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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

100%성공방안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8. 24. 00:08



®


sfxx--100성공방안.txt.htx

sfxx--100성공방안.txt

http://buddhism007.tistory.com/3472

● 이하 글은 단상_조각글 내용을 주제별로 '편집중'인 상태의 글입니다.



>>>

일찍이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갖는 욕망은 무한한데 

그것을 성취시켜줄 수단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삶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것을 경제학자들이 일찍이 제시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삶에서 뜻대로 성취하고 만족을 누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수행자도 이것을 동의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유감스럽게도 수행자는 그렇게 현실을 

보지 않는다. 


그 반대로 보는 것이다. 


[...]

재벌 집안이 많은데 
이 재벌집안들이 하나같이 
생계비가 부족해서 형제나 부자간에 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재산이 많아서 
그 재산을 가지고 빈번하게 소송 사건에 연루되어 
보고가 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이 재산이 많다고 해결될 성격의 문제로 보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재산이 천만원 정도인 
부모 자매 형제 자식간은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하면 
그 역시 그렇지 않다고 보고가 된다. 


이 경우는 
또 한편 생계도 잘 해결되지 않아서 그것도 문제인 가운데 
누가 그 작은 돈을 차지할 것인가도 다시 문제여서 
또 한 천만원 내지 몇 억 정도를 놓고 매 순간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다는 보고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분명 돈이 문제이기는 한데 
돈만 가지고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현실 사정이 냉정하게 이렇기에 
경제학자가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여 


재화는 희소한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에 
경제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은 이 기본 조건이 해결된다고 보기 힘들므로 
아무리 노력해도 기본적으로 해결되기 힘들다는 
우울한 보고를 학계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결론이 이미 이러니 이런 학문의 세부적인 내용을 
붙잡고 연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삶에서 성공을 얻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전제에서 출발하면 안 된다고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이 문장과 반대 상황을 일단 문장으로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앞에 일단 그 실질이 반대인 경우를 
표현하는 방식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일단 욕망이 무한하더라도 
실현시킬 방편과 수단이 무량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욕망이 1 개인데 
그 실현시킬 수단이 1 개 있다. 이런 내용과 
수학적으로 엇비슷한 상태를 나타낸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안은 
실현시킬 방편과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욕망이 무한하지 않으면 
이 경우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제시하게 될 것이다. 


또? 


여하튼 앞 전제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고 또 많아도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고 보고 
그래서 그런 사례를 각 재벌 집안에서 사례로 
찾아보게 되는 반면 


뒤의 경우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례를 또 무한히 
나열하게 되는 사정이 있음을 여기서 
기본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꿈이 뜻대로 성취될 수 있는가에 대한 
비밀의 절반은 앞과 같은 내용으로 먼저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길항(拮抗)이란 어려운 한자어는 
조이고 + 대립해 맞서 상대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여하튼 이렇게 서로 상반된 내용이 서로 작용해서 
결과적으로는 균형을 이루고 
생체에 전체적으로 각 상황마다 적절한 상태로 
임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본다. 








여하튼 이것이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보정안정정반방원역지라는 시구가 
그 자체로 나타내는 의미와도 조금 관련이 된다고 보게 된다. 


물론 보정안정...이런 구절은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방편 원 력 지 라는 바라밀다 
수행항목의 첫글자를 떼어 붙인 것인데 


그러나 합쳐 놓으니 
또 다른 의미도 갖는 것처럼 시감상하게 된다는 측면을 말한다. 


헤겔이 관념적으로 어떤 새로운 좋은 내용이 나타나는 과정은 


A 가 갖는 부작용을 해결한 b 
B 가 또 갖는 문제를 해결한 C 
이런 식으로 무한히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전개된다는 알쏭달쏭한 주장을 제시하였다고 하는데 


정과 반은 그래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과정에서 
각각이 갖는 장점만 취하고 단점만 제거하고 
결합시켜 놓을 수 있으면 
더 좋다고 보게 되는 것이 상식아닌가. 


그래서 정과 반의 관계가 서로 문제가 될 때 
수행자는 이를 보정하고 안정시키는 방안을 취하는 가운데 
널리 각이 예리하게 그리고 두루두루 
즉 모나게 그리고 둥글게 
각 반대측의 입장들과 입장을 바꾸어 놓고 
역지사지하여 헤아려서 문제를 접근하면 
문제가 잘 해결된다는 내용을 


위 구절이 제시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억지 지록위마형 시감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럴듯하다고 보게 된다. 




원래 창과 방패가 계속 서로 입장을 고집하면서 
다툼을 벌이면 그것은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정반의 관계이고 
이것이 모든 현실에서의 문제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각 입장에서는 그 각 입장에서 그런 방안을 
취할 도리 빆에 없다고 보면서 
고집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자가 어떻게 접근하면 
이것이 모두 다 잘 해결되고 성취되는가 
이것이 현실에서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의미인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길항작용의 생체작용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야 되는데 


현실에서 극 산성도 문제이고 
극 알카리 염기성 물질도 문제다. 


사람이 염산을 마시면 사망이고 
양잿물을 마셔도 사망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내용을 대하면서 
본인으로부터 좋은 독극물을 제공받았다고 
꿈이 성취될 방편을 알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이런 독극물도 다 일정한 기능을 갖고 있어서 
제조되고 공급되는 측면이 있는 것인데 
다만 구체적 경우를 달리해서 사용하면 
그것이 다 독이 된다는 것이어서 


결국은 모든 방편이 선악무기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을 또 재확인하게 하는 내용이 된다. 


염산과 양잿물이 독이라고 해서 
세상에서 일체 이것을 공급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상은 더 문제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어떡해야 된다는 것인가. 
모든 선악무기의 성격을 갖는 방편을 취급할 때는 
좋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자가 방편 수행을 닦는 과정에서는 
그것을 다라니와 삼매를 통해 처음 진입하고 
그것을 마치고 나올 때도 
역시 그 내용을 다라니와 삼매로 정리 보관해서 
오로지 세상에는 다리니와 삼매의 명칭만 
제공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

삶에서 100 % 성공하는 방안은 
불확실한 if 를 제거하고 
불확실한 if 에 자신의 뜻의 성패를 의존해 놓지 않고 
그 반대로 하는것이 일단 기본이다. 


그래서 삶에서 100 % 성공하는 방안의 
기본 원칙이 그렇게 제시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하나의 내용으로 
100 % 성공하는 방안만 제시되고 있지,. 
다른 방안들 
즉 100 % 실패하는 방안  
또는 50 % 성공하고 50 % 실패하는 방안 
또는 33 % 성공하고 67 % 실패하는 방안 
등등은 살피지 않는다. 


그래서 
수술시 의사가 하는 표현으로  
99 % 성공확률인데 1 %는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경우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의사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술은 99% 성공확률인데 
그러나 실패할 가능성 그 1 %가 
이번에 수술하게 될 당신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999 명 수술해서 다 성공했고 
당신이 이제 1000 번째인데 
어떻게 1000 번 다 성공하겠는가.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하면서 
수술 여부를 물어보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

여하튼 위와 같은 형태로 임하면 
대단히 삶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 
일단 삶에서 if를 제거하는 문제와 관련된다고 본다. 


대부분 악마가 카드게임을 해서 
상대가 집착하는 것을 모두 한 번에 다 빼앗아가는 가는 수법은 
사실은 99 % 의 확률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mun 님의 세트 이론과도 관련된다. 


세상의 사깃꾼과 거짓말장이가 광범위하게 활동하는데 
이들이 처음부터 매번 사기와 거짓말을 행하면 
이 사기와 거짓말에 현혹될 이가 세상에 그렇게 많겠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 상대가 100 번의 거래에서 
99 번까지 거의 정확한 신뢰를 갖게 행한다는 점에서 
대형 사기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왜 그럴까. 


세상에서 유명한 사기유형은 
폰지 사기 이런 형태를 제시하는데 
그 사깃꾼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챙기고 
도망가기 직전까지는 
투자자의 원금을 가지고 정확하게 매번 
높은 수익을 돌려 주는 것처럼 임한다는 점이다. 


악마가 등장하는 포커판에서 악마가 행하는 
방식도 이것이다. 


