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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7-24_대당내전록-K1057-005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7-24_대당내전록-K1057-005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7. 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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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내전록』
K1057
T2149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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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대당내전록』 ♣1057-005♧




제5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唐內典錄 卷第五

K1057

대당내전록 제5권



장안[京師] 서명사(西明寺)의 석씨(釋氏:道宣) 지음



1. 역대중경전역소종록 ②


후주(後周)ㆍ진조(陳朝)ㆍ수조(隋朝)ㆍ황조(皇朝)




15) 후주우문씨전역불경록(後周宇文氏傳譯佛經錄)




계속해서 난리가 나서 위(魏)나라와 진(晉)나라가 패권을 쥐어 

각각 한 시대를 열어 서로를 가리켜 

거짓된 왕조[僞朝]라고 했으며, 

인의(仁義)는 사라져 간 데가 없고 덕행(德行)은 망가져 제 모습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러 대(代)에 국사(國史)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옳고 너희들은 그르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리고, 

한 쪽이 선정을 베풀었다면 한 쪽은 학정을 한 것이니, 

모두 합당한 것이 못된다. 

누가 감히 그것을 판단 내리겠는가? 


그래서 북위에서는 강남을 섬나라 오랑캐[島夷]라고 말하였고, 

남쪽의 진(晉)나라에서는 하내(河內)를 흉노 오랑캐[獯鬻]라고 했다.

주(周:북주)나라는 북위(北魏)의 국운을 승계하였는데, 

북위는 진나라의 기반에 인접했다. 

나머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제왕은 근거할 곳이 없었다. 

송(宋)ㆍ제(齊)ㆍ양(梁)ㆍ진(陳)이 지배할 때도 자연 벼슬아치가 있었고, 

나라가 망하고 황제가 몰락할 때도 마침내 제멋대로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周)의 선조는 우문각(宇文覺)인데, 

바로 서위(西魏)의 대승상(大丞相) 우문흑태(宇文黑泰)의 세자(世子)였다. 

우문흑태가 고양왕(高陽王)으로 있을 때 위(魏)나라 황제가 낙양에서 서쪽 장안(長安)으로 천도(遷都)했다.37) 



그래서 복식과 장식衣幡을 검은 색으로 고치고 대통(大統) 원년(535)이라 하였고, 

18년 만에 연호를 다시 고치고 폐제(廢帝)를 옹립하였다. 

위제왕(魏齊王)38) 4년(553)에 황제가 붕어하고 우문각이 위(魏)나라의 선양을 받지만 그 해에 폐위되었다. 


동생인 육(毓)이 즉위하여 4년 만에 사망하고 동생 옹(邕)이 즉위하였는데, 

태조(太祖)의 셋째 아들이었다. 

황무지를 개척하고 크게 세력을 떨쳐서 군소의 여러 나라를 제압하였다. 

제위 12년에 숙부인 대총재(大冢宰) 진국공(晉國公) 우문호(宇文護) 부자 10인과 대신 6가(家)를 살해하고 

건덕(建德, 572~578)으로 연호를 바꿨다. 

3년 만에 도사(道士) 장빈(張賓)을 맞아들이는데, 

요망하게도 “불법은 국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니 그것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건덕 6년(577)에 동쪽으로 북제(北齊)를 평정하였는데, 

전대(前代)로부터 수백 년간 내려오던 국가나 민간에서 건립한 사탑(寺塔)을 모두 파괴하고 그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불상을 녹이고 경전을 불태웠는데 팔주(八州)의 불사(佛寺) 4만여 개소를 제왕과 공후에게 하사했다. 

세 방면으로 스님들 3백만 명을 환속시켜 호적에 귀속시켰다. 

황제는 주(周)나라를 크게 하나로 통일하여 천하에는 특별히 도모할 것이 없다고 말했으며 뜻이 고상하고 생각이 멀리까지 미쳤다. 



다시 선정(宣政, 578)이라고 연호를 고쳤는데 5개월 만에 죽었다.

태자 윤(贇)이 즉위하여 제왕(齊王) 부자 8인을 죽이고 대성(大成, 579)으로 연호를 고쳤다. 

2월에 아들 연(衍)을 태자로 세우고 그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대상(大象, 579~580)으로 연호를 고치고 스스로는 천원황제(天元皇帝)라고 했다. 


