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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3-01_해심밀경_001 본문
『해심밀경』
K0154
T0676
해심밀경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해심밀경_K0154_T0676 핵심요약
♣0154-001♧
『해심밀경』
해심밀경 제1권
Lab value 불기2564/03/01/일/11:08
[오래된 조각글재정리 안내]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hristophe - Oh Mon Amour.lrc
해심밀경
1. 서품(序品)
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 해심밀경의 다른 명칭
『해심밀경』은 다른 번역본으로 『심밀해탈경』 『불설해절경』이 전해지고 있다.
『해심밀경』의 범어는 Sandhīnirmocanasūtra 다.
이 범어를 번역하기를
진제(眞諦)스님은 불설해절경(佛說解節經)으로 번역하였다.
보리유지(菩提流支) 스님은 심밀해탈경(深密解脫經)이라고 번역하였다.
현장스님은 해심밀경(解深密經)이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Sandhīnirmocana 란 범어에 이런 여러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경전제목이 서로 달라진 것은
각국 언어가 의미하는 범위가 언어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의 범어가 갖고 있는 의미를 각기 따로 잡아서 이렇게 달리 번역된 것으로 전해진다.
각국 언어 사이에서 각 단어가 가리키는 의미 범위가
일의적으로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번역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어떤 내용을 가리키기 위해 일정한 시설을 할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일정한 내용을 가리키기 위해 시설을 하면
그 시설을 놓고 엉뚱한 다른 내용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달을 가리키기 위해 손가락을 사용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는 손가락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손톱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시설 안에서는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가리키고자 한 내용이 있는 영역에서는 시설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 그 시설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옳은가를 놓고 따지면 근본적으로 해결방안은 없다.
다만 전체 맥락을 통해서 일정한 시설이 원래 가리키고자 한 내용을
그 때 그 때 잘 찾아서 내용을 이해해야 할 뿐이다.
○ 서품의 가치
서품은 보통 경전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통상적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대부분 경전의 서품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제시된다.
어떤 이가 내용을 전하는데
가장 첫부분에 중요한 내용을 제시하려는 것이 보통이다.
서품에 주로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끝내 성취할 목표가 제시된다.
즉 수행자가 갖추고 성취한 덕성이 압축해 제시된다.
서품은 그처럼 가장 중요한 내용을 제시한다.
● 『해심밀경』에서 시설과 철거의 문제
『해심밀경』
승의제상품에서는
시설과 그 시설의 철거에 관련된 문제가 제시된다.
첫 부분에 다음 내용이 제시된다.
해심심의밀의보살이
여리청문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일체 법에 대략 2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함이 있는 유위(有爲)요,
둘째는 함이 없는 무위(無爲)입니다.
이 가운데
유위는
유위가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무위 역시
무위가 아니며 유위도 아닙니다.”
....
○ 시설이 필요한 사정과 철거의 사정
현실에서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 업을 행해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이런 망집을 제거해 내기 위해 일정한 시설을 한다.
그 다음 그 시설을 통해 그런 문제 현상을 제거한다.
그리고 나서 그 시설을 다시 철거한다.
그런 한편 그런 바탕에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위해서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얻어내는 수행을 해나간다.
그런데 『해심밀경』에 그런 내용이 자세히 제시된다.
○ 언어 관념의 시설
그래서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처음 시설은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지고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나타내기 위해 시설하는가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간단히 보면 여하튼 이런 시설은
관념영역에서 언설을 가지고 이런 시설을 한다.
그래서 쉽게 말해
그런 관념영역으로서의 그런 단어는 그런 단어라고 제시하거나
그러한 관념은 그런 관념이다라고 하면 그 자체만 보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 그 시설은
다른 것을 가리키는 본래 시설이 가져야 할 기능은 잃어 버린다.
그래서 별 의미없는 문장이 된다 .
예를 들어 형식논리학 등에서는
동일률을 충족시키는 명제를 가장 옳다고 본다.
즉 'a 는 a 다'와 같은 명제다.
그런데 이런 명제는 알고보면
희론 차원에서 관념영역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밖의 영역에서는 아무런 실질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공허한 명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측면의 논의는 일체가 별 의미없는 희론이 된다.
그런데 어떤 언설이 그런 차원을 떠날 때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 언설시설이 어떤 부분을 가키기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시설과 가리키는 내용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 언어 시설이 가리키는 내용
어떤 언어 시설이 다른 영역의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해
그렇게 시설되고 사용된다고 하자.
그것이 처음 그런 본 사정을 그렇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시설을 한 사정이다.
그리고 그 시설을 통해서 그런 사정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 그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시설의 목표를 달성했으므로 이후 함께 철거해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원래 그 시설로 가리키고자 한 내용까지
같이 철거하면 곤란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 내용도 함께 철거해야 하는가 여부를 잘 헤아려야 한다.
우선 망집에 의한 내용인 경우는 그 시설을 통해 먼저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시설을 제거시 이런 망집이 남아 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남아 있으면 이를 함께 잘 철거해야 한다.
그런데 망집의 재료가 될 뿐 그 자체는 망집이 아닌 내용들은 경우가 다르다.
이는 망집의 근본을 제거하는 취지에서는 제거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망집은 또 아니므로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한편, 어떤 내용은 중생제도를 위해서 철거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같이 철거하면 오히려 곤란하다.
또 시설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그 시설을 장차 중생제도에 계속 사용하고자 할 경우는
그 시설도 함께 남겨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재료로 관념영역에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이 망집이 문제다. 그렇다고 재료가 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이 망집은 아니다.
그래서 겅우따라 달리 대해야 한다.
mus0fl--Jenifer - J'attends L'amour.lrc
○ 유위와 무위의 구분
원래 일체 존재를 분류할 때
크게 유위법 무위법으로 분류한다.
유위법이란 현실에서 생주이멸한다고 보게 되는 내용을 나타낸다.
무위법은 그렇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
한자어 '유위'를 한글번역본에서 '함이 있는' 이렇게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생주이멸하는' 이란 의미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된다.
생주이멸을 떠난 것으로
유식학파에서는
허공(虛空) 택멸(擇滅) 비택멸(非擇滅) 부동멸(不動滅) 상수멸(想受滅) 진여(眞如)를 나열한다.
유부에서는 허공(虛空) 택멸(擇滅) 비택멸(非擇滅)을 들게 된다.
그래서 이처럼 유위법과 무위법이란 큰 범주로
일체 존재를 나누어 제시한다.
○ 시설에서 철거할 내용의 판단.
『해심밀경』에서
'유위는 유위가 아니고 무위도 아니다'라고 제시한다.
또 '무위 역시 무위가 아니며 유위도 아니다'라고 제시한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의
망상분별과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유위법 무위법을 시설해 제시한다.
이런 언어표현은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한 시설이다.
그런데 이 사정을 다 이해했다고 핮.
그러면 이들 내용이 그런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한 언어시설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언어시설을 다시 철거해야 한다.
그래서 경전 뒷부분은 그것이 시설임을 제시하면서
그 시설을 철거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그런데 왜 그런 내용을 철거하게 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 철거에서 무엇을 과연 제거해야 하는가를 잘 헤아려야 한다.
또 무엇은 굳이 철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를 잘 헤아려야 한다.
또 무엇을 오히려 철거하면 곤란한가를 잘 헤아려야 한다 .
이런 부분을 잘 파악하고 대해야 한다.
○ 승의제를 나타내기 위한 시설과 그 철거
경전에서 일정한 언어시설을 통해 내용을 제시한다.
이런 경우 처음 그런 시설을 할 필요성과
시설을 통해 목표를 잘 성취한 다음 시설의 철거할 필요성을 잘 이해하면 된다.
『해심밀경』에서
유위는
유위가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무위 역시
무위가 아니며 유위도 아닙니다.
...
이렇게 제시한다.
이것은 처음에 유위 무위로 나눠 제시한 내용을
이제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 시설이 무엇을 가리켰는데
이제 왜 또 그것이 그런 것이 아니고 저런 것도 아니라고 하는가를
잘 음미한다.
그리고
이들 표현이 어떤 성격을 갖게 되면
다시 유위는 유위고
무위는 무위라고 다시 표현할 수 있겠는가를 잘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 para-end-return ◧◧◧
앞에서 승의제 문제가 제시되어서
이 승의제를 이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시설해 제시하게 되는
세속제를 먼저 살폈다.
그런데 결국 이런 세속제를 바탕으로 이제 승의제를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런 가운데 경전에 제시된 내용을 살피면
승의제란 현실 내용과 관련해서
다르다고도 할 수없고
같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또 승의제는 하나의 맛이다.
이런 내용을 대하게 된다.
