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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6-07-01_적조음소문경_00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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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6-07-01_적조음소문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12. 10. 19:05



®

『적조음소문경』
K0540
T1490

소문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적조음소문경_K0540_T1490 핵심요약





♣0540-001♧
『적조음소문경』




소문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적조음소문경




 

적조음소문경(寂調音所問經) -일명 여래소설청정조복(如來所說淸淨調伏)-

 

법해(法海) 한역

노혜능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바가바(婆伽婆)1)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서 유행하시며
큰 비구승 팔백 명과
보살마하살 만 이천 명과 욕계ㆍ색계와 정거(淨居)의 모든 천자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무량한 백천의 대중들이 
공경하여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셨다. 



■ 그때 대중 가운데 적조음(寂調音)이라는 한 천자가 있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의 옷을 걷어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세존이시여, 

문수사리(文殊師利) 법왕자(法王子)는 지금 어느 곳에 있읍니까? 

이곳의 모든 대중들이 법문을 듣고자
목마른 듯 우러르며 저 현사(賢士)를 친견하고자 합니다.

 



■ 그때 세존께서 적조음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일만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가면 한 세계가 있는데, 

이름을 보주(寶住)라고 하며, 

부처님의 명호를 보상(寶相) 여래ㆍ응공ㆍ정변지라고 하느니라. 

지금 현재 문수사리 법왕자는
저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그곳에서 법을 설하고 있느니라.”

 


이때에 적조음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미묘한 상(相)을 나타내시어 저 현사가 이 회중에 오게★★ 하소서.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을 제외하고 일체 성문이나 벽지불이
저 문수사리 법왕자처럼 법을 설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과 문수사리 법왕자가 설법하시는 힘 때문에
악마들이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모든 악마의 궁전에 숨어서 나타나지 못합니다. 

모든 삿된 무리와 외도들을 항복 받고, 

증상만(增上慢)의 사람들은 교만한 마음을 여의며,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며, 

이미 발심한 사람들에게는 불퇴전(不退轉)을 얻게 하며, 

거두어 줄 수 있는 이는 곧 거두어 주고, 

교화로써 섭수되지 않은 이에게는 방편으로 조복하여, 

부처님의 바른 법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십니다.”

 


그때 세존께서 적조음 천자의 청을 받아들이시어
대장부의 백호상(白毫相)에서 한 줄기 광명을 놓으시니, 

이 수승한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어
일만 부처님 국토를 꿰뚫어 비춘 뒤 보주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그곳의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이 광명을 보고 나서 보상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일은 어떠한 상서이기에 이 세계를 큰 빛으로 널리 비춥니까?”

 

보상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일만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가면 한 세계가 있는데, 

이름을 사바(娑婆)라고 하며, 

그곳에 여래가 계시니 명호를 석가모니ㆍ응공ㆍ정변지라고 하는데
지금 현재에도 설법하고 계시며
이 일은 저 여래께서 백호상에서 놓으신 광명이니라. 

이 광명이 일만 부처님의 국토를 꿰뚫고 이 세계에 와서 비추고 있는 것이니라.”

 


그곳의 모든 보살들이 그 부처님께 여쭈어 말씀드렸다.

“석가모니 여래께서는 무슨 이유로 이 광명을 놓으십니까?”

 


저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석가 여래께서 무량한 백천억의 보살과 석범호세(釋梵護世)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이 법을 듣고자 갈망하며
문수사리를 친견하고 그 설법을 듣고자 하기 때문에
저 부처님께서 이 광명을 놓으셨느니라.”

 



그때 보상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사바세계에 갈지니라. 

저 석가모니부처님의 모든 대중들이 속히 그대가 설하는 법문을 듣고자 하느니라.”

 

이때에 문수사리가 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광명을 보고 난 뒤, 

문수사리 법왕자가 곧 일만 명의 보살들과 함께 보상 부처님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듯한 잠깐 동안에
일만 보살들과 함께 이 세계에서 홀연히 사라져 사바세계에 이르러 허공 중에 머물렀다.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곧 제일가는 깨끗한 꽃을 비처럼 내리게 하니
그 꽃의 향기가 널리 대중들에게 두루하며 무릎에까지 쌓였다. 

