滅 ; 審實斷除苦之根本─欲愛,
則得苦滅,
可入於涅槃之境界.
滅諦卽關於滅盡苦․集之眞諦.
(四)道諦(梵 mārga-satya),
道,
能通之義.
審實滅苦之道,
乃正見․正思惟等八正道,
若依此而修行,
則可超脫苦․集二諦,
達到寂靜涅槃之境.
道諦卽關於八正道之眞諦.
四諦係佛陀成道之後,
於鹿野苑爲五比丘初轉法輪之說,
爲佛敎中之基本敎義,
竝爲生死解脫之唯一方法.
後世雖以四諦爲聲聞之法,
然除小乘敎中有此生死解脫之說外,
於大乘經典中亦有此四諦之說,
如勝鬘經․北本大般涅槃經卷十二․卷十三等,
不僅附有大乘之解釋,
竝對四諦之深義有所發揮.
關於四諦之自性,
諸部有多種異說,
據大毘婆沙論卷七十七載,
阿毘達磨之諸論師以五取蘊爲苦諦,
有漏因爲集諦,
擇滅爲滅諦,
學․無學法爲道諦.
關於四諦現觀之次第,
據俱舍論卷二十二․大毘婆沙論卷七十八記載,
先觀苦諦,
依次觀集諦․滅諦․道諦.
此外,
四諦之理分爲三階段,
而各有四種行相之說,
稱爲三轉十二行相.
若以苦諦爲例,
三轉卽 : (一)初轉是「說此爲苦諦」之示轉.
(二)第二轉是「應遍知(永斷․作證․修習)苦諦」之勸轉.
(三)第三轉爲「已遍知(乃至修習)苦諦」之證轉.
其他集․滅․道諦亦各有三轉.
所謂十二行相,
據雜阿含經卷十五․俱舍論卷二十四載,
卽指在三轉中,
各設有眼․智․明․覺四行相,
而於各諦中均有十二行相.
另有一種解釋則不考慮眼․智․明․覺,
而認爲每一諦有三轉,
四諦則共有十二行相.
然有部敎學之修證論中認爲,
於四善根位觀四諦,
每一諦各有四種行相,
合計則爲十六行相,
稱爲四諦十六行相.
卽 : 觀苦諦有非常․苦․空․非我四行相,
卽一切萬法無恆存性,
爲苦․爲假相之存在,
且無實體性 ; 觀集諦有因․集․生․緣四行相,
卽愛執爲苦之因,
其集聚苦而爲苦生起之助緣 ; 觀滅諦有滅․靜․妙․離四行相,
謂苦滅之理想境界卽滅繫縛․靜煩惱․殊妙境․離災禍 ; 觀道諦有道․如․行․出四行相,
謂至苦滅之聖道,
爲聖者實踐之正道,
合於正理,
趨向理想境,
而超出迷妄之生存.
此四善根位之次卽入見道,
以無漏眞智現觀四諦.
此見道卽爲預流向,
至於預流果以後則屬修道,
若以通於預流向․預流果之十六心現觀四諦,
稱爲聖諦現觀.
其中僅最後之第十六心屬預流果,
前十五心屬見道.
復次,
觀欲界四諦之智,
稱爲法智 ; 觀上二界(色界與無色界)四諦之智,
稱爲類智,
而此法智與類智又各有忍與智.
此卽言,
在無間道,
以忍斷煩惱 ; 在解脫道,
則以智證眞理.
就苦諦而言,
乃是以苦法智忍(簡稱苦法忍)現觀欲界之苦諦,
斷苦諦所迷之煩惱,
以苦法智現觀欲界之苦諦,
竝證苦諦之理,
以苦類智忍(簡稱苦類忍)現觀上二界之苦諦,
而斷煩惱,
以苦類智現觀上二界之苦諦而證理,
卽以此四心現觀苦諦.
故準此而言,
對集․滅․道三諦亦各有集法(智)忍․集法智․集類(智)忍․集類智,
滅法(智)忍․滅法智․滅類(智)忍․滅類智,
道法(智)忍․道法智․道類(智)忍․道類智等,
總共則有十六心,
稱爲八智八忍,
或八忍八智.
此外,
依次觀四諦之無漏淸淨,
可分別産生苦智․集智․滅智․道智,
此四智與世俗智․法智․類智․他心智․盡智․無生智竝稱爲十智,
乃統括一切有漏智與無漏智之總稱.
