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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9-16_국왕불리선니십몽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9-16_국왕불리선니십몽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9. 16. 13:44



®

국왕불리선니십몽경
K0758
T0148

국왕불리선니십몽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국왕불리선니십몽경_K0758_T0148 핵심요약



♣0758-001♧

♧국왕불리선니십몽경



>>>

사람이 금을 살 때 

돌에 갈아 보면 좋은지 나쁜지 

그 빛깔이 저절로 돌 위에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정사에 계십시다. 

왜 찾아가 꿈의 뜻을 물고 

부처님의 해설대로 따르지 않습니까?” 


>>>




◆vlhm9696

◈Lab value 불기2562/09/16/일/13:45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Paule Belle - La Petite Ecriture Grise.lrc



♥ 잡담 ♥라이터화두와전문가

조각글이 밀리면 조각글을 쓰는 날에 가장 
가까운 조각글부터 작성하게 된다.
같은 내용을 쓰는데 이왕이면 쫒기는 느낌을 받으면서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조각글을 하나 건너뛰어 넘어 왔다. 

니르바나 행복론 파일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또 하나 보게 된다. 

수행자가 멀리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명리인데 이에 대해
채근담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제시한다. 


好利者,逸出於道義之外,其害顯而淺.

호리자,일출어도의지외,기해현이천.


好名者,竄入於道義之中,其害隱而深.

호명자,찬입어도의지중,기해은이심.


이욕을 챙기는 자는

도의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에

그 해독이 나타나지만 지극히 얕고,


명성을 좋아하는 자는

도의 안으로 숨어들기 때문에

그 해독이 보이진 않지만 지극히 깊다

이 대목에서 방향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전 구절이 떠오른다. 
수행자가 탐욕을 갖는 것은 그나마 가볍지만, 
분노를 일으켜 중생을 멀리하는 것은 대단히 무겁다. 
이런 내용이다. 

수행자도 기본적으로 생사현실에 임하는 이상 
일반인이 갖는 문제를 기본적으로 함께 공유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 자체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탐욕의 번뇌는 
그래도 이로 인해 중생을 가까이 대하기 쉬운데
분노를 일으키면 중생을 멀리하게 되기 쉽다. 
그런 경우 수행자가 그 중생의 제도를 
우선 순위에서 뒤로 돌리게 되고 
중생의 제도가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 그 허물이 더 심해진다는 의미다. 
위에서 제시한 명리는 다 탐욕의 대상이 되기 쉬운데 
수행자가 일반적으로 재물에 대한 탐욕은 제거해도 
어떤 견해를 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한편 
명예에 대한 욕구만은  강하게 갖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이것이 수행자의 큰 허물이 되는 것이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의 기본인데 
그런 수행을 하면서도 수행자가 이런 문제를 갖게 되기 쉽기에
수행 과정에서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현재 마음 현상에 대해 이어서 살피는 중인데 
이는 과거 날짜 조각글을 함께 참조해야 
앞 뒤가 이어지게 된다고 본다. 
한번에 관련된 내용을 모두 살피는 것은 
사정상 힘들다. 

또 한번에 다 살피려고 하면 
이를 살피는 입장이나 이를 대하는 입장 모두 
골치가 아파오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서로간 좀 답답하더라도 
천천히 하나하나 문제되는 내용을 검토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미 앞에서도 이런 문제를 살필 때 
관련 경전과 논서 내용도 인용하고 
또 경전과 논서에서 제시하는 불교 전문용어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사정상 나중으로 돌린다. 

심정적으로 생소한 용어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많고 
하나의 단어가 다의적으로 사용되면서 
하나의 표현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시시비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또 이런 문제로 시시비비가 일어나게 되면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수행의 본 취지를 망각하고 
이런 문제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음 현상과 관련되어서는 
불교 내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에서 견해가 대단히 복잡하게 제시되고 있어서 
이런 가능성이 늘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 논의는 
사실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매 순간 별 문제없이 잘 행하고 있는 내용 
즉 눈을 떠서 사물의 모습을 보는 활동을 놓고 
그 정체와 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위 내용을 스스로 반복해 실험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잘 살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또 누구나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 논의를 살필 기본적인 실험도구와 환경을 
개개인이 대부분 다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경전과 논서 내용을 참조하지만,
그러나 글자 자구에 얽매여
이 문제를 살피려고 너무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도 보게 된다. 

그러나 불교 전문 용어를 아예 무시하면서 
살펴나가는 것도 곤란하므로 
조금씩 함께 살펴나가기로 한다. 

우선 불교 용어 가운데 혼동을 불러 일으키기 쉬운 부분이 
한자에서 능동과 수동의 관계를 표시하는 
능,소의 표현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불교 논서 등에서 
능의 소의, 능연, 소연 
이런 표현을 제시하면 당황하기 쉽다. 
이것이 무슨 표현인가. 

본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소의란 표현은 조선시대 왕의 후궁의 품계의 하나인 것으로 아는데 
후궁들 이름에 능의 능연 소연 이런 여인이 있었던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게도 되는데 

그런데 능소의 표현이 무언가를 생각하면 쉽다. 

어떤 이가 공을 집어서 앞으로 던진다고 하자. 
이 똑같은 상황을 하나 놓고 볼 때 
이 내용을 던져지는 공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공이 그 어떤 이에 의해서 앞으로 던져졌다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동작을 하는 입장과 
그 동작을 받는 입장에서 이를 서로 달리 표현하게 된다. 

던지다를 투라고 한자어로 표현하면 
던진다는 능투 
던져진다는 소투 이렇게 일단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어는 하나의 단어가 
한국어에서 명사 형용사 동사 이런 각 품사가 갖는 내용을 
다 함께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의미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구절에서 그 맥락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내면 쉽다. 
한편 한자어 소(所)는 또 반드시 수동(피동)의 의미만 

나타내지는 않기에 좀 더 주의하여 전체 문장의 맥락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면 된다. 


여기서 의나 연이란 표현은 서로 의미가 엇비슷하다. 
의는 의존한다는 의미이고 
연은 인과관계에서 무엇에 연해서 발생한다. 이런 의미와 관련된다. 

그런데 마음 현상과 관련해서는 
소연(所緣)이나 소연연(所緣緣) 친(親)소연연, 소(疏)소연연 이런 낯선 표현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앞의 능소 관념부터 잘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살펴나가면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나팔꽃은 막대에 연해서 올라간다. 
또는 a는 b 에 연해서 나타난다거나 . 
이런 관계에 있을 때 이 하나의 현상에 대해 
a 는 능연. b 는 소연 방향으로 일단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소연은 
첫 부분에 일반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대상으로 
그런 모습을 본 것인가하는 주제와 상당히 밀접한 내용이 된다. 

일단 여기까지만 우선 살피기로 한다. 


대강 살폈는데 
앞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처음부터 논의에 들어가면 
이해하기도 복잡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각 입장도 조금씩 차이가 나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고 본다. 

그런데 알고보면 일반적으로 눈을 떠서 
사과를 하나 보게 될 때 
그것이 어떻게 니티나게 된 것인가를 
인과관계 즉 연기관계의 측면에서 설명하기 위해
이런 용어가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일단 위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필 수 있기에 이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의 문제와 관련해서 
상(相)이란 용어도 대단히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혼동과 혼란을 많이 일으키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이가 눈을 떠 □ 내용을 얻을 때
그가 그 가운데 일 부분을 나무라고 여기고 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분별을 바탕으로 
그렇게 감각을 통해 얻는 □ 가운데
그 주체가 나무라고 보게 되는 그 부분을 그런 나무의 상(相)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그 주체가 일으키는 관념분별로서 나무라는 생각은
상(想)이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존재의 유무에 대해 논의할 때는 
원성실상 - 의타기상 - 변계소집상 이란 표현도 사용하고 
또 이와 관련해 실상, 자상, 공상 이런 용어도 사용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전부 상(相)이란 한자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알고보면 혼동을 일으킬만한 표현이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감각현실 안에 
자신이 그에 대해 일으킨 어떤 생각이나 분별 내용이 있는가 이 문제를 살필 때 
이 상황에 상이 과연 있는가 없는가 이런 식으로 살펴 나가면 
앞과 같은 혼동때문에 도대체 이에 대해
무엇을 문제삼고 논의해가는가를 파악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게 된다. 
그런데 또 한편 이런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논의대상이 된다. 

