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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2-13_잡아함경_043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2-13_잡아함경_043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2. 13. 15:49



®

『잡아함경』
K0650
T0099

제43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잡아함경_K0650_T0099 핵심요약





♣0650-043♧
『잡아함경』




제43권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잡아함경




제43권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잡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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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제43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1164. 바라연견(婆羅延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波羅㮈)국 선인이 살았던 녹야원(鹿野苑)에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강당에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분, 

세존께서 바라연저사미덕륵(波羅延低舍彌德勒)의 질문에 대답하신 것은 이 게송이었다.

 

■ 만일 두 끝을 아는 사람이라면

중간도 영원히 집착함이 없으리.

그를 일컬어 대장부라 하리니

다섯 가지 탐욕을 돌아보지 않네.

거기엔 번뇌의 쇠사슬 없으며

얽매임의 근심에서 멀리 벗어났네.

 


여러분 이 게송에 어떤 뜻이 들어있는가? 

어떤 것을 끝이라고 하는가? 


■ 어떤 것이 두 끝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며 어떤 것이 얽매임인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지혜로써 알아야 하며 깨달음으로써 깨달아야, 

지혜로써 아는 것이 되고
깨달음으로써 깨달은 것이 되어
괴로움의 끝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여섯 가지 몸 안에 있는 감각기관이 한 끝이 되고, 

여섯 가지 몸 바깥에 있는 경계가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느끼는 것이 중간이 되고, 

욕망이 얽매임이 된다. 


느낌을 익히는 사람은 여기저기의 인(因)을 얻어 몸이 점점 자라나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여기서 이 법에 대하여 지혜로써 알고 깨달음으로써 깨달으며, 

그 지혜로써 아는 것과 깨달음으로써 깨닫는 것으로써, 

괴로움의 끝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 과거 세상이 한 끝이 되고, 

미래 세상이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현재 세상이 중간이 되고, 

욕망이 얽매임이 된다. 


욕망을 익히면 여기저기의 인에 몸이 차츰 접촉하게 되고 

그것이 점점 자라나 세상에 태어나게 되며,……(내지)……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 “ 즐거운 느낌이 한 끝이 되고, 

괴로운 느낌이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중간이 되고, 

욕망이 얽매임이 된다. 


그 욕망을 익히면 여기저기에서 얻는 바에 제 몸이 차츰 접촉하게 되고 

그렇게 점점 자라나 세상에 태어나게 되며,……(내지)……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 “존재가 한 끝이 되고, 

존재의 발생이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느낌이 중간이 되고, 

욕망이 얽매임이 된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 “몸이 한 끝이 되고, 

몸의 발생이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욕망이 얽매임이 된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 여러 사람이 제각기 말한 내용은 제각기 다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까부터 여러 사람들이 말한 것들은 서로 다르게 말하여 그 진의를 분명하게 알기를 기대할 수 없다.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바라연저사미덕륵이 물은 경에 대해서 우리는 세존께 나아가 자세히 여쭈어 보자. 

그리하여 세존께서 말씀이 계시면 우리는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받들어 지니도록 하자.”

 


그래서 여러 비구들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까 여러 비구들이 강당에 모여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바라연저사미덕륵의 물음에 답하신 경에 대하여, 

이른바 두 끝……(내지)……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까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사람은 ‘여섯 가지 몸 안에 있는 감각기관이 한 끝이 되고, 

여섯 가지 몸 바깥에 있는 경계가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느낌이 중간이 되고, 

욕망은 얽매임이 된다’고 하기도 하였고,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모두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부러 세존께 찾아와서 그 이치를 여쭙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말 중에 어느 것이 이치에 맞습니까?”

 

■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말은 다 옳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또 다른 경을 말하리라. 

나는 바라연저사미덕륵을 위해 또 다른 경을 말하리라. 


■ 즉 접촉이 한 끝이 되고, 

접촉의 발생이 또 다른 하나의 끝이 되며, 

느낌은 중간이 되고, 

욕망은 얽매임이 된다. 

욕망을 익혀 가까이 하면 여기저기에서 얻은 바 

몸은 접촉을 인연하여 

그것이 점점 자라나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 이 법에 대해 지혜로써 알고 깨달음으로써 깨달으면, 

지혜로써 알고 깨달음으로써 깨달으며, 

지혜로써 안 것과 깨달음으로써 깨달은 것으로서 

괴로움의 끝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65. 빈두로경(賓頭盧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존자 빈두로(賓頭盧)는 구섬미국(拘睒彌國) 구사라원(瞿師羅園)1)에 있었다.

 

그때 바차(婆蹉)국왕 우다연나(優陀延那)가 

존자 빈두로의 처소를 찾아가서 서로 문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존자 빈두로에게 아뢰었다. 

“ 

여쭈어 볼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지금 좀 한가하십니까?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존자 빈두로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대왕은 우선 물으십시오. 

아는 것이면 당연히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바차왕 우다연나가 존자 빈두로에게 물었다.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으로
새로 배우는 젊은 비구가 이 법과 율(律)에 출가한 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매우 안락하게 지내며, 

또한 모든 감관이 평화스럽고
얼굴은 청정하며 피부는 깨끗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움직이는 일이 적으며, 

마치 들짐승처럼 왕성한 마음을 다른 곳에 맡겨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梵行)을 닦아 지니고 순일(純一)하고 청정하게 살아갑니까?”

 


존자 빈두로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께서는 깨달아 아시고 보신대로 비구들을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 모든 비구들은 나이 많은 여인을 보거든 어머니라 생각하고, 

중년 여인을 보거든 누이나 동생으로 생각하고, 

어린 처녀를 보거든 딸이라 생각하라.’
이런 인연으로 젊은 비구들이 이 법과 율에서 비구가 된지 오래지 않았지만, 

안온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며, 

모든 감각긱관은 평화롭고 얼굴은 청정하며 피부는 깨끗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움직이는 일이 적으며, 

산짐승처럼 왕성한 마음을 다른 데 맡겨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닦아 가지며
순일하고 청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차왕 우다연나가 존자 빈두로에게 아뢰었다. 

“지금 세간 사람들은 탐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늙은 여인을 보고 어머니라 생각하고, 

중년 여인을 보고는 누이나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어린 처녀를 보고는 딸이라 생각한다면, 

그 때는 사모하는 마음도 따라서 일어나
탐욕이 훨훨 불붙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불타오를 것입니다. 



다시 이 보다 더 훌륭한 인연은 없습니까?”

 

존자 빈두로가 바차왕 우다연나에게 말하였다. 

“또 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께서는 아시고 보신대로 비구들을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 ‘이 몸은 발끝에서 머리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뼈를 근간으로 삼아
그 위에 살을 바르고 엷은 가죽으로 덮어씌운 것으로서
갖가지 더러운 물질이 가죽주머니 안에 가득 차 있다. 

두루 관찰해보면 머리칼ㆍ털ㆍ손톱ㆍ이ㆍ먼지ㆍ때ㆍ
침ㆍ피부ㆍ살ㆍ백골(白骨)ㆍ힘줄ㆍ맥(脈)ㆍ
심장ㆍ간장ㆍ허파ㆍ쓸개ㆍ콩팥ㆍ창자ㆍ위ㆍ생장(生臟)ㆍ숙장(熟臟)ㆍ
눈물ㆍ땀ㆍ콧물ㆍ거품ㆍ기름덩이ㆍ골수ㆍ가래ㆍ고름ㆍ피ㆍ골ㆍ즙액ㆍ똥ㆍ오줌이 들어있다.’


대왕이여, 이러한 인과 이러한 연으로
젊은 비구들은 이 법과 율에서 비구가 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며 순일하고 청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차왕 우다연나가 존자 빈두로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가볍고 빠릅니다. 

만일 더럽다고 보면
깨끗하다는 생각도 따라서 일어날 것입니다. 

혹 다시 어떤 인연 있어서, 

젊은 비구들로 하여금 이 법과 율 안에서 비구가 된 지 오래지 않았어도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며 순일하고 청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존자 빈두로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인연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 여래ㆍ응공ㆍ등정각께서는 아시고 보신대로 비구들을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감각기관의 문을 잘 지켜 보호하고 그 마음을 잘 거두어 잡아야 한다. 

