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눈을 떠서 즉 자신의 손을 눈에 대고 가리고 있다가 그것을 떼어서 그 순간 보는 내용을 위와 같이 대강 표시해 그렸다.
이는 1 이 눈을 감으면 그 때는 보지 못하다가 눈을 뜨는 순간 보게 되는 내용이 위와 같다는 의미다.
그런 상황에 1 앞에는 다른 철수와 영희와 꽃이 놓여 있고 앞에 있는 철수도 1 과 마찬가지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실험을 같이 행하는 중이다.
그리고 철수도 1 과 마찬가지로 눈을 떴다 감았다( 또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치웠다하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무언가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철수의 실험을 1 이 관찰해보니 철수가 보인다고도 하고 보이지 않는다고도 하는 그 상황에서 1 자신이 지켜보니 철수 외부에 별 변화가 없는데 철수 혼자서만 그런 이상한 보고를 한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철수 혼자 눈을 떴다 감았다를 하는 가운데 철수 안에서만 있는 변화라고 추정하는 가운데 그 내용은 철수의 몸 안에 위 그림처럼 5^ 형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기고 위 그림처럼 일단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을 소개할 때마다 반복해서 덧붙이는데 그러나 이것은 엉터리 추리다. 한마디로 1 이 행하는 망상분별의 확장이다.
그런데 이런 이해가 일단 도움이 되고 일반적으로 이런 식으로 다른 이의 감각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것을 전제로 받아들인 다음 살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논의하는 것을 가정적 논의라고 하게 된다.
지금 위 그림처럼 1,2, 3,4, 이런 표시를 하고 위와 같이 대강 표시한 것도 일종의 시설이고 방편이다. 그리고 그런 시설을 바탕으로 이 상황을 살펴나가는 것이다.
『수능엄경』에서 처음 아난이 일으키는 망상분별도 위와 형태가 같다.
처음 부처님이 아난에게 무엇으로 보고 그것을 보는 마음은 어디에 있다고 여기는가. 이렇게 묻자 아난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런 내용을 보는 자신의 마음은 자신의 몸에 있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이해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를 경전에서 부처님이 제시하는데 문제는 그런 형태로 아난이 잘못 이해하는 내용을 한참 쫒아다니면서 살피다보면 조금 어지럽게 되기 마련이다.
이것도 잘못이고 저것도 잘못이면 도대체 자신이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단히 복잡한 내용을 살펴나가게 된다.
그런데 일단 2 의 상황을 놓고 위 문제를 살피면 조금은 더 쉽다.
저 그림으로 2 가 무언가를 보고 내용을 얻는 과정을 표시한 것이 비록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그 사정을 이해하기는 쉽다는 의미다.
2 가 본 것은 그 일체가 2 의 마음에 들어와 머무는 것인데 만일 2 가 어떤 소리를 듣는 것이 위와 같은 5^ 로 표시한 2 의 시각정보로 인해서 그런 청각정보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이치에 맞겠는가.
이것부터 먼저 생각해보면 왜 처음에 제시한 내용이 엉터리라고 한 것인가를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하튼 가정적 논의는 상대가 이해하는 것이 잘못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내용을 가리키는 언어시설을 하고 다시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비록 엉터리라고 해도 그것을 일단 받아들인 상태에서 다시 그런 가운데 그 내용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를 살펴나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능엄경』도 대부분 그런 형태로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아난존자가 매번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는데 부처님이 그것을 일단 받아들이면 어떤 문제가 있게 되는가를 하나하나 지적해서 그런 견해가 엉터리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내용이 대단히 많이 제시된다.