그리고 네 황후를 세웠는데, 

위의(威儀)와 복식을 옛날보다 갑절이 되게 했다. 

대상 2년(580) 5월에 천원황제가 사망하자, 

아들 연(衍)이 즉위했고 정월 1일에 대정(大定, 581)으로 개원했다. 


2월에 주(周)나라를 수(隋)나라로 넘겼으며, 

모두 다섯 황제 25년간 장안에서 다스렸다.


전역 사문(沙門)은 11인이며, 

번역한 경(經)ㆍ논(論)ㆍ천문(天文)ㆍ요(要) 등 32부 도합 104권을 후주(後周)의 불경 목록으로 삼는다.





사문 석담현(釋曇顯)1부 20권, 

경(經)ㆍ전(典)

사문 양나발타(攘那跋陀)1부 1권, 

논(論)

사문 달마류지(達摩留支)1부 20권, 

범천문(梵天文)

사문 사나야사(闍那耶舍)6부 17권, 

사문 야사굴다(耶舍崛多)3부 8권, 

사문 사나굴다(闍那崛多)4부 5권, 

사문 석승면(釋僧勔)2부 2권, 

전(傳)

사문 석혜선(釋慧善)1부 8권, 

논(論)

사문 석망명(釋亡名)11부 11권, 

논(論)ㆍ명(銘)ㆍ전(傳)

사문 석정애(釋靜藹)1부 11권, 

삼보집(三寶集)

사문 석도안(釋道安)1부 1권, 

삼교론(三敎論)




(1) 석담현(釋曇顯)


주중경요(周衆經要) 22권

백이십법문(百二十法門)


이상은 2부 23권이다. 

위(魏)나라 승상(丞相)이자 왕을 지낸 우문흑태(宇文黑泰)는 불교의 가르침을 크게 발전시켰고 대승불교를 매우 숭상했다. 

비록 모든 국정을 관할하고 있었지만 항상 불ㆍ법ㆍ승 삼보를 선양하였고, 

집안에서도 늘 백여 명의 훌륭한 스님에게 공양을 했다. 

경론을 깊이 공부하고 대승을 강론하기까지 하였으며, 

사문 석담현 등을 시켜서 대승경전에 의거해서 『보살장중경요(菩薩藏衆經要)』와 『일백이십법문(一百二十法門)』을 편찬토록 하였다. 

불성(佛性)에서 시작해서 융문(融門)에서 끝마쳤는데, 

강의를 할 때에 항상 강술을 하고 오래도록 일정한 법칙이 되게 해서 기존의 오시교적(五時敎迹)3)을 대신하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산동(山東)과 강남(江南)에 유행하고 있다. 

비록 학문의 바다이자 모범[軌儀]이라고 하지만 닦으면 다시 이를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향 사르고 촛불을 켜며, 

범패[梵音]와 부처님께 예배하고 찬탄하는 것까지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늘 일에는 핵심이 있고 강령에는 근거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2) 양나발타라(攘那跋陀羅)

오명론(五明論)첫째 성론(聲論), 

둘째 의방론(醫方論), 

셋째 공교론(工巧論), 

넷째 주술론(呪述論), 

다섯째 부인론(符印論)이다. 

주(周) 2년(558)에 번역했다.


이상은 명제(明帝) 때 중국말로 지현(智賢)인 파두마국(波頭摩國) 삼장율사(三藏律師) 양나발타라(攘那跋陀羅)가 사나야사(闍那耶舍)와 함께 장안(長安) 구성(舊城)의 바가사(婆伽寺)에서 번역했다. 

야사굴다(耶舍崛多)ㆍ사나굴다(闍那崛多) 등이 전역하고 사문(沙門) 지선(智僊) 등이 받아 적었다.


(3) 달마류지(達摩留支)

바라문천문(婆羅門天文) 20권천화(天和) 연간(566~571)에 번역했다.


이상은 무제(武帝) 때 중국말로 법희(法希)인 마륵국(摩勒國) 사문 달마류지가 대총재(大冢宰)인 진탕공(晉蕩公) 우문호(宇文護)를 위해서 번역했다.


(4) 사나야사(闍那耶舍)

정의천자소문경(定意天子所問經) 5권『대집경(大集經)』에서 나왔다. 