혹 눈이 빛깔을 볼 때에도 그 빛깔 모양을 취하지 말고, 

좋은 형상을 따라 취해 그것을 굳세게 집착하지 말라. 

만일 눈을 잘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곧 세상에 대한 탐욕과 애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눈의 계율을 받들어 지녀야 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가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에도 마찬가지이며, 

뜻으로 법을 알 때에도 뜻의 계율을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차왕 우다연나는 존자 빈두로에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정말 좋은 설법입니다. 

모든 감각기관에 대한 계율을 잘 받들어 가져야 할 것입니다. 

존자 빈두로여, 

나도 그와 같이 하겠습니다.

 

어떤 때는 몸을 단속하지 않고, 

모든 감각기관의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한결같이 하지 못한 채로 궁중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서운 탐욕을 일으켜
활활 불타오르고 어리석음이 활활 불타오릅니다. 

아무리 조용한 방에 혼자 있어도 저 세 가지 독은 마음을 불태우는데
하물며 궁중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또 나는 어떤 때는 몸을 잘 단속하고, 

모든 감각기관을 잘 거두어 단속하며, 

생각을 오로지 해서 궁중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 그 마음을 태우지 않습니다. 


궁중에서도 그 몸을 태우지 않고 또한 마음도 태우지 않거늘
하물며 한가히 혼자 있을 때이겠습니까? 


이로써 보면 이 인연은
젊은 비구로 하여금 이 법과 율 안에서 비구가 된지 오래지 않았어도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며 순일하고 청정하게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때 바차왕 우다연나는 존자 빈두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1166. 수족유경(手足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이 있기 때문에 잡고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발이 있기 때문에 가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며, 

관절(關節)이 있기 때문에 굽히고 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배가 있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눈이 있기 때문에
눈이 사물과 접촉함을 인연해 생기는 안에서의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이 생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비구들아, 

만일 손이 없으면 취하고 버림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발이 없으면 가고 옴을 알지 못할 것이며, 

관절이 없으면 굽히고 폄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배가 없으면 배고프고 목마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만일 눈이 없으면 눈이 사물과 접촉함을 인연해 생기는 안에서의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이 없을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67. 구경(龜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 어느 때에 강 속에 풀이 우거져 있었는데 거북이가 그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어떤 굶주린 여우가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멀리서 거북이를 보고는 재빨리 달려가 움켜잡았다. 

거북은 여우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여섯 부위(4지와 머리와 꼬리)를 감추었다. 

여우는 지켜보면서 머리나 발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켰으나 거북이는 끝내 머리나 발을 내놓지 않았다. 

여우는 배가 고파 성을 내면서 떠났다.

 

비구들아, 

너희들도 오늘 그와 같은 줄을 알아야 한다. 


■ 악마 파순(波旬)은 항상 너희들의 틈을 엿보며, 

너희들이 눈으로 빛깔에 집착하거나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보거나
몸으로 감촉을 느끼거나
뜻으로 법을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여섯 가지 경계에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너희들은 언제나 눈의 계율을 잘 지키며 머물러야 한다. 

눈의 계율을 잘 지켜 머무르면
악마 파순도 틈을 노릴 수 없어서, 

너희들은 나오건 반연하건 자유로울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으니라. 


그 여섯 가지 감관에서 나오건 반연하건 그 틈을 노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여우가 거북이의 틈을 노리지 못한 것과 같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 거북이가 여우를 두려워해

여섯 부위를 껍질 속으로 감추듯

비구도 마음을 잘 거두어

모든 감각과 생각을 감추어라.

그를 의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마음을 덮고 말하지도 말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68. 황맥경(★麥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보리를 네 거리 길가에 놓아두었을 때
여섯 명의 장부가 막대기로 함께 두드리면 잠깐동안에 티끌처럼 부서지는데, 

그것을 일곱 번째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거듭 두드리는 것과 같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보리 묶음을 여섯 사람이 함께 두드리고, 

또 일곱 번째 사람이 거듭 두드린다면 아주 잘게 부서지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6촉입처(六觸入處)에게 두드려 맞는다. 

어떤 것을 그 여섯 가지라고 하는가? 

안촉입처(眼觸入處)에게 항상 두드려 맞고, 

이촉입처(耳觸入處)ㆍ비촉입처(鼻觸入處)ㆍ설촉입처(舌觸入處)ㆍ신촉입처(身觸入處)ㆍ의촉입처(意觸入處)에게
항상 두드려 맞는 것을 말한다. 


■ 저 어리석은 사람은 6촉입처에게 두드려 맞고도
다시 미래 세상의 존재를 사모해 구하니, 

그것은 일곱 번째 사람이 거듭 두드려 부수는 것과 같다.

 

■ 비구들아, 

만일 ‘이것은 곧 나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흔들리는 것이요,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다. 

‘미래에도 분명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요, 

‘미래에는 분명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다. 

‘형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고, 

‘형상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다. 

‘생각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요, 

‘생각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며, 

‘있지도 않을 것이요 없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 그것도 흔들리는 것이다.


흔들리기 때문에 병이 되고, 

흔들리기 때문에 종기가 되며, 

흔들리기 때문에 가시가 되고, 

흔들리기 때문에 집착하게 된다. 


흔들리는 것을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던 사람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얻어
많이 닦아 익혀서 머물고
생각을 잡아매어 바르게 아느니라.

 


■ 흔들림과 같이 사량(思量)은 허망하여 행이 있다. 


그래서 느낌을 나라고 하나니, 

그것은 곧 욕망이요, 

내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곧 욕망이다.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요,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다. 

형상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요, 

형상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다.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요,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며,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닌 것도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욕망이다.

 

■ 욕망 때문에 병이 되고, 

욕망 때문에 종기가 되며, 

욕망 때문에 가시가 된다. 

만일 욕망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잘 생각하고 관찰하면, 

욕망을 여읜 마음에 많이 머물러 있게 되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생겨나느니라.

 



비구들아, 

과거 세상에 아수라가 군사를 일으켜 제석(帝釋)과 싸웠다. 

그때 천제석은 33천에 알렸다.‘오늘 여러 하늘들과 아수라가 싸운다. 

만일 여러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지거든
아수라를 사로잡아 다섯 매듭으로 묶어 하늘 궁전으로 데리고 돌아오너라.’

 

아수라도 자신의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아수라 군사와 여러 하늘들이 싸운다. 

만일 아수라가 이기고 여러 하늘들이 지거든
제석을 사로잡아 다섯 매듭으로 묶어 아수라 궁전으로 돌아오너라.’

 

그 싸움에서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그때 33천은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 아수라왕을 사로잡아
다섯 매듭으로 묶어 하늘 궁전으로 돌아왔다. 


비마질다라 아수라왕은 다섯 매듭으로 묶인 채
정법전(正法殿)에 있으면서도 여러 하늘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렸다. 


비마질다라 아수라왕은 생각하였다.
‘오직 아수라만이 어질고 착하며 총명하고 지혜롭다. 

여러 하늘이 비록 착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그만 아수라 궁전으로 돌아가리라.’

 

이렇게 생각했을 때 그는 곧 다섯 가지 매듭으로 몸이 묶인 것을 스스로 보았고, 

여러 하늘의 다섯 가지 쾌락도 저절로 사라지고 말았다. 


비마질다라 아수라왕은 다시 생각하였다.
‘여러 하늘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고 총명하다. 

아수라가 비록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일단 이 하늘 궁전에 머무르리라.’

이렇게 생각했을 때 몸이 다섯 가지 매듭에서 풀려난 것을 스스로 보았고, 

여러 하늘들의 다섯 가지 쾌락도 저절로 생겼다.
비마질다라 아수라왕은 이러한 미세한 결박이 있었다. 


