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잡담 ♥나의 분실사건수사
이전 조각글에서 마음현상과 관련해 나의 분실 문제를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로 놓고 살피려 했는데 글이 길어져서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넘어왔다.
요즘 조각글이 밀려 있기에 왠지 마음이 상쾌하지 않다. 그런데 한편 살피고 살펴도 평생 다 보지 못할 분량의 경전과 논서가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축복이다.
보석과 로또 등의 이야기도 적으려 했는데 결론만 말하면 수조원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얻으려고 한 내용 예를 들어 평안한 행복을 가장 쉽게 잘 얻게 해주는 것이 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는 품목을 보석이나 재산으로 여기고 대하기 쉽지만, tv 에서 보듯 일반적으로 그렇게 여기고 대하는 것은 고진감래의 형태던 감진고래의 형태던간에 수많은 고통과 재앙이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결국 경전에서는 가장 가치있는 보물로 불, 법, 승 이 세 가지를 드는 한편 수행자가 취해야 할 자산으로 다함이 없는 창고에 넣어 관리할 10 가지 자산을 나열하거나 7 가지 대표적 자산항목을 나열하기도 하는데 일반적 입장에서 보면 별로 자산이 아닌 것 같이 여기기 쉽다.
그런데 왜 그것이 자산이 되는가하면 넓고 길고 깊은 관찰을 통해 볼 때 생사고통을 제거하는 한편 생사현실에서 장구하게 평안한 행복을 가져다 주기에 그렇다라고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본 조각글에 <나>의 분실사건과 관련해 좀 자세하게 살피고자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
우선 무언가 미리 자세히 살필 내용을 차례대로 살피고 나서 이 문제를 살펴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조각글을 순서대로 맞추어서 써나기도 그렇고 그런 생각끝에 순서는 나중에 맞추고 일단 살필 내용을 살펴보자는 생각도 하게 된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se3.jpg Author Mmtheriault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oers,_2010-12_CN-I,_Nebel_Schwafheim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oers,_2010-12_CN-I,_Nebel_Schwafheim.jpg English: Panoramic view over the Felde Author kaʁstn Disk/Cat ● [pt op tr] fr
그리고 그럼에도 이 현실에 <나>란 존재를 얻을 수 없다면 생사 현실에서 삶과 죽음을 놓고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형태로 여러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img2-9]
08pfl--image/8식-9.jpg
[img2-9] 는 자신의 정체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와 관련된 그림이다.
여기에는 1,2,3,4,5,6,7,8 이런 마음을 표시해 놓고 있다. 그런데 각 마음을 이런 ○ 형태로 표시하려면 먼저 마음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1 은 눈으로 보는 내용을 얻는 마음을 표시하고 2,3,4,5, 는 각각 귀,코,입,몸으로 청각,후각,미각,촉각을 얻는 마음을 표시한다.
그리고 일반적 입장은 예를 들어 위 내용 가운데 1의 부분, 즉 눈으로 보는 내용 □을 놓고 살피면 그 가운데 일부분을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고 대한다.
또 그처럼 눈을 떠 보는 내용 □을 자신의 외부에 있는 외부세계이자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 자신의 마음 밖에 있고 마음과는 구분되는 외부물질로 이해하고 그리고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다수가 객관적으로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1,2,3,4,5 각 감각현실에 공통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처럼 눈을 떠 보는 내용 □에 대해서 이들은 마음안 내용이어서 앞과 같은 이해는 올바르지 않은 망상분별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돗수가 다른 선글래스를 쓰고 벗고 하면서 바라보거나, 또는 손가락으로 눈을 눌러 물체가 두 개로 보이게 하는 실험을 해도 되지만, 다음 그림 [img2-02] 처럼 다른 주체를 함께 놓고 살펴도 된다.