사기 도박을 행하는 이들이 
처음부터 한 번에 사기를 행해서 
상대의 돈을 다 가져갈 것 같지만,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상대가 사기를 안 당하게 
된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판돈이 이리 저리 오가는 가운데 
어느 순간 
상대방들이 각기 
에이스 투페어 
풀하우스 
포카드 이런 것들 다 쥐게 한 상태에서 
자신은 마지막에 로이얄스테레이트플러쉬 
이런 것을 보여주고 
다 가져가면서 
덤으로 한번 더 시합을 제의하는 것이다. 


상대의 아내와 생명과 기타 ...등등을 
걸고 또 한번 해보자. 
이렇게 제의하는데 
보통 이 최후의 한판에서도 
또 패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악마가 게임을 임할 때 
100 번 게임을 했는데 
한 7 번 정도 이겼는데도 
결과는 그렇게 되는 과정이라고 
보통 보는 것이다. 


희대의 사기꾼이 현실에 활동할 때 
딱 1 번 약속을 어기고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그 1 번이 all 이다 
이런 내용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어설픈 if 논의나 
어설픈 귀납추론식을 가지고 
이런 시합에 임하면 
축구 시합이라도 이길 수 있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축구가 그렇다면 
다른 분야는 또 사정이 달라질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임하면 안 된다고 
수학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로또의 사례를 예로 자꾸 드는 것이다. 


현실에서 800 만장을 다 숫자조합을 달리해서 
구매해도 전체 구매한 것은 아니라고 하자. 


그렇게 구매해서 
7999999 장을 다 확인해보니 
1 등 당첨번호가 없다고 하자. 


귀납추론가에게 이 내용을 제시하고 
나머지 1 장은 어떻겠는가라고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추론하겠는가. 


맞겠는가. 틀리겠는가. 


대강, 개연적으로 
이렇게 하면서 이 답을 제시하려는 입장은 
이런 논의에 참여시키면 안 된다고 
일단 제시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앞에 든 사례가 
다 이런 경우를 경고하기 위한 사례들인 것이다. 




개인의 도박이나 투자가 그렇다고 하고 
매 시합에 임하는 선수나 감독의 상황이 그렇다고 할 때 


국가를 놓고 이 문제를 적용하면
어떤 국가지도자가 
전쟁이나 기근 에너지 관련 문제를 놓고 
이렇게 임하면 대단히 곤란하다고 
기본적으로 그 문제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전쟁을 해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전쟁을 해보자고 나서는데 


여기서 딱 7 명이 사망하고 승리하는데 
그것이 그 결정을 한 자신과 
그가 제일 애착하는 가족들만 그렇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경우에도 최소의 피해로 
그런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되므로 
그런 결정을 그렇게 하겠는가를 
일단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




개미투자자자 현실에서 

매 경우 if 추론을 행하면서 

도박행위자처럼 투자에 임하면 

바로 그렇게 비록 성공을 해도 

실패가 되는 경우가 된다. 



반대로 개미란 단어를 

모두가 다 각 입장에서 제각각 아름답고 선하고 

끝내 다 성불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가운데 


투자에서 if 논의를 제거해버리고 

어느 극과 극의 상태에서든 

그 투자자가 그 상태에서 

목표를 성취해도 그것으로 하고자 한 더 좋은 뜻 

실패하면 당연히 실패한 상태에서 하고자 한 더 좋은 뜻을 붙잡고 

현실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하게 되면 


바로 그 경우 모두가 다 아름다운 상태로서 

투자를 잘 하여 원하는 대박도 거두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발생하리라고 

대부분 보고하게 되는 문제도 하나도 없이 더 잘하고 


심지어 객관적으로 완전히 실패한 투자라고 

평가가 된 상태에서마저도 

정작 더 좋은 결과를 성취하는 

경우가 된다고 

개미투자자의 생존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이것을 제시했는데 


그러나 지금 수행을 살피는 것은 

현실에서 수많은 문제에 

매번 도박성향을 갖고 

자신에게 유리하고 

희망하는 내용만 집착해 고집을 갖고 

그것이 마치 도박장의 현실이나 되는 것처럼 

매 도박장에 도박사의 입장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경우의 

문제를 또 살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받는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해변에 이미 수많은 나뭇조각이 떠내려오고 

징후가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조대왕이 if 논의에 들어간 다음 

자신의 희망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엉뚱한 내용을 붙잡고 

현실에 임했다는 것이다. 


그 뒤 현실이 어떻게 지옥이 될 수 있는가를 

전 백성과 함께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당시 작전참무부의 수뇌는 

이를 생생한 보고서로 후세에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문제를 보게 되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고 

또 예고편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해결 방안은 매 경우 잘 모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답답하지 않은가. 


그것이 if 논의의 함정이고 

사기꾼이 대형 사기를 일으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가 이런 방안을 

삶의 문제의 해결방안이라고 보고 


99 % 성공률을 표방하는 의사에게 

자신의 뇌 수술을 맡기겠는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한다는 것도 아닌데 

수행자가 제시하는 방안이란 


어느 경우나 성공이 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실패도 성공이고 

성공도 성공하는 성공의 방안을 놓고 

성공의 비밀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하려는 

입장인 것이다. 


이미 그 대강이 다 제시되었는데 

그것이 유무 논의에서 바탕해서 

제시되는 것으로서 

100 % 성공이 확실한 것으로서 

약간 신뢰가 없다고 보는 본인보다는 

부처님께서 그 사정을 그렇게 제시하는 

방안인 것이기도 한 것이다. 


[...]


삶에서 성공을 꾀하며 추구하는 가운데 

매 경우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삶의 애환을 겪는 사례는 

무량하게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수행자가 

삶에서 제거하거자 하는 생사고통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아리고 쓰린 고통은 아라리요라고 좋음을 환호하던 그 순간의 내용이 

그것을 만들어 내었다고 시감상하게되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낳네 

라는 민요가 전하는 메세지라고 

시감상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모든 문제에서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각 경우의 if 를 제거하고 

어느 경우나 성공하는 방안을 취해서 

임하는 수행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삶의 고통을 일으키는 이런 유형의 문제가 

무량하므로 어떤 사례를 놓고 살펴도 

결론이 같다고 보는데 


그 가운데 이미 앞에서 돈의 문제를 놓고 

성공의 문제를 살폈으니 

이와 관련된 사례를 또 하나 제시하고 

이 문제를 살피기로 한다. 


오래 전 사건의 내용인데 

친한 이들끼리 심심해서 

10 원짜리 고스톱게임을 했는데 

그러다가 시비가 일어나 

상대를 흉기를 가지고 살해한 사건이 보고가 되어 있다. 


10 원짜리 고스톱게임을 하다가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돈으로 바꾸지도 못하는 아이템을 놓고도 

그런 사건을 일으키는 사례가 수없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여하튼 위 사건은 그래서 보고가 되었고 

또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10 원을 걸고 한 고스톱게임에서 

만일 돈 액수가 문제였다면 

재벌들이 거액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경우와는 달리 

그 금액이 대단히 적으므로 

그런 문제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떤 사건에서 정말 어떤 것이 있어서 

문제라고 본다면 

그 상황을 놓고 

그것을 빼고 넣고를 반복해보면서 

시감상을 먼저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정말 그것이 문제라면 

그런 것이 없게 된 경우는 

그 문제가 없게 된다고 보는가. 

이것을 먼저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에 그렇다면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것을 제거해도 

여전히 문제가 똑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면 

비록 그것이 있어서 문제라고 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도 

이를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위 10 원짜리 고스톱 살인 사건이 

그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재벌이 몇천억 몇조원을 두고 

형제들끼리 서로 스파이를 붙여서 

감시하고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고 

이런 사례가 

정말 그 돈 때문에 그런 것인가를 

또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반대로 10 원 고스톱 게임을 하다 

살인을 행한 상황에서 

그 모두에게 천만원씩 다 제공하면 

이제 그런 사건이 없게 되는가 하는 문제와 

성격이 같은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면 

그 경우에 그런 10 원이나 십조원이 문제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그것을 해결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그러나 어느 경우나 

어떤 내용을 넣고 빼고 하면 

그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무언가를 찾아서 

그것을 해결하면 

이 경우는 

그 어느 경우나 처음에 문제로 본 것이 있거나 없거나 

다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

수행자가 여기서 제시하고자 하는 
100 % 성공을 거두는 방안은 
현실에서 어떻게 임해도 다 그렇다고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본 사정이 그런데도 
그러나 매 경우 고통을 받고 
불쾌함을 겪게 하면서 
현실에 임하게 만드는 일정한 모드가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배제하고 
그런 100 % 성공을 거두는 방향을 
매 순간 취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서 행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수행의 의미인 것이다. 


