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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5-01-06_대방광불화엄경-K1262-034 본문
『대방광불화엄경』
K1262
T0293
제34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대방광불화엄경』 ♣1262-034♧
제34권
❋본문
◎[개별논의]
○ 2019_0113_111242_nik_ct18_s12
○ 2019_0113_111552_nik_ct31
○ 2019_0113_130415_nik_ct8_s12
○ 2019_0801_135139_nik_BW22
○ 2019_0113_113646_nik_AB4_s12
○ 2020_1125_153728_can_Ab31
○ 2019_0113_111703_nik_AR25
○ 2019_0113_133130_nik_ar6
○ 2020_1125_134720_can_ar22
○ 2020_1125_135241_can_ab44
○ 2020_1125_135603_can_ar24
○ 2020_1125_135241_can_AB7_s12
○ 2019_0801_080424_can_ar36
○ 2019_0113_131549_can_bw0_s12
○ 2019_0113_125304_can_ab41_s12
○ 2020_1125_143608_nik_bw0_s12
○ 2020_1125_144105_nik_BW22
○ 2019_0113_124314_can_ab41_s12
○ 2019_0113_131254_nik_ct9_s12
○ 2020_1125_125442_nik_Ab35
○ 2020_1125_131615_nik_ar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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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方廣佛華嚴經卷第三十四
K1262
대방광불화엄경 제34권
계빈국삼장 반야 한역
이운허 번역
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한 번 먹음을 원만하게 성취하나니,
하나는 먹을 적에 성품이 탐하지 않음을 성취하고, ◂
하나는 먹을 적에 성품이 탐하지 않음을 성취하고, ◂
둘은 먹을 적에 성품이 물들지 않음을 성취하고,
셋은 밥을 얻을 때마다 만족함을 알고,
넷은 먹을 때를 의지하고 때 아닐 적에 떨어지지 말며,
다섯은 이롭게 공양하기 위한 것은 먹지 말고,
여섯은 맛나는 음식을 만나도 먹지 아니하고,
일곱은 다른 이가 먹는 것을 보고 성내지 아니하고,
여덟은 다른 이가 먹는 것을 시기하지 아니하고,
아홉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도 한 번만 먹고,
열은 먹을 적에 약이란 생각을 낼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이 열 가지 법으로 한 번 먹는 묘한 행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아란야 법을 원만하나니,
하나는 오래도록 범행(梵行) 닦음을 성취하고,
둘은 깨끗한 계율과 행동을 성취하고,
셋은 모든 감관이 산란하지 않음을 성취하고,
넷은 많이 듣기를 좋아함을 성취하고,
다섯은 온갖 곳에 두루한 힘을 성취하고,
여섯은 나라는 집착 여읨을 성취하고,
일곱은 몸을 헤아리지 않음을 성취하고,
여덟은 항상 멀리 여읨을 성취하고,
아홉은 바른 법이 앞에 나타남을 성취하고,
열은 혼자 있기 좋아함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오래도록 범행을 닦음이며 내지 혼자 있기 좋아함을 성취함인가 하면,
이와 같이 보살이 출가하고는 부처님의 말씀하신 교법에서 삼륜(三輪)을 구족하여 계율의 인(印)이 깨끗하며,
모든 계율에서 공교함을 얻어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니,
이치의 공교함을 따라 행을 닦고 글의 공교함을 따라 지니고 잊지 아니하며,
벗어나는 중요한 도(道)에는 공교하게 순종하며,
다섯 가지 범한 죄[五犯聚]를 공교하게 참회하며,
가고 머무는 데 범죄의 경계를 여의며,
나쁜 사람에게는 항상 두려워하며 내지 조그만 죄라도 숨기지 아니하며,
여러 가지 배울 곳에 죄 있고 죄 없음을 잘 알며,
이와 같은 등의 업의 오래고 짧음을 알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졌다가도 다시 인간에나 천상에 나며,
이와 같이 보살이 육근(六根)을 잘 조복하여 산란하지 않게 되며,
이러한 방편으로 아란야에 머물러 시끄럽지 않고 허물 없을 데 있으며,
사람들이 사는 지경에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성읍(城邑)을 멀리하지도 말아 걸식하기에 편하게 하며,
약풀이 많고 샘과 냇물이 맑고 나쁜 짐승이 없고 고요한 곳을 의지하여 머물며,
외우고 익힐 것을 부지런히 힘쓰며 읽을 때에는 숨을 고르게 하며,
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하고 마음으로 바깥 것을 반연하지 말며,
오로지 기억하기를 힘쓰고 글과 뜻을 생각하여 혼미하고[惛] 딴 생각함[掉]을 여의고 지(止)와 관(觀)과 서로 응하게 할 것이다.
만일 재상이나 바라문이 오거든 오는 이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먼저 문안하며 편안히 앉게 하고,
▸ 그 근성을 살펴보고,
바른 법을 설하여 즐겁게 믿고 행을 닦게 할 것이며, ◂
바른 법을 설하여 즐겁게 믿고 행을 닦게 할 것이며, ◂
만일 임금이 오거든 잘 맞아들이고 방편으로 뜻을 받들어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이 자리에 앉으소서’라고 할 것이며,
왕이 앉은 뒤에는 그 하고자 함을 물어 모두 이바지하며,
그 임금이 믿는 마음이 없거든 좋은 말로 왕의 덕을 찬탄하되 ‘대왕을 뵈옵건대 좋은 이익을 얻겠나이다.
지금 대왕의 국경 안에 계행을 가지고 학식이 풍부한 사문과 바라문의 훌륭한 복밭이 있사오며,
대왕의 위력으로 도적이 침범하지 못하고,
대왕의 덕화로 영악한 짐승들이 멀리 피하였나이다’라고 하여,
왕이 듣고 기뻐하며 여러 기관이 조복하고 마음이 고요하여져서 부처님 법을 감당할 만하면,
가지가지 바른 법을 연설하라.