그러나
■ 악마 파순의 결박은 더욱 미세하여
이 마음이 흔들릴 때
악마가 곧 그 즉시 결박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악마는 곧 그 즉시 풀어준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많이 머물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69. 금경(琴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인식이 생겨서는
욕망을 가지거나 탐하거나 친근히 하거나 사모하거나
혹은 확고히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거든, 

그런 여러 가지 마음을 잘 막고 단속하라.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다 두려운 길로서 장애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 

그런 것들은 나쁜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이요, 

착한 사람들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막고 단속해야 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비유하면 농부가 좋은 밭에 모종을 심었어도
밭을 지키는 사람이 게으르고 방일하면
외양간의 소가 나와 그것을 다 뜯어먹고 마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가 여섯 가지 촉입처(觸入處)에서 방일하게 구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좋은 밭에 모종을 심었을 때
그 밭을 지키는 사람이 방일(放逸)하지 않으면
외양간의 소가 사납게 날뛰지도 못하고, 

설령 밭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 소를 몰아낼 것이다. 



■ 이른바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다섯 가지 욕망의 향락에 대해서
그 마음과 뜻과 의식을 스스로 잘 거두어 단속하고
마음을 다해 소멸한다.

 

만일 좋은 밭에 모종을 심었을 때, 

그 밭을 지키는 사람이 스스로 방일하지 않아서 외양간의 소가 밭 경계에 들어왔더라도
왼손으로는 코뚜레를 잡아끌고 오른손으로 막대기를 들고 온 몸을 때리며
밭에서 몰아낸다면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소가 고통을 겪은 뒤에도 마을에서 집으로 집에서 마을로 가는 도중에
다시 예전처럼 그 밭의 모종을 뜯어먹겠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전에 밭에 들어갔다가 매를 맞아 고통받은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비구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이나 뜻이나 의식이 6촉입처에 대해
몹시 싫어하여 여읠 마음을 내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여
안으로 마음을 편안히 머물고 잘 제어해서
한마음이 되게 하느니라.

 

과거 세상에 어떤 왕은 일찍이 없었던 거문고 타는 좋은 소리를 듣고
몹시 사랑하고 즐거워하면서
거기에 빠지고 집착한 끝에
여러 대신들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슨 소리인가?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워할 만하구나!’

 

대신들이 대답하였다.
‘저 소리는 거문고를 타는 소리입니다.’

 

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저 소리를 가져오너라.’

 

대신들은 명령을 받고 곧 가서 거문고를 가지고 와서 아뢰었다.
‘대왕이여, 

이것이 거문고라는 악기인데 여기에서 좋은 소리가 나옵니다.’

 

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거문고가 필요 없다. 

아까 듣던 그 사랑스럽고 즐거워할 만한 소리를 가지고 오라.’

 

대신들이 대답하였다.

‘이 거문고에는 여러 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즉 자루도 있고 몸통도 있으며, 

여(麗)도 있고 줄도 있고 가죽도 있어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이것을 탈 때에는
여러 가지 기구의 인연을 얻어서 비로소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기구를 얻지 못하고서는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아까 들으신 소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지 오래 되어 이미 사라져 없어졌기 때문에
가지고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대왕이 이렇게 말하였다.
‘아! 이렇게 허망한 물건을 어디에 쓸 것인가!
세상의 거문고란 다 허망한 물건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을 빠지게 하고 집착하게 하는구나!
너희들은 이것을 가지고 가서 조각조각 부수어 시방에 버려라.’

 

대신들은 명령을 받고 백 조각으로 부수어 여러 곳에 버렸다.

 

■ 이와 같이 비구들아, 

저 색(色)ㆍ수(受)ㆍ상(想)ㆍ사(思)ㆍ욕(欲) 등
이 모든 법은 덧없는 것이요 함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이를 인연해 생겨서는 곧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들은 언젠가는 다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비구들아, 

이와 같이 평등하고 바른 지혜로 사실 그대로를 관찰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0. 나창경(癩瘡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拘睒彌國) 구사라원(瞿師羅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온 몸에 부스럼이 나있는 나병(癩病)에 걸린 사람이 띠나 억새 밭으로 들어간다면
가시나 바늘 같은 수많은 잎사귀에 찔려 그 고통이 몇 곱이나 더 심한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가 6촉입처로 인하여 온갖 고통을 받는 것도 그와 같다. 

저 나병에 걸린 사람이 바늘이나 가시 같은 풀 잎사귀에 찔려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는 그 성질이 모질고 사나와서 6촉입처에 닿으면
성을 내며 나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저 나병에 걸린 사람과 같다. 

왜냐하면,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그 마음이 나병 환자의 부스럼과 같기 때문이니라.

 


내 이제 율의(律儀)와 불(不律儀)에 대하여 설명해 주리라. 

어떤 것이 율의이며, 

어떤 것이 불율의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는
마음에 드는 빛깔에는 탐욕을 내어 집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에는 성을 낸다. 

그래서 차례를 따라서 많은 감각과 생각을 내어
그것이 연속하면서 그 허물과 근심을 보지 못한다. 

설령 그 허물과 근심을 보더라도 그것을 없앨 방법을 모른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비구들아, 

이것을 불율의라고 하느니라.

 


■ 어떤 것이 율의인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혹 눈으로 빛깔을 볼 때에
마음에 드는 빛깔에도 탐욕을 내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에도 성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차례를 따라서 많은 감각과 생각을 내지 않고
계속 머물러 빛깔의 허물과 근심을 본다. 

그는 허물과 근심을 보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가 있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이것을 율의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1. 육종중생경(六種衆生經)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빈집에서 놀다가 여섯 가지 동물을 얻었다고 하자. 

처음에는 개를 얻었는데, 

곧 그 개를 붙들어 어떤 곳에 매어 두었다. 

다음에는 새를 얻었고, 

다음에는 독사, 

다음에는 여우, 

다음에는 실수마라(失收摩羅), 

3)다음에는 원숭이를 얻었다. 

그는 이런 동물들을 얻어 모두 한곳에 매어 두었다.

 

그러면 개는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고, 

새는 항상 허공으로 날아가려고 하며, 

뱀은 늘 구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여우는 무덤 사이로 가려고 하며, 

실수마라는 언제나 바다로 들어가려고 하고, 

원숭이는 산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 여섯 가지 중생들을 모두 한곳에 매어 두지만, 

좋아하는 것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각각 제 편안한 곳으로 가기를 희망하여 서로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곳과는 다른 곳에 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각기 그 힘을 다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갖가지 경계에는 각각 제가 좋아하는 경계를 구하고 다른 경계를 원하지 않는다. 

눈은 언제나 사랑할 만한 빛깔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은 곧 싫어한다. 

귀는 언제나 사랑할 만한 소리를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는 곧 싫어한다. 


코는 언제나 마음에 드는 냄새를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는 곧 싫어한다. 

혀는 언제나 마음에 드는 맛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맛은 곧 싫어한다. 

몸은 언제나 마음에 드는 감촉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감촉은 곧 싫어한다. 

뜻은 언제나 마음에 드는 법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은 곧 싫어하느니라.

 

■ 이 여섯 감각기관은 갖가지 작용과 갖가지 경계에 있어서
제각기 다른 감각기관의 경계를 구하지 않는다. 


이 여섯 감각기관이 힘이 있다면 지각하는 경계를 따라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저 장부가 여섯 가지 중생들을 든든한 기둥에 매어둔다면, 

그것들은 저마다 힘을 다해 제 마음에 맞는 대로 가려고 하여
이리저리 달려보다가 그만 지쳐버리고 마는 것과 같다. 

그들은 밧줄에 매어있기 때문에 끝내 기둥에 의지하고 만다.

 

비구들아, 

내가 이 비유를 들어 말하는 것은 너희들을 위해 그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여섯 가지 중생이란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비유한 것이고, 

든든한 기둥이란 신념처(身念處)에 비유한 것이다. 


■ 만일 신념처를 잘 닦아 익히면, 

생각하는 빛깔과 생각하지 않는 빛깔이 있어서, 

사랑할 만한 빛깔을 보아도 집착하지 않고, 

사랑할 만하지 않은 빛깔을 보아도 싫어하지 않는다. 