수학문제가 제출되었는데 어떤 학생이 수없이 엉터리 답을 적어낼 때마다. 어떤 과정으로 그런 엉터리 답을 적어내게 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은 그 문제를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하나 쫒아가면서 살피려면 대단히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 이것을 조금 줄여서 쉽게 사정을 파악할 방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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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관계를 짓는 것이 옳다고 보이는데 그러나 망상분별인 내용을 제시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 유명한 아난존자가 바로 일반인이 행하는 그런 망상분별을 똑같은 형태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아난존자가 당시 얼마나 유명하고 지금까지 유명한가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데 나무에 달려 있는 나뭇잎 수도 한번 척보고 셀 수 있는 상태였다고 전해지고 경전도 바로 아난존자가 그 내용을 정확히 기억해서 전승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아난존자가 일반인이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그대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 수능엄경에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량한 if 문제를 간단하게 살피는 효과를 갖는다.
여기에 영희의 생각 철수의 생각까지 일일히 나열하지 않아도 아난 존자가 계속해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나열해 살피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나열해 살피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다.
아난 존자가 처음 자신이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여기는가.
이 부분을 수능엄경을 살피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일반적으로 갖는 망상분별의 대표적 유형인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경전에 제시된 것처럼 아난이 이어서 계속 제시하는 망상분별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가정적 논의를 반복해 나가기는 곤란하다.
이는 경전에 넘기고 그 가운데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만 하나 살피고 넘어가기로 한다.
만일 위 그림에서 1 이 아난존자라고 한다면 그 상태에서 무엇으로 이런 세상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음은 어느 부분에 위치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1 입장에서는 그림에 보이는 손을 가지고 자신의 눈 부분을 가리게 되면 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그렇게 손으로 짚어서 눈이라고 보는 그 부분이 이런 모습을 보는데 이바지한다. 이렇게 이해하게 마련이다.
쉽게 말해 그 눈 때문에 현실에서 세상 모습과 자신모습을 본다. 이렇게 이해하게 된다.
일반인이라고 이런 이해와 다르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이런 세상 모습을 볼 때 자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또 평소 1 이 1 자신의 몸이라고 본 위 그림에서 1로 표시한 그런 부분 어딘가에 있다고 여기면서 그 부분을 지목하게 된다.
이것이 일반인의 입장과 다르겠는가?
위 질문을 2 에게 해보자.
2 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주의할 것이 있다.
2 의 입장에서 자신의 눈이라고 가리키는 부분과 이것을 다른 이가 바라볼때의 내용이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다 엉터리다.
그런데 여하튼 이 두 부분을 다 주의해야 한다.
처음 2 입장에서도 1 입장과 같은 형태로 답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은 위 그림을 놓고 이해하면 2 가 자신의 눈이라고 여기는 부분은 5 ^ 안의 2 ^ 부분에 있는 눈을 가리킨다.
또 2 자신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리키는 부분도 5 ^ 안의 2 ^ 부분이다.
왜 그런가하면 2 입장에서는 2 가 눈을 떠서 보고 대하는 내용은 모두 5 ^ 안에 있다고 위 그림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5^ 밖의 내용은 2 입장에서는 얻지 못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 2 를 지켜보는 다른 주체인 1 과 같은 입장은 이 상황에서 2 가 손으로 무엇을 가리키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가하면 앞 내용과 다르다.
그래서 이 두 차이를 먼저 주의해야 한다.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2 가 2 자신의 눈을 손으로 가리키고 2 자신의 몸을 손으로 툭툭치며 가리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황에서 1 은 2 가 그림에서 2 부분에 달린 눈을 가리키고 2 와 같은 부분을 자신의 몸으로 가리킨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2 자신이 스스로 가리킨 각 부분으로서 2 ^ 와 그 상황에서 다른 주체 1 이 보는 부분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다는 의미다.
즉 위 그림에서 1 이 볼 때는 2 부분인데 2 가 스스로 자신이 가리키는 내용은 2^ 라는 의미다.
그래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과연 이 두 내용 가운데 하나라도 망상분별이 아닌 내용이 있겠는가.
둘 다 엉터리라고 지금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2 의 입장을 검토해보면 처음 1 의 입장과 사정이 같다.
