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장아함경
- 대반야바라밀다경
- 중아함경
- 묘법연화경
- 마명
- 대반열반경
- 유마경
- 반야심경
- 대방광불화엄경
- 방광반야경
- 유가사지론
- Japan
- 무량의경
- 종경록
- 마하승기율
- 마하반야바라밀경
- 아미타불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 금강삼매경론
- 가섭결경
- 잡아함경
- 수능엄경
- 대승기신론
- 대방광불화엄경60권본
- 원각경
- 대지도론
- 백유경
- 정법화경
- 증일아함경
- 유마힐소설경
- Since
- 2551.04.04 00:39
- ™The Realization of The Good & The Right In Wisdom & Nirvāṇa Happiness, 善現智福
-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_318 본문
『대반야바라밀다경』
K0001
T0220
대반야바라밀다경 제318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 핵심요약
♣0001-318♧
『대반야바라밀다경』
K0001V003P0140c
대반야바라밀다경 제318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김월운 번역
● 대반야바라밀다경 제318권
● 46. 취지품 ③
● 보살마하할의 행함의 유무
● 행하지 않는 사정 -불가득-무능작-무능괴-무소종래-무소거처-무소주-무방무역-무수무량-무왕무래-무능증-불가이색증
● 색 등이 곧 일체지지임과 그 사유-하나의 진여-둘이 없음-차별없음
● 47.진여품(眞如品) ①
● 욕계 색계 천자의 공양
● 색이 곧 일체지지요+일체지지가 곧 색임과 그 사유- 하나의 진여-둘이 없음-차별없음-다함없음
46. 취지품 ③
● 보살마하할의 행함의 유무
그때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보살마하살이
공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과
허공과 있지 않음과
생김이 없고 소멸함이 없음과
더러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음과
진여와 법계ㆍ법성ㆍ불허망성ㆍ불변이성ㆍ평등성ㆍ이생성ㆍ법정ㆍ법주ㆍ실제ㆍ허공계ㆍ부사의계와 조작함이 없음과
요술과 꿈과 메아리와 형상과 그림자와 아지랑이와 변화로 된 일과 심향성에
서로 잇대고 따르고 향하고 들어가면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보살마하살이 일체지지에 서로 잇대고 따르고 향하고 들어가면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라면
A를 행합니까,
A`를 행합니까?
A A` =
(
물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눈의 영역,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
빛깔의 영역,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영역?
눈의 경계,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경계?
빛깔의 경계,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경계?
안식의 경계,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의 경계?
눈의 접촉,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지계,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
무명, 지어감ㆍ의식ㆍ이름과 물질ㆍ여섯 감관ㆍ접촉ㆍ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과 죽음?
---
보시바라밀다,
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
내공,
외공ㆍ내외공ㆍ공공ㆍ대공ㆍ승의공ㆍ유위공ㆍ무위공ㆍ필경공ㆍ
무제공ㆍ산공ㆍ무변이공ㆍ본성공ㆍ자상공ㆍ공상공ㆍ
일체법공ㆍ불가득공ㆍ무성공ㆍ자성공ㆍ무성자성공?
진여,
법계ㆍ법성ㆍ불허망성ㆍ불변이성ㆍ평등성ㆍ이생성ㆍ법정ㆍ법주ㆍ실제ㆍ허공계ㆍ부사의계?
4념주,
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등각지ㆍ8성도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4정려?
4무량?
4무색정?
8해탈?
8승처?
9차제정?
10변처?
공해탈문,
무상ㆍ무원의 해탈문?
5안?
6신통?
삼마지문?
다라니문?
부처님의 10력,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ㆍ대비ㆍ대희ㆍ대사와 18불불공법?
일체지, 도상지ㆍ일체상지?”
)
를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이 보살마하살은
A 를 행하지 않으며,
A' 도 행하지 않느니라.
● 행하지 않는 사정 -불가득-무능작-무능괴-무소종래-무소거처-무소주-무방무역-무수무량-무왕무래-무능증-불가이색증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선현아,
이 보살마하살이 따르고 향하고 들어가는 일체지지는
능히 짓는 이가 없고
능히 깨뜨리는 이가 없으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고 머무는 데도 없으며
방향도 없고 지역도 없고
수효도 없고 분량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이와 같은 일체지지도
이미 수효와 분량과 가는 것과 오는 것을 얻을 수 없는지라
역시 증득할 이도 없느니라.
선현아,
이와 같은 일체지지는
A 로써 증득할 수 없으며,
A' 로써도 증득할 수 없느니라.
所以者何?善現!是菩薩摩訶薩 所 隨順趣向臨入一切智智,
소이자하?선현!시보살마하살 소 수순취향임입일체지지,
無能作,無能壞,無所從來,無所去處,亦無所住,無方無域,無數無量,無往無來。
무능작,무능괴,무소종래,무소거처,역무소주,무방무역,무수무량,무왕무래。
善現!如是一切智智,旣無數量、往來可得,亦無能證。
선현!여시일체지지,기무수량、왕래가득,역무능증。
善現!如是一切智智,不可以色證,不可以受、想、行識證。
선현!여시일체지지,불가이색증,불가이수、상、행식증。
● 색 등이 곧 일체지지임과 그 사유-하나의 진여-둘이 없음-차별없음
왜냐하면
선현아,
A 이 곧 일체지지며,
A'이 곧 일체지지이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선현아,
A 의 진여(眞如)와 일체지지의 진여와 온갖 법의 진여는
모두가 한[一] 진여이어서
둘이 없고
차별이 없기 때문이며,
A' ~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47.진여품(眞如品) ①
● 욕계 색계 천자의 공양
그때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天子)들이
저마다 하늘에 있는 다게라향(多揭羅香)ㆍ다마라향(多摩羅香)ㆍ전단향(栴檀香)의 가루와
다시 하늘 위의 온발라화(嗢鉢羅花)ㆍ
발특마화(鉢特摩花)ㆍ구모다화(拘某陀花)ㆍ분다리화(奔陀利花)ㆍ
미묘향화(美妙香花)ㆍ미묘음화(美妙音花)ㆍ대미묘음화(大美妙音花)를 가지고
멀리서
부처님 위에 뿌리고는
부처님께로 와서
두 발에 머리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깊어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고 생각할 수도 없으며
생각하는 경지를 뛰어나
미묘하고
깊고 고요하여서
총명하고
지혜 있는 이만이 능히 알 바요,
모든 세간에서는
이것이 곧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 함을 믿고 받들 수 없겠습니다.