천화(天和) 6년(571)에 번역했으며, 

사문 원명(圓明)이 받아 적었다.

보적경(寶積經) 3권천화 6년(571)에 번역했다. 

사문 도변(道䛒)이 받아 적었다.

여래지부사의경(如來智不思議經) 3권

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 4권일명 『불십지경(佛十地經)』이라고도 하며, 

일명 『일체불행입지비로자나장경(一切佛行入智毘盧遮那藏經)』이라고도 한다. 

천화(天和) 5년(570)에 번역했으며, 

상의동(上儀同)인 성양공(城陽公) 소길(簫吉)이 받아 적었다.

불정주경병공능(佛頂呪經幷功能)보정(保定) 4년(564)에 번역했다. 

학사(學士) 포영(鮑永)이 받아 적었다.

대운륜경청우품제일백(大雲輪經請雨品第一百)천화 5년(570)에 번역했다. 

사문 원명(圓明)이 받아 적었으며 처음으로 번역했다.


이상 6부 17권은 무제(武帝) 때 마가타국(摩伽陀國) 삼장선사(三藏禪師), 

중국말로 장칭(藏稱)인 사나야사(闍那耶舍)가 두 제자 야사굴다(耶舍崛多)와 사나굴다(闍那崛多) 등과 함께 대총재(大冢宰) 진탕공(晉蕩公) 우문호(宇文護)를 위해서 장안(長安) 구성(舊城) 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번역했다. 

주국(柱國) 평양공(平陽公) 후복후(侯伏候) 만수(萬壽)가 총감독이 되어 검토하고 바로잡았다.


(5) 야사굴다(耶舍崛多)

금광명경경광수량대변다라니(金光明經更廣壽量大辯陀羅尼) 5권두 번째 번역이다. 

귀성사(歸聖寺)에서 번역했으며, 

지선(智僊)이 받아 적었다.

수발타라인연론(須跋陀羅因緣論) 2권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번역했으며, 

사문 원명(圓明)이 받아 적었다.

십일면관세음주병공능경(十一面觀世音呪幷功能經)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번역했다. 

상의동(上儀同) 성양공(城陽公) 소길(蕭吉)이 받아 적었다.


이상 3부 8권은 무제(武帝) 때 우바국(優婆國) 삼장법사, 

중국말로 칭장(稱藏)인 야사굴다(耶舍崛多)가 어릴 때 함께 배웠던 사나굴다(闍那崛多)와 함께 대총재 우문호(宇文護)를 위해서 번역했다.


(6) 사나굴다(闍那崛多)

금색선인문경(金色仙人問經) 2권장안(長安) 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번역했으며, 

소길(簫吉)이 받아 적었다.

묘법연화보문중송게(妙法蓮華普門重誦偈)

종종잡주경(種種雜呪經)

불어경(佛語經)이상 3경은 모두 익주(益州) 용연사(龍淵寺)에서 번역했다.


이상 4부 모두 5권은 무제(武帝) 때 북천축(北天竺) 건달국(揵達國), 

중국말로 지덕(志德)인 삼장법사 사나굴다가 익주(益州)에서 총관(總管) 상주국(上柱國) 초왕(譙王) 우문검(宇文儉)을 위해서 번역했다. 

사문 원명(圓明)이 받아 적었다.


(7) 석승면(釋僧勔)

석노자화호전(釋老子化胡傳)

십팔조난도장(十八條難道章)


이상 2권은 신주(新州) 원과사(願果寺) 사문(沙門) 석승면(釋僧勔)이 찬술했다. 

석승면은 상법시대(像法時代)는 사법(邪法)과 정법(正法)이 서로 뒤섞이고, 

말세의 풍속[季俗]에는 지혜가 경박한 중생[澆情]들이 쉽게 서로 다투어서 진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워서 칭찬과 훼방이 뒤바뀐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18조로써 검토하고 삼과(三科)로 풀이하여 성인과 현인이 분명해지고 범속(凡俗)이 드러나게 하였다. 

그는 서문에서 간략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노자와 윤희(尹喜)가 서역으로 건너가서 오랑캐로 태어나 출가하여 노자는 경전과 계율을 설하고 윤희(尹喜)는 부처가 되어 교화를 하였다. 