그런데 위 그림을 통해서 보면 그것이 왜 엉터리인가를 그래도 조금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림에서 2^와 같은 부분들이 2 의 마음안에 어떤 내용을 얻게 해준 것도 아니고 그런 위치에 2 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두번째 1이 볼 때 2 라고 보는 부분은 어떤가. 먼저 위 그림에서는 2 몸 부분에 2 의 마음이 있다고 추리하고 그래서 5^ 부분을 그림처럼 그려 넣은 것이다. 그런데 우선 이렇게 이해하면 과연 옳겠는가.
이런 경우 그림에서 2 로 표시한 그 부분은 2 의 입장을 놓고 생각하면, 2 입장에서는 직접 얻지 못하는 2 마음 밖의 어떤 내용을 가리킨 것처럼 보게 된다. 그런데 2 마음 밖 내용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알고보면 1 이 그렇게 그 상황에서 보고 얻은 내용으로서 1 마음안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또 엉터리가 된다.
즉, 이 상황에서 2 가 어떤 내용을 보는데 그것을 다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을 관계시켜서 그런 내용을 얻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엉터리다.
예를 들어 1 자신이 그 상황에서 무언가를 본다면 옆에 있는 2 가 본 1 ^ 부분의 눈이 2 의 마음 안의 4 ^와 같은 부분을 대해서 1 이라는 어떤 주체가 어떤 모습을 보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앞 내용도 엉터리임을 쉽게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해서 엉터리를 나열하고 그것이 왜 엉터리인가를 찾아 나가다보면 조금 골치가 아파오게 된다.
그러나 일단 망상분별 편집증상을 벗어나려면 어쩔 도리는 없다.
조금씩 쉬면서 자세히 살펴나가야 한다.
결론만 말하면 어떤가. 일단 해당 부분을 찾아 복사를 해오기로 하자.
『수능엄경』에서 그래도 결론적 부분을 제시하는 부분을 뽑아서 제시하면 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
...
"선남자들이여,
나는 항상 '색[色]과 마음[심心]과
모든 인연과 마음에 딸린 모든 생각[심소사心所使]과 온갖 인연 경계의 법[소연법所緣法]은
오로지 마음[心-유심(唯心]에서 나타난 모양'이라고 설해왔느니라.
네 몸과 마음은 다 이렇게 묘하고 밝고 진실하고 정밀하고 심오한 마음 가운데 나타난 현상인데,
어째서 너희들은 본래 묘하고 원만하고 밝은 마음의 보배처럼 밝고 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을 미혹(迷惑)으로 잘못 아는 것이냐.
미혹한 어둠이 허공으로 변하고,
허공의 미혹한 어둠 가운데서 어둠이 맺혀 색(色)이 되고,
색이 망상과 섞이니,
망상으로 나타난 모양을 몸으로 여겼으며,
인연을 모아 안으로 흔들리고 경계를 좇아 밖으로 달리는 어둡고 흔들리고 시끄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으로 삼았느니라.
이렇게 한번 미혹하여 마음으로 여겨서는
헷갈려 몸[색신色身] 속에 있다고 결정하고,
안으로 색신(色身)과 밖으로 산과 강과 허공과 대지가
온통 다 묘하고 밝은 참 마음 가운데 물체임을 알지 못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백 천의 큰 바다를 버리고,
오직 한 물거품의 체[일부구체一浮漚體]만을 인정하여 바닷물전체[전조全潮]로 지목하고,
넓은 바다[영발瀛渤]를 끝까지 다 물거품으로 보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너희들은 내가 아래로 내린 손과 다름없이
미혹한 가운데 한 번 더 미혹한 사람들이니,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제2권 ...
아난아,
너는 오히려 아직도 일체 실속 없이 뜬 경계에서
환술(幻術)처럼 변화하는 온갖 모양이,
바로 그 곳에서 생겨났다가 그 곳을 따라 사라져버림을 밝히지 못하여,
허망한 환영(幻影)을 모양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진실그대로 미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니라.
