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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2-02-16_대반야바라밀다경_550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2-16_대반야바라밀다경_550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2. 16. 23:55



®

『대반야바라밀다경』
K0001
T0220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50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 핵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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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50♧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50권_핵심
불기2562-02-16_대반야바라밀다경_550
http://buddhism007.tistory.com/4048

● [pt op tr] fr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50권

 

♣0001-550♧
『대반야바라밀다경』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50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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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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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제550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김월운 번역

 

■ 18. 공상품(空相品) ②

 

■ 그 때 선현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모든 현상은 모두가 분별로 지은 바로서 허망한 생각에서 생겼으므로
도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이 모든 보살의 얻는 공덕의 한량없고 그지없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 그리고 모든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도 역시, 

‘모든 형상은 분별로 짓는 바라
공하여 있지 않고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다’고 말하리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내공(內空)과 내지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을 잘 배워서 이미, 

‘모든 형상은 모두가 다 분별로 짓는 바라 공하여 있지 않고 허망하며 진실하지 않다’고 관찰했기 때문이니,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형상이 모두가 분별로 짓는 바라 공하여 있지 않고 허망하며 진실하지 않다’ 함을
여여(如如)하게 관찰한지라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여의지 않으며, 

매우 깊은 바라밀다를 여여하게 여의지 않은지라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얻게 되는 공덕도 한량없고 그지없느니라.”

 





구수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한량없고[無量] 그지없다[無邊]는 것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한량없다고 함은 이곳에서는 그 분량이 영영 그쳐버렸다는 말이요, 

그지없다고 함은 이 안에서는 수효가 다할 수 없다는 말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혹시 인연이 있어서 물질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씀하시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인연이 있기에 물질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무슨 인연 때문에 물질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시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할 수 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에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다만 물질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만이 공합니까. 

온갖 법도 모두가 공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나는 먼저 온갖 법은 모두가 공하다고 말하지 않더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비록 항상,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다’고 말씀하셨다손 쳐도
모든 유정들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에
제가 지금 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비단 물질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만이 공한 것이 아니므로, 

나는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한량없고 그지없다는 것은 바로 어느 것을 비유한 말[增語]입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한량없고 그지없다는 것은
바로 ≺공(空)≻하고 모양이 없고[無相] 소원이 없는[無願] 것을 비유한 말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한량없고 그지없다는 것은 다만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는 것 뿐입니까. 

아니면 다시 그 밖의 이치도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어찌 ‘온갖 법문은 모두가 공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여래께서는 언제나 ‘온갖 법문은 모두가 공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공이 곧 다함이 없는 것이요, 

공이 곧 한량이 없는 것이며, 

공이 곧 그지없는 것이요, 

공이 곧 그 밖의 이치인 것이니, 

그러므로 선현아, 

온갖 법문에 비록 갖가지의 말의 차별이 있다손 치더라도 뜻에는 차이가 없느니라.

 


■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여래는 방편으로써 다함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한량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그지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공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모양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소원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조작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생김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멸함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고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물듦을 여읜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열반이라고 말하기도 하나니, 

모든 이와 같은 한량없는 이치에는 실로 차이가 없건마는
모두가 이는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모든 유정을 위하여 방편으로 연설하는 것이니라.”

 




그 때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심히 기이하십니다. 

방편선교로 모든 법의 참성품을 말로는 연설할 수 없는데도 유정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도 모든 법의 참성품은 모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모든 법의 참성품은 모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온갖 법의 성품은 모두가 마침내 공[畢竟空]하기 때문이니, 

마침내 공을 연설할 수 있는 이는 없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도 더하거나 덜함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느니라.”

 

■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을진대, 

응당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6바라밀다에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하면
6바라밀다가 모두 있지 않아야 하고, 

이 6바라밀다가 모두 있지 않는다 하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려 하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보시 등의 6바라밀다는 모두가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며 또한 있지도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방편선교로, 

‘이와 같은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에는 더함도 있고 덜함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생각하기를, 

‘오직 이름과 모양이 있으므로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라고 한다’고 할 뿐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이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와 함께 하는 뜻 지음과
이에 의하여 일어나는 마음과 선근을 모든 유정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니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함이
마치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 미묘하고 매우 깊은데도 회향을 일으키는 것과 같나니, 

이 회향하는 방편선교의 뛰어난 세력으로 말미암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그 때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무엇을 말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법의 진여를 바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라 하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 모든 법의 진여는 더하거나 덜함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나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자주자주 많이 이와 같은 진여와 상응하는 뜻 지음에 머무르면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졌느니라.

이와 같이 선현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비록 더함과 덜함이 없다 하더라도
진여의 뜻 지음과 바라밀다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비록 더함과 덜함이 없다 하더라도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나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진여의 뜻 지음에 머무르면서
보시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졌느니라.”

 












■ 9. 심공덕품(深功德品)

 

■ 그 때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보살마하살은 처음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합니까. 

나중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합니까.

 

만일 처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 하면
처음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나중의 마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지라 화합한다는 이치가 없고, 

만일 나중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 하면
나중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앞의 마음은 이미 사라져서 화합한다는 이치가 없으리니, 

이와 같이 앞과 뒤의 심심소법(心心所法)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추궁하건대, 

화합한다는 이치가 없거늘 어떻게 선근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모든 선근을 쌓을 수 없을진대
어떻게 보살의 선근이 원만해져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등불을 켤 때에 처음의 불꽃이 심지를 태우느냐. 

나중의 불꽃이 심지를 태우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제가 알기로는 처음의 불꽃이 심지를 태우는 것이 아니로되 또한 처음의 불꽃을 여의지도 않으며, 

나중의 불꽃이 심지를 태우는 것이 아니로되 또한 나중의 불꽃을 여의지도 않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심지는 타고 있느냐?”

“세간의 현실에서 보건대 그 심지는 실제로 타고 있습니다.”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처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역시 처음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으며, 

나중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역시 나중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나니, 

그러면서도 모든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를 행하면서 모든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고 원만하게 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구수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와 같이 인연이 새기는 이치가 심히 깊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처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처음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고, 

나중의 마음이 일어나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로되 나중의 마음을 여의지도 않으며, 

이와 같은 모든 마음이 일어나는 그것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도 아니고, 

이와 같은 모든 마음의 일어남을 여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보살마하살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생기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이 이미 사라졌으면 다시는 생길 수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음이 이미 생겼으면 사라지는 법이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이 이미 생겼으면 반드시 사라지는 법이 있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라지는 법이 있는 마음이면 당연히 사라져야 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라지는 법이 있는 마음이면 필연코 사라져야 합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라지는 법이 없는 마음이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라지는 법이 없는 마음은 생겨날 수 있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겨나는 법이 없는 마음이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생겨나는 법이 없는 마음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법이 없는 마음이면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법이 없는 마음은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이치가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법이 이미 사라졌다면 다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이미 사라졌다면 다시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법이 이미 생겨났다면 다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이미 생겨났다면 다시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법의 참성품은 생겨나거나 사라짐이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참성품은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의 머무름이 마음의 진여와 같은 것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의 진여와 같이 마음은 그렇게 머무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음의 머무름이 진여와 같다면, 

이 마음은 진여와 실제(實際)의 성품과 같이 항상 머무르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은 진여와 실제의 그 성품과 같이 항상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법의 진여는 지극히 그리고 매우 깊은 것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진여는 지극히 그리고 심히 깊습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여 그것이 바로 마음인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여를 떠나서 마음이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 그것이 바로 진여인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을 떠나서 진여가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여가 진여를 볼 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진실로 진여가 있다고 보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어느 곳을 행하는 것이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모두가 행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도무지 행하는 이와 행할 바와 행하는 때와 행하는 곳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모든 행을 나타내는 법이 모두 움직이지 않은 까닭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행할 바가 무엇이겠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으뜸가는 이치[勝義諦]를 행하는 것이니, 

이 안에는 온갖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모양을 취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비록 모양은 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마하살은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모양을 무너뜨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마하살은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모양을 버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이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으뜸가는 이치에 대하여 만일 모양을 무너뜨리지 않고 모양을 버리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모양을 취하는 생각을 끊을 수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이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나는 지금 모양을 무너뜨린다. 

나는 지금 모양을 버린다. 

모양을 취하는 생각을 끊고 또한 모양과 생각을 끊는 길을 닦아 배우지도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행을 부지런히 닦고 배울 때에 생각을 끊는 길을 닦으면, 

그 때에는 온갖 부처님 법이 아직 원만하지 못했으므로 의당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 떨어져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가장 훌륭한 방편선교를 성취한지라 비록 모든 모양과 모양을 취하는 생각에 대하여 깊이 허물을 안다손 치더라도 무너뜨리거나 끊지 않고 속히 모양이 없음[無相]을 증득하리니, 

왜냐 하면 온갖 부처님 법이 아직 원만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그 때 사리자가 구수 선현에게 물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는 3해탈문(解脫門)을 닦는다면,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더 도움이 있겠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깨어 있을 때에 이 3해탈문을 닦음으로써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더 도움이 있다하면, 

그가 꿈속에서 닦는 것도 더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꿈을 꿀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차별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미 반야바라밀다를 얻었고 깨어 있을 때에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을 이미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렀다 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렀다 하리니, 

3해탈문이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더 도움이 되는 것도 그와 같아서 꿈 꾸거나 깨어 있거나 간에 그 이치에는 결함이 없습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들이 꿈속에서 업을 지으면 더 불어나거나 혹은 더 줄어짐이 있겠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은 모두가 꿈속에서 보는 바와 같다’고 하셨으므로 꿈에 지은 업에 불어남과 줄어듬이 없다 하면 깨어 있을 적에 지은 업도 불어남과 줄어듬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지은 모든 업에는 딴 때보다 더 불어나거나 줄어듬이 없는 것이며, 

반드시 깨어났을 때에 기억하고 분별하여야 꿈속에서 지었던 그의 업을 비로소 더욱 불어나게 하거나 줄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꿈에 남의 생명을 끊고 나서 뒤에 깨었을 때에 기억하고 분별하면서 스스로가 깊이 유쾌히 여긴다면 그 업은 더욱 불을 것이나, 

만일 깊이 뉘우치거나 부끄러이 여긴다면 그 업은 곧 더 줄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에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깨어 있을 때에 남의 목숨을 끊어 나서 뒤에 꿈속에서 혹은 스스로가 유쾌히 여기거나 혹은 깊이 뉘우치고 부끄러워한다면, 

깨어 있을 때의 그 업을 더욱 불어나게 하거나 줄어지게 함이 있겠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역시 불어나거나 줄어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어나거나 줄어짐은 깨어 있을 때의 명료한 마음 속에서 지은 것보다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반연함이 없는 일은 생각[思]이나 업(業)이 모두 생기지 못하고 반드시 반연함이 있어야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는 것인데, 

꿈속에서의 생각이나 업은 무엇을 반연하여 생기는 것입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에서나 깨어 있거나 간에 반연함이 없는 일에서는 생각이나 업이 생기지 않고 반드시 반연함이 있어야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반드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 가운데서 깨닫는 지혜가 있으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니, 

이로 말미암아 물듦을 일으키고 혹은 또 깨끗함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일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모든 법이 없고 깨닫는 지혜의 움직임이 없으면 역시 물듦과 깨끗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꿈이거나 깨어 있거나 간에 반연함이 있는 일이라야 생각이나 업이 비로소 생김을 알 수 있나니, 

반연함이 없는 일에는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반연한 바의 모두가 제 성품을 여의었다’고 말씀하셨거늘, 

어떻게 ‘반연함이 있는 일에는 생각이나 업이 생기고 반연함이 없는 일에는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비록 모든 생각이나 업이나 반연하는 일이 모두 제 성품을 여의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아 모양을 취하여 분별하고 세속의 것으로 시설하여 반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이 반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각이나 업이 일어나는 것이니, 

마치 무명(無明)이 반연이 되어 지어감[行]이 생기고 지어감이 반연이 되어 의식[識]이 생긴다는 등과 같아서 모두가 자기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모양을 취하여 분별하면서 반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실제로 존재하는 성품이 아닙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에게 말하였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보시를 행하고 보시한 뒤에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한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실제로 보시로써 위없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회향하는 것이 됩니까?”

 

선현이 말하였다.

“자씨(慈氏) 보살은 오래 전에 이미 큰 깨달음의 수기를 받으셨고 오직 한 생만 지나면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분이라 온갖 질문을 잘 대답하십니다. 

지금 이 모임에 계시니, 

청하여 물으심이 마땅합니다. 

보처(補處)께서는 반드시 대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사리자가 선현의 말대로 자씨 보살게 공손히 청해 묻자, 

때에 자씨 보살은 도리어 선현에게 따졌다.

“존자께서는 말씀하기를, 

‘자씨 보살이 이 뜻을 대답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어떤 것을 자씨 보살이라 하고, 

대답할 수 있다고 하십니까. 