이런 경우도 상이란 글자에 묶여 판단에 임하면 
대단히 혼동을 겪게 된다. 
위 문제는 다음과 같이 풀어서 간단히 살피면 된다. 

현실에서 영희가 100M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올 때
처음에는 콩알보다 작게 보이고
나중에는 킹콩보다 크게 보이게 되고 
그 각 순간의 형태가 다 제각각으로 다르다. 

그래서 이 상황을 매 순간 감각현실로 얻는 각 내용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라고 표현한다고 하자. 
그런데 문제는 이 각 내용을 한 주체는 
이를 모두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이다. 
이 때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는 
그 주체가 감각현실로 얻는 내용들이고 
이에 대해 그가 일으킨 영희라는 관념분별은 
관념분별 영역에서 일으킨 내용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상이라는 표현과 관련되기에 
논의 과정에서 혼동을 겪게 되는 것이다. 
또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하는 본 바탕의 실재내용에 대해서도  
또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심지어 한 주체의 정신을 식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실재와 식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혼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마음을 식이라고 표현하니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끝내 얻지 못하는 실재나 실상과
혼동을 일으켜 대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쉽게 생각하면 된다. 

앞에서 문제되는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가운데
그 어느 하나던지 붙잡고
그것이 과연 자신이 일으킨 관념분별인가 아닌가를 놓고 
판단하면 쉬운 것이다. 
그래서 α라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다면 
그것 자체가 곧  자신이 일으킨 영희라는 관념분별인가 아닌가
또 반대로 자신이 일으킨 영희라는 관념분별이 곧 α 인가를 놓고 
헤아리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고 
관념분별도 감각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시 그런 관념분별은 그런 감각현실을 떠나서 그가 얻은 것인가를 
또 헤아려서 
이 내용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하면 
이 문제는 끝인 것이다. 

그 내용이 그것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자신이 매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관념분별을 반복해 일으킨다는 그 사정 때문에 
그렇게 일으킨 그 관념분별 내용이 
그 감각현실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한편 
또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하는 실재 본 바탕에도 
그 사정이 그렇다. 
즉 실재 진여도 그런 내용이다라고 
망집을 증폭시켜 나가기에 그것을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이것을 살펴야 할 문제지만, 
매번 문제만 제시하고 넘어가면 
답답하게 될 수 있으므로 
간단히 이 부분을 살피고 넘어가는 취지다. 





여하튼 일단 이런 문제들이 각 용어마다
다 그렇게 얽혀 있는 점을 미리 주의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경전과 논서 내용도 참조하고 
또 이와 별개로 
자신이 평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자신이 무언가를 보고 
또 이에 대해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고 생각할 때 
이들 각 내용을 잘 구별해 확보하면서 
긱 부분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를 잘 살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 현상을 살필 때는 
앞에 제시한 것처럼 
자주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눈을 감을 때는 얻지 못하다가 
눈을 뜨는 순간 얻는 내용을 일단 
다른 내용과 잘 구분해서 확보해 놓는 실험의 반복이 필요하다. 

이는 눈을 감거나 뜨거나 관계없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계속 마음에서 떠올릴 수 있다고
스스로 여기는 관념분별 내용과 잎의 감각현실을 일단 구분해야 하고 

또 한편 자신이 눈을 뜨거나 뜨지 못하거나 
그와 관계없이 어느 경우에나 얻지 못하는 한편, 
그렇다고 전혀 아무것도 없다고 하기도 곤란한 
본 바탕이 된다고 추리하게 되는 실재 진여의 내용과도 이를 잘 구분하면서 

평소 눈을 뜰 때 얻게 되는 내용을 스스로 잘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실험시 각 주체가 매 상황마다 스스로 눈을 떠 보게 되는 내용을
잘 확인하게 된다고 보지만, 
일단 여기서는 그것을 편의상 □과 같은 기호로 나타내기로 한다. 

그리고 이것을  불교 경전과 논서에서 어떤 용어로 표현하는가는 
나중에 따로 살피기로 한다. 
의타기상이라거나, 자상(svalakṣaṇa)이라거나, 상(相, lakṣaṇa)이라거나 
등등의 표현이 관련될 수 있는데 
기존에 제시해 살폈던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
이 정도의 표현들의 관계만 살핀 상태에서
다른 내용들은 여기서는 일단 넘어가는 것으로 한다. 






본인이 가끔 doctr 님이나 choice 님의 요청에 의해 
연구실 내 수리업무를 맡아 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사를 조이거나 하는 간단하 수리작업만 해도 
늘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부작용을 많이 겪는다. 

물이 새서 스패너로 조금만 조이면 될 것 같은데 
그것은 전문가가 할 때 이야기이고 
본인이 하면 이상하게 전보다 더 물이 많이 나오고 문제가 많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왠만하면 직접 자신이 자가수리를 하려고 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이것이 서로가 서로를 더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도 된다. 
그런데 개인적인 입장만 놓고 보면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로빈슨 크로스 형태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고 
자가 해결하면 자신의 지출이 줄어들어 낫다고 보기 쉽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자신도
이로 인해 대단히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할 뿐더러 
또 다른 이웃도 이로 인해대단히 힘들고 어렵게 된다.

본인이 그런 대표적 유형이면서 
이런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다.  

각 개인이 모두 자급자족해서
식사 하나부터 옷이나 주거환경까지 다 해결한다면 
세상에서 식당업을 하는 이나 의료 부분이나 주택 건설 부분에서 일하는 이들도
다 함께 어려워진다.
그러면 또 사정이 그렇기에 연쇄적으로 고용도 하기 힘들게 되고
이것이 악순환 과정을 밟아서 전체 경제가 다 함께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정이 그럴수록 
수행자는 경제 전반에서 순환을 일으키는
우물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자신 형편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식사도 일부로 나가서 해결하고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일반적으로 아끼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과 달리 
수행 부분에서는 수행자가 행하면 안 되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점이 된다. 

이것이 바로 라이터 화두와 관련된다. 
만일 라이터 하나를 자신이 모두 로빈슨 크로스 형태로 
스스로 다 재료를 구해 만들어 사용하려면 
그 시간과 비용이 대단히 많이 걸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렇게 임하는 이가 이로 인해 
스스로 겪는 손해이자 생사고통의 내용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지 않은 것은 
수행자가 그런 부분에서 그렇게 임하지 않기에 
오히려 각 마트만 들르면 라이터를 쉽게 구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소리가 잘 안나는 것은 
본체에서 볼륨을 작게 해서일 수도 있고 
음악을 재생하는 프로그램에서 작게 해서 일 수도 있고 
스피커에 붙어 있는 볼륨조정키에서 볼륨을 줄여 놓아서 그럴 수도 있다. 
또는 세 부분에서 다 줄여놓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원인은 
그 수행자가 수행 자세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알고보니 그 수행자가 귀가 질환이 생기면 
또 소리가 잘 안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물론 왠만한 소소한 문제는 스스로 잘 해결할 수도 있기도 한데 
그러나 각 분야 전문가에게 상담하면
훨씬 정확하게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눈을 떠서 세상 문제를 보는 문제는 
누가 가장 정확하게 이것을 놓고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문제는 누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중요하고
누가 이 문제가 전문가가 되어서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생활해야 하는가하면 
바로 욕계에서 살아가는 각 개개인이다. 

알고보면 매 순간 눈을떠서 내용을 확인하는 이는
다른 이나 어떤 책에 적혀 있는 글자나 
그런 내용을 적어 놓은 알 수 없는 어떤 이가 아니고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또 알고보면
그런 논서를 쓴 분들이 조금은 더 세밀하게
이 문제를 놓고 연구를 하였으므로
이 과정에서 참조할 필요가 있고 
그런 과정에서 조금 낯선 어려운 용어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일단 여기까지 살피고 쉬기로 한다. 