또한 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귀곡선생(鬼谷先生)이 쓴 책이며, 

상산사호(商山四皓)4)가 주석을 단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사실을 잘 찾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두 이를 믿고 따르면서 구실로 삼았다. 

이런 이야기는 참으로 기이한 것이다. 

군자(君子)도 오히려 속일 수 없거늘 하물며 대성(大聖)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지금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가 진실이 아님을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세상 사람들이 착각해서 이름이나 문자에 가탁한 것이며, 

또한 말이 그 내용에 미치지 못하여 도리어 노자를 욕보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군자(君子)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는 무식한 이도(異道)가 부처님의 법과 다투는 것을 과시하려고 귀곡선생과 상산사호의 이름을 가탁해서 『윤희전(尹喜傳)』에 붙여 놓고 이런 이론(異論)을 만들어 범속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하기만 하고 익히지 않는 것은 공자도 허용하지 않았고, 

함부로 거짓을 지어내는 것은 노자가 경계하는 것이다. 

이 커다란 병폐는 지옥ㆍ아귀ㆍ축생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따져서 바로잡고 이 잘못을 구제해야 한다.

그런데 가르침은 내외(內外)가 있기 때문에 비슷하여 가려내기 어려운 점疑似이 있고, 

사람은 성인과 현인이 있기 때문에 흔히 본문(本門)과 적문(迹門)5)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지금 연월을 검증하고 사람이나 그 시기를 살피고 내경(內經)과 외전(外典)에 의지해서 여러 가지 참된 말씀을 채록하여 진위를 가려놓았으니, 

한 번 열람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8) 석혜선(釋慧善)

산화론(散花論) 8권


이상은 양주(楊州) 서현사(栖玄寺) 사문 석혜선(釋慧善)이 찬술한 것이다. 

혜선은 비담학(毘曇學)에 뛰어났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을 강의할 때는 항상 소승을 인용해서 내용을 증명했다. 

그래서 혜선은 경문에 근거해서 차례로 자세하게 풀이했다. 

비유하면 모든 별이나 달이 밝은 태양을 돕는 것과 같고, 

마치 수많은 꽃잎이 어지럽게 흩어져 떨어지는 것과 같아서 『산화론(散花論)』이라고 하였다. 

서문에서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술의 요체는 말은 간략하게 하면서도 이치는 풍부하게 하는 데 있다. 

나는 나름대로 여러 저작을 독파하였으나, 

지금 그것을 차례로 순서를 매기는 것은 바로 이 원칙에 말미암은 것이다. 

이 원칙에 매우 익숙한 사람은 거의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을 접하면 은근하고 문장을 대하면 쉽기만 하다.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군자는 무례한 마음[鄙心]을 생각하고 살펴보도록 하라.”

혜선은 태청(太淸, 

547~549) 말에 강릉으로 피했다가 승성(承聖, 

552~555) 말년에 관내(關內)로 들어갔는데, 

장안(長安)의 구성(舊城)에 있던 숭화사(崇華寺)에 머물렀다. 

주국(柱國) 총재(冢宰)가 따로 공양을 올리고 연회를 베풀 정도로 법력이 뛰어났다. 

세수 60여 세로 임종을 맞았다.


(9) 석망명(釋亡名)

지도론(至道論)

순덕론(淳德論)

견집론(遣執論)

불살론(不殺論)

거시비론(去是非論)

수공론(修空論)

영유론(影喩論)

법계보인명(法界寶人銘)서문도 아울러 실려 있다.

염식상문(厭食相文)

승애보살전(僧崖菩薩傳)보정(保定) 2년(562)에 성도(成都)에서 소신(燒身)을 하였다. 

분신일(焚身日)에 수백 리 안의 모든 사람들이 와서 보았다. 

육신과 뼈는 모두 불타서 없어졌지만, 

오직 심장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늘에서 꽃이 흩뿌려 내리는 등의 상서로운 모습은 모두 『승애보살전』에 실려 있다. 

비장방도 친견했다.

소법사전(韶法師傳)찬(讚)이 함께 실려 있다.

험선지식전(驗善知識傳)육과(陸果)의 『관음응험기(觀音應驗記)』를 본떠 지은 것이다.


이상 12권은 무제(武帝) 때 사문 석망명(釋亡名)이 저술한 것이다. 