물질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드러나게[顯]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형상[形]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물질의 공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우선 자씨라는 이름도 대답할 수 없고, 

물질도 대답할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대답할 수 없으며, 

드러나게 대답할 수도 없고, 

형상도 대답할 수 없고, 

물질의 공도 대답할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도무지 어떤 법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어떤 법도 대답할 바와 대답할 곳과 대답할 때와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대답한다는 것도 모두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무지 어떠한 법도 수기할 수 있는 것을 보지 않으며, 

어떠한 법도 수기할 바와 수기할 곳과 수기할 때와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수기한다는 것도 모두 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온갖 법의 본성품은 모두가 공하여 도무지 있지 않아서 둘이 없고 차별도 없으며 끝까지 추궁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사리자가 자씨 보살에게 물었다.

“어진 이께서 말씀하신 법이 증득한 바와 같습니까?”

 

자씨 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내가 말한 바의 법은 증득한 바와 같지 않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증득한 바의 법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사리자여, 

나는 도무지 증득한 바의 법의 제 성품이 있어서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나니, 

마치 마음으로 생각한 바와 같고 마치 말로 말한 바와 같습니다.

또 사리자여, 

모든 법의 제 성품은 몸으로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로 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뜻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온갖 법은 제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사리자가 생각하기를, 

‘자씨 보살은 깨닫는 지혜가 심히 깊으며, 

오랜 세월 동안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였기에 이렇게 설명할 수 있구나’고 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생각하기를, 

‘자씨 보살은 깨닫는 지혜가 심히 깊으며, 

오랜 세월 동안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였기에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리자야, 

너의 생각과 같으니라.

또 사리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아라한이 되었거니와 이 법을 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느냐?”

 

사리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증득한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말로는 연설할 수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나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서 이미 수기를 얻었고
지금 수기를 얻으며 장차 수기를 얻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장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으면, 

‘내가 부지런히 정진하면 반드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으리니, 

이미 깨달음에서 수승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고 할 뿐이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서, 

매우 깊은 법을 들어도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잠기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함이 없음은 필연코 스스로가 ‘나는 증득할 것이다’ 함을 알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이 혹시 너른 들판의 나쁜 짐승들이 있는 곳에 있게 되어도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온갖 안팎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며, 

항상 생각하기를, 

‘만일 어떤 나쁜 귀신이나 나쁜 짐승들이 나의 몸을 잡아먹으려 하면
나는 의당 베풀어 주어서 그들을 충족시켜 주어야 하며, 

이 선근으로 말미암아 나의 보시 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게 되어서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가까워지리라. 

나는 이와 같이 부지런히 바른 행을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을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온갖 축생이나 아귀가 없게 되리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혹시 너른 들판의 나쁜 도둑들이 있는 곳에 있게 되어도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온갖 안팎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즐거이 모든 선행을 닦으면서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하여 인색함이 없기 때문이며, 

항상 생각하기를, 

‘만일 모든 유정이 다투어 와서 나의 모든 살림 기구를 빼앗는다면 나는 공경하고 기뻐하면서 베풀어 주어야 하고, 

혹은 어떤 이가 이로 인하여 나의 몸과 목숨을 해칠지라도 나는 끝내 그에게 성을 내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또한 몸과 말과 뜻의 악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이러한 인연으로 나의 보시와 계율과 인욕의 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여져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빨리 가까워지게 하겠으며, 

나는 이와 같이 부지런히 바른 행을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온갖 빼앗는 것이나 도둑이 없게 되고, 

나의 불국토가 극히 청정하기 때문에 그 밖의 악도 없게 되리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이 혹시 너른 들판의 물이 없는 곳에 있게 되어도 역시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보살은 저절로 모든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며,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의당 모든 유정의 애타는 일을 끊는 법을 배우려 해야 하고 이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한다. 

설령 내가 이로 말미암아 목이 말라 타서 죽는다 해도 모든 유정들을 반드시 버리지 않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뜻 지음으로 묘한 법의 물을 베풀리라. 

기이하게도 반복하여서 이 모든 유정들은 이렇게 물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구나.

 

나는 이와 같이 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이와 같은 온갖 목이 말라 타고 물이 없는 들판이 없게 되리라. 

나는 방편을 써서 모든 유정에게 수승한 복된 일을 닦도록 하여서 살고 있는 데마다
모두가 여덟 가지 공덕의 물[八功德水]이 구족하게 하겠으며, 

나는 이와 같은 견고하고 용맹스런 정진으로 말미암아 방편으로 온갖 유정을 교화하고
이러한 인연으로 나의 정진 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여져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빨리 가까워지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이 혹시 흉년으로 곡식이 부족한 나라에 있을 때도 역시 두려워함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공덕의 갑옷을 입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며 불국토를 장엄하면서 서원하기를, 

‘장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을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이러한 온갖 흉년으로 굶주리는 일이 없고
모든 유정들이 쾌락을 두루 갖추며 마음대로 바라는 것은 생각하자마자
이르는 것이 마치 모든 천상에서 생각하면 모두 얻는 것과 같게 하리라. 

나는 의당 굳고 용맹스런 정진을 일으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법과 소원이 만족하게 하겠으며, 

언제 어디서나 온갖 유정들의 온갖 종류의 생활에 쓰는 살림살이면 모자람이 없게 하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질병을 만났을 때에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자세히 관찰하기를, 

‘병이라 하는 어떤 법이 없고, 

병든 이라 할 만한 어떤 법도 없다. 

온갖 모두는 공한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이 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나의 불국토에는 모든 유정들이 온갖 재앙이나 질병이 없으면서 수승한 바른 행을 부지런히 수행하게 되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혹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은 오랜 세월을 지나야 비로소 얻는다’고 생각되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지나간 세상의 겁의 수효가 비록 한량이 없이 있었다 하더라도
한 생각 동안에 기억하고 분별하여 쌓아서 된 것이라
오는 세상의 겁의 수효도 역시 그러한 줄 알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이것에 대하여 오래 걸려야 한다는 생각을 내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은 반드시 오랜 세월을 지나야 비로소 증득한다’고 하여
곧 두려운 생각을 내거나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과거 세상이나 미래 세상의 겁의 수효의 깊고 짧음은 모두가 한 찰나(刹那)에 내는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비록 오랜 세월을 지나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다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살피면서 두려운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온갖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두려워할 만한 법에 대해서도 두려운 생각을 내지 않으면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속히 증득할 줄 알아야 하리니, 

그러므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빨리 증득하고자 하면 응당 여래의 진실하고 청정한 공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의 갑옷을 입고 부지런히 닦아 배워야 하며, 

온갖 법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20. 

긍가천품(殑伽天品)

 

그 때 대중 가운데 한 천녀(天女)가 있었는데, 

이름이 긍가천(殑伽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말에 머리 조아리고 왼쪽 어깨만을 덮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곳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모든 법 안에서도 의혹이 없습니다. 

저는 오는 세상에 역시 유정들을 위하여 두려움이 없고 의혹이 없는 법을 말하여 주리이다.”

 

그 때 세존께서 곧 빙그레 웃으시니, 

입으로부터 금빛 광명이 나와 시방의 그지없는 세계를 두루 비추고는
범천 세계[梵世]로 돌아와서 큰 신통을 나타내다가 점차로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오른편으로 세 바퀴 돌고
신통 변화를 지은 뒤에 부처님의 정수리 안으로 들어갔다.

 

때에, 

긍가천이 이 일을 보고 나서 기뻐 날뛰면서 묘한 금꽃을 가져다 공경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여래의 위에다 뿌렸다. 

그러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 금꽃은 공중으로 솟아올라 한데 엇섞여서 머물러 있었다.

 

때에, 

아난다(阿難陀)가 이를 보고 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고 왼쪽 어깨만을 가리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손히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이렇게 빙그레 웃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웃으실 때에는 까닭이 없지 않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경희(慶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이 천녀는 미래 세상에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이루게 되리니, 

겁의 이름은 성유(星喩)요, 

부처님의 명호는 금화(金花)이리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지금의 이 천녀는 맨 마지막으로 받은 여자의 몸이며, 

이 몸을 버린 뒤에는 바로 남자의 몸을 받아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다시는 여자의 몸이 되지 않으리라.

 

여기서 죽은 뒤에는 동방의 부동 여래(不動如來)께서 계신 심히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그 부처님 처소에서 부지런히 범행(梵行)을 닦으리니, 

이 여인은 그 세계에서의 이름이 금화(金花)이니라.

부동불의 세계에서 죽은 뒤에는 다시 부른 부처님께서 계신 세계에 가 나되
한 불국토에서 한 불국토로 옮아가면서 항상 모든 부처님ㆍ세존을 여의지 않으리라.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한 대관(臺觀)으로부터 한 대관으로 옮아가면서
재미있게 놀고 쾌락을 누리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발을 땅에 대지 않는 것처럼, 

금화 보살도 그와 같아서 한 불국토로부터 한 불국토로 옮아가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태어나는 곳마다 언제나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리라.”

 

그 때 아난다가 가만히 생각하였다.

“금화 보살께서 부처님이 되셨을 때에도 응당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셔야 하며, 

그 모임에 있는 보살마하살들도 그 수효의 많고 적음은 지금의 부처님과 보살들의 모임과 같아야 하리라.”

 

부처님께서 그의 뜻을 아시고 경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생각과 같으니라. 

금화 보살이 부처님이 되었을 때에도 대중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실 것이며, 

그 모임에 있는 보살마하살들도 그 수효의 많고 적음이 지금의 부처님과 보살들의 모임과 같을 것이니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금화 보살이 부처님이 되셨을 때에 성문의 제자로서 열반을 얻는 이는 그 수효가 심히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곧 백 천, 

구지 등으로는 셈할 수 없고 다만 통틀어서 ‘한량없고 그지없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니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금화 보살이 부처님이 되셨을 때에 그 국토에는 나쁜 짐승이나 나쁜 귀신이 없고 원수도 도둑도 없으며
물이 모자라거나 흉년이 들거나 질병이 있거나 하는 등의 재난도 없으리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금화 보살이 장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때에 그 국토의 유정들은 모든 두려움이 없고
그리고 갖가지의 재앙이나 과실들이 없으리라.”

 

그 때 경희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의 이 천녀는 먼저 어느 부처님께 처음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선근을 싶었으며 회향하고 원을 세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희야, 

지금의 이 천녀는 먼저 과거의 연등 부처님(燃燈佛)께 처음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선근을 심고 회향하고 원을 세웠으며, 

그 때에도 금꽃을 부처님께 뿌리고도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기를 구하였느니라.

 

경희야,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과거에 연등 부처님 처소에서 다섯 송이의 꽃을 그 부처님께 받들어 뿌리고는 회향하고 발원하여
그 때에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었는데, 

연등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나의 근기가 성숙됨을 아시고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리니, 

명호는 능적(能寂)이요, 

세계 이름은 감인(堪忍)이며, 

겁의 이름은 현겁(賢劫)이리라’고 하셨느니라.

 

천녀는 그 때에 부처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의 수기를 주시는 것을 듣고 기뻐 날뛰면서
곧 금꽃을 부처님 위에다 뿌리고는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선근을 심고 회향하고 발원하면서
‘저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이 보살이 부처님이 되셨을 때에
역시 지금의 부처님과 같이 그 앞에서 저에게 큰 깨달음의 수기를 주시게 하소서’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에게 수기를 준 것이니라.”

 

그 때 경희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 날뛰면서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의 이 천녀는 오래전에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선근을 심고 회향하고 발원하여서 이제는 성숙되었사오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그에게 수기를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희야,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아서 그의 선근이 성숙되었었기에 나는 그에게 큰 깨달음의 수기를 준 것이니라.”

 

21. 

각마사품(覺魔事品) ①

 

그 때 선현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공을 익히며, 

어떻게 실제로 공삼마지(空三摩地)에 들어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응당 물질의 공함을 관찰해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함을 관찰해야 하나니, 

이렇게 관찰을 할 때에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하되 만일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법을 보지 않을 것이요, 

법을 보지 않으면 증득하려고 하지 않으리라.”

 

그 때 선현이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는, 

‘모든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법의 공함을 관찰하면서 증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시는데,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공의 등지(等持)에 머무르면서 증득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서 법의 공함을 관찰할 때에는 먼저 생각하기를, 

‘나는 의당 법의 모든 모양이 모두가 공함을 관찰해야 하고 증득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배우기 위하여 모든 법의 공함을 관찰하는 것이요 증득하기 위하여 모든 법의 공함을 관찰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바로 배우는 때요 증득하기 위한 때가 아니다’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아직 정(定)에 들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을 경계에 매어 두고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하는 것이요, 

정에 들었을 적에 마음을 경계에 매어두고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하는 것이 아니니, 

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할 때에 온갖 보리분법(菩提分法)에서 물러나지 않고 번뇌의 다함[漏盡]도 증득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광대한 지혜를 성취한지라 법의 공함과 온갖 종류의 보리분법에 잘 머무르면서 항시 생각하기를, 

‘지금의 이 때는 배워야 하고 증득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때에 보살마하살이 공의 삼마지에 머무르면서 공을 증득하지 아니한다면
이 때의 보살마하살은 역시 무상삼마지(無相三摩地)에 머무르면서도 모양이 없음을 증득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수승하고 굳고 깨끗한 선근을 성취하고서 항상 생각하기를, 

‘지금의 이 때는 배워야 하고 증득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의당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하고서 온갖 법에 대하여 공하고 모양이 없음을 관찰하여서
온갖 보리분법을 원만하게 해야 하리니, 

지금의 이 때는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이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고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니라.