혹은 나고 죽는 법을 싫어해야 한다고 말하며,
혹은 여래의 공덕을 말하며,
뛰어나게 자재함과 묘한 법으로써 이렇게 여러 사람을 모두 기쁘게 하며,
보살이 많이 아는 것과 온갖 곳에 두루하는 힘을 이루어 바른 행을 닦을 만하며,
보살이 제가 이익되고 남을 이롭게 함을 성취하며,
나[我]라고 집착하는 번뇌를 여의고,
보살이 몸을 헤아리지 않음을 성취하여 아란야에서 두려워함이 없으며,
보살이 멀리 여의기 좋아함을 성취하여 아란야에 머물러 마음이 고요하며,
보살이 바른 법이 앞에 나타남을 성취하여 모든 세간을 모두 버리며,
보살이 혼자 있기 좋아함을 성취하여 마치 사슴과 같아서 아무 공포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여 아란야에 머무는 묘한 행의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나무 아래 앉음을 성취하나니,
하나는 거리와 마을을 가까이 하지 않고,
둘은 성읍(城邑)이 너무 먼 곳을 의지하지 않고,
셋은 가시덤불 많은 데를 의지하지 않고,
넷은 독한 풀이 많은 데를 의지하지 않고,
다섯은 가지 없는 나무를 의지하지 않고,
여섯은 원숭이 많은 데를 의지하지 않고,
일곱은 뭇 새가 모이는 데를 의지하지 않고,
여덟은 악한 짐승 있는 데를 의지하지 않고,
아홉은 도둑 가까운 데를 의지하지 않고,
열은 법답지 않은 나쁜 짓 하는 데를 의지하지 않음이니,
이러한 곳은 모두 의지하지 말지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 수행하기 알맞는 데에 머물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여 나무 아래 앉은 묘한 행의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한데[露地]에 앉음을 원만하느니라.
하나는 추운 철ㆍ더운 철ㆍ장마철을 따라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둘은 담벽을 의지하지 않고,
셋은 나무숲을 의지하지 않고,
넷은 풀 덩굴을 의지하지 않고,
다섯은 위험한 데를 의지하지 않고,
여섯은 추워도 가리지 않고,
일곱은 비가 와도 가리지 않고,
여덟은 더워도 가리지 않고,
아홉은 바람도 가리지 않고,
열은 병이 들면 방에 있어야 하나니,
보살이 항상 생각하기를,
‘한데에 앉으면 바른 생각이 앞에 나타나고 행을 닦는 대로 번뇌가 빨리 없어진다.
부처님이 말씀한 두타의 공덕을 따라 나는 부지런히 구하여 원만함을 얻으리니,
설사 방에 있더라도 탐내지 말며,
여기가 좋고 거기는 나쁘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또 생각하기를,
‘내가 방에 있는 것은 모든 복을 닦는 중생들을 이익하려는 것이니,
한데에 있는 것은 큰 이익이 되지 못한다.
또 한데에 앉는 것은 내게는 이익하지만 다른 이를 이익케 하지 못하리라’ 하고는 저 보살은 비록 방에 있으나 밤낮으로 한데에 앉는 생각을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여 한데에 앉는 묘한 행의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무덤 사이에 있음을 성취하느니라.
하나는 세간을 여의는 생각이요,
둘은 죽는 모양이 앞에 나타나는 생각이요,
셋은 처음 죽어 아직 무너지지 않는 생각이요,
넷은 푸릇푸릇 멍든 것이 앞에 나타나는 생각이요,
다섯은 퉁퉁 부은 꼴이 앞에 나타나는 생각이요,
여섯은 추깃물이 흐르고 썩는 생각이요,
일곱은 새 짐승이 뜯어먹는 생각이요,
여덟은 화장하여 반쯤 타는 생각이요,
아홉은 사지와 골절이 따로따로 떨어지는 생각이요,
열은 백골이 앞에 나타나는 생각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일 무덤 사이에 있을 적에는,
중생들에게 자애한 마음과 이익하려는 마음을 두며,
계행을 깨끗이 지니고 위의를 잘 보호하며,
몸을 깨끗이 씻고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시다림(尸陀林)속에 있으려면 두 가지 허물을 방비할 것이니,
하나는 외도들의 비방을 여의고,
둘은 사람 아닌 것들의 짬을 타지 못하게 함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절에 들어가려면 불탑과 형상들에게 먼저 예배하고,
윗자리ㆍ중간자리ㆍ아랫자리에 적당하게 예배할 것이며,
그리고 나서는 마땅히 법식을 지켜야 하리니,
무덤 사이에 있는 보살들은 나고 죽는 흐름을 거슬러 성인의 법을 따르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저 보살이 절에 들어오면 먼저 있는 비구들은 자리를 차리고 앉게 할 것이며,
보살은 잘 살펴보아서 불편한 일이 있으면 일을 따라 생각할 것이요,
불편이 없으면 자리에 앉으며,
이렇게 마음을 겸손할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여 무덤 사이에 있는 묘한 행의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늘 앉는 일[常坐]을 원만히 성취하느니라.
하나는 몸이 고달프지 않고,
둘은 마음이 시끄럽지 않고,
셋은 게을러 빠져 잠자지 않고,
넷은 오래 서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다섯은 보리의 법을 만족하려 하고,
여섯은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름을 닦고,
일곱은 바른 도가 앞에 나타남을 구하고,
여덟은 보리 도량에 앉으려 하고,
아홉은 중생들을 이익하려 하고,
열은 번뇌를 없애려 함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법을 구족하여 늘 앉는 묘한 행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따라 앉는[隨坐] 일을 원만히 성취하느니라.
하나는 자리를 만나는 대로 앉고 탐하는 마음이 없으며,
둘은 미리 깐 자리에 앉고 스스로 펴지 않으며,
셋은 남을 시켜 자리를 일부러 펴지 않고,
넷은 까는 자리에 인연을 짓지 않고,
다섯은 풀이니 가랑잎을 만나는 대로 앉고,
여섯은 독 벌레 있는 데를 피하고,
일곱은 누으려 할 적에는 오른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여덟은 방일한 마음이 없이때 맞추어 일어나고,
아홉은 생각을 밝은 데 두면서 법을 따라 쉬고,
열은 행을 닦기 위하여 몸을 편안케 하는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법을 구족하여 따라 앉는 묘한 행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열두 가지 두타의 공덕을 보살이 닦아서 구족하게 성취하면,
모든 선지식의 법이 원만하고 청정해서,
모든 선지식의 법에서 영원히 물러가지 아니하느니라.”
그때에 선재동자는 이 깨끗하고 묘한 행인 두타의 공덕과 가지가지로 선지식을 찬탄함과 가지가지로 보살의 행을 따르며,
온갖 부처님의 법을 나타내어 보임을 듣고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기뻐서 뛰놀며 공경하는 마음이 빨리 늘어서,
동자와 동녀의 발에 절하고 한량없이 돌고 은근하게 우러러보고 일심으로 사모하면서 하직하고 떠났다.
60. 미륵보살을 찾다
1) 의보를 보고 찬탄
선재동자는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마음이 윤택하였고,
바른 생각으로 보살의 행을 생각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 바닷가의 나라로 향하였다.
