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 / P ɪ K ɑː S oʊ - 케이 æ를 이야 oʊ / ] [2] 스페인어 [paβlo pikaso] ; 1,881 25 10 월 - (8) 1973 년 4 월) 스페인어 화가 조각가이었다 판화 , 도공 , 스테이지 디자이너 , 시인, 극작가로 프랑스에서 성인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20 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간주 그는 공동 설립 알려져 입체파 운동의 발명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Pablo_Picasso Title : spouses-sisley-after-the-the-betrothed-by-auguste-renoir-1919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Gypsy_Lantern_ジプシー_ランタン_(551599191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se_Gypsy_Lantern_ジプシー_ランタン_(5515991915).jpg Description Shrub rose シュラブ Rose Gypsy Lantern ジプシー ランタン U.S.A. アメリカ Williams 2002 Flower Festival Commemorative Park 花フェスタ記念公園 Date 21 May 2009, 13:26 Source Rose Gypsy Lantern ジプシー ランタン Author T.Kiya from Japan Camera location 35° 25′ 11.05″ N, 137° 05′ 51.7″ E View this and other nearby images on: OpenStreetMap - Google Earth info Licensing[edit] w:en: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 alike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license. You are free: to share – to copy, distribute and transmit the work to remix – to adapt the work Under the following conditions: attribution ж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2/Rose_Gypsy_Lantern_ジプシー_ランタン_(5515991915).jpg ▩ mus3fl--Rose_Gypsy_Lantern_ジプシー_ランタン_(5515991915).jpg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ummer_Palace_at_Beijing_15
https://en.wikipedia.org/wiki/File:Summer_Palace_at_Beijing_15.jpg Description English: Paiyunmen Gate and octagon tower on the Longevity Hill, Summer Palace at Beijing, China Deutsch: Sommerpalast in Peking, China Português: Palácio do Verão em Pequim, China 中文: 颐和园排云门 Date February 2005 Source Own work Author Kallgan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그래서 결국 한 주체가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 일체는 마음 내용임을 일단 제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 주체가 현실내용을 얻을 때 그것은 곧 자신의 외부세계의 내용이고 또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또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또 자신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여기면서 그런 현실 내용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고 집착하며 대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분별판단이 거꾸로 뒤집힌 전도망상분별임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반적 입장과는 극과 극으로 다른데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대할 때 어떤 입장이 더 옳게 여겨지는가가 문제다.
그런데 간단히 이 두 내용만 지금까지 주로 제시했지만, 이 두 입장 사이에는 수많은 다른 입장들을 또 나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하나하나 다 나열해서 살피자면 상당히 논의가 복잡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일으키는 전도망상 분별 편집증의 증세는 다양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논서에서는 이들 내용을 일일히 나열해가면서 살피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는데 논서를 자세히 살피려면 각 표현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가면서 각 입장을 잘 살펴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또 논서의 입장은 그런 논서를 제시하는 논사의 입장과 다른 입장에서 논서를 제시하는 논사의 입장이 또 제각각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미리 이해하고 각 논서를 대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논서를 대할 때 논서의 내용이란 본래 그런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미리 잘 이해하고 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식20론의 경우도 이 논서의 저자로 제시되는 세친은 구사론의 저자이기도 한데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와 경량부를 섭렵한 가운데 저술한 논서이고 유식20론은 다시 유식학파의 입장에 있던 세친의 친형인 무착 논사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 입장을 전환해서 유식학파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런 바탕에서 유식학파의 내용을 압축해 제시하는 논서여서 세친이 저술한 논서 안에부터도 각 주제마다 그 입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이 가운데 어떤 논서를 먼저 대하고
그것을 절대적이라고 여기면서 다른 논서나 경전을 대하면
이로 인해 많은 혼동이나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논서는 본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한다는 취지에서
또는 논사가 개인적으로 갖는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서
내용을 제시하면서 논의를 해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경전을 이해하는데 보조적이고 참조적인 의미를 갖는 것임을
이해하는 가운데 각 내용을 살펴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일반인의 입장에서
논서에서 제시되는 내용을 대하는 가운데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일단 다음 내용들을 참고로 제시하게 된다.
우선
3계(界)는 오직 식(識)1)뿐이라고
안립한다.2)
라고 처음에 제시된 내용은
주석에 붙여진 내용처럼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을 안립하는 내용으로서
3계가 오직 식(識, viñapti)의 양상[상相]에 지나지 않으며 실존적인 대상[실경實境]이 없다고 주장함을 나타낸다. 라고 이해하게 된다.
위 그림을 놓고 여기서 문제삼는 내용들이 무슨 문제인가를 먼저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위 그림은 1 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눈을 뜰 때 얻는 내용을 위처럼 대강 그려 놓은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먼저 앞 말이 나타내는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이 그림으로 나타낸 내용이 1 이 눈을 감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눈을 뜨는 순간 새로 얻게 된 것으로 보는 내용 즉 1이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이 위 내용이라는 의미다.
이는 별 내용은 아닌 것 같지만,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 그리고 이를 얻는 본 바탕이 된다고 보는 실재와 관련해 이들 각 영역의 내용을 서로 접착시켜 혼동을 일으키고 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첫 부분에서 위 내용부터 주의깊게 잘 살펴 이들 각 영역의 내용을 잘 구분해 대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지금 유식20론이나 마음 현상을 살피는 각 경전에서는 마음에 대한 논의를 하고 내용을 제시하는데 마음이란 본래 어떤 주체가 직접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놓고 논의를 진행하다보면 사정이 위와 같기에 각 언어표현으로 시설해 가리키는 내용이 정작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혼동을 일으키면 이것을 시정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대하는 다른 상대도 다 상태가 마찬가지인 것이어서 서로 언어를 가지고 말을 하고 논의를 살핀다고 하지만, 정작 그 언어표현으로 각 주체가 어떤 의미로 그것을 대하고 이해하는지 서로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란 표현으로 과연 상대가 무엇을 가리키고 이해하는가가 혼동을 일으키고 문제될 때 상대가 이해하는 마음을 직접 꺼내 놓아 제출해 보시오 이렇게 요구해서 서로 내용을 확인할 길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과 관련된 논의가 복잡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고 보기에 처음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을 이렇게 시설해서 제시할 때 그런 마음이 있다 없다를 놓고 문제삼을 때 마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마음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어서 없다고 하는 것인가. 또 마음이 있다고 하는 입장은 그런 마음을 눈으로 볼 수도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어서 그런 마음이 있다고 제시하는가 라고 이해하면 또 혼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음을 시설하고 일체가 마음안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그 마음이 위와 같은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입장은 일단 아닌 것이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는 마음을 있다고 제시하는가에 대해서도 또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 마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고 하는 다른 입장과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그런 것인가도 나중에는 잘 살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각 마음을 시설해 제시한 다음 그런 시설에 대한 망집을 또 제거하기 위해 그렇게 시설한 내용을 또 제거해야 한다고 할 때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제거하지 않아야 하는가도 마찬가지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각 과정마다 언어로 표현한 각 시설이나 언설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놓고 혼동을 일으키고 이를 대하면 곤란하다는 점을 먼저 주의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을 일반적인 입장에서 대부분 어떤 오해를 하는가는 이미 앞에 제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삼는 내용 즉 일반인이 외부세계나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고 대하는 내용 즉 눈을 떠서 보는 현실내용(감각현실, 감각내용)이 과연 무엇인가부터 잘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런 논의에서 먼저 그런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놓고부터 이에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한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하는 활동을 반복하는 가운데 비록 그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고 보지만, 눈을 감으면 사라지고 눈을 뜨면 그 순간 나타나는 그 일체를 일단 붙잡아두려 한다고 마음을 갖는 가운데 그런 내용을 붙잡아 본다면 위 그림과 같이 대강 나타낼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논의과정에서 감각현실이라고 표현하는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일단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바로 이런 내용을 놓고 일반적 입장에서는 이를 외부세계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는 것이고 이것이 전도망상분별인 것이고 이들 내용은 마음내용이고 이런 내용에는 일반인이 이해하는 그런 외부대상은 없다라는 것을 일단 기본적으로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 때 이처럼 문제삼는 감각현실 가운데 눈을 떠서 얻는 감각현실을 놓고 이 감각현실을 살피자는 의미다.