 

선현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용맹하고 건장하여 위엄이 있고 세운 바가 견고하여 동요하기 어려우며, 

형색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여러 사람들이 보기 좋아하며, 

많고도 가장 수승한 공덕과 시라(尸羅)를 갖추었고 총명하여서 교묘한 말로 잘 대답하며, 

변재를 갖추고 행을 갖추어서 처소를 알고 시기를 알며, 

병법을 배워서 끝까지 이르렀고 방어함이 견고하여 많은 적을 능히 꺾으며, 

온갖 기능을 모두 잘 성취하고 모든 교묘한 일을 배워서 끝까지 이르렀으며,

 

생각하는 지혜를 갖추어서 행동이 날래고 법다우며, 

모든 경전(經典)에서는 두려운 바가 없음을 얻고 자비와 의협을 갖추어서 큰 세력이 있으며, 

온몸에 결함이 없고 모든 감관이 원만하며, 

권속과 재물을 두루 갖추지 아니함이 없고 뭇 사람이 존경하고 복종하면서 모두가 다 우러러 사모하며, 

하는 일들은 모두를 이루어 마치고 사업을 잘하기 때문에 공이 적으면서도 이익은 많으며, 

이런 인연으로 재물이 많은지라 온갖 유정들에게 잘 베풀어주나니, 

공양해야 할 이면 잘 공양하고 공경해야 할 이면 잘 공경하며, 

존중해야 하 이면 잘 존중하고 찬탄해야 할 이면 잘 찬탄하느니라.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은 이로 말미암아 갑절 더 뛰놀고 깊은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스스로가 경하해하지 않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겠습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 용맹하고 건장한 사람은 이와 같이 크고 왕성한 일을 성취한 이거니와, 

어떤 일이 있어서 그의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거느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중로에 험난한 벌판을 지나게 되었고
거기에는 나쁜 짐승과 도둑과 원수가 숨어 있는 등의 온갖 두려운 일이 많이 있었으므로
권속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지마는
그 사람만은 스스로가 온갖 기술이 많음을 믿음으로 위엄이 씩씩하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면서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위로하되,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괴로움이 없어 빨리 벌판을 지나서 편안한 곳으로 닿게 하겠습니다’고 하리라.

 

또 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벌판 가운데서 나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할 적에, 

그 사람은 이미 용맹과 기능을 갖추어 있고 어른과 권속을 사랑하며
모든 무기가 갖추어졌는데도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버리고 자기 혼자만이 그 험난한 곳을 지나가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그는 재주가 많으므로 능히 그 벌판에서 변화로 무기와 용맹한 정에 군사를 만들어
그 원수나 도둑들을 만났을 적에 그들이 그것을 보고서 저절로 물러나게 할 것이요, 

사랑하는 권속들을 버리고 자기만이 혼자 그 험난한 들판을 지난다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장사는 벌판 가운데서 나쁜 짐승이나 원수와 도둑들을 해치려는 뜻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스스로가 용맹스럽고 모든 재주를 갖추어서 두려울 것이 없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교묘한 재주로써 모든 권속을 거느리고 험난한 벌판을 지나가되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마을과 성(城)이나 혹은 대왕이 도읍하고 있는 안락한 곳에 이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은 모든 유정들을 불쌍히 여기어
생각을 사랑함[慈]과 가엾이 여김[悲]과 기쁘게 함[喜]과 버림[捨]에 머무르고
반야바라밀다의 수승한 선근을 섭수하여 방편선교로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바와 같이
모든 공덕을 가져다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하며, 

비록 공함과 모양이 없음[無相]과 소원이 없음[無願]을 갖추어 닦는다 하더라도
실제에 대하여 증득하려는 마음이 없으므로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큰 세력을 갖추어서 정진함이 견고하고 반야바라밀다의 수승한 선근을 섭수하여
방편선교로 맹세코 온갖 유정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 

이로 말미암아 반드시 안온하여 험난함이 없으면서 속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약 때에 보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온갖 유정을 불쌍히 여기면서 모든 유정을 반연하여 안락을 베풀려고 하면, 

이 때의 보살은 번뇌를 뛰어나고 악마의 무리와 2승의 지위를 초월하게 되나니, 

비록 삼마지(三摩地)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번뇌를 다함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공을 잘 익힌다손 치더라도 증득하려고 하지 않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때에 보살이 공의 해탈문에 잘 머무르면 이 때의 보살은 모양이 없는 선정에서도 능히 머무르며,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방편선교로 모양이 없음을 증득하지 않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2승의 지위를 초월하고 반드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날개가 굳은 새는 허공에 날아 올라 자유로이 날개를 치면서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으며, 

비록 허공을 의지하여 유희하면서도 허공에 머무르지 않고 허공에게 구애받지도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의 해탈문을 익힌다 하더라도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내지 부처님 법이 극히 원만해지기 전에는 끝내 그것에 의하여 영원히 모든 번뇌를 다하지 않는 줄 알지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어떤 장부가 활쏘기에 능숙하여서
자기의 기술을 나타내기 위하여 허공을 향해 활을 쏘고는
공중에 있는 화살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시 뒤의 화살을 앞의 화살 꼭지에 다 쏘고, 

이렇게 차츰차츰 오래오래까지 화살과 화살이 서로 잇닿아서 떨어지지 않게 하다가 만일 떨어지게 하려고
뒤의 화살을 쏘지 않으면 그 때에 그 화살들은 한꺼번에 떨어져버리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수승한 방편선교를 섭수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인행(因行)의 선근이 아직 모두 성숙되지 못했으면 끝내 중도에서 실제를 증득하지 않고 있다가 만일 때에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인행의 선근이 모두 성숙되면 그 때의 보살은 비로소 실제를 증득하고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한 줄 알지니라.

 

그러므로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은 같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수승한 방편선교를 섭수하고 모두 이와 같이 깊은 법 성품을 자세히 관찰하여야 하되, 

만일 모든 부처님 법이 아직 극히 원만해지지 못했으면 증득하려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 때 선현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심히 희유하여서 어려운 일을 능히 하나니, 

비록 공을 행한다 하더라도 공에 머무르지 않으며, 

비록 공이 선정에 든다 하더라도 실제를 증득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들을 맹세코 버리지 않으면서 이와 같이 수승하고 묘한 서원을 세우되, 

‘만일 모든 유정이 해탈하지 못하면, 

나는 끝내 버리지 않으면서 선근을 더욱 행하리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은 광대한 마음을 일으키는 까닭에 온갖 유정을 해탈하게 하려고 비록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의 세가지 삼마지를 끌어낸다 하더라도 방편선교를 섭수하는지라 실제를 증득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방편선교로 보호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니, 

언제나 생각하기를, 

‘나는 끝내 온갖 유정을 버리고 열반[圓寂]에 나아가지는 않겠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생각의 방편선교를 일으키는 까닭에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선현아, 

만일 모든 보살이 매우 깊은 곳에서 공함과 모양이 없음과 소원이 없음의 삼마지의 3해탈문이 행할 바의 곳을 혹은 이미 관찰했거나
혹은 장차 관찰한다면,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유정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얻을 바 있음[有所得]을 행하면서
 갖가지의 삿되고 나쁜 소견을 끌어내어 바퀴 돌 듯이 나고 죽고 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의 삿되고 나쁜 소견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깊은 공의 법을 말해주어 그들이 집착을 끊고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리라’고 하나니, 

그러므로 공의 해탈문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이러한 생각의 방편선교를 일으키는 까닭에 비록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 가지 한량없는 선정[四無量定]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섭수되기 때문이니, 

깨끗한 법[白法]이 갑절 늘어나고 모든 감관이 점차로 영리하여지면서 힘[力]과 깨달음 갈래[覺支]와 도의 갈래(道支)가 더욱더 불어나느니라.

 

또 선현아,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모든 모양[相]을 행하면서 갖가지의 집착을 일으키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바퀴 돌 듯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의 모든 모양의 집착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모양이 없는 법을 말해 주어서 모양에 대한 집착을 끊고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리라’고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자주자주 모양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가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먼저 방편선교와 일으키는 생각을 성취한 까닭에 비록 자주자주 모양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자함ㆍ가엾이 여김ㆍ기쁘게 함 및 버림과 그 밖의 모든 선정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섭수되기 때문이니, 

깨끗한 법이 갑절 늘어나고 모든 감관이 점차로 영리하여지면서 힘과 깨달음의 갈래와 도의 갈래가 더욱더 물어나느니라.

 

또 선현아,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그 마음에 늘 항상하다[常]는 생각과
즐겁다[樂]는 생각과 ≺나(我)≻라는 생각과 깨끗하다[淨]는 생각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뒤바뀐 집착을 끌어 내어서 바퀴 돌 듯이 나고 죽고 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의 네 가지의 뒤바뀜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나고 죽음은 항상 함이 없고 즐거움이 없고 나가 없고 깨끗함이 없으며, 

오지 열반만이 미묘하고 고요하면서 갖가지의 진실한 공덕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뒤바뀜이 없는 법을 말해 주리라’고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자주자주 소원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가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먼저 방편선교와 일으키는 생각을 성취한 까닭에 비록 자주자주 소원이 없는 삼마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모든 부처님 법이 극히 원만해지기까지는 끝내 그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중간에 실제를 증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자함ㆍ가엾이 여김ㆍ기쁘게 함 및 버림과 그 밖의 모든 선정에서 물러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보살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섭수되기 때문이니, 

깨끗한 법이 갑절 늘어나고 모든 감관이 점차로 영리하여지면서 힘과 깨달음 갈래와 도의 갈래가 더욱더 불어나느니라.

 

또 선현아, 

이 모든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유정들은 온밤 내내 먼저 이미 얻을 바 있음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얻을 바 있음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모양이 있음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모양이 있음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뒤바뀐 일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뒤바뀐 일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화합한다는 생각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화합한다는 생각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허망한 생각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허망한 생각을 행하고 있으며, 

먼저 이미 삿된 소견을 행하였었고 지금도 삿된 소견을 행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바퀴 돌 듯하면서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구나.

 

나는 그들이 이와 같은 허물을 끊어 주기 위하여 의당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매우 깊은 법을 말해 주어 그들의 허물을 모두 영원히 끊어 없애고 다시는 바퀴 돌 듯하면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지 않고 속히 항상하고 즐겁고 참으로 깨끗한 열반을 증득하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온갖 유정을 몹시 불쌍히 여기면서 수승한 방편선교를 성취하고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섭수되기 때문에
깊은 법 성품에 대하여 언제나,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고 작용이 없고 생김이 없고 멸함이 없고
일어남이 없고 다함이 없고 성품이 없는 실제’를 관찰하기 좋아하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이 수승한 지견(智見)을 성취한지라 모양이 없고 작용이 없는 법에 떨어진다거나
혹은 3계(界)에 머무른다거나 하는 일은 모두가 있을 수 없느니라.

 

선현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이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지라 모든 유정을 버리고 열반에 나아간다거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여 유정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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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f8071

◈Lab value 불기2562/02/16/금/23:57






mus0fl--Gilbert Montagné - Musicienne.lrc



마음을 논의하면서 이러이러한 마음이 '있다'고 제시할 때 

그런 마음이 '있다'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런 내용을 과거 조각글에 언급했다. 
그 부분을 검색해 찾아서 앞에 작성한 핫키를 통해 연결을 시켜 보았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오래된 글이다. 
편집 체계가 지금과는 또 상당히 다르다. 

또 내용도 바로 이어 붙이기에는 부적절하다. 
여하튼 과거 조각글을 조금 편집형태를 변경하고 이어보기로 한다. 
핫키를 사용하고 확인해보니 일단 정상 작동되어서 다행이다. 






이전 조각글들에서 살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논의주제 - 
○ 현실 내용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 현실 내용을 마음내용이라고 할 경우 문제점의 상세한 고찰


○ 마음현상을 살피기 위한 기초논의
○ 마음 현상에 대한 이해가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의 수행에 대한 의미 


한편 마음이 있음을 살필 때 그 있음의 의미도 먼저 살펴야 한다. 

○마음의 유무와 유무문제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분별내용의 상호관계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어떤 사정으로 그처럼 내용을 얻게되는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어떤 사정으로 실답게 여기고 집착을 갖고 대하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이것이 다음에 살피고자 하는 주제다.   








●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사정의 정체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이는 자신이 그처럼 이해할 그런 내용이 본래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대한다. 
따라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되는 사정이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위 문제에 대한 답을 수학에서의 대수학(algebra)방식을 이용해 일단 W 로 표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W 로 표시한 것만으로 그 답이 얻어졌다고 간주한다. 