수행이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심지어 아무 것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는 기존에 행하던 모드를 계속 고집하고 취해도 되고 
더 나아가 대부분 나쁘다고 상식적으로 보는 
악행을 극단적으로 행해도 무방하다고 
무소유 불가득 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무소유 불가득 공은 
그것을 관하거나 관하지 않거나 본래 그런 것이지만, 
수행자는 그것을 잘 관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고 
또 그 바탕에서 
그런 사정 때문에 
아무 내용이나 아무렇게 행해도 좋다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자는 
그 사실을 관하고 집착을 제거한 가운데 
일부로 그에 상응하게 무소득[얻을 것이 없음]을 방편으로 취해서 
굳이 현실에서 이러이러한 수행을 
정진해나가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100 % 성공하는 방안 
실패해도 성공이고 
성공해도 성공인 수행방안과 


현실에서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성공해도 실패이고 
실패하면 정말 실패인 
그런 방안 가운데 
앞의 내용을 취해야 하고 
뒤의 내용은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입장인 것이다. 


간혹 방안을 제시하다보면 
어느 부분에서 혼동을 일으켰는지 모르지만, 
엉뚱한 결론을 붙잡고 나아가는 경우가 많기에 
이 점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

어떤 살인사건에서 
가해자가 권총을 가지고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건에서 


어떤 이가 이 사건의 핵심은 권총이라고 보고 
권총만 그 현장에 없었으면 
그런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권총을 지목하고 
권총을 모두 제거하자고 주장하면 
이 내용이 맞는 내용인가를 살펴보자. 


일견 좁고 짧고 얕게 보면 
그 현장의 그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또 보게 된다는 점이다.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면 
어떤 핵심요소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가해자는 
권총이 있으면 권총으로 
권총이 없으면 
때로는 치솔로 
때로는 톱으로 
때로는 단순한 발이나 주먹 가격으로 
때로는 이쑤시개로 
때로는 그냥 의자나 책상으로 
때로는 그냥 위험에 빠진 상태에서 못 본체 외면하는 활동으로 
때로는 케익 선물로 
때로는 사탕으로 
때로는 .....




이런 식으로 무량한 수단과 방편을 
다 그처럼 상대를 해치는 수단과 방편으로 
다 그 실질을 바꾸어서 대해서 
끝내 상대를 해치우고 고통을 주려고 
임하게 된다는 사정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반대로 
그 무언가의 핵심이 있고 없게 되면 
그것이 또 반대가 된다는 것을 
여기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각 경우마다 
어떤 이가 그에 사용된 치솔 톱 이런 것을 
다 지목하고 제거해도 
핵심이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임도 
같이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각 상황에서 
그렇게 사용되는 각종 방편도 
일일히 다 문제라고 보지만,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과 함께 
핵심적인 문제도 잘 해결해야만 
이 문제가 근원적으로 잘 해결됨을 강조해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

그래서 수행자는 표준적인 수행방안을 취해서 
어느 경우나 100 % 성공하는 
방안을 수행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이지 
어느 특정한 한 상황에 
어느 한 특정한 당사자간에서 
임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임시미봉책을 
붙들고 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보정안정정반방원역지라는 
그 원칙적 해결방안에는 
자체적으로 
각 경우마다 그렇게 특수한 해결방안을 
도출해서 적용하는 원칙 자체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수행자가 잘 수행해서 
현실의 무량한 문제에서 
100 % 성공을 얻도록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와 관련해 
어떤 원리가 그런 것인가를 
또 살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살인을 행하는 가해자를 놓고 
그 상황을 살폈는데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를 향해 
속도를 내어 나아가는 열차에 올라탄 입장에서는 
모든 방편을 놓고 
그렇게 임한다는 공통점을 우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입장에서 
무언가가 그 자신에게 당장 이런 측면에서 좋음을 준다고 여기고 
그것을 취하고자 행하는 그 모든 방편은 
다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제시하고 
일단 그런 것 일체를 제거하는 수행을 
무원무작 삼매 해탈문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단 이것부터가 되지 않으면 
위 수송 열차에서 내릴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 그렇게 무원무작삼매 해탈문을 통해 
비상탈출을 어떤 이가 했다면 
그 상태에서 


다시 보리심을 일으키고 서원을 장착해서 
대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앞에서 자신은 탈출구를 통해 내렸으나 
다른 생명들은 여전히 그 안에 올라타고 
질주해 나아가는 
그 열차의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또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야 한다고 
그 사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성격이 이런 것이다. 


처음 자신이 
치솔 하나가 필요한 문제였는데 


뒤의 경우는 
자신은 치솔이 필요없다고 보면서도 
그러나 그런 취지 때문에 
이제 치솔이 하나가 아니고 
각 생명의 수에 비레헤서 
무량한 치솔을 자신이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이 문제를 보고 대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됨을 우선 의미한다. 


핸드폰이나 하드디스크와 사정이 비슷하다. 


원래 각 개인은 1 개나 많아야 
한 5 개 정도가 최고다. 
그 이상 많으면 다 짐인 것이다. 


그런데 무량행문에 임하게 된 수행자는 
처음 필요하다고 본 그런 것도 
필요없다고 보면서도 
그러나 생명을 모두 이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자비심을 갖고 
상황을 보니 
이제는 그것이 각기 수억 수조개가 
필요함음 보고 
그 해결을 구해 나선다는 의미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도 사실은 본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이들이 그 열차에서 
내려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해탈하고 
청정한 니르바나를 얻게 하기 위해 
필요한 방편이기에 
그런 것 뿐이고 
그 자체는 목표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그것을 대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어서 
어려운 문제인데 


그런데 무원무작 삼매에서 대하는 희망이나 
무량행문에서 대하는 희망 자체의 
기본 성격이나 외관은 비슷해 보이는데도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하나는 성공해도 실패고 실패는 당연히 실패인 내용이 되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반대가 된다고 그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

그래서 다음 문제를 살피기로 하자. 


어떤 이가 레고블록으로 
어떤 작품을 수십년의 노력을 기울여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두 작품이 부품 형태까지 다 똑같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경우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 완성하자 마자, 
그것을 대하는 이들이 여하튼 
어떤 방편이던지 사용해서 
그것을 부수려고 다 결의를 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작품이나 부품까지 다 같은데 
어떤 경우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이것이 왜 그런가. 


이 문제에서 힌트를 미리 보았겠지만, 
그 작품의 형태나 부품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미 앞에서 살폈는데 
지옥이나 아귀 축생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입장은 


그가 대하는 것이 
무엇이던 다 그것을 놓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고 


그가 대한 어떤 내용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한 경우에 
어떤 다른 이와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할 때 
그것만 놓고 보면 그것만 문제여서 
그 문제만 잘 해결하면 된다고 보기 쉽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그것이 해결되어도 문제이고 
해결되지 않으면 그 문제까지 문제이라고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각 경우에 
무엇이 하나 해결되면 
그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해결된 것이고 
해결되면 당연히 
그것까지 문제가 잘 해결된 것이라고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

여기에는 수행자가 무량행문에 들기전 
각 불국토를 방문하기 위해 비자를 발급받고 
또 현재 머무르는 사바세계에서는 
사바세계대로 여행 허가증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다고 보게 된다. 




현실에서 과학자에게 물어보면 
우리가 관측하는 천체가 다 어느 부분을 
기준으로 잡고 돌아가는지에 대해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 영역을 벗어나서 여행을 하려면 
이 부분에서 심사관의 심사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일단 보게 된다. 


아무리 나사 당국이 나사가 상징하듯 
돌고 돌아서 우주 밖을 나가보려고 해도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괴기 공상 우주 영화에서 보여주는 
난제를 다 만나게 된다. 


에어리언 원 투 쓰리 이런 영화가 소개하는 내용은 
에어리언이 문제가 있고 
지구인은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제시하지만,
  
사실은 그 에어리언이 보는 지구인의 문제가 
바로 지구인이 에어리언이 갖고 있다고 보는 에어리언의 문제와 
성격이 완전히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바세계에서는 사바세계대로 여행허가증이 발급이 안 되고 
외계 불국토에서는 외계 불국토 대로 
입국허가 즉 비자가 발급이 안 되는 것이다. 