그것은 감각현실에는 눈, 귀, 코, 입, 몸을 통해 얻는 시각정보나 청각정보, 후각정보, 미각정보, 촉각정보가 다 문제되지만, 이는 눈을 떠 얻게 되는 시각정보로서 감각현실을 하나 놓고 살피면 이 내용이 이들에 모두 공통된다고 보기에 이를 통해서 이들 문제를 함께 살핀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이 내용과 다음 내용을 먼저 구분하자는 의미다. 현실에서 눈을 떠 그런 감각현실을 얻은 상태에서는
다시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은 바위이고 어떤 부분은 꽃이고 어떤 부분은 영희나 철수고 어떤 부분은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처럼 생각하고 분별하는 관념분별 내용은 일단 여기서 논의하는 감각현실은 아니라는 것부터 잘 구분하자는 의미다.
그런 관념분별은 자신이 눈을 뜨거나 감거나 관계없이 어느 정도 계속 행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눈을 뜨는 그 순간에만 그런 내용을 얻고 눈을 감으면 그 순간에는 얻지 못하게 되는 앞에서 제시한 감각현실(감각내용)과는 서로 성격이 다르다고 일단 구분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논의 과정에서 어떤 시설을 하고 언어 표현을 하게 될 때는 그 언어표현이 일단 성격이 다른 이 두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을 가리킬 수 있고 이런 경우 그 표현이 이 가운데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가 역시 문제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언어표현만으로 각 표현이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결국 전체 맥락을 통해서 어떤 표현이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기 위한 표현이라는 것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보는데
표현 자체에는 그런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막상 각 표현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가가 문제가 되면 표현만으로는 그 가운데 어떤 내용을 가리킨다는 것을 판정하기 힘들고 각 입장마다 다른 내용을 제시하게 되어서 이로 인해 논의가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대단히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정작 그런 표현 자체는 이 가운데 어떤 내용을 가리킨다고 결정해주는 힘을 갖고 있지는 않기에 이런 문제는 어떤 사전을 찾어 이를 해결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므로 논의가 제기되는 전체 사정과 그 취지와 각 내용이 제시된 전후과정의 맥락을 통해서 각 표현의 의미를 잘 찾아내서 살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논의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눈을 떠서 얻게 되는 내용을 ' 처음에 감각현실'이라고 글자로 제시할 때 그 내용이 자신의 현실에서는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부터 각 주체가 먼저 잘 파악하고 논의에 임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위 그림을 살피는 것이 현재 논의되는 마음현상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혼동을 덜 수 있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조각글이 많이 밀려 있는 상태라 아주 간단하게만 내용을 적으려고 했는데 내용을 제시하려다 보니 너무 길어진다.
일단 간단하게 요점만 제시하고 상세한 내용은 쉬었다가 이어 나가기로 한다.
다음 내용을 먼저 살피자.
어떤 주체가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 내용은 마음내용이고 그 안에는 그 주체가 외부대상이라고 여기는 그런 내용은 없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고 할 때 이런 내용과 관련해 일으키는 혼동을 우선 나열해보기로 하자.
1 - 이미 앞에서 자세히 제시한 것처럼 어떤 경우는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 내용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신이 평소 생각하고 분별하는 관념분별내용과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을 접착해서 평소 이해하는 상태에서 이들 각 내용을 혼동하는 경우다.
앞처럼 그림을 그려서 제시하면 이런 문제는 별로 없을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대단히 많은 것이다.
일반 논리학자가 어떤 관념을 이해할 때 그 관념이 갖는 성품들[내포]이나 그 관념에 해당하는 내용들[외연]이 무언가를 문제삼으면 대부분 그 내용을 감각현실에서 찾아내려고 임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접착과 혼동 문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일반인이 사람은 무언가라고 문제가 제시되면 그 내용을 또 자신이 대하는 감각현실에서 여기저기 오간다고 보는 그런 모습을 놓고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또 그런 감각현실에는 그런 관념분별 내용도 그 안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것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단 이런 문제를 구분한 가운데 논의를 살펴야 한다고 본다.
1- 다시 어떤 주체가 눈을 떠 어떤 내용을 얻을 때 그런 감각현실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없다고 제시하는 경우 이런 감각현실에는 어떤 것의 대상이 되는 대상 자체는 전혀 있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내용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이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즉, 눈을 떠서 얻는 감각현실 내용 안에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없지만,
현실에서 이처럼 얻은 감각현실내용을 놓고 다시 그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분별을 행할 때는 그런 감각현실내용을 대상으로 하여 그렇게 생각하고 분별을 행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경우에는 이런 현실내용은 또 다른 관념분별내용에 대한 '대상'의 지위에 있는 내용은 바로 그런 감각현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내용이 이런 내용까지 부정하는 것은 또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본적인 혼동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 - 또 한편 일반인이 감각현실 내용을 놓고 그것을 외부 대상이라고 보통 이해할 때 그런 감각현실은 마음내용이고 그런 감각현실은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아니며 그런 감각현실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없다라고 제시하는 내용을 놓고
이것이 곧 마음 밖의 외부 실재에는 일체 아무 것도 없다고 제시한 내용으로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감각현실이 마음내용이고 그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없다고 할 경우에도 다시 마음 밖의 실재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그런 실재가 무엇인가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그런 실재는 어떤 주체가 얻을 수 없기에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를 분별하거나 논의할 수 없다는 등등의 여러 입장이 다시 나타날 수 있는데
처음에 앞과 같이 제시한 내용을 놓고 이 표현이 앞 여러 입장 가운데 어느 한 입장을 나타낸다고 곧바로 이해하면 또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문제는 일단 별개의 문제로 놓고 또 다시 살펴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앞의 내용을 긍정한다고 해도 다시 마음 밖의 실재가 무엇이 있다고 할 것인가. 또 그런 실재는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일치하는 형태로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얻는 내용과 유사하거나 비례하는 어떤 것이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실재는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현실 내용은 오직 마음이 자체 분열을 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다른 마음내용을 대상으로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할 것인가. 또 그 각 경우에도 마음은 오직 전 세계에서 하나의 마음만 그렇게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각 주체마다 각기 마음을 가져서 무량한 마음이 그렇게 있다고 할 것인가.
또 이와 달리 그런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마음을 통해 내용을 얻는 주체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다 아니다 있다 없다 등등의 분별을 행할 수 없고 공하다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이해할 것인가 등등에서 각 입장이 달리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각기 다른 입장이 또 제시될 수 있는 것이기에
유식무경이란 내용 즉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얻는 내용이 그 자체가 마음내용이고 그것은 일반인이 그것을 놓고 이해하게 되는 그런 외부대상이 아니고 이들 내용에는 그런 외부대상이 없으며 그것은 또 외부세계나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아니라고 제시하는 내용이
곧 이들 여러 입장 가운데 어떤 특정한 입장을 나타낸다고 곧바로 이해하면 또 조금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는 유식무경이란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관련해 좁은 의미로 이해하거나 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입장 차이일 수도 있으나 여하튼 문제되는 측면이 각각 다르므로 그 각 측면에서 이를 별개로 살펴나가야 한다고 본다.
1 - 한편 또 마음 밖의 실재가 무언가를 논의할 때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떠 얻는 내용과 일치한 내용이 그대로 실재 영역에도 있다고 제시하면서 그런 마음 밖의 실재가 그런 현실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하는 입장이 있을 때
이것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논의가 제시될 경우 또 그 논의내용이 앞의 논의와 같은 성격의 내용이라고 또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고 본다.
즉 실재는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입장은 이미 앞에 살핀 일반적인 전도망상분별의 입장과 함께 현실에서 일으키는 전도망상분별을 바탕으로 그런 전도망상분별을 실재에까지 확장시켜 증폭시키는 주장이 되기에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시키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이들 주장의 문제점들을 먼저 주로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런 주장을 비판할 때 이런 비판이 곧 외부 실재가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을 여기서 지적하는 것이다.