쉬는 동안 □로 표시한 내용이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그것은 또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각 내용과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런 것을 놓고 반복해 실험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mus0fl--Julien Clerc - Charpie de Chapka (chanson pour mon grand-pére).lrc


자신이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보게 되는가를 
세상에 가장 잘 확인할 이가 자신 말고 누가 있겠는가. 
어떤 안과의사가 옆에서 보고 알겠는가.
물론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여하튼 다른 이가 직접 파악하기 힘든 성격의 내용들이
본 논의주제에서는 대단히 많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처음 제시한 실험을 스스로 반복하면서 
각 경전과 논서 내용을 참조해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쉬는 동안 무언가 작은 수리를 하나 했는데 
수리전의 문제가 1 이었다고 하면 
수리를 마치고 나서의 문제는 지금 3 정도 되는 상태가 되었다.

과거에 한 때 수도관 연결 부분을 조일 필요가 있어서 
choice 님과 함께 수도관을 직접 조여보려고 한 적이 있다. 
전문가에 맡기면 3 분이 걸리지 않을 일이라고 보는데 
여하튼 choice 님과 함께 
온갖 힘을 다 써가며 1시간 정도 작업해서 간신히 조였던 적이 있다.
그 사정은 한쪽을 돌리면 다른 쪽도 같이 돌아가는데 
스패너 하나와 스패너 비슷한 도구가 있는 상태에서  
choice 님은 한 쪽을 안 돌아가게 붙잡고 
본인은 한쪽을 돌리는 작업을 한 것인데 
그 수리작업이 뜻처럼 잘 안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또 한 때 전문가분이 
같은 성격의 수리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본 적이 있는데 
3 분이 걸리지 않고 수리를 마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앞 이야기를 했더니 
본래 사정이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막 했던 수리작업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본인이 나사를 조인다고 조이는데 계속 한없이 돌아간다. 
사정을 살펴보니 뒷 부분이 나사로 또 되어 있는데 
역시 앞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결국 무언가로 한쪽 부분은 고정시켜 놓고 조여야 할 것 같은데 
날은 어둡고 해당 부분에 연장이 잘 들어가지 않게 되어 있어서 
난감한 상태다. 결국 수리를 중간에 포기하고 본인의 연구업무로 돌아왔다. 

결국 어느 분야던 전문가와 아마츄어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보게 된다. 
매일 해당 분야 일을 맡아 하는 전문가는 
일일히 말로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세세한 부분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는데
일반 아마츄어는 사정이 다르다. 

뽑혀진 사진을 보니 곰 인형이 하나 보이는데 
과거에 이런 내용을 소재로 한 만화영화가 있었다. 
그 만화영화에서도 비용이 비싸게 들어가는 수리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곰아저씨가 직접 연장을 들고 수리에 나서는데 
그로 인해 온갖 사고를 만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어 하수도 하나 직접 수리하려다 
집이 무너지고 이런 문제를 만나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생활과정에서 그처럼 곰아저씨처럼 임하려고 하면 안 되는데 
요즘 전문가분들에게 부탁하면 
사실 대단히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 만큼 사회가 좋아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요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을 놓고 생각하면 
또 여전히 상대적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모로나 소득이 별로 없는 본인 입장에서는 
또 상당히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올려진 노래를 듣다 보니 자꾸 수리가 잘 안 된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메세지를 듣게 되는데 
이는 첫 부분에 제시한 사정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마음 문제는 
결국 그 실험 재료부터 관찰 확인까지 
각 개인이 가장 전문가가 되어서 임해야 할 
성격의 문제다. 




위 사진은 최근 등산을 가서 
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산에서 어떤 이가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한다면 
눈을 감았을 때 보지 못하다가 
눈을 뜨는 순간 얻는 내용이란 위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사진기가 찍어 내는 화각은
사람이 보는 시각보다 대단히 좁다. 
그래서 어떤 이가 직접 보는 내용은 위보다 상당히 더 넓다. 
그런데 여하튼 위와 같은 내용이 
앞에서 □로 표시하는 한 부분의 내용과 비슷하다. 

이제 이 문제를 살펴보자. 

눈을 떠서 저런 모습을 보았다면 
이는 무엇을 대상으로 저런 모습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할 것인가. 

또는 저런 모습을 보게 되는 인과 과정에서 작용하는 원인요소들은
무엇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앞 조각글에서 
이런 논의를 통해 제시하게 되는 결론을 미리 대강 살폈다. 

만일 어떤 이가 거리에 서서 눈을 떠서 
거리 풍경을 바라 보는데 
건물도 서 있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오가고 
또 그 가운데 어떤 아이가 공을 차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대부분 자신이 무언가를 볼 때는 
자신의 몸 부분 일부분도 함께 보게 된다. 

그런데 시각의 경우에는 다른 감각과 비교할 때 조금 제한이 있다. 
경전에서는 이 사정을 
귀와 혀 등으로 얻는 공덕이 1200 이라면 
눈으로 얻는 공덕 등은 800 이라고 제시한다. 
참고 묘법연화경 수희공덕품 

그 사정은 눈으로 볼 때 옆 모습이나 뒷 부분의 모습이 
파악되지 않는 사정과 관련된다. 
눈으로 무언가를 보게 되는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눈은 자신의 눈썹도 보지 못하고 
자신의 허리도 보지 못하지만, 
여하튼 자신의 몸 일부는 한 구석부분에서 보는 한편 
나머지 부분에서 위 사진과 같은 부분을 대단히 넓게 대할 수 있다. 
물론 상자에 고개를 박고 보면 또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 로 나타낸다고 할 때 
매 상황마다 그 □ 에 들어가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처음에 이에 대해 지적한 것은 
□ 안에 넣게 되는 내용들은
일단 그렇게 눈을 통해 보게 된 내용이다. 

그런데 □ 을 보는데 작용하는 어떤 원인요소가 □ 안에 들어 있을 것인가. 
이것이 어떤 주체가 무언가를 본다고 하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할 문제다. 

□ 란 내용을 보았을 때 
□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도 들어 있을 것인가. 
이 문제도 마찬가지 문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생각해야 한다. 


종전에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그릇에 물건을 담는 과정이나 
거울면에 사물이 비치는 과정으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비교적 단순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주체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살피고 연구할 때는 
앞과 같이 매 순간 어떤 주체가
눈을 떠 보게 된 □ 과 같은 내용도 한편 잘 파악해야 하지만, 
다음 문제를 함께 잘 생각해야 한다. 

우선 이 상황에서 자신은 여하튼 눈을 떠서 □ 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잘 파악하려면 
이렇게 보게 된 □ 내용만 붙잡고 살피면 곤란하다. 


그릇을 놓고 일단 이 문제를 비유적으로 생각해보자. 

어떤 이가 눈을 떠 □ 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할 때 
자신이 눈을 떠 그런 □과 같은 내용을 여하튼 얻게 되었으므로 
이 과정을 그릇에 물건이 담기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보자. 

이 때 살펴야 할 문제는 
과연 눈으로 무엇을 보는 상황에서 
□ 과 같은 내용을 담는 그릇은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이것이 처음 문제된다. 

또 한편 그런 그릇을 놓고 이 과정을 이해하면 
처음 그 그릇에 □ 과 같은 내용이 없었는데 
이후 어떤 과정으로 □ 과 같은 내용이 담기게 되었는가. 
이것을 또 문제삼을 수 있다. 

그리고 또 이와 함께 
그렇게 그런 그릇에 담겨진 □과 그 그릇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가 또 문제된다. 

무언가를 본다는 문제를 살필 때 
이것을 간단히 모두 마음현상이라고 표현한다면 
마음이란 표현과 관련해서 생각할 각 측면이 된다. 