석망명의 속성은 송(宋)6)씨이며 휘(諱)는 빠진 것 같다. 

아마도 남양(南陽)사람인 듯한데, 

양(梁)나라 경릉왕(竟陵王)의 친구였다. 

일찍부터 결혼하지 않고 있다가 양나라가 패망하자 출가(出家)하고 이름을 고쳐 촉(蜀) 땅으로 옮겨 살았다. 

제(齊)나라 왕이 서울로 들어와 가르침을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원래 사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환속하기를 요구했다. 

아울러 촉군(蜀郡)으로 소보(少保)를 보내고 따로 편지로써 권유했다. 

회답하기를 “여섯 가지 불가함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후반부는 대략 이러하다.

“사문이 계율을 지키면 마음과 입이 서로 호응합니다. 

내가 열거한 여섯 가지 조건에 만약 한 가지라도 거짓이 있다면, 

살아서는 푸른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고 신령이 나를 꾸짖을 것이며, 

죽어서는 무쇠 집게가 나의 혀를 뽑을 것이며 펄펄 끊는 구리물을 입 안에 부을 것입니다. 

우러러 해와 달과 별의 빛을 받으며 내 나이 60이 되도록 어두운 방 안에서도 내 마음을 속인 일이 없는데, 

하물며 밝은 세계에서 속이겠습니까?

또한 고국이 모두 멸망하고 일가친척들이 모두 쇠망하였는데, 

빈도는 어떤 사람이기에 홀로 오래도록 견딜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산 속에 자취를 거두어서 속세 밖에서 마음을 거두어 들였고, 

남은 목숨을 지탱하고 길러서 지혜로운 업을 도답게 닦을 수 있다면 이것이 저의 본래의 뜻입니다. 

그리하여 정사(精舍)에 몸을 기탁하고 왕성(王城)에서 걸식하면서 힘에 맡겨 도를 행하고 인연 따라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두 번째 저의 소원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에는 홀로 언덕과 골짜기에 거처할 것입니다. 

어떻게 허물어져가는 몸으로 오랫동안 염부제 땅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문집은 10권이 있는데, 

문장이 매우 맑으면서도 소박했으며, 

말할 때면 항상 선(善)을 권장하였다. 

질박함을 보존하고 화려함을 물리치니 세상에서 귀중하게 여겼다.

(11) 석현운(釋玄惲)

경복론(敬福論) 10권

약경복론(略敬福論) 2권

대소승관문(大小乘觀門) 10권

법원주림집(法苑珠林集) 100권

사분율승니토요략(四分律僧尼討要略) 5권

금강반야경집주(金剛般若經集注) 3권

백원문(百願文) 1권


이상 7부 131권은 경사(京師) 서명사(西明寺) 사문 석현운(釋玄惲)이 찬술한 것이다. 

현운의 본명은 세도(世道)46)였으며, 

율학(律學)에 정통해 명성이 높았으며, 

이전의 뛰어난 이들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그들의 글을 모으고 정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무를 삼았다. 

아울러 그것을 선별하기도 하고 소(疏)을 쓰기도 했고, 

여러 경전에 주(注)를 달아 풀이 했으며, 

경전을 번역한 사람과 연대도 정리하였다. 

대략 서술한 것이 앞과 같다.


(12) 석현범(釋玄範)

주금강반야경(注金剛般若經)

주이제삼장성교서(注二帝三藏聖敎序)


이상 2부는 보광사(普光寺) 사문 석현범(釋玄範)이 찬술한 것이다. 

현범은 어려서 출가하여 대승불교를 공부하였고, 

훌륭한 스승들에게서 학문을 배워 청정하고 넓은 경지를 이룩했다. 

용렬한 소인배들과는 무리를 짓지 않았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하늘을 벗어나는 심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인명정리(因明正理)의 학문을 널리 선양함으로써 승속[道俗]들을 깨우쳤다. 

별집(別集) 20권이 있는데, 

그의 신이한 능력을 서술하고 있다.

37)

효문제(孝文帝)와 당시 실력자 고환(高歡)의 관계가 악화돼 대치하기도 했는데, 

결국 황제가 관중으로 피하게 되었다. 

이때 고환은 업성에서 따로 효정제(孝靜帝)를 옹립하였다. 

이것으로 동위(東魏)ㆍ서위(西魏)의 분할이 시작되었다.