즉 실재 영역에 현실내용과 일치되는 내용이 있고 그것이 곧 실재영역에 있는 외부대상이라고 주장을 할 때 그런 실재 영역에는 현실과 일치하는 형태의 그런 실재 대상은 없다거나, 얻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이를 부정하면 이런 비판은 곧 실재가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으로 또 오해하기 쉽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삼는 각 영역의 내용을 전도망상을 바탕으로 다 접착시켜 놓고 이를 대하는 입장에서는 의외로 이런 오해를 많이 갖게 된다고 본다.
여기에서 혼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우선 현실에서 일반적 입장은 먼저 한 주체가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 내용을 놓고 그것을 곧 외부대상이고 객관적 실재라고 일반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입장과 달리 그렇지는 않다고 보지만,
그러나 마음 밖의 실재 영역에는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 내용과 그대로 일치하는 내용이 있고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한 주체는 그런 내용을 얻게 되는 것이다라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런 실재에는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과 그대로 일치하는 외부대상이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이제 이처럼 그 성격이 다른 주장에서 제시하는 각기 다른 영역의 내용을 놓고 제각각 모두 그것을 '외부대상'이나 '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이들 주장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이런 주장에서 표현하는 외부대상이나 '경'이란 표현 자체를 놓고 그 표현이 정확히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가를 놓고 또 다시 혼동이 발생하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들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여 부정할 때 이런 비판은 곧 실재는 아예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또 다시 혼동을 일으키기도 쉽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즉, 실재에 A란 내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실재가 전혀 없다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쉽다는 의미다.
그런 주장이 정말 그런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주장인가 그래서 실재는 그런 A를 얻을 수도 없고 그 뿐 아니라 실재는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고 할 경우인가.
아니면 실재에서 그런 A 를 얻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실재 자체는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고 할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볼 것인가는 일단 이 문제와는 별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논의 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미 간략하게 제시했지만, 실재와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 내용과의 관계를 살필 때도 별도로 이 문제를 자세히 살폈는데
한 주체가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을 놓고 실재가 무언가를 살필 때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은 마음내용이고 그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한 외부대상은 없다고 할 때에도 다시 그런 바탕에서 실재가 무언가하는 문제에서는 또 여러 다양한 입장이 제시될 수 있기에 이들 내용들을 놓고 이후 자세히 살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즉, 이런 경우
마음 밖에 마음내용을 얻게 되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이 자체 분열해서 현실 내용을 얻거나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해서 얻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고 .
또 그런 입장에서도 마음은 오직 단 하나뿐이라고 이해하거나 또는 마음은 각 주체마다 각기 갖고 있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고
또 현실 내용은 마음내용이고 이 현실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음 밖 실재가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도 있다
그래서 실재에 관해 다양한 입장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이미 살핀 바 있다. 그리고 이후 이런 각 주장의 입장을 놓고 자세하게 살펴나가야 한다고 보지만, 여하튼 이들 각각의 입장은 어느 부분은 공통하고 어느 부분은 차이가 있는데 어느 한 내용을 놓고 이 가운데 어느 특정한 입장이라고 곧바로 혼동을 일으켜 대하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1 또 추가하면 실재에 대상의 유무문제와, 실재의 문제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실재영역에 감각현실과 같은 그런 A 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 곧바로 실재 자체는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고 제시하는 입장은 반드시는 아니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반대로 실재가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해 공하다라고제시하는 입장이 그런 실재는 어떤 주체가 어떤 감각현실을 얻게 되는 '대상'이라고 반드시 제시하는 입장도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처음 대상의 문제를 삼을 때는 예를 들어 어떤 주체가 꽃의 모습을 본 것은 어떤 내용[a-꽃] 를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었다고 제시한 것이고 그것은 예를 들어 어떤 다른 내용 예를 들어 [b-바위] 를 대상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만일 그 주체가 a 를 상대하지 않았다거나, 만일 a 가 아닌 b 를 상대하였다면 문제삼는 그 내용을 그렇게 얻지 못했다는 그런 관계가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재영역을 문제삼을 때는 처음에 현실에서 얻는 어떤 내용과 관련하여 그것을 얻게 한 그런 대상 a 가 '실재'에 있는가 없는가라는 것을 문제삼아 논의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단순히 자신이 그런 현실내용을 얻는 본 바탕으로서 '실재'는 어떤 상태인가라는 측면에서도 논의할 수 있다.
이 어느 경우든 실재가 전혀 아무 내용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주체도 그 내용을 직접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공하다라고 표현한다고 제시하는 경우는 앞과 같은 실재대상의 유무문제는 여기에서 살피기 곤란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실재 영역에서 문제삼는 어떤 a 나 b 를 시설하고 다시 그 a 나 b 를 그 상황에서 넣었다 뺐다 하는 가운데 그로 인해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하는 관계성을 처음부터 살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실재의 어떤 부분이 그런 현실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라거나 또는 실재 전체가 그 대상이라는 식으로 제시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재가 공하지 않다거나 실재 영역에 전혀 아무 내용이 없다고 제시하는 의미는 또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내용들은 조금 별개인 논의가 된다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실재 영역이 전혀 내용이 없다고 할 것은 아니고 공하다라고 제시하는 입장이 실재에 반드시 앞에서 문제삼은 그런 대상이 있다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대로 실재에 그런 '대상'이 없다고 제시하는 입장도 실재영역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이다라고 '반드시' 제시하는 입장은 아니고 이들은 각기 별개로 살펴야 할 문제가 된다고 일단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침대에서 누어 잘 때 꿈에서 바다나 황금 꿈을 꾸었다고 할 경우를 놓고 이해하면 쉽다고 본다.
꿈에서 황금꿈을 꾼 것이 현실 영역의 침대나 방안의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꿈을 꾸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될 때
그렇지 않고 꿈 내용을 그렇게 얻게 한 대상은 현실에서는 없다. 이렇게 제시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현실에는 아무 내용도 없다'고 반드시 제시한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위 입장을 제시한 경우에서 다시 그런 내용까지 제시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일단 위 주장과는 별개로 살펴야 할 문제라는 의미다.
또 꿈 내용은 현실에서 침대에 누어 자면서 그런 상태에서 꾼 것이므로 현실 영역을 '본 바탕'으로 놓고 그런 꿈을 꾼 것이다라고 제시할 경우 이런 내용이 또 반대로 현실 영역이 곧 그런 꿈을 꾼 '대상'이라고 제시하는 입장도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즉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은 공한 실재라고 제시하는 것은 공한 실재가 현실 내용을 얻는 대상이 된다고 하는 측면과는 다른 측면의 입장인 것이다. 앞의 꿈을 놓고 이 내용을 이해하면 쉽다고 할 수 있다.
꿈을 그런 '본 바탕'에서 꾼 것이라고 한 것이지 꿈 내용을 그런 바탕의 내용을 '대상'으로 해서 얻었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실재가 무언가의 문제가 실재 대상의 정체를 확인하는 가운데 문제될 때는 이 두 문제를 혼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실재에 그런 대상은 얻을 수 없다고 하면 실재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혼동하거나,
실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제시하는 내용을 그래서 실재가 그런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제시한 것처럼 혼동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각 내용이 문제될 수 있지만, 별개의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본다.
1 조금 더 추가해 설명하면 논의삼을 주제에서 조금씩 다른 측면을 서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처음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내용을 놓고 그것을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하는 경우
일단 그런 감각현실이 곧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인가 아닌가.
그런 감각현실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지위에 있는 것인가, 아닌가. 그리고 다시 실재 영역에 그런 감각현실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 그리고 실재 영역의 어떤 내용이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대상인가 아닌가. 그리고 실재 영역에서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할 것인가 없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실재 영역에서 a 라는 내용을 '없다'고 할 것인가. '얻을 수 없다'고 할 것인가.
이런 각 내용은 서로 엇비슷해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측면의 주제를 문제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내용을 놓고 그것은 감각현실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아니다.