● 색이 곧 일체지지요+일체지지가 곧 색임과 그 사유- 하나의 진여-둘이 없음-차별없음-다함없음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에서
모두가 말씀하시기를,
‘A이 곧 일체지지요 일체지지가 곧 A이며,
A'이 곧 일체지지요 일체지지가 곧 A'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A의 진여와
~~
A'의 진여와 일체지지의 진여와
온갖 법의 진여도
모두가 한 진여이어서
둘이 없고
차별이 없고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
도상지ㆍ일체상지의 진여와 일체지지의 진여와
온갖 법의 진여는
모두가 한 진여이어서
둘이 없고
차별이 없고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진여와 일체지지의 진여와
온갖 법의 진여는
모두가 한 진여이어서
둘이 없고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반야바라밀다경』 318권(K0001 v3, p.140c01-p.148c01)
>>>
대반야바라밀다경 제318권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ANADA - Mourir Les Sires.lrc
Lab value 불기2563/04/30/화/14:17
● 물질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반야바라밀다경』 취지품에서
색을 행하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이 행해진다.
그런데 우선 일반적으로 색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것부터 명료하지 않다.
지금 철수가 책을 보고 있다.
또는 그림을 보고 있다.
이것은 색을 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색을 행하지 않는 것인가?
나머지 부분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는 것을 색,수,상,행,식 등을 행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인가?
그리고 부처님은 이에 대해
보살마하살은 색을 행하지 않는다라고 제시한다.
이 경우 또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생사현실에 임하기에
색을 행하지 않는다고 답하시는 것인가.
이 두 내용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
♥ 잡담 ♥
경률논 코너를 만들고 나서 처음 작업하다가
오랜만에 방문했다.
현재 일일단상코너 부분을 정리하는데에만해도
너무 시간이 바빠서 자주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앞과 같은 논의 주제를 먼저 걸어 놓고
또 잠시 일일단상 코너의 조각글을 정리하고 돌아오기로 한다.
요즘 조각글들의 정리체계를 많이 바꿨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체계에 따라 수정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표현도 간결하게 바꾸고,
살피는 경전이나 조각글에서 키워드를 발췌헤 정리하고,
멀티 풍광 음악 자료도 따로 페이지를 만들어 분리시킨 다음 링크를 걸고 하는 작업들이다.
Lab value 불기2563/05/02/목/13:31
경전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다 소모하고,
정작 내용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을 많이 살폈다고 보고 페이지를 닫았었다.
그런데 오늘 600 권 가운데 어느 부분을 살필 것인가
랜덤 추출을 하니 묘하게 318 권이 다시 뽑혔다.
그래서 경전만 요약 정리하고 해당 내용을 살피지 않고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보고
다시 내용을 잘 살피기로 한다.
>>>
물질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문제를 처음 제시했다.
수행자도 책을 볼 때 책을 보고
자동차를 탈 때 자동차를 타고 오가고
차를 마실 때 차를 마시고
이렇게 생활한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생활 중에 여러 활동 가운데
어떤 것을 색을 행한다고 하는가.
이것이 처음 문제된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것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금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과 같은 활동에서도
수행자가 행하는 내용과
일반인의 경우는 무언가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가.
이것이 처음 문제다.
두번째 살필 부분은 다음이다.
색이 곧 일체지지요+일체지지가 곧 색이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게 되는 사유로서
이것이 하나의 진여고
둘이 없고
차별이 없고
다함이 없다고 제시한다.
이제 색을 좁은 의미로
도화지에 색칠할 때 사용하는
노란색 파란색이라고 생각해보자.
이제 파란색 색연필을 들어서
바탕에 칠하거나 글씨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엉터리
이런 경우 이것이 곧 일체지지인가.
이렇게 물으면 역시 경전에 의하면
그렇다라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일체지지를 얻어야 부처님이 되는데
이미 저 글자부터가 부처님이니
이것을 좋아해야 하는가.
이것은 현실 문제다.
수행자도 알고보면 자신의 눈으로 보던
다른 이가 보던
하나의 색이고
또 수상행식이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상태로 곧 일체지지다.
그러니 이제 더 수행할 필요가 없이
부처님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에 임하면
바로 여러가지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이 문제를
축사에서 지내는 돼지나 오리, 소 닭을 놓고
보면 문제가 더 심하다.
그런데 일체지지다.
사정이 이렇다면
수행자가 현실에서 왜 굳이 수행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또 답을 구해야 한다.
이번에도 일단 문제를 제시하고 잠시 쉬기로 한다.
요즘 학생들이 대하는 각종 시험문제를 살피면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조금 잘 풀면
진학이나 취직 등등 여러가지 소원도 성취되고
다른 일도 잘 된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그 반대가 된다.