왜 그러겠는가. 


그 문제는 단순히 육지에 사는 이가 
문어를 하나 대하는 과정에서 
그 주체가 어떻게 이 문어를 대하는가에서부터 
그 문제가 공통된다고 보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 문제는 그가 파리나 바퀴벌레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생쥐나 고양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닭이나 오리를 대할 때도 그 문제가 마찬가지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에어리언을 만나면 
에어리언이 이 경우는 
닭이나 오리처럼 사람을 대해주지 않고 
사람이 닭이나 오리를 대할 때처럼 
그 에어리언이 사람을 대하기에 
그것이 지구인에게는 문제가 된다고 하면서 


소란을 떨며 시나리오를 그렇게 제시해서 
영화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사정이 어떤가. 
그렇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두 측면이 있다. 




각기 입장이 대립될 때 
각기 얻고자 하는 내용에 
실리와 명분이라는 측면이 있다. 


조금 쉽게 표현하면 
생존과 즐거운 맛 이 두 내용을  
다 얻어야 한다고 보게 된다. 


닭이나 오리를 상대하는 축사 경영인의 
입장에서도 이 명분과 실리가 다 문제되고 


그 닭이나 오리도 말은 못해도 
역시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서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잘 근본적으로 해결한다고 
수행방안을 제시하면 
그 어느 입장이나 다 같이 
자신이 상대의 봉인가라고 힐난을 하게 마련이다. 


왜 두 측면 다 자신이 그렇게 입장을 취할 것을 
제시하는 수행방안을 취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서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것을 받아들여 취해도 
결국 사바세계에서 여행허가증을 발급할 단계가 되면 
다시 하나를 더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북두칠성이라는 표현에서 제시되는 
심사의 한 내용인 것이다. 


무엇인가. 


외계인이 자신은 정상이고 표준이라고 보고 
임하는 현실에 지구인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 외계인의 정상이고 표준적인 모습이나 생활상을 가지고 
놀라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반응하고 
공포에 질리면 당연히 안 된다고 제시하는 하나의 측면이다. 


그런데 그것이 평소에 아무 훈련없이 
해결될 수 있는가. 


즉 수행자가 
일체가 다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 하나만 
이해하고 임하여 
그런 상태가 곧바로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지족선사는 지족선사대로 
원효대사나 의상대사는 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대로 


보통의 상황에서는 수행의 원칙에 따라 잘 행하는데 
정작 황진이가 앞에 나타나 교태를 부리는 상황이 된다거나 
아리따운 임산부가 갑자기 해산을 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또는 늙고 전염성 강한 질병에 걸린듯한 추한 할머니가 
남루한 옷을 입고 방문을 하려 한다거나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되면 
다 심사에서 낙방하는 결과를 보여주기에 
선배 수행자들이 여행허가증 발급이나 
방문을 원하는 불국토에 비자 청구나 
그 심사자체를 보류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이는 간단히 말하면 
수행자가 자신이 이해하는 이론대로 
일체에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을 
현실에서도 잘 수행하여서 


세가지 해탈문의 내용을 잘 매스터해서 
정말 극도로 공포스럽고 고통스런 상황도 
평안히 잘 안인을 성취할 수 있는가가 
그 관건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봉타래 수행자가 타 불국토의 봉 부처님을 방문하려면 
이 심사를 무사하게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단계가 아니면 
불국토 방문도 연기하면 되고 
연기하면 또 그런 안인과 무생법인 성취와 
불퇴전위에 있는가 여부를 심사받지 않아도 
일단은 무방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또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사전에 스스로 심사를 해서 
자신이 무생법인을 증득해서 
자신이 어떤 경우던지 평안하게 안인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론만 가지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니므로 


아무리 보리심을 일으키고 서원을 장착하고 
오래 수행을 했더라도 
예를 들어 문수보살님과 같은 경우라고 해도 
이런 단계에 이르는 것은 
장구한 수행을 성취해야 가능하다고 
경전에서 제시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수준이 달라지고 
무량방편도 무상 지급받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 사정이 그렇지 못하면 
단 하나의 방편도 
그 수행자에게는 직접 제공하기는 곤란한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현실에서 예를 들어 보자. 


라이터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불을 켜는 라이터 하나의 사용여부가 
인간과 인간 외의 다른 수많은 동물을 구분짓는 
경계점이기도 한 것이다. 


즉, 라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란, 
원시시대라면  한 부족의 추장도 될 자격인것이기도 하고, 
뭇 동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확고하게 지킬 수 있다고 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든 사례에서 
살인을 행하려는 가해자에게는 
권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고 
톱도 아니고 심지어 케익이나 사탕을 다 제거해도 
이 라이터를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이 다 쓸모없는 노력이 된다고도 보게 된다.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이 사람이 길가를 지나다가다 
이 라이터를 보고 줍고 
그리고 다른 것을 또 덧붙여 사용하면 
곧바로 엄청난 사고를 또 그 피해자에게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그것만 따로 보면 
별 문제가 아닌데 
이상하게 이 주체를 통해 그것들이 결합되면 
그런 생사고통을 증폭해 만들어 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하는가. 


이 라이터를 제공해줄 수 있는가. 
그런데 그 라이터만 제공하지 않으면 
또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있는가. 


사정이 어려운 것은 
이런 입장에서는 설령 라이터가 아니어도 
모래가 있으면 모래 
조약돌이 있으면 조약돌 
바위가 있으면 바위 


여하튼 그 일체의 것이 
다 그렇게 문제가 된다고 볼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오랜 수행을 통해서 
왠만한 것은 다 해결되고 
황진이도 해결되고 
임산부나 젖몸살을 앓는 아주머니 치료도 해결되고 
다 해결이 되어도 


끝내 어느 부분에서 
안인 성취가 이뤄지지 못하면 
결국은 마찬가지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집착의 근본이 되는 
자신과 자신의 생명 수명 이런 것을 놓고 
엉터리 분별을 행하면서 
그에 따라 감각현실에서 상을 취하고 집착을 일으켜 
임하는 상태에서는 
결국 여행허가증을 발급할 도리도 없게 된다. 


현실에서 지네나 뱀 하나만 몸에 붙어도 
기겁을 하는 수행자가 
황진이의 교태를 극복했다고 
외계 여행이 가능하겠는가.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부분이 해결되면 
이 모든 것이 또 해결된다고 보게 되는가하면 
바로 금강경의 가리왕의 심사 과정이 해결되면 
해결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원리가 그렇다. 


그래서 이것이 
수행자가 무량한 기간 무량한 방편을 
무상 취득하고 
중생제도와 불국토 장엄과 성불의 서원을 
성취하기 위한 중요한 고비점이 된다고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기본적으로 유무논의에서 세 측면의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즉, 우선 현실의 내용을 붙잡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고 
또 그것은 실재도 아니고 
실재는 실재대로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문제되는 일체와 그 생멸을 얻을 수 없는 
무소유 불가득 공한 측면을 제시해서 
공  삼매해탈문을 먼저 제공하게 된다. 




그 다음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내용대로 
그것이 실상이 아님과 함께 
다시 이에 대해 일으키게 되는 생각 분별 내용은 
여기에서 얻을 수 없다는 측면을 통해서 
무상해탈문을 제공하게 된다. 


이는 결국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 보는 부분을 놓고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접착되어 
머무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수행자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고 임하는 경우에는 
적발 즉시 수행자라이센스를 몰수하고 
수행자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과 관련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평소에 눈뜨면 얻는 내용 
손으로 만져서 얻는 촉감 등 
일체 현실을 놓고 


그런 감각현실이 곧 이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분별 내용인가. 
또 반대로 
자신이 분별하는 내용 자체가 
곧 이런 감각현실인가를 곰곰히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이런 감각현실을 떠나서 
매번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가도 
동시에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관찰 방식은 
실재와 감각현실에서도 사정이 그렇고 


실재와 관념분별도 사정이 그렇고 
심지어 
거울과 거울표면에 맺혀 보이는 영상도 그렇고 
또 
마음과 마음안에서 얻는 그 일체의 내용과의 관계도 그렇고 
또는 
실재와 근본정신 마음의 관계도 그렇고 


그런 각 경우마다 
다 같은 형식으로 
상호 관계를 잘 살펴서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상해탈문을 성취하여 
현실 상황에서 
각 경우마다 
안인을 잘 성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그 각 부분이 실상도 아니지만, 
더욱이 자신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그런 내용도 아님을 잘 관한 가운데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상을 취하고 머물지 않고 
그런 내용에 접착되지 않으면 


거꾸로 그런 상황에서 
어떤 고통이라고 느끼게 되는 내용을 
쉼없이 생생하게 얻는 그런 상황에서도 
평안하게 안인을 성취할 수 있다고 
기본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보조적으로 
마취제를 취하거나 
있어도 아예 그런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없다고 여기는 
최면에 빠지거나 


또는 수행방안 가운데 
일정한 내용에 마음을 집중시켜 심일경성의 상태가 되고 
사마타 수행에 들어가서 
그런 것을 없앨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이것은 안인 수행은 아닌 것이다. 