이때 대중들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 괴이하게 여기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누구의 신력이기에 이러한 미묘한 꽃이 비처럼 내립니까?”

 

세존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문수사리 법왕자가 일만 보살들과 함께 보주세계에서 이 사바세계로 와서
부처님께 공양하려고
공중에서 이러한 미묘한 꽃을 비처럼 내리는 것이니라.”

 


적조음 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즐거운 마음으로 문수사리와 저 보살마하살들을 뵙기를 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 훌륭한 장부는 구해주는 이 없는 이를 구해 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즉시 문수사리 법왕자와 일만 보살이 공중에서 홀연히 아래로 내려 왔다.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기를 마치고
문수사리가 곧 자신의 힘으로 연화 사자좌를 만들어 그 위에 앉으니, 

일만 보살들도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세존 앞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보상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공경히 세존께 여쭈라고 하셨습니다. 

병이 적으시고 괴로움이 적으시며 기력은 강건하십니까?”

 

그때 모든 보살들이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서 제각기 자신의 힘으로 자리를 화현하여 만들고 앉았다. 

적조음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대중들은 문수사리 법왕자가 말씀하시는 미묘법문을 듣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작은 질문을 허락하소서.”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그대가 마음대로 묻는 것을 허락하노라.”

 

그때 적조음 천자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문수사리를 향하여 이와 같이 여쭈었다.

“보상여래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설법으로 인자(仁者)께서 저들을 즐겁게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저곳에서 설하는 법은 탐욕을 생기지 않게 하고 탐욕을 다하게 하지 않으며, 

진에(瞋恚)가 생기지 않게 하고 진에가 다하게 하지 않으며, 

우치(愚癡)가 생기지 않게 하고 우치가 다하게 하지 않으며, 

번뇌가 생기지 않게 하고 번뇌가 다하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릇 법이란 생겨남도 없고 다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저 국토의 중생들은 탐욕 등의 온갖 번뇌가 없는데도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만약 그렇다면 저 부처님의 설법은 무엇을 끊게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법이란 본래 생함이 없는데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무슨 까닭인가? 

저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은 아는 것도 없고, 

끊을 것도 없고, 

닦음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느니라. 

보주세계의 중생들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귀하게 여길 뿐 방편제(方便諦)를 귀하게 여기지 않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제일의제이며, 

방편제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의(義)라고 하는 것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컬을 수 있는 것이며,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니라. 

처소의 모습도 없고 처소가 아닌 모습도 없으며, 

일상(一相)도 아니고 무상(無相)도 아니며, 

그림자나 메아리의 모습[影響相]도 아니고, 

상이라 할 수도 없고 상 아니라고 할 수도 없으며, 

다하는 것도 아니고 다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타락하는 것도 아니고 타락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것을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천자여, 

의라고 하는 것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이 상속하는 것도 아니며, 

자취도 아니고 자취가 아닌 것도 아니며, 

차안(此岸)도 아니고 피안도 아니며 중류(中流)도 아니니 이것을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명칭도 없고 문자처(文字處)도 없으니 이것을 제일의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온갖 음성이 모두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것 역시 모두 허망한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실다움과 허망함을 말씀하시지 않으시느니라.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이변(二邊)을 떠나서 머무시며, 

심의(心意)를 떠나 말씀하시기 때문이니라. 

유위법과 무위법을 말씀하시는 가운데서도 실다움과 허망함을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둘이 없느니라. 

천자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하냐? 

여래께서 변화로서 만드신 사람[化人]이 말하는 것을 실답다거나 허망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천자가 말씀드렸다.

“둘 다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변화로써 만든 사람은 몸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천자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일체법도 변화한 성품[化性]과 같아서 실다움도 말씀하지 않고 허망함도 말씀하지 않으시므로 둘이 없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여래께서는 어떻게 제일의제를 설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제일의제라는 것은 말로써 설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말로는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비유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이름할 수 없기 때문에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이 제일의제를 말씀하실 때 오백 명의 비구가 번뇌[塵垢]를 멀리 여의어 온갖 법 가운데서 법안정(法眼淨)을 얻었으며, 

이백 천자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적조음 천자가 다시 여쭈었다.