이런 내용을 대하면 또 다시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에 대해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기 쉽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세속제를 시설하는 작업을 한
영역인 시설과에서는 기본적인 전도망상분별을 바탕으로
그처럼 이분법적인 관념분별을 행하면서 그런 시설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런 바탕에서 이 내용을 대하면
그로 인해 어리둥절하게 이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내용을 어리둥절하게 대하게 되는 그 사정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것이 무엇과 다르지 않다면
같다고 해야 하고
또 같지 않다면
다르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무엇이 있지 않다고 하면 없다고 해야 하고
없지 않다고 한다면 있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승의제를 제시한다면서
무엇이 있다거나, a 이다라고 하거나, a 와 같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잘못이라고 제시하는 한편
사정이 그렇기에 이제
무엇이 없다거나, a 가 아니다라고 하거나, a 와 다르다라고 이해하면
다시 그것도 잘못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라는 이야기인가.
이렇게 의문을 일으키면서
어리둥절하게 이 내용을 대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는 사정은
승의제로 살피려는 그 영역의 문제가 아니고
그런 내용을 살피기 위해서 그런 언설과 분별을 통해
그런 내용을 시설한 그 영역의 문제때문에
그렇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앞에서 ~와 같다고도 할 수 없고 ~ 와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고
처음에 제시했는데
나중에는 또 이런 승의제는 한 맛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제시하면
다시 앞과 같이 시설을 제시하고 살피는 입장에서는
그러면 그 승의제는 한 맛이라고 할 무언가 a 가 그렇게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이해하는 가운데
다시 처음에 제시한 내용을 놓고
이와 관련해 또 혼동을 일으키고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기 쉬운 것이다.
그것이 정말 그렇다면
왜 앞과 같이 판단하게 되는가.
그런 한맛이 있다면 그 한 맛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내용과 관계에서 같으면 같고 다르면 다른 것이지
왜 앞과 같이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고 제시해 놓고
이제는 다시 그런 승의제는 한 맛이라고 제시하는가 하는
의문을 일으키면서 또 어리둥절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내용이 제시되는 경전 부분은
곧 다음이다.
...
승의제는 일체에
보편한 한맛[일미一味]의 모습이다.
...
이제 위 내용도 언어로 시설해 표현하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해보자.
현실에서 보는 그 수많은 것에 다 그런 하나의 a 가 승의제로 있다고
제시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것이 현실 내용과 다르다거나 같다고 하면 다 문제가 된다고 하는가.
이렇게 이해하면서 의문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사정은 승의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승의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런 언설을 시설해서 그 사정을 제시할 때
상대가 기본적으로 자신이 일으킨 망상분별을 토대로
그 시설을 대하고 이해하기에 그런 문제가 나타난다는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시설과 시설의 제거와 관련해
해심밀경이 관련된 내용을 많이 제시하고 있기에
앞에서 해심밀경 승의제상품의 핵심으로 뽑은 내용을
또 하나 나열해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앞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
두라면(蠧羅綿)의 부드러운 성품이
두라면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이하 줄임...]
여기서 두라면이란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문제는 두라면이 정확히 무엇인가가 문제가 아니므로
이것은 그냥 오늘날 대하는 솜이라고 이해하면 쉽다고 본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솜을 놓고 대하는데
솜은 솜인데
솜을 만지면 부드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경전에서 나열하는 나머지 사례도 다 마찬가지다.
고추를 현실에서 대하면 고추는 고추인데
그 고추를 맛보면 매운 것이다.
이런 현실 내용을 놓고
문제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설이란 표현이 나온다.
솜을 대하고 솜을 만지니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솜과 그 부드러움을 시설해 놓고
그 상호관계를 살피는데
솜과 그 부드러운 성품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를
시설해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정을 제시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일전에 거울과 거울에 비추인 영상을 놓고도
이 관계를 제시한 바 있는데 사정이 마찬가지다.
왜 그러겠는가.
솜과 솜을 통해 얻는 부드러움의 관계를 살필 때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가.
솜 그 자체가 곧 그 부드러움인가.
또는 반대로
그 부드러움이 곧 솜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가.
그렇지 않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 부드러움을 그 솜을 떠나서 얻은 것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가.
또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 상호관계가 그처럼
조금 애매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이렇게 그 사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울과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도 사정이 같다.
거울면에 화분의 모습이 비추이는데
그 화분 모습이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는 그 거울 자체인가.
또는 반대로 거울 그자체는 곧 그 화분 모습인가.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답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화분 모습이 거울을 떠나 있는 어떤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살피면 어떤가.
또 그렇지도 않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처럼 조금 관계가 애매하다고 보는 그런 내용이
거울과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이 있는 그 상황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그런 내용인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
만일 그런 화분모습이 거울면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거울에 비추인 것이라고 해서
그것만으로 거울에 비추인 그 화분모습이 곧 거울 그 자체라고 하거나
그 거울에는 그런 것이 그렇게 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나아가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각 존재의 정체와 그 관계를 살피는 경우
그처럼 문제삼게 되는 각 영역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제시할 때는
그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가 된다고 제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존재의 정체나 상호관계가 문제되는 주제마다
이미 그 내용을 반복해 살핀 것이다.
침대에 누어서 바다와 황금 꿈을 꾸었다.
짜장면을 배고플 때 먹으니 좋음과 맛을 느꼈다.
짜장면을 보는 가운데 그것을 음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관계없이 그대로 실재한다고 볼 실재를
본 바탕으로 하는 가운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그런 짜장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것이 현실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각 영역의 내용의 정체와 관계를 살피면
모두 앞과 같이 이것이 다른 것과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a 라거나 아니라고 시설해 제시하기가
상당히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에 놓인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 각 내용이 있는 그대로의 그 상태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부분인 것이다.
결국 반야심경에서 제시하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이 제시되는 사정도
그 바탕이 이와 같은 것이다.
현실에서 눈을 뜨면 눈으로 어떤 내용을 얻고
또 귀로는 어떤 소리를 듣고 하는데
그렇게 감각을 통해 얻는 그 일체를
일단 색이라고 표현하고 그렇게 시설해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자신이 그처럼 눈을 뜨거나 감거나 관계없이 그대로 실재한다고
보는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을 실재라고 표현하면
그 실재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 실재와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무슨 관계인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이런 실재를 살피는 사정을 더 자세히 설명하면 .
그것은 결국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실다운 것인가.
그래서 자신이 과연 집착을 갖고 대할 그런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내용이 중요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각 내용의 정체와 그 관계를 살필 때
처음 판단하는 문제가 바로 위 내용들인 것이다.
그런 본 바탕의 실재가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 얻는 현실 내용인가.
반대로 현실에서 얻는 내용 그 자체가
곧 그런 본 바탕의 실재의 지위에 있는 실재내용인가.
그렇지 않다고 일단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은 실재의 지위에 있다고 할 그런 내용이 아닌 것이지만,
그러나 한편 그런 현실내용은
그런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떠나서 얻는 것도 아님을 또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위에 제시한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정에서
반야심경에서 그런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결국 방대한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내용 가운데
핵심[심]을 추려서 관자재보살님이 제시하는 것인데
그런 내용을 제시하게 된 그 배경은
색은 곧 색의 공함[실재]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색은 그런 색의 공함[실재]를 떠나 얻는 것은 아니다. [ 색불리공 色'不離'空 ]
그리고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색은 곧 공한 실재와 다르지 않고 [ 색불이공 色'不異'空 ]
색은 곧 공한 실재라고 [ 색즉시공 色卽是空 ] 제시하게 된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과
그런 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공]이
서로 갖는 관계를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이런 표현으로 제시하는데
이런 표현을 통해서 그 관계를
잘 파악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실재가 무언가 문제될 때
자신이 현실에서 얻고 문제삼는 그 내용이
그대로 그 실재영역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또 곤란한 것이기에
그 뒤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이라고 하여
그런 공한 실재 영역에서는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공중무색 ...이런 표현으로 다시 이어서 덧붙여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색즉시공 이런 표현을 놓고
현실에서 얻는 색 그자체가 곧 실재의 공함이라고 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제 그런 바탕에서는
다시 뒷부분에서 왜 공중무색이라고 하여
그런 실재의 공함에는 그런 색이 없다고 제시하는가
하면서 의문을 제기하기 쉽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시설해 제시하는 무(無)라는 표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것은 실재에 그런 현실 내용이 그대로 있다고 이해하는 망집을 제거하기 위해서
시설해 사용하는 표현일 뿐이고
공한 실재영역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런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표현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러면 그런 무(無)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 무엇이라고 그 사정을 설명할 것인가.