그런 감각현실내용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실재영역에는 그런 감각현실과 일치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실재 영역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대상을 얻을 수 없다. 실재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 없다. 실재 영역에서 a 라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씩 다른 측면을 제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어떤 입장에서 이 가운데 그런 감각현실은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입장이 곧 앞과 같은 내용을 다 함께 제시하는 입장인 경우도 물론 있지만,
그러나 감각현실은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경우에도 그런 감각현실은 실재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재영역에는 그런 감각현실도 '없고' 실재영역에는 그런 대상도 '없고' 실재영역에는 어떤 내용이 일체 '없고' 실재 영역에는 문제삼는 a도 '없다'라고 제시하는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각 입장은 어떤 부분은 내용이 공통하지만, 다른 주제는 서로 별개인 것이고 서로 조금씩 입장이 다른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예를 들어 어떤 문제삼는 것에 a 가 없다라는 표현과 어떤 문제삼는 것이 a 가 아니다 라는 표현과 어떤 문제삼는 것에 a 를 얻을 수 없다라는 표현 등을 놓고 서로 혼동하는 문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가 없다면 얻을 수도 없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얻을 수 없다는 표현이 반드시 그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눈으로는 소리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고 해서 소리가 없다고 제시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없다와 아니다의 관계도 비슷하다.
방에 책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방이 책상은 '아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조금씩 다른 측면의 주제를 살피는 것이어서 이들 각 주제는 별개로 살펴야 할 문제인데 이들 내용 가운데 한 측면에서 살피는 내용이 제시될 때 이 가운데 어느 내용을 곧 그것이 다른 측면의 다른 내용까지 제시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실재가 공하다라고 제시하는 것은 실재에 대해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내용을 어떤 주체가 직접 얻을 수 없기에 -이다 -아니다 -이 있다 - 없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좋다 나쁘다 등등의 이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고 이를 떠나는 것이어서 [불이] 언설로 표현할 수 없고 그래서 공이라는 표현을 시설해서 나타낸다고 할 때
이 공하다는 표현을 무엇이 없다라고 단정해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하거나 반대로 무엇이 적극적으로 있다라고 제시하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이런 사정을 이해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상대가 무엇이 '있다'라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집착하는 경우 공한 사정을 이해시키고 이런 망집을 제거하고자 하는 취지로 그것을 부정하여 '있지 않다'고 표현하거나 '없다'라고 표현하게 되면 그런 방편적인 언어시설을 놓고 오히려 이제 '없다'라는 다른 극단의 망상분별과 집착을 또 일으키므로 다시 '없지 않다'라거나 '있다'라는 표현을 통해 그런 망집을 제거하게 되는데 이런 방편적인 취지에서의 언어표현을 가지고 다시 혼동을 또 일으키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 언어표현을 떠난 어떤 상태를 언어 시설을 통해 가리킬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지만, 그런 언어시설을 의존하지 않으면 그런 상태를 이해할 도리가 없기에 부득이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런 있다거나 없다는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경우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라고 또 제시하면 이제는 다시 그 내용을 또 붙잡고 망상분별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도 '아니고' ~도 '아니다'라는 부분을 강세를 두고 읽으면서 대할 때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여하튼 이런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언어표현을 시설해 제시하는 경우는 나중에는 이런 언어 시설 자체에 다시 망집을 일으키고 대하게되는 문제를 다시 가질 수 있으므로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여하튼 앞과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할 주제가 별개로 각기 있다고 할 때 이들 각 주제는 각각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자세하게 앞으로 살펴 나가야 한다고 보지만,
그 이전에 이처럼 문제삼는 측면이 조금씩 다른 각 주제를 놓고 이들 내용을 서로 혼동하는 가운데 각 내용을 대하면 곤란하다는 점을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실재와 관련된 논의과정에서 이런 혼동을 제거하려면 한 주체가 각 내용을 다 얻을 수 있는 현실과 꿈을 놓고
어떤 꿈 내용은 그 꿈 내용이 그런 꿈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꿈 내용은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현실 영역에서 꿈 내용에 일치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현실 영역의 어떤 내용이 그런 꿈을 얻게 한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현실 영역에 그런 꿈과 같은 내용은 없다거나 얻을 수 없다고 본다. 고 제시하는 한편
그런 꿈은 현실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기에 그렇기에 실답지 않고 그래서 집착을 갖고 대하면 안 된다고 제시한다면,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내용이 현실이 전혀 없다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꿈을 그렇게 생생하게 꾸지 않았다고 제시한 것도 아니고 꿈을 아예 꾸면 안 된다고 제시한 것도 아니라는 내용을 잘 파악하는 가운데
다만 그런 꿈 내용을 실답게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면 안 된다고 제시한 것임을 잘 이해하는 가운데 각 측면에서 문제삼는 내용에서 서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본다.
1 그리고 나중에는 이렇게 시설해 제시한 마음이나 1,2,3,4,5,6,7,8 이런 식으로 제시한 각 마음을 놓고 그런 시설을 제거하고 철거해야 한다고 하면 또 이와 관련해서 혼동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
Théophile Alexandre Steinlen (November 10, 1859 – December 13, 1923)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어 아르누보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몽마르트르 (Montmartre)와 그 주변 지역은 스타 인 렌 (Steinlen)의 삶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으며, 종종 그 지역에서의 더 가혹한 삶의 일부 장면을 그렸습니다. 회화와 그림 외에도 그는 조각품을 찍었습니다. 제한된 기준 으로 볼 때, 많은 그림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가장 애정을 쏟은 고양이 인물들이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Théophile_Steinlen Title : study-of-a-cat-walking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lowers_-_Uncategorised_Garden_plants_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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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rockenSnowedTreesIn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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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English: Snowed trees on mount Brocken, Harz, Germany. Français : Arbres sous la neige dans le mont Brocken, Harz, Allemagne. Photo was taken using the following technique: Film: Fuji Velvia Lens: 4/35-70 Filter: none Body: Minolta Dynax 7 Support: Gitzo Monotrek Source: http://fam-tille.de/sparetime.html Image with Information in English Bild mit Informationen auf Deutsch Date 2001-12-23, 13:00–14:00 Source Own work Author Andreas Tille Permission (Reusing this file) Quote of http://fam-tille.de/harz/brocken/2001_088.html - Permission is granted to copy, distribute and/or modify this images under the terms of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Version 1.1 or any later version published by the Free Software Foundation. I, the copyright holder of this work, hereby publish it under the following license: w:en: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 alike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4.0 International license. You are free: to share – to copy, distribute and transmit the work to remix ● [pt op tr] fr
♡천왕사_원주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비마라사터의 봉산동 당간지주 * 당간지주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천왕사지의 경내에 서 있다. 1910년 「국권침탈」 당시 한쪽이 파손된 것을 1980년 4월 30일 복원하였다. 이 지주는 그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1975년 6월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이 당간지주는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천왕사(天王寺)라는 사찰에 세워졌다고도 하며, 지금 있는 곳이 신라 초기 창건한 비마라사터라고도 한다.
형태는 커다란 자연석의 양쪽을 파서 지주석을 끼우고 가운데 당간이 앉을 자리를 둥그스럼하게 깎았는데, 간대석(竿臺石) 윗면에는 당간을 끼워 고정시킬 수 있도록 당간 구멍[竿孔]을 팠다. 지주는 본래 네모꼴 돌기둥의 모를 죽이고 맨윗부분은 4면에서 줄여 올라가서 가운데가 뾰족하게 한 것이었다. 이런 형식은 맨윗부분을 4분원형으로 깎은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독특한 모습이다. 현재는 복원 작업으로 다른 지주와 같은 형식을 하고 있다. 석재는 화강암이며, 높이 4.3m, 폭 55㎝이고, 간대석 크기는 1.8m×1.22m×75㎝이다.
* 당간지주란? * 당간지주는 주로 사찰에서 그 세를 알리거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세우는 당간의 받침대이다. 괘불(掛佛)을 내걸기 위한 괘불대의 지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 [참조링크5]korean.visitkorea.or.kr ▶▶▶ [참조링크7]www.earthtory.com 비마라사터의 봉산동 당간지주 * 당간지주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천왕사지의 경내에 서 있다.
