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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야견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1. 24. 03:56



®

살가야견
[한문]薩迦耶見
[범어]satkāya-dṛṣti

【범】satkāya-darśana ;또는 satkāya-dṛṣṭi 5견(見)의 하나. 
신견(身見)이라 번역. 
살가야달리슬치(薩迦耶達利瑟致)라 음역. 

5온으로써 가(假)로 화합한 것을 실(實)의 자아(自我)가 있다고 집착하며, 
내 몸에 부속한 모든 물건은 일정한 소유주가 없는 것인데, 
아(我)의 소유물이라고 집착하는 견해. 

범어에 가야는 신(身), 
달리슬치는 견(見), 
살은 유부(有部)에서는 유(有)의 뜻, 
경부(經部)에서는 허위(虛僞), 
혹은 괴(壞)의 뜻, 
대승 유식가에서는 이전(移轉)의 뜻이라 함. 

● From 운허 동국역경원 불교사전 
살가야는 사트카야의 음역. 
5견(見)의 하나. 

[원][k]유신견[c]有身見 
● From 고려대장경연구소 불교사전 


satkāya-dṛṣṭi, 살가야달리슬치(薩迦耶達利瑟致), 삽가야견(颯迦耶見, 삽가사견(薩迦邪見), 허위신견(虛偽身見), 위신견(偽身見), 괴신견(壞身見) 이전신견(移轉身見), 신사결(身邪結), 신견결(身見結)




○ [pt op tr]





* 위키백과 주석사항 

○ [pt op tr]








■ 불교사전 링크 및 불교 사전 출처 종합 안내
https://buddhism007.tistory.com/5710


■ 본 페이지 ID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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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uddhism007.tistory.com/1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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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페이지에서 붙이기]---

‡살가야견





Lab value 불기2564/01/24/금/20:25




● 살가야견이 없는 상태


살가야견[satkāya-dṛṣṭi] 은 신견을 의미한다. 

5온으로써 가(假)로 화합한 것을 실(實)의 자아(自我)가 있다고 집착하며, 
내 몸에 부속한 모든 물건은 일정한 소유주가 없는 것인데, 
아(我)의 소유물이라고 집착하는 견해다. 

살(sat)은 유(有), 허위(虛僞), 이전(移轉)의 뜻이라 하고  

가야[kāya]는 범어로 신(身) 이라고 한다. 


이는 한마디로 자신의 정체에 대해 갖는 망상분별이다.
현실에서 대부분 스스로 자신은 어떤 것이라고 여기면서 임한다.

망상분별의 종류가 수없이 많다. 
그런데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는 부분이 자신이다. 
그리고 온갖 집착의 근원이 또 자신이다. 

예를 들어 지금 섬이 하나 지진이 나서 수천명이 부상당했다고 해도 
자신과 관련이 되지 않으면 대부분 대단히 평안하고 태연하게 임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무거운 물건이 떨어져 자신의 발톱이 깨졌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또는 자신이 지갑을 분실해 10만원을 잃어버렸다면 또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현실에서 망집을 제거하려면 
바로 현실에서 무언가를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그 망집을 기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를 제거하지 못하면 바로 이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고 또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래서 수행과정에서 살가야견 즉 신견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점이다. 


기본적으로 왜 이런 살가야견이 문제인가부터 잘 판단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대하여 스스로 그런 내용이라고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그것이 왜 엉터리 망상분별인가. 

또 왜 그에 바탕해 행위를 해나가면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가. 
반대로 그런 망집을 제거하여 신견을 갖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즉 평소 무언가를 자신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망상분별임을 깨닫고 그것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 원래 자신이라고 여겼던 그 내용들은 어떻게 되는가. 

또 그런 상태에서 자신은 어떻게 현실에서 임해야 하는가. 
또 그런 상태라면 수행은 어떤 무엇이 어떻게 행해나갈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잘 생각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계와 정과 혜를 닦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수행하는 주체는 
앞에서 평소 망집을 바탕으로 자신이라고 여긴 그 내용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런 것을 이와 관련해 잘 생각해야 한다. 





사진에 길을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이 찍혀있다. 
대부분 이런 현실상황을 대할 때 그처럼 일정부분을 스님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또 이와 비슷하게 또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이것이 망상분별이다. 

그래서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망상분별을 제거한다고 해서 
눈을 떠서 볼 때 위와 같은 모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자신이 스님이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관념분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일정 부분을 스님이라거나 또는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이 문제다. 
그래서 살가야견(또는 신견)을 제거해서 임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을 제거하고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사정은 우선 그 부분은 자신이 갖는 그런 성격을 갖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처럼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 업을 행하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무량겁을 걸쳐 생사고통에 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근본원인이 되는 살가야견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살가야견을 제거하면 이후 수행은 어떻게 행할 수 있는가도 
사정이 위와 비슷하다. 