어떤 이가 
어떤 경로로 참아야 할 고통이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것이 무슨 안인 수행이겠는가. 


마취 주사를 받고 
수술을 마친 이가 
그래서 안인 수행을 잘 성취했다고 평가되는 경우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이가 
찬 아이스크림을 맛있다고 여기면서 
별 생각없이 아이스크림을 잘 먹었을 뿐인데 
그것이 
보통사람은 이가 시어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냉기의 고통을 참는 안인 수행을 
잘 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다. 




그래서 그것은 별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일단 안인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이고 
또 불국토여행이나 무량한 방편을 직접 얻을 생각이 없다면, 
당장 급하게 그런 심사를 받아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일단 고통을 해소해야 하므로 
그런 보조적인 수행방안을 취할 수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대하는 
일체의 감각현실에는 
자신이 취하고 머물고자 하는 그런 상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론상으로 잘 이해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상해탈문은 또 안인 성취와 
무생법인의 증득 불퇴전위의 수행자격 획득 등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안 되므로 그런 수준의 
수행자가 되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다른 수행자가 그렇게 했다는 내용을 열심히 외운다거나 
교실에서 선생님이 무언가를 잘 하는 것을 
열심히 자신이 잘 구경했다고 해서 
자신이 그렇게 바로 되는 것은 아닌 사정이 
있다고 여기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끝으로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망상을 바탕으로 
자신과 자신의 것을 분별하면서 
당장 자신에게 이런 측면에서 좋다고 보면서 
추구하는 그 일체는 
그것이 곧 그 자신과 다른 생명 일체에게 
증폭된 생사고통을 가져다 주는 
근본요소가 되므로 
그 일체를 
관념 영역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희망은 관념의 성격을 갖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역에서는 
관념 자체만 놓고 보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보지만, 


이것을 감각현실과 관계지어 접착된 상태에서 
또 그 희망도 그런 취지와 그런 셩격을 가진 내용으로 
형성해서 
그것을 추구하면 할 수록 
그 결과를 성취하거나 못하거나 
어느 경우에던지 


자신이 그것을 놓고 아라리요를 외치면 외친만큼 
그에 따라 자신이나 다른 생명이 
아리고 쓰린 고통이 증폭되어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이 부분의 비명을 
질러야 할 사유가 비례해서 많아진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남김없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제시하면 
수행자는 일체 희망을 갖고 추구하는 활동은 
안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해하기도 쉽지 않은가. 


그러면 왜 부처님이 수행자에게 
어떤 수행목표를 위해서 수행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또 아닌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원무작 삼매 해탈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자비를 바탕으로 행하는 
수행자의 무량행문을 의미하는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즉, 그 기본 성격은 공통하고 
외관도 비슷하다고 보지만, 


이는 원래 행하던 내용을 하나하나 
그 실질 취지나 성격을 달리하여 
서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미로 
대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고 
불국토도 장엄하고 
성불하고자 하는 서원으로 
무소득[얻을 것이 없음]을 방편으로 
상을 취하거나 머물지 않고 


그러나 그것을 또 정확하게 
즐겁게 잘 
무한한 기간에 걸쳐서 무량하게 추구해서 
원만하게 성취해 나가야 한다고 제시하는 측면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설령 실패를 해도 성공한 것이고  
성공을 하면 또 그것 역시 성공이 되는 상태가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알고보면 그래서 수행자의 보물창고의 창고 목록에는 
현실에서는 대부분 실패의 내용이라고 보는 
내용이 보물 창고의 목록으로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내용을 수행자가 확보하면 
무한한 기간에 걸쳐서 
그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물로 확보하지 못하면, 
마치 치매걸린 붕어처럼 
매번 매 생에 똑같은 실패를  또 행하고 
또 행하면서 생사고통을 증폭시켜 받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각 해탈문은 
수행자가 현실에서 
100 % 성공을 매 경우마다 거두면서 
무한하게 수행에 정진하게 되는 원리다. 








그것은 이 해탈문 자체가 
현실에서 각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렇고 하면서 
수많은 if 문장과 그 if 문장에 따른 또 다른 if 문장을 
가지처럼 나열해가면서 
알파고 시스템에게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문제를 
수행자가 달리 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 각 경우를 다 포함해서 
if 문을 제거하고 
그 어느 경우나 다 성공으로 취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첫번째 해탈문에서 완벽하게 
성공이 본래부터 확보되어있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고 


두번째 해탈문에서는 또 두번째대로 
어느 경우에나 평안하게 임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또 그것이 원만히 성취되면 
북극성 기지에서 여행 허가증을 발급해주고 
온갖 무량방편도 무상으로 제공해주게되는 사정도 
제시해준 것이기도 하다. 


또 세번째 해탈문에서는 
어떤 사정으로 
수행자는 실패마저도 성공이고 
또 성공은 또 당연히 성공이라고 제시하게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수행자가 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한 대자비심을 장착하고 
그것을 위한 방편으로 
중생이 집착하는 무량한 소원과 
개별 문제를 나열한 가운데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는 기본 사정을 제시한 것이다. 




그 수행자 입장에서 그것을 대하는 취지가 그러하므로 
그것 자체가 본 목표는 아니다. 


그런 사정으로 그 자체가 성공해도 물론 좋다고 보지만, 
그것이 실패한다고 해서 
그 기본 성격이나 문제가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부산에 가는데 
ktx 기차 표가 다 매진되어도 
수행자는 그래도 가고 
더 빨리 갈 수도 있지만, 
설령 못가게 되어도 


kt 나 심지어 
kt & G 형태의 표로도 
그 결과는 성취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패해도 성공의 의미인 것이고 
이것이 그 바탕에서 행해지기에 
성공도 또 성공이라고 보는 사정인 것이다. 


법화경에선 이 사정을 
수행자가 
대지비를 방으로 하고 
인욕(안인)을 옷으로 해서 
실상이 공한 자리에 앉아서 
수행을 행한다고 제시하기도 한다. 


또 화성유품에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처음에 성을 만들어 이끌어 가고 


휴식이 마쳐지면 
그 성을 허물고 
다시 또 더 좋은 성을 향해 나아가고 
이런 식으로 점차 
나아가게 되는 사정도 제시한다. 




그래서 처음 
청정한 니르바나를 확보하고 
무량한 기간 쌓은 업의 장애도 해소시키고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또 확보하는 수행을 시작하고 


그리고  
중생제도와 
불국토 장엄과 
성불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을 또 시작하는 관계를 제시해서 


이 일체가 끝내는 
일체 중생이 다 함께 
성불하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100 % 이런 결론을 확보하는 
수행자가 
왜 홀짝 문제 
가위바위 보 문제 
주사위 문제를 놓고 
if 논의에 들어가겠는가. 


그것은 무원무작삼매 해탈문을 성취하지 못한 
전도망상을 일으킨 범부의 문제인 것이고 
수행자의 문제는 그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사정이  
이런 사정인 것이다. 




100 % 성공하는 방안 
그것도 원래는 자기 것 치솔 하나만 성취하려고 한 희망과 달리 
무량한 치솔을 공급하고 병을 제거해서 그것을 통해 
보리를 얻게 하고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무량 대원을 놓고 
그것이 어느 경우나 성공하게 되는 사정과 
그 원리를 살폈는데 


여기에 각 수행자별로 
그런 수단과 방편을 제공받는 내용이 
다르게 되는 사정도 함께 제시한 것이다 .



[...]

핵심은 무언가. 


왜 그 불국토를 하필이면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왜 대부분 거부되는가. 