38)

고환의 아들 고양(高洋)이 550년에 황제로 즉위하여 국호를 북제(北齊)라고 하였다. 

이가 문선제(文宣帝)이다.

3)

오시(五時)란 남북조 시대에 연구하고 조직한 교상판석(敎相判釋)이다. 

석존이 성도이후 입멸할 때 까지 설법한 시기를 다섯으로 구분한 것이다. 

유송의 혜관(慧觀)과 유규(劉虯) 등이 처음 주장하여 남북조 시대에 유행했다. 

이후 수대(隋代)에 천태지의가 오시팔교(五時八敎)로 대성한 것이다.

4)

한(漢)나라 고조 때 세상의 어지러움을 피하려 상산(商山)에 숨은 동국공(東國公)ㆍ하황공(夏黃公)ㆍ각리선생(角里先生)ㆍ기리계(綺里季) 네 사람의 백발 노인을 가리킨다.

5)

본문(本門)은 진불(眞佛)은 아주 먼 옛날에 이미 성도했다는 데 근거하여 본지ㆍ근원ㆍ본체를 나타냄을 말한다. 

적문(迹門)은 이 세상에 형체를 나타낸 불은 근원이 되는 부처가 자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하지만 본문과 적문이 꼭 이런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사실과 이차적인 사실을 나타낼 때도 응용하는데 위의 본문에서는 이런 측면이 있다.

6)

고려대장경에는 종(宗)으로 나와 있는데 송ㆍ원ㆍ명 판본이나 『역대삼보기』에는 송(宋)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도 그것을 따랐다.

7)

겸(謙)은 『주역』의 64괘 중의 하나인데 남에게 겸손한 상(象)을 나타낸다. 

겸겸(謙謙)도 여기서 나와서 겸손하고 공경함을 뜻한다.

8)

『속고승전』 제23권(대정장 50, 

pp.629中~631上)

9)

후경은 원래 동위 이주영(爾朱榮)의 부하였다가 다시 북제 고환(高歡)의 부하가 된 인물이다. 

고환과 아들 고등이 그를 의심하자 양(梁)나라에 투항했다. 

이후 군사력을 확장하여 양의 중앙 정권에 반항하였다.

10)

갑족(甲族)은 지체가 높은 집안이나 권세를 가진 신분을 가리킨다.

11)

영정(永定) 원년(557)은 정축(丁丑)이고, 

병자(丙子)는 한 해 전인 556년으로 양의 마지막 연호인 태평(太平) 원년에 해당된다. 

양(梁) 경제(敬帝)의 두 번째 연호이자 양의 마지막 연호인 태평은 556년 9월에서 557년 10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사용하였다. 

557년 10월 경제는 진패선(陳覇先)에게 선위하고 황제에서 물러났으며 이로써 진(陳)나라가 건국되고 양은 멸망하였다.

12)

사리(闍梨)는 아사리(阿闍梨)의 준말인데, 

제자를 바르게 가르쳐서 인도할 만한 스승을 가리킨다. 

원래는 수계작법(受戒作法)을 행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스님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3)

중국의 양자강 이남인 강남 지역을 가리킨다.

14)

『대정신수대장경』을 따르면 고려대장경에는 없지만 송ㆍ원ㆍ명 세 판본에는 『사십이자문(四十二字門)』으로 시작하는 혜사(慧思)에 관련한 기사가 실려 있다고 한다. 

이 번역에서도 권말에 실었다.

15)

옥촉(玉燭)은 사철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임금의 덕이 옥처럼 아름다워서 사시가 화기의 상서를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아(爾雅)』 「석천(釋天)」에 “사시가 순조로운 것을 옥촉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16)

적약(赤若)은 적분약(赤奮若)을 말하는데 축년(丑年)의 다른 이름이다. 

즉 수나라가 건국한 581년 신축년(辛丑年)을 가리킨다.

17)

여기서 경(景)은 태양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의미가 심화돼서 하늘을 가리키게 됐다. 

그래서 경명은 천명(天命)의 다른 말로 사용된다.

18)

육관제도는 북주(北周)에서 설치한 중앙 정부의 조직이다. 