이미 생사현실에 처한 상황에서는 그런 망집이 이미 전제되어 출발된 상태다. 
이것을 구생기((俱生起) 신견이라고 칭한다. 

구생기 신견이란 말은 태어날 때 이미 그렇게 갖추어진 망상분별 번뇌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막 태어난 아이가 설령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사리분별을 못한다해도
이미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파악한 가운데 생을 시작한다. 

이에 반해서 분별기(分別起) 신견이란 이후 성장하면서 사리분별을 행하는 가운데
자신에 대해 잘못 파악하게 되는 망상분별을 의미한다.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사정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3능변]


그런데 쉽게 이 사정을 살피려면 다음을 생각하면 쉽다. 

오늘, 자신이 어떤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임에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손과 발의 부분에 대해
이것이 내 손과 발이라고 분별하거나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임에 도착할 때 자신의 손과 발을 떼놓고 도착하게 되었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 깜박하고 평소 자신의 몸이나 자신의 머리라고 여기던 부분을
자신의 몸이나 머리라고  분별하지 않고 그냥 달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몸이나 머리가 떨어진 채 모임에 나갔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자신이 어떤 부분을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거나 여기지 않거나, 
이미 일정한 살가야견이 장착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장착되어진 잘못된 신견(살가야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면서 복장 상태를 살피면서 
오늘 자신의 모습이 조금 볼품없다고 판단한다면 
이 부분은 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형태로서
자신이 명료하게 분별을 행하는 과정에서 갖는 잘못된 신견에 해당한다. [분별기 신견]

그런데 이런 분별기 신견은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제 7 말나식에서 일으킨 잘못된 신견이 그 밑바탕이 되어 있기에 그렇게 된다. 
즉 평소 명료하게 스스로 자신에 대해 잘못 갖는 신견은 
위와 같은 기본 바탕에서 추가로 행하는 잘못된 신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일반적입장에서는 평소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판단은 대단히 옳고 적절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라고 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 입장에서 이 부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 실험을 해보자.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보려고 해보자. 
그러면 평소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그 부분만 변화해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책상이나 사물은 그대로다. 

또 자신의 손을 들어 벽을 만져보다가 자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자 .
이 경우도 벽과는 다른 차이를 느낀다. 

이것만 보아도 평소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적절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 사정을 지금까지 대단히 많이 반복해 살폈다. 
그리고 사실은 위와 같은 사정이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하기 힘들게 만드는 사정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사현실에서 그런 내용이 망집분별이라고 반복해 설명해도
위와 같은 현실사정들 때문에 그 망집을 제거하기 힘들다. 

그리고 거리에서 길을 걷더나 차를 몰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 자신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영희나 철수로 여기고 대하던 부분을 영희나 철수로 여기고 대하게끔 된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여기고 현실에 임하지 않으면 대단히 큰 사고를 바로 당하게 된다. 
따라서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런 분별을 잘못된 엉터리 망상분별이라고 하는가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또 그런 사정으로 무량겁 생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그 생사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근본적으로 위와 같은 망상분별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행하는 위와 같은 분별이 무엇이 잘못인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또 그런 바탕에서 수행해서 종국적으로는 생의 출발단계에서 일으키는 망집까지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수행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왜 앞과 같은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인가는 기존에 대단히 많이 반복했다.
따라서 가급적 관련된 링크만 찾아 연결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래부분에서는 적당한 부분에서 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좀 더 살피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정이 그러해서 평소 갖는 분별이 잘못된 분별이라고 할 때
이를 제거하면 이후 어떻게 현실에 임하라는 것인가의 문제들을 주로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평소 그런 신견을 제거한 상태와 제거하지 않은 상태는 어떤 차이가 있게 되는가를 
먼저 살피고자 한다. 


생사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생활할 때는
평소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대하며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임한다고 해서 
당장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와 같은 신견을 갖지 않고 임하면 그로 인해 대단히 큰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많다. 
이미 그 사정을 앞에서 보았다. 
거리를 다니거나 차를 몰고 다닐 때 자신이나 영희 철수를 그렇게 분별하지 않으면 
당장 사고를 당하기 쉽다. 

그래서 이런 현실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임하라는 요구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자동차사고를 당하거나,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거나, 등등만 생각해도 
그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고통은 단순히 이런 내용뿐만 아니라, 
이후 무량겁에 걸쳐 3악도에서 겪게 되는 생사고통을 다 포함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잘못된 망집을 제거하지 않으면 바로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 가운데 
이런 생사고통을 겪게 되므로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평소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임한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그로 인해 당장 위험에 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후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하는 근본원인이므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평소 별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잘 시정하지 않으면 
이후 직접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그 상황에서는 이 문제 해결은 더 힘들게 된다. 
그래서 아직 그런 생사고통을 겪기 이전 상황에서 
정확히 현실 사정을 잘 파악해서 이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vtyx1482

◈Lab value 불기2564/01/24/금/13:09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ivan-aivazovsky-ships-in-the-stormy-sea-sunrise-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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