“문수사리시여, 

제일의라는 것은 다 궁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천자여, 

제일의제는 바르게 정진하지 않는 이에게는 다 궁구하기가 심히 어려우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것이 보살의 바른 정진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알려고 하지 않고, 

끊으려 하지 않고, 

닦으려 하지 않고, 

증득하려 하지 않으면서 정진하면, 

이것을 정정진(正精進)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것은 마땅히 알아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끊어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닦아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증득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곧 상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곧 취착(取着)이고, 

이것은 곧 희론이고, 

이것은 곧 지음이 있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정정진이라 하지 않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만약 이와 같다면 다시 어떻게 정정진이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여여(如如)한 평등과 법계의 평등은 곧 들음이 없음과 평등하며, 

여여한 평등과 법계의 평등은 곧 견(見)과 더불어 평등하느니라. 

범부법(凡夫法)의 평등은 학법(學法)과 무학법(無學法)과 성문법ㆍ연각법ㆍ보살법ㆍ불법과 평등하니, 

곧 모든 행이 평등하며, 

열반이 평등하고, 

번뇌[垢]가 평등하며, 

청정[淨]이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평등하게 정진하는 이를 정정진이라 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어떤 평등이 깨끗함ㆍ더러움[淨垢]과 더불어 평등한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 같은 것이니라. 

왜냐하면 열반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질그릇 속의 공이나 보배 그릇 속의 공이 둘도 없고 차별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더러운 공[垢空]이든 깨끗한 공[淨空]이든 함께 하나의 공이어서 둘도 없고 차별도 없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보살은 모든 성제(聖諦)에 마땅히 정진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만약 보살이 온갖 진리[諦]에서 정진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성문을 위하여 법을 설할 수 있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修諦] 반드시 하는 바가 있으며, 

성문이 진리를 닦으면 곧 하는 바가 없느니라.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 좋은 방편이 있고, 

성문이 진리를 닦으면 좋은 방편이 없느니라.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 관찰하는 바가 있고, 

성문이 진리를 닦으면 관찰하는 바가 없느니라.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 일체 중생을 위하여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고,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 방편이 견고하여 생사와 열반문을 버리지 않느니라. 

보살이 진리를 닦는 것은 일체 제불의 법을 위하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상인의 우두머리[大商主]을 떠나서 홀로 광야를 지나게 되면 마음에 놀라움과 두려움과 나약함을 품고 지나가게 되느니라. 

천자여, 

성문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사를 두려워하여 마음 속에 두려움을 품어 이 세계에서 마음을 되돌리는 경우가 없고, 

또한 중생을 위하는 것도 없이 마음으로 생사의 광원(曠遠)함만을 살피고 있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법에 방편이 없고 둘이 아닌 홀로 온갖 진리를 닦기만 하느니라.

 

천자여, 

마치 저 큰 상인이 온갖 재보를 많이 갖추고 자산을 넉넉하게 하여 광야를 건너와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들도 큰 상인과 같아서 대자대비를 갖추고 법의 이익을 성취하여 적멸을 구족하며,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자산을 조복하여 육도(六度)의 배에 싣고 사섭(四攝)의 활과 화살을 잡고, 

방편을 성취하며 불법을 위하여 온갖 진리를 닦느니라.

 

천자여, 

비유하면 개 껍질에다 수만(須漫)ㆍ첨복(瞻蔔)ㆍ파사가(婆師迦)의 향을 사용하여 그을려서 비록 변하여 향이 되게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나 하늘들이 좋아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느니라. 

성문이 진리를 닦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원(願)이 만족하지 않았는데도 반열반(般涅槃)에 들며, 

다문(多聞)과 정혜(定慧)와 해탈과 해탈지견의 향을 생기게 하지 못하며, 

또한 번뇌가 의지하는 근원적 결박[習結]을 끊지 못하며, 

사람과 천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되지 못하느니라.

 

천자여, 

비유하면 하늘의 가시가(迦尸迦) 옷은 많은 갈류(竭流)ㆍ아갈류(阿竭流)ㆍ전단(旃檀)ㆍ파사가(婆師迦) 등 백천 가지의 맑은 향으로 항상 향기를 배어들게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천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느니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겁토록 진리의 법[諦法]을 닦는 것으로 자신을 훈습하여 닦으므로 그 중간에 반열반에 들지 않으며, 

온갖 발원이 만족하면 널리 위없는 맑은 향인 다문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의 공덕향을 생기게 하여 번뇌가 의지하는 근원적 결박을 끊고, 

모든 사람과 천신과 아수라 등이 좋아하고 즐거워 바가 되느니라.”