[img2-02]는 어떤 주체 1 이 눈을 감아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눈을 뜨는 순간 보게 되는 내용 □을 대강 그림으로 그려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위 그림이 나타내는 상황은 1 이란 주체가 한편으로 자신과 비슷한 다른 철수나 영희를 옆에 놓고 철수와 같은 다른 사람 2에게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면서 그가 경험하는 변화내용을 보고하게 하고 1 이 이를 옆에서 관찰하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수 2 가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그 상황을 1 이 지켜보면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런데 철수 혼자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그런 보고를 함을 관찰하게 된다. 이는 실험 내용이 간단하므로 누구나 실험할 수 있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일반적으로 망상분별로 일으키게 되는 아상이나 타상 인상 이런 문제가 관련된다. 즉 다음이다. 관찰자 1은 그림에서 1 과 같은 부분을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고 그 부분을 붙잡고 자신이라고 여기며 늘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이는 자신의 자신에 대한 잘못된 망집인 '아상'의 문제와 관련된다.
또 한편 2 와 같은 부분을 놓고는 그 부분이 다른 철수나 철수의 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2 와 같은 부분을 붙잡고 그것이 철수라고 여기면서 늘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이들은 그런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그런 각 부분을 취하고 붙잡고 그에 바탕해 온갖 것을 행해나가는 망집 현상이다.
일단 위와 같은 판단이 엉터리임을 빨리 이해하려면 위 그림에서 2 를 놓고 판단해보면 쉽다.
위 그림에 그려진 것처럼 2 가 어떤 내용을 얻고 그런 내용이 2 의 영역에 5^ 형태로 머문다고 할 때 2 의 입장에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 2^나 또는 철수입장에서 다른 사람 예를 들어 1 이라고 여기는 1^ 부분이 과연 2 자신이고 또 다른 사람 1 이겠는가. 이것을 놓고 살피면 이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렇게 엉뚱한 부분은 그런 분별에 바탕해 매순간 붙잡고 일정한 업을 행해나감으로써 이후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는 것이 문제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이런 일반적인 이해 내용을 그대로 놓고 다음 문제를 이어 살펴나가기로 한다.
여하튼 위 상태에서 철수에게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면서 변화를 보고하라고 하면 보이지 않거나 보인다는 보고를 하는데 1 자신의 입장에서는 별 변화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 변화는 2 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가운데 2 의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일 뿐이라고 보게 된다.
이 부분이 일단 중요하다. 2 가 눈을 감았다 떳다 하면서 뜨는 순간 얻는 어떤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2 의 영역 안에서 2 가 얻는 주관적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은 1 도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하면서 눈을 뜰 때 무언가 내용을 얻는 그 상황은 2 와 마찬가지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은 일단 그 주체 안에서 얻는 변화임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이 그렇게 눈을 뜬 그 주체의 내부 영역에서 얻는 변화임을 확인하지만, 그러나 여기에 마음이 필요한가 아닌가는 조금 다른 문제다. 이는 또 다른 실험을 요구한다.
이미 반복했지만, 눈이 눈을 보지 못하듯 마음이 어떤 내용을 얻는 순간에도 마음은 마음을 직접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고 그것은 어떻게 확인하는가가 문제된다.
이것은 별도로 살핀 적이 있는데 눈을 떠서 볼 때 어떤 모습을 보게 된다면 눈을 떠서 그런 모습이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눈을 떠서 그런 모습이 '보이는가'?