즉, 자신이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내용은 
사실은 '그런 W 때문에' 그렇게 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 W의 내용이
수행과 관련해 무엇을 의미하게 되는가를 먼저 살핀다. 

앞으로 논의할 결론을 미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은 
비유하면 매 순간 자신이 걸치는 옷과 같다. 
그리고 모래밭에 널려 있는 모래나 티끌과 같다. 
그리고 자신이라고 여길 그런 내용이 본래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에 W 가 작용하면
그런 내용을 매순간 실다운 자신으로 잘못 여기며 집착을 갖고 임하게 된다. 
물론 그런 W 가 과연 무엇인가를 이어 살펴야 한다.  

그런데 무언가를 자신으로 여기게 하는 내용을 W 로 놓고 살피는 것은 다음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들어 있는 배추나 햄조각 이런 재료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것을 대하면서 평소 이를 자신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무언가 W 에 해당하는 내용이 작용한다. 
그것은 예를 들어 자신이 매일 행하는 식사행위일 수 있다. 
그러면 한 주체는 그가 지금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것처럼
이후 그 부분을 대하게 된다. 

이런 현실내용만으로도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갖는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그런 부분을 대하면서 그런 내용이 
실다운 자신이라고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여기서 W 가 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러한 의미다.
즉, 그런 부분은 본 정체를 살피면 결국 실질적인 자신이 아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사정은 W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자신이 매 순간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자신이 매 생에 매순간 
임시적으로 걸치는 그런 옷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에 집착을 갖고 업을 행하면 
이후 3 악도에 묶여 끌려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축생이나 아귀 지옥중생이 걸치는 옷을 입고 
또 지금처럼 그렇게 이를 대하게 된다. 

현실에 대하는 내용은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얻어지는 내용이다. 
즉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 뿐 아니라
외부 세계나 외부 대상이라고 여기는 내용은 모두 다 함께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 마음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티끌이나 손님과 같다. 
그래서 이들은 임시적으로 마음에 머무는 객진 번뇌에 불과하다. 


누어 자는 침대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기도 한다.
이런 꿈은 본래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얻는 내용도 사정이 이와 같다. 
즉, 본 바탕인 실재에서는 이런 현실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하나같이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마음에서 화합을 통해 얻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현실 내용은 비록 그처럼 생생하게 얻어지지만, 실답지 않다. 

그러나 각 주체는 W 와 같은 사정들로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을 진짜 자신인 것으로 잘못 여기며 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매순간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극심하고 생생한 고통을 받는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임하듯 매 생 매 순간마다 그런 상태로 임하게 된다. 

그렇게 그 사정을 잘 이해하고 
현실에서 문제되는 생사고통을 잘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현실에 대해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를 실답다고 여기며 그 바탕에서 행하게 되는 그런 반응을 중지해야 한다. 
한편 과거에 그런 바탕에서 행한 업이 자신을 여전히 생사에 묶어 놓고 있다. 
그래서 이를 제거할 수행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게 하는 업의 장애가 점점 제거된다. 
그래서 생사에 묶인 상황에서 풀려나 벗어나게 된다. 


앞에서 어떤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게 하는 요소를 W 로 표시했다. 
여기서 아직 그 W 가 무엇인가를 살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W 가 무엇들인가를 살폈다고 간주하고
그런 W에 대한 논의를 통해 얻을 결론을 이와 같이 미리 살필 수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그 W 가 무엇인가를 다시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살피기 전에 

먼저 과거에 살핀 내용을 다시 검토하기로 한다. 



● 마음의 논의와 수행의 관계

마음에 대한 논의는 마음에 대한 사정을 잘 파악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행방안을  현실에서 잘 실천 성취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적 내용만 살피고 
수행방안의 실천이 이뤄지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는 다른 이의 곡식창고 안의 곡식을 낱낱이 세는 것과 사정이 같다. 
또는 열심히 장수를 세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현금처럼 된다. 

복잡한 눈의 구조와 기능을 아무리 잘 파악해도 
정작 자신이 눈을 떠 바라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또 회계관리인이 회계장부를 아무리 세세하게 분류해 파악해도 

주인이 아니면 그 물건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정작 자신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생제도를 위해 불국토를 장엄하지도 못한다. 
더 나아가 법신을 증득해서 성불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에 관련된 이론적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해도
수행방안을 꾸준히 행하면 그 반대가 된다. 


예를 들어 안과의사가 설명하는 복잡한 눈의 구조나 기능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눈을 떠서 대하면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회계장부 내용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래도 주인이 되면 창고내 물건을 다 잘 파악해 잘 사용할 수 있다. 

수행의 사정도 그와 같다. 

한편 일체유심조이고 일체가 마음 내용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신의 마음안 내용을 
매순간 자신 마음에 맞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 왜 뜻과 같지 않고 어려운가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3 계 6 도의 사정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3 악도의 세계는 왜 욕계에만 있는가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3 악도에서 그렇게 심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사정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  함께 서로 관련된다. 
그리고 이 내용을 잘 이해하려면 
결국 지금 현실에서 대하는 한 단면의 내용을 붙잡고 그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논의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또 이들 주제를 살필 때 의존하는 실험방안과 실험기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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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Claude François - Il Fait Beau, Il Fait Bon.lrc




● 마음의 유무 

앞에서 현실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제시했다. 


그런데 지금 문제삼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직접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왜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 

그래서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할 때 그 '있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부터 살핀다. 
즉, 무엇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경우'있다는 말은  없다'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부터 살피기로 한다. 


이에 관련해 다음 부분을 우선 참조하기로 한다. 
○마음의 유무와 유무문제


한편 근본정신인 아뢰야식과 같은 것은 
생사를 넘어 무량겁에 걸쳐 존재한다고 제시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제시되는가도 살펴야 한다. 

마음은 그 마음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기에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통해 보게 되는 내용이 현실에 그렇게 일단 얻어진다. 

따라서 그런 내용을 얻는 데 관련하는 것을 일단 마음이라고 시설해 제시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상황에 그저 그런 마음이 있다고 그냥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그런 상태에서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런 현실을 설명하기가 곤란하기에 있다고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마음은 여전히 어떤 주체가 그것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실에서 그 크기나 형체 생멸 이런 것을 살피기는 곤란하다. 

이를 다음처럼 생각해보자. 
한강에 나가서 한강을 본다. 
그런데 그 한강을 흐르는 물이 
과거 십년전에 한강을 흐른 물과 같은 물인가를 헤아려 보자.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그렇게 물이 흐르는 그 공간 그 부분을 한강이라고 부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물이 과거 물과 같던 다르던 여하튼 그렇게 한강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한강을 그 상황에서 제거해 버리면 
흐를 물은 있고 물이 흐를 공간과 장소는 없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마음이 생사에 걸쳐 생사이후로도 무량겁에 걸쳐서 
늘 그렇게 존재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학교과서에서 '에너지 질량 보전의 법칙'을 제시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 물이 얼어서 물은 없어지고 얼음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물이 늘 그렇게 보존되는가. 
또는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와 산소가 되고 
이후 물이 없어지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또는 물을 끓여 수증기 형태로 사라졌다. 
그래서 그 물 그릇에 물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물을 구성한 재료가 늘거나 줆이 없이 일정하게 보존된다고 한다. 
그런 내용은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는가. 

여하튼 이런 내용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마음이란,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보거나 얻을 때 
그런 내용을 얻게 하는 그릇과 같다. 
그런데 정작 그 마음은 직접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마음이 그렇게 있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마음에 담겨 얻어지는 내용들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에 담기는 그 내용은 매 순간 그렇게 다르고 변화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파악하게 하는 그 내용이 사정이 위와 같다. 
즉, 현실에서 보게 되는 내용들이 변화해도 
본 재료로서는 늘고 줆이 없이 늘 그렇게 유지된다고 제시된다.
따라서 이 내용을 받아들이면 
그런 내용을 얻게 하는 마음도 사정이 그러함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설명으로 마음에 대한 이해가 되면 좋다. 
그러나 마음안 내용은 그렇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또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앞의 설명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 보충해보자. 
처음 자신이 눈으로 물을 보았는데 얼음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얼음을 지금 보고 있다.
그래서 물은 사라졌지만, 그 재료가 얼음에 그대로 있다. 
그래서 그 재료는 계속 보전되고 유지된다고 한다. 

이 경우 그 내용을 모두 보는 마음이 
또 그 양 순간에 걸쳐 그렇게 유지된 것이다. 
그래서 그처럼 온갖 것이 다 변화해도 
그 원 재료가 무량한 겁에 걸쳐 그대로 늘지도 줄지도 않고 계속된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변화해 가는 그 모든 내용을 
그렇게 계속 얻는 그 마음도 사실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관찰시 마음을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앞 주장은 그런 질량과 예너지를 관찰하는 마음이
늘 그런 내용과 함께 있기에 그렇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즉,자신이 관찰하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그것이 곧 외부 세계이고 외부 물질이고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런데 정작 그 내용을 자신의 마음이 얻어서 
그런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는 기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장에서 그런 마음은 빠뜨릴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앞처럼  자신이 관찰한 내용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다. 
그러나 정작 이 내용을 얻는 마음은 이와는 별개다라고 여길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이 두 내용을 함께 가져가기 곤란하다. 

그래서 앞의 설명은 상대의 주장을 그렇다고 '가정적으로' '받아들인 바탕에서 그렇게 보자는 설명일 뿐이다. 
그런데 그 기본 전제가 망상분별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함께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가정적 '항변'인 경우 
그런 전제를 받아들여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그 전제를 비판하고 깨뜨리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는 그냥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그런 주장을 제시하니 
이를 통해서 근본정신 아뢰야식도 사정이 그렇다고 이해해 받아들이자는 형태다. 
따라서 사정이 약간 다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1,2,3,4,5,6,7,8 식을 나열해 살필 때 
앞 1,2,3,4,5,6,7 과 8 은 그 성격이 공통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그래서 그렇게 나누게 된다. 

그리고 1,2,3,4,5,6,7 은 매생마다 근본이 되는 제 8 식이 분화파생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무량겁에 걸쳐서 유지 보존되는 것은 
제 8 식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제 8 식이 무량겁에 걸쳐 유지된다는 것은 
수학에서 자연수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식을 오히려 
참조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지금과 앞 찰나전의 시간대의 관계와 
지금과 뒷 찰나후의 시간대의 관계를 먼저 전제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 8 식과 같은 정신이 
특별하게 달라져야 할 사정이 있는가를 살핀다. 
그리고 이를 다시 생사 전후 과정을 놓고 살핀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친 정신을 살피게 된다. 

그러나 정말 어떤 관찰자가 따로 있어  
무량겁에 걸쳐서 그것을 관찰하고 
지금 이 순간에 돌아와 보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수의 무한을 밝히고자 할 때 
무한한 자연수를 무한하게 다 나열해 
무한함을 밝히려하면 곤란하다.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정려 수행과정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직접 잘 관찰하는 수행을 함께 행해야 한다. 

이것이 마음의 문제를 스스로 확인하고 실험하는 원칙적인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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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상(相)- 상(想)의 상호관계와 마음의 시설 ,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상호관계를 살핀다. 


경전에서는 '상'을 취하지 말라고 제시한다. 
이는 다음 의미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감았다가 뜰 때 마음에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떠서 얻는 그 감각현실 전체를 놓고 

다시 그 각 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묶고 나누어 분별을 행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영희고 저 부분은 철수다. 
또 어떤 부분은 꽃이고 어떤 부분은 바위다. 
또 어떤 부분은 그런 내용을 보고 대하는 자신이다. 
또 그 부분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라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그런 상태에서 영희가 무엇이고 꽃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는 손가락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킨다. 
즉 그 부분이 그런 영희고 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처럼 눈으로 본 그 내용에 
그처럼 생각하는 그 생각 분별 내용은 그 부분에서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분별을 바탕으로 일정부분을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머물러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각 주체는 그런 내용을 눈을 통해 대하면 
그 부분이 매번 그런 꽃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반복해 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 현상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이 경우 처음 눈을 떠 얻는 그 내용 전체를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이라고 하자. 
눈을 뜨게 되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눈을 감았다 뜰 때 얻게 되는 일정한 내용을
언어로 '감각현실'이라고 칭하기로 하자 .
참고로 이들 논의에서 각 부분을 '감각현실'이라고 표현하고 칭하는 것은 
논의를 위해 불가피하기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을 언어를 통한 시설이나 안립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처럼 감각해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별개다. 
예를 들어 눈을 뜨거나 감거나 간에 
자신은 일정한 관념분별을 계속 행할 수 있다. 
따라서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어떤 내용을 떠올려 생각하면 그 생각을 계속 일으켜 얻는다. 
즉, 생각 자체는 눈을 뜨고 감는 것과 관계없이 계속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을 일단 그렇게 확보한다면 이를 분별내용이라고 칭하기로 하자.

