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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간 다툼과 수행 본문
sfxx--이웃간-다툼과-수행.txt.htx
sfxx--이웃간-다툼과-수행.txt
http://buddhism007.tistory.com/3559
● 이하 글은 단상_조각글 내용을 주제별로 '편집중'인 상태의 글입니다.
현재 가상 공포 모드로 논의 중인데
이론적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입장이 대부분이기에
앞으로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비극적인 내용을
놓고 본인이 고난탐정으로 임해
왜 현실에서 부처님이 제시한 이론을 채택해야 하는가를
설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거에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는
이웃간 살인사건들이다.
이 살인사건들은 사실은
아주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웃간의 시비란 알고보면 별 것이 아니다.
주차를 하는데 서로 시비를 벌였다거나
또는 공동부담액을 놓고 분담액을 놓고 정산하는 과정에서
시비를 벌였다거나
또는 이웃이 무슨 행사를 하는데
너무 소란을 피워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일어났다거나,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그런 과정 등에서 시비가 일어났다거나
그런 경우다.
병원장으로 계신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외국에서 의사로 성공한 친구분이
돈을 많이 벌어 사모님은 그 돈으로
임대업을 시작했는데
어떤 한 분이 임대료를 내지 않아서
사모님이 받으러 가서 재촉을 하니
그 외국이민자가 그냥 총을 꺼내서
그 사모님을
쏴버렸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의사 친구분도
공황상태가 되어서
머리가 약간 돈 상태로
귀국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인데
이런 일이 간혹 주변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경우는 그 분이 보복을 이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정신이 돈 상태로 귀환해
외관상은 단발 사건으로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 사소한 시비가 연쇄적으로
이웃간에 살인과 살인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보고된다.
살인 다음에 보복살인이 이웃간에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단지 어린 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아서
주의를 주었는데
그 학생이 집에서 도끼를 찾아 들고와
계속 그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동네에서 발견하고 살해했다거나
전화를 거는데 시끄럽게 했다거나
그런 식으로 사소한 시비가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피해자의 가족이
장례를 마치고
다시 그 가해자를 찾아가
또 보복 살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결국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개입해서
최종 가해자를 체포해서
감옥에 보내서
어느 정도 이 사태가 중단이 되는데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일이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는데
결국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비극으로 몰고가는 일이 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알고보면
동전 십원 짜리나
껌 하나에 불과한 문제인데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오랜 기간에
보복을 하는 문제로 증폭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원래 시비가 된 문제자체는 간단한데
그러나 시비를 다투는 과정에서
한 상대방이 왜 상대가 자신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고
반말을 자꾸 하는가.
이런 식으로 시비가 계속 가지를 쳐서
증폭되어 나아가기 쉬운 것이다.
과거에 본인이 거리를 걷다가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처음 부부간에 이혼문제를 놓고
다투다가 이후 2-30 년간을
계속 소송을 하면서
그 자신이 거꾸로 교도소에 수차례
상대방의 고발에 의해 들어가기도 하면서
나중에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
상대 배우자 뿐만아니라
자신의 자식들도 자신을 외면하는 가운데
계속 소송에 임하는 중이라는 사정을
알게 된 적이 있다.
당시 본인이 그 분에게
변호사 자격도 없이 불법적으로 상담을 하면서
불법-부처님법을 원칙적으로 잘 수행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이전 내력을 통해 예측해 보건대
설령 그 분이 소송에 이겨도
상대방에 의해 그 날이 장례식날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하고
그런 조언을 해주었던 것이다.
현재 본인은 이런 사건 수사들을 마치고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을 추적 중이다.
매 순간 사람을 죽이는 범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인이 거울을 보고 알아냈다.
몇 년전에는 옆 머리에 조금 그런 현상이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살해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살해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늙게 해 죽이는 방안을
누군가 본인에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지금 수사에 착수했다고
할 수 있다.
[...]
지금 나열한 사건들은
모두 성격이 다른 사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다 같은 성격의 사건들이다.