생사에 묶여서 고통받는 현실에서도
위 문제를 잘 풀면
곧바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잘 풀지 못하면 그 반대가 된다.
극단적으로 축사에서 오물과 함께 무더위에도 갇혀 지내고
심한 추위에도 역시 갇혀 지내고
답답하게 지내다가 도살을 당해야 하는 상태라면
일체지지라고 해서 무엇이 좋다고 하겠는가.
그러면 일체지지는 별 필요없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가 수행자의 현실에서 심각하게 문제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들 문제를 놓고 답을 잘 해야 하는 이유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LUC LAHAYE - Femme Que J'Aime.lrci
쉬면서 노래를 듣다보니 퍽 마음이 든다.
이제 같은 주제는 그만 쓰고 싶은데 이 노래가 그런 메세지를 전하는 듯하다.
앞에서 문제를 제시했는데
현실 상황을 이렇게 가정해보자.
그림이 필요할 듯하다.
지옥에 들어가서 힘든 돌을 굴러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란 신화가 있는데
매번 다시 굴러 떨어져서 힘든 고통을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나타내는 그림을 구해보기로 하자.
Sisyphus 가 어떤 바위를 어떤 곳에서 굴러 올리다가 떨어지고는 했는지는
어차피 신화라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여하튼 어느 정도는 굴려 올릴 수 있어서 그렇게 굴려 올렸는데
그러나 떨어졌다면 그 상태가 어떤 부분이었기에 그렇게 굴러 떨어지는 것인가.
위 그래프를 놓고 상상을 해보게 된다.
아마 비슷해보이지만, 이전 상태와 달리 대단히 힘든 부분이었기에
그렇게 넘지 못하고 굴려 떨어지게 된다고 본다.
그런데 왜 다시 또 올리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Sisyphus 이름에는 S 자가 세개가 보이는데 이런 여러 S 곡선상에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아주 조금이 부족해서 그렇게 굴러 떨어진 것이라고 여기게 하는 현상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다시 또 도전해보게 된다.
그런데 막상 그 지점이 예상과 달리 상당히 넘기 힘든 사정이 또 있어서
아주 아깝게 또 굴러 떨어진다.
이렇게 가정해야 쉬지 않고 그것을 다시 또 올리게 된다고 본다.
만일 너무 힘이 들고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처음부터 포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반대로 너무 쉬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무한히 고통을 반복해 겪는 Sisyphus 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현실 상황에 놓고 적용해보자.
만일 각 주체가 대하는 현실 상황이
부처님이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 그대로
생사현실에서 문제삼을 만한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고
일체 차별이 없다면
부처님이 처음부터 이런 내용을 제시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반대로 일반인이 분별하여 생각하듯
현실 내용이 완전히 참된 진짜 내용이고 실다운 내용이라면
또 부처님 말씀은 전혀 옳지 않은 내용이어서
그런 내용을 처음부터 제시해도 안 되고
제시한다해도 그런 내용이 성취되지는 않는
무의미한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 상황은 이 두 경우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을 이처럼 하실 필요가 있고
또 그런 설법을 잘 이해하고
현실에서 열심히 수행하면
비록 쉽지는 않더라도 생사고통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수행을 한다해도 생사 묶임은 끝내 벗어날 수 없다거나,
반대로 처음부터 그처럼 벗어날 생사고통이 아예 처음부터 얻을 수 없다면
이런 문제를 살필 필요가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이제 매 순간 대하게 되는 현실을 놓고 보자.
이 현실을 잘 살펴야
처음 색을 행한다. 수상행식을 행한다.
이런 표현이 가리키는 의미도 이해하고
또 반대로 수행자는 이런 생사현실에서 그처럼 색수상행식을 행하지 않는다.
또는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이해하고
색은 곧 일체지지다 이런 포현도 쉽게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현실이 어떠한가.
눈을 뜨면 세상 모습이 보이고
또 그 한구석에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보인다.
그처럼 매순간 생생하게 그런 모습이 얻어진다.
그래서 앞에서 색연필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런 내용도 보이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 모습도 보이고
그리고 그런 것을 타고 오가기도 한다고 여기게 된다.
이 현실 내용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현실 내용이 무언가.
여기에 앞에 먼저 든 극단적인 두 입장이 다 해당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런 내용 자체가 전혀 얻어지지 않는다면 모르는데
일단 얻어진다.
그래서 일단 문제가 된다. 이런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은
이 각 부분을 놓고
저 부분은 외부 세상
이 부분은 자신의 손, 발.
이렇게 이해하고 대하고
또 일정부분은 자동차라고 여기고 대하고
또 어느 상황은 여기에 있다가 다른 곳을 오간다고 여기고 대한다.
이 부분이다.
만일 일반인이 생각하듯 정말 그런 내용이 거기에 있다면
더 나아가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정말 얻어지고 있다면
이런 내용은 그만큼 상당히 실답다고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들 내용은 꿈과는 달리
참된 진짜의 내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이란 앞에서 제시한 극단적인
두 내용 사이에 있는 상태다.
그래서 망집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앞과 같이 여기면서 생사고통을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매순간 받아나가거나
그렇게 받게 될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라는 의미다.
이 현실을 놓고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런 현실이 문제되는 하나의 사례를 제시하는 한편,
이번에는 영화화면, 빛과 소리의 관계를 통해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한편,
그러나 이런 생사현실에서 또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수행덕목을 성취해가야 한다는 사정을
이론과 현실면에서 성취하기 힘든 각 부분을 나열해
살피기로 한다.
이제 누구나 대하는 현실에서
상당히 심한 사례를 하나 놓고 이 문제를 살펴보자.
길을 가는데 갑자기 어떤 이가 뒤에서 다가와서
자신을 망치로 가격했다.
