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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1-09-02_가섭결경-K1027-001 본문
『가섭결경』
K1027
T2027
가섭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가섭결경』
♣1027-001♧
가섭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 [pt op tr] ▼mus0fl--Lorie - Sur Un Air Latino.lrc
● 경전 결집과정과 대승 위경설의 문제점
『가섭결경』은
경전이 처음에 어떤 계기로 결집이 되었는가에 대해 소개한다.
경전이 결집되어진 덕분에
오늘날 수행자는 쉽게 수행을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경전을 살필 여건도 달라졌다.
10 년전만 해도 현재와 상황이 달랐다.
또 20 년전만 해도 현재와 상황이 달랐다.
그 이전은 더 상황이 달랐다.
요즘은 훨씬 편해진 상태다.
과거에는 경전을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과거에 화엄경과 같은 경전을 보려면
집을 몇채 팔아야 판본을 얻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이트만 들르면
한문본이나 한글본을 쉽게 살펴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행을 잘 하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
아난 존자는 많은 경전을 외어서 결집을 하는데 주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라한이 아닌 상태여서 결집과정에서 배제되었다.
따라서 경전을 샅샅이 외어도
정작 수행결과를 증득하지는 못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대하는 많은 경전이
과연 석존이 직접 설한 내용이겠는가라고 의구심을 갖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결집과정을 잘 살펴야 한다.
서양이나 일본 문헌학자들이 이런 의문을 많이 제기한다.
그런데 이들은 또 대부분 수행력이 일천하다.
그런데 근대 이후 거꾸로 이들에게 불교지식을 의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불교 학자들 가운데도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승경전 대부분은 후대에 만들어진 위경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는 대승경전은 후대 불교 신자나 수행자가 창작해 낸 내용으로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승경전은 후대에 다른 이가 석존의 명의를 위조해 만든 창작물
또는 내용을 변조한 창작물로 여긴다.
○ 뛰어난 내용의 제시자가 명의가탁할 사정의 추정문제
오늘날 문헌학자는 기본 경전들은 석가모니가 직접 설법한 경전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내용을 비교해보면 대승경전이 훨씬 뜻이 깊고 내용이 풍부하다.
그런데 이런 대승경전을 위경이라고 가정해보자.
결국 대승 경전의 위작자는 석가모니부처님보다도 더 깊게 내용을 제시하는 뛰어난 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보다 못한 석가모니의 명의를 빌려 내용을 제시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추리는 사실은 엉성한 추리다.
요즘 열심히 화엄경 게송을 외운다.
그런데 가끔 첫글자만 생각나고 나머지 부분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경우 나머지부분을 프린트물을 찾아 확인해보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그냥 기억해 보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다 안 되면 혼자 끙끙거리면서 새 내용을 창작해서라도 만들어 보려고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경우 새 게송을 창작해내기가 쉽지 않다.
일정한 빈 구절을 경전 내용처럼 채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창작물을 그처럼 부처님 설법으로 위조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행위를 해도 정작 위조하는 이에게는 별 이익이 없다.
따라서 그런 위조자는 별 이익도 없이
단지 불교 교단에 좋던 나쁘던 어떤 영향을 미치고자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된다.
조금 이상한 경우다.
다른 이가 명의를 가탁해서 위경을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경우 그 위작자는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
○ 독창적인 내용 연구와 경전 위작의 문제
불교 경전이나 논서를 놓고 연구를 한는 가운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내용을 연구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이 경전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그래서 전체 경전과 논서를 다 뒤져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결국 그런 내용은 자신이 세계 최초로 알게 된 것이라고 하자.
기존에 있는 경전과 논서에 그런 내용이 제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가장 옳다고 자신이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처음 그 내용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옳다고 자신이 여긴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처님만 존중하고 자신은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다.
그래서 자신이 처음 알아낸 그런 내용을
부처님을 믿는 다른 이들이 좀 쉽게 받아들이게 하고자 한다.
그런 취지에서 부처님이 그런 내용을 설한 것이라고 거짓으로 숨겨 발표한다.