잘 생각해보면 모든 사건 사고는
이웃간이나 또는 아주 친한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원수는 모두 가까이 있다
이런 내용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원수관계를 형성하려면
일단 가까이 있어야 그런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실 가까이 있는 사이에서 모두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닌데
일단 원수가 되려면 가까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 분쟁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들끼리 그런 분쟁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보통인 것이어서
어느 나라치고 옆 나라와 사이가
역사상 사이가 원만하다고 볼 관계가
별로 없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은원관계가 겹쳐 있다고 할 것인데
그 가운데 원한 부분만 부각되어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한 관계에서는 일도 같이 하기 마련인데
대부분 나중에 보면 이것이
이인 삼각 경기를 하는 것처럼 되어서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하고
이해관계를 놓고 따지다가
일을 놓고 서로가 상대에게 기대한 만큼
나중에는 상대에 대해 원망을 갖고
원수관계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가장 가깝다고 할
부부관계나 부자관계 형제 자매 친척 친구
관계에서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늘날 재벌을 보면
그렇게 가족 안에서 다툼을 벌이지 않는
경우가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의문사 형태로 당사자들이
발견되는 것도 보고가 되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다 마찬가지 성격의 문제임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아주 단순하다.
그냥 계단 물 청소를 하고자 물을 사용하고
흘러 보냈는데 그 물이 도로를 흘러
그 주변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그것을 따진 후에 그것이 발단이 되어
사건사고가 일어난 사례도 보고가 되어 있고
겨울철에 계단에 물청소를 하고
그것이 얼어서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장애자가 된 다음
그 피해를 놓고 원수관계로 지내게 되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달라서 따지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선의로
이웃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임했다가
오히려 오해를 산다거나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원수관계가 된 사례도 보고 받고 있다.
여름철에 이웃집에서 창을 열어 두어
부부가 생활하므로
다 옆에서 들여다 보인다거나
또는 소리가 시끄러원서
선의에 바탕해 그런 문제를
주의해달라고 요청을 한 것 뿐인데
오히려 그 부부가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여서
시비를 일으켜
이웃이 원수관계가 되었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어떤 경우는 그 반대로
옆을 자꾸 들여다 보아
기분이 상해서 원수가 된 사례도 있지만,
이 경우는
그런 사태를 미리 막기 위해서
요청을 한 것 뿐인데도
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런가 하면
여하튼 그런 관계가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불쾌하게 만든다는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그 다음부터는 그에 바탕해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문제가 문제를 일으키고
가지를 쳐 나가게 마련이다.
이웃간에 아주 관계가 좋고 화목한
사례도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닌데
현실에서는 사실 그렇게 되기가
대단히 힘든 것이다.
대부분 다른 이가 공연히 자신의 일에
잔소리를 하거나 간섭을 하는 것을
싫어하고
서로 이해관계가 반대가 되어
손해가 엇갈리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게 되는 것이 힘든 사정이 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한 공동주택을 보았는데
옥상에서 물이 새어서
방수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 주택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다 의견이 다르고
비용부담에 협의가 되지 않아
방수조치 자체가 누더기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사정은 옥상 바로 밑에서 생활하는 이는
당장 물이 새서 문제가 되는데
그 아래층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상황이 아닌데
그것을 왜 같이 비용을 내서 부담해야 하는가.
그렇게 보기에 협조를 않는 것이고
또 비용을 분담하자고 해도
서로 책임의 크기나
분담액수를 놓고 불만을 갖기에
이런 협의를 몇번 하다보면
이웃간에 전쟁 상태가 되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공동주택에 관리자나 대표가 있는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낫다고 보지만,
그래도 그런 문제가 계속 보고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리기구나 없는 경우는
당사자가 자신에게 가장 급한 부분만
일부 땜질하듯 처리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다 제각각 그렇게 처리해서
옥상 전체가 누더기 처럼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방수처리를 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는 것을
현실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이
그런 입장이 그렇게 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가.
이 부분에서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런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다 혼자 비용을 부담해서
옥상 전체를 다 방수처리하고 지내겠다고
나설 자신은 없다고 본다.
현실의 모습이 대강 이렇다.