지나간 세상에 수없이 나고 죽으면서 예경을 닦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스스로 책망하면서 부지런히 행하며,
또 지나간 세상에 오래도록 바퀴 돌듯 하면서 몸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함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스스로 깨끗이 하여 저 언덕에 이르기를 원하며,
또 지나간 세상에 세간을 따라 나쁜 짓 한 것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바른 생각으로 보살들의 행을 관찰하며,
또 지나간 세상에서 번뇌가 마음을 덮어 허망한 생각을 일으킨 것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모든 법의 참된 성품을 바로 생각하며,
또 지나간 세상에서 닦은 행이 제 몸만 위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마음을 넓혀 중생들에게 미치며,
또 지나간 세상에서 탐욕의 경계를 구하여 스스로 소모하던 줄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부처님 법을 닦아 모든 감관을 기르며,
또 지나간 세상에서 잘못된 소견으로 생각이 뒤바뀌던 것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바른 소견으로 보살의 소원을 일으키며,
또 지나간 세상에서 밤낮으로 애를 써서 나쁜 짓 하던 일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크게 정진하여 부처님 법을 성취하며,
또 지나간 세상에서 다섯 갈래[五趣]로 태어나면서 자기와 남에게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을 기억하고,
곧 뜻을 내어 자기의 몸으로 중생들을 이익하여 부처님 법을 성취하기를 원하며,
모든 중생의 선근을 일으키고 온갖 선지식을 섬기며,
언제나 정당한 서원과 서로 응하려 하여,
이렇게 생각하고 기뻐하였다.
또 이 몸이 끝없는 옛적부터 항상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은혜와 애정을 이별하는 따위의 고통 받는 근본이 되었던 것을 관찰하고,
이제부터는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보살의 도를 닦아서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케 하며,
여래를 뵈옵고 부처님 법을 성취하며,
온갖 부처님 세계로 다니면서 법문을 연설하는 모든 법사를 섬기며,
모든 여래의 바른 교법을 유지하며,
바른 법을 닦는 모든 도반을 찾으며,
온갖 선지식을 보고 온갖 부처님 법을 모으며,
모든 보살의 원력과 지혜의 몸으로 더불어 인연을 지으려고 원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할 때에 헤아릴 수 없는 선근이 빨리 자라고,
모든 보살에 대하여 깊이 믿고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어,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고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내었으며,
모든 감관이 깨끗하여 선한 법이 늘었고,
모든 보살의 공경하고 공양하던 것을 일으키며,
모든 보살의 허리를 굽혀 합장함을 지으며,
모든 보살의 세간을 두루 보는 눈을 내며,
모든 보살의 중생을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모든 보살의 한량없이 평등한 문에 들어가며,
모든 보살의 한량없는 원력과 화신을 나타내며,
모든 보살의 깨끗한 말을 내며,
모든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려고 원하며,
지난 세상 지금 세상의 부처님들과 보살들의 위엄과 공덕이 원만하며,
온갖 곳에서 보리를 이루던 신통 변화를 나타내며,
내지 한 털끝만한 곳에도 부처님과 보살의 몸이 두루하지 않으신 데 없음을 뵈오려 하였으며,
또 보살들의 광명한 지혜 눈을 얻어서 모든 보살의 행하는 경계를 보며,
그 마음이 시방세계에 들어가고 원력이 허공의 법계에까지 두루하며,
끝없는 세계의 빈틈 없는 곳에서 삼세가 평등하여 분별이 없는 행을 닦아서 서로 계속하여 쉬지 않으며,
깊고 깊은 온갖 법문에 두루 들어가려 하였으니,
이러한 서원은 모두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믿은 까닭이었다.
선재동자는 이러한 존중과 이러한 공양과 이러한 칭찬과 이러한 관찰과 이러한 가지(加持)와 이러한 원력과 이러한 생각과 이러한 순종과 이렇게 생각함과 이렇게 한량없이 가득한 지혜 경계로써,
비로자나 장엄장 큰 누각 앞에서 오체(五體)를 땅에 대어 공경하고 예배하였다.
잠깐 동안 마음을 거두고 생각하며 관찰하여,
엄청난 믿음과 훌륭한 알음알이와 굉장한 원력을 일으켰으며,
몸을 변화하여 온갖 곳에 두루하며,
지혜 몸에 들어가 평등한 문에 머물며,
널리 몸을 나타내어 모든 여래의 앞과 모든 보살의 앞과
모든 선지식의 앞과 모든 여래의 탑 앞과 모든 여래의 형상 앞과
모든 부처님 모든 보살의 계신 데와
모든 법보를 모신 법당 앞과 모든 성문ㆍ벽지불 앞과 그의 탑 앞과
모든 거룩한 대중의 복밭 앞과 모든 부모와 존장의 앞과 모든 시방 중생의 몸 앞에 있으며
온갖 곳에 두루하여 모두 위에 말한 것같이 존중하고 예경하고 찬탄하며,
이렇게 모든 반연하는 가운데 가득하여 끊임없는 원력으로 가지(加持)하고 변화하며,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온갖 곳에 두루하여 쉬지 아니하였다.
허공과 평등하니 가이없는 까닭이며,
법계와 평등하니 장애가 없는 까닭이며,
실제와 평등하니 온갖 것에 두루 한 까닭이며,
여래와 평등하니 분별이 없는 까닭이며,
그림자와 같으니 지혜와 생각을 따라 나타나는 까닭이며,
꿈과 같으니 생각하는 따위를 따라 일어나는 까닭이며,
형상과 같으니 온갖 것을 표시하는 까닭이며,
메아리와 같으니 좋은 인연으로 나는 까닭이며,
나는 일이 없으니 번갈아 일어나고 없어지는 까닭이며,
모양이 없으니 마음을 응하여 변동하는 까닭이며,
성품이 없으니 인연을 따라 달라지는 까닭이다.
또 결정코 이러한 모든 과보가 업(業)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결과가 인(因)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업이 모두 습(習)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여래가 세상에 나시는 것이 신심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변화하여 생기는 공양거리가 모두 결정한 이해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여래의 변화하는 부처님이 모두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부처님 법이 모두 선근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화신 부처님이 방편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부처님 일이 모두 큰 서원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보살들의 닦는 행이 회향으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으며,
이러한 모든 법계의 광대한 장엄이 일체지의 경계로부터 일어남을 깊이 믿었다.