이 가운데 어떤 내용으로 이를 이해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앞과 같이 눈을 뜨면 모습이 '나타난다'고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이가 무언가를 보는 현상을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 가장자리에 파장이 닿는 현상처럼 이해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여기서 비유로 든 호수의 가장자리 부분을 어떤 주체의 몸으로 비유한다면, 그런 부분에 파장이 닿아 변화가 있는 것을 곧 어떤 주체가 무언가를 보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이는 그 주체의 몸 일부분에 그런 물질적인 변화가 있는 것이 곧 마음현상이고 이와 별도로 마음이 따로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뒷 입장은 이와 다르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냄새맡거나 하는 등등은 마음이 미리 따로 있는 가운데 어떤 내용이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면 그런 변화가 있다고 해도 그 내용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일정한 마음을 있다고 하는 것은 여기서는 위와 같은 차이가 있기에 그런 마음을 시설해서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내용을 과거 조각글에서 설명했는데 이 부분을 살핀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어떤 내용을 얻게 되는 것은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이제 그런 바탕에서 각 마음을 1,2,3,4,5,6,7,8, 이런 형태로 다시 별도로 시설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하면 현실적으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어떤 모습을 본다면, 그 내용을 보는 순간 그 내용을 얻는 마음은 각 부분을 생생하게 구분해서 얻는 작용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그 각 부분에 대해 무엇무엇이라는 분별까지 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단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마음과 다시 이런 감각현실 각 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묶고 나누어서 분별하는 마음은 일단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없어도 위와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면 관계없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설명이 곤란하다.
예를 들어 멍한 상태로 눈만 뜨고 보는 상태 그리고 보지는 못하는데 상상이나 공상을 하며 생각은 하는 상태 이런 여러 경우들을 놓고 눈으로 보는 데 작용하는 마음과 분별을 하는 마음을 일단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위 그림에서 1,2,3,4,5 외에 다시 6 이라고 표시한 마음을 또 하나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표면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마음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집현상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위 실험을 통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얻는 내용이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하는 한편, 이들 내용을 외부세계나 외부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img2-9] 08pfl--image/8식-9.jpg
일반적 입장에서 자신이라고 보게 되는 내용은 위 그림에서 1! 부분에서 ◇ 로 표시한 것과 같은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감각현실을 얻고 이런 부분이 곧 자신이라고 관념분별 영역에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관념영역 안의 분별내용을 a@라고 6 부분에 표시하였다.
그래서 1! 라는감각현실을 놓고 관념영역에서 이리저리 묶고 나누어 그런 분별을 일으키지만,
그런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런 관념분별은 1! 라는 감각현실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 1! 와 같은 영역에 있다고 여기면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이 된다.
또 한편 ◇ 부분은 '자신'이라는 볼 그런 성격을 갖는 부분도 아니다.
우선 이 ◇ 부분은 갓난아이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매 순간 그 주체가 자신이라고 여기며 붙잡고 대하지만, 사실은 매순간 그리고 일생을 통해서 그 내용이 변한다.
또 한편 ◇ 부분은 쉼없이 변화하며 생노병사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그런 생노병사를 자신이 원해서 겪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 부분은 다른 외부 사물을 대하는 주관이 위치한 부분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것은 그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판단할 때는 눈을 떠 얻는 전체 내용 가운데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그래도 늘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디를 걸어간다면 매 순간 주변 풍경은 달라지는데 그러나 ◇부분은 늘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파악된다. [ 상 ] 그래서 ◇ 부분은 주인이고 나머지는 손님처럼 들고 나고 하는 외부사물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이다.
또 한편, 자신이 활동하고자 할 때, ◇ 부분만 뜻에 따라 움직이고 나머지 부분은 대부분 그대로 있다. 이런 사정으로 ◇ 부분은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의 뜻에 따라 같이 변화하고 그래서 뜻에 맞고 즐거움을 주기에 자신의 부분이라고 잘못 보게 된다. [락]
한편, 사과를 하나 놓고 눈을 떠서 보고 손을 두드려 소리를 듣고 코를 대어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진다면 그 각 경우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정보를 얻는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예를 들어 손으로 책상부터 자신의 몸 부분까지 죽 만져보면 책상부분을 만지는 경우와 자신의 손이 자신의 손이나 몸을 만질 때와는 차이를 느끼게 된다.