그래서 자신은 존재를 숨긴다.
그리고 그 내용을 과거 부처님이 설하신 것으로 위장해 경전을 편찬한다.
그리고 기존 불교 교단에서 경전을 보관하는 서고에 살짝 넣으려 한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그가 겸손한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것인가.
의문이 된다.
그런데 대승경전이 위경 창작물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과거에 대단히 깊은 내용을 잘 파악하고 뛰어나면서도 이처럼 겸손한 이가 많았다고 추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처럼 추정해야 한다.
어떤 이가 기존에는 없는 혁신적인 내용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런데 그가 지극히 겸손하다.
그런데 과거에 약간 불완전해 보이는 주장을 펼친 이가 또 따로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현실적으로 자신보다 더 인기가 있고 존중을 받는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그 명의를 위조해서 문헌을 유통시켰다고 하자.
이렇다면 대단히 겸손한 입장에서 그렇게 위작하는 것이 된다.
○ 기본 경전과 형태와 다른 체계와 형태로의 위작 추정 문제점
오늘날 근대문헌학자에게 대승 경전 위작설이 제기된 배경을 살펴보자.
그 사정은 불교 교리에 깊지 않는 근대문헌학자의 입장에서도
대승경전과 기본 경전의 형태나 내용 차이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승경전을 위작이라고 추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승경전이 위작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들 대승 경전은 기존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경전으로
보이게끔 위조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 형식이나 체계가 기존의 경전과는 너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누가 보아도 과거 경전과는 판이하게 형태나 내용이 다르다.
그래서 오늘날 문헌학자 눈으로 보면 쉽게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런 위조를 행한 이는 어처구니 없는 위조를 한 것이 된다.
즉 누구나 기존 경전과 전혀 다른 형태임을 알 수 있게 위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조지폐를 만들어서 유통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누가 보아도 기존 화폐와는 다른 형식과 형태로
위조지폐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경우 기존 지폐가 유통되는 곳에 그것을 유통시키기는 힘들게 된다.
그런데 정작, 위조를 하면서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형태로 위조를 했다.
그래서 기존과 판이하게 다른 형식으로 편찬을 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기존 불교교단에 투입시키는 데 성공을 했다.
이런 추리를 행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그렇게 차이가 뚜렷하게 위작하는 어리석은 위작자가 많았다고 추정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어리석은 이가 행한 위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또 한편 그렇게 차이가 뚜렷한 위작 경전을 부처님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함께 많았다고 추정해야 한다.
오늘날 어떤 이가 자신이 창작한 내용을 경전형태로 만들어
불교 대장경 안에 넣으려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자신의 저작물을 부처님 설법처럼 위조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기존 불교 교단에서 그런 내용을 경전으로 받아줄지는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뚜렷하게 형태와 내용이 다른 경전은
불교 교단안에서 당시 위조된 사실이 곧바로 발견되게 된다.
그래서 진정성이 문제되고 곧 폐기처분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오랜 기간에 걸쳐 오히려 널리 유통되고 보존되어 전해졌다.
그리고 오늘날 근대 문헌학자의 눈에도 그 차이가 뻔하게 보이는 형태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사정때문에 오늘날 문헌학자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들 추리는 이상하다.
그런 차이가 있음에도 교단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전승되어졌다면,
오히려 이들 경전은 그런 사정때문에 위조 유통된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 기록된 증거의 부재와 암송에 의한 전승 추리 문제
문헌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문헌적 증거나 기록과 같은 사료를 중시한다.
그런데 당시의 불교 경전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경전은 암송에 의해 전승되었다고 추리한다.
한편 암송으로 전승하기 힘든 방대한 경전 대부분은 후대에 위작된 것으로 추리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결집과정과 암송에 의한 전승 가설부터 먼저 검토해야 한다.
처음 결집시 당시 다른 아라한들은 아난보다 더 수행정도가 깊은 상태였다.
그런데 직접 경전을 결집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난에게 의존했다.