그 가운데 가장 첨예하고 비극적인
사례를 현실에서 보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일반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근본원인은
결국 자기 자신이 자신에 대해
갖는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그 원인을 다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본인을 게속 연쇄 살인하는 시도를
언급했는데
이것이 왜 같은 성격의 사건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 안에
입주해 있는 전도망상과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손님과의 분쟁문제이기에
같은 성격의 문제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자신이
그 손님을 자신 그 자체나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고
대단히 존중하고
집착하는데
정작 이 손님이 자신의 뜻에 맞추어주지 않고
제멋대로 병들고
제멋대로 늙고
그리고 제멋대로 어느날 죽어서
사라지기에
온갖 번뇌를 다 일으키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노래에서 자꾸 욕을 섞어서
노래하는데
사실 현실에서
바로 이 **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이후 나머지 모든 문제가 다 잘 해결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원래 수행자의 수행방안을 취한다면
이 모든 경우에 한쪽 당사자가
그 수행방안을 취해 임하므로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게 된다.
간단히 보면
신부님이 장뱔쟌을 상대하는데
장발쟌이 가져간 은식기를
자신이 그냥 선물한 것이라고 보고
나중에 찾아오면
왜 은 촛대는 안 가졌는가하고
덤으로 더 주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게 되겠는가만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임하게 되는 사정은
바로 제각기 그런 것에 대단히
집착을 갖고 기본적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껌에 불과한 것인데
당사자들은 그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고
그렇게 임하는 것이
바로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또 a + b => C
의 관계로 다 설명할 수 있다.
각 요소가 화합되어서
C 가 나타나는데
시시비비를 따지는 입장에서는
다 제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를 잡고
상대에게 주장하고 항변을 하면서
시비에 임한다는 것이
우선 하나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위 식을 놓고 본다면
a 를 빼고 넣고 해도 C 가 나타나지 않음을 보게 되고
b 를 빼고 넣고 해도 C 가 나타나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러니 C 가 좋은 것이라고 본다면
a 와 b 는 제각각 그것이 자신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우가 달라져서
그 C 가 지극하게 나쁜 것이라고 본다면
또 a 와 b 는 제각각 그것이
상대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책임을 상대에게 넘기려고 하는 가운데
시비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 시비가 언제 끝날 수 있다고 보는가하면
이 가운데
누구라도 하나가
전도망상을 벗어나고
수행에 임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것이 해결이 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각 경우에 반대로 임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것은
그 C 에 각 경우에 각기 반대로
대단히 그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렇게
집착을 갖고 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대부분
전철 철로에 떨어진 핸드폰이
그것을 주으려 했던 여고생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것처럼
무언가를 놓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것을 집착하고 대하는 이는
바로 그것이 그 자신을
고문대로 이끌고 죽음을 선사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정을
공통적으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핸드폰인데
다른 곳에서는 수도 요금이나 전기요금일 수 있고
다른 상황에서는 쓰레기 청소문제일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매 경우 구체적 내용은 달라지지만,
그 기본 성격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자기 자신이
매 순간 늙어가고
각 부분의 기능이 떨어지고
그리고 점차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은 자신의 마음 안에
들어온 손님인데
그것에 애착을 갖고나서 부터
그렇게 임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런 현상에 노출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애착을 갖는 것은
바로 a + b => C
의 관계로 나타난 그런 C 를 붙잡고 그렇게 임하므로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 식이
그 C 가 좋다고 보는 경우에는
그런 조건에 의해서
언젠가는 소멸되고 사라지고 없게 된다는 것도
같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사망 사건 사고와 같은
현실 문제들을 놓고
지극히 애통해 하는 당사자에게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 비극의 원인은
그런 C 를 놓고 좋다고 집착하고 사랑의 마음을 갖고
대한 그 상대방에게 그 책임이 있고
더 나아가 그런 전도망상을 바탕으로
그런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킨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것이
황당하게 여겨지게 되는가.
부처님 당시에서도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던 아이가
죽게 되어 정신이 돌게 된
부모가 있었는데
그것을 부처님에게 상담하자.
부처님이 그 원인이 그렇다고 제시하자.
부모가 이 말을 듣고 거꾸로 더 분노를 일으킨 다음
이 부처님을
왕에게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고
경전에 전해진다.