아주 없다는 소견을 여읨을 깊이 믿나니 회향을 아는 까닭이며,
늘 있다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나는 것이 없음을 아는 까닭이며,
인(因)이 없다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바른 인을 아는 까닭이며,
뒤바뀐 소견을 여의었으니 실제와 같은 이치를 아는 까닭이며,
자재하다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그를 말미암지 아니함을 아는 까닭이며,
나라는 소견과 남이라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연기(緣起)로부터 일어남을 아는 까닭이며,
모든 잘못된 소견을 여의었으니 원인과 결과의 힘을 아는 까닭이며,
한쪽 가를 고집하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법계가 가이없음을 아는 까닭이며,
가고 온다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그림자와 같음을 아는 까닭이며,
있다 없다 하는 소견을 여의었으니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음을 아는 까닭이며,
온갖 법이란 소견을 여의었으니 공하여 나는 것이 없음을 아는 까닭이며,
자재하지 못함을 아는 까닭이며,
원력으로 나는 것임을 아는 까닭이며,
온갖 모양이란 소견을 여의었으니 모양이 없는 짬[際]에 들어간 까닭이다.
온갖 법이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 같아서 없어지지 않음을 아는 때문이며,
인(印)이 글씨를 이루는 것 같아서 서로 계속하여 생김을 알기 때문이며,
바탕이 영상[像]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소리가 메아리와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경계가 꿈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업이 환술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세간이 마음으로 나타남을 알기 때문이며,
결과가 인으로 생김을 알기 때문이며,
과보가 업이 모여 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며,
모든 공덕의 법이 모두 보살의 선교 방편으로 흘러 나옴인 줄을 알기 때문이며,
모든 법과 법 아닌 성품이 평등하게 앞에 나타나고 자라서 참된 법계를 성취함을 알기 때문이다.
선재동자가 이러한 지혜와 이러한 생각과 이러한 뜻에 들어가,
단정한 마음과 깨끗한 생각으로 누각 앞에서 온몸을 땅에 대고 예배하니,
헤아릴 수 없는 선근이 빨리 앞에 나타나 몸과 마음에 흘러 넘치어 서늘하고 즐거웠다.
그 뒤에 조심스레 땅에서 일어나 일심으로 우러러보고 잠깐도 한눈 팔지 아니하면서 합장하고
훌륭하게 장엄한 비로자나 큰 누각을 한량없이 돌고,
뜻을 일깨워 생각하며,
깊은 마음을 일으켜서 허리를 굽히고 공경하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누각은 공(空)하고,
모양이 없고[無相],
원함이 없는[無願] 깊고 깊은 삼해탈문을 아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법의 성품을 잘 알아서 분별이 없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법계의 근본 짬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아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중생의 세계가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아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법이 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없어짐이 없는 줄을 아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세간에 고집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굴택을 고집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촌락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경계를 의지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모양을 멀리 여읜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허망한 생각을 깨뜨린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아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차별한 업을 끊은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마음과 뜻과 인식을 여읜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법에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에 들어간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넓은 문의 법계에 방편으로 편안히 머무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번뇌의 불을 고요하게 없앤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훌륭한 지혜로 모든 소견과 사랑과 교만을 끊은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선정과 해탈과 평등하게 지님과 평등하게 이름과 삼매와 신통과 밝은 지혜를 내면서 유희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큰 보살들의 삼매의 경계를 관찰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여래가 계신 곳에 있으면서 가까이 모시고 의지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한 겁을 모든 겁에 넣고 모든 겁을 한 겁에 넣으면서도,
그 모양을 파괴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한 세계를 모든 세계에 넣고 모든 세계를 한 세계에 넣으면서도 그 모양을 파괴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한 법을 온갖 법에 넣고 온갖 법을 한 법에 넣으면서도 어지럽고 섞이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한 중생을 온갖 중생에게 넣고 온갖 중생을 한 중생에게 넣으면서도,
그 모양을 파괴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한 부처님을 온갖 부처님께 넣고 온갖 부처님을 한 부처님께 넣으면서도,
그 모양을 파괴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잠깐 동안에 모든 삼세를 아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잠깐 동안에 온갖 세계에 가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중생의 앞에 몸을 나타내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마음이 항상 온갖 세간을 이익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자재한 힘을 얻어서 온갖 곳에 두루 이르는 이가 있는 곳이다.
이 큰 누각은 비록 모든 세간에서 벗어났으나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 가운데 항상 몸을 나타내고 떠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세계에 의지하지 아니하면서도 부처님들께 공양하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 세계에 다니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본래의 처소를 떠나지 아니하고,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나아가 장엄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부처님을 두루 가까이 모시면서도 부처님이란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선지식을 두루 의지하면서도 선지식이란 생각을 내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마군의 궁전에 있으면서도 욕심 경계를 탐내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마음과 뜻과 인식의 법을 알면서도 온갖 마음과 생각이란 소견을 여읜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온갖 중생 가운데 몸을 나타내면서도 자기와 남에게 대하여 두 모양이란 생각을 내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모든 세계에 두루 들어가면서도 법계에 차별한 모양이 없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오는 세상의 모든 겁에 머물기를 원하면서도 모든 겁에 대하여,
오래다 짧다 하는 생각이 없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한 털끝을 떠나지 않고서도 몸을 널리 나타내어 시방의 온갖 세계를 순종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이 큰 누각은 만나기 어려운 법을 능히 연설하는 이가 있는 곳이다.
이 큰 누각은 알기 어려운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깊고 깊은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둘이 아닌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모양 없는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상대하여 다스릴 수 없는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얻을 것 없는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희론(戲論)이 없는 법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대자대비에 편안히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이승들의 아는 경계를 넘어선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마군의 경계를 넘어선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보살들이 이르러 간 언덕에 이미 이른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여래가 머무는 곳에 이미 머문 이가 있는 곳이며,
온갖 모양을 이미 여의었지만 성문의 바른 자리[正位]에 들어가지 아니한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법이 나는 일이 없는 줄을 알지만 생멸이 없는 법의 성품에 머물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탐욕이 부정한 줄을 관찰하였지만 탐욕 여의는 법을 증득하지도 않고 탐욕과 함께하지도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자비를 닦지만 성내지 않는 법을 증득하지도 않고 성내는 것과 함께하지도 않는 이가 있는 곳이다.