이 상황은 처음 실재가 공하다라고 표현할 때
그 공이 무슨 의미인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전제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재란
그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그 내용을 얻게 되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고
무엇이다 아니다라고도 할 수 없고
무언과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등등으로
이분법적인 분별을 행할 수 없고
공하다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인데
이제 실재가 공하다라고
그렇게 언설을 시설해 표현할 때
그 말이 무슨 상태를 나타내는 것인지를 모르는 상대에게
실재의 공함을 이해시킨다고 해서 공은 공이다라고 제시하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내용을 대하는 상대는 일반적으로
그가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 내용을 놓고 망집을 일으켜
그런 현실내용이 곧 실재의 지위에 있는 객관적 실재 자체라거나
또는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실재에는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과 일치하는 어떤 것이 그대로 있고
그래서 그런 현실내용은 실다운 것이라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대하며
그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를 해나가는 가운데
현실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실답고 생생하게 받아나가는 상태이기에
우선 그 근본원인이 되는 망집을 제거하고
앞과 같은 그런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실재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측면을
무라는 표현을 통해 제시하여
그런 망집증상을 일단 제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을 시설해 제시하지만,
다시 그런 표현으로 오히려 또 다른 극단으로
실재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는 망집을 다시 일으키게 되면
그것도 곤란하므로 또 그런 방편으로 시설해 제시한 그런 표현을 놓고
나중에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이해시켜서
그 시설도 또 잘 제거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과정에서
각 존재의 정체나 그 관계가 문제되는 내용을 살필 때
각 내용에 대해서 그렇게 시설해 살피는 것이
본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기에
솜과 부드러움
고추와 매운 맛
거울과 그 거울에 비친 영상
실재와 마음
실재와 마음에서 얻는 감각현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감각현실과 꿈
그리고 감각현실과 좋고 나쁨
감각현실과 선악
이런 등등의 여러 내용을 놓고
그 사정을 살피게 된다.
짜장면을 배고플 때 맛보고
그로 인해 좋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 좋음이 짜장면에 그렇게 있다고 망집을 갖고 임하면 곤란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들이 서로 아주 무관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다.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바다와 황금 꿈을 꾸었다.
옆에서 그 사정을 보면 침대의 부드러운 이불을 그가 꿈에서 바다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모서리에 있는 딱딱한 베개를 꿈에서 황금이라고 여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그 바다나 황금을
그 침대에 그대로 있다고 여기고 대하면 곤란하다.
그러나 또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런 꿈을 꾼 침대와 꿈에서 본 그런 바다와 황금이 전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기도 곤란하다.
애매하다.
그리고 애매한 그것이 바로 그 둘이 있는 그대로의 그 상태다.
그리고 그런 관계다.
만일 여기서 살피고자 하는 본 바탕에 대한 승의제와
현실에서 그 내용을 얻는 세속제가 전혀 별개이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이서방네 마당의 그릇을 가지고
박서방네 며느리를 살피는 일처럼
서로 전혀 동떨어진 내용이 된다.
그처럼 엉뚱한 동떨어진 다른 내용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그것이 곧
두라면과 부드러움이란 사례를 들어
제시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일단 옳다고 보는 내용을 시설해서
현실에서부터 엉터리라고 보는 내용을 제거해야 한다.
그 다음
이제 이런 시설을 통해 확립한 세속제로
원래 살피고자 한 본 바탕이 되는 실재와 관련된 승의제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에서 얻는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여러 내용을 제시한다.
그런 각 내용은
기본적으로 이런 사정에서 그런 내용을 시설해 제시하고
그렇게 살피게 된다.
또 그런 시설로 그런 내용을 살피면
그런 시설이 그런 사정 때문에 그렇게 시설되었다는 배경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히려 이런 시설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켜 갖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제시된다.
mus0fl--Charles Aznavour - Ti Lasci Andare.lrc
쉬는 동안 TV에서 마술사들이 활동하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온갖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자체가 하나의 마술과 같다고 여길만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현실에서 마술사가 마술을 선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아무리 앞에서 눈을 뜨고 지켜보아도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내용을 보여준다.
그래서 세상에서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마술사가 보여주듯 잘 이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게 된다.
doctr 님이 행복론에서
온갖 희망의 내용을 일정한 범주로 묶어 제시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성취하고 행복을 얻는 방안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희망하는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오늘 숫자 몇자를 적어서 제출했더니
은행에서 몇 조원의 돈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오기를 바란다.
이전 조각글에서 조신 스님의 사례를 적었듯이
평소 혼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그러나 연애가 뜻대로 잘 안되어 고민하는 상황에서
어느날 그 연인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자신도 상대를 혼자 깊게 좋아했다고 하면서 함께 살아가자고 나서
그래서 같이 살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현실에서 이루고 싶지만,
잘 이루기 힘든 희망이 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을 현실에서 잘 성취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경우는 마치 서커스를 잘 하는 이가 서커스를 하는 것처럼 잘 성취한다.
또는 마술쇼를 하는 이가 마술을 선보이는 것처럼 잘 성취한다.
또는 최면쇼를 하는 이가 최면쇼를 선보이는 것처럼 잘 성취한다.
그런데 지금 살피는 해심밀경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마술을 하나 선보인다.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오로지 고통만 제거해내는 그런 방안을 소개한다.
그래서 알고보면 대단히 중요하다.
마술사가 마술을 선보이는 것은
그 원리가 다음과 같다.
어떤 내용을 나타나게 한다.
그런데 그 인과는 관중이 보지 못하게 숨긴다.
그리고 외관으로는 다른 과정으로 나타난 것처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마술사가 주사위를 모자에 넣는다.
그 다음 코에 기름을 바른다.
그리고 다시 손을 모자를 엎어 놓는다.
그러면 주사위는 온데 간데 없고 비둘기가 나타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모자에서 비둘기가 나오는 일과
주사위나 마술사가 코에 기름을 바르거나 하는 일은 이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비둘기는 다른 과정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서로 관계가 있는것처럼 외관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것이 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숨겨진 내용을
마술사가 관중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관중은 그런 외관으로 왜 그런 내용이 나타나는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대하게 된다.
각 주체가 이미 전도망상분별을 일으켜
그런 현실 내용을 얻는 상태여서 문제다.
그런데 마술은 그런 기본 상태에서 다시 한번 전도된 망상을 일으킨다.
그리고 기본적인 망상을 더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떤 주체가 놓인 현실상태를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측면도 있다.
알고보면 현실에서 한 주체가 집착하고 임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는 과정은
그런 마술에 현혹되어서
그런 생사고통을 그렇게 무량겁에 걸쳐서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마술을 통해서 사정을 잘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요즘 본인이 다양한 멀티 자료를 붙여 놓은데
이것도 알고보면 마술의 일종이다.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각 사이트에서 제공을 해준다.
그래서 요즘은 무슨 사정인지 쉽게 이뤄진다.
그런 가운데 대단히 귀하다고 보는 보물이나
풍광이나 예술작품을 거저 감상하고 향유하게 된다.
알고보면 놀라운 마술과 같다.
그러나 자주 대하면 또 평범하고 그저 그런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마술사도 관객에게 일정한 마술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미리 일정한 설비를 하고 그렇게 임한다.
그리고 마술이 끝나면
또 그 설비를 잘 제거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전 등에서
일단 현실이 왜 사람을 전도망상을 일으키고 현혹시켜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게 하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시설을 한다.
그리고 그 시설로 사정을 살피게 한다.
그 다음 그런 시설을 잘 제거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살핀다.
해심밀경에서 간단한 마술을 소개하면서
환사나 마술사가 등장한다.
현실에서 각 주체가 무언가를 보고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해심밀경에서 소개하는 마술이란
바로 그런 현실 내용이 마술과 같은 것임을 소개한다.
즉, 한 주체가 현실을 대하면서
그 현실을 무엇이라고 여기는 그 과정이
알고보면 그런 마술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경전 내용처럼 현실 사정을 그처럼 잘 관해야 한다.
현실에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과정을 인과나 연기관계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 내용을 얻는 것은 마음현상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중생도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런 목표상태를 잘 성취할 수 있는 수행 방안이 있다.
이런 내용을 놓고 경전에서 제시된 것처럼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들 내용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대하는 경전은 수행자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은 일단 그 기초 부분을 서품과 승의제상품을 통해 살핀다.
해심밀경에서 소개하는 마술은 일단 다음이다.
경전 부분을 그대로 옮겨 붙이기로 하자.
...
비유컨대
솜씨 좋은 요술쟁이[환사幻師]나 혹은 그의 제자가 네거리에서
기왓장이나 풀잎이나 나무 등을 쌓아 놓고
요술로 갖가지 사업(事業)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이른바
코끼리의 몸과
말의 몸과
수레와
걷는 몸과
마니(摩尼)ㆍ진주(眞珠)ㆍ유리(琉璃)ㆍ나패(螺貝)․벽옥(碧玉)․산호(珊瑚)와 갖가지 재물과
곡식의 창고라는 몸입니다.
만일 우치(愚痴)하고 완둔(頑鈍)하고
악한 지혜를 가진 부류라서
깨우쳐 아는 바가 없는 중생이라면,
그들은 모두 기왓장․풀잎․나무 등에서
요술로 변화한 모든 일들을 보고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대로
진짜 코끼리 몸이 있는 것이고
[....이하 줄임...]