이와 같이
내지 5음(陰)과 6입(入)과 12처(處)에서 18계(界)에 이르기까지,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난다 하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멸한다고 하지만,
단지 이 생기고 멸하고 가고 옴이 본래 여래장(如來藏)으로서,
영원히 머물러 묘하게 밝고 움직이지 않고
두루 원만하고 미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임을 잘 알지 못할 뿐이다.
이 성품의 진실하고 영원불변한 가운데서는
아무리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음을 찾아보아도
전혀 찾을 수 없느니라.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제2권
...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가고 옴. 그리고 현실의 각 주체가 대단히 진지하게 의식하고 문제삼는 삶과 죽음의 문제 생사문제 그리고 미혹함과 깨달음
이런 것이 본래 찾을 수 없다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눈으로 보고 대하는 그 일체는 사실은 마음안 내용임을 제시한다.
이 부분을 잘 생각해보자. 평소 자신은 음식도 먹고 자동차도 타도 다니고 사람도 만난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하는 내용 가운데 일단 감각현실들은 그 실질이 모두 눈으로 얻는 시각정보 귀로 얻는 청각정보 코로 얻는 후각정보 혀로 얻는 미각정보 몸으로 얻는 촉각정보의 실질을 갖는 것이고 또 이에 대하 분별은 관념분별의 실질을 갖고 그래서 이들은 모두 마음안 내용이다.
마음 밖의 어떤 실재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이 때 '마음안 내용'이 '마음'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가가 또 문제된다.
이전 조각글에서도 이를 거울과 거울면에 비친 영상의 관계를 놓고 비유로 설명한 적이 있다.
거울에 매 순간 수없이 다른 모습이 비추이는데 이런 가운데 그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 그것의 정체가 무언가. 이렇게 문제삼는다면 이것을 거울 자체라고 하겠는가. 그렇지는 않다.
거울 자체는 이런 매 순간의 과정에서 주인처럼 그대로 있는 어떤 것인데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은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그런 내용이어서 마치 호텔의 손님과 같은 성격이어서 객진이라고 표현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객진으로 보는 이 내용의 정체를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가 또 문제된다.
이전 조각글에서는 이 객진에 해당하는 내용이 실답지 않아서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함을 열심히 살폈다.
그것이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로 살피고
비닐마술의 비유를 들어 살핀 내용이다.
비닐마술이란, △ 가 그려진 비닐과 ○ 가 그려진 비닐을 합쳐 놓고 대하면 어떤 비닐에도 없는
안이 세모인 도너츠 ㋰ 와 같은 내용을 보게 되고 그래서 ○ 과 같은 내용이 △ 가 있는 영역에서도 있다고 망상을 일으키게 된다는 비유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들어서 이 관계를 살피고 이것이 감각현실 - 관념분별 실재 - 감각현실 실재 - 관념분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실의 거리에서 100m 앞에 서있다가 수밀도 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뛰어오는 영희를 놓고 볼 때 처음엔 손가락보다도 작고 콩알보다 작았는데 점점 커져서 킹콩처럼 커지는 그 각 순간의 내용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로 나열하고 이것을 모두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는 문제로도 살폈다.
지금 현실에서 눈을 뜨고 대하면 각 주체마다 생생하게 내용을 얻게 되는데 그 내용이 곧 그 주체가 현실에서 세계로 이해하고 또 자신의 몸으로 대하고 이해하는 부분이다.
이 내용에 자신이 생각하고 분별하는 내용이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기본적으로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감각현실은 본 바탕인 실재에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이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같이 침대에서 누으면서 꾼 바다나 황금꿈과 같은 성격으로 꿈처럼 실답지 않은 것이므로 하나같이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다시 이것을 어떤 입장에서 살피는가 하면
이처럼 현실에서 각 주체가 눈을 떠서 얻는 그 내용의 본 정체가 무언가를 살피는 것이다.
결론은 이들은 마음안에 나타난 내용인데 그 마음을 떠나 얻는 내용이 아니어서 결국은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는 것은 두루 원만하고 미묘한 진여(眞如)의 성품 때문인 것이라고 제시하는 측면이다.