책상은 손 부분에서만 촉감을 느끼지만, 자신이 자신의 몸을 만질 때는 양쪽 부분이 다 촉감을 느낀다. 그런 결과 ◇ 부분은 자신의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반대로 ◇ 부분은 자신의 감관 및 주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아]
그리고 이런 사정들로 인해 ◇ 부분은 대단히 깨끗하고 우주보다 소중한 자신이고 다른 부분은 단순한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기고 집착을 갖게 된다. [정]
그런데 여하튼 이들 각 내용은 결국 현실에서 ◇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는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한편 이에 바탕해 현실에서 생각하고 생활하며 업을 행해가는 것을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여기게 하는 사정이 된다.
이들 판단이 갖는 문제점은 이미 앞 부분에 대강을 제시했는데 위 내용들은 자세히보면 하나같이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에도 역시 ◇ 부분은 현실에서 대강 대충 살필 때는 위와 같이 여겨지게 한다는 점에서 그 부분과 나머지 부분은 뚜렷하게 구분되고 그리고 ◇ 부분은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자신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망상분별이지만, 그러나 ◇부분이 정작 현실에서 왜 그런 특성을 달리 갖는가를 또 한편 이해해야 한다.
한편 이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또 추가해 살펴야 한다.
자신이 사과를 하나 놓고 위와 같은 실험을 했다. 그러나 위 내용은 단 한 번만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 대단히 많이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또 그런 조건이 갖추어지는 이상 수천년을 두고도 역시 같은 내용을 경험하였고 앞으로도 또 경험하게 되리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즉 천년전에도 어떤 사람은 그런 사과를 대해서 역시 그런 경험을 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이런 내용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철수나 영희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단순한 시각에만 국한하지 않고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관념분별까지 대단히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하나 생생하고 또 비교적 명료하고 뚜렷하게 얻게 된다.
또 그 상황에서 사과를 하나 집어 철수나 영희에게 건네면 철수나 영희도 그것을 받고 또 이와 마찬가지 보고를 듣게 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객관적인 실재라고 여기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반복해 살폈다.
눈으로 보는 사과 모습과 그 사과를 손으로 대서 얻는 촉감을 서로 비교하면 그 각 내용은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관념분별까지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비유하면 이들 관계는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관계처럼 대단히 서로 엉뚱하다.
또 한편 한 영역에서 얻는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조건 그 상황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지만,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것이므로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황금이나 바다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이들 내용은 이런 사정으로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생사현실은 꿈 자체는 아니어서 대단히 반복해 장기간 다수가 함께 얻게 되므로 이를 그대로 방치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이것이 곧 생사현실의 문제다.
이들 생사현실 안에서 겪는 내용들이 실험의 경우처럼 사과를 맛보는 단순한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극히 고통을 주는 경우도 그 사정이 위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옥에 묶여 무량겁에 걸쳐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형태로 그렇게 생생하게 뚜렷하게 고통을 받고 그런 생사현실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 상황을 놓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파악해서 수행을 통해 미리 벗어나고 대비를 잘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그 각 내용은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의 꿈을 꾸는 것처럼 벽돌을 놓고 사람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상황으로서 엉뚱하고 엉터리다.
그러나 한편 위에 나열한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 주체는 그 하나하나가 대단히 생생하면서도 실답고 뚜렷하게 분별되는 자신과 세계의 내용이라고 여기며 매 순간 그것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가게 되고 또 그로 인해 그처럼 생생하고 실다운 고통을 3 악도에 묶여 받아나가게 되므로 이것을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수행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각 영역에서는 본래 이처럼 문제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이상하게 위와 같은 현상을 겪고 또 그 현실내용이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다고 여기면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겪어 나가므로 문제인 것이다.
한편, 다시 위 내용과 관련해서 살펴야 할 여러 문제가 있다.
눈을 떠 보는 내용 □ 을 놓고 그 일정 부분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나머지 부분은 외부 세계와 외부대상 외부물질이라고 여길 때
자신이 사과를 만져서 다른 이에게 건네는 경우를 놓고 살펴보자.