천(天)ㆍ지(地)ㆍ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의 6부로 나누어 구성하고 치(治:천관)ㆍ교(敎:지관)ㆍ예(禮:춘관)ㆍ병(兵:하관)ㆍ형(刑:추관)ㆍ사(事:동관)를 담당하게 했다.

19)

오성(五省)은 수(隋)나라에서 설치한 중앙 정부의 조직이다. 

내시성(內侍省)ㆍ상서성(尙書省)ㆍ문하성(門下省)ㆍ내사성(內史省)ㆍ비서성(秘書省)으로 구성된다.

20)

복택(卜宅)은 수도 후보지의 길흉을 점쳐보는 것을 말한다.

21)

사사(四事)는 수행하는 승려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물품을 말한다. 

음식ㆍ의복ㆍ와구ㆍ탕약을 가리킨다.

22)

황제의 칙령으로 유사(有司)에 의해 편찬된 것을 말한다.

23)

장빈(漳濱)은 와병(臥病)을 뜻하는 시어이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하나인 유정(劉楨)이 “내가 고질병에 한번 걸려들어, 

맑은 장수 물가에 몸을 숨겼노라[余嬰沈痼疾 竄身淸漳濱]”라는 표현을 쓴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문선(文選)』 권23, 

「증오관중랑장(贈五官中郞將)」에 나온다.

24)

욕계와 색계 중간에 대보방(大寶坊)이 있는데 석존이 여기서 『대집경』을 설했다고 한다. 

그래서 의미가 전하여 보방은 『대집경』을 가리키게 되었고, 

보방학은 이 경에 관련한 학문을 나타내게 되었다.

25)

본문에는 연도만 나와 있고 어느 달에 번역을 시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26)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불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사미(沙彌)ㆍ사미니(沙彌尼)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를 말하는데,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인까지 포함된 것이다.

27)

타발가한(他鉢可汗)은 타파르(他鉢 Tapar, 

572~581) 칸을 말한다. 

가한은 ‘khan’의 음역어로, 

몽골과 터키 지방의 군주를 말한다.

28)

삼보를 만난다는 것은 불교가 흥기하는 것을 뜻한다.

29)

『대정신수대장경』을 따르면 『고려대장경』에는 없지만 송ㆍ원ㆍ명 세 판본에는 『원돈지관(圓頓止觀)』으로 시작하는 지의(智顗)에 관련한 기사가 실려있다고 한다. 

이 번역에서도 권말에 번역해서 실었다.

30)

양지(涼支)는 지겸(支謙)과 지루가참(支婁迦讖)을 가리키고, 

양축(涼竺)은 축법호(竺法護)와 축숙란(竺叔蘭)을 가리킨다. 

그리고 일백(一白)은 백연(白延)이다.

31)

지겸(支謙)과 서진의 축법호, 

축숙란을 가리킨다.

32)

『능엄경』 등에서 나오는 말인데 흔히 설법의 좌석을 가리킨다.

33)

수나라 개황 12년(592) 문제가 칙령으로 25인의 고승을 선발하여 만든 조직이다. 

25중(衆)의 교화와 기강을 위한 것이었다. 

정부에서 불교를 국가의 질서 속에 편입시켜서 운영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승찬이 25중의 제1인 마하연장이 되어서 『십종대승론』을 저술했고, 

승곤이 독경법주(讀經法主)가 되어서 『논장』을 지었다. 

혜영이 25중주가 되어서 『상학론(傷學論)』을 지었다.

34)

글자를 기입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게 만든 종이를 말한다.

35)

죄업이나 업장을 소멸하는 일종의 의례이다. 

이 방식은 마치 산이 무너지듯 오체투지를 하며, 

남녀가 서로 뒤섞여 밀행을 한다. 

수나라 때 관에서 요망한 행위로 간주하여 금지시켰다.

36)

유사(有司)는 인명(人名)이 아니라, 

관직명(官職名)이다

37)

여기서 화체(化體)는 세속적 삶을 지향하는 몸을 가리킨다. 

혜원의 『사문불경왕자론』에서 제시된 개념인데, 

특히 세 번째 글인 ‘구종불순화(求宗不順化)와 체극불겸응(體極不兼應)’에서 잘 드러난다. 