그 각각을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언어로 표현하던간에 
여하튼 이런 각 내용을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참고로 경전과 논서에서 식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식이란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대단히 다의적이다. 
그래서 상당히 혼동을 일으키는 또 다른 표현이 된다. 
그래서 경전과 논서 각 부분에서 식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때 
이 단어가 나타낼 수 있는 수많은 의미 가운데 과연 
어떤 내용을 나타내는 것인가는
글자만 가지고는 기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위에 살핀 내용도 이와 어느 정도 관련이 된다. 
감각현실을 한 주체가 얻는 부분을 보통 
안식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데 
이 표현이 앞에 나열한 여러 측면 가운데 
어떤 측면을 나타낸 것인가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는 결국 그 표현을 사용한 각 경전과 
논서를 전반적으로 살펴서 맥락을 통해 
의미를 잧아나갈 도리 밖에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5 온을 나열할 때도 색,수,상,행,식이란 표현이 사용되고 
나중에 보면 12 연기에서는 
무명 - 행 - 식 -...이런 형태로 내용을 제시하기도 하고 
또 마음과 관련해서는 심,의,식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한편 근-경-식의 관계에서 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안식이란 표현도 제시되고
이와 함께 의식 말나식 아타나식 아뢰야식 아말라식 
이런 경우에도 식을 붙여 표현하고 
여하튼 상당히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런 사정은 이미 앞에서도 어느 정도 제시했는데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런 용어부터 살펴나가면 
대부분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살피는 것을 포기하고 
이것을 관련 전문가에게 다 떠 맡기게 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는 문제와 함께 
이런 내용을 통해서 
현실에서 어떻게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는 
각 개인에게 직접 중요한 문제이고 
각 개인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즉 수행이란 어떤 전문가만 이것을 문제삼고 
이것을 해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하고 
논의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처음 문제로 돌아가자. 

눈을 떠서 보니 
아이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몸 부분도 일부 보인다. 
자신에게 공이 와서 자신이 손을 내밀어 그 공을 잡았다. 
그 모습을 계속 자신이 눈으로 본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보자. 

여기서 공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신이 손을 내밀어 공을 붙잡거나
이 공을 다시 아이에게 던져줄 때 
손이 무엇을 대상으로 붙잡고 이런 동작을 한 것인가. 

이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 공이 그것이라고 보기 쉽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공의 모습을 보게 될 때는 
자신이 스스로 보는 몸 부분에 위치한
자신의 눈이 그런 공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가라고 하는 논사들 가운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보는 공 모습이 
과연 옳은가 아니면 잘못 본 내용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자신의 눈이 대한 대상도 자신이 본 그 공이고 
그 공을 대상으로 해서 얻는 감각내용도 그 공이기 때문에 "
이것이 서로 일치해서 옳은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입장에서 감각으로 직접적으로 얻는 내용은 
옳은 인식이다. 
이런 주장도 제시된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가 문제된다. 

이 문제는 한 주체가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것은 분명한데 
정작 그 내용이 무엇에 대해 즉 무엇을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었기에 
그것을 옳다 그르다라고 하는가와 직접 관련된다. 
즉 어떤 내용이 그렇게 단순히 얻어졌다는 것과
그렇게 얻어진 내용이
무언가를 기준으로 놓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하는 측면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 다른 분야에서 대단히 심각한 
논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런 □ 내용에 그것을 얻게 한 대상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입장은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 내용을 얻기는 하였다 해도
그것을 옳은 내용이라거나 틀린 내용이라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런 판단을 행할 그 기준이 되는 대상 자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이런 형태로 논의 주제가 되는 내용을
의문문 형태로 문제제기만 하고 산만하게 나아가면 

과연 이 논의가 향해 나아가는 결론이 무언가 생각하기 쉬운데 
이미 그 대강은 앞에서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자신이 본 □ 내용 안에서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을 찾아내기 쉽고
또 그 대상을 상대해 어떤 내용을 얻는 자신을 또 잧아내기 쉬운데 
이것이 대표적인 망상분별이라는 것을 먼저 잘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것을 따로 정리한 내용이 다음이다. 

●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망상분별
http://buddhism007.tistory.com/4615 


그래서 결론을 간단히 제시하면 
눈을 떠서 보는 □ 내용에 대해 판단하기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쉽다. 

그것 대부분은 자신 외부에 세계내용이다. => 아니다. 그것은 자신 마음에 들어온 마음내용이다. 
그것 대부분은 자신의 감관이 대한 외부대상이다. => 아니다. □ 안에는 자신이 대한 대상이 없다. 
그것 대부분은 마음과는 구분되는 별개의 마음 밖의 물질이다. => 아니다. 물론 □ 내용이 마음의 기능을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마음 밖의 내용이 아니고 마음 안에 들어온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먼저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 아닌가를 또 실험을 통해서 스스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실험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 내용을 얻는 상태에서 
자신의 손으로 눈을 잠깐 눌러 보는 것이다. 
자신이 보는 물체가 두개로 보일 때까지 실험해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오늘날 상황에서는 또 다음 방안을 사용해도 된다. 
각기 색과 돗수가 다른 안경을 준비해서 
앞과 같이 □ 내용을 얻는 상황에서 
그런 안경을 계속 번갈아 썼다 벗었다 하면서 
그 상황에서 그 내용이 변화하지 않는 부분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 잘 관찰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두 입장의 내용을 놓고
이 상황을 스스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이다. 

즉 앞 부분의 결론이 맞다면 
왜 자신이 안경 하나를 바꿔 썼을 뿐인데 
그것이 모두 변화하는가. 
이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자신이 안경 하나로 산에서 내려 보이는 
온갖 건물을 다 순간에 변경시키는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인가. 
이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한편
앞에서 □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한 '대상'이 있는가 등의 문제는
이 안에서 이와 함께 상대적인 관계로 함께 파악되는 부분으로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즉, 통상적으로 자신의 손을 눈에 댄다고 할 때
자신의 눈이 있는 부분으로 여기며 대하게 되는 그런 부분을
바로 자신의 몸이라고 스스로 여기게 된다. 
이런 판단은 그 나머지 부분은 그런 눈이 대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앞의 판단과 상대적인 관계에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가 앞 문제와 함께 같이 문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과정에서는 특히 이 부분이 보다 중요한 문제가 된다. 
무엇을 나라고 볼 것인가.
이 문제가 수행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할 중요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 안에서
자신의 손으로 만져 확인하는 그런 눈이 

나머지 □  부분의 내용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과연 □ 와 같은 내용을 얻었다고 할 것인가. 
이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조금 복잡하지만, 
자신이 눈을 뜨고 감으면서 
스스로 이 문제를 잘 관찰하고 헤아리지 않으면 
이후 경전과 논서에서 제시한 내용을 
글자만 따라가면서 이해하기는 한층 더 어렵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눈을 떠서 
아이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공을 대상으로 삼아서 발을 갖다 대었다. 
이렇게 이해하는 한편 
자신이 아이라고 보는 부분이 바로 그 '아이'이고 
마찬가지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깨닫는데 이르러야 한다. 

또 이 상황을 놓고 
거기에 그런 공이 여기저기 오고간다거나 
더 나아가 어떤 내용이 없다가 나타나고 
있다가 없어지는 생멸이 있다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로 망상분별임을 이해하는데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내용을 이해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다. 

눈을 뜨고 감으면서 이 내용을 스스로 관찰할 때도 
사정이 그렇지만, 
특히 글자만 따라가면서 
각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글자만 놓고 이해하기는 
대단히 힘든 사정이 있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에 가장 기본적인 
위 실험을 또 반복하면서 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이다. 

여하튼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을 뜨면 자신이 □라고 표시하는 그런 내용을 보게 된다는 점 하나와 
그런 상태에서 각 부분에 대해 각 부분이 영희나 철수나 꽃이나 바위나 공이라고 여기고
또 무엇이 그렇게 있다거나 없다거나 생겨난다거나 없어진다거나
또는 이리 저리 온다거나 간다거나 하는 생각을 일단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중에 논의과정에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위해 미리 결론을 제시한다면 
이 논의 결론이 위 내용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도 문제만 제시하고 넘어가지 않고
미리 간단히 그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경전이나 논서에서 생멸이 없다거나 오고감이 없다거나 
등등의 내용이 대단히 많이 반복해 제시된다. 
특히 반야경전이나 불생불멸 불상부단 불일불이 불래불거(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중관론 등에서 이에 대한 내용이 많이 제시된다. 