이 경우 자신이 눈으로 보는 사과모습은 그런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자, 자신이 손으로 집고 건네는 동작을 할때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이들 내용 □ 전체가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하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임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본 사정이 그런데도 마음에서 이런 모습을 반복해 대하게 되는 것은 어떤 사정 때문인가.
그리고 앞에서 대상이라고 여긴 것들이 대상이 아니라면 이들 마음안 내용들은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단순하게 자신의 마음 외부에 자신이 눈을 떠 마음으로 얻어낸 내용과 그대로 일치한 내용이 있다고 여기는 입장이 있다
또는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본 내용과 유사하거나 비례하는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여기는 입장도 있게 된다.
앞 그림에서 2 가 얻는 내용을 5^ 라고 표시하는 한편 2 외부에 있다고 표시한 내용과 서로 비슷하게 그려 놓고 이들 관계를 파악하면 이런 혼동을 일으키게 되기 쉽다.
한편 이런 문제와 관련해 어떤 주체의 마음 밖에는 전혀 아무 내용도 없다고 여기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한 주체가 얻는 내용들은 모두 그 자신의 마음이 자체적으로 변화해 얻어낸 내용으로 이해하거나 마음이 다른 마음을 상대해 얻어낸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사과를 만져서 다른 이에게 건네는 상황을 놓고 보자.
이 상황에 자신의 마음 밖에 별도의 다른 주체가 있는가부터 문제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 만일 다른 주체가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상대에게 건네기에, 자신과 상대가 함께 사과를 보거나 만지는 동작을 하게 되는가. 이런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위 경우에 마음의 한 부분을 대상으로 삼아서 그렇게 각기 행하는가. 즉, 그것을 마음이 집어서 다른 이에게 건네고 또 다른 주체도 그런 마음부분을 대하여 무언가를 보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놓고 살펴야 한다.
이들 내용을 이처럼 기본적으로 살핀 다음 이들이 결국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관계처럼 서로 엉뚱한 내용을 망상분별로 관련지어 이해하면서 엉뚱한 바탕에서 업을 행해 나가는 바탕이 됨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앞에 제시한 여러 사례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사정으로 그에 대해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가를 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일단 시간도 늦어지고 글도 길어졌으므로 조금 쉬고 이어나가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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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louis-comfort-tiffany-
다시 위 그림을 보자. 1이 보는 4와 같은 꽃을 하나 놓고 논의하는 입장마다 어떤 혼동을 일으키는가를 보자 .
위 그림에서 2 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1이 보는 4는 2 가 마음으로 얻는 4^를 얻게 한 외부대상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1 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4 는 1 자신이 눈을 떠 얻은 내용이다.
그래서 이것을 서로 오락가락 혼동하면, 나중에 자신이 4 를 대할 때 이것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를 대해 자신이 얻는 내용이라고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지금처럼 살피면 그런 혼동을 평소 일으키지 않을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평소 자신이 보는 2 나 자신이 보는 1 부분은 엇비슷하게 같다고 보는 한편 2 를 놓고 보면 분명 4를 대상으로 해서 2 가 무언가를 보는 것으로 여기게 되어서 4 는 2 가 눈으로 대하는 대상이라고 쉽게 잘못 여기게 되는 한편, 또 자신이 보는 2 나 자신이나 상황이 같다고 여기면서 그런 상태에서 그 4 는 1 자신이 보는 모습이기도 하기에 이처럼 4 는 자신이 보는 모습이면서, 자신이나 다른 이가 함께 대하는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되기 쉽다.