현재 살아서 대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온 그 방식을 
그 당사자에게 그렇게 같은 형태로 적용하면 
그 당사자의 입국이 거부되게 마련인 것이다. 


또 그 반대 경우는 
그런 반대 입장 때문에 
그 방문을 환영하고 
일체 비용이나 설비를 다 제공받는 사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관계로 
대부분 티겟 구매를 마쳐도 
비자나 여행허가가 나오지 않아 
방문이 거부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어떡하는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초보자의 운전연습의 내용인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멈추고 기다리면 구경하고 
엑셀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 밟으면 선다. 
핸들 돌리면 돌아가고 


pass stop turn go 와 같은 
고스톱 게임이나 
현실의 자동차 운전에서 
적용되는 운전 연습은 
여기서는 필요없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매 경우 왜 
그렇게 
pass stop turn go 와 같은 기기를 조작하는 것인가. 
그 취지와 기본 동기가 무언가가 
운전연습의 핵심 사항인 것이다. 


그러니 기기 조작을 아무리 이 부분에서 잘 해도 
그 부분이 해결되지 못하면 못 가는 것이고 
그것이 해결되면 
아예 뇌파에 기기를 부작시켜서라도 
언제든지 떠나게 된다고 사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또 
세계 여행과 관련해서 자세히 사정을 살피다 보면 


사람이 생사과정에서 겪는 
죽움이 
사실은 여행객이 여행을 위해 
여행복을 갈아입는 것이나 
그 실질 사정이 같고 


어디를 떠나고 도착하는 사정도 
다 위와 관련되어서  
이뤄지는 일이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는 
지금 당장 이 현실 이 단면에서 
자신이 세계라고 보는 내용을 다 
나열해 놓고 
그것의 본 정체가 과연 무언가를 
앞의 공, 무상, 무원무작 해탈문을 놓고 
살피면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고 
제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운전연습이 
이 과정에서 필요하겠는가. 


필요하다면 평소 


칠각지역에 들러 
초선양과 드라이브 방안을 
의논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보는 것이고 


그것이 잘 안되고 
현실에서 강제로 수갑을 채워 
여행시키려는 수사관들만 자꾸 주변에 나타나는 상태면 
어떤 경우나 여행은 곤란하다고 보게 된다. 


이것이 무원무작 해탈문을 열고 탈출하지 않은 가운데 
축생과 아귀 지옥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상태에서 
겪는 문제인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그것이 원칙적인 수행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

구조에 필요한 기초 심사는 사정이 같다. 


그런 구조를 요청한 
당신의 희망이 본 취지가 무엇인가. 


즉, 그 뜻이 다 뜻대로 이뤄지면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소원성취를 바라는 것인가. 


이 질문에 그 답을 잘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그 사정을 알면 
답을 잘 작성하게 되는 것이고 


모르면 과부가 고집스럽게 
청원서만  반복해 제출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게 되는 현실 사정이 
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까지 잘 파악했으면
 
이제 왜 그런 소원을 가질 때 
장삿꾼이 행하게 되는 계산과 분별을 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잘 행해서 
그런 소원을 성취해도 자신이 얻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무소득을 방편으로 
그런 소원을 접수하는가 하는 사정을 
방문하는 세분에게 
잘 제시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성공이 100 % !

[...]

흥보 놀보 이야기에서는 
놀보처럼 임하면 여전히 안 되는데 
그렇다고 이전의 놀보처럼 머물러도 안 된다는 
어려운 사정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놀보 입장에서 그 사정을 다 이해하고 
어떻게 제비를 대해야 한다고 할 것인가. 
이 문제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지런히 다리 부러진 제비를 잧아 나서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일부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나서면 곤란하다는 것이고 
또 앞과 같은 노력은 정확히 하지만, 
그것이 흥보의 사례처럼 자신이 무언가 
그것을 통해 얻을 것이 있다고 계산하면서 
장삿꾼의 마음으로 어떤 수행이나 기도를 하는 입장을 
취하면 안 된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금을 깔아서 
수행자의 정사를 기부했던 급고독 장자 즉 
수달 장자에게 부처님이 
그처럼 보시하면 복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시를 행하는 이는 
무엇을 얻으려고 계산하여 보시를 하지 말고 
또 보시를 행한 후 
그것으로 어떤 대가를 얻기를 바라지 말라는 취지의 
주의를 덧붙인 내용과 사정이 같다. 








또 그것이 금강경에서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이 당부하는 핵심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수행은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해야 하는데 
다만 얻을 것이 없다는 사정을 밝게 관한 가운데 
그에 대한 상을 취하지 않고 머물지 않고 
그런 수행을 해야 하고 
이 모든 측면의 내용을 부처님이 가르쳐준대로 
그대로 임해야만 한다고 제시하는 
경전 내용의 의미인 것이다. 



[...]

먼저 수행자가 100 % 성공하는 내용을 놓고 
무량한 수행을 어떻게 대하게 되는가하면 
수행자는 이 무량한 수행을 
유희 자재 신통으로 대한다고 경전에서 제시되는데 


그것은 쉽게 말해서 
사정이 위와 같기에 
그 사정을 이해하고 
즐겁게 잘 수행을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우선 수행자나 일반인이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소원의 성취를 요청하면 

그것을 들어준다고 보는 입장은 어떤 상황인가를 

생각해보자. 


수행자의 입장은 각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구조를 맡은 입장이 자신부터 

무생법인을 증득하지 못한 상태이면 

구조가 가능하겠는가. 


나중에 보면 수행자가 

여환삼매를 증득해야 한다는 내용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마치 최면술사가 관념만으로 현실과 다른 내용을 

상대에게 만들어 내듯 

중생이 대하는 현실 자체가 실상이 아니고 

그런 사정이 아님을 잘 관해서 


그런 바탕에서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앞과 같은 기본 수행이 다 이뤄져야 

그런 단계가 가능한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쉬운 것은 아닌 것이다.

[...]

그런데 여하튼 이런 상태가 다 성취가 되어야 

중생이 고집하고 성취시키고자 하는 소원을 

성취시켜 주면서 

또 그 상대가 보리와 해탈 니르바나를 얻게끔 

해줄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그렇다치고

 

그런 소원을 갖는 이는 어떤 자세가 되어야 

이런 소원 성취가 가능하겠는가를 

사족으로 덧붙이게 되는 사정이 있다. 



이미 레고블록으로 만든 작품의 예를 들었는데 

그 작품의 형태와 부품이 같은데 

그러나 어떤 경우는 

그것들 대하는 이마다 

자신이 할 수 있으면 어떻하던 다 부수어 버리고 싶다고 

마음을 갖고 대하는 반면 


어떤 경우는 자신이 바쁘고 힘이 없어서 그렇지 

자신이 할수만 있으면 어떻하던 도와주고 

심지어 박카스라도 하나 있으면 건네 주고 

그런 식으로 하겠다고 바뀌게 되는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상대가 

왜 그런 소원의 성취를 갈구하는가. 

무엇때문에 그런 소원을 갖는가. 


또 그 소원이 성취되면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라고 

묻는 질문에 

답을 어떻게 하면 앞과 같이 되고 

또 어떻게 하면 뒤와 같이 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주의를 덧붙이는 것과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의 표준적인 내용은 

현실에서 수행자를 돕는 대력보살님의 사정을 살피고 

표준 답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왜 그런가.


알고보면 현실에서 수행자나 중생을 돕고 

봉 노릇을 해주시는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서원이 

다 그런 성격을 갖고 

또 한편으로 

그것만 떼어 놓고 따로 보면 

하나같이 그 내용이 부당하고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쉽게 이 사정을 이해해보자. 


현실에서 흉악한 범죄를 행해서 

대부분 그 문제를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어떤 흉악범 ○○○ 이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고 해보자. 


사정이 그러한데 

그 본인이나 어떤 이가 간절하게 기원을 하면 

그에 따라 그 ○○○을 그 감옥에서 구출해내겠다고 

작전에 임하는 어떤 분이 있다면 

이것을 교정당국이나 수사를 진행한 사법당국이나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이를 대하겠는가. 