원주봉산동석조보살입상(原州鳳山洞石造菩薩立像) 조각문화재 | 유물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천왕사(天王寺)에 있는 고려 전기의 보살상.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트위터페이스북 원주 봉산동 석조보살입상 분야조각유형문화재, 유물지정기관강원도지정부류시도유형문화재지정번호제67호 정의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천왕사(天王寺)에 있는 고려 전기의 보살상. 내용 높이 1.78m.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7호. 이 보살입상은 천왕사지(天王寺址)에서 발견된 것이라는 구전(口傳)이 있으나 사지에 관해서 분명히 밝혀진 바 없으며 그 유래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등신대(等身大)의 크기에 비교적 당당한 보살입상인데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남아 있지 않다. 보살은 머리 위에는 매미날개 모양의 독특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네모진 얼굴에는 양감(量感)이 있다. 눈·코·입은 비교적 작고 오밀조밀하며, 입가에는 미소가 있어 친근감을 준다. 코에는 깨어졌던 것을 보수한 흔적이 있다. 상체의 가슴 앞 부분에 Y자형으로 갈라진 표현이 천의(天衣)를 나타낸 것인지 영락(瓔珞)장식인지 분명하지 않다. 직립한 하체에는 군의(裙衣)가 양 다리 위로 갈라져 W자형으로 흐르고 있다. 양 손은 신체에 비해 크기가 작은데,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배부근에 역시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대고 있다. 손 안에 지물(持物)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보살상은 친근감있는 방형(方形)의 얼굴, 도식적인 신체, 형식화된 군의주름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전기에 강원도 지방작가에 의해 제작된 지방색이 농후한 작품으로 보인다. ▶▶▶ [참조링크6]encykorea.aks.ac.kr
유물만 남기고 사라진 옛절 원주 천왕사 2008.03.09 12:40 _______ 카테고리 이것저것 댓글쓰기 유물만 남기고 사라진 옛절 원주 천왕사 원주의 문화재를 찾아다니다가 보면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도대체 천왕사지는 어디에 있었던 절이었던가 하는 것이다. 천왕사지에서 발견된 당간지주와 석조불상 2기는 현재 봉산동의 여기저기에 나뉘어져 서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7호 석조보살입상은 원주경찰서 뒤편 낮은 야산 미륵암이라는 암자 곁에 서 있다. 또 한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원주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서 있다. 그리고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당간지주는 봉산2동 도로변에 서 있다. 이 당간지주가 서 있는 곳을 천왕사터라고 하기도 한다. 현재 천왕사라는 절은 봉산동 1001-3에 소재하고 있어, 이 당간지주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 현재의 천왕사는 석불과 당간지주가 서 있던 천왕사와는 별개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원주시립박물관 뒤편 계단 아래에 보면, 다리가 없는 석조미륵보살입상 한 기가 서 있다. 출처: http://rja49.tistory.com/entry/미륵보살님-다리는-어째시고 [바람이 머무는 곳] ▶▶▶ [참조링크10]rja49.tistory.com
쉬는 가운데 노트북은 곤란하고 반드시 컴퓨터는 데스크탑이어야 한다고 메세지를 전하는 이상한 노래를 듣게 되는데 이런 불어 노래를 부른 이가 그런 의미를 나타내려고 이런 노래를 불렀겠는가.
문제는 이 노래를 듣는 어떤 이는 하나의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도 이런 엉뚱한 생각을 일으킨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그런 시감상이 수행이나 삶에 좋은 의미를 주고 수행을 정진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보는데 그렇지 않고 공연한 망상과 집착을 이로 인해 일으키게 된다면 역시 일반적인 망집현상이 갖는 문제와 같은 문제를 갖게 된다고 본다.
현재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마음내용이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은
이런 내용을 통해서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얻는 내용을 놓고
그것이 곧 외부세계의 내용이 아니고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도 아니고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물질도 아니고 외부의 객관적 실재도 아닌 것이어서
그런 내용들은 그 주체가 이에 대해 집착을 가질 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는 사정을 잘 관하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서 그런 현실 영역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만드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여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를 벗어 나오고 이후 이런 바탕에서 중생제도나 불국토 장엄과 성불을 위해 무량겁을 놓고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성취해나가는 수행에 원만하게 임할 것을 취지로 논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통해 그런 취지는 잃어버리고 이런 논의 자체과정에서 각 부분의 내용이나 표현을 놓고 각 주체가 다시 일으키는 여러 혼동과 함께
각 내용부분마다 각기 다양한 견해를 일으켜서 이것을 놓고 갑론을박 시시비비를 일으키는 가운데
또 나중에는 이런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설한 그 내용 자체를 붙잡고 또 앞과 같은 망상분별과 집착을 가지고 대하는 경우마저 있기에
우선 앞과 같이 1 이 눈을 떠 세상을 보는 가운데 옆에 자신이 신뢰하는 철수나 영희를 놓고 그런 철수나 영희가 1 자신처럼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어떤 내용을 보고하는가를 관찰해 본다고 해보자.
그런 과정을 1이 옆에서 관찰하면 2 에 해당하는 철수가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인다고 하고 눈을 감으면 보지 못한다고 보고함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은 1 의 상황과도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1 의 입장에서는 다른 주체인 2 와 같은 철수가 그런 보고를 하는 상황을 놓고 관찰하면
1 입장에는 그 상황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태인데 2 만 혼자 눈을 떴다 감았다를 하는 가운데 무엇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게 되니
그런 변화는 2 영역 안에서 있는 변화일 뿐이라고 추리하고 그런 변화내용을 2가 위 그림에서 5 ^ 와 같은 형태로 얻는다고 추리하는 가운데 위 그림처럼 그려 놓은 것이다.
이런 추리가 엉터리고 전도된 망상분별의 하나라는 것은 위 내용을 이렇게 제시할 때마다 반복해 붙이는데 그것은 위와 같은 추리 내용이 곧 현실에서 마음의 정체나 마음이 있는 위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것을 증폭시키는 한 근본원인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비록 위와 같이 일반적으로 이 사정을 이해하기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런 바탕에서 각 내용을 위처럼 시설해서 논의는 하지만,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또 한편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단 1 이 볼 때는 위와 같은 형태로 2가 무언가를 대해서 보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1 이 2 가 무엇을 그렇게 보고 보지 않는 것은 결국 2의 몸에 붙어 있는 그런 눈이 1 자신이 보는 4 와 같은 꽃을 대상으로 해서 2 의 몸 안에 있는 5 ^ 와 같은 영역에서 무언가를 보고 보지 않는 변화를 겪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추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이런 전도망상분별을 제거하기 위해 이런 이해가 어떤 사정으로 잘못인가를 자세하게 살펴나가고 마음이 과연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볼 것인가 등을 놓고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보는데 여하튼 그것은 나중에 따로 살피기로 하고 일단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혼동을 일으키는 문제를 일단 살피자는 의미다.
그런데 일단 위와 같이 2 의 과정을 관찰하는 1 입장에서 생각하면 1 은 그런 철수나 자신이 함께 나란히 옆에 선 가운데 이 내용을 놓고 판단하면 1 이나 2 나 그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이해하게 되므로
1 은 처음 2 에 대해 추리하고 이해한 내용처럼 1 자신이 무언가를 본다는 것도 결국 위 그림에서 1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부분에 붙어 있는 눈이 4 라는 꽃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4 라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또 엉터리로 추리하게 되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전도망상분별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여하튼 이런 추리를 바탕으로 어떤 주체는 과연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얻는가라는 것이 문제될때 이 논의 과정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하는 '외부대상'이란 표현이 위 그림에서 각기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와 관련해서 1 차적으로 수많은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부분이 그 혼동을 일으키는 첫 단계라고 보는 것이다.
처음 1 이 2 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는 과정을 놓고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를 잘 살펴보자.