이 부분이다.
이 마술비유로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은
이미 앞에서 소개했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대하고
그것이 무엇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현실에서 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이런 마술과 같다.
따라서 이 내용을 잘 관하면
공 무상 무원무작 해탈문을 통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상태에 일단 쉽게 이를 수 있게 된다.
[img2-49]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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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시점 2564_0301_110822
mus0fl--Indochine - Monte Cristo (Live Putain de Stade).lrc
해심밀경의 내용과 관련해서
기존에 살핀 시설과 시설의 철거문제를 살핀다.
그런데 문제만 제시하고
그에 대해 살피는 것은 생략하고 있다.
이전 조각글에서 이 내용을 살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만 제시하고 넘어가면
또 시원하지 않다.
그래서 다시 이어 살피기로 한다.
>>>
해심밀경에서 다음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거나
혹은 한결같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두라면(蠧羅綿)의 부드러운 성품이
두라면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
[....이하 줄임...]
승의제는 일체에
보편한 한맛[일미一味]의 모습이다.
이런 내용이다.
여기서 우선 승의제가 무엇인가가 시설과 관련해서 문제된다.
어떤 것의 정체를 살필 때
그 본 바탕의 실재나 참된 진짜의 유무에 관련된 내용을 살피게 되는데
이는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얻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본래 언설과 분별을 떠난다.
그러나 그런 본 상태를 파악하고 제시하기 위해서
일정한 언설을 시설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그런 내용을 가리키고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시설과 승의제는 이런 관계가 있게 된다.
그래서 우선 이런 본 바탕의 내용을 파악하려면
현실에서 가장 옳다고 보게 되는 내용을
세속의 진리 차원에서 일단 확립해 시설하는 것이 요구된다.
간단히 이 사정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자신의 손으로 보는 것을 컵이나 바위 등에 대면
촉감이 느껴지는가 느껴지지 않는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현실에서 가장 옳다고 보는 세속의 진리[세속제]는
어떻게 확립하게 되는가 하면
그런 컵이나 바위에 자신의 손을 대면
그로 인해 촉감을 얻는다라는 형태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세속에서의 진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만일 위 상황에서
라이터를 바위에 대면 자신이 촉감을 얻는다거나
자신의 손을 바위에 대어도 자신이 촉감을 얻지 못한다라거나
2 더하기 3 은 8 이라는 식으로 어떤 내용을 제시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세속에서 보는 한편,
자신의 손을 바위에 대면 그 때 촉감을 느낀다.
2 더하기 3 은 답이 5 다
이런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일단 세속에서는 그런 내용을 옳다고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일단 처음부터
그런 현실에 그런 생멸이나
그런 생멸을 문제삼을 어떤 a 와 같은 내용도
얻을 수 없다고 보는 전제에 있는 것이다.
다만 상대에게 그런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일단은 전도망상분별을 그렇게 일으킨 상대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인 가운데
그 상태에서 옳다고 보게 되는 내용을
먼저 확립해 시설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놓고
본래는 그런 내용에
어떤 a 나 자신과 같은 내용이나 그 모습 성품을 일체
얻을 수 없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런 내용을 일단 시설하고
그 내용이 앞과 같은 내용이라고 일단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손'을 '바위'에 대면 그 순간 촉감을 얻는다는 것은
본래 그 현실 상황에
손이라고 할 것이나
바위라고 할 것이나
촉감이라고 할 것이나
그런 내용을 얻는 마음이라거나
등등을 얻을 수 없다고 보지만,
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런 내용을 언설로 시설하여 그런 것을 가리킨 다음 .
그런 바탕에서
앞과 같은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면 그 내용은
'손을 바위에 대면 그 순간 촉감을 얻는다'는 형태가 되는데
그것은 손을 바위에 대어도 촉감을 얻지 못한다거나
라이터가 바위에 떨어져서 그래서 그 순간 자신이 촉감을 얻는다는 내용과는 달리
그런 내용은 세속에서의 일반인들이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가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것을 세속의 진리[세속제]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그런 전도몽상분별 내용을 긍정하고 그런 상태에서 머물기 위해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세속차원에서도 엉터리인 내용을 제거하는 한편
이렇게 확립한 세속의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본래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을 이해시키고
깨닫게 하는 데에 그 본 취지와 목적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그렇게 본래는 언설이나 분별을 통해서 얻을 수 없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런 시설을 하고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인데
이 경우 그런 시설을 통해 세속제를 확립한 가운데
이를 통해 살피고자 하는 본 사정 자체에 대한 내용이
곧 여기서 승의제나 제일의제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승의제나 제일의제란 표현도 하나의 언어 시설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일단 그런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진리란 그런 측면의 진리인 것이고
그래서 세속의 측면에서의 진리와는 다른 측면이라는 것을
일단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승의제[=제일의제, 언어를 초월한 본 바탕에 관련된 진리]는
앞과 같은 세속제를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관계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정이 조금 복잡한 것이다.
이제 앞에서 세속제로 확립한 내용을 하나 놓고
보자.
현실에서 다음 내용을 검토해보자.
자신이 눈으로 보게 되는 '손부분'을 '바위부분'에 대면 그 순간 촉감을 얻는다
위 명제가 옳다고 보는가. 틀리다고 보는가.
옳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세속제의 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각 부분의 관계를
식으로 간단히 나타내면
a + b => C
이런 관계식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상황에서
a 를 넣다 뺐다 해보면 C 를 얻거나 얻지 못하는 관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b 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C 를 현실에서 얻는 것은
이런 a 와 b 가 관계된다고 보고
이를 인과관계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내용도 다 사정이 비슷하다.
눈을 뜨고 감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눈이 눈을 직접 보지 못하므로
촉감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
여하튼 그처럼 눈을 뜬다는 것과
그 상황에서 보게 되는 화분이 그 자리에 있다거나 없다는 것과
그리고 그 상황에서 빛이 비추이고 있다거나 없다는 내용을 살피면
결국 앞과 마찬가지의 관계를 또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빛이 있는 상황에서 + 눈을 뜨고 + 앞에 화분을 놓으면 => 화분의 모습을 본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빛을 비추이지 않으면 화분모습을 보게 되는가.
이 상황에서 그 주체가 눈을 감으면 화분모습이 보이는가.
이 상황에서 앞에 보이는 화분을 옆에 영희가 어디로 가져가 제거하면
화분의 모습이 보이는가.
이런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이 자신이 화분 모습을 보는데 관계가 있다고 보고
그렇게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도 앞과 마찬가지로 세속의 진리인 것이다.
간단하던 복잡하던 현실에서
파악하는 세속의 진리는 그런 것이다.
이는
만일 위 상황에서 위 내용과 다른 내용을 제시하면
그것은 세속에서 엉터리이고 잘못된 내용임을 파악하게 되는데 반해서
위 내용은 그렇지 않은 내용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즉 위 상황에서 어떤 이가 화분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그 상황에서 옆에 있는 철수가 라이터를 하늘에 던져서 그런 것이다.
또는 옆에서 철수가 돌을 던져서 그런 내용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는 그 당시 나무에 뻐꾸기가 앉아서 그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관계를 제시하면 그것을 세속에서 옳다고 보겠는가.
까마귀 날어서 배 떨어진다고 제시해도
그것이 엉터리임을 일반적으로 쉽게 파악하는데
위 내용들은 이보다 더 엉터리임을 누구나 쉽게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제시한 내용들이 세속의 진리[세속제]라고 하는 의미는
앞의 내용들은 그런 엉터리가 아니고
세속차원에서는 대부분 옳고 진리임을 인정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세속 차원에서 누구나 진리라고 보게 되는 내용을 일단 확립해서
세속차원에서도 엉터리라고 할 내용을 일단 제거하는 한편
이렇게 확립된 세속의 진리로서
이제 본래 제시하고자 한 승의의 진리를 이해시키는 작업을 해나가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처음에 세속의 진리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눈을 떠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놓고
그런 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어떤 이가 여긴다면
그 내용 자체가 눈을 뜨는 순간 얻었고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것이므로
그런 판단은 엉터리임을 쉽게 보게 된다.
그러니 일단 그런 엉터리는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손을 톱으로 잘라내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가.
손이 잘려져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현실에서 대부분 그렇지 않으므로 이것을 일단 고통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손이 톱으로 잘려지는 그 전후 사정을 살피고
그와 인과관련이 있다고 보는 내용들은
결국 이 고통과 관련되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내용들이므로
또 이것을 함께 취급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한폭탄이 터져서 손발이 잘라졌는데
그렇게 손발이 잘라진 그 부분만 문제삼고
그렇게 되도록 시한폭탄을 만들고 그렇게 장치한 것은
이것과 무관하다고 보겠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현실에서 고통이 문제되어 이 고통을 제거하려면
그 자체만 따로 놓고 보면 그런 고통이 아닌 것으로 보게 되는 내용도
함께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아직 터지지 않고 보관되어 있는 가방안의 시한폭탄은
그 자체는 아무 고통을 주지 않는다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런 고통을 피하기 힘들다고 그 관계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갖는 것은
문제삼는 고통의 내용으로 다 함께 묶어서
함께 취급해야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동차가 급발진해서 벼랑에서 차가 굴러 다리가 끊어진 경우
그것만 고통이다.
