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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상락아정과 불교의 가르침 본문
작성자 Prajna Citta :
● 불교의 근본 가르침의 내용은
영원하지 않음[무상]
현실의 고통[고]
영원불변한 실체가 없음[무아, 무자성]
열반 적정[수행목표상태]
실재를 얻지 못하고 공함[공]
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서 무상, 고, 무아, 공 등을 자주 말하게 되는 데
그러나 경전 가운데는 이와 정반대로 상,락,아,정의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언어로만 쉽게 보면, 한편에서는 상,락,아,정을 말하고 한편에서는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 공, 등을 말하니,
이들 간은 서로 통일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쪽이 부처님 경전이면 한쪽은 거짓된 경전인 것처럼 보이게도 된다.
그러나, 명백히 모순 반대 되는 듯한 이 표현은 사실은 같은 입장에서
설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원래 참된 진리를 밝히고자 하는 입장에서,
참된 실재의 입장에서 참된 실재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언어로는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정과 함께
언어로 이야기 한 내용에 대해 깊은 오해와 집착을 갖는다는 사정 때문이다.
실재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실재의 내용이 언어를 떠나서 언어로 가리킬 수 없는데
그러나 언어를 통하지 않으면 일체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언어를 빌리게 되는데,
그 언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와 이분법 사고체계에서 이를 듣는 이는
무슨 말을 해도 모두 자기의 언어와 자기의 이분법 체계로 해석해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있다라는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없다라고 말하면,
이제는 아주 없다라는 관념을 갖는다.
그 관념을 깨뜨려주기 위해 이제 있다라고 말하면
또 그 있다라는 관념으로 실재를 이해하려 한다.
앞에 말한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 공 등의 기본 진리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대해 알아듣는가. 하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알아듣는다.
누구나 같이 글자로서 대하고, 언어로서 관념으로서 그 의미를 추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실재 진짜는 무엇인가..
그렇게 글자로서 언어로서 관념으로써 의미를 얻어낼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렇게 이해하고 경전의 문구를 각 문구가 쓰인 맥락에서
이해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일반 논리학자의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 등을 의지하고
일반적인 언어가 갖는 의미를 가지고 이를 바탕하여
의미를 추구한다면,
온갖 혼동과 궤변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불보살이 공연히 사람들을 혼동 속에 밀어 넣어
헤매이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언설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참된 모습이 언어를 떠나는데,
그러나 사람들은 언어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망견을 쫒아 집착하고 살아가므로,
그 안에 들어가 다시 그 밖으로 벗어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언어를 빌려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정이 그 바탕에 있는 것이다.
경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은,
다른 경전에서 나오는 무상, 고, 무아, 무자성, 공 ..등의 입장과
그래서 모순되지도 않고 반대되지도 않고
오직 사람들이 갖는 집착과 분별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여래의 법인(法印)이요 모든 부처님의 법성(法城)인 법계(法界)는 참으로 깊고 깊어
항상하고 변하지 않으며
불가사의하고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니라.
FR : 대방등무상경 1. 대운초분 대중건도 ②
web: http://blog.paran.com/buddhism007/45724721
● 불교의 근본 가르침의 내용은
영원하지 않음[무상]
현실의 고통[고]
영원불변한 실체가 없음[무아, 무자성]
열반 적정[수행목표상태]
실재를 얻지 못하고 공함[공]
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서 무상, 고, 무아, 공 등을 자주 말하게 되는 데
그러나 경전 가운데는 이와 정반대로 상,락,아,정의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언어로만 쉽게 보면, 한편에서는 상,락,아,정을 말하고 한편에서는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 공, 등을 말하니,
이들 간은 서로 통일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쪽이 부처님 경전이면 한쪽은 거짓된 경전인 것처럼 보이게도 된다.
그러나, 명백히 모순 반대 되는 듯한 이 표현은 사실은 같은 입장에서
설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원래 참된 진리를 밝히고자 하는 입장에서,
참된 실재의 입장에서 참된 실재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언어로는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정과 함께
언어로 이야기 한 내용에 대해 깊은 오해와 집착을 갖는다는 사정 때문이다.
실재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실재의 내용이 언어를 떠나서 언어로 가리킬 수 없는데
그러나 언어를 통하지 않으면 일체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언어를 빌리게 되는데,
그 언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와 이분법 사고체계에서 이를 듣는 이는
무슨 말을 해도 모두 자기의 언어와 자기의 이분법 체계로 해석해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있다라는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없다라고 말하면,
이제는 아주 없다라는 관념을 갖는다.
그 관념을 깨뜨려주기 위해 이제 있다라고 말하면
또 그 있다라는 관념으로 실재를 이해하려 한다.
앞에 말한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 공 등의 기본 진리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대해 알아듣는가. 하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알아듣는다.
누구나 같이 글자로서 대하고, 언어로서 관념으로서 그 의미를 추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실재 진짜는 무엇인가..
그렇게 글자로서 언어로서 관념으로써 의미를 얻어낼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렇게 이해하고 경전의 문구를 각 문구가 쓰인 맥락에서
이해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일반 논리학자의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 등을 의지하고
일반적인 언어가 갖는 의미를 가지고 이를 바탕하여
의미를 추구한다면,
온갖 혼동과 궤변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불보살이 공연히 사람들을 혼동 속에 밀어 넣어
헤매이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언설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참된 모습이 언어를 떠나는데,
그러나 사람들은 언어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망견을 쫒아 집착하고 살아가므로,
그 안에 들어가 다시 그 밖으로 벗어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언어를 빌려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정이 그 바탕에 있는 것이다.
경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은,
다른 경전에서 나오는 무상, 고, 무아, 무자성, 공 ..등의 입장과
그래서 모순되지도 않고 반대되지도 않고
오직 사람들이 갖는 집착과 분별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여래의 법인(法印)이요 모든 부처님의 법성(法城)인 법계(法界)는 참으로 깊고 깊어
항상하고 변하지 않으며
불가사의하고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니라.
FR : 대방등무상경 1. 대운초분 대중건도 ②
일체지(一切智)는 항상 상주하는데
성품도 공하고 경계도 공하며
말도 또한 공한 까닭에
그 관함조차 없음에 예경하나이다.
web: http://blog.paran.com/buddhism007/4572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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