나중에 어떤 주체가 눈을 떠 직접 곧바로 얻는 내용을 현량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그 내용이 옳다 그르다를 문제삼을 때도 이런 잘못된 혼동이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이 눈을 떠 얻는 내용은 마음 내용이라고 할 때 알고보면 4 와 같은 내용은 그것이 곧 대상이기도 하고 또 그 대상을 대해 자신이 얻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4 라는 한 내용에 다양한 지위를 다 부여해놓고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감각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는 내용은 '옳은' 인식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감각을 통해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할 때 이 내용을 무엇을 근거로 옳다고 할 것인가를 살피는 경우 이런 문제는 금강경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모든 상은 실로 상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놓고 잘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을 옳다 그르다 할 근거는 어디에 확립해 놓고 이를 판단한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눈으로 본 모습을 귀로 듣는 소리를 놓고 옳다고 한 것인가. 아니면 실상을 놓고 옳다고 한 것인가. 아니면 그에 대해 일으킨 분별을 기준으로 놓고 옳다고 한 것인가. 이런 검토를 해서 이 문제를 잘 정리해야 한다.
또 한편, 위와 같은 4 내용이 사실은 1 의 마음안 내용이라고 제시하면 앞과 같은 대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이제 그런 마음내용을 각 주체가 대상으로 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으로 다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여하튼 위 그림과 같은 상황에서는 2 가 눈을 떠 무언가를 얻는다고 할 때 1 자신이 보는 2 부분이 곧 2 라는 주체라고 잘못 여기는 것부터가 문제다. 이것이 상을 갖는 문제와 관련된다.
더 나아가 그런 2 가 4 를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를 얻는다고 이해하는 것도 엉터리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려면 2 가 얻는 내용을 위 그림처럼 일단 그려 놓고 생각해보면 쉽다.
즉, 2 의 입장에서 2 가 보게 되는 5^ 내용을 놓고 판단해보자.
이 때 2 의 입장에서는 2 가 보게 되는 1^ 라는 부분이 곧 1 이고 그 1^는 4^를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 내용을 얻고 그렇게 1 이 얻는 내용은 1^ 부분에 머문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이치에 맞는 주장이 아님을 1 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림같은 상황에서 1 이 지금 2 를 놓고 그런 형태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것이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놓고 그에 대해 타상이나 아상을 취하는 잘못과 관련된 문제가 된다.
그런데 과연 어떤 한 주체가 눈을 떠서 이런 모습을 본다면 그 상황에서 그 주체는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내용을 보는가. 이런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기본적으로 잘 정리하지 않고 이후 내용을 살피면 살필수록 혼동이 증폭되게 된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하나 손에 쥐고 살피는데 처음부터 자신이 대하는 사과모습을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라고 보지 않고 외부 사물이나 정신내 내용과 별개의 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한다면 이후 논의를 진행하기가 힘들다.
더 나아가 사과를 손으로 만져서 촉감을 얻을 때 그런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은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 사과 그 모습이다. 이렇게 잘못 이해하는 것도 곤란하다.
또 사과를 하나 건네서 영희가 받을 때 그렇게 영희가 사과를 받고 영희도 그것을 놓고 사과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자신 마음부분을 하나 떼어서 주어서 그렇다거나 공교롭게 자신이나 영희가 함께 마음에서 그런 내용을 자체적으로 변화시켜거 각기 그런 내용을 대한다. 이런 형태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더욱이 영희나 철수와 같은 주체의 모습도 결국 자신의 마음에서 얻는 내용일 뿐이니 자신 외에 다른 주체는 일체 없다고 여기는 것도 지나친 입장이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그 주체의 마음내용임을 이해해도 그 이후 이런 여러 엉터리 견해가 먼저 잘 정리되지 않으면 이후 논의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본적인 내용이 정리되면 그 이후 살펴나갈 주제가 대단히 많다.
그 가운데 다음 주제를 망상의 잔류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잘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마음 내용인데 그러나 왜 현실에서 자신이 어디론가 걸어가려면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던 부분만 유독 따라 변화하고 움직이는가.