비록 온갖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관찰하지만 어리석지 않는 법을 증득하지도 않고 어리석은 번뇌와 함께하지도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사선(四禪)에 머물지만 큰 대비(大悲)의 원력으로 선정을 따라 태어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머물면서도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색계(色界)에 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닦았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무색계(無色界)에 머물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선정[止]ㆍ지혜[觀]를 부지런히 닦지만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밝음과 벗어남[明脫]을 증득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버림[捨]을 행하면서도 대비(大悲)로써 온갖 중생의 일을 버리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공한 줄을 관찰하지만 공한 소견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모양 없음[無相]을 행하지만 항상 모양에 고집하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소원이 없음을 행하지만 보리의 모든 행과 원을 버리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업과 번뇌 속에서 자재함을 얻었지만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숙하기 위하여 업과 번뇌를 따르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나고 죽음이 없지만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일부러 나고 죽는 데 태어나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모든 갈래를 여의었지만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일부러 여러 갈래에 들어감을 보이는 이가 있는 곳이다.
비록 사랑함[慈]을 행하지만 중생들에게 사랑하고 그리움[愛戀]이 없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불쌍히 여김[悲]을 행하지만 중생들에게 집착함이 없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기뻐함[喜]을 행하지만 고통 받는 중생을 보고 항상 가엾이 여기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버림[捨]을 행하지만 중생들을 이익케 하는 일을 버리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구차제정(九次第定)을 행하지만 욕계(欲界)에 태어나기를 싫어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줄을 알지만 참된 짬을 증득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삼해탈문에 들어갔으나 성문의 해탈을 취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사성제(四聖諦)를 관찰하지만 소승 성스러운 과[小乘聖果]에 머물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깊고 깊은 인연으로 일어나는 법을 관찰하지만 끝까지 고요한 데에 머물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팔성도(八聖道)를 닦지만 영원히 세간에서 벗어남을 구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범부의 처지를 벗어났으나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오취온(五取蘊)을 관찰하지만 모든 온을 영원히 멸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네 가지 마군을 뛰어났으나 마군의 경계를 분별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육처(六處)에 집착하지 않으나 육처를 아주 멸하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진여에 머물지만 참된 짬에 떨어지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며,
비록 온갖 승 [一切乘]을 말하지만 대승(大乘)을 버리지 않는 이가 있는 곳이니,
이 큰 누각은 이러한 한량없는 모든 공덕에 머무는 이가 있는 곳이다.’
2) 게송으로 찬탄
이때에 선재동자는 합장하고 우러러보면서 일심으로 게송으로써 말하였다.
이 누각은 대비(大悲)와 청정한 지혜로
세상을 이익하는 미륵보살님
정수리에 물을 부은 부처님 장자(長子)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시고
일체에 소문 나신 부처님 아들
지혜 경계 해탈문에 머물렀으며
법계에 다니면서 집착이 없어
같을 사람 없는 이가 머무시는 곳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과
지혜ㆍ방편ㆍ서원ㆍ힘ㆍ신통과
이러하게 대승의 모든 바라밀
골고루 구족한 이 머무시는 곳
지혜가 크고 넓어 허공과 같아
삼세의 온갖 법을 두루 아시며
걸림없고 의지 없고 취할 것 없어
모든 과보 아는 이가 머무시는 곳
모든 법이 성품 없고 나지도 않고
의지할 데 없는 줄을 분명히 알아
허공 나는 새와 같이 자재하여서
두려울 것 없는 이가 머무시는 곳
세 가지 독[三毒]의 참 성품 알고
허망하게 생긴 인연 분별하지만
싫다고 벗어나려 하지도 않아
고요함을 깨달은 이 머무시는 곳
세 가지 해탈문과 여덟 가지 길
모든 온(蘊)과 처(處)와 계(界)와 연기(緣起)들
다 알지만 고요한 데 가려 안 하며
좋은 방편 얻은 이가 머무시는 곳
시방의 모든 세계 수없는 중생
걸림없는 지혜로 모두 살피어
공한 성품 모두 알고 분별 없으며
열반을 얻은 이가 머무시는 곳
온 법계를 다 다녀도 걸림없으나
다니는 그 성품을 찾을 수 없고
허공에 부는 바람 가는 데 없어
의지한 데 없는 이가 머무시는 곳
나쁜 갈래 중생들을 모두 살피니
모진 고통 받으면서 갈 데 없는 이
자애 광명 널리 놓아 모두 다 소멸
어여쁘게 여기는 이 머무시는 곳
중생들이 바른 길을 잃어 버린 것
눈먼 이가 험한 길을 향해 가는 듯
인도하여 해탈성에 들게 하나니
길잡이 큰 스승이 머무시는 곳
중생들이 마군의 그물에 걸려
나고 늙고 죽는 일에 헤매는 이들
해탈을 얻게 하고 위로하나니
용맹한 대장부의 머무시는 곳
중생들이 미혹 병에 얽힘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는 큰 마음 내어
지혜 약인 감로수로 소멸케 하니
이렇게 큰 의사의 머무시는 곳
모든 중생 나고 죽는 바다에 빠져
근심 걱정 헤매면서 고통 받거든
자비한 법배로써 구제하나니
잘 건지어 주는 이가 머무시는 곳
중생들이 미혹 바다 헤매이다가
훌륭한 보리 마음 내는 걸 보고
그 가운데 뛰어들어 구제하나니
고기를 잘 잡는 이 머무시는 곳
언제나 큰 원력과 자비하신 눈
일체의 모든 중생 살펴보다가
죽고 사는 바다에서 건져 내나니
금시조(金翅鳥) 가루라왕 머무시는 곳
해와 달이 허공 중에 높이 떴을 때
온 세계에 안 비치는 곳이 없듯이
서원과 지혜 광명 그와 같나니
이 세상을 비치는 이 머무시는 곳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려고
오는 세상 끝나도록 애를 쓰거든
그와 같이 온 중생을 그렇게 하니
세상을 구하는 이 머무시는 곳
한 세계의 중생들을 교화하려고
오는 세월 끝나도록 쉬지 않거든
그와 같이 시방세계 그렇게 하니
견고한 뜻 가진 이가 머무시는 곳
시방세계 부처님들 많은 법문을
한 번 앉아 죄다 듣고 남김 없으며
오는 세월 끝나도록 싫지 않나니
지혜 바다 밝은 이가 머무시는 곳
한량없는 세계 바다 두루 다니며
여러 도량 바다마다 모두 들어가
그지없는 여래께 공양하시니