그래서 그 사정도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불교 경전이 문헌으로 편집된 증거는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문헌학자들은 불교 교단내 스님들이 수백년간 계속 암송만으로 경전을 보존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를 문자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이런 경우 처음 결집시 경전 내용을 아난으로부터 듣고
당시 스님들이 이를 모두 암송하게 되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아라한 가운데는 한 게송도 외우지 못하는 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주리반특과 같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아난이 경전 내용을 결집해 내자
모든 스님이 기억력이 좋아져 이를 모두 아난처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한편 이런 경우 한 스님이 외울 수 있는 분량만 전승된 분량으로 추정하게 된다.
그런 결과 한 사람이 암기할 분량을 넘는 분량은 후대에 위작된 내용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그래서 방대한 대승 경전은 대부분은 후대의 창작물로 추정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암송만으로 경전내용을 보전하는 것이 쉽다고 하자.
그렇다면 처음결집시 아라한들이 아난을 의존한 배경 사정이 의문이 된다.
처음 아난존자가 경전을 외어 송출하기 전까지는 경전의 결집이 곤란했다.
그런데 아난 존자가 경전 내용을 대부분 잘 기억하고 있어서 아난 존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난존자가 결집을 할 때
아난 존자가 이들 아라한들에게 모두 자신의 기억 능력을 복사해서 나눠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이후 계속해 스님들이 그런 능력을 다 갖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경전을 암송만으로 보존해 오게 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오늘날은 그런 분들을 주변에서 찾아 보기 힘들다.
그래서 오늘날은 왜 그러한가를 또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근대 문헌학자들은 앞과 같이 추정한다.
그리고 나중에 중국 등에서 경전이 수입된다.
그래서 문헌학자는 이 무렵에서야
비로소 경전들이 편찬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추정하는 것은 엉터리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오늘 본인이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기록이나 증거가 없다.
이런 경우 그 기록이 없기에 오늘 본인이 식사를 하지 않았으리라고 추리하는 것은 엉터리다.
오늘날 쉽게 보게 되는 여러 책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예를 들어 오늘 본인이 살펴본 책들이 지금 있다.
그런데 오늘날 종이는 한 100 년 지나면 종이가 다 삭아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면 기록이나 증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런 경우 이후 문헌학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추정하기 쉽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셔서 의상대사와 같이 유학을 떠나려다
가지 않고 중간에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과연 그런 주장은 어떤 물적 증거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의 진위가 문제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오늘날 그것을 입증할 도리가 없다.
해골이 그 장소에 지금 보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자세한 내역이 어느 문헌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대부분 평범한 내용은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이 모두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일주일전에 무언가 라면도 먹고 식사를 했다.
그런제 지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어떤 식사를 했는가에 대한 증거도 지금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아무 증거도 남아 있지 않다.
1 주일전도 그렇다.
10 년전에 그렇다.
그래서 10 년 전에 어떤 이가 중국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사실이라고 밝히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것이 문제되면 이런 일들은 하나같이 의문으로 남기 쉽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한 스님이 자다가 무엇을 마셨는가 안 마셨는가 등을
기록물 보관소에 기록해 보관하는 경우는 없다.
과거에도 마찬가지다.
경전에 기록되어 제시되는 내용들도 대부분 그런 성격을 갖는다.
아난존자가 그렇게 경전을 잘 기억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입증하는가.
그런 분이 요즘도 드물다.
당시 아난존자가 누구인지는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또 아난존자가 그런 능력을 정말 가졌는지는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여시아문 이런 내용이 그런 것을 입증해주는 증거는 아니다.
오늘날 누구라도 그렇게 문장을 시작해서 서술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논의하기가 상당히 곤란하게 된다.
○ 경전 보전과 암송 수행의 관계
한편 암송만으로 경전이 전승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방대한 경전이 오늘날 남게 된 배경은 대단히 불가사의하다.
수행자는 경전의 핵심 내용을 암송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는 경전 내용을 기록한 패엽이나 종이책이 있거나 없거나 이는 다르지 않다.