그래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신체 일부가 장애가 생겼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보니 상대가 어떤 깊은 원한을 가진 이와
자신을 착각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가 거의 무일푼 상태다.
그런데 자신도 현재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병원 치료비가 1억원 정도가 나왔는데
이것을 해결할 방안이 잘 안 보인다.
한마디로 정신적으로 대단히 억울하고 불쾌하고
장차 일은 대단히 걱정되고 두려운 한편
신체 각 부분에는 극심한 통증과
기능장애를 겪어서 고통을 받는 상태를 하나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경전에서 문제삼는 현실의 한 부분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 주체가 해결할 방안이 없는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어서
이 해결이 문제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런 내용을 여기에서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심한 사례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것이 어떻게 된 내용인가를 먼저 잘 생각해야 한다.
영화를 놓고 생각해보자.
요즘은 거의 컴퓨터 cg 처리를 해서
과거에는 구현이 불가능한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공룡도 옆에서 뛰어 다니고
세계 각곳이 지진이 나서 도시나 건물들이 다 붕괴되는 장면도
마치 진짜 현실처럼 보여준다.
최근에 한국영화 신과 ~ 라는 영화도
대단히 섬세한 cg 화면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데
일단 영화만 보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들고 있을 수 없다고 보는 내용도
정말 현실처럼 보이게 화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놓고 생각해보자.
일단 기본적으로 누구나 이 영화하면은 현실이 아님을 안다.
그 화면에 나오는 내용은 만들어 낸 것이고 가짜다.
그런데 그 화면이 너무 현실처럼 보이게 만들어졌다.
이 경우가 문제다.
그런 화면이 아예 없다면
처음부터 그런 화면을 놓고 진짜이고 실답다고 여기면서
그에 따라 반응하면서 무언가를 하면 안 된다거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어떻게 잘 수행해야 한다는 등의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혀 필요없었을 것이다.
또 한편, 그런 화면이 있어도
현실에서 영화를 보는 대부분 사람처럼
그 화면이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또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그 부분이 문제다.
영화가 너무 현실처럼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 이 대부분
일정한 부분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고
영화보던 이들 가운데 1/10 은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3/10 은 영화를 보고 나서 심각한 정신적 육제적 장애를 겪고
병상에서 장기간 고통을 받고 지낸다면
문제다.
이런 경우는 그 영화가 아무리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져도
그것은 현실이 아니니 그렇게 반응하지 말라고
대단히 강조해서 반복해 그런 증상을 제거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비유에서 든 내용이
각 주체가 바로 무량겁에 걸쳐서
매 순간 반복해 겪는 생사현실의 사정과 같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그런 현실을 생생하게 매순간 대하면서
저 부분은 세상이고
이 부분은 자신이고
이것은 오고가는 행위고
이런 식으로 다양한 형태로 분별하면서 대할 때
이런 내용들이 그렇게 얻어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본 바탕과 다른 영역에서는 얻어지지 않는 내용들로서
비유하면 영화화면과 같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영화화면은 얻어지지만, 그러나 그것은 화면 안의 내용일 뿐
영화관 밖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귀코입몸으로 얻는 감각현실을 얻고
이에 대해 매 순간 명료하게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분별을 행하고 대하지만,
그 영역에서 그런 재료가 그렇게 있지만,
그 영역 밖에서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이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는 의미다.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고 할 때
이렇게 실답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대하는 내용 자체가
전혀 얻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처음 제시한 극단적인 한 경우에 해당한다 .
또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런 생사현실의 문제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거나,
또 그런 바탕에서 이러이러한 수행을 통해 그 상황을 벗어나와야 한다거나,
등등의 내용 자체를 제시할 필요도 없고
그 근거도 없다고 해야 한다.
아예 아무것도 문제삼을 내용이 얻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무엇을 행하고 벗어나야 한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생사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문제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매순간 생생하게 얻고
각 부분을 명료하게 분별하여 대할 때
그런 내용은 다른 영역과 본 바탕이 되는 영역들에서 얻어지지 않는 내용이고
그래서 비록 그처럼 생생하고 명료하더라도
영화화면처럼 또는 꿈처럼
실답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을 실답다고 여기면서
반응하고 업을 행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왜 얻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것은 문제삼는 내용 하나하나를 놓고 잘 살피면 된다.
그래서 빛과 소리를 다시 살펴야 한다.
이는 경전의 다음 내용과 관련된다.
...
능히 짓는 이가 없고
능히 깨뜨리는 이가 없으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고 머무는 데도 없으며
방향도 없고 지역도 없고
수효도 없고 분량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이와 같은 일체지지도
이미 수효와 분량과 가는 것과 오는 것을 얻을 수 없는지라
역시 증득할 이도 없느니라.
...
이렇게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철수와 영희도 있고
철수와 영희는 열심히 오고가고
각각의 크기와 길이 전후 이런 것이 다 있다고 여기고 대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얻을 수 없고 없다고 하는가.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영화화면의 비유를 잘 이해하거나
침대에서 철수와 영희가 각기 다른 꿈을 꿀 때
그 내용이 침대의 현실을 놓고 대하면 무엇이라고 하게 되는가를
잘 이해하면 이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각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또 일정한 영역에서 각기 그 상황에 따라 일정한 내용을 얻는 관계를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로
비유해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을 놓고 경전에서 제시한 내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는 같은 내용을 두번 설명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설명을 하기는 하지만,
이는 순서를 조금 바꿔서
먼저 결론적으로 경전에서 제시되는 이런 내용을
최종적으로 이해하여 받아들인다고 할 때
그 내용을 가지고
다시 처음에 든 사례의 상황으로 들어가서
그런 극심하게 고통스럽고 억울함을 받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그것이 해결된다고 하는 것인가.