이런 행을 닦는 이가 머무시는 곳
한량없는 수행 바다 모두 닦으며
끝이 없는 서원 바다 일으키어서
그지없는 겁 바다를 지나가나니
이런 공덕 쌓은 이가 머무시는 곳
한 털끝에 한량없는 세계가 있고
세계마다 부처님과 중생과 겁(劫)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모두 보나니
막힘 없는 눈 가진 이 머무시는 곳
한 생각에 한량없는 겁을 거두고
부처님과 세계 중생 다 그렇거든
복과 지혜 걸림없는 바라밀 행
이런 공덕 갖춘 이가 머무시는 곳
시방세계 모두 부숴 티끌이 되고
온 세계의 바닷물을 털로 찍어도
보살의 세운 원력 이보다 많아
걸림없이 행하는 이 머무시는 곳
다라니와 삼매문을 모두 이루고
큰 원력과 모든 선정 해탈문까지
하나하나 가이없는 겁을 지나니
부처님의 참 아들이 머무시는 곳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제자
가지가지 법을 말해 중생 건지고
이 세상의 모든 기술 연설하나니
이런 행을 닦는 이가 머무시는 곳
신통 변화 방편 지혜 모두 이루고
환술 같은 묘한 법문 닦아 행하며
시방 세계 다섯 갈래 태어나나니
걸림없이 행하는 이 머무시는 곳
보살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구족하게 온갖 행을 닦아 행하며
한량없는 화신으로 법계에 가득
이런 신통 가진 이가 머무시는 곳
한 생각에 보리도를 모두 이루고
끝이 없는 지혜 업을 널리 짓는 일
세상 사람 생각하면 발광하리니
헤아릴 수 없는 이가 머무시는 곳
장애 없는 큰 신통을 모두 이루고
온 법계를 고루고루 다 다녔지만
마음 속엔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어
맑은 지혜 가진 이가 머무시는 곳
보살들이 걸림없는 행을 닦아서
모든 세계 간 데마다 집착이 없고
둘이 없는 지혜로써 널리 비치니
나란 소견 없는 이가 머무시는 곳
허공 같은 성품 아는 평등한 지혜
본래부터 고요하여 의지 없거든
이와 같은 경계 속에 늘 다니나니
때를 여읜 깨끗한 이 머무시는 곳
중생들이 갖은 고통 받음을 보고
큰 지혜와 자비하온 마음을 내어
온 세간을 이익하려 항상 원하니
어여쁘게 여기는 이 머무시는 곳
부처 장자(長子) 여기 있어
중생 앞에 나타나기
허공에 뜬 해와 달처럼
나고 죽는 어둠 깨쳐
부처 장자 여기 있어
중생들의 마음 따라
한량없는 몸을 변해
시방세계 가득하네.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모든 세계 여래께
찾아가는 많은 세월
한량없고 셀 수 없어.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부처 경계 헤아리기
한량없는 오랜 겁에
게으른 줄 모르매라.
부처 장자 여기 있어
삼매문에 항상 들고
하나하나 삼매에서
부처 경계 밝히시다.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모든 세계 많은 세월
중생들과 부처 이름
분명하게 모두 알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한 생각에 많은 세월
허망한 맘 다 여의고
중생들을 따라 주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모든 삼매 다 익히고
하나하나 마음 속에
삼세 법을 모두 알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결가부좌하고 앉아
온갖 세계 나타나서
모든 중생 이롭게 하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불법 바다 물을 먹고
지혜 바다 들어가서
공덕 바다 구족하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모든 세계 수효들과
세월 수효 중생 수효
부처님들 수효 알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세 세상의 온갖 세계
생겨나고 무너짐을
한 생각에 모두 알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부처님들 행과 원과
보살들의 닦는 행과
중생 근성 모두 알고
부처 장자 여기 있어
티끌 속에 많은 세계
도량들과 중생들과
모든 겁을 죄다 보고
한 티끌 속 보는 듯이
온갖 티끌 모두 보며
가지가지 다 갖추어
간 데마다 걸림없네.
부처 장자 여기 있어
온갖 법과 중생 국토와
세간들을 모두 보니
나도 않고 있도 않아
중생 평등 법도 평등
여래 평등 세계 평등
서원 평등 세 세상이
모두 평등함을 보네.
부처 장자 여기 있어
중생들을 교화하고
여래께 공양하며
법의 성품 생각하고
한량없는 천만 겁에
닦은 행과 원과 지혜
엄청나고 한량없어
이루 칭찬할 수 없네.
저러하게 용맹하고
걸림없이 행하는 이
이 가운데 계시오매
합장하고 절합니다.
부처님의 장자시고
거룩하신 미륵보살
예경하는 이내 마음
굽어 살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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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투(慳妒) :
앞글자는 고(苦)와 한(閑)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당(當)과 고(故)의 반절이다.
풍송(諷誦) :
앞글자는 방(方)과 봉(鳳)의 반절이다.
혼도(惛掉) :
앞글자는 호(呼)와 곤(昆)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도(徒)와 조(弔)의 반절이다.
문신(問訊) :
뒷글자는 음이 신(信)이다.
침요(侵擾) :
뒷글자는 음이 요(遶)이다.
원유(猿狖) :
앞글자는 음이 원(園)이고,
뒷글자는 여(余)와 구(救)의 반절이다.
청어(靑瘀) :
뒷글자는 의(依)와 거(據)의 반절이다.
방창(胮脹) :
앞글자는 필(匹)과 강(江)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지(知)와 량(亮)의 반절이다.
골쇄(骨鎖) :
뒷글자는 소(蘇)와 과(果)의 반절이다.
조결(澡潔) :
앞글자는 조(早)이고,
뒷글자는 음이 결(結)이다.
극책(剋責) :
앞글자는 고(苦)와 득(得)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측(側)과 혁(革)의 반절이다.
염념(斂念) :
앞글자는 량(良)과 염(染)의 반절이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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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Gilbert Becaud - La Vente Aux Encheres.lrc
● 산같이 쌓여 있는 음미해야 할 단어들
대승 경전은 방대하다.
한 문장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그런 내용이 산더미처럼 함께 제시된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또 같은 항목이 같은 형식으로 대단히 많이 반복된다.
『대방광불화엄경』은 매번 10 개씩 묶여서 매번 다른 형태로 대단히 많이 나열된다.
현실에서 대부분 바삐 분주하게 생활한다.
그래서 경전을 펼쳐 살필 시간적 여유가 대부분 없다.
그런 가운데 이런 형태의 경전을 대해 살피기 힘들다.
그것이 또 한편 업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사정으로 수행도 일정한 차례가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도 그런 사정으로
처음에는 차제적인 수행과 그에 따른 차별적인 수행결과를 제시한다.
그런데 또 한편 이런 다양한 수행은
동시에 병행하며 종합적으로 원만하게 행할 수도 있다.
이것은 대단히 수준이 높은 수행 상태다.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수행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다.
어떤 운동경기가 있다고 하자.
손은 이렇게 자세를 취하고
허리는 이렇게 자세를 취하고
다리는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 경우 처음에는 우선 손 동작부터 익혀야 한다.