大乘佛敎在顯揚聖敎論卷七中,
依四諦之內容開演爲行苦諦․壞苦諦․苦苦諦․流轉諦(以上係由苦諦展開)․雜染諦(相當苦․集二諦)․流息諦(相當於滅諦)․淸淨諦(相當於滅․道二諦)․正方便諦(相當於道諦)等八種,
稱爲八諦.
又據吉藏之勝鬘寶窟卷下本所述,
小乘之四諦觀乃不完全․不究竟,
後更有修作,
故稱有作四諦 ; 大乘之四諦則完全而究竟,
後更無修作,
故稱無作四諦 ; 此二者亦合稱爲八諦.
又天台宗智顗大師依勝鬘經․涅槃經之說,
別立淺深不同之四種四諦,
與藏․通․別․圓四敎相配當 : (一)生滅四諦,
爲藏敎所說,
就有爲生滅之事,
而觀四諦之因果爲實有生․滅.
(二)無生四諦,
又作
無生滅四諦.
爲通敎所說,
就因緣諸法卽空無生,
而觀四諦迷悟之因果,
均是空無而無生滅.
(三)無量四諦,
爲別敎所說,
就界內界外恆沙無量差別,
而觀一切現象皆由因緣生,
具有無量之差別,
因而四諦亦有無量之相.
(四)無作四諦,
圓敎所說,
就迷悟之當體卽實相,
而觀迷與悟之對立矛盾卽非矛盾,
而皆爲實相.
另法相宗於四諦中之滅諦立有自性滅․二取滅․本性滅等三滅諦 ; 在道諦中立有徧知道․永斷道․作證道等三道諦,
此係由於滅諦與道諦中各具有遍計所執性․依他起性․圓成實性等三性之故.
[雜阿含經卷十五․卷十六․中阿含卷七象跡喩經․卷二十五念經․長阿含卷八衆集經․卷九「十上經」,
增一阿含經卷十四․卷四十二․四諦經․轉法輪經․舊華嚴經卷四․卷五․新華嚴經卷十二「四聖諦品」․大方等大集經卷二十二․大品般若經卷二十六差別品․五分律卷十五․善見律毘婆沙卷四․集異門足論卷七․品類足論卷七․法蘊足論卷六․雜阿毘曇心論卷八․成實論卷二․中論卷四觀四諦品․大智度論卷十一․卷十八․卷四十八․卷九十四․瑜伽師地論卷五十五․卷六十七․卷九十五․顯揚聖敎論卷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七至卷十․成唯識論卷九․順正理論卷五十七․卷五十八․四諦論․法華經玄贊卷七末․法華經玄義卷二下․中觀論疏卷十本․大乘義章卷三本․摩訶止觀卷一之三․卷一之四]
법계상(法系上)으로 아우 뻘 되는 이.
나보다 나중에 입산(入山)한 사승(師僧)의 도제(徒弟).
법제(法弟)라고도 함.
【師弟】 p4095-中≫
卽指在佛敎中,
師父與弟子之關係.
最初聽聞佛陀說法的憍陳如等五人,
成爲佛陀之弟子,
此卽佛敎中最早的師弟關係.
後佛弟子增爲千餘人,
於此情況下,
佛陀卽爲「達人所未達之道,
知人所不知之道,
說人所未說之道」的師者 ; 而所謂弟子者,
卽依佛所說之正道,
竝步其後塵,
付諸實踐者.
弟子之中,
有聽聞佛之聲敎而入於聖道者,
稱爲聲聞.
在巴利律藏大品第一之五․四分律卷三十四等中,
卽敘說爲師之和尙(巴 upajjhāya)或阿闍梨(梵 ācārya)與弟子(巴 saddhivihārika)之間,
彼此須履行之任務.
長阿含經卷十一等中,
亦載有弟子敬奉師父之五事.
此外授戒中,
必須具有戒和尙․羯磨師․敎授師等三師才可行戒儀.
釋尊在世時,
釋尊爲全體佛敎敎團之師,
於其入滅後,
則分別由以敎法或戒律爲師之長老們繼續傳承,
佛敎因之分裂成許多學派及敎派 ; 而各派之長老復依序傳授徒弟,
遂得保留其代代相承之傳統,
尤於密敎中,
非公開之傳授,
卽稱爲祕傳 ; 在禪宗則是一對一單傳,
凡未接受此種傳授者,
卽不被承認爲正式弟子.
(參閱「相承」3902․「師資」4097)
● From Hanja(Korean Hanzi) Dic
사제 司祭 師弟 私製
● From Korean Dic
사ː제(四諦)[명사]불교에서 이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네 가지 진리.