생멸함이 없다. 오고감이 없다.
같고 다름도 없다. 이런 등의 내용이 제시되는데 
현실에서 각 주체가 눈을 감고 뜨는 가운데 위와 같은 내용을 대하면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해당 내용을 살피면서 
위 표현이 앞에 제시한 내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즉 눈을 떠서 □ 과 같은 내용을 얻고 
자신이 여기에 대해 어떤 부분은 영희고 꽃이고 
그런 꽃이 없다가 있게 된 것이어서 생한다고 여기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고 제시하는 내용으로 오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물론 그런 내용이 실답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 
경전이나 논서에서 그런 내용을 제시하고자 위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 대해 
이런 현실에 그런 주체나
그런 주체가 행하는 그런 동작이나, 
그 주체가 상대하고 감각현실을 얻게 되는 어떤 대상이나 
또 그 무언가의 생멸이나 오고감 등을 일체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할 때 
앞의 두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앞의 두 내용은 현실에서 누구나 실험해보면 스스로 잘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논의 중에는 위 결론이 위 내용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렇게 혼동을 일으키면 이후 논의를 진행할 도리는 없게 된다. 

그러면 무슨 내용인가. 

만일 어떤 이가 마음에서 무언가 엉뚱한 생각을 해서 
예를 들어 토끼에는 뿔이 없는데 
토끼뿔은 삼각형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자. 

이렇다고 해도 그런 토끼뿔과 같은 관념내용은 
일단 그런 관념내용으로 그런 측면에서는 있다고 할 것이고
또 그런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면 역시 언어 차원에서는 그처럼 있다고 할 것이다. 
'토끼뿔' 이렇게 적어 놓으면 그런 글자는 그런 측면에서 있다는 의미다. 

앞에서 감각현실을 얻고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거나 생멸한다거나 오고감이 있다거나 
이 부분은 저 부분과 같고 다르다 이렇게 생각할 때도 
이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그렇게 얻은 내용은 그렇게 있는 것이고 
그것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기에 
뻔히 영희가 저기 있고 저기서 태어나서 죽고 하는 것도 보고 
꽃이 없다가 피어나는 것도 보는데 
이 현실을 놓고 불생불멸 불래불거 등을 제시하는가. 
이 문제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꾼 상황을 놓고 이해하면 이해가 쉽다. 
또는 요즘 상황에서는 어떤 아이가 게임기를 가지고 게임 안에서 
다이아몬드 아이템을 얻었다고 하는 상황을 놓고 이해하면 이해가 쉽다. 

지금 각 경전과 논서에서 생멸이나 그런 생멸을 하는 주체나 사물 자체를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측면이 이와 같은 것이다. 

각 주체는 자신이 눈을 뜨면 그전까지 보지 못하던 □ 내용을 얻고 
또 그 내용이 무언가 그 안에서 들고 나고 하는 것을 놓고 
거기에 무언가가 있고 생멸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 내용을 같이 놓고 
이런 현실에 그런 생멸과
그런 생멸 생사를 하는 영희나 꽃 등을 일체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은
그 □를 얻지 못한다거나 그런 분별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침대와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의 관계처럼 
본 바탕의 실재 - 감각현실 - 관념분별 내용을 벌려 놓고 

관념분별 영역에서 일으킨 그런 관념분별은 그 영역의 문제고 
그 내용은 감각현실 영역 및 실재 본 바탕의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제시하는 한편 

또 감각현실은 감각현실대로 그 영역의 문제고 내용잉어서 
그 내용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실재  - 감각현실 - 관념분별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이 일으킨 
관념분별 내용 => 감각현실 내용 => 실재 내용 
이렇게 이해하려고 하고 
감각현실 내용도 
감각현실 => 실재 내용 이렇게 이해하려고 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다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념분별 내용 x=> 감각현실 내용 x=> 실재 내용 

그래서 관념영역에서 무엇이 있다 없다고 여기고 
그것이 생겨난다 멸한다, 같다 다르다, 온다 간다 
이런 여러 생각을 하고 대하지만, 
그 내용은 그 영역의 문제이고 그 영역안의 내용인 것이어서 

이런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그 내용이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러그러한 감각현실이 얻어지지 않는다거나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이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 바탕은 본 바탕대로 전혀 아무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주체가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감각현실도 한 주체가 □ 과 같은 내용을 얻지만 
그 내용이 분별영역에서 일으킨 그런 내용은 아니고 
그런 분별 내용을 이들 영역에서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말하면 
사정은 그렇지만,
감각현실에서 본 바탕에서는 얻지 못하는 그런 □ 내용을 
매 순간 생생하게 얻는 것이고 
또 본 바탕과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지 못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그러그러한 분별 내용을 매번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내용이 
마치 라면을 놓고 벽돌을 얻는 경우와 같고
침대에 누어 침대에서 얻어지지 않는 황금이나 바다를 꿈꾸는 것 같고 
또 손바닥을 부딪혀 손바닥 모습에서는 찾아지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 같고 
아이가 게임기에서 키보드를 눌러 키보드에서는 보이지 않는 엉뚱한 아이템이나 화면을 게임안에서 보는 것 같다고 
그 사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이와 같아서
생사현실 안에서 각 주체가 얻는 이들 내용이 하나같이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정작 꿈은 아니어서 

각 주체가 대단히 그러한 관계로 
이런 실답지 않는 내용을 생사현실에서 그렇게 얻고 
그런 실답지 않은 □과 같은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그러그러한 분별을 일으켜 
그런 내용이 실답게 그 영역들에 있다고 여기면서 
그에 집착을 일으켜 대하면서 

이후 그런 상태에 놓인 다수 주체가
무한한 기간에 걸쳐
대단히 심각한 고통을 그 바탕에서 
생생하게 무한히 얻어나가므로 
이것이 바로 생사현실의 문제가 되기에 
이 사정을 잘 관하고 
이 상태에서 
수행을 통해서
그렇게 잘못 보고 업을 행하게 되는 망상분별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일단 내용이 길어졌으므로 여기서 쉬기로 한다. 

그런데 쉬기 전에 
자신이 눈을 떠 본 내용 □ 안에 
자신이 상대한 '외부 대상'이 없다는 내용을 잘 이해하는 한편 
또 이와 상대적으로 \
□ 에는 '자신'이라고 여길 내용도 없다는 점도 함께 미리 잘 이해해야 한다. 

□은 자신의 마음을 전제한다면 
그 마음에 일시적으로 들어온 마음안 내용물로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집에 들어온 상품이나 손님과 같은 성격을 갖는 내용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내용들이 망상분별을 시정하는 기본이라고 일단 할 수 있다. 
이후 망상분별들은 결국 위 내용들을 바탕으로 
무량하게 증폭되고 확대되어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쉬기로 한다. 





mus0fl--Claude Dubois - FabienneThibault - Starmania - Les uns contre les autres.lrc



앞에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보게 되는 내용을 □이라고 표시할 때 
일반적으로 이 내용안에 
대상이라고 보는 내용과 함께 
이 대상을 대하는 자신도 있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기본적 내용이고 
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했다. 

사정은 그렇지만, 
그러나 현실에 임하면 
또 대부분 앞에서 공을 만지거나 차는 아이의 입장처럼 
각 주체가 임하게 마련이다. 

컵에 물을 따르고 이것을 마신다거나 
다른 이에게 건넨다는 경우 등도 다 마찬가지다. 