이것을 이어서 바로 살피기로 하자.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ulien Doré - Paris-Seychelles.lrc
앞에서 시지프스를 놓고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다시 그래프를 가져와 보자.
현실에 고통이나 억울함 두려움 불쾌 등등으로 상징되는 그래프 선이
아예 없다면
처음부터 이것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대할 재료 자체로서 그런 내용이
매순간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어지고 있다.
이것이 생사현실이다.
여기서 일단 경전 내용을 결론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바위로 상징되는 구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힘든 경우를
일단 나열해보기로 하자.
1 - 처음부터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대하는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할 뿐 아니라,
그것은 대단히 실다운 것으로서
꿈이나 영화 환영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각 순간 어떤 고통을 겪는다면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한 가운데
실답게 받아 나가는 상태가 있다.
2 - 그런데 현실내용은
자신이 평소 보던 만화나 영화 또는 꿈처럼 또는 게임화면처럼
비록 매 순간 생생하고 명료해서 진짜처럼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실답지 않다 진짜가 아니다.
이것을 일단 이론적으로는 잘 이해하고 대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그렇다고는 보고
또 그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들고 좋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러나 과거에 평소 고통과 불쾌를 느낄만한 그런 상황이 되면
그 이론이 그 상황에 적용이 잘 되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는 고통을 또 전처럼 받게 된다.
이는 예를 들어 만화나 영화가 사실이 아님은 이해하지만,
누군가 만화나 영화를 통해 자신을 빗대어 욕을 한다.
이런 상황처럼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내용을 대하면
대단히 불쾌하고 고통을 느끼게 되는 우와 비슷하다.
결국 못 참게 된다.
3 -앞과 같다.
그런데 그런 고통을 어느 부분에서 못 견디는가
이 부분에서 조금 경우를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좋음을 받는 경우는 굳이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론상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적용하기 힘든 경우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답지 않지만 아무 고통을 겪지 않고
좋다고 대하게 되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다.
생사현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아무리 실답지 않다고 해도
그 생사현실을 통해
그 주체가 아무런 고통을 전혀 받지 않는다면
그것을 실답지 않다고 해서 문제삼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생사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부분이 문제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앞에서 사례를 들었다.
이것이 그냥 글자고 이야기면 좋은데
어느날 자신에게 직접 발생한 일이다.
그 전날까지 있었던 재산은 다 불타고 없어졌다.
그런데 빚이 1억이 새로 생겨나고
자신은 온 몬에서 통증을 느끼고
기능 장애까지 갖게 되었다.
이런 경우가 없어야 하는데
생사현실 안에 있다.
그러니 문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앞의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비록 지금 그 내용을 직접 대하지 않지만,
무량겁에 걸쳐 장구하게 겪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벗어나려면
일단 이론을 이해해야 하고
그 이론대로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수행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계의 수행이 기본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알고보면 상당히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또 그것을 하지 않으면
대단히 극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는다.
4- 이 두 고통에서
첫 부분부터 극복하지 못하고
그래서 수행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5 그런데 다시 경우를 나누면
그런 수행은 기본적으로 잘 행하지만,
그러나 극단적으로 직접 당장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이 되면
역시 이를 이론과 같이
단지 화면이나 꿈과 같은 내용이어서
그것은 진짜처럼 여겨지지만 전혀 진짜가 아니고
실답지 않다고 잘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여러 상태를 나눌 수 있다.
이들은 결국 앞의 시지프스가 지옥에 있다가
탈출하기 위해 돌을 들어 올리는 노력을 하는데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중간에 실패하는 경우들의 각 사례에 해당한다.
그래도 각 단계는 정도 차이가 있다.
시지프스를 놓고 다시 비유로 설명하면
시지프스가 돌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과
그래도 돌을 들고 가는 것 가운데
가만히 있는 것이 무방하고 좋다면
무엇하러 돌을 들고 올라가겠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처음에 든 상황은
가장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때
정도에 따라서 결국 실패하고
다시 물러난다면
그 부분은 또 문제로 남게 된다.
그래서 수행을 잘 성취하고 벗어나려면
결국 앞의 문제상황을 모두 잘 해결하고 벗어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은
처음에 이론적인 측면에서 조차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무슨 내용인가 자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내용을 이론상 이해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이해를 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다시 그런 상태를 벗어나기위해 필요한 수행을 잘 하는 것도
또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수행을 해도
당장 자신이 직접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황이 되면
또 이를 잘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한 사례가 금강경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유도 없이 왕에게 붙잡혀
눈, 귀, 코를 다 잘리우고
사지를 절단하는 고문을 받는 상태에서
이들 내용에 대해 상을 일으키지 않고
앞에 제시된 것과 같이 그 사정을 잘 이해해서
평안히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수준이 다른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론을 이해하는 것과
그 이론처럼 각 순간에 잘 성취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그리고 이렇게 수행을 해야 하는 사정도
처음 본 사정과 마찬가지다.
생사현실이 그런 상태로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측면을 붙잡고 기준으로 삼아
현실을 대하는가에 따라서 입장이 달라진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고 있고
또 앞으로 받아나갈 상황에 처해 있으면
가장 먼저 이론적으로
앞에 든 극단적 사례처럼 극심한
생사고통을 당장 직접 겪는 생사현실을 놓고
그 현실에 그런 생사나 생멸 고통을 일체 얻을 수 없고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Sardou - Parce Que C'etait Lui, Parce Que C'etait Moi.lrc
그래서 다시 처음 문제로 되돌아가서
이것을 좀 더 살펴야 한다.