그리고 그런 자동차나 자동차를 타고 간 일은 고통이 아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본다면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고통을 받게 되는 그 관계를 살피다 보면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 대하고 얻게 되는
그 일체는 다 그런 고통과 관계가 되어 있는 것이고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떼어서 고통과 관련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일체 없다.
또 만일 그렇게 어느 하나를 떼어 그 자체는 고통이 아니라고 보는 가운데
그 어느 하나를 떼어 취하면 결국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관계를 파악한 가운데
현실에서 한 주체가 대하는 그 일체는 그런 측면에서
그 일체가 고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극심한 고통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문제되어 살필 때
그런 고통을 얻게 한 원인은 그 자체만 따로 놓고 보면
고통이 아니라고 보게 되기에
그런 고통을 겪는 그 상황의 내용만 고통이고
다른 것은 고통이 아니라고 일반적으로 보는 견해가 잘못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상태에서 어떤 주체가 대하는 그 '일체는 다 고통이라'는 명제를
세속제로 확립하는 의미는
앞과 같이 판단하는 엉터리 견해를 일단 제거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나머지 내용들도 다 마찬가지다.
연기관계도 이미 앞에서 살폈는데
눈을 떠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세속에서 옳다고 보는 내용이고
예를 들어 손으로 만져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엉터리이므로
그런 견해를 갖는 경우가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일단
일체에 대해서 확립해 제시할 수 있는 세속의진리[세속제]가 확립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일체는 영원하지 않다. [제행무상]
일체는 고이다. [일체개고]
일체는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란 없고, 무아 무자성이다. [제법무아]
일체는 본래 생멸이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이다.[열반적정]
일체는 그 실재를 얻을 수 없고 공한 것이다.[일체개공]
이런 내용을 확립해 제시하게 된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일체에 대해서 이와 일치하지 않는 어떤 다른 견해를 가지면
그것은 세속차원에서도 엉터리인 것이고
그런 엉터리 견해가 일으키는 번뇌와 고통 역시 대단히 문제되므로
그래서 그런 내용은 일단 그렇게 제거해 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갓 태어난 병아리의 소대변을 취해 마시면
일체 병을 낫고 소원은 소원대로 다 성취된다고 여기고 자꾸 그것을 행하면
일단 그런 엉터리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서
승의제는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는 양쪽을 다 떠난다는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서
승의제가 무언가를 살피기 위해
이와 관계되는 세속제부터 그 의미를 먼저 살피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진다고 보게 된다.
그러쟎아도 조각글이 계속 밀리는 추세인데
이미 앞에 제시한 내용을 포함해서
다 살피자면
간단하게 핵심만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조금 논점을 간단히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조금 쉬고 다음 내용을 이어 나가기로 한다.
mus0fl--Alain Chamfort - Baby Lou.lrc
쉴 때마다 멀티자료를 너무 많이 붙여서 어지럽다는 연구원도 있다.
그러나 현재 에술작품이나 아름다운 풍광사진을 많이 수집하고
목록을 많이 만들어 두었다.
그래서 평생 붙여도 소진하기 힘들다.
한편 글이 너무 길어지고 복잡한 경우
조금씩 쉬면서 나눠 쓰게 된다.
새로 조각글을 따로 작성하기 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는 입장은 또 이와 사정 다르다.
그래서 이런 자료를 붙여서 조금 길게 쉬면서
천천히 내용을 살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다시 쉬고 또 이어서 살피기로 한다.
mus0fl--Alain Souchon - Le Mystère.lrc
지금까지 살핀 시설과 시설의 제거와 관련되는 내용이
해심밀경 서품과 승의제상품과 관련이 많이 되기에
핵심 부분을 하나하나 제시해서 살피는데
해심밀경 이후 부분에서는 다시
그외 지금까지 살폈던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상호관계나
또 마음현상을 살핌에 있어서 1,2,3,4,5,6,7,8 식과 같은 여러 마음을 시설해서 살피는 문제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수행들은
어떻게 행할 수 있고 성불할 수 있는가 이런 다양한 내용들이
자세히 정리되어 제시되기에
해심밀경은 대단히 중요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내용은 이후에도 또 뽑히면 자세히 살피겠지만,
기존에 정리제시된 부분을 미치 참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도리라고 본다.
5.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
http://buddhism007.tistory.com/1054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
6.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
http://buddhism007.tistory.com/1053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
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http://buddhism007.tistory.com/1052 ☞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아래에서는 일단 이번에 살피는 승의제상품에 제시된 내용을
충분히 살피면서
현실에서 각 주체가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근본원인이 되는
망집을 제거하기 위해 행하는 시설과
그 시설의 제거문제를 살피기로 한다.
앞에 제시한 여러 문제를 놓고
그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세속적 진리의 내용을 놓고
하나하나 살펴나가기로 한다.
앞에서 이런 예를 들었다.
자신이 손으로 보는 부분을 화분이나 바위로 보는 부분에 갖다 대면
그 순간 촉감을 얻게 된다.
그 외의 내용도 사정이 같다.
종이를 불로 태우면 그 때까지 보지 못하던 연기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내용도 마찬가지고
왼 손에 오른 손을 세게 부딪히면 그 순간 각 손에서는 얻지 못한 소리가 나타난다.
이런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에서 옳다고 보는 세속적진리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이 내용을 처음 제시할 때
손이나 바위 화분 종이 불 소리 이런 내용부터
기초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알고보면 이것부터가 언설을 통한 안립 시설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승의제상품에서 소개한
마술사[환사]의 마술내용이 관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레고블럭으로 코끼리 모양을 만들어서
다들 그것을 코끼리라고 생각하게 되든데
왜 이것을 마술이라고 하고
어리석은 이가 일으키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
엉터리 전도망상분별이라고 하는가 하는 사정을 이해하려면
일단 앞에서 처음 제시한 것처럼
그렇게 얻는 감각현실 내용자체가 곧 그에 대해 행하는 그런 분별내용인가
또는 반대로 그런 분별 내용자체가 그런 감각현실인가를 놓고 살피고
다시 사정은 그렇지만,
그런 관념분별을 또 그런 감각현실을 떠나 얻는 것인가를
잘 살피는 것이 그 원칙적인 방안이라고 보게 된다.
지금 이런 내용을 어리석은 이가 마술사의 환술에 홀린 상황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앞과 같은 사정으로 그런 분별내용은
거기에서 본래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런 내용을 대하고 그런 분별을 일으키고 나면
마치 그런 관념분별을 행한 내용이
그 부분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고 임하게 된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시설과 관련된 내용을 격자이론이나
비닐마술로 많이 소개했는데
결국은 사정이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이런 시설에 관련된 문제에서
그렇게 시설해 내용을 제시하지만,
본 사정은 본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과 같은 원칙적인 방안과는 별도로
격자이론을 가지고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해심밀경에서 나오는 환술사가 행하는
환술에는 이 격자이론의 설명이 조금 더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격자를 통한 설명은
하나의 감각현실 단면을 놓고 분별을 일으키는 문제에도 적용이 되고
연속하는 감각현실에서 오고감이나 생멸이라는 분별을 일으킬 때도 적용이 되고
또 그런 관념분별을 행하여 그 내용을 실재에 그대로 있다고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경우에도
적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하나의 정지된 현실단면을 놓고
그 어느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고 분별을 행하고
그런 분별로 시설을 할 때를 놓고 잘 살피면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게 된다.
여기서 격자란 다음과 같은 모눈종이를 놓고 생각하면
쉽다.
마음에 이런 모눈종이가 있는 것은 아닌데
한 주체가 예를 들어 눈을 떠서 어떤 감각현실을 얻고 나서
그것을 대하면서 관념분별을 행할 때
관념영역에서는 마치 이런 격자가 있는 것처럼
각 부분을 묶고 나누고 하는 가운데
일정한 어떤 부분은 꽃이고
또 일정한 어떤 다른 부분은 영희고
또 어떤 다른 부분은 집이고
또 다른 부분은 자기 자신의 몸이라는 식으로
분별을 행하게 되기에
이런 격자를 놓고 설명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경전에서 처음 변계소집이렇게 표현하는
관념 영역의 활동이 결국 이와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왜 앞에서 마술사의 환술과 그 사정이 같다고 하는지는
이런 격자를 놓고 먼저 사정을 살피면
조금 쉽게 이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img90]
08pfl--image/grid_00.jpg
[img91]
08pfl--image/grid_01.jpg
현실에서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는 가운데
저런 부분이 보여서
그것을 A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는 추상화된 형태인데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로 생각할 수 있다.