사문은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세상의 일상사를 따를 수 없고, 

그러한 몸체와 궁극의 경지는 병존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결국 이런 것들을 통해서 혜원이 밝히고자 한 것도 사문이 세속적 권위에 대한 세속적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38)

『대정신수대장경』을 따르면 『고려대장경』에는 없지만 송ㆍ원ㆍ명 세 판본에는 「사념처관(四念處觀)」으로 시작하는 관정(灌頂)에 관련한 기사가 실려 있다고 한다. 

이 번역에서도 권말에 번역해서 실었다.

39)

암랑(巖廊)은 원래 궁전 곁에 있는 행랑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바뀌어 조정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40)

태종(太宗)의 능이다. 

섬서성(陝西省) 예천현(醴川縣)의 동북쪽에 있는 구종산(九嵕山)에 있다.

41)

『불배속집(不拜俗集)』은 출가자가 속인에게 경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언급이다.

42)

내금(內禁)은 원내(苑內) 또는 금내원(禁內苑)이라고 하는데 궁궐의 내전을 말한다.

43)

중국불교사 전체로 보자면 네 번의 법란이 있었다. 

흔히 이것을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란이라고 한다. 

북위의 태무제, 

북주의 무제, 

후주의 세종, 

당의 무종이다.이 『대당내전록』이 저작된 것은 당나라 제3대 고종 인덕(麟德) 원년(664)이고, 

당나라 무종은 훨씬 후대인 841~846년에 걸쳐 재위했다. 

당연히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법란에는 마지막 무종의 것이 빠졌다. 

그래서 세 번의 법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4)

여기서 이종(李宗)은 도교를 가리킨다. 

노자의 성이 이씨(李氏)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45)

영상(靈相)은 불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로 영상(靈像)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형상이 영험을 가지거나 신령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6)

송(宋)ㆍ원(元)ㆍ명(明) 판본에서는 도세(道世)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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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Paule Belle - Ou Est-Ce Qu'on Les Ent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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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ichi Junior College of Infant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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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ël - Caravane 



♥단상♥세금폭탄에 비상걸린 doctr님


평온한 연구 중인데 doctr 님이 비상 상태다. 





사정을 알아보니 세금 폭탄 때문이라고 한다. 

prince 님은 다른 문제가 겹쳐서 더 복잡하다. 


지금껏 무직 노숙 선상에 있던 연구원들만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생필품만 제외하고 그 외로는 

온갖 재화를 제한없이 보유할 수 있는 무한카드를 이미 연구실에 제공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세금이 오르면 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 

mun 님에 의하면 거래시 시세차가 발생하면 거의 전액을 세금으로 환수해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거래가 거의 이뤄지기 힘들게 된다. 

본인 생각에 그런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거래할 동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mun 님은 이런 경우에도 

시세를 반영하는 가운데 실수요자들간에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게 할 방안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다보면 

최종적으로 다음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소원의 성취방안과 맞닿게 된다. 


어떤 소원을 가질 때 

그것이 뜻대로 성취되면 도대체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인가.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 답을 얻고 이들 문제를 살피면 

해결이 쉽다. 


그런데 그 답이 얻어지지 않으면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배멀미를 심하게 하게 된다. 

doctr 님이 연구실 후원하는데 지장이 없으려면 

위 방안으로 조속히 안정이 되어야 한다. 


잘 살펴보면 전통 사찰들이 하나같이 

불로소득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깊은 산속에 하나씩 세운 사찰이 

오늘날 갖는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그 사찰을 전부 다 보유한 가운데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보면 

한 구석에서 경전을 꺼내 살피고, 

수행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무한카드를 굳이 여기에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방안으로 

경전 연구 + 수행 = 세계 사찰 전체 보유

이런 상태가 바로 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7/2564-07-24-k1057-005.html#5437
sfed--대당내전록_K1057_T2149.txt ☞제5권
sfd8--불교단상_2564_07.txt ☞◆vahs5437
불기2564-07-24
θθ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관심문(觀心門). 불교의 교학, 곧 이론적 교리조직의 부문으로, 석존 일대의 교설을 자기네 종파의 입장에서 분류 판별(判別)하여, 지혜를 닦고 의리를 구명함을 말함.

답 후보
● 교상문(敎相門)
구리성(拘利城)
구상(九相)
구생기(俱生起)
구업(九業)

구족계(具足戒)
구품혹(九品惑)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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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당내전록_K1057_T2149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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