자신이 눈을 떠 얻는 내용을 모두 □라고 표시할 때 
이것이 외부세계의 내용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하게 되는 실험도 제시했지만 

자세히 그 실험을 살피면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에서 
평소 자신의 눈이라고 여기고 손으로 만지게 되는 그 부분을 붙잡고  
손으로 눈을 누르거나, 
그 부분에 안경을 바꿔 쓰거나 하면 
자신이 보던 그 □ 내용 전체가 함께 바뀐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래서 이 실험을 통해 한편으로 
자신과 별개의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마음 밖에 별개의 외부 대상이고 물질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임을 제시하고 
이와 상대적으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던 부분도 
마찬가지로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한편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던 그 부분이 
현실에서는 앞과 같은 관계로 파악되는 상황에 있기에 
여하튼 자신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사정도 또 함께 의미하게 된다. 


왜냐하면 평소 자신의 몸이라고 여긴 그 부분을 만지거나
안경을 씌우거나 하면 그 때마다 
위와 같은 변화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또 자신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이해하면 
이것도 또 곤란하다. 

그리고 알고보면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임해 
수행을 하고 위의를 갖추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등의 내용을 제시할 때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은 
바로 아이가 공을 차고 노는 그런 내용에 준해서 
그렇게 그 수행자가 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경전에서 
자신이 걸치는 옷에 비유하여 그것이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님을 제시하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이 자신의 본정체는 아님을 나타내는 한편, 
그렇다고 또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정을 
위 내용을 통해 함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사정은
기존에 그림으로 제시한 내용과 함께 이를 살피면 좀 더 분명해진다. 

즉 자신도 앞과 같이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행하지만, 
이와 함께 자신이 신뢰할 다른 이를 옆에 세워 놓고 
자신이 행하는 실험과 같은 실험을 옆에서 행하게 하여 
그 상황에서 옆에 있는 이가 어떤 보고를 자신에게 하게 되는지를 놓고 
자신의 상황을 이를 통해 미루어 헤아리면 
이 사정을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신이 다른 이라고 대하는 그 부분도 
사실은 자신이 눈을 떠 본 감각현실 □ 안에
포함된 내용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는 이런 실험 방식만 간단히 소개하고 
이전에 자세히 살핀 내용은 일단 생략한다. 

이는 나중에 링크나 복사 등으로 보충할 생각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 정도 살피고 
현재 조각글이 밀려 있으므로 
다음 내용들은 다음 조각글로 넘어가 살피기로 한다. 
조각글 내용과 함께 올려진 경전도 살펴야 하기에 
조금 복잡하다. 



mus0fl--Image - Les Démons De Minui.lrc

원래는 마음 현상에 대해 살피는 조각글 내용을 마치고 

건너 뛰어온 조각글로 돌아가 이어 살피려고 했는데 
그러면 순서가 어그러져서 곤란할 것도 같아서 
일단 여기서 계속 살피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러한 가운데 우선 순위를 생각하게 된다. 
현실에서 이것을 먼저 할까 저것을 먼저 할까 
또는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이것을 선택할까 저것을 선택할까 
이런 상황에 많이 놓이게 된다. 

이때 그 주체가 무엇을 하나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가 무엇을 기준으로 잡고 
무엇을 더 우선하는가에 관련이 된다. 
그것은 각 주체마다 다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 여하튼 한번 그렇게 우선 순위에서 밀린 내용은 
이후 죽 살펴보면
그렇게 매번 계속 밀려서 끝내 그것을 하지 못하고
마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복권에 당첨되면 그 돈으로 
좋은 복지사업을 하겠다고 현실에 임하면
그런 경우는 죽을 때까지 그런 복지사업은 결코 하지 못하는 것을
또 보게 된다. 
이것이 우선 순위의 문제다. 

자신이 돈이 있는데
당장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어떤 복지사업을 하거나 그런 단체에 기부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복권에 투자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일단 복권에 투자하자고 임한 경우는 
그렇게 우선 순위를 잡고 다른 내용들은 그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매 순간 임하는 가운데
밀린 내용을 나중에 다시 하게 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희박하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조각글을 쓰면서 
여행을 간다거나 등으로 
조각글에 이런 내용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제목만 잡아 놓고 
사정이 바빠서 건너 뛴 경우가 많은데 
원칙대로 하면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런 부분을 찾아가 그 내용을 보충해야 할 것 같은데 

매번 새 예약글이 올라오는 가운데 
당장 올라온 예약글부터 살펴야 한다고 임하는 가운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이후 결코 그 내용을 다시 되돌아가 보충할 짬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한 번 건너뛴 조각글을
지금껏 되돌아가 보충한 적이 없게 됨을 보게 된다. 

그런데 본인이 놀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쉬거나 놀더라도
그것도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어서
이처럼 매 순간 우선 순위에서 한 번 밀려 나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다시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이 상황이 수행과도 대단히 밀접하다. 

생사현실안에서 망집을 일으키고 
욕계에 처한 상태에서는
망집에 바탕해서 
매 순간 쓸데없는 내용들이
그 주체에게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내용이 되어
그 주체는 매순간 그에 초점을 맞추고
한 순간도 쉴 틈이 없이 그를 바삐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쉬게 되기도 한데 
이렇게 쉬는 시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쉬는 시간에 
명상도 들고 정려 선정 수행도 닦고 
기타 경전 내용도 살피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상황은 그 상황대로 너무 피곤하던지 해서 쉬어야 하고 
또 그렇지는 않더라도
앞과 같이 망집에 바탕한 경우에서는 
쉬는 가운데 망상이나 공상을 일으키더라도 
그렇게 자신이 초점을 맞추었던 주제와 관련해서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지 
수행과 관련한 생각을 하지는 않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인에 집착하는 어떤 이라면 
평소 그 부분과 관련해 열심히 활동하고 
쉬거나 할때도 그 상황이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래서 욕계에 처한 각 주체는 
기본적으로 망집에 바탕해서 현실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매 순간 그 주체의 마음에 꽉 차 들어있는
그런 망집번뇌에 묶여 쉼없이 사역을 당하기 바쁘고 
또 그런 사정으로
그 자신 역시 다른 주체를 그런 형태로 묶어 사역시키는 활동에 바쁜 것이고 
짬을 내서 그런 망집을 벗어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생각 자체를 일으키거나 하지 못하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여하튼 어떤 계기가 되었던 
보시나 정계 안인과 같은 계에 해당하는 항목을 실천해서 
업의 장애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복덕이 쌓여야 
비로서 그런 수행을 할 바탕이 마련된다고 제시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주체는 망집에 번뇌에 묶여 
쉼없이 사역을 당하는 상태에 놓여서 
한 순간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비유로 설명하면 
어떤 이가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거나, 
또는 어떤 이가 줄에 매달려 훈련을 열심히 받는 상태인데
그 상황에서 잠깐 짬을 내서 선정 수행을 닦거나 
경전을 보면서 어떤  주제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기본적 수행덕목이 중요하다. 

물론 이론상 앞과 같은 상황에서도 
수행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수행을 충분히 해서 
그런 상황에 임한 경우가 그런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곤란하다. 

반대로 수행을 하려면 
매 순간마다 선택형 문제가 제출될 때마다 
가치저울을 통해서 가치 판단을 잘 하고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을 향해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요즘 어떤 이는 가만히 집에서 편하게 생활하는 것만으로 
집값이 거저 올라서 몇 억원을 쉽게 벌었다. 
이런 소문이 보도를 통해 전국에 소개되자,  
대부분 마음이 흔들려서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살피는 상태에 있게 된다. 