이처럼 감각현실과 분별내용을 먼저 잘 구분해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한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비록 관념분별이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일으켜지는 경우에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관념은 다른 관념을 바탕으로 일으켜질 수도 있다. 
사과 => 맛있다 => 맛있는 것은 바나나 이런 식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사과가 바나나는 아니다. 
그리고 사과라는 관념에 바나나가 들어 있는 것도 또한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설령 일정한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일정한 관념분별을 반복해 일으키는 경우에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렇다고 그 관념분별이 감각현실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이 상황에 놓인 각 주체는 매번 그렇게 그 상황을 잘못 파악한다. 
일정부분을 대해 반복해 영희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이는 
그 부분이 곧 영희라고 여긴다. 
그리고 영희가 무엇인가 물으면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것이 망집현상이다. 
그리고 이후 그런 입장에서 그는 논의를 계속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그런 무엇을 정하고
그런 것이 '있다' [유]'없다'. [무]
무언가가 '없다가 있다'[생]
무언가가 '있다가 없다'[멸]
는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경전에서 자주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

현실에서 각 주체가 생멸이란 단어나 관념으로 생각하는 내용은 다음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뜨니 그 직전까지는 보지 못하던 일정한 내용을 얻게 된다. 
그것은 그 직전까지는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눈을 떠서 그런 모습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없다가 있게 된' 무엇이라고 여기게 된다. 
즉 '생'에 해당하는 현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를 생멸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 경우 있다거나 없다거나 생멸함이라는 분별내용은 눈을 뜰 때 얻는 그 감각현실안에는 없다.
더욱이 '없다가 있다'거나 있다가 없다'는 생멸의 내용은 감각현실의 한 단면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사실은 '있다'나 '없다'도 그 감각현실 단면에서 찾을 수 없다. 
또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어떤 a 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떠 앞에 보이는 일정 부분을 영희나 꽃이라고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 그가 생각하는 영희나 꽃 또는 자신은 그 부분에서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감각현실의 한단면을 놓고 거기에 만일 a가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한 단면에는 다시 그런 a가 '없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있다라고 여기는 현실단면에는 '있다가 없다'라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없다가 있다'라는 내용도 얻을 수 없다. 

즉 생이나 멸은 둘 이상의 감각현실 단면을 바탕으로 일으키는 관념이다.
그래서 현실의 한 단면에 그런 관념에 해당한 내용이 있다고 할 도리가 없다. 


그런 사정으로 감각현실에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제시하면 일반적으로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 각 상황에서 일정한 내용을 감각현실로 얻는다. 
또 그런 상황에서 일정한 생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는 등은 이런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현실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감각현실내용에는 
그런 관념분별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경전에서 이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실에서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두 관계를 살피는 문제다. 



여기서 상(相 Lakṣaṇa )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현실에서 각 주체가 감관을 통해 얻는 내용과 관련된다. 

그리고 상(想 Saṃjña)은 
그런 내용에 대해 그 부분을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누어서 
어떤 부분은 영희라거나 철수라거나 자신이라는 등등으로 
분별을 행하는 것고 관련된다. 

그리고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처럼 
실재와 현실의 이들 내용의 관계도 그와 같다. 


○ 상(相)-상(想)의 관계를 파악하는 원칙적 방안  


이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원칙적인 방안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런 감각현실이 곧 그런 관념분별인가. => 그렇지 않다. 
또 반대로 그런 관념분별 자체가 곧 그런 감각현실인가. =>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만 살피면 이들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다시 다음 내용을 덧붙여 한다.  
사정이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런 관념분별을 그런 감각현실을 떠나서 얻게 되는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거울을 놓고 살필 때 
거울에 거울 밖의 책상이나 의자의 모습이 비추인다고 할 때 
이 두 내용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거울에 비친 책상의 모습 그 자체가 곧 거울인가. 
또 거울이란 바로 그처럼 거울에 비친 책상인 것인가. 
=> 그렇지 않다.  

거울에 비친 책상이 거울에 비추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거울과 같은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그 거울에 비친 책걸상의 모습이 
그 거울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의 관계는 상당히 애매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이는 어떤 마음의 정체를 살필 때 
본 바탕이 되는 실재와 그 마음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반야바라밀다경』에 
그런 원칙적인 방안이 제시된다. 

따라서 각 경우마다 문제되는 내용을 그렇게 놓고 
있는 그대로 그 내용과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그런 내용을 그런 상태에서 일으켜 얻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는 영역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그런 부분이 전도된 망상분별이 된다. 
그리고 이후 그 증상이 점점 심화 증폭되기 쉽다. 

이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침대에서 누어서 바다 꿈을 꾸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꿈으로 꾼 바다는 
그 침대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현실의 내용이 이와 마찬가지다. 


한편, 이 관계는 다시 실재와 현실내용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내용이 그대로 
실재에도 그처럼 있다고 여기기 쉽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 어떤 모습을 얻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 각 부분이 영희나 철수나 또는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얻으면 
바로 그런 사정으로 실재에도 그런 내용들이 그처럼 있는 것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즉, 본 바탕이 되는 마음 밖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내용을 현실에서 얻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 관계는 앞에서 살핀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그렇게 잘못 여기고 임하면 
그 현실을 실답다고 여기며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매 순간을 대하며 무한히 묶여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현실의 정체를 정확히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렇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망상분별임을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집착을 스스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각 상황에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수행이 이뤄저야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된다. 
또 한편 직접 생사고통을 대면하는 상황에서도 
역시 그런 원칙에 바탕해 이를 평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 para-end-return ◧◧◧







mus0fl--Indochine _ Kissing my song.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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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Marka - Le Pays De La Pluie.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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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시점 2564_0216_212946 





이제 두번째 문제를 살피자. 



그런데 일단 마음을 1,2,3,4,5,6,7,8 이런 식으로 
여러 형태로 나누어 제시하는 사정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왜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다양하게 나누어 시설하는 사정과 관련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서 무엇을 볼 때 관여하는 마음을 
1 이라고 그냥 시설해 표현하기로 하자. 

그 마음을 그 마음이 직접 보거나 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앞과 같은 사정에서 눈을 뜨면 그 전과 달리
어떤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그에 관여하는 마음을 그렇게 일단 시설해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런 마음이 그렇게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 그 마음이 
만일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도 작용하고
냄새를 맡는데도 작용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감각을 행하는 그 부분부터 
마음을 1,2,3,4,5 이런 형태로 나눌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가 문제다. 
현실에서 그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한다.
그런데 여하튼 자신이 현실을 대할 때 
눈을 떠 대하면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는다.
그리고 이는 귀를 통해 어떤 소리를 듣는 그런 상황과는 다르다.
이를 서로 달리 보아야 할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달리 마음을 시설하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고
1 이라는 마음이 그 각 경우에 각기 관여한다고 전제해보자.
그러면 현실 각 경우를 설명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감각을 담당하는 마음을 1,2,3,4,5식으로 별도로 나열하게 된다. 




한편 각 감각을 담당하는 1,2,3,4,5식과 별도로 
분별을 담당하는 제 6 식을 시설해 제시하는 것도 사정이 그와 같다. 

평소 자신이  눈을 뜨고 무언가를 본다.
그런 가운데 소리도 듣고 냄새도 맡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한다. 

이런 경우를 앞의 1,2,3,4,5 식과 함께 
그런 분별도 행하는 상태라고 해서 5구의식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처음 1과 같은 내용만 시설하여 
그 제 1 식만으로 그 내용이 모두 행해지고 얻어질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런 제 6 의식을 따로 시설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아무 감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분별만 따로 행할 수도 있다. 

잠을 자며 꿈을 꾸는 상황처럼 꿈을 꾸는 경우도 있다. 

또 정려 수행에 임할 때  그 상태에서 별개로 이뤄지는 내용이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된다. 

또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에 대해 분별은 일체 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 분별내용은 얻지 못하는 경우도 현실에 있다.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눈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때 작용하는 마음 하나만 시설하면 
이 각 경우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 각 경우를 이 1 식만을 적용해 이해할 수 없다. 

사정이 그렇기에 
이런 현실 경험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면 
이에 관여하는 각 정신을 일단 1,2,3,4,5,6 이런 형태로 구분해 시설하게 된다. 

처음 제 1식이 처음 일정한 내용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제 1식이 동시에 그런 분별도 행한다고 제시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들은 각각 별개로 시설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일반적 입장과 별 차이가 크게 없다. 

다만 또 구체적으로 그런 각 마음이 
어느 영역에 머무는가는 차이가 크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마음을 이해한다. 
우선 외부 내용은 작용 반작용 등의 관계로 변화한다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공을 굴리면 계속 굴러가서 도미노를 쓰러뜨린다. 
그리고 도미노가 하나 쓰러지면 연이어 다음 도니모가 쓰러진다. 

그런데 한편 각 주체가 육체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육체와 외부사물이 서로 관계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A => B => C  형태로 자극 => 반응의 관계가 발생한다. 
그래서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자극과 반응의 관계가 발생하는 육체내 영역(뇌의 영역)을 
마음이라고 칭하는 것 뿐이라고 이해한다.

이런 이해방식과 불교경전의 내용은 극과 극으로 차이가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오히려 
현실에서 보게 되는 그 내용 일체를 담아 놓는 어떤 그릇이나 거울처럼
마음을 제시한다. 
다만 이는 비유일 뿐이다. 

그 비유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자신이 산에서 세상을 내려 볼 때처럼 그 마음이 그것을 모두 담는 크기를 갖는 어떤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는 반대로 상자에 머리를 넣어 볼 때는 다시 그 크기가 그 상자만큼 작은 것이라고 한다거나, 
또는 눈을 감으면 또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처음 눈으로 어떤 내용을 얻을 때 
그 내용은 마음에서 얻는 시각정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각정보의 어떤 부분이나 어떤 내용이 다른 청각정보도 일으키고 
다른 후각정보도 일으킨다고 할 것인가. 
심지어 어떤 분별이나 생각도 일으킨다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편 시각정보안에는 그에 대해 일으키는 
분별이나 생각내용에 해당하는 관념분별내용이 그 안에 얻어진다고 할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그 관계나 그 정체를 그처럼 잘못 파악하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 내용을 그렇게 이해한 가운데 
눈으로 컵을 보면서 그 컵에 손을 대보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순간 촉감을 얻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그 내용을 놓고
그 내용들을 서로 그렇게 관계시켜 잘못 이해하게 된다. 
즉, 자신이 본 그 컵이 그 손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손이 그런 촉감을 얻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전도망상에 바탕한 분별임을 앞에서 반복해 살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런 내용을 바탕한 가운데
사정이 그런데도 왜 자꾸 그런 관계를 그처럼 
현실에서 대하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는 다음을 문제삼는다. 
간단히 말하면 
사정이 앞과 같아서
그 내용이 각 마음에 얻어진 각 마음안 내용들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그 내용을 놓고
왜 그렇게 자꾸 받아들이게 되는가. 
그래서 그렇게 만드는 것을 W 라고 일단 표현하기로 하자. 
도대체 그 W 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이제 이해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이를 다음과 같이 살피자. 

처음에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을 때 
누가 봐도 자신이라고 할 수 없는 모래가 앞에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대하면 
이것이 처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내용처럼 여겨지게 되는가를
살피자. 

그리고 이 문제를 또 다시 
다음과 같이 바꾸어 살펴보자. 

처음에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었다.

그런데 과연 그 내용에서 
어떤 부분과 어떤 부분이 무엇이고 무엇이 아니고
또 어떤 부분은 자신이고 아니고 하는 그런 판단 내용이 
그 안에 미리 들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게 얻는 감각현실 내용이
전체적으로 각 부분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즉, 하나의 흰 색이라거나 
전체가 다 검은 색이 아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흰색이나 검은색인데
이를 놓고 엉터리로 분별해 
앞 흰 부분은 영희고 
뒷 부분은 철수라는 식으로 분별하는 것은 아니다. 

분별은 감각을 얻는 영역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감각 자체가 서로 조금씩 차이가 나게 얻어진다. 
그래서 무언가 이 부분은 다른 부분과 조금 달리 어두운 회색이라거나, 

또 다른 부분은 그와 다른 파란 색이라는 식으로
분별을 행할 수 있을 만큼 차이가 있게 얻어진다. 
눈을 뜨고 내용을 얻는 상황이 그렇다. 

다만 감각을 얻는 영역에서
그 내용만 가지고는 자체적으로
각 부분이 무엇 무엇이라고 분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그 내용이 일체로 모두 같은 흰색이나 검은 색은 아니다. 

그래서 이것도 알고보면
이미 구분이 된 상태로 얻어지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에 관여하는 마음도
그런 형태로 기능을 이미 행하여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어 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다시 그 내용을 놓고 
분별하는 내용들은 일단 앞에서 얻은 그런 내용과는 별개다. 
즉, 각 부분을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누어가면서 
어떤 부분이 자신이고 어떤 부분은 영희라고  분별을 행한다. 
또 영희라고 한 부분을 보면서도 
또 그 부분안에서 다시 온갖 부분을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누어 분별한다. 
예를 들어 이리 저리 헤아리며
이것은 손가락이고 저것은 발이라는 식으로 분별한다.