 

적조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저 보상여래의 세계에 있는 모든 성문들은 어떠한 덕행을 갖추고 있습니까? 

어진 이께서는 저분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베풀어 주소서.”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저 성문들은 믿음이 견고하지 않지만 다른 이를 따라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법이 견고하지 않지만 법계와 다르지 않으며, 

팔인(八人:

八忍)이 아니지만 여덟 가지 삿됨[八邪]을 제도하고, 

수다원이 아니지만 온갖 나쁜 길[惡道]의 두려움을 여의며, 

사다함이 아니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가고 옴을 나타내고, 

아나함이 아니지만 지나간 일체법 속에 이르며, 

아라한이 아니지만 삼천대천세계의 이로움과 양육을 실답게 받느니라.

 

성문이 아니지만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명료하게 알고[了解], 

욕망에 물드는 것을 여의지 않지만 다시 욕망의 불길에 타지 않고 취착하는 곳에서 모든 희망을 여의며, 

진에(瞋恚)를 여의지 않지만 화냄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일체 중생에게 성냄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여의지 않지만 어리석음에 가려지지 않고 일체법에 대한 모든 어둠을 여의며, 

번뇌의 동요를 여의지 않지만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번뇌를 끊느니라.

 

결정위(決定位)에 오르지 못했으나 새로운 생을 받지 않으며, 

중생을 제도하지만 ‘나’라는 상이 없으며, 

받는 것이 없으나 끝내 시은(施恩)에 보답하며, 

은혜도 생각도 없으나 모든 염처(念處)를 닦으며, 

생함도 멸함도 없으나 온갖 정근(正勤)을 닦으며, 

몸과 마음을 여의었으나 모든 신통을 일으키며, 

일체 중생의 신통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 온갖 신통을 닦느니라.

 

일체 중생의 근(根)을 증장시키기 위해 모든 근을 닦으며, 

일체 번뇌를 꺾어 없애기 위해 온갖 힘[諸力]을 닦으며, 

평등지(平等智)를 깨닫기 위해 모든 각분[諸覺]을 닦으며, 

온갖 삿된 길에서 건지기 위해 모든 도(道)를 닦느니라.

 

도를 얻기 위해 무위(無爲)를 증득하며, 

실제에 들어가기 위해 도를 닦으며, 

법계에 들어가기 위해 지견(知見)을 일으키며, 

무명을 다하기 위해 명(明)을 일으키며, 

이변(二邊)을 여의기 위해 해탈을 닦느니라.

 

능히 육안으로 모든 부처님과 세계와 세계의 중생을 다 보며, 

천안(天眼)으로 일체 중생의 생사를 보며, 

혜안(慧眼)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의 움직임[心行]을 미리 알며, 

법안(法眼)으로 제법의 평등을 보고 삼세 일체 중생이 평등함을 보며, 

불안(佛眼)으로 불법을 밝게 비춰 보느니라.

 

천이(天耳)로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다 명료하게 이해하며, 

일심으로 일체 중생의 심행(心行)을 알며, 

억념지(憶念智)로 과거 겁의 사이를 모두 생각하며, 

신족(神足)으로 가없는 부처님의 국토를 모두 지나느니라.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생겨남이 없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기 때문에 비록 다시 보더라도 색신(色身)을 성취하지 않으며, 

비록 문자가 있더라도 말하지 않으며, 

마음이 부사의(不思議)하여 언사에 걸림이 없느니라.

 

얼굴빛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보는 이마다 좋아하며, 

온갖 상호를 갖추고 공덕으로 장엄해 있으므로 위덕을 감히 보기 어렵고 이름이 높고 멀리까지 들리며, 

온 몸에 칭찬과 명예를 갖추어도 세상의 법에 물들지 않느니라.

 

여러 가지 번뇌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며, 

나쁜 소문에 더렵혀지지 않으며, 

온갖 곳에 유희하며 많이 듣고 마땅히 변론하며, 

지견이 용맹스럽고 날카로워서 온갖 어둠을 없애며, 

불같이 타오르는 지혜로 법을 설함에 걸림이 없고, 

깊이 총지(總持)에 들어가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돌아보시고 생각하시느니라.