오늘날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오늘날 경전이 종이책이나 전자파일 형태로 있따고 해서
수행자가 암송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암송하는 능력과 수행 실천은 일단 별개다.
그리고 수행결과 증득도 마찬가지다.
어떤 운동 경기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경기 규칙도 잘 알고
그에 대해 하나하나 해설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경기에 임해
득점도 잘 하고 잘 뛰는가는 이와는 별개 문제다.
평소 경전을 놓고 연구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복사해 붙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내용을 직접 잘 수행한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수행 결과를 증득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연구한다.
그러나 그런 연구를 했다고
반드시 그 내용을 실천하고 그 결과까지 얻었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일단 필요한 내용을 외우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외우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외운다고 해서
곧 내용 자체를 실천하고 증득한 상태는 아니다.
남의 창고 안에 든 곡식의 수를 열심히 셀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끼니를 떼울 곡식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다.
경전을 외우고 보전하는 능력은
오늘날 메모리카드나 하드디스크가 우수하다.
어떤 경우는 테이프를 틀어 놓고 듣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경전 내용을 잘 살피지 못한다.
그래도 매번 사홍서원을 념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보리심을 일으켜 그런 서원을 일으키고 실천해가는 것이 수행이다.
그리고 그 이후 얼마나 그 내용을 많이 실천하는가가 중요하다.
경전 내용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천이 중요하다.
○ 내용의 신빙성과 진실성 문제
한편 대승경전이 위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대승경전에 너무 믿기 힘든 이야기가 많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따라서 불교 신자 가운데 상상력이 뛰어난 재가 불교신자나 문필가들이 창작해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그렇게 해서 유통된 것이라고 여긴다.
또 기본 경전에도 다른 세계나 하늘에 대한 내용이 제시되는 점에서
대승경전과 기본 경전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진실성 문제는 수행의 깊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르게 대하게 된다.
보통 부처님 세계를 1 불찰 이렇게 표현한다.
이는 지옥, 아귀, 축생세계가 갖추어진 각 세계를 10 억개 합친 것이 된다.
그래서 상당히 넓다.
그런데 수행자가 정려 수행을 행하면 색계 무색계에 들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가 대하는 세계는 일반 입장과 다르게 된다.
그래서 상대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오늘날 세계 여행을 한번 해보려고 해도 정확한 지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메뚜기나 코브라가 세계를 여행한다고 하자.
그리고 고양이 같은 동물이 또 세계를 여행한다고 하자.
그 경우 그 내용은 서로 제각각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해하는 세계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브라 입장에서는 눈을 뜨고 보아도
사람들이 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경우 그 자신이 경험한 내용이 절대적인 내용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은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인간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문헌학자들이 일정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는 주장도 그런 성격을 갖는다.
이는 메뚜기와 코브라가 경험한 내용과 사람이 경험한 내용의 차이와 같다.
다만 서로 경험하는 바탕이 다르면 서로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내용을 입증하거나 내세우기도 곤란하다.
이와 사정이 같다.
한편, 불교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내용이 불교의 가장 중요한 계율내용이다.
그래서 적어도 진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경전에서
그 배경을 허위로 제시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런 경우 그런 거짓으로 경전 전체의 진실성이 모두 의문시되게 된다.
여하튼 문헌학자들은 대승 경전을 그렇게 추정한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요즘은 그런 입장이 주된 정설이 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 개설서에는 대승 경전 위경설이 정설처럼 취급되어 소개된다.
그러나 내용을 살피면 대승경전이 제시하는 핵심 내용은 오히려 진리에 부합한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굳이 배경을 허위로 제시하면서 제시할 사정이 없다.