1 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추리할 때는
2가 2의 몸부분에 달린 눈으로 '1 자신이 보는 4 와 같은 내용'을 외부 대상으로 해서 어떤 내용을 얻는데 그 내용은 2 의 몸 안의 어떤 영역에 머문다고 추리한다. 그리고 그런 영역을 2 의 마음이라고 이해하고 2 의 마음은 또 그런 사정으로 1 자신이 보는 2 의 몸 안에 머문다고 추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1 의 입장에서는 그런 2의 상황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이런 입장에서는 여기서 문제삼는 외부대상이란 2 의 마음 밖에 있는 4 라고 보게 되는 한편,
2 의 입장을 놓고 생각하면 2 의 마음으로 얻는 감각현실은 2 의 마음안 내용으로서 5 ^ 인 것이어서 그렇게 2 가 얻는 감각현실 내용에는 2 가 그런 내용을 얻게 된 외부대상은 그 안에는 없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이해를 처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혼동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왜 그런가 하면 1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2 가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처음 1이 이해한 4 는 2 의 입장을 놓고 생각할 때는 그것이 2의 마음 밖에 있는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 곧 1 자신의 입장에서는 1 자신이 눈을 떠 보는 내용 안에 또 그렇게 있는 그런 내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그림에 그려진 4 라는 꽃과 같은 하나의 내용을 놓고서
2 를 기준으로 놓고 이해할 때 그것이 곧 2 가 눈을 떠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에서 그런 내용을 얻게 한 2 마음 밖에 있는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 똑같은 4 라는 내용을 1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이를 이해할 때는 1 자신이 눈을 떠 보는 그 감각현실 내용안에 이미 그렇게 들어 있는 내용이라고
하나의 내용을 놓고 2 중적으로 달리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다.
그래서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4와 같은 하나의 내용을 외부대상이라고 표현하면 이 표현을 놓고 2 의 입장을 기준으로 놓고 이해한 내용과 1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놓고 이해한 내용을 놓고 어떤 경우는 주체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라고 하거나 어떤 경우는 주체가 눈을 떠서 얻게 되는 내용 안에 있는 내용이라고 하거나 하면서 오락가락한 상태가 되기 쉬운 것이다.
물론 조금 예민하게 이를 자세히 살피는 입장에서는 2 를 기준으로 그 관계를 살피는 경우와 1 이 1 자신에 대한 관계를 해석할 때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 1 이 4 라는 꽃의 모습을 본다면 자신이 이런 4 와 같은 감각현실 내용을 처음에 무엇을 대상으로 얻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1 자신이 얻는 이런 마음내용으로서 감각현실 밖에 즉 1 마음 밖에 있다고 할 어떤 외부대상을 찾는 문제에서 문제삼는 외부대상은 앞과는 다른 문제라고 이해해야 한다.
한편 2 가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할 때 2 는 1 이 보고 있는 4 를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어서 일단 그런 4 는 2의 마음인 5 ^ 영역에는 없다고 이해하는 한편, 1이 보고 있는 4 가 곧 2가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하면서
그런 4 를 외부대상이라고 표현하며 논의해 가는 경우와 이들은 서로 다른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다 엉터리 전도망상분별이기는 하지만 다시 1 의 입장에서 자신이 그런 4 를 대상으로 해서 그 4 를 얻었다고 이해하면서 그 4 를 외부대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또 앞 경우와 다른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대부분 이런 내용을 놓고 이미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이 2 중적인 입장을 오가면서 이해를 하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그에 관련된 내용을 논의하는 가운데 예를 들어 4 와 같은 하나의 내용을 외부대상이나 경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런 표현을 놓고 앞의 이해를 바턍으로 그 각 입장을 오락가락 오가는 상태에서 혼동을 기본적으로 일으켜 이 논의에 진입해 들어간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처럼 조금 더 예민하게 이 문제를 살피는 입장에서는 다시 외부대상이란 표현을 놓고 1 자신의 입장에서 1 마음 밖에 있는 어떤 외부대상이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서 외부대상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경우가 또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까지 고려하면 외부대상이나 경이란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놓고 벌써 3 종류로 혼동을 일으키며 각 입장이 갈라지는 상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처음에 1이 대하는 4 와 같은 내용을 놓고 그것은 2 의 마음안의 내용과는 구별되고 그래서 2 의 마음 밖에 있는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하면서 이를 외부대상이나 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거나
또는 그 내용은 1 자신의 마음안에 있는 내용이기에 그런 내용을 놓고 그것을 외부대상이나 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1 의 입장에서 1 이 마음으로 얻는 내용을 얻게 하는 외부대상으로서 그러나 1 입장에서는 끝내 얻어내지 못하는 어떤 내용을 외부대상이나 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등으로
외부대상이나 경이라는 하나의 표현을 놓고 그것이 정확히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어떤 측면에서 가리키는 언어표현인지를 놓고 논의 시작 처음부터 혼동의 바다에 진입해 들어가게 된다는의미다.
간단히 이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고 보는데 너무 길어졌다.
오늘 조금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 문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상세하게 살펴나가기로 하면서 일단 표현 자체에는 위 각 내용 가운데 무엇이라고 정해주는 힘이 본래 없다는 것을 잘 확인하고 결국 이들 내용이 문제되면 앞 뒤 내용과 논의 취지와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한 가운데 맥락을 통해서 그 내용을 잘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한편
앞과 같은 사정 때문에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피면 각 부분마다 많은 혼동을 불러 이르키고 복잡한 논의를 요구하게 된다는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한편 여기서는 나중에 이런 내용을 통해서 12,3,4,5,6,7,8 이런 여러 정신을 제시하고 그 사정을 설명하게 되는데 미리 이런 시설이 갖는 성격도 함께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유식사상은 결국 불교에서는 해심밀경을 바탕으로 유가사지론이나 성유식론 등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제시한다고 보는데
우선 이들 경전이나 논서에서는 실재가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제시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보게 된다.
물론 이런 문제도 각 입장마다 각 경전이나 논서의 표현을 놓고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보지만, 각 경전과 논서에는 그런 입장을 명백히 표현해 제시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해심밀경에서는 이런 각 정신을 제시하는 한편 이렇게 시설해 제시하는 내용을 놓고 또 망집을 일으켜 가지면 곤란하다는 내용도 함께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런 마음현상을 살필 때는 그렇게 시설해 제시하는 각 내용이 또 어떤 성격을 갖고 그렇게 시설하고 안립하게 되는 내용인지에서 부터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고 본다.
해심밀경의 심의식상품에는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을 따르고 집착하여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을 받아들이고 갈무리하며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한다는 뜻 때문이다.
또한 심(心)이라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빛깔[색色]․소리[성聲]․냄새[향香]․맛[미味]․감촉[촉觸] 등을
쌓아 모으고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광혜여,
아타나식을 의지하고 건립하는 까닭에
6 가지 식신(識身)이 구르니,
이른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다.
...[ 중간 줄임 ] ...
이와 같아서
보살이 비록 법주지(法主智)를 의지하고 건립한 까닭에
심․의․식의 비밀에 공교하다 해도,
그러나
모든 여래는 이에 한하여
그를 일체 심․의․식의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하지 않는다.
광혜여,
만일 모든 보살이 안으로 각각 다른 것들에 있어서
여실하게 아타나를 보지 않고,
아타나식을 보지 않고,
아뢰야를 보지 않고,
아뢰야식을 보지 않고,
쌓이고 모임을 보지 않고,
심(心)을 보지 않고,
눈과 빛깔과 안식을 보지 않고,
귀와 소리와 이식을 보지 않고,
코와 냄새와 비식을 보지 않고,
혀와 맛과 설식을 보지 않고,
몸과 감촉과 신식을 보지 않고,
의(意)와 법(法)과 의식(意識)을 보지 않으면
이를 승의에 공교한 보살이라 부르며,
여래는 그를 승의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타나식(阿陀那識)
매우 깊고 미세해
일체 종자 폭포의 흐름 같도다.
내가 어리석은 이들에겐 말하지 않나니
그들이 분별하여
아(我)라 할까 두렵구나.
..