귀가 소리에 대해서ㆍ코가 냄새에 대해서ㆍ혀가 맛에 대해서ㆍ몸이 감촉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뜻이 법에 대해서도
■ 마음에 드는 법을 구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신념처를 부지런히 닦아 익혀 항상 거기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2. 독사경(毒蛇經)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흉악하고 독하고 모진 독사 네 마리가
같은 상자 안에 담겨 있는 것과 같다. 


그때 어리석지 않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즐거움을 구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며 살기를 구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어떤 장부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장부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이 상자에 든 독사를 가져다가 어루만져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은혜를 베풀고 친근히 하여 먹이를 주어 기르되, 

수시로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라. 

만일 네 마리 독사 중에 혹 괴로워하는 놈이 있으면 너를 죽이거나 혹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할 터이니
너는 조심해서 방어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때 그 장부는 두려워서 달아났다. 

또 어떤 이가 말하였다.
‘갑자기 다섯 사람의 원수가 칼을 빼어들고 쫓아와 기어코 죽이려고 할 것이니
너는 조심해서 방어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때 그 장부는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빼어든 다섯 원수가 두려워서 달아났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장부여, 

네 몸 안에 여섯 도적이 있어, 

늘 따라 다니면서 너를 엿보다가 틈이 생기면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니 너는 조심해서 방어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때 그 장부는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빼든 다섯 원수와
몸 안의 여섯 도적이 두려워 다시 달려 텅 빈 마을로 들어갔다. 

그 마을에 있는 빈집을 보니 다 썩어 허물어져서 위태롭기 그지없고, 

그 안에 있는 온갖 나쁜 물건을 잡아 보았으나 모두 연약할 뿐 든든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장부여, 

이 빈 마을에 있다가는 장차 도적 떼가 와서 틀림없이 너를 해칠 것이다.’

 

그때 그 장부는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빼든 다섯 원수와 몸 안의 여섯 나쁜 도적과 빈 마을에 도적 떼가 들이닥칠까 무서워서 다시 달아났다. 

그가 달아나는 길에 갑자기 큰 강이 앞을 가로막았는데 물결이 매우 세차고 급하였다. 

이쪽 언덕에는 온갖 무서운 것들만 보일 뿐이고, 

안온하고 즐거우며 청정하고 두려움이 없는 저쪽 언덕이 보이긴 하지만, 

저쪽 언덕으로 건널 수 있는 다리나 배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풀과 나무를 많이 모아 하나로 묶어서 뗏목을 만들고, 

손과 발로 방편을 삼아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곧 풀과 나무를 주워 언덕을 의지해 묶어서 뗏목을 만들고, 

손과 발로 방편을 삼아 흐름을 끊고 물을 횡단하여 건너갔다.

 

이리하여 그 장부는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빼든 다섯 원수와
몸 안의 여섯 나쁜 도적으로부터 벗어났고, 

또 빈 마을 도적의 무리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강을 건너서는 이쪽 언덕의 온갖 두려움을 여의고 안온하고 즐거운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비구들아, 

내가 이런 비유를 들어 말했는데, 

이제 그 뜻을 설명하리라. 

여기에서 상자라고 한 것은 추한 4대(大)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를 비유한 것이다. 

4대로 된 정혈(精血)의 몸은 더러운 음식으로 기르고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지만, 

그것은 덧없는 것이어서 변하고 무너지며 위태롭기 그지없는 법이니라.

 

여기에서 독사라고 한 것은 4대 즉,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대(風界)에 비유한 것이다. 

만일 지계와 다투면 그 몸을 죽이거나 거의 죽음의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수계ㆍ화계ㆍ풍계와의 다툼도 그와 같으니라.

 

칼을 뺀 다섯 원수라고 한 것은, 

5수음(受陰)을 비유한 것이며, 

몸 안의 여섯 도적이라고 한 것은 여섯 가지 사랑과 기쁨을 비유한 것이며, 


빈 마을이라고 한 것은, 

6내입(內入)을 비유한 것이다.

선남자들아, 

안입처(眼入處)를 관찰해보면
그것은 다 덧없는 것이어서 변하고 무너지는 것이며, 

눈을 고집하는 자도 또한 덧없고 거짓된 법이다. 

이입처(耳入處)ㆍ비입처(鼻入處)ㆍ설입처(舌入處)ㆍ신입처(身入處)ㆍ의입처(意入處)도 그와 같으니라.

 


■ 빈 마을의 떼도적이라고 한 것은
6외입처(外入處)를 비유한 것이니, 

곧 눈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의 해침을 받는다. 


귀가 소리에게,★★ 

코가 냄새에, 

혀가 맛에게, 

몸이 감촉에 해침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며, 

뜻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의 해침을 받는다. 



■ 사나운 흐름이라고 한 것은 네 가지 흐름인
애욕의 흐름[欲流], 

존재의 흐름[有流], 

소견의 흐름[見流], 

무명의 흐름[無明流]을 비유한 것이다.

 


■ 강이라고 한 것은 세 가지 욕망인
욕애(欲愛), 

색애(色愛), 

무색애(無色愛)를 비유한 것이다. 



■ 두려움이 많은 이쪽 언덕이라고 한 것은 존재하는 몸을 비유한 것이며, 

맑고 시원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저쪽 언덕이라고 한 것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을 비유한 것이다. 

뗏목이라고 한 것은 8정도(正道)를 비유한 것이며, 

손발을 방편 삼아 흐름을 끊고 건넌다고 한 것은
열심히 노력하여 용맹하게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바라문이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을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스승은 자비로써 제자들을 안위시키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 

내가 할 일은 이미 다 마쳤다. 

너희들도 이제 그 할 일을 해야 한다. 


즉, 

비고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깨끗한 방에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고, 

한데나 무덤 사이 같은 외진 곳에 앉아 부지런히 선정을 닦고, 

부디 방일하게 행동함으로써 뒷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것이 곧 내가 가르치는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3. 고법경(苦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일체 괴로운 법과 괴로움의 발생ㆍ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 


그래서 다섯 가지 욕망 보기를 마치 불구덩이처럼 본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하여 관찰하고 나서는
다섯 가지 욕탐(欲貪)ㆍ욕애(欲愛)ㆍ욕염(欲念)ㆍ욕착(欲着)으로
영원히 그 마음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그 욕심을 알기 때문에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스스로 그 욕심을 막고 닫는다.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닫으면
가고 머무르는 어느 곳에서도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일체 괴로운 법과 그 발생ㆍ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다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다라고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일체 괴로운 법과 그 발생ㆍ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다섯 가지 욕망 보기를 불구덩이처럼 보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으로
다시는 그 마음을 가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촌락 끝에 깊은 구덩이가 있고, 

그 구덩이 속에 이글거리는 불이 가득히 담겨져 있으나 연기나 불꽃이 없는 것과 같다. 

그때 어리석지도 미련하지 않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괴로운 것을 싫어하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이 불구덩이 속에는 이글거리는 불이 있다. 

만일 내가 저 속에 떨어지면 죽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곳을 멀리 하려는 마음을 내고, 

멀리 하기를 생각하고 멀리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다섯 가지 욕망 보기를 불구덩이처럼 보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으로 다시는 그 마음을 가리지 않느니라.

만일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미리 알면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는다.

 

비유하면 촌락 끝에 있는 가시덤불로 가득찬 내림(㮈林)과 같다. 

어떤 장부가 할 일이 있어 그 숲 속에 들어갔는데 전후ㆍ좌우ㆍ상하에 모두 가시뿐이었다. 



그때 그 장부는 바른 생각으로 다니고 바른 생각으로 오고가며, 

바른 생각으로 단정히 보고 바른 생각으로 몸을 굽혔다. 

왜냐하면,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 몸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도 그와 같다. 

혹 촌락이나 도시를 의지해 살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그 마음을 잘 다잡아, 

바른 생각으로 편안히 머물고 바른 생각으로 다니며, 

바른 생각으로 눈을 뜨고 바른 생각으로 관찰한다. 