이는 자신의 집이 있거나 없거나 상황이 비슷해서 
이후 자신 집에 살더라도 집을 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주식 객장에서 주가 변동을 지켜보는 차트맨의 심정이 되어 
집을 그런 종목의 하나로 매 순간 대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알고보면 지방에서 팔리지 않는 아파트나 
뉴스 보도에서 몇달새 몇억원이 올랐다는 그런 아파트나
그 내부만 놓고 보면 별 차이는 없다. 
즉 생활하는데 있어서 차이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되는 부분은 여하튼 
다른 여러 요인이 작용해서 그런 것인데 
사정이 그렇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본질적인 측면을 놓고 자신이 살아가는 집을 대하는 것이 아니고 
주식 시장에서 시세변동판을 바라보고 
그 시세 변동상황에 따라 초점을 맟주고 일희일비하는 가운데 
경전 표현에 의하면
마치 나무에서 널을 뛰고 다니는 원숭이 상태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산만한 상태로 현실에 임하게 된다. 
왜냐하면 각 주체가 그것이 현실에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일을 수십년 계속해도 몇억원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러나 어떤 경우는 그냥 집에서 생활한 것뿐인데 
그로 인해 몇억원의 소득이 생겼다 
이렇게 되니 어떻게 각 주체가 편하게 될 수 있는가 이 문제다. 

그래서 정말 그런 소득이 삶에 중요하다면 
누구나 그렇게 그런 주택 시세 변동에 초점을 맞추고 
잘 임해야 한다고 보고
그 관련 지식을 학원을 다녀서라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할 것이다. 
알고보면 주택시세가 오른다고 해도 
마치 주식시장과 같이 모든 주택이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오르는 주택이 그런 것이고 그 반대인 경우도 대단히 많다. 

본인이 아는 한 분은 대단히 많은 투자를 했는데 
알고보면 이 정반대의 상황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또 현실이다. 
오른 지역만 일부 그렇고 
다른 곳은 대부분 사정은 또 이와 정반대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한결같이 평안하지 못하고 
그 사정은 정작 그렇게 시세가 급등했다는 곳에 
사는 이들의 마음도 상태도 마찬가지다. 

그런 문제에 신경을 안 쓰면 되는데 
앞과 같은 사정 때문에 대부분 그럴 수가 없다고
여기며 현실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가 되면 
수행이나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되고 
결국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도리도 없다고 보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먼저 가치저울을 마련해 놓고 
문제되는 각 내용의 가치 평가부터
먼저 잘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마음현상을 살피는 조각글에서도  
기회 될 때마다 이런 내용을 함께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앞과 같이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린 바나나를 보고 
이 나무 저 나무 널뛰어 다니는 상태에서는 
생사를 벗어나는 수행이나 
마음 현상과 관련된 주제를 살필 바탕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 저울을 잘 마련하고 
두 눈이나 심장과 같은 것으로 
문제 되는 내용의 가치를 비교하는 기준이 될 가치저울의 추로 마련해 놓고 
현실에서 추구할 우선 순위가 되는 항목은
최소한 가치 기준추가 되는 두 눈이나 심장보다는 적어도 가치가 높고 
그래서 화폐액으로는 도저히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의 
가치를 갖는 내용 안에서 항목을 찾아 초점을
맞추고 추구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이란 현실에서 
가치저울을 가지고 각 항목의 가치를 비교할 때 
화폐액으로 숫자로 쉽게 나타낼 수 있는 
돈 '이하'의 가치를 갖는 품목을 가지고 
매 순간 
돈 '이상'의 가치를 갖는 
그래서 화폐로는 도저히 그 가치를 숫자로 표현해 나타낼 수 없는 품목으로
바꾸는 활동에 매순간 초점을 맞추고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주식시장에서
차트맨이 매 순간 시세판을 보고
가격 변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임하는 것처럼 

수행자도 사실은 이런 자세로 수행에 임해
매 순간 가치가 낮은 것을 가치가 높은 내용으로
바꾸어 내는 활동에 임하는 것인데 

그러나 현실 차트판에서 나오는 항목들은
하나같이 화폐액으로 숫자를 적을 만한 수준의 돈 '이하'의 가치를 갖는 것들이어서
앞에서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는 가치추 내용인 
두 눈이나 심장을 1 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놓고 이를 평가하면
하나같이 그 전부를 다 합쳐도 소수점 이상을 결코 넘어 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가 이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임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수행이란 결국
그런 돈 이하의 가치를 갖는 내용을 가지고 
매 순간 돈 이상의 가치를 가져서 
화폐로는 도저히 숫자로 적기 힘든 가치를 갖는 항목들로 
바꿔 내는 활동이고 
이것이 알고보면 결국 일일히 계산을 하면서 비교할 필요없이
가장 최고의 투자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두 눈이나 심장이 갖는 가치를 화폐로 평가해서
그 가격을 숫자로 기재하시오 
이런 문제가 제출될 때 
그 숫자를 적어나가려고 하면
그것부터가 대단히 어리석은 투자자의 자세인 것이다. 
가격을 적기가 힘든데 
또 그런 사정으로 가격을 적지 않고 
시장에서 팔거나 거래가 되지 않으면 
그런 사정으로 이런 것은 전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은데 이 역시 대단히 어리석은 것이다. 

어떤 항목이 좋다면 도대체 왜 그것을 팔고
시세차를 얻으려 하는가. 
시세차를 얻으면 그 수익으로 또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결국 그보다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것을 정말 얻었다면 
무엇때문에 그것을 또 팔것인가. 
그래서 시세차를 노리고 차트맨이 되어서 
임한다는 것은 사실은 그가
좋아서 끝내 팔지 않을 수준의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수행자는 최종적으로 가치가 높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어서 이를 얻어서 결코
다른 것과 바꾸어 팔려고 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가치저울로
그런 문제부터 잘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런 수행에 임하면 
그런 부분에 이후 눈을 돌릴 필요가 없고 
또 그에 초점을 맟주면
그에 초점을 맞춘 그 순간만큼 하나하나
그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되어야 
이제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살필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마다 
주목! 을 외치게 된다. 
주목! 이란 마음의 초점을 가치가 높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이후 티끌과 같은 가치를 갖거나
소수점 이하로 무한히 적어야 할 가치를 갖는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고
욕계에서 곰이나 조련사나 관중의 입장이 되어
시간을 낭비하고 고통을 당하며 
매 상황마다 욕계의 파순에게 희생당하는 상태로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단 여기서 잠깐 쉬고 
마음현상에 관한 내용을 
어기에 이어서 살피기로 한다. 


노래를 들으니 자꾸 일본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한국과 일본의 불교 상황을 비교하면 
한국불교는 선 수행에 비중이 있는데 반해 
일본 불교는 교학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글자로 무엇을 논의하는 부분에서는 
일본 불교가 상당히 발전되어 있어서 
교학분야에 대한 논의를 하려면
일본 서적을 참조해야  쉽다고 보는 입장이 많다. 


노래를 놓고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한데 
이번 조각글에서 살피는 국왕불리선니십몽경은 
왕이 꾼 꿈 내용을 해몽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번 경전은
조금 싱거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꿈이 허망하고 실답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제시하지만, 
그런데 생사현실과 전혀 무관한 것은 또 아니다. 

어떤 꿈, 특히 인간계 생사현실에서 상태가 가장 좋다고 보는 왕이 꾼 꿈은 
예지몽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다른 꿈 예를 들어 세속에서 X꿈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꿈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볼 내용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꿈의 내용과 현실의 내용의 관계를 잘 살펴보자. 
꿈에서 본 병은 생사현실에서는 이런 것이다. 
이런 법칙이나 관계성을 찾아보자. 
이런 의미는 아니지만, 
그러나 일단 꿈이 일반적으로 실답지 않다고 하지만 
전혀 현실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의미한다고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생사현실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또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일본 불교가 교학중심이기에 
어떤 한 주제를 놓고 관련 내용을 참조하다보면 
너무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해서 
한 평생을 들여도 해당 문제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보는데 현실 사정이 그렇다.

심하면 각 참고 서적의 주석만 찾아 나열하고
연구작업에 매몰되는 주석학문가의 입장으로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논문 작업을 하는 입장은 
또 이런 것을 요구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살피는 주제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번 생에 이 내용을 바탕으로 
망집을 해결하고 벗어나는 것은 
또 그 만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왠만해서는
이 주제와 관련된 수많은 참고 서적이나 논문의 내용을
다 하나하나 참조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이 주제에 대한 내용의 연구를 마치고 
현실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를 전혀 무시하고 임하면 또 이상해지기 쉽다. 
이른바 독식철학 형태로 임하기 쉬운 것이다. 
여기서 독식철학이란 무엇인가. dog-shit 이런 의미도 나타내는데 
나 홀로 나 혼자 생각하면서 사변을 늘어 놓는 입장이 되기 쉽다는 의미다. 