그런데 손 동작에 마음을 기울이면 허리나 다리자세가 엉망이 된다.
그래서 이제 허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러면 기껏 익힌 손이나 발 동작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 단계가 되면
그 자세가 종합적으로 모두 함께 잘 이뤄진다.
처음에 계행을 성취하지 않으면 업장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면 사역을 당하는 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심하면 3 악도에 들어가 묶여 지내야 한다.
그래서 계행을 먼저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업장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복덕자량을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복덕자량이 쌓여야 그 바탕에서 지혜자량을 쌓아갈 수 있다.
당장 번뇌에 묶여서 사역을 당해 분주하게 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는 정려 수행을 할 도리가 없다.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려 수행을 하기 힘든 것과 사정이 같다.
정려 수행을 해야 반야 지혜를 닦을 바탕이 마련된다.
그런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한 무량한 방편 지혜를 닦아야 한다.
그래서 수행에 일정한 차례와 단계가 있다.
그러나 수행이 원만해지면 이 모두를 동시에 함께 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려 수행조차도 반드시 앉아서 행하지 않아도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는 힘들다.
그러나 문수보살님은 그런 입장에서 행주좌와 어느 경우에도 정려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본래는 지옥에 들어간 상황에서 수행하고 벗어나기가 대단히 힘들다.
그런데 문수보살님은 그런 상황에 들어가 제도도 한다.
경우따라 다르다.
『대방광불화엄경』에 각 항목이 대단히 방대하게 나열된다.
그런데 그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면 그 내용이 대단히 깊다.
그러나 마음이 바쁘면 그것을 그렇게 대하기 힘들다.
마음이 달리는 말 상태가 되어서 바삐 읽어내려가기 쉽다.
그런 경우 좋은 내용은 많은 것 같으나 하나도 취해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단어 하나를 붙잡고 하루 종일 삼매에 들어 연구하는 것이 낫다.
현재 40 권본 화엄경은 80 권본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해당한다.
차제적인 수행 - 개별적인 수행결과
종합적이고 원만한 수행 - 종합적인 원만한 수행결과
이런 내용이 처음 제시된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 수행에 옮겨야 한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세간을 떠나 법계에 들어가 활동해야 한다.
선재동자가 보여주는 내용이 그런 내용이다.
여기에도 대단히 많은 내용이 나열된다.
이번에 대하는 부분에 다음 내용이 처음 나온다.
그리고 이하로 계속 내용이 나열된다.
그것을 죽 읽고 소화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희박하다.
그런 경우는 위 첫 문장에서 멈춰야 한다.
그리고 먹음 (식사)란 무엇인가를 놓고 오전 내내 깊게 생각해야 한다.
식사는 수행이나 생사현실과정에서나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런데 왜 한 번 먹으라고 하는가.
이런 것도 연구주제다.
이해가 되어야 실천에 옮겨진다.
막상 해보려면 쉽지 않다.
하루 종일 그렇게 노력하다 저녁 늦으면 어지럽게 되기도 한다.
마구 읽어 넘어 가기는 쉽다.
그런데 한 부분을 실천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그런 경우 한 단어 한 문장을 놓고 잘 음미하면서 살펴야 한다.
10 개씩 계속 나열되는 내용에 질리기 쉽다.
그런데 이는 무량한 관런 내용 가운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10 개를 뽑아 제시한 것이다.
처음 하나의 의미를 깊게 새기면 오히려 이렇게 간단하게 제시한 데 대해 아쉽게 느낄 수도 있다.
참고 용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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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Kekaya 하사(何事)라 번역. 서역 사람. 북위(北魏) 때 중국에 와서 472년(연흥 2) 북대(北臺)에서 담요(曇曜)와 함께 『잡보장경(雜寶藏經)』 8권, 『부법장인연경(付法藏因緣經)』 6권 등 5부 19권을 번역하였다.
답 후보
● 길가야(吉迦夜)
나제가섭(那提迦葉)
낙수(樂修)
난타(難陀)
남산(南山)
남악마전(南嶽磨磚)
남중삼교(南中三敎)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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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광불화엄경_K1262_T0293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한 문장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그런 내용이 산더미처럼 함께 제시된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또 같은 항목이 같은 형식으로 대단히 많이 반복된다.
『대방광불화엄경』은 매번 10 개씩 묶여서 매번 다른 형태로 대단히 많이 나열된다.
현실에서 대부분 바삐 분주하게 생활한다.
그래서 경전을 펼쳐 살필 시간적 여유가 대부분 없다.
그런 가운데 이런 형태의 경전을 대해 살피기 힘들다.
그것이 또 한편 업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사정으로 수행도 일정한 차례가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도 그런 사정으로
처음에는 차제적인 수행과 그에 따른 차별적인 수행결과를 제시한다.
그런데 또 한편 이런 다양한 수행은
동시에 병행하며 종합적으로 원만하게 행할 수도 있다.
이것은 대단히 수준이 높은 수행 상태다.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수행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다.
어떤 운동경기가 있다고 하자.
손은 이렇게 자세를 취하고
허리는 이렇게 자세를 취하고
다리는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 경우 처음에는 우선 손 동작부터 익혀야 한다.
그런데 손 동작에 마음을 기울이면 허리나 다리자세가 엉망이 된다.
그래서 이제 허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러면 기껏 익힌 손이나 발 동작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 단계가 되면
그 자세가 종합적으로 모두 함께 잘 이뤄진다.
처음에 계행을 성취하지 않으면 업장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면 사역을 당하는 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심하면 3 악도에 들어가 묶여 지내야 한다.
그래서 계행을 먼저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업장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복덕자량을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복덕자량이 쌓여야 그 바탕에서 지혜자량을 쌓아갈 수 있다.
당장 번뇌에 묶여서 사역을 당해 분주하게 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는 정려 수행을 할 도리가 없다.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려 수행을 하기 힘든 것과 사정이 같다.
정려 수행을 해야 반야 지혜를 닦을 바탕이 마련된다.
그런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한 무량한 방편 지혜를 닦아야 한다.
그래서 수행에 일정한 차례와 단계가 있다.
그러나 수행이 원만해지면 이 모두를 동시에 함께 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려 수행조차도 반드시 앉아서 행하지 않아도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는 힘들다.
그러나 문수보살님은 그런 입장에서 행주좌와 어느 경우에도 정려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본래는 지옥에 들어간 상황에서 수행하고 벗어나기가 대단히 힘들다.
그런데 문수보살님은 그런 상황에 들어가 제도도 한다.
경우따라 다르다.