왜냐하면 날카로운 가시에 거룩한 법(法)과 율(律)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것을 날카로운 가시가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워 기억할만한 빛깔을 말하니, 

이것을 날카로운 가시가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마음에 들고 사랑하고 기억할만한 빛깔이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욕망[五欲功德]을 일컫는 말이니, 

눈으로 빛깔을 분별하고는 사랑하는 생각을 일으켜 욕락(欲樂)을 자라게 한다. 

귀로 소리를 분별하고, 

코로 냄새를 분별하며, 

혀로 맛을 분별하고, 

몸으로 감촉을 분별하고는 사랑하는 생각을 일으켜 욕락을 자라게 한다. 

이것을 사랑하고 기억할 만한 빛깔이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고, 

이것을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미리 알아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혹 때로는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바른 생각을 잃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켜
탐욕을 키우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키우기도 하니, 


그들은 우둔한 근기(根器)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비록 발생을 소멸하려는 생각을 내었다가도 욕심으로 마음을 가리고 만다. 


마치 쇠구슬을 불에 달구어 몹시 뜨겁게 한 뒤에
물을 조금 뿌리면 물이 이내 말라 없어지는 것처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우둔한 근기가 생각을 내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렇게 머무를 때, 

혹 왕이나 대신이나 친족이 그에게 찾아가 봉록(俸祿)을 주겠노라고 청하며 말하기를

‘장부여, 

무엇 때문에 머리를 깎고 발우를 들고 몸에는 가사를 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식하는가? 

편안하게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 보시를 행해 복을 짓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면, 

어떤가? 비구들아, 

그런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국왕이나 대신이나 여러 친족이나 시주가 봉록을 빌미로 청한다고 해서
그가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나리라고 생각하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일체 괴로운 법과 그 발생ㆍ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보기 때문입니다. 


불구덩이를 보고는 다섯 가지 욕망에 비유하고,
……(내지)……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다시는 그 마음을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 


또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미리 알아
……(내지)……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설사 국왕이나 대신이나 친족이 봉록을 내세워 청한다고 해도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마음이 오랫동안 여러 세계에 흘러 들어가고
윤회하면서도 멀리 여읨을 향하였고, 

욕심 여읨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 고요하게 버리고, 

열반을 좋아하여 번뇌에서 나와 지극히 고요하고 맑고 시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왕이나 장자나 친족이 청한다고 해도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날 리가 없다. 

그렇게 하려는 다른 사람들만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비유하면 항하의 물은 오랜 세월동안 치달려 동방으로 쏟아져 흘러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끊어 서방으로 쏟아져 흘러들게 하려고 한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항하의 물은 오랫동안 동방으로 흘렀으므로
갑자기 서방으로 흐르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중들은 부질없이 고달프기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오랜 세월동안 멀리 여읨으로 향해 나아갔고 흘러들었으므로
……(내지)……갑자기 물러나게 하려고 해도 그리될 수 없다. 

다만 괴로울 뿐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4. 유수경(流樹經)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아비사(阿毘闍)의 항수(恒水 : 갠지스강) 가에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설법해 주십시오. 

저는 그 법을 듣고 나서 혼자 고요한 곳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사유(思惟)하며 방일하게 지내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족성자(族姓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목적대로 범행을 닦아
점점 위로 나아가고 법을 보고 스스로 증득한 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겠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항수를 관찰하시다가, 

항수 가운데 큰 나무 하나가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보시고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항수 가운데 떠내려가는 큰 나무가 보이느냐?”

 

비구는 아뢰었다.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저 큰 나무가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으며, 

물밑에 가라앉지도 않고, 

섬에 걸리지도 않으며, 

소용돌이치는 물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고, 

사람이 건져 가지도 않으며, 

사람 아닌 것이 가져가지도 않고, 

또 썩지도 않는다면, 

장차 강을 따라 흘러 아무 탈 없이 큰 바다까지 흘러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다.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으며, 

물밑에 가라앉지도 않고 섬에 걸리지도 않으며,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고, 

사람이 가져가지도 않으며, 

사람 아닌 것이 가져가지도 않고, 

또 썩지도 않는다면, 

순조롭게 전진해 나아가고 열반으로 흘러들게 될 것이니라.”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쪽 언덕이란 무엇을 뜻하며, 

저쪽 언덕이란 무엇을 뜻하며, 

가라앉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섬은 또 무엇을 뜻하며, 

소용돌이치는 물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사람이 가져간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사람 아닌 것이 가져간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썩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법을 듣고 나서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정진하고 사유하며
방일하게 머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쪽 언덕이라고 한 것은 6내입처(內入處)를 말한 것이고, 

저쪽 언덕이라고 한 것은 6외입처(外入處)를 말한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간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속세에 사는 이나 출가한 이를 가까이하여
기뻐하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하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며, 

이런 저런 일들에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함께 하면, 

이것을 사람이 가지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 아닌 것이 가지고 간다는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梵行) 닦기를 원하면서
‘나는 지금 계율을 지키고 고행을 행하며, 

온갖 범행을 닦아 미래에는 좋은 것만 있는 곳에 태어나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것만 있는 곳이란 천상(天上)을 말한다. 

이것을 사람 아닌 것이 가지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용돌이치는 물이라고 한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계율을 깨뜨리고
속세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 것이고, 

썩는다고 한 것은 계율을 범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여
부패(腐敗)하고 들어 아는 것이 적어서
마치 강아지풀이나 피나 패성(貝聲)6)과 같아, 

사문도 아니면서 사문인 체하고, 

범행을 행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범행을 행하는 사람인 체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이것을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열반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 것이니라.”

 

그때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리고는 그때 그 비구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류대수경(水流大樹經)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내지)……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그때 소치는 사람 난도(難屠)7)가 부처님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막대기를 들고 소를 먹이고 있었다. 


그는 비구가 떠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으며, 

물 속에 잠기지도 않고, 

섬에 걸리지도 않고, 

사람이 가져가지도 않았으며, 

사람 아닌 이들이 가져가지도 않았고, 

소용돌이치는 물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또 썩지도 않았습니다. 

저도 출가하여 세존의 바른 법과 율 안에서 범행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소치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 소를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않겠느냐?”

 

소치는 이가 말하였다. 

“저 소들은 다 송아지가 있으니
스스로 제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돌려보내려고 애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소치는 이에게 말씀하셨다. 

“그 소들은 제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너는 남에게 옷을 얻어 입고 밥을 먹고 있었으니
돌아가서 너의 집 주인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그때 소치는 이는 부처님의 분부를 듣고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도 그 자리에 있었다. 

소치는 이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소치는 이 난도가 출가하려고 하는데, 

세존께서는 왜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소치는 이 난도가 속가에 돌아가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 살 리가 없기 때문이니라.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면
곧 스스로 돌아와 나의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범행을 깨끗이 닦을 것이며,……(내지) ……
결국에는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아라한이 될 것이다.”

 

그때 소치는 이 난도는
소를 주인에게 돌려준 다음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소는 이미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제가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도 배우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소 치던 이 난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의 신분을 얻게 될 것이다.”

그는 출가하여 생각하였다.‘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까닭은 범행을 더욱 열심히 닦아서……(내지)……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아라한이 되는 데 있다.’

 



1175. 긴수유경(緊獸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혼자 조용한 곳에서 좌선(坐禪)을 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비구로서 어떻게 알아야 하고 어떻게 보아야 청정한 소견을 얻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는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비구들이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지겠습니까?”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존자여, 

6촉입처(觸入處)와 그것들의 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소견이 청정해질 것입니다.”

 

그 비구들이 정확하게 말해 주는 것을 듣고도
그는 마음에 차지 않아
다시 다른 비구들의 처소로 찾아가서 그곳 비구들에게 물었다. 

“여러 높으신 비구들이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지겠습니까?”

 


그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여섯 가지 경계[界]와 그것들의 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 등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소견이 청정해질 것입니다.”

 

비구는 그들이 정확하게 해주는 말을 듣고도
역시 마음에 차지 않아
다시 다른 비구의 처소로 찾아가서 그곳 비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비구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지겠습니까?”