앞에 그 문제를 제시했다.
경전에서 다음처럼 제시한다.
...
능히 짓는 이가 없고
능히 깨뜨리는 이가 없으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고 머무는 데도 없으며
방향도 없고 지역도 없고
수효도 없고 분량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이와 같은 일체지지도
이미 수효와 분량과 가는 것과 오는 것을 얻을 수 없는지라
역시 증득할 이도 없느니라.
...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 입장은
같은 현실을 놓고 거기에
철수와 영희도 있고
철수와 영희는 열심히 오고가고
각각의 크기와 길이 전후 이런 것이 다 있다고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왜 이 상황을 놓고
여기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없다고 하는가.
이렇게 의문을 갖고 대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론적으로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왜 그런가.
여기에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비유를 놓고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한다.
각 영역에서 내용을 얻는 관계가 이처럼 서로 엉뚱하다.
그런데 한 영역에서 얻는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한다.
이럴 때 그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런 기초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상황을 놓고 빛과 소리의 관계부터 이해해야 한다.
간단한 실험이다.
손을 눈으로 보는 가운데
그 손을 마주 쳐서 손뼉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 실험을 반복해보면
다음처럼 이 상황을 착각하게 된다.
자신이 눈으로 보는 두 손이 마주쳐서
그 때 소리를 낸다.
이렇게 오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다.
이 상황에서 눈을 감고 그 손을 보지 않아도 소리는 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넣거나 빼도 a 가 얻어진다면
그것은 a 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아니다.
이렇게 간단히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눈을 뜨고 이 상황을 보면
분명히 자신의 눈으로 손이라고 보는 부분을 마주 댈 때
소리가 난다.
그래서 위 관계를 위와 같이 이해하게 된다.
마치 천둥소리는 번개 때문에 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과 성격이 같다.
이것이 빛과 소리의 영역 문제다.
여기서 다음 문제를 살펴보자.
눈으로 보는 영역에서
노란 색으로 알록달록한 꽃이 있고
파란 색으로 여러 그림이 있다.
기타 등등 다양한데
이것을 자신이 귀로 듣는 소리 영역에 넣어서
그 값을 얻어내려고 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눈으로 보는 영역에서 얻는 각 차별적인 내용이 있다고 여길 때
이 각각의 차별이 소리 영역에서도 그에 대응해
무언가 차별적인 내용으로 변환된다면
대응시킬 만하다고 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단 소리를 듣는 영역에서는
파란 색이나 노란 색이나 하나같이 다 그런 내용을
아예 얻을 수 없다.
이 부분이다.
그런데 이 각 내용이 한 상황에서
양 측면에서 얻는 내용을 놓고 관계를 살피는 문제다.
손으로 손뼉을 치는 그 상황을 놓고
눈으로 보면 왼 손과 오른 손이 마주치는 내용인데
귀로 듣는 영역에서는 짝짝 이런 내용이 된다.
그래서 짝짝 이런 소리 영역에서
왼 손은 어떤 것이고 오른 손은 어떤 것인가
이런 기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눈으로 보는 내용을 기준으로 붙잡고
이 상황을 이해하면
그렇게 눈으로 본 내용을 바탕으로 분별한 그 일체 내용이
그렇게 다른 영역에도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만일 이 상황을 귀로 듣는 소리 영역에서 내용을
기준으로 붙잡고 분별하면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는데
공연히 눈에서 문제삼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위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서로 대등한 자격을 갖는
각 감각현실을 놓고 살핀 것이다.
그래도 시각이 차지하는 지위가 우월하기에
대부분 시각에서 파악한 내용이 원인이고
그에 따라 청각 영역의 내용이 얻어진 것처럼 이해한다.
즉 눈으로 보는 손 때문에 소리가 나타난다고 말하면
대부분 그럴 듯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반대로 손뼉 소리 때문에
그런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
이렇게 반대로 말하면 대단히 이상한 설명으로 여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두 내용의 자격이나 지위가 서로 엇비슷하다.
조금 더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영희인가 영숙인가를 구분할 때
손 부분을 만지면서 촉감으로만 구분한다거나
아니면 소리로만 구분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촉감이나 소리가 갖는 지위는 서로 엇비슷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시각은 이런 감각에 비해 훨씬 정보가 많고
우월하기에 현실에서는 시각을 우위에 두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만냥이면 눈은 구천냥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그렇게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각정보와 청각정보를 예로 들어 설명한 내용은
각 영역에서 한 주체가 얻거나 문제삼는 각 내용과 그 관계가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과 -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영역이
존재 판단에서 주로 문제되는데
이들 부분이 역시 사정이 그렇다.
그래서 결국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비유로 든 관계가
이들 영역에 해당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본 바탕이 되는 영역에 비유해서 '라면'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다른 영역에서는 이와 엉뚱한 '바위'를 얻고
또 다른 영역에서 '사과'를 얻는 이런 관계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그런 내용을 한 영역에서 그렇게 일으켜 얻기에
라면이 있는 곳에 그런 바위나 사람 등이 있으리라고 여기고
자꾸 고집하고 대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어서 영희와 영숙이가 같이 잠을 잤다.
영희는 바다 꿈을 꾸고
영숙이는 황금 꿈을 꾸었다.
그리고 깨서 서로 확인해보니
침대가 있는 방에는 바다도 얻을 수 없고
황금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바다나 황금은
침대가 있는 방에서 도대체 무엇을 놓고 그런 내용을 얻었는가.
이런 문제가 제출된다고 하자.
이 때 각기 꾼 바다나 황금을
침대의 무엇과 어떻게 대응시켜 주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다.