이런 내용에서 앞 부분은 1,2,3,4,5,6,7,8 과 같은 여러 정신을 나누어 시설하는 내용과 관련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뒷 부분에서 이렇게 시설해 제시하는 내용을 놓고 다시 이에 대해 망집을 일으키면 곤란하다는 사정을 밝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 현상을 이해할 때는 처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건립해 시설하고 논의를 하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차이가 있기에 그런 마음을 각기 그렇게 시설하게 되는가도 살피는 한편
그렇게 제시한 각 시설은 어떤 의미와 성격을 갖는 내용으로 제시하는 것인가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중에 앞의 경전에 제시된 내용처럼 그런 이해를 위해 시설한 내용을 제거할 때 그렇다고 처음에 그런 시설로 가리킨 내용까지 같이 제거해야 한다고 또 오해하면 또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이전 조각글에서도 자세히 살폈는데 매 논의과정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처음에 각 주체가 일으킨 망집현상을 바탕으로 각 언어표현이나 각 영역의 내용을 대하고 이것을 접착시켜 각 영역의 각 내용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앞 부분에서 외부대상이나 경이란 표현 하나를 놓고 다양한 혼동을 일으키는 사정을 보았는데 처음에 그 혼동을 잘 정리하지 않고 논의에 들어가면 이후 논의는 이들 내용이 그 논의를 살피는 주체의 마음안에서 온통 뒤범벅이 된 상태로 각 내용을 대하게 되는 것이어서 각 경전이나 논서의 각 부분의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고 어떤 내용을 제시하는가 자체를 파악하는데 대단히 곤란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먼저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일단 1 자신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내용과 1 이 관찰하는 2 의 상황이 사실은 사정이 엇비슷하다고 관하고
이 각 주체의 입장을 자꾸 바꾸어 놓고 이 문제를 반복해서 살피는 가운데 처음에 일반인이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나 추리가 어떤 오류가 있는가를 잘 검토해 파악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 바탕에서 문제로 삼는 외부대상이 가리키는 내용을 먼저 잘 정해서 시설해 놓고 그 바탕에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가운데 이후 논의를 전개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의 표현이 매 경우마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오락가락한 상태가 되면 그런 상태에서 어떤 주제를 살피면 그 내용도 역시 함께 오락가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논의에 임하기 전에 먼저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가부터 잘 파악해서 논의에 임해야 한다고 본다.
이후 내용은 조금 길게 쉬고 이어 나가기로 한다.
○ [pt op tr]
▼mus0fl--Artiste Inconnu - Les Oiseaux.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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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Lyrics
Paroles de Tous les bateaux, tous les oiseaux
Michel Polnareff
Best Of 2003
ALBUM
Je te donnerai
Tous les bateaux
Tous les oiseaux, tous les soleils
Toutes les roses
Toutes les choses qui t'émerveillent
Petite fille de ma rue
Tu n'as jamais vu
Tous les bateaux
Tous les oiseaux, tous les soleils
L'île au trésor
Et les fruits et les abeilles
Ne pleure pas petite fille
Moi je t'ai rêvée
Tu es venue
O mon enfant, mon inconnue
Je t'ai trouvée
Dans cette rue...
Je te donnerai
Tous les bateaux
Tous les oiseaux, tous les soleils
Je t'apprendrai le bruit des villes
Le nom des îles
Petite fille de ma rue...
Tu n'as jamais vu
Les goélands et les images de l'aurore
Quand l'océan
N'est pas encore un paysage
Ne pleure pas petite fille...
Viens... il y a des voiles
Sur les étoiles
O mon enfant mon inconnue
Il y a bal loin de ta rue
Je te donnerai
Tous les bateaux
Tous les oiseaux, tous les soleils
Toutes les roses
Toutes les choses qui t'émerveillent
Petite fille de ma rue
Je te donnerai
Les océans, les goélands
Et les fruits d'or
L'île au trésor
Et les grands bals sur les étoiles
Ne pleure pas ô mon amour, la la la la la
>>>
Lyrics of All boats, all birds
Michel Polnareff
Best Of 2003
ALBUM
I will give you
All boats
All birds, all suns
All roses
All things that amaze you
Little girl on my street
You have never seen
All boats
All birds, all suns
Treasure Island
And fruits and bees
Do not cry little girl
I dreamed you
You came
O my child, my unknown
I found you
In this street...
I will give you
All boats
All birds, all suns
I will teach you the noise of cities
The name of the islands
Little girl from my street ...
You have never seen
Gulls and images of the dawn
When the ocean
Is not a landscape yet
Do not cry little girl ...
Come ... there are sails
On the stars
O my child, my unknown
There is a ball away from your street
I will give you
All boats
All birds, all suns
All roses
All things that amaze you
Little girl on my street
I will give you
Oceans, gulls
And the golden fruits
Treasure Island
And the big balls on the stars
Do not cry O my love, la la la la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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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보트, 모든 새들의 가사
미셸 폴레 나프
2003 년 베스트
앨범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다
모든 보트
모든 새, 모든 피닉스
모든 장미
너를 놀라게하는 모든 것
내 거리에 어린 소녀
너는 본 적이 없다.
모든 보트
모든 새, 모든 피닉스
보물섬
그리고 과일과 벌
어린 소녀는 울지 마라.
나는 너를 꿈꿨다.
당신이 와서
내 자식, 내 알 수 없음
너를 찾았 어.
이 거리에서 ...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다
모든 보트
모든 새, 모든 피닉스
나는 도시의 소리를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섬의 이름
내 거리에서 온 어린 소녀 ...
너는 본 적이 없다.
갈매기와 새벽의 이미지
바다가
풍경이 아직 없습니다.
어린 소녀는 울지 마라.
어서 ... 돛이있다.
별에
내 자식, 내 알 수 없음
너의 거리에서 떨어진 공이있다.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다
모든 보트
모든 새, 모든 피닉스
모든 장미
너를 놀라게하는 모든 것
내 거리에 어린 소녀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다
바다, 갈매기
그리고 황금 과일
보물섬
그리고 별에있는 큰 공
울지 마라 오, 내 사랑, 라 라 라 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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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fr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oloman-moser-exlibris-for-otto-zuckerkandl-1906.jpg!HD
https://lh5.googleusercontent.com/-RCumJuNDFck/VwCBS5_XXCI/AAAAAAAAOv0/g9kZw4UWM2covQjzcd4_aGiyLWAhRJbLA/w1198-h811-no/2016_0402_182153_canon.jpg Artist: koloman-moser Koloman Moser (German: [ˈkoːloman ˈmoːzɐ]; 30 March 1868 – 18 October 1918) was an Austrian artist who exerted considerable influence on twentieth-century graphic art and one of the foremost artists of the Vienna Secession movement and a co-founder of Wiener Werkstätte.[...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Koloman_Moser Title : exlibris-for-otto-zuckerkandl-1906.jpg!HD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ilbe_'Hyacinth'_01
Description Русский: Астильба 'Hyacinth'. Из коллекции Главного ботанического сада РАН, Москва (участок декоративных многолетников). English: Astilbe 'Hyacinth'. From the collection of the Main Botanical Garden of Academy of Sciences in Moscow (perennials plot). Date 7 July 2012, 15:31:35 Source Own work Author Kor!An (Андрей Корзун)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Ningbo_Ayuwang_Si_2013.07.28_13-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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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2/03/08/목/10:25
상당히 길게 쉰 다음에 내용을 이어 살피게 되는데 조각글이 밀려 있는 상황이라 날짜 감각이 조금 다르다. 정확히 날짜까지 제시하면서 쓸 필요까지는 없다고 보지만, 지금 조각글을 이어 쓰는 날짜는 불기2562-03-08 이다.