『대방광불화엄경』에 각 항목이 대단히 방대하게 나열된다.
그런데 그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면 그 내용이 대단히 깊다.
그러나 마음이 바쁘면 그것을 그렇게 대하기 힘들다.
마음이 달리는 말 상태가 되어서 바삐 읽어내려가기 쉽다.
그런 경우 좋은 내용은 많은 것 같으나 하나도 취해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단어 하나를 붙잡고 하루 종일 삼매에 들어 연구하는 것이 낫다.
현재 40 권본 화엄경은 80 권본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해당한다.
차제적인 수행 - 개별적인 수행결과
종합적이고 원만한 수행 - 종합적인 원만한 수행결과
이런 내용이 처음 제시된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 수행에 옮겨야 한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세간을 떠나 법계에 들어가 활동해야 한다.
선재동자가 보여주는 내용이 그런 내용이다.
여기에도 대단히 많은 내용이 나열된다.
이번에 대하는 부분에 다음 내용이 처음 나온다.
▸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한 번 먹음을 원만하게 성취하나니,
하나는 먹을 적에 성품이 탐하지 않음을 성취하고, ◂
하나는 먹을 적에 성품이 탐하지 않음을 성취하고, ◂
그리고 이하로 계속 내용이 나열된다.
그것을 죽 읽고 소화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희박하다.
그런 경우는 위 첫 문장에서 멈춰야 한다.
그리고 먹음 (식사)란 무엇인가를 놓고 오전 내내 깊게 생각해야 한다.
식사는 수행이나 생사현실과정에서나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런데 왜 한 번 먹으라고 하는가.
이런 것도 연구주제다.
이해가 되어야 실천에 옮겨진다.
막상 해보려면 쉽지 않다.
하루 종일 그렇게 노력하다 저녁 늦으면 어지럽게 되기도 한다.
마구 읽어 넘어 가기는 쉽다.
그런데 한 부분을 실천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그런 경우 한 단어 한 문장을 놓고 잘 음미하면서 살펴야 한다.
10 개씩 계속 나열되는 내용에 질리기 쉽다.
그런데 이는 무량한 관런 내용 가운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10 개를 뽑아 제시한 것이다.
처음 하나의 의미를 깊게 새기면 오히려 이렇게 간단하게 제시한 데 대해 아쉽게 느낄 수도 있다.
참고 용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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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mj2135
◈Lab value 불기2565/01/06 |
○ 2019_1201_163758_nik_fix.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atsushika-Hokusai-the-poet-li-po ○ 2020_0606_190406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hevchenko-Dalismen ♥Laguna Madre and Río Bravo Delta ,Mexico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14677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HARLES AZNAVOUR - Emmenez Moi.lrc CHARLES AZNAVOUR - Emmenez Moi ♥단상♥당나귀 메고가는 아버지와 아들 우화에 당나귀를 메고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수행자의 상황이다. 본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는 당나귀를 어떤 형태로 타고 가든 문제가 없다. 상황따라 적절히 행할 수 있다. 그런데 세간에는 일정한 편견이 있다. 아버지가 타고 가면 어린 아들을 가혹하게 학대한다. 아들이 타고 가면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다. 둘 다 타고 가지 않으면 어리석다. 둘이 타고 가면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는 잔인한 사람들이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 때마다 잘 맞춰주어야 한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매 경우 임하면 매 경우 비난받는다. 어떤 입장에서는 흐뭇하게 같이 기뻐할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마치 원탁에 놓인 각기 다른 반찬과 같다. 각기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자신 앞에 놓여지면 좋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 못하면 매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수행자는 망집을 일으킨 중생의 생사현실에 임한다. 이 상태에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면 곤란하다. 그것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망집 상태에서 낙타로 활동하는 상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 중생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또 그러려면 상대가 처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경전에서 근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상대가 세탁업을 오래 한 경우가 있다. 또 한쪽은 도살업을 오래 한 경우가 있다. 이 각 경우마다 제도 방안을 달리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적절하게 달라야 한다. 거꾸로 잘못된 처방을 제공하면 각 경우가 다 문제가 발생한다. 원탁에 반찬이 제각각 달리 놓여 있다. 제각각 취향도 다르다. 그런데 이 음식에 제각각 다른 취향에 맞아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제각각 다 안 맞게 될 수도 있다. 인터넷에 글을 적는 입장은 이것을 고려하기 힘들다. 인터넷이란 불특정 다수인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달리 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현제 페이지가 대단히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전 내용을 보면 질려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경전 가치를 잘 이해하고 경전 내용만 집중해서 대하려는 입장도 있다. 간결한 게송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효용을 갖는 다라니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인 실상과 연기 수행에 관한 내용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람 모습이 전혀 없는 자연 풍광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 모습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원본 사진 형태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처리된 사진 형태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다 섞어 놓다보니 상태가 이상하게도 보인다. 원래 경전은 조금 점잖게 올려야 적절할 듯도 하다. 그런데 지금 형태가 복합적으로 이상하게 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한다. 부처님의 설법이 왜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많은가 경전에서 부처님이 이에 대해 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사정도 이와 같다. 중생의 상태가 저 마다 제각각이다. 결국 방편의 문제다, 우선 3 악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 질병과 위난 사고 재액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익을 얻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인천[인간계와 하늘세계]를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친하고 사랑하며 공경 존중하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수명을 늘려줘야 한다. 그대로 고집을 세우는 경우는 조복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직접 상대해 생사를 벗어날 수행에 진입시켜야 한다. 이것이 불교 경전을 크게 특성을 달리 하게 한 사정이기도 하다. 이것을 불부, 보부(寶部), 연화부, 금강부, 갈마부로 특성이 다르게 되는 사정이다. 이는 수행자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전을 한참 보다 보면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 이제는 잠깐 경전이나 게송을 암송하며 경행을 하는 것이 낫다. 또 경행만 계속 행하면 피로할 때가 있다. 그러면 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정려 수행을 하는 것이 낫다. 그러면 또 너무 가라앉을 수도 있다. 그러면 각기 입장이 다른 논서를 놓고 각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예민해질 수도 있다. 각기 다른 입장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다투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럴때는 다시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에게 보시할 항목을 찾아 일을 만들어 사업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계행이 된다. 요익중생계, 섭선법계 등이 그런 내용이다. 해를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좋음을 베푸는 것이 된다. 그래서 다채롭다. 그런데 이것이 각 경우 적절하게 취해 임하면 좋다. 그 모든 것이 다 즐겁게 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각 경우마다 적절하지 않으면 그 반대가 된다. |
문서정보 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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