그 부모 생각에는
그 비극의 원인은
아이를 죽게 한
질병이나
또는 사건 사고나
그 사고를 일으킨 어떤 다른 이가 원인이라고
보는 것인데
엉뚱하게 그것을 그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니
그런 고발을 왕에게 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 그 당시
왕의 부인이 현명해서
그 사건에서
무엇을 넣고 빼고 함에 따라
정작 그 결과가 달라지는가를 설명해서
부처님이 무사하게 되었다고 경전에 전해지지만,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그것을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건 사고에서
예를 들어 망치나 총기 또는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어떤 질병 등이
어떤 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이해하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그것을 뺀다고 해도
그는 그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하면서
임하는 원수를 놓고 본다면
원수가 붙잡는 어떤 것이나 상대를 해치는
수단이고 무기가 된다고 보는 것이지
특별히 어떤 흉기만 그런 무기가 된다고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사건 사고의 원인을 살피다가
엉뚱하게 망치 하나를 찾아서
법정에 그것이 사건 사고를 일으킨 원인이라고
가져가게 되면 엉뚱한 것이 되듯
앞과 같이 문제를 살피는 것도
마찬가지로 엉뚱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 보다는
다시 한번 a + b => C 의 관계를
잘 살피고
이런 성격을 갖는 어떤 C 를 놓고
자신이 처음 망상분별을 갖고
집착을 가졌던 그 자체에
그 모든 비극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잘 이해하면 이제
어떻게 되는가하면
그런 것을 놓고 집착을 갖지 않게 되고
그래서 이후에는
훨씬 수준이 다른 높은 가치의 상태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이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늙어가고 각 신체기관의 기능이 나날이
떨어지고 해서
걱정인 경우가 많고
그것이 현재 본인의 상태인데
여기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그것을 놓고 걱정하는 그 자세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왜 그런 입장이라면
이미 20 년전 30 년전에
사라져 버린 자신을 놓고는
통곡을 하지 않고
장례절차와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이런 반대 질문을 통해서
그 문제가 갖는 성격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잘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 수많은 사건 사고가
다 같은 성격과 원인을 그 안에 갖고 있는
같은 문제임을 이렇게 살피고
이후 내용은 좀 더 쉬면서 살피기로 한다.
[...]
[...]
일정한 모습을 놓고
[...]
문제는 누구나 다 언젠가는 성불한다고
제시되지만,
그 중간 중간에 무간지옥에 묶여 끌려 들어가
고통을 받을 때
한 3 분만 고통을 지속적으로 받아도
나머지 것을 모두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
일반인데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로
아주 장구한 겁에 걸쳐서
그런 세계에 갇혀 지내기가 쉽다는 것이
바로 문제점이고
그래서 수행의 초점도 이 부분에
맞춰지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나 시작하면
그것은 무수한 인과관계와 관련해서
무수한 번뇌를 증폭시켜 만들어 내는데
그것을 전체적으로 혹(번뇌)- 업 - 고의 관계로
표현해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단계에서부터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그것이 잘 안되어서
고통을 직접 받게 되는 현장에서도
그것을 잘 해결하고 벗어나올 수 있도록
평소 다양한 수행방안을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고문이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될 때
어떻게 그것을 벗어나오는가에 대해서는
금강경에서 가장 원칙적인 방안을
소개해주고 있다 .
그것은 공 무상 무원무작 해탈문에서
일단 무상 해탈문을 사용하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제거하면
일단 그 상황에서 고통을 받더라도
그것을 평안히 참고 임할 수 있고
그래서 안인을 잘 성취할 수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 안 될 때는 어떻하는가.
보조적으로 다양한 수행방안을 생각할 수 있는데
알고보면 그것이 모두
다 기본적인 수행방안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다라니 삼매
정려 집중 심일경성
참회와 서원의 장착 집중
이런 것들이 다 그런 방안이다.
그런데 왜 그런가 하면
마음을 상에 접착시키지 않는 가운데
다라니나 삼매에 집중하면
그것이 또 한편으로는
그 나머지 것을 자연히 제거시켜주는
사마타 기능을 함께 발휘해주기 때문이다.