또 눈으로 본 노란색과 파란 색이 있다면
'짝짝' 하는 손뼉 소리 가운데 각 부분에
어떻게 대응을 시켜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색들이 과연 손뼉 소리 안에 있다고 해야 하는가
없다고 해야 하는가.
얻어지기라도 하는가. 이런 것도 같은 문제다.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 가눈데
관념영역에서는 온갖 분별을 명료하게 일으켜 행하는데
이것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현실에
'행위자'도 있고
'오고 감'도 있고
'생멸'도 있고
'전후'도 있고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분별하는데
정작 그런 분별을 일으킨 감각현실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현실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감각현실이란 재료는 얻지만,
사정이 그렇다.
또 그런 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실재 영역에는 전혀 내용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은 적어도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여기서 자신의 분별을 기준으로 잡거나
감각현실을 기준으로 잡으면
또 감각현실 가운데서도
시각을 기준으로 잡는가
청각을 기준으로 잡는가
후각, 미각 촉각을 기준으로 잡는가에 따라
매번 달리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그 각각의 관계나 사정이 그렇다.
여기서 다음만 제시하고 마치기로 한다.
사정이 이렇지만,
그러나 현실 생활을 하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이
분명 자신이고
그리고 이 부분이 손을 뻗쳐
사과를 잡고 눈으로 보고
사과를 두드려 그 소리를 듣고
또 코를 대서 사과 내음을 맡고
또 입으로 사과의 맛을 보고
또 손으로 만져 사과의 촉감을 얻고
다시 이것은 사과다라고 명료하게 분별하고
그런 가운데 이런 사과를
옆에 있는 영희에게 건네면
영희도 자신이 행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얻고
사과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하는 한 부분은 자신이고
또 상대쪽 부분은 영희다.
영희도 반대 쪽에서 그렇게 여기고
자신과 대화도 하고 교류한다.
이것이 현실 경험이다.
이 경험을 기준으로 잡고 이 상황을 대하면
또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
앞에서 그런 내용이 하나같이 다 서로 간에 엉뚱한 내용이고
그렇게 분별한 내용은
그 분벌 영역을 떠나서
그런 내용을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이나
감각현실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마치 침대에 누어서 꾼 영희의 바다꿈이나 영숙이의 황금꿈과
그 관계가 마찬가지다.
이 사정을 잘 관하고 그런 망상분별을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지만,
그러나 이 현실 경험은
평소에 갖던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분별이
오히려 더 그럴 듯하다. 이렇게 여기게 만든다.
그래서 그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경률논 코너에서 살피는 유가사지론과 관련된 부분이다.
그래서 이것을 모두 이어서 하나하나 잘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단 본 경전에서는
다음 내용을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
능히 짓는 이가 없고
능히 깨뜨리는 이가 없으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고 머무는 데도 없으며
방향도 없고 지역도 없고
수효도 없고 분량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
...
이 부분이다.
그리고
생멸이나 생사고통도 얻을 수 없다.
이런 내용도 추가할 수 있다.
현실에서 각 주체가 분별하는 온갖 내용이 다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생멸한다는 표현으로 가리키는 내용은
감각현실이 자신의 마음에 얻어지고 나타나고 소멸하는 그런 상황을
놓고 가리키는 것이다.
자신이 눈을 감았을때는 보지 못했는데
눈을 뜨니 어떤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그런 모습이 생겨난 것이 아니고 도대체 무언가.
이렇게 의문을 갖기 쉽다.
그렇다. 그 상황에
그런 감각현실을 그런 재료로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그것이다. 그것뿐이다.
그래서 그런 재료에
분별 영역에서 일으킨 그런 분별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반복해서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예로 든 손뼉소리와 손 모습도 이 관계와 마찬가지고
누어서 잔 침대와 잠자면서 꾼 바다꿈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바다꿈을 꾸었다고 바다가 침대에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
또 그런 상황에서 소리를 들었다고 소리가 눈으로 보는 손모습에 들어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
또 반대로 손모습이 소리에 들어 있다고 여겨도 안 된다.
이런 내용이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es Forbans - Chante.lrc
그리고 그 관계나 그런 내용은
실재 본 바탕을 함께 고려하면 또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와 같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재료나 그런 재료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각 주체가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켜서
생사고통을 겪고 있다.
여기에 수행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그런 사정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런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제시하지만,
또 한편, 그런 사정에서 스스로 벗어나오고
또 다른 중생도 벗어나오게 하려면
앞에서 축약해 A나 A` 로 표시한 각 내용을
그처럼 방편으로 시설해
생사현실을 또 잘 파악하고
또 그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할 수 있게 하는 내용들을
그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통해 원만히 성취해내는 수행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반복되는 만큼
하나하나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A A` =
(
물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눈의 영역,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
빛깔의 영역,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영역?
눈의 경계,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경계?
빛깔의 경계,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경계?
안식의 경계,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의 경계?
눈의 접촉,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
지계,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
무명, 지어감ㆍ의식ㆍ이름과 물질ㆍ여섯 감관ㆍ접촉ㆍ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과 죽음?
---------
보시바라밀다,
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
내공,
외공ㆍ내외공ㆍ공공ㆍ대공ㆍ승의공ㆍ유위공ㆍ무위공ㆍ필경공ㆍ
무제공ㆍ산공ㆍ무변이공ㆍ본성공ㆍ자상공ㆍ공상공ㆍ
일체법공ㆍ불가득공ㆍ무성공ㆍ자성공ㆍ무성자성공?
진여,
법계ㆍ법성ㆍ불허망성ㆍ불변이성ㆍ평등성ㆍ이생성ㆍ법정ㆍ법주ㆍ실제ㆍ허공계ㆍ부사의계?