갑자기 이렇게 제시하면 조금 논의가 갑자기 뛰어 버린 비약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앞 부분에서는 실답지 않고 객진 즉 손님과 티끌과 같은 성격의 것이라고 제시하는 한편, 왜 뒤에서는 또 이것이 '미묘한 진여의 성품' 때문에 얻는 내용이라고 하는가. 이렇게 혼동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래서 거울과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을 놓고 먼저 이 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은 거울 자체는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은 거울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 무관한 것은 또 아니다.
이들의 관계를 살피는 방식은 앞으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실재와 감각현실 실재와 관념분별 실재와 마음 현실과 꿈 .. 이런 내용을 살필 때 모두 적용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서 그런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이 거울 안에 '있다'고 할 것인가 '없다'고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이 둘을 떠나야 한다고 제시하게 된다.
또 다음도 마찬가지다. 이 거울면의 모습이 예를 들어 거울에 비추인 어떤 등불과 거울면과 어떤 화합을 통해서 나타난 것인가 . 아니면 그런 화합을 떠나 나타난 것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화합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할 수도 없고 화합이 없이 나타난다고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2 분법상의 관념분별 논리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을 때 있지 않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고 없지 않다면 그것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여기기 쉬운데 위 내용들에서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앞에서 현실의 거리에서 100m 앞에 서있다가 수밀도 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뛰어오는 영희를 놓고 볼 때 그 모습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로 나열하고 이것을 모두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는 상황도 알고보면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눈을 뜨고 보는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라는 모습에 영희가 과연 있는가. 이렇게 물어 보면 '있지 않다'라고 답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면 영희는 여기에 없는가 이렇게 물어보면 '없지도 않다'라고 답하게 된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그러그러한 내용을 얻기는 생생하게 감각현실로 얻는데 그러나 정작 그에 대해 분별하는 그 내용은 그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관념 내용은 거기에서는 얻을 수 없기에 있다 없다 자체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그렇게 생생하게 얻은 것은 사실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영희나 또 그런 영희의 있고 없음 또 그런 영희가 없다가 있게됨[생] 있다가 없게 됨[멸] 등등은 그에 해당이 안 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정이 그런가. 왜냐하면, 그런 생각 분별은 그 영역에서의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별은 그 분별을 통해 가리키는 그 감각현실이나 또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진여 영역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해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합이건 어떤 형태로 이해한 인과문제던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서 그 내용의 정체가 무언가하면 그런 감각현실은 그런 공한 본 바탕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시적으로 그렇게 나타나는 그 내용이 곧 진여 실재 자체라거나, 진여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라거나 진여의 대표라는 의미는 또 아니다.
그래서 경전에서 그런 사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현실에서 각 주체가 얻는 이런 내용들은 ) 그것을 무엇이라고 시설해 제시하던
~ 허망하다. 그래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제3권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유적으로 이와 같이 실답지 않고 허망한 내용을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으로 얻게 되는 사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사람이 눈동자를 멍하게 뜨고 피로하여 어떤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눈과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다.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제3권
이렇게 제시한다.
다시 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눈을 떠서 세상모습과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이 무엇인가?
실답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본 바탕을 떠나지 않은 가운데 마음 안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마음 자체는 아니지만, 그 마음이 일시 피로 증상을 일으켜 마치 눈을 누르면 달이 2 개로도 보이고 또는 안경쓴 사람이 안경을 벗고 흐린 눈으로 대하면 사물이 부옇게 보이듯, 또는 백내장 걸려서 허공에 없는 물건을 보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다.
그리고 그 마음 밖에 무언가 실다운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을 보게 된 것이 아니다. => 허망하다.
그런데 여하튼 마음안에 그런 내용이 맺힌 것으로서 그처럼 마음에 맺힌 마음안 내용들은 마음과 본질적으로 떠난 어떤 다른 이물질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비유를 들어 마음은 그릇이고 마음으로 얻는 내용은 그릇에 담았다가 나중에 버리는 음식처럼 여길 수 있는데 지금 여기서 제시하는 것은 그런 입장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얻은 내용도 마음을 떠난 것이 아니다. 이 측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이 내용을 놓고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은 잘못임도 제시한다.