다라니를 집중해서 외운다고 하면
다라니는 다라니대로 효용을 발휘하지만,
그렇게 집중해 그것을 외우는 자체는
사마타 효과를 자연스럽게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마타 수행 측면이
번뇌와 고통을 제거해주는 기능은
드라마에 심취한 아주머니가
옆에서 밥이 타더라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현상
즉 드라마 삼매 집중 현상과
성격이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
어제 TV 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들이 인종차별을 받고
백인은 백인대로 출신국가별로
또 흑인은 흑인대로 출신부족별로
그리고 또 그 가운데 감옥에 갇힌 이들은 또
그 상태에서 대단히 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았다.
파워오브원 이런 영화였는데
주인공은 영어를 가르쳐서
이들 흑인이 권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흑인들이 각 부족별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그런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인종 부족 분리 정책과
통합 정책은
한 때 미국에서도 문제가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처럼
모든 거주인의 외형을 동일하게 만들지 않는 한
그런 차별심이 사라지기는 힘들고
그런 차별심에 바탕한 갈등도 또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결국 아상 타상의 망상분별심인 것인데
현실에서 화장실을 여니 바퀴벌레가 하나 보일 때
이 바퀴벌레가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과 같이 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수행은 결국 모든 생명을
차별없이 따뜻하게 대해야 하는 것으로
그런 상태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이기는 하다.
현실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힘들더라도
제 각각 생활영역을 확보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리고 자신과 모습이나 생각이 다르다고
함부로 해치고 괴롭히려는
심성을 갖지 않아야 하리라 본다.
영화에 그려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94 년 이전까지는 과거 미국이나
호주와 같이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만델라가 집권하여 상징적으로
흑백이 평등한 인권을 보장받는 상태가
되었다고 보고를 받은바 있다.
그 이후 흑인대통령이 계속 집권 중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 정세가 꼭 안정적이지는 않다고 또 보고가 된다.
최근 이름에서 '주마간산'이란 사자성어를 연상시키는
주마 대통령이
인도 출신 재벌가문의 인물의 영향을 받아 장관인선을 행하고
공금을 유용해서 개인 저택을 지었다는 등 다양한 부패 혐의로
시위를 통해 사임 압박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참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4/0200000000AKR20170404192800079.HTML?input=1195m
여하튼 어느 사회나 갈등이 있다고 할 것인데
그러나 서로 평화적으로 합리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고 서로 배려하여
잘 해결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지만,
서로가 다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고집을 피우고 임하다 보면
결국 시리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어느 곳에서나 곧바로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쉽다.
그래서 주의할 점이 많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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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해지자 여기저기에서
곤충들이 보이게 된다.
현미경 카메라를 가지고 이런 곤충을 사진찍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상당히 어렵다고 보게 된다.
일단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
곤충이 가만히 있어 주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진을 찍어서 올려 놓는 것을 보면
그런 분은 대단한 신공을 발휘해서
그런 사진을 찍은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은 작은 곤충을 놓고 생각하면
대단히 크고 힘도 세다고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작은 곤충 하나가 나타나면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연구실내 대부분 그런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가 가장 겁이 많다고 할 본인에게
그 문제 처리를 의뢰해서
본인이 그런 경우마다 방생조치를 담당하는데
또 이런 요구를 무시하고 마냥 방치하면
다른 연구원은 필살기를 동원해 필살모드로
곤충을 해치워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 뒷과정을 잘 모르기도 해서
아무 일도 없다고 보기에 그러기도 하고
또 곤충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니까
몸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는 등으로 답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가 문제라면 문제다.
그 경우 자신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이를 대할까를 놓고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그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만히 오랜 수행을 하지 않고서는
각 생명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집착을
제거하기 힘들다고 보아야 하고
그 정도는 하등 생물일수록
더 심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독감에 걸려 아파하는 상태에 있는데
어떤 다른 이가
그는 더 살아보았자 별 가치가 없기도 하고
고통만 겪으므로
상대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안락사를 시키면
그에게 감사하다고 여기기 보다는
그렇게 배려해준 상대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기 쉽다고
보게 된다.