4념주,
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등각지ㆍ8성도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4정려?
4무량?
4무색정?
8해탈?
8승처?
9차제정?
10변처?
공해탈문,
무상ㆍ무원의 해탈문?
5안?
6신통?
삼마지문?
다라니문?
부처님의 10력,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ㆍ대비ㆍ대희ㆍ대사와 18불불공법?
일체지, 도상지ㆍ일체상지?”
)
그런데 이들 내용을 또 한편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측면을
잘 파악하면서 이를 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손을 두드리면서 손뼉소리를 들을 때
이들 내용이 하나같이 다른 영역에서는 얻어지지 않는 실답지 않은 내용이어도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각 측면에서는
또 그렇게 여전히 생생하고
또 한편 이를 통해 분별영역에서 그런 내용으로 명료하게 분별해 대하는 것처럼
위에 제시한 내용도 그 사정이 그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의미로 제시하는 것이다.
즉 본 바탕이 되는 영역과 다른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형태로 그런 내용을 얻고
그에 대해 그렇게 그런 내용들을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생사현실 영역에서는 그런 생사현실을 파악하는 방편이고
또 그런 생사현실의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편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이들 각 내용은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을 기준으로 놓고 살피면
그렇게 문제삼는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사정이 그래서
여기서 그렇게 분별해 문제삼는 각 내용은
그런 본 바탕의 측면을 기준으로 잡을 때
이들을 서로 같다고 해야 할 지
다르다고 해야 할지 이런 판단 자체를 본래 떠나게 된다.
그것이 또 a 즉 b 또는
b 즉 a 이런 표현이 나타내는 내용이다.
이둘이 일정한 측면에서는 그렇게 얻어지고 또 그에 대해 그런 내용이라고 분별하고 구분하지만,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이들은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서로 따로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같고 다름을 모두 떠난다.
이런 사정을 위와 같은 표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노란 색과 파란색을 열심히 구분했지만,
소리 영역에서는 이 두 색은 무슨 관계인가를 살피는 .문제와 그 사정이 같다.
이렇게 기본 이론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혀 재료가 얻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매 순간 생생하게 얻어지는 생사현실에서는
그런 사정 때문에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행을 또 열심히 잘 성취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또 한편, 다른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복덕과 지혜 자량을 구족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첫 부분에서 문제삼는 문제들의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게 이해하고 임하면
색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임하면
그런 바탕에서
그 영역에 자신이 분별하는 그런 색수상행식
기타 다양한 수행덕목도 그러첨 있다고 여기고 행하는 것이므로
색을 행하는 것이고 나머지 것도 행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문제다. 그리고 생사고통도
그런 망상분별과 그에 바탕한 집착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것을 잘 제거해야 한다.
두번째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전에서 행위자 행위 행위대상 생멸 전후 등등 일체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들 내용이 모두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한 상황에서
갑이 을을 때린다고 가정해보자.
그 상황은 하나다.
그런데 갑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때린다고 여긴다.
그런데 을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맞는다고 여긴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상황은 하나인데 누구의 어떤 입장을 기준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마치 각기 다른 내용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앞에서 손과 손뼉소리로 비유한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고
침대와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의 비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소리를 기준으로 하면 소리는 있지만 손 모습이나 노란색 파란색은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눈을 기준으로 하면 그 반대라고 여기게 된다.
꿈을 기준으로 하면 그 상황에 바다나 황금이 그렇게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상황을 침대를 기준으로 하면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다시 처음 제시한 극단을 놓고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현실에서 본 바탕의 측면 등을 기준으로 잡고 대하면
분별 영역에서 문제삼는 그 내용 일체는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을 놓고 그 주체가 그렇게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준을 놓고
그런 것 일체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만,
또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재료가 되는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전혀 얻고 있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다.
이 부분이 곧 생사현실이고
또 수행덕목을 나열해 제시하고
수행자가 그 여러 수행덕목을 실천할 필요가 있는 사정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일반인이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고
또 그것을 대하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일반적 입장에서 이해하듯
그런 내용이 각기 다른 영역에서
즉 감각현실 영역이나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지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두 극단이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 문제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이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다는 측면을 잘 이해하고
그래서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집을 제거하고
그로 인해 겪는 생사고통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대하는 그 재료 자체를
전혀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겪는 생사고통 문제를 벗어나려면
일단 그 상황에서부터 행해야 할 수행덕목이 있다.
이를 통해 그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업의 장애를 우선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행이 계의 덕목에 해당하는 기본 수행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일단 3악도의 생사고통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도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면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생사현실에 임해서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비록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그런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수행덕목을 나열해
그것을 성취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하등 얻을 수 없음에도
그런 수많은 방편을 시설해 제시한다.
그런데 그 내용 일체가 처음 잡은 기준에서는
모두 다 얻을 수 없다는 측면과
그러나 또 일반적인 입장의 측면에서는
그런 것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대하게 되는
그 측면을 놓고
이 두 측면을 모두 잃지 않고 수행자는 다 잘 사용해야 한다.
즉, 처음 측면을 기준으로
번뇌- 업-- 생사고통을 다 제거하고
또 두번째 측면을 기준으로
생사현실에서 온갖 수행을 다 성취해서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하고
무량한 서원을 성취해서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이런 의미다.
◈Lab value 불기2563/04/30 |
♡송광암 ♥ 잡담 ♥니르바나행복론 |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2180#1181 |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_011 (0) | 2016.09.09 |
---|---|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_014 (0) | 2016.09.09 |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_444 (0) | 2016.09.03 |
금강경대강좌-청담스님_01 (0) | 2016.07.25 |
범어_반야심경 (0) | 2016.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