 

그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5수음(受陰)은 질병과 같고 종기와 같은 것이며, 

가시와 같고 살생과 같은 것이며, 

덧없는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빈 것이고 나라는 것도 아니다라고 관찰하십시오.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보면 소견이 청정해질 것입니다.”

 

그 비구는 비구들이 확실하게 해주는 말을 듣고도 또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고요히 생각하였습니다.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질까?’

이렇게 생각하고는 비구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갔습니다
.……(세 곳에서 말한 내용을 자세히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그들의 말을 듣고도 마음에 차지 않아
이렇게 세존을 찾아와서 그 이치를 세존께 여쭈옵니다. 


비구는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집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긴수(緊獸)8)를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어떤 사람이
긴수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었다.


‘그대는 긴수를 아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안다.’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이 어떠한가?’

 

그가 대답하였다.
‘그 빛깔은 새까만 것이 마치 불에 탄 기둥 같다.’

 

그 사람이 그것을 보았을 때 마치 불에 탄 기둥 같은 검은 빛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 그 사람은 긴수의 새까만 빛깔이 마치 불에 탄 기둥 같았다는 말을 듣고도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지 않고, 

다시 긴수를 본 일이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었다.‘그대는 긴수를 알고 있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안다.’

 

다시 물었다.그 모양이 어떠한가?’

 

긴수를 본 일이 있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붉은 빛깔로 핀 그 꽃의 모양이 마치 살덩어리 같았다.’

 

그 사람이 보았을 때 긴수는 꽃을 피웠었고, 

그 모양은 마치 살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긴수를 본 적이 있다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물었다.‘그대는 긴수를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안다.’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이 어떻던가?’

 

대답하였다.
‘아래로 죽죽 늘어진 모습이 마치 시리사(尸利沙)열매와 같았다.’

 

그는 그의 말을 듣고도 마음에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긴수를 잘 안다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물었다.
‘너는 긴수를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안다.’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이 어떻던가?’

 

그는 대답하였다.
‘그 잎사귀는 푸르고 반들반들하며 길이가 길고 너비가 넓은 것이 마치 니구루타(尼拘婁陀) 나무와 같았다.’

 

그 사람은 긴수에 대한 것을 물어 들을 때마다 만족스러워하지 못하고
다시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긴수를 본 여러 사람들은 그때마다 자신들이 보고 느낀 그대로 대답하였다. 

그래서 대답이 똑같지 않았던 것이니라.

 

그와 같이 비구들이 만일 혼자 조용한 곳에서 전념하여 사유(思惟)하면서
방일하게 생활하지 않고 머무르면, 

그 사유하는 방법으로 인해 온갖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제 자신이 본 그대로 분명하게 말한다. 

너는 이제 다시 들어라.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해주면 잘 이해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변방에 있는 국왕이 성벽을 잘 쌓았는데, 

그 문 아래는 견고하기 그지없고 얽혀있는 길들은 편편하다. 

네 성문에는 네 명의 성문지기를 두었는데, 

그들은 다 총명하여 드나드는 사람에 대하여 낱낱이 다 알았다. 

그 성안의 네거리에는 평상을 펴놓고 성주가 그 위에 앉아 있었다. 



만일 동방에서 사자가 찾아와 성문지기에게, 

성주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곧, 

성주는 성안 네거리의 평상 위에 앉아 있다고 대답한다. 

그 사자는 그 말을 듣고 성주에게 나아가 명령을 받고 길을 돌려 돌아간다.

 

남ㆍ서ㆍ북방으로부터 멀리서 찾아오는 사신들도 문지기에게, 

성주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성 안 네거리에 있다고 대답한다. 

사자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성주에게 나아가 명령을 받아 가지고
각각 제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비유를 들어 말하였는데, 

이제 그 뜻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다. 

여기에서 성이란, 

사람 몸의 추한 색(色)을 비유한 것이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독사로 비유한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성을 잘 쌓는다고 한 것은 바른 소견을 말한 것이요, 

얽혀 있는 길이 편편하다고 한 것은 6내입처(內入處)를 말한 것이다. 

네 문이라고 한 것은 4식주(識住)를 비유한 것이요, 

네 문지기라고 한 것은 4념처(念處)를 비유한 것이다. 

성주라고 한 것은 의식이 받아들이는 것이 쌓인 것을 말한 것이요, 

사자라고 한 것은 바른 관찰을 말한 것이다. 

참된 말이라고 한 것은 네 가지 진리를 말한 것이요, 

길을 되돌아간다고 한 것은, 

8성도(聖道)를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위해 해야할 일을 나는 이미 마쳤다. 

너를 가엾이 여겼기 때문이다.……(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독사로 비유한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때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전념으로 사유하며 방일하게 생활하지 않았고……(내지)……
더욱 범행을 닦아,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 아라한이 되었다.

 





1176. 누법경(漏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석씨들의 인간세상을 유행하시다가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에 이르러 니구율원(尼拘律園)에 계셨다.

 

그때 가비라위국에 사는 석씨들이 새로 강당을 지었는데,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석씨 성을 지닌 젊은이나 온 나라 인민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머무른 이가 없었다. 

그들은 세존께서 석씨의 나라인 가비라위에 이르러 인간세상을 유행하시다가, 

니구율원에 계시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이치에 대하여 연설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 강당은 새로 지은 것이라서 아직 아무도 머무른 이가 없으니, 

세존과 그 대중들을 청해 이곳에서 공양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공덕과 복의 과보를 얻어 오랜 세월 동안 안온할 것이다. 

그런 후에 우리들도 따라서 사용하자.’

 

이렇게 의논한 뒤에 그들은 모두 성을 빠져 나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석씨들을 위해 긴요한 법을 설하고 가르쳐 보여 그들을 기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때 석씨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 여미고 예배한 뒤에,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석씨들이 새로 강당을 지었사온데, 

머문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존과 여러 대중들을 초청하여 그곳에 모시고 공양을 올려서 공덕과 복리(福利)를 얻는다면, 

오랜 세월 동안 안온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저희들이 그대로 사용할까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아들이셨다. 

여러 석씨들은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으신 것을 알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각각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로 곧 수레를 준비해 온갖 도구들을 운반하여 새 강당을 장엄하고, 

평상을 펴고 땅에 풀을 깔고 향과 등불을 준비하여 모든 일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모든 일은 다 준비되었습니다. 

성인께서는 때를 아시옵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새 강당 밖에 이르셨고, 

발을 씻으신 뒤에 강당으로 올라가 중간 기둥 밑에서 동쪽을 향해 앉으셨다. 

그때 비구들도 발을 씻은 뒤에 세존을 따라 강당에 들어가 세존의 뒤쪽인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앉았다. 

그리고 여러 석씨들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석씨들을 위해 요긴한 법을 자세히 설하고 가르쳐 보여 그들을 기쁘게 하신 뒤에 석씨들에게 말씀하셨다. 

“구담들이여, 

이미 초저녁이 지났으니, 

이제는 가비라성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니라.”

 

여러 석씨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석씨들이 떠나간 줄 아시고, 

마하 목건련(目揵連)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나는 지금 등이 아파서 조금 쉬어야겠다.”

 

그때 마하 목건련은 묵묵히 분부를 받았다. 

세존께서는 울다라승(鬱多羅僧)을 네 겹으로 접어 옆구리 밑에 깔고, 

승가리(僧伽梨)를 접어 머리 밑에 베고 오른쪽으로 누워 무릎을 오그리고 발을 포개고, 

밝은 모양에 생각을 두고 언제고 일어날 생각을 가지시고 사색에 잠기셨다.

 

그때 마하 목건련이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처음이나 중간이나 마지막이나 할 것 없이 다 훌륭하시고, 

뜻도 좋으며 맛도 좋다. 

또 순일(純一)하고 원만하고 청정하며, 

정말로 깨끗한 범행이다. 