과거에 복날에 축생을 잡아 죽이는데
피가 몸에 골고루 퍼져야 맛이 난다는 세간의 이야기때문에
그 축생을 나무에 묶어 놓고
죽을 때까지 때려서 죽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아주 나이 든 분은 시장터 같은 곳에서
그런 시범을 보여주는 광경도
본 경험이 있으리라 보는데
그런 상태에서 어떤 이가
그 축생이 가엾다고
그 상태의 축생을 놓고 안락사를 시켜주면
그 축생이 그 안락사를 시켜 준 이에게
고맙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가 하면
전혀 사정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오히려 그 축생이 누구에게 제일 깊은 원한을 갖는가하면
바로 그렇게 배려를 해서 안락사를 시켜준 상대에게
깊은 원한을 갖고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오히려 보고되는 것이다 .
그런 일을 한 이는 자신이 상대를 배려해서
좋은 뜻에서 그런 일을 한다고 자신은 생각하지만,
상대가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하등생물일수록 그처럼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집착을 갖지 않고 이를 대하는 것은
수행자가 상당히 많은 수행을 통해서
얻는 상태인 것이라고 오히려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이 생각과 균등하면 겨우 인간 상태가 되고
정이 생각보다 더 많으면 축생
정이 7 분 이상이면 아귀
정이 9 분이상이면 지옥행
이런 공식도 경전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잘 모르면
책임이 경감된다고 이해하는 것과 달리
부처님은
어리석음 즉 근본 무명이
모든 생사 고통을 전개시켜 나가는
가장 근본 원인이 된다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본인이 옥상 기지에서
곤충을 대하면서 상상을 해보게 되는데
매번 그렇게 장소를 옮길 때마다
본인보다 훨씬 몸도 크고
힘도 센 다른 곤충이나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그 때마다 도망치는데 매번 잡히거나
혼을 나는 경험을 한다면
얼마나 현실이 걱정스럽게 될 것인가.
그리고 가끔 자신의 동료가
거미와 같은 큰 형태의 곤충에게 붙잡혀서
거미줄에 묶여 있는데
구출할 도리도 없고
그런 모습을 계속 보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떻게 될까.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굳이 그렇지 않아도
작은 벌만 들어와 윙윙 거리고
연구실을 날라다녀도
상당히 공포스럽고
그리고 아무 무기도 없다고 보고
초식성이라고 알고 있지만,
검은 바퀴벌레가 갑자기 나타나도
대부분 경우
공포 상황에 들어가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듯
자신이 있는 곳에
뱀이 가득차 있다거나
이런 상황이 되면 더 끔직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현재 자신이 생태계에서
그 위치가 상당히 높다고 할 인간의 상태로 태어나
지금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감사를 느낄만한 일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
현실에서 자신과 자신의 것이라고 보는 내용을
실답지 않다고 관하고
집착을 제거해서
해탈을 얻고
생사를 초월해 벗어나서
청정한 니르바나를 얻고
무량행문의 수행을 닦아 나가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대하게 되는 각종 사건 사고의 내용은
수행자가 이런 현실을 대해
얼마나 그런 이론을 잘 실천해
수행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예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매번 잘 대해서 풀면
좋은데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또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본인의 글을 보다 보면
일정 부분에서 욱하는 심정을 느끼게 된다는
분들이 가끔 있다.
이론을 검토해보면
정작 현실에 도움이 안 되고
무언가 사리에 어긋난 괘변인 것 같은데
그 이론 내용을
글을 쓴 당사자부터 실험대상으로 삼아
실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연구방향을 바꿔서
앞으로는
골치가 아프게 되는
추상적인 이론적 설명보다는
현실에서 구체적인 당사자들이 겪는
각 사건 사고를 자세하게 묘사해 가는 가운데
그런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아가는 가운데
각 구체적 당사자가 겪게 되는
비극적인 내용들을 현실에서 발췌헤서
그런 구체적 문제를 놓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 구체적 문제를 검토하는 가운데
무여열반에 이르는 계기를 찾아 나가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도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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