이 자체가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세상에서 다 문제로 보는 

어떤 ○○○ 사건 당사자가 

그런 청원을 한다고 해서 


매번 그 상황과 그 상대에 맞추어 

모습을 바꾸는 기만술을 취해서 

그 상대의 소원이 무엇이던 다 성취시켜 주고 

위난에서 구제해 주겠다고 임한다고 하니, 

이것은 또 어떠한가 


역시 앞 경우와 그 문제가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의 레고블록으로 만든 작품의 비유와 

하나같이 그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그런 분들이 하나같이 

수행자의 모범이 되고 

공양 공경 존중 찬탄의 대상이 되는가. 

그 사정을 거꾸로 헤아려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봉 노릇을 해주신다고 소문이 난 

부처님들이나 보살님들은 

하나같이 

원래는 표준 수행 원칙에서 

모두 금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중생이 집착을 대단히 갖고 대하는 부분에 

중생을 제도하고 보리를 얻게할 방편을 시설해 놓고 

그런 중생의 소원을 성취를 통해 

그런 상태를 얻을 수 있도록 임하는 것이다. 



그러니 중생의 입장에서는 

이분들은 결국 소원이 무엇이던 

다 성취시켜주겠다고 임하고 

자신에게 봉 노릇을 해주시는 

분들이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단히 부당하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아야 할 내용들이 

왜 하나같이 수행자가 늘 공경 공양 존중 찬탄하면서 

본받아야 할 내용이 되는가를 잘 음미해야 하는 것이다. 




그 부처님이나 대력 보살님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사정으로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와 달리 평가받는 것인가. 


즉, 예를 들어 흉악범의 동료가 흉악범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곳 저곳에 가면을 쓰고 

mission I'm possible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처럼 

모습을 매번 바꾸어 나타나면서 

때로는 마술사처럼 

때로는 사기행위를 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이 경우는 왜 달리 평가를 받게 되는가. 


그래서 그렇게 달리 평가받게 하는 

그 핵심 요소가 무언가를 거꾸로 잘 헤아려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같은 레고블럭인데도 

왜 어떤 경우는 

이것을 대하는 이가 

다 허물고 부수려는 뜻을 갖고 대하게 되고 


또 반대로 어떤 경우는 세워지지도 않았는데 

다 그것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려고 임하게 되는가 

이 사정을 또 찾아야 한다고 본다. 



당사자는 자신이 갈구하는 소원만 

붙잡고 그것을 념하게 되지만, 

제 3 자에서는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먼저 찾아서 

이 답부터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봉타래 수행자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봉 노릇을 하는 입장에서도 

그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결국 본래 원칙적 내용은 아니라고 

방편을 보지만, 

또 그런 방편이 곧 진실이라고 평가하게 되는 사정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또 그렇지 못하면 

결국 어느 경우나 다 문제가 된다고 보게 된다. 

그런 경우는 설령 성공을 해도 

실패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취지가 그렇지 않으면 

이 경우는 설령 실패해도 

성공한 것이라고 보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이가 여환삼매는 고사하고 

무생법인도 취득하지 못했어도 

처음 보리심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제도와 성불의 서원을 장착하면 

곧바로 부처님과 대등한 상태로 평가되는 것도 

사실은 그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수준이 높은 수행자와는 또 차별이 있고 

법신을 증득한 부처님과 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라고 해도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고 


그것은 반대로 

실패를 해도 성공한 것이 된다고 평가되고, 

전도망상과 집착을 바탕으로 임하는 상태와는 달리 

현격한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족에 해당하는 사정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느 극한까지 성취해도 

손오공이 그로 인해 

500 년 돌무덤에 갇혀서 

그 안에서 최고 행세를 하는 상황과 

같다고 비유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디에서인가 500 년 시리즈가 많이 제시되는데 

경전에서는나중에 아미타 부처님의 국토에 가더라도 

특별한 사정으로 입국비자가 거부되고 

그 옆에서 500 년 대기하면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제시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현실에서 그렇게 되는 사정과 다 비슷한 것이다. 



수행자는 처음 보리심을 일으키고 

서원만 장착해도 

비록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불퇴전위에 오르지도 못한 상태이고 

더 나아가 여환삼매도 증득하지 못하고 

기타 일생보처보살의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보리심을 일으키고 

서원을 장착하고 그 가운데 

자신이 할 수있는 가장 작은 일 하나를 꾸준히 한다는 

그것만으로 인해 

수행자 라이센스를 발급받고 



아무리 미미한 수행자라도 이것만으로 

욕계의 제일 높은 하늘의 상태를 

벗어나서 임하고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님등과 

대등한 자격을 인정받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족을 붙여야 할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게 하는 핵심이 무엇이겠는가. 


현실에서 매 상황마다 매 if 문제가 

각기 달리 제기될 때마다 

pass stop turn go 키나 

버튼을 매번 

각 상황마다 잘 눌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것인가. 


여기서 사정이 그렇지 않고 

핵심도 그것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

현실에서 제주도던지 아프리카던지 

물건을 보낼 수 있는 우표보다 

현재는 사용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우표가 

오히려 이보다 몇 백만배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물이 담겨 있고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공원의 연못은 

그렇게까지 비싼 것은 아닌데 


단지 그 연못을 그려 놓은 그림으로서 

바라만 보아야 하고 

아무리 길게 보아도 몇천년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런 그림이 

수백억원인 것이 현실이니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방안이 

오히려 이런 요소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혹시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지금 성공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결국 재료는 별 차별이 없다고 보는데 

어떻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고 좋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상태가 될 수 있을까를 

놓고 논의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doctr 님이 이 분야가 전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략 40 여년전 

doctr 님이 각 방면의 가장 좋은 상태를 나열해 놓고 

연구를 진행하다가 

처음 이와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현실에서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희망을 갖는 이가 있다면 

현실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현실적 인물을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은 

미국의 수표의 문이라는 빌게이츠나 

얼굴 책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죽어보고'와  같은 이나 

기타 등등 현실에서 처음엔 별로 돈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태였는데 

당대에 돈을 대단히 많이 번 사례들을 

여럿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범위를 자신이 사는 곳으로 좁히면 

자전거로 쌀배달을 시작해서 

당대에 재벌이 되었다는 인물 등등 

그런 사례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례들을 통해서 

어떻게 그렇게 돈을 벌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대강 사정을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을 자신의 현실 상황에 

이어 붙여 그런 결과를 얻는 것은 정작 

대단히 곤란하다는 사정도 

함께 보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비유하면 

부산을 가려고 할 때 

역에 가서 부산행 열차를 타면 된다는 내용을 알게 되는데 


문제는 그 내용을 알게 되는 그 자신의 상황이 

예를 들면 이미 

서울행 열차를 타고 있는 상황과 같아서 

그것을 옮겨 타는 것은 대단히 곤란함을 또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용은 설령 알아도 

자신이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 원하는 변화를 얻어내기 힘들다는 사정도 

함께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자신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또는 다른 이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다 만나게 된다. 



어떤 변화를 얻어낼 방안이 제시되어도 

그것을 구체적 현실에서 적용시켜 나갈 방안이 

보이지 않으면 

결국 그런 방안은  

현실에서 실현하기 곤란한 내용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 훌륭한 선생님을 TV 프로에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처음 왜 그런 선생님이 되었는가 

내력을 들어보니 

재수하던 시절 어떤 운동장에서 

어떤 대회를 여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이렇게 들어 알게 된다고 해도 

이제 그것을 자신의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한 개그프로가 생각이 난다. 

어떤 한 사람이 이상한 형태로 살아가는데 

다른 이들이 왜 그렇게 사는가를 물으니 

그 개그맨이 

언젠가 칠갑산에 들어가서 쉬는데 

거북이는 거북 거북하다고 하고, 

사슴은 사서씀 사서 씀 

이렇게 말하고 해서 

그래서 그것을 계기로 어떻게 되었다고 


이런 형태로 말도 안 되는 사정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알고보면 한 개인이건 전 세계의 세상의 일이건 

알고보면 그런 수많은 인연이 다 관계가 되어서 

서로 얽혀서 어떤 하나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게 되기에 


어떻게 보면 이미 성공을 이뤄서 

세계가 다 알고 인정하는 어떤 과정을 낱낱이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또 다시 그런 형태를 재현해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지 않은가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과연 

100 % 성공 방안을 제시하는 

본 논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또 보충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

중독상태에서 어떤 것이 좋지 않다고 보면서도 

그것을 끊기 어려운 것이 

바로 현실에서 수행의 성취가 어려운 것과 

사정이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또 수행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어떤 이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묶여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이런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어떤 마의 방해때문에 

그렇다고 볼 것인가. 