그래서 적절하게 양 부분을 조화롭게 대해야 
된다고 보게 된다. 

일단 쉬자. 

앞에서 살펴야 할 주제를 여러가지 나열했는데 
계속 문제만 제기하고 넘어가면 
답답해지게 되므로 
간단간단하게 내용도 살피고 
또 좀 내용이 길어지는 부분은 
다음 예약글이 올라 왔으므로 
또 그 부분으로 넘어가 살펴나가기로 한다. 



mus0fl--Alain Chamfort - Baby Lou.lrc


생사현실에서 

경전과 논서 내용을 살피고 
수행에 임하려면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하는 생계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제시한 
옷 세벌과 구걸해 식사를 해결할 그릇, 
그리고 숲 속 무덤가 나무밑 잠잘 곳 
이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도 본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어떤 경로던 해결되면 
나머지 에너지를 모두 앞에서 제시한 
높은 가치를 갖는 항목을 향해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처한 상태를 스스로 평가해서 
앞보다 상태가 좋다. 
적어도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수준보다 높다고 여기면 
그 만큼 자신이 복이 있고 다행이라고 여기고 
이후에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임하면 
그 만큼 손해가 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임하면 얼마간 소득을 더 얻고 
편해지는 것처럼 여기기 쉽지만, 
욕계에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알고보면 숲에서 벌들이 꽃가루를 따 모으는 것과 사정이 같아서 
결국 욕계의 파순에게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기에 
결국 이를 한마디로 타승 즉
욕계의 파순과 같은 다른 주체가 이기게 하는 상태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 좋은 일을 하려고
시세차를 얻고 수익을 크게 만들기 위해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카라반 대상들을 따라다니는 낙타 신세가 되는 것이다.

곰이 재주 피우면 조련사가 돈을 벌고 
관중은 즐거움을 얻는다라고 하여 
곰과 조련사와 관중의 비유도 많이 드는데 
이런 비유에서는 곰처럼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낙타가 곰처럼 현실에 임하면 
하늘에 올라가는 것도 대단히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된 배경이나 사정이 대부분 
망집에 바탕해 탐욕을 갖고 현실에 임하기에 
그런 낙타가 되어 필요없는 짐을 그렇게 많이 지고 
생사현실에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쉬면서 사진 등을 뽑아 올리는 가운데 
경전이 하나 뽑혀 살폈는데
그 부분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런 경우는 자세히 살필 필요가 없이 => 3 악도 행이다. 
이런 취지의 내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 

"그러므로 

그 허물을 알아야 하니 

이익이란 가장 두려운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익이 병이 되어 골수에 박히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에는 온갖 두려움이 많아 

끝내 편안하지 않고, 

혹 인간으로 나더라도 

많은 위해가 있어서 

그것을 막으려고 하여도 

좋은 방책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죽음이 두렵고
나가면 도적이 두렵다. 

...



참고 sfed--출요경_K0982_T0212 14. 이양품 ②





그런데 그것은 다른 종교의 경전에서 밝히는 내용들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현실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이 냉정하게 생각해서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사정보다 상황이 좋다고 여기면 
그 부분은 자신의 복이고 행운이라고 여기고 
나머지 모든 에너지는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얻는 수행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임해야 
세속에서도 현명한 투자자가 된 것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임해야 이후 
최소한 축사에 갇혀서 목동의 부림을 받는 축생 상태로 처하는 것만은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지금 마음 현상을 살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논의의 취지가 있다. 

현실에서 그렇게 임하지 못하고 
매번 눈 앞에 바나나가 하나 보이면 
그에 초점을 맞추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달려나가는 활동을 하게 되는 사정이 
바로 한 단면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내용에 대해 
거꾸로 뒤집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상태에 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한마디로 
욕계에서 아무리 온갖 재주를 다 피워도 
파순의 밥이 되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끔 도움을 주려고 
수행자가 임하면 
욕계의 최고지위에 있는 파순이 
가장 신경을 쓰는 사정이 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파순 생각해서 
욕계에서 생사에 그대로 묶여 지내고 
생사묶임에서 벗어날 수행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수행자는 사실 
파순부터 더 높은 수준이 되게끔 하고 
이로 인해 모든 중생이 다함께 그런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한 단면에서 
자신이 눈을떠 무언가를 보는 내용을 놓고 
그 정체가 무언가부터 잘 확인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을 □라고 표시할 때 
이 □ 안에 자신이 놓여 있다고 
거꾸로 뒤집혀 이를 판단하는 것부터가 
이미 욕계에 붙잡혀 있고 또 파순에게 묶여 있고 
그래서 그런 사정으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끔 되어 있어서 
묶인 증상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래는 대충 앞과 같은 내용을 제시하면 
바로 풀려나야 하는데도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런 접속사를 계속 붙이면서 
기존에 가졌던 망집을 고집하고 
증폭시켜 나가게 되는 것이 일반이다. 

그것은 앞의 비유로 돌아가 표현하면 
낙타가 자신이 짐을 많이 지고 카라반을 따라 다니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낙타 뒤를 이어 
짐을 지고 가는 낙타도 또 마찬가지다. 
그것이 망상분별인 것이다. 
이 비유에서는 카라반이 주인이라고 할 것인데 
알고보면 욕계에서는 그런 카라반도 낙타의 상황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주의 성주괴공을 수없이 경험한 관세음보살은 
자신이 처음 수행을 시작한 보타락가산이 
우주가 성주괴공을 반복할 때마다 
매번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난다는 것을 본다고 하는데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하는 것은 그런 바탕인 것이다. 
이는 매 생마다 새로 짐을 지고 이곳 저곳으로 힘들여 옮겨 놓고
생을 마치는 낙타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수많은 빌딩을 소유하고 호텔을 경영하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입장은 정작 팔지는 못하지만, 사용을 자유롭게 하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입장은 소유는 하지만 정작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빌딩을 많이 소유하고 소득도 많고 이것저것 많이 재화를 
갖고 지내는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를 통해 평안한 마음으로 행복을 얻고
사후에 좋은 세계로 옮겨 가는 경우는 대단히 드문 것이다.
모든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는 과정에서는 
결국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으로 
또 임하기에 이런 측면에서 대할 부분이 있기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보면 유마경등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욕계의 파순이란, 수행단계가 대단히 높은 수행자가
그런 형태로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하는 것으로 제시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고 
쓸데없는 티끌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어 
우주보다 가치있는 것을 담을 수 있는 마음에 
쓸데없는 쓰레기만 가득채우고 현실에 임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 현상과 관련해 앞에 제시한 논의 주제들을 놓고 
깊이 잘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제시한 몇몇 논의주제를 
따로 떼어 아래에 살피려다가 
그것보다는 그런 내용이 제시된 부분에 바로 붙여서 
간단하게 살피는 것이 낫다고 보고 
해당 부분에 바로 내용을 붙였다. 

그래서 결국 그런 주제는 간단히 미리 살피고 
이제 본 논의주제를 살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미 새 예약글이 올려져 있으므로 
이는 장소를 옮겨서 이어 살펴나가기로 한다. 
대강 살피면 
한 주체가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눈을 떠 □ 라는 내용을 얻을 때 
그렇게 된 과정을 
과연 □ 안에서 찾아 제시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이런 문제다. 

그래서 한 주체가 □ 을 얻는 원인을 제시하는 입장 가운데 
다양한 입장이 있음을 이미 제시했는데 
이와 관련해 각 입장마다 어떤 문제와 사정이 있는가를 
이후에 살펴나가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137#969
sfed--국왕불리선니십몽경_K0758_T0148.txt
sfd8--불교단상_2562_09.txt ☞◆vlhm9696
불기2562-09-16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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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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