그래서 위와 같은 추정 전체가 오히려 잘못된 추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여러 내용을 놓고 문헌학자 입장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 para-end-return ◧◧◧
◈Lab value 불기2561/09/02 |
mus0fl--Bill Baxter - Embrasse Moi Idiot.lrc
♥ 잡담 ♥60-발마달라 지구 경비 상황도 살펴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제 승인이 오늘 중에 곧 나오리라 예상한다. 60 - 발마달라 - 고양이 Marjaryasana 자세 오늘은 60 - 발마달라 - 고양이 Marjaryasana 자세를 수련할 차례다. >>> [60 발마달라 고양이 마르자리 아싸나 Marjaryasana 자세]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8949&cid=51034&categoryId=51034 화엄경 아승기품의 다음 게송을 붙여 자세를 취하기로 한다. http://essay007.tistory.com/800 에서도 참조할 수 있다. [ 달라보다,50 하로나 , 마참예마,조,이부극아,60발마달라 ] ○知知菩見現 處清清修持 60발마달라,가나혜비,발,시예폐체,70게라 //60 발마달라 ,지지지지(업,의,품,종) 060■ 발마달라 阿麼怛羅阿麼怛羅為 一 ● 勃麼怛羅, ○知其業果,知,知,知,知[+의 품 종 수] 아마달라씩 아마달라가 한 ● 발마달라(勃麽怛羅)요, 아마달라, 知其業果不可說, 知其意解不可說, 知其品類不可說, 知其種性不可說, 지기업과불가설, 지기의해불가설, 지기품류불가설, 지기종성불가설, 업과 과보 아는 일을 말할 수 없고 그 뜻을 아는 일도 말할 수 없고 그 종류 아는 일도 말할 수 없고 그 종성(種性) 아는 일도 말할 수 없네. 출처: http://essay007.tistory.com/800 [선현지복 잡기] 60 발마달라 항목에 여러 내용이 붙어 있다. 설명한다면, 각 게송에는 숫자단위도 포함된다. 한편, 60 번 게송은 61 62 이런 번호와는 조금 다른 지위에 있다. 그리고 60 번대 내용을 모두 대표한다. 그리고 50 번대와 70 번대 대표와도 교류를 해야 한다. 그리고 60 번대 구성원들도 통합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아승기품에서 숫자 60 과 관련해 결합할 내용이 많다. 그래서 조금 복잡하다. 60 이하 61 62 등 게송의 첫글자는 '지지보견현 처청청수지'가 된다. 마참예마조이부극아 이런 내용은 60 번대 수의 단위와 관련된다. 요가 수행을 55 번 게송부터 붙여왔다. 여기서 '조이부극아'는 => 조복, 이교만, 부동, 극량, 아마달라의 첫글자를 뗀 것이다. 이런 수의 단위를 현실에서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 각 글자마다 그러나 해보니 조금 다르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이 차이가 난다. 오늘은 인턴연구원까지 옆에서 동참한다. 인턴연구원은 전에 이런 동작을 익힌 듯 하다. 동작을 잘 취하고 설명까지 해준다. 허리를 아래로 내릴 때는 고개를 하늘로 젖혀야 한다. 반대가 될 때는 반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요가 수련의 효과가 있다. 알고보면 요가 수련자들이 주변에 상당히 많다. 그러나 보다 자세하고 전문적인 설명은 전문가의 설명에 넘긴다.
그렇게 보면 ♥단상♥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7/2561-09-02-k1027-001.html#1577 sfed--가섭결경_K1027_T2027.txt ☞가섭 sfd8--불교단상_2561_09.txt ☞◆vewj1577 불기2561-09-02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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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라식(阿摩羅識)의 번역된 이름.
구역(舊譯)에서는 제9식이라 하고, 신역(新譯)에서는 제9식을 따로 세우지 않고 제8식의 청정한 부문을 말함.
답 후보
● 무구식(無垢識)
무루지(無漏智)
무명주지(無明住地)
무부무기(無覆無記)
무상(無相)
무상사(無上士)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오래된 조각글재정리 안내]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재검토시작 Lab value 2564/05/05/화/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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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표현 재정리 작업중
경전정리 (▽정리중) (▼마침)
논의 (○정리중) (●마침)
조각글 (☆정리중) (★마침)
○ [pt op tr]
● 가섭결경_K1027_T2027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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