밖에서 찍어온 사진은 해당 날짜 조각글에 붙여 놓고 조각글 내용 자체는 이곳에서 이어 작성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마음 현상과 관련된 논의를 하는 가운데 기본적으로 혼동을 일으키고 대하기 쉬운 부분을 찾아서 나열하는 가운데 조금 부족하다고 보는 부분을 더 보충해 넣어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나열하면 너무 내용이 복잡하고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부분도 많아서
마음 현상에 관해 살피는 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다고 여길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그런 측면이 분명 있다고 본다.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매 순간 순간 행하는 내용들이라고 보지만,
그러나 정작 어떤 주체가 자신의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도 없고
또 어떤 내용에 마음이 관계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그 마음을 붙잡고 그것을 넣거나 빼거나 해보면서 그 관계를 살펴나갈 도리도 없기에 어려움이 있는 한편,
마음과 관련해 시설해 표현하는 내용도 또 앞과 같은 사정을 바탕으로 해서 그 각 표현이 정확히 자신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도 힘들고 또 그런 언어시설로 이를 가리키는 입장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어서
마음과 관련된 내용을 살피고 논의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측면이 대단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상생활에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감각과정이나 분별과 관련된 부분은 그래도 사정이 낫다고 보지만,
생사과정 전후에 관련되는 근본 정신의 존부나 그 작용과 관련된 주제는 그 사정이 더욱 어렵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처음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통해 무엇을 보고 마음으로 그 내용을 얻는다고 할 때부터
그런 마음을 직접 얻어서 보거나 만질 수 없기에 마음의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다고 보게되는데 근본정신은 그 사정이 더 심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그렇게 여러 마음을 시설하는 것은 현실에서 일반적인 생리학자나 과학자의 입장에서 마음현상을 단순히 어떤 외부 물질의 자극 - 반응과 같은 기계적 관계로 이를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논의는 이후 또 별도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보는데 타임머신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와 관련된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수능엄경이 뽑혀져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능엄경에서는 지금 문제삼는 마음이 어디에 위치한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시되고
또 마음현상을 일반 생리학자가 이해하는 것처럼 마음 현상을 물질들이 서로 자극 반응관계로 얻게 된다는 형태로 이를 이해하는 것은 곤란한 점과 함께 마음을 그처럼 시설해 살피게 되는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제시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수능엄경 가운데 여하튼 지금 논의되는 내용과 관련된다고 보는 부분을 그런 사정으로 먼저 뽑아 놓았다.
그러나 마음과 관련한 문제에서 수능엄경 첫부분에 마음의 위치를 놓고 제시하는 내용도 기회가 되면 살펴야 한다고 보는 한편,
마음을 시설해 제시하는 사정과 관련하여 수능엄경에서 어떤 주체가 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소리가 들린다라고 이해하는 입장과 자신이 듣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소리를 듣는다라고 이해하는 입장이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놓고 부처님이 제시하는 부분을 특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여하튼 생사과정과 관련된 근본정신과 관련된 논의는 지금 살피는 유식20론도 그렇고 경전이나 일반 논서에서도 그것을 파악하기 힘든 사정이 그렇게 있기에 이를 살피고 논의하기 힘들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정려 수행을 깊이 행하는 가운데 상당히 수행이 높은 단계가 된다고 해도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는 내용도 제시되는데 그래서 어떤 부분은 수행에 처음 임하는 입장에서는 일단 그런 논의가 갖는 효용이나 실익이 무언가부터 먼저 살피고 어떤 부분은 일단 신행의 자세로 임해서 이를 대하는 것도 좋다고 보게 된다.
이런 논의가 수행에서 의미를 갖는 중요한 부분은 어떤 주체가 얻는 현실 내용을 놓고 그것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여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정을 잘 파악하고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현실에서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해 자신을 생사현실에 묶어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목표로 두어야 한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눈을 떠 감각현실을 얻을 때 이런 내용을 놓고
그것이 곧 외부세계이고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외부물질이고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는 한편 같은 입장에서 그런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을 또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이들 각 내용을 실답게 여기고 대하는 것이 현실의 일반적 상황인데
이런 내용은 자신의 마음내용인 것이어서 그런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앞과 같은 분별이 잘못된 엉터리 분별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다시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영역에도 그런 내용은 역시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렇게 얻는 현실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는 자세를 제거하는 한편 그런 바탕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자신을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게 된다는 사정을 빨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왜 사정이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자꾸 자신이 대하는 내용을 외부대상으로 이해하게 되고 또 이런 내용을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도 함께 얻는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게 되는가 하는 사정도 또 다시 살펴야 하고
그런 가운데 마음현상과 관련된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고는 보지만, 여하튼 위와 같은 바탕에서 수행에 임해 실천해나가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기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 내용은 논의가 복잡한 것도 복잡한 것이지만,
그것을 낱낱이 살피고 이해한다고 해도 정작 자신의 생사고통 문제는 해결해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생사고통을 벗어나는데 사용하는 뗏목과 같은 내용을 놓고
오직 이론적 논의에만 함몰되어
이론을 위한 이론적 논의나 시시비비의 논의에만 매달리는 가운데
정작 그것을 통해 생사고통을 벗어나지는 못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하튼 관련되는 내용을 살피기 전에 일단 이에 관련해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 부분을 이처럼 살핀 가운데 몇몇 부분만 더 살피고 마치기로 한다.
우선 앞 부분에 외부대상이나 경이라고 표현하거나 색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가리킬 수 있는 내용이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내용이 있어서 이로 인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제시했는데
각 경전이나 논서부분에서 이 가운데 어떤 의미로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가는 결국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경전이나 논서의 다른 부분의 내용과 관련시켜 이를 살필 도리 밖에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눈과 함께 색을 제시하는데 그 눈을 어떤 주체가 볼 수는 없고 만질 수는 있다라고 제시한다면 이 눈은 어떤 측면의 눈이겠는가. 그리고 이 눈과 관련시킨 색은 어떤 색이겠는가. 이런 식으로 찾아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앞에서 그림으로 다른 영희나 철수가 무엇을 보는 과정을 놓고 눈과 색을 제시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고 또 자신이 무언가를 그렇게 보게 되는 과정을 놓고 눈과 색을 제시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영희나 철수의 눈이라면 그것을 왜 보지 못한다고 할 것인가. 그것은 관찰자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고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일반적으로는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그에 대해 일으키는 관념분별을 접착시켜 놓고 이런 내용이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거나 또는 그 자신의 마음 밖에도 그대로 실재하는 내용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내용을 그대로 그런 의미로 제시하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보고하는 내용도 알고보면 그 성격이 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본래 그런 사정이 아님을 이해하고 이런 논의에 임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떤 내용을 직접 얻을 수 없는 실재 영역과 관련해서는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면서 그 내용을 제시해 논의할 수 없다는 것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시설 표현이 그런 내용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고 그것은 오직 그런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가정적으로 그런 시설을 안립해서 가정적 논의에 임하는 것이라는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고 각 표현이 가리키는 바를 매 경우마다 잘 파악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별로 본인이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은데도 그러나 조각글을 밀려 있고 살펴야할 경전도 밀려 있는 가운데 마음은 바쁘고 마음이 바쁜 만큼 연구가 또 잘 되는 것도 아니어서 상당히 마음이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쉬면서 노래를 듣는데
쉬는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잃고 또 열심히 닦고 수행을 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듣게 된다.
그런 가운데 앞에서 그림으로도 표시하고 감각현실이라고 글자로도 표시하는 그런 내용과 관련해 마음현상을 살피는 문제는
결국 자신이 거리를 나서서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대하고 또 거리의 건물이나 오가는 자동차도 대하면서 이렇게 자신이 대하는 내용들을 놓고 그 정체가 무엇인가를 놓고 논의하는 문제임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림이나 글자로 대하거나 꿈을 놓고 비유로 제시할 때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여기다가 정작 거리에 나서서 대하는 현실에서는 그에 다시 집착을 갖고 임하면 곤란한 것이다.
현실에서 거리에 서서 오가는 자동차나 사람이나 건물들을 보면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고 진짜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앞과 같은 내용으로 그것이 실답지 않고 실재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라고 제시하면
꿈에서는 그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대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의문을 일으키면서 또 이 현실에 집착을 갖고 그 집착에 바탕해 행위해나가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 부분을 잘 해결해야 이런 생사현실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대단히 입체적이고 진짜처럼 실답게 여겨지고
매 순간 생생하게 얻게 되는 그런 현실에서
앞과 같은 바탕에서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한 바탕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중생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계, 정, 혜에 해당하는 수행 즉,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방편 원, 력 지와 같은 수행을 정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직 인도 표준시각으로 보면 오전이기에 쉬는 가운데 식사를 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런 식사를 하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식사를 하는 가운데 갖는 생각도 문수보살님이 화엄경 정행품에서 제시한 내용을 떠올려서 임하고 또 다라니도 외우고 그런 가운데 임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