그래서 제 6 의식의 내용과 
앞에 나열하는 1,2,3,4,5 는 일단 그런 의미에서 구별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 시설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그런 1,2,3,4,5, 에서 얻는 그 내용은 
처음부터 이 부분은 외부고 이 부분은 자신이라는 구분은 거기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제 6 의식이 그 내용을 대하는 가운데 
하필이면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보게 되는가 하는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이에 대해서 그 내용들을 1,2,3,4,5,6 만 놓고 살피면 
그 근거를 살피기 곤란하다.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보게 되는 사정을 
상락아정의 요소에 배당해 나열했다. 
그런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왜 그 부분이 그렇게 파악되는가를 살필 때는 
1,2,3,4,5,6 에게 따져 보았자 별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그런 것이다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눈을 떠서 1 에 해당하는 마음이 그런 내용을 얻는다.
이 때 제 6 의식이 그에 대해 그렇게 그 사정을 파악하게 되는 사정이 
그 안에 그렇게 얻게 되는가는 1 식에게 묻고 따져도 별 효용이 없다. 

1 식 자신은 그렇게 그런 내용을 얻게 되었을 뿐 그 외는 잘 모른다. 
그래서 별 효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1 식은 1 식대로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게 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러러면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는 1 식과 
그런 내용을 놓고 그렇게 그런 분별을 행하게 된 제 6 의식을 놓고 
문제삼으면 곤란하다. 

그렇게 된 사정은 
그런 1식과 제 6 식 이전의 그 배경이 되는 내용들에서 찾아야 한다. 

현실에서 제 1 식이 어떤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내용을 놓고 
이후 제 6 의식이 이 부분은  영희고 또 저 부분은 철수다 
또 이 부분은 자신이고 다른 부분은 그 외부세계의 내용이다라고 나누어 분별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은 
처음 이 생을 시작할 때 
또 다른 정신 즉 제 8 식과 제 7 식이 되는 부분과의 관게에서 그 배경 사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분화 생성된 1,2,3,4,5,6 식이 
그 이후 대하는 내용들의 관계가 이처럼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그처럼 대하고 
그 관게를 그처럼 이해하게 된다고 그 배경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 제 7 이나 제 8 이라고 표현하는 정신도 
처음 1,2,3,4,5,6, 이라고 표현하는 정신과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 정신을 직접 보고 만지지도 못하면서 

왜 1,2,3,4,5 에 해당하는 정신을 그렇게 시설하는가. 
또 6 식은 6 식대로 따로 설정하는가.
그리도 다시 또 7 식 8 식 이런 형태로 그렇게 각 정신을 시설해 나아가는가는
모두 마찬가지 사정이다.

이런 내용이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처음 공중 3 회전에 걸쳐 발생하는 
전도망상분별 과정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현상 때문에 
현실에서 각 내용을 그런 형태로 얻게 된다.  
\또 그런 가운데 
그 내용을 그렇게 분별하면서 대하게 된다.
따라서 현실에서 그런 망집을 그처럼 자꾸 일으키는 배경사정은 
바로 이런 배경사정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자신이 눈을 떠서 강가에서 모래를 대하면서
그 모래를 자신이라고 여긴다면 얼마나 이상한가
이렇게 문제를 제시했다. 

그런 성격의 일이 
처음 제 8 식을 바탕으로 
제 7 식이 그 내용을 그렇게 대하는 과정이다. 

이상하지만, 그런 바탕에서
제 7 식이 한번 어떤 것을 자신이라고 분별을 행하면서 
무언가를 붙잡고 그렇게 임한다.

그러면 이후 그 바탕에서 
그런 부분을 이후 계속 자신이라고 여기고 붙들고 늘어진다. 
그런데 그 부분은 본래는 자신이라고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리고 이후 이런 바탕에서 
지금 현실에서 대하는 형태로
보고 듣고 하게 만드는 그런 상태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런 상태에서 이제 현실을 대하게 된다. 

그러면 앞에 처음 제시한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 컵을 눈으로 보면서 그 컵을 손으로 만지면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는 한편 
귀를 통해서는 그것대로 또 그런 소리를 듣게 된다. 
또 그런 가운데
일정부분은 그런 뜻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그 부분은 자신이고
다른 부분은 또 그런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의 내용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미 그런 상태가 된 상태에서는 
1,2,3,4,5 와 제 6 의식 사이의 분별 내용을 놓고 이를 살피면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는 처음 제 7 식이  제 8 식을 바탕으로
그렇게 무언가를 처음 자신이라고 분별하면서 붙잡고 늘어진 일이 배경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는 사실은 엉뚱한 것이다.
비유하면 처음 자신이 눈을 떠서 모래나 시계나 책걸상을 대하며 
이를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사실은 엉뚱하다. 


그러나 처음 제 7 식이 그런 바탕에서 무언가를 붙잡고
그것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사정이 본래 그렇지만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은 자신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그러나 또 어떤 일정 부분은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것처럼 
특별한 부분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후 활동하게 된다. 
그 상태에서 그런 분별과 그런 집착을 갖고 계속 대하면서 
나아가게 되는 상태가 된다. 

그것은 지금 현실에서 
제 6 의식이 12345 식이 얻어 놓은 내용을 대하고
그렇게 분별하고 대하는 것과 유사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그런 배경사정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표면에 활동하는 제 6 의식이 12345 식의 관계가
그처럼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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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제 7 식과 8 식을 
현실에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들을 시설하는 사정은
처음 제 1 식을 시설할 경우와 마찬가지다.

제 7 식과 제 8 식도 지금 대하는 현실단면에 
그렇게 시설해 살펴야 할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시설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들 식이 그런 형태로 있는가를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일단 다음과 같은 여러 사정에 바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술에 취하거나 
기절을 해서 쓰려졌다고 하자.
그래서 제 6 의식이 평소 행하는 분별을 그 상황에서 하나도 못한다고 하자. 

그런다고 제 6 의식이 평소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 부분이 
그로 인해 이제 아무 작용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즉, 의식을 혼절해서 아무런 분별을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식물인간의 상태로 이후 계속 임할 수 있다.
그렇다해도 각 부분은 각 부분대로 
일정한 행위 반응을 여전히 계속한다. 

이 경우 이미 시설한 1,2,3,4,5,6 으로 시설한 정신만으로는 설명이 곤란하다.
따라서 이와는 구분되는 또 다른 정신을 시설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각 정신을 나누어 시설하게 되는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금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이상한 자가면역 증상을 겪는 환자가 많이 보고된다. 
과거에는 별로 없던 아토피 증상도 그 중의 하나다. 
다른 이들은 땅콩이나 우유나 꽃가루나 등등에 대해서 별 반응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에 대해 대단히 과민한 피부 증상을 일으킨다. 

어떤 이가 어떤 내용을 처음 대하거나 먹을때 그에 대해 분별을 행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것이 자신의 몸에 해로운 물질이나 해충이라고 여기면서 
소름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자가면역 증상도 그처럼 
분별을 통해 그렇게 된 것인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생활하고 별 의식없이 이것 저것 섞어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증상을 겪게 된다. 
나중에 살펴보면 자신이 먹은 음식에
자신이 반복해서 이상한 반응을 자주 일으키는 
그런 종류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새우껍질이던 땅콩이던
그런 것 때문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과거에는 별로 그런 증상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증상을 겪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것은 요즘 한 생명이 태어나 생활하는 환경이 
과거와 많이 바뀌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정을 앞 내용을 놓고 이해하면 조금 이해가 쉽다. 

처음 무엇이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자신이고 
그리고 무엇이 그런 자신이 아닌 것인가는 사실은 별 근거가 없다. 
본 사정은 그렇다. 
그런데 여하튼 이번 생을 출발하는 첫 단계에서 
제 7 식이 무언가를 기준잡아 자신으로 파악하고 붙잡게 되면 
그렇게 붙잡을 그 순간에 같이 있었던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그 이후 새로 대하게 되는 것들은 
그런 자신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마디로 자신과 다른 이물질이거나
외계의 적으로 대할 그런 내용이 된다.
그래서 제 7 식에서 이들을 서로 달리 대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어느 순간 
어떤 이가 벽이나 모래를 자신의 부분이라고 여기며 집착하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사실은 엉터리고 근거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임하면
그 이후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에 대해 갖는 집착현상과 성격이 같다. 

그리고 그 사정은 결국 그것이나 저것이나 
다 그런 망상분별의 중첩 현상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12345 식과 제 6 식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망상분별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처음 8 식과 제 7 식 사이에 형성된 망상분별이 그 배경사정이다.

여하튼 제 8 식과 제 7 식의 관계는 
제 1식과 제 6 식 사이의 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보게 된다.
즉, 눈으로 보는 내용 일체에서 
어떤 부분은 자신이고 어떤 부분은 외부라고 여기는 망상분별과 성격이 엇비슷하다.

불교경전에서 어리석음과 망상분별을 무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제 8 식에서 제 7 식이 그렇게 분화되어 활동하는 데에는 
그런 근본 무명이 바탕이 되어 그렇게 된다고  설명한다. . 

즉,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이를 잘 제거하지 못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을 행하면 일정한 내용이 마음에 보관된다. 

12345 에서 얻는 내용은 매 순간 그렇게 얻고 
그 순간 이후 곧 사라지지만, 

바로 그런 내용이 그렇게 엉터리인 동시에 
또 그 내용들이 서로 얽혀서 
한마디로 축생이나 아귀 지옥의 세계에 묶어서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 내용이 보관되어 담겨 있는 그런 제 8 식은
묘하게 그런 세계에 임해
그런 세계에서 그런 형태로 임해 살아가게 될 그런 내용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렇게 그 세계의 생명형태로
또 1234567 그런 정신과
그 기관을 그렇게 분화 생성시킨다.
그런 가운데 새 생명 형태로 임하게 된다. [이숙과] 

그리고 그것은 
마치 인간세계에 처음 태어나는 어떤 생명이
처음 그런 상태에서 그렇게 각 내용을 대하면서
점점 그에 맞추어 익숙하게 되어가듯 그렇게 된다. 

따라서 이 전후과정을 놓고 살피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게 하는 
그런 내용은 그렇게 되기 이전에 미리 제거해야 한다. 
또 그런 상태에서 무언가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해서
그 내용을 그와 반대가 되게 할 어떤 내용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수행을 행하여 그런 내용을 쌓아야 
일단 그런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수행방안을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지금 현실 한 단면에서도  곧바로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 눈을 감고 그 직전에
눈으로 본 내용을 다시 되살려 꺼내 보라고 요구하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어제 아주 비싸고 좋은 옷을 하나 새로 샀다고 해보자. 
이제 그 상대에게 다가가 ' 그냥 지금 생각나는 무언가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요구해보자. 
그가 어떤 내용을 생각해내기는 한다.
그런데 옷에 관한 내용은 잘 생각해내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옷에 대한 내용을 생각할 단서를 주지 않고 막연하게 질문했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어제 산 옷이 있는가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하면서 옷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처음과 이 경우의 차이가 문제된다.

즉 처음 막연하게 질문할 당시에는 
어제 산 옷에 대한 내용을 상대가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뒤의 경우에는 생각해낸다. 

그런데 그렇게 뒤에 생각해낸 내용은 
앞 순간에 전혀 없었다가 뒷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인가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 
아니면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던  순간에도 어디인가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할 것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즉 그순간에도 보관되어 있었지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뒷 순간에 무언가를 계기로 그렇게 밖으로 나타나게 된 것인가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 


다시 다음 경우를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불쾌하고 고통을 느꼈을 어떤 과거 사건 ▼▼이 있다고 하자.

이제 그에게 그 사건 . ▼▼을 제시하면서 

그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을 꺼내보라고 하자.

또는 초등학교 때 옆에 있던 친구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꺼내보라고 해보자. 

그런 경우 각기 관련된 일정한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떻게 들리는가를 물어보자.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듣던 경우와 
처음 아무 생각없이 듣던 경우가 어떻게 서로 다른가를 놓고 실험해본다. 
원칙적으로는 별 관계가 없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처음 아무런 생각없이 듣던 경우와 
그 전에 일정한 분별을 행하다가 듣는 경우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 무언가 감각현실을 대할 때에도
그 전에 어떤 분별을 행한 가운데 대하게 되는가에 따라
각기 달리 대하고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앞에 행한 분별은 이미 분별 영역에서 그렇게 행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따라서 단순히 감각을 담당하는 정신과 
분별을 행하는 정신만 시설해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앞과 같이 1,2,3,4,5,6,7,8 과 같은 다양한 정신을 시설한 가운데 
이들간의 관계를 통해서 이를 설명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현실 한 단면에서 보게 되는 이런 내용은
지금 이 단면과 바로 이후의 단면의 관계가 그러하다.
그리고 무량겁을 나아가도 그 사정이 이런 관계이고 달라져야 할 사정이 없다. 