나는 이제 번뇌와 번뇌 아닌 법에 대하여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어떤 것이 번뇌법[漏法]인가 하면,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는 제 마음에 맞는 빛깔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마음을 내고, 

마음에 맞지 않는 빛깔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신념처(身念處)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음이 해탈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지혜도 없어, 

갖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켜서, 

남김없이 없애지도 못하고 남김없이 영원히 다하지도 못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비구들아, 

그렇게 하면 악마 파순(波旬)이 그에게 찾아가 틈을 엿보고 있다가 그의 눈이 빛깔에 집착하면, 

곧 그 틈을 탄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에도 마찬가지며, 

뜻으로 법을 알 때에도 또한 그와 같이 곧 그 틈을 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마른 풀을 쌓아둔 곳에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면 잠깐 사이에 다 타버리는 것처럼 비구들아, 

그 눈이 빛깔에 대해 집착하면 하늘의 악마 파순이 그 틈을 타리니, 

그렇게 되면 그 비구는 빛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고, 

몸이 감촉을 느낄 때에도 마찬가지며, 

뜻이 법을 알 때에도 그 법에 제어되어 그 법을 이기지 못한다. 

빛깔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을 이기지 못하며, 

또한 뜻도 이기지 못하면, 

착하지 않는 법과 온갖 번뇌로 인해 일어나는 불꽃같은 괴로운 과보와, 

미래 세상에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나는 세존에게서 직접 이 모든 번뇌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이것을 「번뇌법경」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번뇌 없는 법에 대하여 설하신 경인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눈으로 빛깔을 볼 적에 생각에 맞는 빛깔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생각에 맞지 않는 빛깔에 대해서도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생각을 매어 머무른다. 

그래서 한량없는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여,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더라도 남김없이 다 없애 버린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이 한다.

 

그런 부류의 비구들은 악마 파순이 그를 찾아가 그 눈이 빛깔에 대해 집착하는 허물이 있을 때를 엿보지만 그 허물을 잡아내지 못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에도 마찬가지이며, 

뜻이 법을 집착하는 허물을 엿보지만 그 허물을 잡아내지 못한다.

 

이를 비유하면 누각을 지을 적에 담을 단단하게 쌓고 창문을 겹겹이 닫고 진흙으로 두껍게 바르면,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더라도 태울 수 없는 것처럼 이들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악마 파순이 그들을 찾아가 그 허물을 엿보더라도 그 허물을 잡아내지 못한다. 

그러한 비구는 능히 그 빛깔을 이기고 그 빛깔에 지지 않는다.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법을 이기고 그 법에게 지지 않는다. 

만일 빛깔을 이기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을 이긴다면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번뇌로 인해 일어나는 불꽃같은 괴로운 과보와, 

미래 세상에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도 다 이겨낼 것이다. 

나는 세존으로부터 직접 이 법을 받았다. 

이것을 번뇌가 없는 법을 설한 경이라고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하 목건련의 설법이 끝난 줄을 아시고, 

일어나 단정히 앉아 생각을 모으고 마하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목건련아, 

사람들을 위해 그 경법(經法)을 잘 연설하였다. 

많이 유익할 것이요, 

대부분 다 제도될 것이며, 

오랜 세월 동안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이 안락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번뇌와 번뇌 없는 법을 설한 경을 받들어 가졌다가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이 법은 이치가 구족하고 법이 구족하고 범행이 구족하여 신통을 얻어 열반으로 바로 향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심이 있는 선남자들은 속가에 있거나 출가하였거나 간에 이 경을 받들어 가져 읽고 외우고 또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야 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7. 회하경(灰河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회하(灰河)의 남쪽 언덕은 몹시 뜨겁고 온갖 예리한 가시가 많이 있으며 깜깜하고 어두운 곳인데, 

많은 죄인들이 그 강가에서 물결을 따라 떠돌고 있다. 

그 중에 어떤 한 사람은 미련하지도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괴로운 것을 싫어하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여 이렇게 생각하였다.‘나는 무슨 인연으로 몹시 뜨겁고 예리한 가시가 많이 있으며, 

깜깜하고 어두운 곳인 회하의 남쪽 언덕에서 물결을 따라 떠돌고 있는가? 

나는 손과 발로 방편을 삼아 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리라.’

 

그리하여 그는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아주 희미한 빛을 잠깐 보고는 가만히 생각하였다.‘열심히 애쓴 결과 이제 이 조그만 빛이나마 보게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한 그는 다시 손과 발을 써서 더욱 부지런히 방편을 가하여 마침내 평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 머물면서 사방을 관찰하다가 큰 돌산을 보았다. 

그런데 그 돌산은 끊어지지도 않았고 무너지지도 않았으며, 

또 구멍이 뚫리지도 않았다. 

그는 곧 그 돌산 위에 올라가 다시 맑고 시원한 여덟 갈래 물, 

즉 시원하고 맛이 있으며, 

경쾌하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며, 

마실 때에도 목이 메이지 않고 목 안에 걸리지도 않으며, 

마시고 나면 온몸이 편안해지는 물을 보았다. 

그가 곧 그 속에 들어가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자 모든 번열과 괴로움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큰 산 위에 올라가 일곱 가지 꽃을 보았는데, 

그 꽃은 우발라(優鉢羅)꽃ㆍ발담마(鉢曇摩)꽃ㆍ구모두(拘牟頭)꽃ㆍ분다리(分陀利)꽃ㆍ수건제(修揵提)꽃ㆍ미리두건제(彌離頭揵提)꽃ㆍ아제목다(阿提目多)꽃이었다. 

그는 이 꽃의 향기를 맡고는 다시 돌산에 올라가 4층 누각을 보았다. 

그는 그 누각 위에 앉아 다섯 기둥으로 된 장막을 보고는 곧 그 안에 들어가 몸을 거두고 바르게 앉았다. 

갖가지 베개와 담요가 있고 꽃을 흩어 골고루 펴서 장엄해놓아서 매우 아름다웠으며, 

그 안에서 앉고 누울 때는 시원한 바람이 4방에서 불어와 그 몸을 안온하게 하였다. 

그는 높은 곳에 앉아서 아래를 굽어보며[坐高臨下]9) 큰 소리로 외쳤다.

 

‘회하에 있는 여러 정사(正士)들이여, 

그 회하의 남쪽 언덕은 몹시 뜨겁고 온갖 예리한 가시가 많으며, 

게다가 깜깜하게 어둡기까지 하니 어서 그 강에서 나오시오.’

 

그 소리를 들은 어떤 사람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물었다.‘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습니까, 

어느 곳을 따라서 나가야 합니까?’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다른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너는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느냐〉고 묻느냐? 

고함치는 저 사람 역시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다. 

저 사람 역시 몹시 뜨겁고 온갖 예리한 가시가 많은 회하의 남쪽에서 깜깜하고 어두운 물결을 따라 떠내려오고 있다. 

그에게 물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비구들아, 

이와 같이 나는 비유를 들어 말하였다. 

이제 그 뜻을 설명해 주겠다. 

여기에서 재라고 한 것은 곧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말한 것이니, 

세 가지란 탐하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말한다. 

강은 세 가지 욕망을 비유한 것이니 욕계의 욕망[欲愛]과 색계의 욕망[色愛]과 무색계의 욕망[無色愛]을 비유한 것이다. 

몹시 뜨거운 남쪽 언덕은 안과 밖의 6입처(入處)를 비유한 것이고, 

온갖 예리한 가시가 많다고 한 것은 다섯 가지 욕망[五欲功德]을 비유한 것이다. 

깜깜한 곳이라고 한 것은 지혜의 눈을 가리는 무명을 비유한 것이고,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를 말한 것이다. 

물결이라는 것은 삶과 죽음의 강을 말하고, 

그 중에서 미련하거나 어리석지 않은 한 사람이란 보살마하살을 비유한 것이다. 

손발의 방편으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 것은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희미한 빛을 잠깐 보았다는 것은 법인(法忍)을 얻은 것이다. 

평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사방을 관찰한다는 것은 네 가지 진리를 보는 것이고, 

큰 돌산은 바른 소견에 비유한 것이다. 

여덟 갈래 물이라고 한 것은 8성도(聖道)를 비유한 것이고, 

일곱 가지 꽃은 7각지(覺支)를 가리킨 것이다. 