그리고 자신이 사과를 하나 건네면 평소 왜 영희나 철수도 그것을 역시 사과라고 보고 또 그 사과를 그처럼 받게 되는가.
그리고 불설노인경에서 제시되는 내용처럼 매 순간 현실에서 생생하고 명료하게 각 내용을 얻는 가운데 한 주체의 생노병사나 오고감도 보게 되는데 왜 경전은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가. 이런 내용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오고감을 얻을 수 없기에 얻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 상태를 기준으로 하면 반대로 이런 내용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그에 바탕해서 또 생사현실에서 행해야 한다는 수행은 더욱이 또 하기 힘들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일단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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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등산훈련
이 주제와 관련해 이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논의하려면 마음이 지친다.
그런 가운데 쉬고 나서 글을 쓰려고 하니 또 숙왕화님이 오늘 등산 훈련을 떠나야 한다고 통고가 온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가.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이번 훈련을 마치면 1 달간은 훈련이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이것을 좋다고 해야 할지는 의문인데 이제 이후 논의를 살펴야 한다고 보는데 또 중간에 쉬게 되어서 안타깝다. 그런데 알고보면 효용은 기본적 내용에서 먼저 다 취할 수 있다.
이 논의를 통해 얻는 결론이 향하는 내용은 현실에서 대하는 것에 집착을 갖지 말고 그 바탕에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행을 그 생사현실에서 어렵다고 여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 이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런 수행을 하는 이나 상대도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는 무량한 보시를 행하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수행에 정진하라. 이런 내용이다. 다만 이런 내용이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제시되는가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공중 3 회전에 걸쳐 망집을 일으켰기에 현실에서 일으키게 된 망상분별을 오히려 정상적이고 옳은 내용으로 여기게 되었는가. 이 사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에 이것을 자세하게 살펴나가려고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위 사항을 실천하는 것은 오히려 늦고 위 사항을 실천하면서 여유가 있을 때 위 문제를 살피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본다.
현재 숙왕화님의 훈련 통고가 왔는데 꾸물거리거나 개인 사정을 핑계대고 훈련을 참가하지 않으면 이후 신변에 위험이 많게 되므로 억지로라도 참가해야 한다.
♥ 잡담 ♥공포의 산행 -보국문~칼바위능선
운전하는 이가 없이 오가는 경전철을 타고 가는 중이다.
비상시 탈출방안이 적힌부분을 보고 요령을 익히는 중이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돌리라고 적혀 있는데 경전에서 부처님의 오른쪽으로 돈다는 구절은 시계 반대 방향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는 시계방향으로 그려 놓고 있다. 그래서 혼동이 발생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나사 등을 돌릴 때 시계방향은 잠그는 방향 이렇게 또 외어야 한다. 경전에서는 부처님께 예를 올릴 때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돈다. 또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1711 년에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그냥 오르기도 힘이 드는데 여기서 저런 돌로 성을 쌓는 일을 한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설령 수만명이 죽 산에 나란히 서서 돌들을 들어 바로 옆으로만 하나하나 옮긴다고 해도 역시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을 마치면 여하튼 산을 내려와야 했을테니 힘이 들지 않았겠는가. 쌓아졌으니까 성이라고 여기고 그냥 다니지만, 직접 성을 쌓아야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이 있어서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것과 없어서 겪어야 할 고통을 비교하면 그래도 성을 쌓는 것이 낫다고 보기에 어쩔 도리는 없다. 그런데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성을 쌓다가 중간에 삶을 마쳤을 것도 같다.
산 윗부분에는 그래도 조금 단풍이 들어 있다.
보국문까지 올라올때는 좀 힘든 정도였는데 숙왕화님이 내려가는 코스가 여러개 있다고 하면서 여러 개 코스를 말하면서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가를 자꾸 묻는다. 그래서 가까운 곳 아무곳으로나 가자고 했는데 보국문쪽에서 위 사진 부분을 바라보고 사진찍을 때만 해도 이쪽으로 내려가는지는 몰랐다.