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눈을 떠서 어떤 세상의 모습을 대하면
그것은 곧 마음을 떠나 마음 밖에 있고 마음과는 별개로 어떤 다른 성격의 물질적인 내용이고 그것은 자신의 주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그것은 마음 외부의 내용이고 그것은 모든 각 주체가 그런 내용을 얻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런 내용이 잘못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혹 자신이 눈을 떠서 어떤 꽃모습을 보면 이것이 햇빛과 자신의 눈과 그런 대상으로서 꽃이 서로 화합을 일으켜서 그런 모습을 얻게 된다고 이해하면서 이를 한 주체가 어떤 모습을 보게 되는 인과관계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엉터리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살담분타리경』에 조달이란 인물이 나온다. 이는 제바달다라고도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대단히 오래 괴롭혀 온 인물로 전해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불하기 극히 힘든 이로 드는 인물이다. 살담분타리경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극단적으로 이런 인물도 성불한다는 사실을 제시하기에 의미가 있다.
그러니 나머지 사람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성불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량한 if 문제를 현실에서 매번 만나게 되어서 이것을 선택해야 할까 저것을 선택해야 할까 매 순간 고민이 많게 되는데 그 문제가 무엇이던 이것을 놓고 쉽게 쉽게 답을 현실에서 얻기를 희망하지만, 정작 답을 잘 얻어내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도박장에서 홀짝문제가 제출되어도 이로 인해 전재산 날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머지 문제는 더 심하다.
오늘 자신의 전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3 년 후 사업계 생존률이 홀짝 문제보다 확률이 더 어렵다고 오늘날 통계가 보고해준다. 그만큼 이 if 문제 해결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무량한 if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식이 지금 살담분타리경에서 선보이고 있다. 경로는 어떻게 되었던 조달마저도 성불한다. 나머지는 살필 필요없다. 이런 의미다.
『살담분타리경』은 『묘법연화경』과 같은 취지의 경전인데 결국 이들 경전을 보면 수많은 사례가 제시되는 것도 다 이런 취지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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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거의 다 떨어져서 몇 번만 피우면
담배를 태울 수가 없게 된다. 담배를 태우면 몸에서 혈액 순환이 나뻐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는 끊어야 하는데 조각글을 계속 의욕을 갖고 적어 나가기 위해서는 담배 대체품을 마련하던지 아니면 불가피하게 또 밖에 나가서 담배를 구해와야 하리라 본다.
본인이 노래를 듣다보면 담배를 피우다 결국 폐암에 걸리게 되고 나중에 고생하다 죽게 된다. 이런 메세지를 자주 듣게 되는데 이것도 무량한 if 문제의 하나다.
상황이 그러니 조금 건강하게 오래 살고 조각글은 그냥 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조각글을 그래도 쓸 것인가.
그런데 또 다른 경우로, 담배를 안 피우면서 조각글은 열심히 쓰지는 못하는가.
그런데 지금 경우수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이렇게 살펴보는데 여러 경우를 나열하면 더 복잡하다.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Zhuanlunzang_in_the_Summer_Palace
https://en.wikipedia.org/wiki/File:Zhuanlunzang_in_the_Summer_Palace.JPG English: Zhuanlunzang in the Summer Palace (Beijing, China). 中文: 颐和园的转轮藏 Author Tojan76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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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ile:Mjmhg009-renxiong.jpg 中文: 任熊作品 《大梅诗意图》 下马番腔奏忽雷 English: Work by Ren Xiong (1822—1857), entitled "After the poems of Da Mei".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avaram_Poo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avaram_Poo.jpg English: Senna Auriculata taken from coimbatore Agriculture university Author Arthi Subramaniam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sangbongsa_11-05199
https://ko.wikipedia.org/wiki/파일:Ssangbongsa_11-05199.JPG 설명 Ssangbongsa 저자 steve46814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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