결국 각 정신현상을 놓고 설명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갓난아이와 할아버지사진을 놓고 
이 둘이 다 같은 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단히 이상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렇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마치 그와 같이 
경전에서는 개나 소를 놓고 
그 개나 소는 알고보면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정도 사실은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에서 무언가를 이상하게 행하여 
업의 장애를 일으키고 
그것을 수행방안을 통해 원만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 

그 상태에서는 이후 3 악도라고 표현하는 세계에 묶여서 
생사고통을 생생하게 받아나가는  상태가 된다.
경전에서 이를 반복해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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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이렇게 되는 사정을 현실을 놓고 보자. 

거리를 거닐면 간판도 수없이 많고 
사거리도 수없이 많이 달리 나타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어떠한 이가 어떤 가게를 들어가서 무언가를 구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그에게 물어보자. 

우선 가게도 많다. 갈 거리도 수없이 많다. 
또 각 상황마다 생각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상황에서 그 가게에 그렇게 들어갔는가.
그리고 왜 하필 그 물건을 그렇게 샀는가.
그리고 하필 그이후 그런 사고를 겪게 되었는가.
그리고 하필 그 병원과 그 감옥에 그렇게 들어가 지내게 되었는가.
이런 내용을 누가 물어본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주체는 그렇게
그 상황마다 매번 그렇게 하였는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 사정을 대강 파악해서 제시할 것이다. 
그 전에 그에게 무슨 무슨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그 각 경우
그것을 그렇게 대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것이 그 사정이고 이유라고 제시할 것이다. 



경전에서 본 사정이 그렇지 않고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을 수도 없다고 반복해 제시한다.
그런데도 구체적으로 보면 
한 주체는 하필이면 그런 생사과정을 그렇게 거친다.
그런 가운데 하필이면 3 악도의 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여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사정도 사실은 그런 형태다. 

사실은 처음 제시한 질문들이 이상했다. 
감각현실에서 어떤 이가 분별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매번 각 주체는 일정 내용을 대하면
이것은 영희고 꽃이고 또 어떤 부분은 자신이라고 매번 생각을 일으키고 대한다. 
알고보면 그것부터 이상하다. 

그런데 그 매 상황마다  
그렇게 각 부분을 대하여 그런 분별을 일으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오히려 나중에 그런 바탕에서 그렇게 질적으로 완연하게 달라진다. 

그 이후 그런 생사과정을 그렇게 제시하면 그 부분을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더 이상하다. 

만일 앞 부분을 그렇게 본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본 상태에서 어떤 주체는 왜 하필이면
매 순간 순간 꼭 그런 생각을 그렇게 일으키는가. 

또 그 가운데에서도 꼭 그 주체는 그런 것만을 그렇게 찾아 그렇게 임하는가.
그런데 그것이 어떤 사정으로 그것이 그 주체의 입장에서는 이상하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런 바탕에서 이후 그가 생사를 겪는 과정에서
그렇게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 묶여 나아가는 것도
그런 사정으로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해야 한다. 

사정이 그럼에도 
뒷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고 이상한 일이라고 여긴다.
한편 현실에서 늘 대한다고 여기는 앞 부분은
또 앞 부분대로 전도망상분별에 해당하는 그런 내용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정상적인 분별로 이해하고 대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 전체가 전반적으로 이상한 것이다. 


>>>





★★★



○ 현실내용을 외부대상으로 이해하게 하는 사정
○현실내용을 외부대상으로 이해하게 하는 사정과 마음의 시설

- 현실내용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 이런 현실내용을 외부대상으로 이해하게 하는 사정
  
현실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 
즉 현실내용을 외부 세계, 외부대상, 외부물질,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어떤 사정으로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이를 그런내용으로 잘못 이해하고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정이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여기서 본래 그렇지 않은 내용을 
그렇게 대하게 만드는 것을 W라고 일단 표시한다. 
그리고 그 W 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련해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여기서는 그 내용을 간단히 살피고 세세하게 살피는 일은 이후로 넘긴다. 

본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마음은 매 순간 일정한 내용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계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가를 자가면역 현상과 관련시켜 살펴보자. 

처음 눈을 떠 마음으로 어떤 내용을 대한다. 
그런데 평소입장에서도 책걸상은 도저히 자신이라고 여길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책걸상을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상황을 가정해보기로 하자. 

그런 일은 현실에서 별로 없다.

그러나 현실 상황의 성격이 사실은 앞의 경우와 성격이 같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가정을 해보는 것이다. 





 





mus0fl--Michel Jonasz - J'veux Pas Q'tu T'en Ailles.lrc

글을 대충 적고 
이어 뽑아 살필 내용을 보니 『대승기신론』이다. 
한번 조각글이 늦어지자 
연쇄적으로 늦어지게 된다. 
어느 부분에서 이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이 상태가 계속 이어져 나가게 된다. 

쉬는 가운데 이 문제를 놓고 생각하게 되는데 
노래에서 왜 바삐 떠나는가 하는 물음을 반복해서 던지는 듯 하다. 




『대승기신론』의 내용이 
반복해 지금까지 제시한 공중 3 회전을 통한 
망상분별의 중첩 현상과 관련이 깊다. 


>>>

어떤 하나의 노래를 듣더라도 
예를 들어 한국인이 어떤 노래를 듣는 경우와 
미국인이나 프랑스인 독일인이 노래를 듣는 경우 
이를 대하는 이들마다 제각각 다른 내용으로 감상하며 대하게 된다. 

한국인의 경우 노래를 듣기전 
한국어로 일정한 생각과 언어생활을 오래 했다. 
또 다른 외국인은 다른 외국어로 언어 생활을 오래 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이 
하나의 노래를 놓고도 제각각 다른 내용을 떠올리며 감상하게 되는 차이를 낳는다. 
그리고 또 각 개인이 겪은 일들로 인해서도 차이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차이를 낳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어디에 그렇게 보관되어 있는가를 헤아려 보자. 
그런데 그것이 보이고 만져지는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만, 다시 프랑스인 독일인을 놓고 실험하고 
한국인을 놓고 실험하면 또 차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결국 그런 차이는 다음 문제와도 같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물은 하나다.
그런데 각 주체가 이를 대할 때 제각각 달리 대한다. 
즉, 물을 어떤 이는 타는 불로 여기며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어떤 이는 오히려 감로수로 여기면서 대한다.
이처럼 각 주체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도 이와 다 마찬가지다. 

물은 우선 과학적으로는  
열이 더해지면 수증기나 구름 형태가 된다. 
열이 적당히 빠지면 평소 물로 보는 상태가 된다. 
더 빠지면 이제 눈이나 얼음 서리와 같은 상태가 된다.
그리고 전기를 가하면 다시 수소나 산소와 같은 기체 형태로 된다. 

한편, 하나의 물이라도 이를 사막에서 대하는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 이 물을 물고문을 열심히 받는 상황에서 대하면 또 다르다. 
또 그 물을 일반인이 수도를 틀면서 대하면 또 다르다. 

그리고  
그 물을 벌이 취하면 그것으로 꿀을 만든다. 
그 물을 뱀이 취하면 그것으로 독을 만든다. 

그 물을 사람이 취하면 그것으로 피와 땀과 소변을 만든다. 

그래서 하나의 물이어도 다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원효대사가 잠자기 전에 대한 물은 냉장고에 든 유산균 음료처럼 갈증을 해소해주고 청량함을 준 물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대한 물은 해골에 구더기가 떠다니는 썩은 물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 물은 원효대사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준 법수가 된다. 
그리고 마음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중국까지 건너갈 필요가 없게 해준 물이 된다. 


현실에서 남대문시장과 같은 시장에 서 있으면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서 있다가 저기로 걸어간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오간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그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오가고 생활을 하는가라고 의문을 갖게 된다 ,.

그런 가운데 그 각 주체가 하나같이 다 생사현장에 처해 생사를 피하지 못한다.
생사과정이라는 병목지점에서 다 그처럼 임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생사과정을 어떤 다른 이가 대신할 도리도 없다. 
결국 각 주체가 고독하게 그런 현실에서 임해 나갈 도리 밖에 없다. 

그런 생사 현장에 임한 이에게 왜 그렇게 되었는가 
즉, 처음에 왜 이렇게 태어났는가. 

그리고 그렇게 죽어 어디로 떠나는가를 붙들고 물어보아도 답하기 곤란하다. 
그것은 단지 그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현실에서 대하는 현실 단면 하나를 붙들고 그 정체가 무엇인가를 물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내용을 그렇게 대하게 된 사정은 무언가를 놓고 살펴도 마찬가지다. 

메뚜기는 왜 그렇고 자신은 왜 그렇지 않은가라는 간단한 현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각각 생사현실에서 삶을 왜 바삐 떠나는가라고 물어도 마찬가지다. 
사정은 모르지만, 그러나 떠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런 가운데 떠나게 된다. 

그런데 경전에서 본래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각 현실단면에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문이 있다고 공, 무상, 무원무작 3 해탈문을 제시한다. 
공한 가운데 일으킨 3 능변, 즉 공중 3 회전의 전도망상이 자신을 생사에 묶이게 하였다.
그런데 그런 망집을 처음 일으킨 첫 입구 쪽에 공해탈문이 하나 있다. 
중간에도 무상 해탈문이 하나 있다. 
또 출구 부분에도 무원무작해탈문이 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해탈문에 들어서지 않고 
3 악도의 생사고통을 겪는 그런 방향으로 굳이 바삐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은 자신을 묶어 3 악도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 해탈문을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열심히 발가락도 움직이고 손가락도 움직이면 
그런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eo Marjane - Mon Ange.lrc 

♥ 잡담 ♥진짜같은 현실과 꿈이었으면 좋을 현실



설날을 맞이하여 빌딩 몇 채를 돌아 보았다.

유명한 사찰로 '어리둥'절이 있다. 
그 사찰에서는 일반인의 입장이 전도망상분별이라고 제시한다. 
경전에서 다음처럼 제시한다. 

세상에서 대하는 현실 일체가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다. 
세상일체가 일체유심조 유식무경이다.
그래서 세상 일체가 마음에 의해 나타나고 마음안에 머문다. 
그래서 실답지 않고 하나같이 꿈과 같다. 


일체유심조 유식무경 이런 내용에 의하면 
세상현실을 실답지 않고 꿈처럼 대해야 할 것같다. 

그런데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대하면 달리 생각된다. 
매번 현실을 대하면 
각 현실 내용은 정말 진짜인 것처럼 그렇게 매번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래서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앞과는 반대로 여긴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실답다고 여긴다. 
또 오늘 본 그런 장면은 다음날 또 다음날 그 자리에 가서 보면 
어김없이 그 형태로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대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대단히 실답게 여겨진다. 
그래서 그것이 곧 외부세계이고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물질이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나 영희나 철수나 다 함께 대하고 사용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내용도 마음에 딱히 들지않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내용들이 하나같이 

당신 말대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꿈에서 빨리 깨났으면 차라리 좋겠다고도 한다. 
이렇게 서로 엉뚱한 시를 지어 읊으며 현실을 대한다. 



현실에서는 빌딩 몇채만 자신의 소유여도 상당히 흡족한 상태로 지낼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예를 들어 doctr 님 경우도 남들이 보는 것과 다르다. 
상당히 골치가 아파한다. 
그런 가운데 차라리 현실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내용을 대하면서 
또 다시 극과 극의 다른 시를 읊게 된다. 

생각해보면 

서울 거리뿐 아니라 대한민국 이곳저곳을 방문해 걷다보면 
수없이 많은 빌딩을 대한다. 
그런데 적어도 100 년 또는 50 년전만 놓고 보아도 
그 곳에 그런 빌딩들은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50 년 전만 놓고 보면 이 경우나 저 경우나 별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어떤 이는 빌딩을 한 채가 아니라 두 채, 세 채, 네 채 이런 식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당장 생계도 해결하기 힘들다.
그리고 매일 피우는 담배값도 해결하기 힘든 상태로 몰려 지낸다. 

인터넷상에서 예술 작품을 살펴본다. 
그런 가운데 대부분 잘 아는 화가 피카소의 작품을 살펴보게 되었다. 
피카소는 살면서 만 점 이상의 작품을 그리고 만들었다고 한다. 
예술가의 작품과 아름다움을 돈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거래되는 작품 가격도 무시하기 힘들다. 

여하튼 피카소의 그림 한 장당 가격이 1억달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알고보면 현실에서 대하는 고층 빌딩 하나가 
그림 한장 가격과 비슷하다. 

위에 올려진 그림도 그런 피카소 작품의 하나다. 
그런데 아무리 그림을 살펴 보아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개별작품마다 사정이 달라서 가격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처럼 작품이 거래가 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얼마정도면 하나 사서 집에 걸어두고 싶은가를 물으면 
본인은 한 오 만원 정도를 본인에게 주면 
이미 걸린 다른 작품을 내려 놓고 걸어볼까 생각해보게 된다. 



대반야바라밀다경 공상품의 내용에서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모든 현상은 
모두가 분별로 지은 바로서 
허망한 생각에서 생겼으므로 
도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이 모든 보살의 얻는 공덕이 한량없고 그지없다 합니까?" * 
...