그러나 알고보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어느 경우나 성공이 100 % 가 되는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이미 그런 상태가 본래부터 성취되어 있다는 측면이 

가장 기본이다. 


어떤 수행을 하건 하지 않건 관계없이 

본래 상태가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극락과 다르지 않은 상태이고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인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국하고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어떤 이의 잘못이나 마의 방해때문에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이 그런 사실을 보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하기에 그렇다고 제시되는 내용이다. 


생사고통을 겪을 때 

어떤 이는 이렇게 자신이 고통을 겪는 것은 

부처님이나 어떤 신이 무능해서 그렇다거나, 

그런 부처님이나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자신을 방치해서 그런 것이므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거나, 

또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악마 때문에 그렇다거나 

이런 식으로 남 탓을 하면서 임하기 쉬운데 


부처님은 그것은 그 자신이 

그런 망상을 일으킨 가운데 임하기에 그렇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비유로 들어 

태양이 밝고 밝은데 

장님은 자신이 장님이어서 그 빛을 보지못하는 것인데도 

공연히 태양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다거나 

또는 어떤 사물이 자신을 가려서 그 빛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태양이 몇 백배 더 밝게 빛을 비추어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고 


반면, 자신이 노력해서 그 상태를 벗어나면 

아무리 마가 옆에서 방해를 해도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

앞과 같은 여러 문제 

즉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중독 상태에서  100 % 성공을 

쉽게 하는 방안은 

각 해탈문 앞에서 

딱 , 딱 딱 이렇게 들어가고 행할 것을 행하는 

것이 방안인 것이다. 


아무 곳에서나 공해탈문을 딱 열고 

딱 공한 실상을 자신의 자리로 삼아 앉고 


딱 무상 해탈문을 열고 들어가 

딱 안인을 자신의 옷으로 삼아 임하고 


딱 무원무작 해탈문을 열고 들어가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한 희망을 모두 제거하고 

딱 자비와 보리심과 서원을 장착하고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그 방안인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딱, 딱 되지 않고 

잘 되지 않기에 그 부분이 문제인데 

그렇다고 다른 좋은 방안이 따로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면 

딱 끊고 그 이후 불편한 상황은 딱 무시하고 

그리고 딱 좋고 좋은 일에만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 계속 나아가면 된다고 보지만, 


그것을 하지 않고 

다른 방안을 찾는다거나 하면 

그것은 대부분 잘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

수행자가 기악을 즐기고 향이나 차나 음식을 과다 섭취하고 
재화를 많이 지니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을 필요한 이에게나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방편의 선악무기성과 관련되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어떤 경우에 좋다고 해서 
그것이 어느 경우나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데 
그러나 간혹 그렇게 오해하기도 쉽다고 본다. 




지금 살피는 성공의 문제나 
소원의 성취문제도 마찬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현실에서 어떤 뜻을 성취하는 것을 놓고 
그것이 곧 지옥 아귀 축생의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기본 원인이 된다고 할 때 


일체의 모든 희망이 다 그렇다고 제시한 것이 아닌데 
잘못 이 내용을 이해하면 
이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성격이 같아 보이는데 
이 경우는 이렇고 
저 경우는 저렇게 된다고 하는가 
그 사정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이가 
어떤 소원을 갖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노력하고 
그래서 성취한다고 할 때 
무엇이 문제이길레 그것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게 만들게 된다고 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반대로 그런 것을 제거한 서원의 성취가 
그 반대의 상태가 된다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간단히 이를 살피면 이렇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그것이 무엇이던 
어떤 A 가 좋다고 보고 
그것을 추구해서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하거나 한다는 경우에서 


첫번째로 그 A 는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 부분에서는 그런 좋음이 있다고 
할 것이지만, 
그 외는 그런 좋음이 없고 오히려 나쁨이 많고 
그 나쁨이 다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 받게 되기에 
자신도 좋지 않고 남도 좋지 않고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 좋지 않고 
지금도 좋지 않고 나중도 좋지 않고 오래오래 무한하게 좋지 않고 
이 측면도 좋지 않고 저 측면도 좋지 않고 
두루두루 다 좋지 않다고 하는 그 부분들이 
문제가 되는 어떤 좋음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그런데 설령 수행목표처럼 그 내용이 좋고 좋더라도 
역시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면 또 그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선 그 목표가 그러한 A 라고 할 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방안은 B 인데 
그가 그 각각의 정체나 그 각각의 관계와 인과를 
엉뚱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엉뚱한 C 를 붙잡고 추구한다면 
그것도 일단 문제가 된다. 


또 그렇지는 않아도 
비록 뜻을 성취한다고 해도 
더 좋고 좋은 방안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것이 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다경전이나 금강경에서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측면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수행목표이고 
그것을 부처님이 제시한 수행방안을 준수해서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라고 해도 


그 수행목표나 수행덕목들에 대해 
그 정체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각각에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고 여기고 
수행목표나 방편에 대해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킨 다음 
유소득(얻을 것이 있음)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하면 
아무리 그것이 부처님이 제시해준 
수행이라고 해도 
이 경우에도 역시 그것은 문제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신속하게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사유가 된다고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수행에 있어서도 그런데 
원래 그렇지도 않고 
그 소원이 잘 성취되어도 
문제가 많다고 보는 내용을 붙잡고 
다시 위와 같이 임하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원래 그런 집착을 갖고 임하는 자세 때문에 
겪게 되는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고자 수행을 하는 것인데 
그 수행을 놓고 수행자가 다시 그런 형태가 되면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하튼 
그런 사정을 떠나서 
자신이 집착하는 어떤 것이 
일단 이뤄지지 않으면 


그것을 갈구하는 가운데 
그 뜻을 성취하지 못해 
온갖 고통[구부득고]을 겪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형태에서는 
그 소원이 성취가 되어도 문제이고 
성취가 안 되면 안 된대로 또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이런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모두 제거하고 
온 생명에게 제한없이 오래오래 두루두루 좋은 
상태를 성취하기 위해 
본래 생멸과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를 잘 관하고 


현실에서는 이에 상응하게 
분별과 집착을 제거한 바탕에서 
무소득(얻을 것이 없음)을 방편으로 

수행에 정진해야 
위에서 얻게 되는 생사고통을 받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상에 머물지 않고 행하는 보시는 
그 복덕이 무량하다고 제시하는데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반대로 행하면 
비록 그런 수행을 해도 
곤란한 점이 많게 되거나 
그 복덕이 그렇게 무량하게 되지 못하는 사정이 된다고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

보통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것을 지적하면 대부분 싫어한다. 


어떤 음악 하나만 잘못 뽑혀 올려져도 
그런 경향을 쉽게 보게 된다. 


원래 이것을 방치하면 더 고통을 심하게 
겪게 된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놓고 잔소리하면 
또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선은 안 되고 더 악화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Tv에서 본 한 선생님은 
아주 묘하게 그런 일을 잘 하는 것을 
보았다. 


보통 당근과 채찍이라는 표현으로 제시되는 것처럼 
이런 수단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고 
큰 소리를 내어 강요하고 
이런 유형으로 교육에 임하기 쉬운데 
이 분은 일단 
모든 상대를 다 유치원 생으로 보고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잘하게 하는 데에는 칭찬을 하고 
잘 하지 못하면 그냥 외면 무시하는 방안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전문적으로 맡은 분야를 놓고 
쉼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대를 
어느 경우나 잘 행할 수 있게 변화를 시키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대단히 
힘들다고 보는 일이다. 




이론상 혼자서도 잘 한다고 보는 
연구원을 놓고 
교육을 하면 
대단히 쉬운 일이라고 보게 되지 않는가. 


원래 알아서 쉼없이 연구를 하는데 
교육 지도가 필요하다고 해도 
중요한 부분 몇 부분만 언급하면 
된다고 보는데 


그러나 말도 못 알아듣고 못 하는 상태에서  
제멋대로 하려는 상대를 놓고 
교육을 하면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사실은 유치원 생 정도를 놓고 
교육을 시켜 글자도 쓰게 하고 
덧셈 뻴셈도 하게 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방안이 사실은 
자신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잘 하는 부분에는 
칭찬이나 따라 기뻐함 


그리고 조금 잘 안 되는 부분에는 
외면 무시의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그렇게 
외면하고 무시하고 방치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정말 곤란한 상태가 
스스로 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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