4층집은 4여의족(如意足)을 가리킨 것이고, 

다섯 기둥의 장막은 믿음 따위의 5근(根)을 비유한 것이다. 

몸을 거두고 똑바르게 앉았다고 한 것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비유한 것이고, 

꽃을 흩어 두루 편다고 한 것은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ㆍ정수(正受)를 비유한 것이니라.

 

마음대로 앉고 눕는다고 한 것은,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을 지칭한 말이고, 

사방에서 바람이 분다고 한 것은 네 가지 왕성한 마음[四增心]으로 법을 보아 편안하고 즐겁게 머무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소리를 높여 외쳤다고 한 것은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을 지칭한 것이고, 

‘여러 정사(正士)들이여,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습니까, 

어느 곳을 따라서 나가야 합니까’ 하고 물은 사람이란 바로 사리불이나 목건련 같은 거룩한 비구들을 말한 것이다.

 

그 중의 어떤 사람이 ‘너는 무슨 때문에 묻느냐? 

그 말을 해준 사람도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다. 

그 사람도 역시 몹시 뜨겁고 온갖 예리한 가시가 많은 남쪽언덕에 있으며, 

깜깜하게 어두운 회하의 물결을 따라 떠내려 오고 있다. 

그에게 물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한 것은 온갖 삿된 소견을 가진 여섯 스승들을 비유한 것이니, 

그 여섯 스승은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ㆍ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瞿舍離子)ㆍ산사야비라지자(散闍耶毘羅胝子)ㆍ아기다지사흠바라(阿耆多枳舍欽婆羅)ㆍ가구라가전연(伽拘羅迦氈延)ㆍ니건련타사제불다라(尼揵連陀闍提弗多羅)와 그 밖의 삿된 소견을 가진 무리들을 말한 것이니라.

 

이와 같나니 비구들아, 

스승으로서 여러 성문들을 위해 해야할 일을 나는 이제 이미 다 말하였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제 해야할 일을 해야 하느니라.……(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의 상자 안의 독사에 비유하여 설한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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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인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사라(瞿師羅) 장자가 부처님께 바친 원림(園林)이다.

2 이 소경은 『증일아함경』 제32권 제38 「역품(力品)」의 8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3 팔리어로는 suṁsumāra로 표기하며, 

악어를 말한다.

4 이 소경은 『증일아함경』 제23권 제31 「증상품(增上品)」의 6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5 이 소경은 『증일아함경』 제38권 제43 「마혈천자문팔정품(馬穴天子問八政品)」의 3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바슷하다.

6 강아지풀이나 피는 곡식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곡식이 아니고, 

패성(貝聲 :

 소라에서 나는 소리)은 해랑(海浪 :

 파도 소리)의 소리와 흡사하나 낭성(浪聲)은 아니다.

7 사람의 이름이며, 

팔리어로는 Nanda로 표기하고 있다.

8 육색화(肉色花)라고 하는 식물의 이름이며, 

팔리어로는 kimsuka로 표기하고 있다.

9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좌고임하(坐高林下)로 되어 있는데, 

문맥상 의미가 걸맞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송ㆍ원ㆍ명 세 본에 의거하여 임(臨)자로 풀이한다.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4/02/13/목/11:00



● 이성의 요구에 대해 복종적인 자세 

『수능엄경』에 감정에 따라 업을 행하는 정도가 1/2 이상이면 축생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 

현실의 삶에서 취할 자세나 행위의 방향은
유치원 시절에 배운 내용을 크게 넘지 않는다. 

좋음을 아낌없이 베풀고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고,
괴로움을 만날 때 평안히 참는 것 등은 사회 규범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사회적인 인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는 수퍼에고의 역할을 한다. 

넓게 길게 깊게 관찰하여 올바른 방향과 방안을 취하는 것은
이성적인 어려운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런 가운데 매 순간 이성적인 요구에 매 순간 따르지 않기에 삶이 엉망이 된다. 
그런데 각 생명은 본래 자신의 본능적 충동에 따라 늘 매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충동은 당장 느끼고 감각하는 감성적인 부분에 치우친다. 
이런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을 매순간 극복하기 힘들다. 

그리고 규범이나 계에 맞추어 매 순간 수행을 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행자는 일종의 변태적 행위를 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중생제도를 위해 임하는 수행자는
한편 사회에서 다른 중생에 이바지하는 형태로 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생명에게 봉 노릇을 해야 한다. [요익중생계] 





◆vqaa1682

◈Lab value 불기2564/02/13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 Singer Sargent-the-honorable-laura-liste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otky_květů_(19)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060_Cave_4,_Main_Shrine_(34280369085)



♥York, England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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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수주공덕경

경전을 읽다가 수주공덕경을 읽고 보리자로 된 염주를 하나 구했다. 


대략 7년전에 게송을 하나 외우기 시작했는데 아직껏 다 외우지 못하고 있다. 
그간 포기하고 있었는데 념주를 구했으므로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대장경을 보면 용수보살님이나 구마라집이 하루에 천게송을 외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시간의 단위를 이런 내용을 기준으로 측정하면, 
본인의 7 년 걸려도 못하는 일을 하루에 마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조금 한심스럽다. 

대신 오늘부터 다시 의무적 산책을 다니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무조건 버스를 타고 나가서 내린 다음
도시 거리를 산책하고 돌아왔다. 
이전에 산보를 다니는 가운데 1석 12 조를 거두는 활동을 기획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뺏겨서 중간에 그만두었다. 
그러나 요즘 너무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1 시간 정도 걷고 왔다. 
1 석 12 조 산보란, 산보는 기본이고 
거기에 좋다고 보이는 것은 모두 붙여서 함께 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은 념주도 구했기에 게송도 외우고 이런 식으로 
병행을 했다. 그러나 첫날이기에 대략 1 석 3 조 정도로만 만족해야 한다. 
조금 더 준비하면 다라니도 외우고 하면 더 늘어난다. 

동창들 가운데 골프를 치는 친구들도 있는데 
한번 치는데 기본으로 한 3,40 만원을 지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에서 골프까지 치고 돌아다니면 3,40 만원 수입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벌금을 낼 뻔한 곳에서 벌금을 안 내면 더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1 석 12 조까지 거두는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다. 


걸어다니면서 다음 생각을 했다. 
그간 인턴연구원들을 여러모로 후원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부터 인턴연구원들 후원을 중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본인이 본인 생계도 잘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턴연구원들이 이제는 자신이 알아서 살아갈 정도가 되었기에 
이제 관심을 완전히 끊으려고 생각하게 된다. 
본인도 경제 부분을 생각하면 한심하게 생각된다. 
그런데 가끔 인턴연구원들의 상태를 보면 더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주변에 아이들이 어른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 속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본인은 이들 인턴연구원과 큰 관계는 없다.
그리고 인턴연구원들에게 기대하거나 집착하는 바도 별로 없다.
그래서 마음에 그런 걱정은 없다. 
다만 가능하면 인턴연구원들이 장차 불교 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해 몇번 권유는 했었다.
그런데 성적도 안 되고, 본인들이 무엇보다 희망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단념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자신도 자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그간 좀 가깝게 지켜보았다고 본인 희망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별로 달라질 것도 아니다. 

단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별 차이없이 똑같이 잘 대해줄 생각이다. 
전에는 조금 더 가깝게 대하고 잘 대해주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차이만 없어진 점만 달라진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별 다른 사정은 없다. 
이것은 넓게 보아 특별한 집착을 갖지 않고 수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삶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를 볼 때 공연히 응원하고 보면 마음만 지친다. 
마치 화장실 밖에서 대신 힘주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가장 신경쓰는 이는 경기를 뛰는 선수나 감독이고 화장실이라면 앉아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큰 도움도 안 되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면 오히려 안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널리 중생을 차별없이 대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13570#1682
sfed--잡아함경_K0650_T0099.txt ☞제43권
sfd8--불교단상_2564_02.txt ☞◆vqaa1682
불기2564-02-13
θθ
 



보조

불기2563-02-13_아비달마구사론_018
http://buddhism007.tistory.com/5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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