[img2-10]
08pfl--image/사람.jpg
현실에서 저런 모습을 보게 되면
저 부분을 놓고 철수라는 사람 얼굴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저 그림에는 이미 각 부분에 각 동물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각 부분은 사람이 아닌데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 얼굴로 보이는 상황인 것이다.
여하튼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대하고
각 부분을 무엇이라고 관념분별을 행하는 경우
그런 감각현실부분과 그 관념분별의 관계는
위 그림과 사정이 같다고 이해하는데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그림이라고 보고
이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실은 그런 감각현실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현실에서 각 주체가 그렇게 관념분별을 행한다는 사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일단 그런 입장을 받아들여서
그런 부분이 곧 사람 얼굴이라고 하자.
이렇게 임하는 것을 시설이라고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시설을 통해서
실재나 감각현실이나
또 연속된 감각현실이나 하나같이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자는 의미다.
그리고 나서는 그렇게 시설한 내용으로
그런 이해를 잘 마쳤으면
그런 이해를 위해 처음 시설한 그 내용들도
같은 바탕에서
잘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img91]
08pfl--image/grid_01.jpg
다시 추상화 모드로 들어와서
격자의 일정부분이 저와 같이 다른 부분과 구별되기에
그 부분을 A 라고 한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여기서 원칙적인 설명을 통해서
이해가 잘 안 되는 경우는
이제 다음과 같은 방안으로
상대가 자신이 생각하는 A 가 있다고 여기는 그런 부분은
알고보면 그런 부분에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환술사가 레고블럭으로 코끼리 형태를 만들었을 때
그런 부분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먼저 앞과 같은 도형을 놓고 a 라고 여기는 상태에서
이제 a 가 아닌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을 검은 색으로 칠헤 제시해보자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 쉽다.
[img92]
08pfl--image/grid_02.jpg
그런데 위 상태에서 a 가 아닌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을 검은색으로 칠해보자고 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칠해서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img94]
08pfl--image/grid_04.jpg
그래서 처음에 어떤 부분이 a 라고 본 부분이 이 경우
다 검게 칠해져 없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가는
다음 그림의 사정을 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img93]
08pfl--image/grid_03.jpg
우선 격자를 통해서 처음 a 형태로 일정 부분을 묶었다고 할 때
이와 다른 형태로 부분을 묶어 뽑아낼 수 있는 여러 유형을 위 그림에 제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위와 같은 유형을 각기 묶어서
그것을 놓고 그것이 각기 처음 제시한 그런 A 인가를 물어본다고 하자.
그 때 그런 각 부분이 A 가 아니라고 본다면
그 부분을 검게 칠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다음 그림처럼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img94]
08pfl--image/grid_04.jpg
이것은 처음 a 가 그 안에 있다고 그렇게 시설하고
그런 내용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그것을 다시 살피면
그 전체는 또 전체가 다 그런 a 가 아니고
없다는 결론으로 처음 이끄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라는 논의를 통해서 살폈지만,
이것은 어느 양쪽 입장도 그렇게 곤란하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일뿐
그런 것이 일체 없다거나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앞의 처음 제시한 내용으로 돌아가면
또 그런 a 가 거기에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내용은 집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집 마당의 모래 하나가 그 집인가.
이렇게 문제를 처음 제기하면서
그렇게 집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하나씩 빼내면
결국 집 전체가 다 없어지게 된다는 내용과도 같다.
또 사람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사람에게 있는 머리카락 하나를 놓거나 고
또는 몸 안의 작은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등을 하나씩 나열하면서
이것들이 영희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하나하나를 다 제거해가면
나중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그런 내용과도 같다.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본 사정이 그런 것이다.
그것은 원칙적인 방안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일단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을 시설해 놓고
다시 살피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까지 뛰어 온다거나
꽃이 어제 없었다 그런데 오늘 보인다. 그래서 꽃이 피어나 생겨났다.
또 그렇게 꽃이 있다가 또 다음날 보니 없다. 그래서 그 꽃이 그렇게 없어졌다는
생멸의 과정도 마찬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오늘날 1 초에 수만장의 사진을 찍는 촬영기가 있다고 할 때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까지 뛰어 오는 동작이나
꽃이 하루에 피고 지는 과정을 다 촬영했다고 하자.
그래서 그 사진을 모두 나열한 다음
거기에 어디에 그런 생멸이나 오고감이 있다고 할 것인가를
하나하나 사진을 놓고 헤아려 본다고 가정해보자.
격자 이론을 운동이나 연속된 내용에 적용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여하튼 이들 내용을 다 합쳐서 이해할 때는
거기에 분명 영희가 뛰어서 온다거나
생멸함이 있다고 여기는데
그 각 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각 부분에 없다고 할 내용을
합쳐서 대하면
이제 그렇게 합쳐진 부분에서
자신은 그런 생멸이나 오고감이 거기에 있다고
관념분별을 행하면서
그것을 대하게 되다는 사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원칙적인 해결방안은
앞에 이미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영역에서
무언가가 들고 나고 하는 그런 상태를 놓고
그런 생멸의 분별을 행한다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러나 그 감각현실이 곧 그런 관념분별인가.
또 반대로
그 관념분별 자체가 곧 그런 감각현실인가를 놓고
살피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사정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그런 분별을 일으키면
그 상태에서 자신이 일으킨 분별 내용은
곧 그 감각현실에 그렇게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실답게 있는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이 내용들을 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본 바탕이 되는 실재도
그 사정이 그렇다고 이해하면서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하나같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특히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에 대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이
생사고통을 받는데 가장 핵심이 되고 근본이 되기에
이런 부분을 놓고 앞과 같은 망집을 일으키는 현상을
잘 파악하여서 그런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위 내용들은 이전에도 많이 살폈던 내용이지만,
이것이 환술사가 기와나 모래를 놓고
코끼리를 만들어내면
어리석은 이는 거기에 코끼리가 정말 있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대해 나간다고 제시한
경전의 내용과 관련되는 부분이기에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조금 쉬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Louis Murat - Le Mou Du Chat.lrc
앞에서 살핀 격자이론이나
이전 조각글들에서 제시한 비닐마술이나
해심밀경에서 소개하는 환사의 마술이나
다 같은 상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다.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감각현실이나 실재에 그렇게 실답게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그것을 대하는 것인데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놓고 그렇게 망집을 바탕으로 대하면서
임한다는 사정을 말하는 것이다.
세모가 그려져 있는 비닐에 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비닐을 겹쳐 놓고
이것을 대하면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나타나 보이는 가운데
그 각 비닐에 자신이 보는 그런 안이 세모인 도너츠가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그것을 대하는 셈인데
자신이 어떤 감각현실에 대해 관념분별을 일으키게되면
그 감각현실에는 곧 그런 관념분별내용이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대하는 것이고
반대로 관념분별은 관념분별대로 그런 감각현실을 그 구성요소로 갖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희라고 자신이 생각할 때는 그것은 곧
현실에서 보는 그런 모습으로 여기서 저기로 오가는 그런 감각현실내용이고
또 그런 감각현실 내용에는 자신이 생각한 그런 관념분별이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이 내용을 다 접착시켜서 대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그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에까지 나아가서
그렇게 임하면서 그것을 실다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는 상황에서는
바로 그런 자세로 임하며
그 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받게 되는 것이고
또 현실 매순간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를 함에도
바로 그런 내용들에 그렇게 망상분별과 집착을 갖고 임하므로써
수행으로 자세를 전환해 벗어나오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런 바탕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묶여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계기로 이런 상황을 벗어나오지 못하면
매 순간 순간을 그렇게 임하는 가운데
무량겁을 나아가도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해심밀경의 뒷 부분의 심의식상품을 보면
비닐마술과 비슷한 내용으로
파지카 보배의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파지카(頗胝迦)보배란
투명한 수정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적당한데
그 사정을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비유컨대 청정한 파지가(頗胝迦)보배는
푸르게 물든 빛과 합하면
곧 제청(帝靑)이나
대청(大靑)의 마니(摩尼)보배와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제청이나 대청의 마니보배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생명]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붉게 물든 빛과 합하면
곧 호박(琥珀)의 마니보배와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호박의 마니보배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초록으로 물든 빛과 합하면
곧 말라갈다(末羅羯多) 마니보배와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말라갈다 마니보배라고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노랗게 물든 빛깔과 합하면
곧 금의 모습과 비슷하니,
삿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진짜 금의 모습인 양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들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런 파지카 보배를 통해 비유로 제시하는 내용이 다음이다.
...