상당히 험해 보이는데 그래도 여기서 보기에는 계단도 있고 괜찮은 것처럼도 보인다. 알고보니 위 부분이 내려가는 코스 가운데 칼바위능선이라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 부분 전후 특히 계단 끝나고 나서부터 코스가 초보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공포스러웠다.
바위 옆에 아주 조그만 길이 있고 옆은 낭떠러지다.
위험부분을 거의 다 내려와서 쉬면서 찍어본 코스
본인은 다른 분이 자세를 낮추고 내려가면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숙왕화님도 그렇고 이 정도는 그냥 내려가도 된다고 하고 그냥 내려간다. 본인은 거의 바위에 몸을 붙여 미끄럼 타듯 하면서 내려왔는데 안 사용하던 근육을 사용하니 여기저기서 쥐까지 나는듯 하다.
중간에 힘들어서 잠깐 바위에 붙어 쉬는 데도 공포스럽다. 앞은 상태가 어떤지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간에 뒤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런데 숙왕화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중간에 도와준다고 하는데 구르거나 미끄러지면 별 도움이 안 되고 같이 떨어질 것 같아서 위 사진과 비슷한 코스들을 혼자 내려왔다. 중간 한 부분에서는 카메라를 넣은 가방을 숙왕화님이 대신 받아주어서 간신히 내려왔다.
그런데 왜 이런 코스로 선택해서 왔는가 물으니, 그간 다닐 때 북한산 다른 코스보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은 코스여서 별 기억도 없는데 본인이 유난을 떤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이번에 둘레길 코스에서 벗어나 등산코스를 처음 진입한 것인데 이렇게 북한산 코스들이 대부분 공포스러운 코스라면 앞으로 둘레길만 다녀야 할 것 같다.
오늘 여름에 신던 트래킹화를 신고 왔는데 그래도 신이 미끄럽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게 된다.
거의 다 내려와서 한숨 돌리고 찍은 사진이다.
오늘 칼바위 능선을 거쳐 내려오면서 공포체험을 해서 그런지, 칼국수가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칼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칼바위 능선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분들에게 왜 이런 위험한 곳으로 다니냐고 물었더니 웃음을 지으며 별로 공감을 안 한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도 중간에 남편을 떼어 놓고 자신만 올라온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올라온 곳들은 괜찮냐고 물으니 몇 코스가 좀 위험하다고 답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걱정을 하게 되는데 또 내가 내려왔던 코스는 어떤가 물어서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고 했는데도 계속 올라간다. 생각해보면 여성분들이 더 심한 것 같다.
연구실에 돌아와 발도 아프고 한참 쉬었다. 오늘 다녀온 등산로에는 히례라는 다라니를 붙여 놓고 왔는데 히례로 시를 지어 보라고 하니 숙왕화님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히말라야를 올라가듯 수행을 하자. 례알? 당연하지
이런 이상한 시를 짓는다.
오늘 등산을 통해 공포체험을 하고 돌아와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쉬면서 히말라야산에 등반한 산악인들이 눈사태로 희생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오늘 숙왕화님이 산을 내려오면서 그 코스를 그렇게 본인이 공포스럽게 느낄 줄은 몰랐다고 하는데 어떤 코스가 위험한가는 개인적으로 다 상대적이어서 다 다르겠지만,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조심은 해야 한다고 본다.
바위들 옆에 미끄러질 듯한 흙으로 된 한 30 cm 정도되는 조그만 길만 있고 그 옆을 내려다 보면 낭떨어지가 보여서 공황증세까지 일어나려고 하는데 숙왕화님이 자신이 도와준다고 되돌아와 그 좁은 길 옆에 선 채로 내가 맨 가방도 받아들고 자신 안쪽으로 바위를 붙잡고 그냥 걸어가면 된다고 하는데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해도 거기에서 굴러 떨어지면 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