곧,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
고집멸도.
1.스승과 제자.
2.불교에서,한 스승의 불법을 이어받은 후배를 이르는 말.
1.주교(主敎)와 신부(神父)를 통틀어 일컫는 말.제사(祭司).
2.주교의 아래,부제(副祭)의 위인 성직.
사제(私製)[명사][하다형 타동사]개인이 만듦,
또는 만든 그 물건.
바깥사돈 사이에, 상대에 대하여 ‘자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제(舍弟)
《Ⅰ》[명사]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가제(家弟).
↔사형(舍兄).
사ː제(賜第)[명사][하다형 자동사]
1.임금의 명으로,과거에 급제한 사람과 똑같은 자격을 주던 일.
2.임금의 명령으로,사제(私第)를 내리던 일.
⑤-4095■불광사전
hbfl--07_Sa_0689.TIF
불교의 사제(四諦)에 대해서는 사성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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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Ch-Eng] TEN PARAMITA Ten Paramita 十波羅蜜 【參照: Paramita】
[Muller-jpn-Eng] 四部之會 シブノエ four groups of Buddhist disciples
[Glossary_of_Buddhism-Eng] DHARMA DOOR☞
Syn: Dharma Gate; School; Method; Tradition.
See also: Door of Liberation.
“A figurative term [for a particular school or tradition, for example,
Zen, Pure Land], a specific doctrine, implying that it is an entry-way
to an understanding of the Dharma.”
T. C. Chen: 477 #1254
[fra-eng] jeu $ 불어 game, play
■ 암산퀴즈
299* 563
803160 / 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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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수화길상광명대기명주총지 8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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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명성(名聲)을 증장시키며,
바주라참포, 伐折洛讖蒱<八>
vajra ksam bhu,
금강(金剛) 지장
『대승대집지장십륜경』
♣0057-001♧
47
이 다라니의 힘은
능히 삼천대천세계에
산(山)과 강과 석벽(石壁)과 사방의 큰 바닷물을 솟아오르게 하고
수미산과 철위산을 능히 움직이게 하며
또한 티끌같이 부서지게 할 수 있으며
이 큰 세계 안에
모든 중생이
다 위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 모다야모다야 菩馱夜菩馱夜<四十七> bo dha ya bo dha y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95
오나만도 매다리 만다
虞拏挽睹<引>昧怛哩<二合>滿哆<九十五>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203일째]
지혜통달불가설 $ 074▲計羅計羅為 一 ● 細羅, ○□□□□,三,了,明,修
□□□□□□□, 三昧自在不可說,
了達諸法不可說, 明見諸佛不可說,
□□□□□□□, 삼매자재불가설,
료달제법불가설, 명견제불불가설,
智慧通達不可說,
지혜로 통달함을 말할 수 없고
삼매에 자재함을 말할 수 없고
모든 법 잘 아는 것 말할 수 없고
부처님 밝게 봄도 말할 수 없고
075□
[204째]
수무량행불가설 $ 075▲細羅細羅為 一 ● 睥羅, ○□□□□,發,甚,清,菩
□□□□□□□, 發廣大願不可說,
甚深境界不可說, 清淨法門不可說,
□□□□□□□, 발광대원불가설,
심심경계불가설, 청정법문불가설,
修無量行不可說,
한량없는 행 닦음을 말할 수 없고
광대 서원 내는 일도 말할 수 없고
깊고 깊은 경계를 말할 수 없고
청정한 법문들도 말할 수 없고
●K0952_T1545.txt★ ∴≪A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
●K0944_T1544.txt★ ∴≪A아비달마발지론≫_≪K0944≫_≪T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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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자세 익히기
요가_허리 흔들기
168337
828
법수_암기방안
75 알머리뼈
8 큰 창자,【대장】
47 발 돌출부 [신조어] 엄지발가락 위 돌출부분 ( Ball )
95 足背 【족배】 ~발등.
74 무명지 (~약지 )
3 밥통 【위】
■ 오늘의 경전 [이야기, 게송,선시 등]
2567_0722_164730 :
대장경 내 게송
옛 남편은 죽여 버렸고
새 남편은 물건을 가지고 갔으니
여기도 저기도 의지할 데 없어
근심과 원한만으로 풀숲에서 우느냐.
출전:
한글대장경 K0893_T1451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雜事) 당 의정역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 【唐 義淨譯】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통합대장경
https://kabc.dongguk.edu/m
○ 2019_0113_113646_nik_BW17
○ 2019_0113_121440_can_a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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