저 파지가보배에 상응하는 물든 빛깔이 나타나는 것처럼,
청정한 의타기상에 나타나는 변계소집상의 말과 습기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이것은 결국 의타기상이라고 표현하는 감각현실을 대하면서
그에 대해 어떤 주체가 어떤 일정부분이 무엇이라고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면
그런 내용을 거기에서 얻을 수 없는 그런 감각현실을 놓고 대하는 가운데
그 주체는 자꾸 그것이 그런 관념분별 내용에 해당하는 그런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그렇게 취하고
그에 머물려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에 묶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 하나의 정지 단면에서라도
그런 감각현실 영역의 내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분별내용이
그런 영역들에서 정말 얻어지고
그 영역에 그렇게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인가를 잘 확인하고
현실에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집착을 갖고
모든 집착을 일으키는 근본은 결국 자신인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감각현실부분을 놓고
그런 부분을 그런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그렇게
그 부분을 취하고 그렇게 머물러 그에 바탕해 행하면
수행자 라이센스를 박탈당한다는 내용을
금강경에서
수행자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면
수행자가 아니다라는 구절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은데도
그런 내용이 그런 것인줄 알고
전도망상을 일으키켜 그 내용을 그렇게 대하게 되면
그 각 부분을 그렇게 취하고
그렇게 머물러서 그렇게 집착을 일으켜
행해나가게 되므로
그것이 곧 그런 주체가 생사고통을
그렇게 받아나가게 되는 혹-업-고의 과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비닐마술이나 파지카보배의 비유나 격자이론이나
환사의 마술이나 다 같은 상태의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제시하는 내용인데
이런 비유내용은 비록 이해하기 쉽다고 보지만,
현실에서 눈을 뜨고 거리에 서서
오가는 자동차나 집이나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몸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면
앞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잘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
곧 현실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앞과 같은 비유들로
한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얻을 때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얻어진다고 여기고
그런 내용이 그처럼 실답게 있다고 여기는 전도망상분별 현상이
왜 그 주체의 생사고통에 직접 관련이 되는 내용이 되는가 하는 사정을 이해했다면
이제 현실에서 문제삼는 각 존재 영역을 놓고
이 문제를 살펴보자.
[img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일전에도 제시한 그림인데
현실에서 주로 문제삼는 각 내용을
나열한 것이다.
여기서 처음 유위법은 유위법도 아니고 무위법도 아니다.
이런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무언가부터 살펴보자.
앞에서 격자이론으로도 설명했지만,
감각현실의 어떤 부분을 취하여 붙잡고
어떤 이가 그 부분은 a 나 자신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정작 그 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살폈다.
원칙적으로 그런 감각현실은 감각현실인 것이고 관념분별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그 두 내용을 접착시켜 놓고 대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그 부분에 그렇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자꾸 고집하면서
대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앞과 같은 내용을 제시하는 경우
거꾸로 이렇게 되 물어보게 된다.
아니 이것이 그릇이 아니고 그러면 무엇인가.
자신이나 꽃이나 바위 등등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아니 이것이 자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이것이 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외 나머지 것도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상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각 영역의 내용을 놓고
그 본 사정이 어떤가를 살피려면
사정은 본래 그렇지만,
그런 본 사정을 이해시키려는 그 입장에서도
일단은 관념분별이나 언설을 통해서
그런 부분을 일단 a 나 b 등이라고 시설을 한 다음에
그것을 살펴야 하는 사정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5 % 라고 표시한 부분은
그런 시설에 사용하게 되는 언어가
본래 어떤 영역에 있는 내용인가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것은
다른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기 위해서
그런 시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다음을 생각해보자.
'꽃'이라는 하나의 단어나 관념을 놓고 보자.
우선 '꽃'이라고 적거나 'kkot" 이라고 소리를 낸다고 해보자.
이 자체만 놓고 보면 이런 글자도 역시 하나의 그림이나 소리인 것이서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대하는 이는 다시 이런 그림이나 소리를 놓고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상태에서도
그런 어떤 관념내용으로서 떠올리게 되는 글자형태나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언어는 이 두 영역에 위치한다고 보지만,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런 언어가
어떤 다른 것을 가리키고 판단을 하게 되는 기능을 갖는 부분은
관념영역에서의 관념분별 측면의 언어내용들인 것이다.
그것은 감각현실의 측면의 언어내용인
감각현실로서의 말소리나 글자 모습 등은
어떤 주체가 그것을 얻는 그 순간 외는
다른 순간에 재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그 직전에 눈으로 본 감각현실을
다음 순간에 그 내용 그대로 다시 떠올려 얻어낸다거나
직전에 들은 소리를 그대로 다시 되살려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을 가리키고 문장을 구성해서 분별을 행하고
판단하는 과정에 있어서 사용되는 것은
관념분별 측면의 언어내용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런 꽃이란 언어가
언어기능을 한다는 것은
그 글자가 갖는 모습이나 소리에 해당한 내용 자체라기 보다는
이런 내용으로서
그것들로서
다른 영역의 내용을 가리켜 나타낸다는 그런 측면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꽃'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가리키거나 의미하는 영역들이 어떻게 각기 다른가를 살펴보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살펴보자.
꽃%은 한글이다. [언어 그차제로서 꽃]
꽃!@은 아름다워서 좋다. [ 꽃을 통해 얻는 좋고 나쁜 느낌 -> 가치 판단 대상 ]
꽃@은 식물이다. [ 관념분별내용으로서 꽃 ]
저 꽃!은 눈을 떠 대하면 노랗게 보인다. [ 감각현실 가운데 눈을 통해 얻는 내용으로서 꽃 ]
그런데 저 꽃!은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게 되는데 그렇다해도 그와 관계없이 꽃#은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 현실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 ]
꽃!이 매번 볼 때마다 각기 다르지만 그대로 어느 정도 일정한 것은
그런 꽃! 안에 그런 내용을 매순간 얻게 만드는 어떤 진짜라고 할 꽃$이 있기에 그런 것인가. [ 영원불변한 실체 ]
이렇게 언어로 다양한 영역의 내용을 표현해보았다.
위 문장에서는 각기 조금씩 다른 영역의 내용을 가리키는 단어에
각기 특수한 기호를 덧붙여 표시를 해 구분해 보았다.
문제는 이처럼 언어형태로 시설한 꽃이라는 단어는
각 영역의 내용을 이렇게 가리키는데 모두 사용되는 가운데
혼동을 일으키는 한편,
정작 그런 언어 시설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관념분별은
그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게 얻지 못하는 기본 상태에서
다만 방편상 그렇게 나타내 사용하게 된다는 사정을
기본적으로 갖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 시설을 해서 어떤 내용을 가리킬 때
그런 시설이 기본적으로 갖는 사정인 것이다.
문제는 사정이 그렇지만,
처음에 어떤 주체가 어떤 것을 대하는 가운데 어떤 생각을 일으키면
그런 관념내용이 곧 그런 다른 영역에도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전도망상분별 상태에서는
이런 시설들이 본래 갖는 그런 기본사정이 함께 무시되는 것이 일반이고
나중에는 이런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설하는 그런 내용도
역시 처음에 그가 현실 내용 전반에 대해 일으킨 전도망상 증상처럼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과 같이 그 사정을 제시하거나
각 언어표현마다 특수한 표시를 붙여가며 이 문제를 살펴나가면
이런 혼동을 매 경우 일으키지 않고
시정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지만,
당장 거리에 서서
오가는 자동차나 사람이나 집을 대하면서
그 각각을 자동차나 사람 영희 철수,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표현하고 생활하다 보면
또 마찬가지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아닐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다는 의미다.
그래서 스스로 그런 사정을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매 순간 그런 상태로
생사현실에 그렇게 묶여서 임하게 되는 것이 바로
생사고통을 받는 근본 원인이고 문제인 것이다.
처음 어떤 주체가 눈을 떠 감각현실을 얻게 될 때는
그런 마음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게 되는 것이고
계속 그런 내용들이 그 영역에서 들고 나고 하기에
그래서 그렇게 무언가가 없다가 있는 현상을 '생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가 없는 것을 '멸한다'라고 표현하는 가운데
그런 현상을 놓고 '생멸'이라고 표현해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여기서부터 나타나게 된다.
처음 그런 감각현실 어느 부분을 놓고
그 부분이 곧 '자신'이라거나 '영희'라거나 'a'라고 여기고
그런 것을 놓고 각기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그런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 '생한다'거나 '멸한다'거나 표현하고
그런 현상을 '생멸'이라고 언어로 시설해 표현하는 것부터가
바로 앞의 문제와 관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그런 내용을 언어로 표현한 가운데
그것의 있고 없음 생멸을 또 시설하지만,
정작 그런 관념분별에 해당한 내용은
그 감각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이 양 영역의 내용부터 접착시켜 놓고
양 내용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격자나 비닐마술이나 파지카보배나 환사의 마술을 통해서
지적하고자하는 망상증상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이해시키려는 입장에서도
일단 그렇게 시설하고 나서
그 사정을 설명할 도리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그렇게 생멸한다고 보는 내용들이기에
이것을 유위법이라고 표현해 가리키는 것이고
한편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런 생멸을 설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무위법이라고 표현해 가리키는 것이다.