『대반야바라밀다경』 공상품 ♣0001-550♧


그것이 곧 이 현실의 의문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어차피 공한 것은 매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세상에는 이런 뒤죽박죽의 차별이 나타나는가. 
일체유심조라면서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과 달리 뜻에 별로 맞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왜 그렇게 매번 나타나는가. 
그리고 그 모습은 오늘 보아도 그렇고 내일 보아도 그러한가. 
그 사정을 이해하고 논의하는 것이 
살펴나갈 주제다. 

알고보면 간단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자면 상당히 복잡하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뜻을 이루는 과정에는
서커스장이나 올림픽무대에서 보는 내용이 우선 들어 있다. 
그리고 마술이나 최면쇼에서 보이는 원리도 들어 있다. 
여하튼 일반적으로 잘 안 된다고 보는 것을 
잘 하는 원리가 결국 그런 것이다. 

극락세계나 3 악도를 들어가는 차이도 사정이 비슷하다. 
어차피 이것이나 저것이나 차별없이 공하다. 
그리고 실답지 않은 것은 매마찬가지다. 
그러나 매 순간 대하는 내용은 차별이 많고 심하다. 


그래서 각기 그런 시를 또 읊으면서 
그 각각을 대하게 된다. 

올려진 노래 제목에서도 그런 내용을 찾아본다. 







mus0fl--Circus - Sur Le Fil.lrc 



올려진 노래가 다음 메세지를 전하는 듯 하다. 
조금 심하다 
쓸 글 내용은 미리 마음 안에서라도 잘 정리해 써야 글이 잘 써질 것이다. 
노예의 마음을 갖고 현실에 임하면 아미타불처럼 성취하기 곤란할 것이다. 













○ [pt op tr]  ▼mus0fl--Eddy Mitchell - Comme quand j' étais môme.lrc 



옥상기지에서 쉬면서 노래를 듣는다.
만일 자신이 대하는 것이 금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듯하다.
그리고 무량한 IF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겠는가.
자신이나 남이나 죽을 때까지 아무리 살펴도 그런 일은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죽어야 바뀐다는 메세지도 가끔 노래에서 듣는다.
그러나 그처럼 죽어서 바뀌는 그런 일은
지금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별 관심이 없다


설날에 여기저기 듣는 핵심적 주제는 복이다. 

생각해보면 매년 설날마다 
제각각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복을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 
또 자신도 자신나름대로 어떤 소원을 성취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는다. 
그러나 매년 갖는 희망도 변한다. 
또 그런 희망이 매 순간 잘 성취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설날을 앞으로 몇번이나 맞이하고 삶을 마칠 것인가라는 .
생각을 하면 조금 우울해진다. 

이미 갖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부러워하지 말라고도 한다. 

알보보면 빌딩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입장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나 큰 차이가 없다. 
회계장부의 대변과 차변 항목을 살펴보아도 
정말 자신의 소유라고 할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유주라고 해도 그 빌딩에서 마음 놓고 편하게 사용하는 곳은 
화장실 하나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숫자가 무슨 의미를 주는가 하는 부분에 들어서면 
링크를 걸어서 보는 1 억달러 짜리 그림이나 
자신의 미술관에 걸어 놓고 보는 그림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오래 전에 제공한 
무한카드나 무한화폐가 차라리 사용하고 맛을 보기가 더 편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무한카드 보유로 현실에서 시원함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든 아니든 
논의 주제로 삼은 내용들은 
시간을 내어서 살펴나가야 한다. 




● 복을 얻는 극과 극의 방안 

현실에서는 매 순간 어떻게 해야 복을 얻는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그 방안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 

그런데 복을 얻는 방안에 대한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차이는 극과 극이 된다. 

그리고 거리 여기저기에 복이 널려 있으니
보이는 대로 사정없이 복을 줍고 다니라는 말도 듣는다.
그런데 그렇게 정말 복을 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서로 조금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경전에서도 복을 얻고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처음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일반적인 입장과 극과 극으로 차이가 있다.
그것이 현실과 마음의 본 정체에 대한 논의와 관련이 된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벼랑에 매달린 상태에서
한 손으로 나무가지를 쥔 심정으로
현금을 대하라는 처세훈이 있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를 다음처럼 달리 제시한다.
그런 행위는 있는 복을 버리는 행위다. 
그리고 반대로 지뢰와 시한폭탄을 주변에 매설해두는 행위다. 
그리고 당첨이 확실한 복권과 수표는 보이는 대로 다 찢어 내버리는 행위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중심을 잡고 대하기가 곤란하다.
그런 입장이 대부분이다.



















○ [pt op tr]  ▼mus0fl--Michel Fugain - Les Gens Irremplaçables.lrc 


♥ 잡담 ♥핫키제작방안 
이번에 올린 노래에서는 
특이하게 각 지방의 사투리까지 섞어 노래 부른다. 
형제에게 구라성 발언을 무책임하게 하지 말고 
그 내용을 빨리 잘 제시하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링크 찾아 건다고 쉬고 
또 식사한다고 쉰다. 
그리고 그렇게 쉴 때마다 
쉬었다고 또 노래 붙이고 쉰다.
그리고 잡담이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또 잠시 더 쉬고 살피기로 한다. 

알고보면 본 조각글은 어제 쓰다만 조각글이다. 
그리고 오늘은 오늘대로 또 새로운 경전을 뽑아서 
그 내용을 살피고 조각글을 이어 써가야 한다. 
그런데 작업이 밀려 버렸다. 
그렇다고 지나칠 수도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링크를 걸 부분을 찾아 
북마크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키워드를 찾아 붙여야 한다. 
그리고 링크 거는 작업을 반복할 때마다 
매번 에러가 발생한다.
그래서 작업이 성가시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기계적으로 행하는 핫키를 또 새로 만들었다. 

prince 님으로부터 전수받는 핫키 제작 방안이란 알고보면 간단하다. 

자신이 반복하는 작업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에게 반복하도록 명령어를 입력해서 
떠 맡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기계에게 그 작업을 맡기면 
그 이후로는 작업과정에서 오류도 덜 발생하고 작업이 수월해진다. 




다만 처음 그렇게 만드는 과정에서는 
그냥 수작업으로 1 번 2 번 하는 것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얼마나 그것을 반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에 따라 어느 방안이 나은가가 달라진다. 
앞으로 계속 북마크를 붙이고 글을 써나간다면 
핫키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어쩌다 한 두 번 또는 많아야 열 번 정도 사용하려면 
그냥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여하튼 글을 작성하기 전에 
이 작업에 매달렸다,.
그리고  지금 핫키를 테스트해본다. 
아래에 잘 안 보이게 북마크를 이렇게 설정한다. 


○테스트

이 경우 이 북마크 부분에 링크걸 내용을 미리 잘 보관해둔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이 부분에 링크를 걸고자 할 경우 

그 내용을 복사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단 성공적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048#8071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volf8071 
불기2563-02-16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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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Leo Marjane - Mon Ange.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 Singer Sargent-captain-herbert-m-sears-on-deck-of-the-schooner-yacht-constellation-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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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John Singer Sargent
https://en.wikipedia.org/wiki/John_Singer_Sargent
Title : captain-herbert-m-sears-on-deck-of-the-schooner-yacht-constellation-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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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rophytum_flower_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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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strophytum_flower_216.jpg
Slovenčina: Astrophytum flower
Author Skolnik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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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20101020_Sheep_shepherd_at_Vistonida_lake_Glikoneri_Rhodope_Prefecture_Thrace_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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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101020_Sheep_shepherd_at_Vistonida_lake_Glikoneri_Rhodope_Prefecture_Thrace_Greece.jpg
English: Sheep-goats shepherd / Vistonida lake landscape, Glikoneri, Rhodope Prefecture, Thrace, Greece.
Author G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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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처드슨 스트리트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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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pablo-picasso-woman-with-cap-1901.jpg!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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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ablo-pic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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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Eddy Mitchell - Comme quand j' étais môme.lrc



○ [pt op tr] Renoir woman-in-a-blue-bl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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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ierre-Auguste Re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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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Michel Fugain - Les Gens Irremplaçables.lrc

○ [pt op tr]ivan-aivazovsky-the-niagara-waterfall-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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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pablo-picasso-woman-with-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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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ablo-pic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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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Renoir houses-at-cagnes-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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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ierre-Auguste Re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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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houses-at-cagnes-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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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경계선을 한참 지나 

밀린 숙제를 하듯 글을 올린다. 

여전히 피로가 안 풀려서 옥상기지에 올라가 노래를 들으며 쉰다. 


--

 

이미 제시한 논의를 이어서 

매 조각글마다 조금씩 살펴가려고 기획중인데 

이 주제를 논의하려면 

과거에 오래 살폈던 내용도 다시 

다 꺼내서 한번씩 언급해가며 

살피는 것이 필요함을 보게 되는데 

그런데 과거에 반복한 내용은 이제 그만 반복하고 

조금 신선한 내용만 

제시해달라는 요청도 현실적으로 많아서 

고민이 많이 된다. 

요즘은 조각글을 작성하면서 

매번 이전 조각글에서 어디까지 살폈던가 

이것을 살펴보고 

이전 조각글에서는 별 신경을 기울이지 많고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으면서 

그 키워드가 무엇인가를 찾는 

상당히 힘든 작업이 추가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살펴보면 

무엇이 핵심 키워드인가 하는 것이 

막상 잘 안 찾아지는 것이다. 

일단 과거글에서 링크부분을 복사해 붙이는 것부터가 

조금 성가시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조금 더 쉬고 살펴나가기로 하자. 


>>>

 
일단 아무리 논의가 복잡하고 바쁘다해도 
식사는 하고 써도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된다. 
 
옆에서 식사를 빨리 하자고 촉구하는데 
여기서 또 잠깐 쉬고 살피기로 한다. 


여하튼 노래를 듣는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


간단하게만 살피고 넘어간다고 했는데 
조금 길어진다. 
빨리 넘어가기로 하자. 

>>>

그래서 일단 간단하게 이사정을 먼저 살핀다고 제시하는데 
쓰다 보니 길어져 버렸다. 

일단 마치기로 한다. 

>>>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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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Le Forestier - Joan Baez, Maxime Le Forestier Les Choses Les Plus Simples 
Anaïs - Peut-Etre Une Angine 
Georges Brassens - Il Suffit De Passer Le Pont 
Mike Brant - Rien Qu'une Larme 
Alain Souchon - La Vie Théodore 
Serge Reggiani - La Chanson De Paul 

 

Gilbert Becaud - Hey Mon Frere
Edith Piaf - Madeleine Qu'avait Du Co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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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paścāddhanta $ 범어 later on in the end
[pal] parikopeti $ 팔리어 pari + kup + eexcites violently; makes angry.
[fra] apprétée $ 불어 prepared

■ 다라니퀴즈 

자비주 40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52 번째는?



40 
용과 귀신이 
모든 독한 종기병을 퍼뜨려 
종기와 부스름, 고름이 나서 
아픔을 참기 어려울 때
지성으로 대비주를 소리내 외우고 
독한 종기에 
세 번 침을 뱉으면 
종기는 입을 따라 
사라지게 되며 
● 불라사야 佛囉舍那<四十> p ra śa y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52
바라 릉바호 
鉢囉<二合>楞嚩嚩護<五十二>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262일째] 
성취십력불가설 $ 115▲無邊無邊為 一 ● 無邊轉, ○□□□□,覺,入,獲,種

□□□□□□□, 覺悟菩提不可說,
入淨法界不可說, 獲深智藏不可說。
□□□□□□□, 각오보리불가설, 
입정법계불가설, 획심지장불가설。 

열 가지 힘 이룸을 말할 수 없고 
보리를 깨달음도 말할 수 없고 
청정 법계 들어감을 말할 수 없고 
깊은 지혜 얻는 일 말할 수 없고 



[107째] 
차불가설중일설 $ 107▲鉢頭摩鉢頭摩為 一 ● 僧祇, ○□□□□,示,此,經,如

□□□□□□□, 示現於聲不可說;
此不可說中一聲, 經於劫住不可說。
□□□□□□□, 시현어성불가설; 
차불가설중일성, 경어겁주불가설。 

말할 수 없는 혀의 이 한 혀에서 
나타내는 음성을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음성 한 음성으로 
몇 겁을 지내는지 말할 수 없어 




법수_암기방안


■ 용어퀴즈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찾으시오. 
 자기의 허물을 부끄러워 하여 마음을 고침.

답 후보
● 회심(廻心)
후세(後世)
흑승지옥(黑繩地獄)
희수(喜受)

차건도(遮犍度)
차죄(遮罪)
참회(懺悔)

● [pt op tr] fr

 




[오래된 조각글재정리 안내]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재검토시작 Lab value 
작업 시점 2564_0216_212946 
2564/04/16/목/20:27
2566-02-06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문단, 표현 재정리 작업중
경전정리 (▽정리중) (▼마침) 
논의 (○정리중) (●마침) 
조각글 (☆정리중) (★마침) 

★★★ 현재 재정리중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eyword.html
○ [pt op tr] 
●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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