무위법에 해당하는 내용 가운데는
허공이나 택멸 비택멸 이런 내용들도 함께 제시되는데
그런 내용도 사정이 비슷하다.
어떤 허공과 같은 공간을 놓고
거기에서 현실 내용에서 보는 앞과 같은 생멸을 보기는 곤란하다고 보므로
허공은 생멸과 무관한 '무위법'이라고 본다는 의미다.
문제는 '유위법'이나 '무위법'이라는 언어 시설로
각기 그런 영역의 그런 내용을 가리킨다고 할 때
그런 무위법이나 유위법이라는 언어나 관념자체는
그런 내용을 가리키기 위한 하나의 시설인 것으로서
정작 그런 내용은
그 시설이 가리키는 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언어시설로 그런 내용을 가리키게 되면
이 부분에서부터 혼동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혼동은
처음 각 영역의 내용을 얻고 나서
어떤 한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얻어지고
그래서 그것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망상증상과 그 성격이 동일하다는 점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시설이 가리키게 되는 '언설이나 관념분별을 떠난' 그 어떤 내용과
그 시설이 관념분별로서 갖는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안된다고
반복해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 사정을 파악하고
다시 살피면
무위법이란 표현은 본래 변계소집인 것으로서
그것은 유위법도 아니고 무위법도 아니다라고 제시하는 경전 내용이
무슨 사정을 제시하는가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일단 각 부분의 글자가 다 같은 단어 표현으로 되어 있기에
각 부분이 각기 가리키는 내용이 무엇인가가 혼동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은 어떤 글자 자체가 그 글자만으로
각기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킨다고 정해줄 수 있는 힘을 본래 갖지 못하므로
각 부분의 각 언어시설이
각기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는
결국 각 경우마다 전후 맥락을 놓고
잘 음미해서 잘 찾아내야 하는 것이
숙제가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전체적으로 부적절한 내용이 되는가
또 이와 달리 어떤 다른 영역의 다른 내용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적절한가를 놓고 각 경우마다
그것을 잘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을 가리키기 위해서 손가락을 사용할 때
손가락을 바라보면 곤란하다는 비유가 제시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유위법이란 유위법도 아니고 무위법도 아니다.
또
무위법이란 무위법도 아니고 유위법도 아니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살피려면
먼저 각 문장의 앞 주어 부분에 위치한 유위법과 무위법은
일단 그런 시설로 가리키고자한 그런 내용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뒷 부분에 나열된 무위법 유위법은
그런 내용을 가리키기 위한 시설이거나
또는 그런 내용에 대해 갖는 관념분별 내용이라고 이해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대하면
이 문장은 그런 시설로 가리킨 그런 영역의 그런 내용은
그런 시설이나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물론 본인의 개인의견이고
위 문장 어느 단어에 그 단어가 그런 내용을 가리킨다고
명확하게 제시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단 이렇게 맥락상 그 구절의 의미나 내용을 음미해보고
또 다른 해석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또 문제되는 실재나 감각현실 등 각 영역과 관련해
그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시설을 사용할 때
그 시설이 매 경우마다 갖게 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까지 대단히 길게 내용을 살폈다.
이미 앞에서 나열한 승의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또 내용을 살펴야 한다고 보지만,
이는 여하튼 이런 시설을 통해서
본래 언어 분별을 떠난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을 파악하는 문제와 관련되고
실재가 공하다는 표현이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하는 주제는
이전 조각들에서도 많이 반복해 살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또 기본적으로 앞과 같이
각 부분이 a 나 b 라고 시설한 상태에서
어떤 세속제(진리)를 확립해 제시하게 되고
이것을 통해 어떻게 본 바탕인 승의제를 밝히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보는데
이는 이미 다른 부분에서 설명했으므로
아주 간단히만 살피고 나머지는 생략하기로 한다.
앞에서 일단
손을 꽃에 대면 촉감이 느껴진다.
빛이 있는 곳에서 앞에 꽃을 놓고 눈을 뜨면 꽃의 모습을 보게 된다.
종이를 태우면 연기가 나타난다.
이런 내용을 세속제의 하나의 예로 제시했는데
결국 이런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앞에 제시한 시설을 바탕으로 하여
각 부분을 손이나 꽃 촉감 빛 눈 등등으로 시설한 가운데
그렇게 각 내용의 관계를 현실에서 다시 파악해서
그런 내용을 그렇게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a + b => C 라는 형태로 제시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 상황에서 a 나 b 를 넣거나 빼면
C 를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하는 관계성을 현실에서 파악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세속에서 확립해 제시하는 a + b => C 라는 관계성이
곧 처음 일체에 대해 제시하는 기본적 진리판단을
제시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즉 여기서 a + b => C 라고 현실에서 확립해내는 관계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하면
먼저 그렇게 얻는 현실의 C 라는 내용은
바로 그런 사정으로
그런 관계가 충족되는 그런 조건에서 얻는 그런 내용이고
그런 조건이 아니면 얻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므로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내용을 제시하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 무상 ]
또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C에 대해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입장에서는
바로 그런 사정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 마련이므로
그런 내용이 무상하다는 그 사정은
그 일체가 곧 고통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근거이기도 한 것이다. [일체개고]
또 그런 C 가 그런 관계에서 얻는 것이므로
그런 관계를 떠나 진짜라고 할 고정되고 영원불변하는 실체도 아닌 것이고
또 한편
그런 고정되고 영원불변한 실체가 있다고 전제하면
그런 내용은 또 그렇게 얻지 못한다는 관계성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런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도
바로 이런 바탕에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무아, 무자성 -> 제법무아]
또 위 내용은 그런 C 라는 것은 그런 관계에서 얻는 것이어서
여하튼 그런 관계에서 얻는 ,C는 적어도
그런 관계를 떠나 실재한다고 보는
실재의 지위에 있는 어떤 내용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이와 반대로
그런 관계를 떠난 본 바탕의 실재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C 는 적어도 아닌 그 어떤 것이라는 것도
위 식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이런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인 실재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멸이나 생사고통은 적어도 아니고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의미에서
본 바탕인 실재는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내용이 또 제시되는 것이다. [열반적정 ]
그리고 이와 함께 그 본 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를 살피면
그런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앞과 같은 관계로 어떤 내용을 마음에서 얻게 되는 한 주체입장에서는
끝내 그 내용을 직접 얻어낼 수 없는 것으로서
그런 사정으로 그 주체가 이분법상의 분별로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이다라거나 -아니다라거나 -과 같다거나 -과 다르다거나
깨끗하다 더럽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등등으로 분별을 행할 수 없고
그래서 언설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것으로서
공하다라고 표현하게 됨도
바로 이처럼 세속에서 확립한 세속제를 바탕으로
얻어내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일체개공 ]
그런데 여하튼 앞과 같은 내용들을
일단 그런 시설과 언어표현으로 제시하게 되지만,
이 경우에도
그런 내용을 나타내게 될때 사용하는 그런 시설과
그런 시설로 가리키고 나타내는 내용 사이에서
앞에 시설 일반의 경우를 놓고 처음 제시한 것과 같은
혼동을 다시 일으켜 대하면 곤란한 것은 매마찬가지다.
한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살필 때는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현실에서 감각을 통해
현실내용을 얻고 분별을 할 때는
격자이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각 부분을 이렇게도 묶고 저렇게도 나누고 하면서 헤아리면서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분별하고
또 그에 따라 각 시설을 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런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시설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는 사정은 간단하다.
실재 영역에 대해서는
마음을 통해 어떤 내용을 얻는 주체로서는
어떤 주체도 그 실재를 직접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현실에서 행한 그런 분별과 시설을
그 영역에 적용하면 곤란한 것이다.
따라서 그런 실재영역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승의제라고 표현해 가리킬 때
그런 승의제에 대해
비록 그런 사정을
여러가지 언설로서 나타내게 되지만,
그런 내용이 갖는 그런 기본 사정을
앞과 같은 바탕에서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설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승의제나 실재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결국 이런 이해를 통해서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잘 이해하여
현실영역에서 일으키는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잘 제거하고
또 그런 바탕에서 현실영역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현실영역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벗어나
본래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진여 실재의 상태와 상응하게 될 수 있고
또 그런 바탕이 되어야
생사 즉 니르바나임을 관한 가운데
생사현실에서도 본래의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상응하게 여여하게 임할 수 있게 되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영역에서 무량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하여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일단 내용이 너무 길어졌으므로
관련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뒤로 미루고
마치기로 한다.
◈Lab value 불기2562/03/01/목/11:11 |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106#1075 |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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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UIUC_Arboretum_20070922_img_1781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ower_of_Buddhist_Incense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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