 

성문 벽지불이 아니나 소견과 생각은 큰 바다와 같으며, 

선정(禪定)은 수미산과 같고, 

참고 견딤[堪任]은 대지와 같고, 

신족의 변화로 나타냄은 인다라(因陀羅)와 같고, 

마음에 자재를 얻은 것은 범왕과 같고, 

무등등(無等等) 공등(空等)의 일체처에 두루하고 일체처에 들어가느니라.

 

천자여, 

저 보상여래의 세계에 있는 모든 성문들의 덕은 모두 이와 같으며, 

다시 무량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이 법을 설하실 때 오백 명의 비구ㆍ비구니와 오백 명의 우바새ㆍ우바이와 오천 명의 천자 가운데 결정위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 제각기 이런 말을 하였다.

 

“저희들은 즐거이 저 국토 보상여래의 모든 성문들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성문의 마음으로는 저 국토에 태어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야 저 국토에 태어날 수 있느니라.”

 

그때 모든 대중들이 저 국토에 태어나고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저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니, 

세존께서 곧 “마땅히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적조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저 보상여래의 국토에서는 어떠한 법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보살을 조복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삼승의 성품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헤아릴 수 없는 생사 등을 섭수하여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몸을 받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공덕의 자량을 무너뜨림으로써 성문을 조복하고, 

공덕 자산을 널리 쌓고 모아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지 않기를 원하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즐거이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일체 중생을 버리고 일체 불법을 성취하지 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대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생각하며 제불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사소한 행동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일체 세간에 두루하는 행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온갖 악마를 버리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일체 세계의 온갖 악마가 두려워하고 외도의 온갖 이론(異論)을 꺾어 절복시키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자기의 마음을 성취하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위없는 보리심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자기 자신을 밝게 비추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일체 세계의 중생의 몸과 불법을 두루 밝게 비추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차제 방편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한 찰나심(刹那心)의 방편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삼보의 종자를 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삼보의 종자를 키우고 자라게 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기와나 돌그릇을 깬 이를 다스리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금이나 은그릇을 깬 이를 다스리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부처님의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을 성취하지 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십력과 사무소외와 부처님의 십팔불공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육바라밀과 방편과 사섭(四攝)을 성취하지 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육바라밀과 방편과 사섭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홀로 숲 속에 머물며 멀리 여의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원림(園林)과 대관(臺觀)을 좋아하고 법락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번뇌의 습기를 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번뇌의 습기를 끊지 않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유량(有量)ㆍ유사의(有思議)ㆍ유등(有等)ㆍ유수(有數)로써 성문을 조복하고, 

무량ㆍ부사의ㆍ무등ㆍ무수로써 보살을 조복하나니 이것을 조복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는 이러한 보살의 조복을 잘 말하였도다.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 뜻을 다시 비유로써 자세히 밝히리라.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은 몸이 마치도록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찬탄하고, 

다시 어떤 사람은 큰 바닷물을 찬탄한다면 문수사리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이 두 가지의 물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소 발자국은 매우 작아서 그 찬탄도 역시 적을 뿐입니다. 

그러나 큰 바다는 무량하므로 찬탄도 역시 무량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문수사리여, 

비유하면 소 발자국의 물이 적으므로 그 찬탄도 역시 적은 것처럼 성문의 조복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의 물은 이미 무량하므로 찬탄도 역시 무량한 것처럼 보살의 조복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 만 이천 명의 천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또한 보살의 조복을 배워서 항상 무량 중생을 조복하고자 합니다.”

 

적조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인자께서는 어떠한 조복을 배우시고 성문의 조복과 연각의 조복과 보살의 조복을 배우셨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하냐? 

큰 바다가 온갖 종류의 강물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 있겠느냐?”

 

천자가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천자여, 

모든 보살의 조복은 비유하면 대해와 같으니라. 

모든 조복에서 방편을 지어 성문의 조복과 연각의 조복과 보살의 조복을 닦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조복이라는 말은 대체 어떤 뜻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번뇌를 알고 번뇌를 끊는 것을 조복이라 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번뇌를 조복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번뇌를 아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망상(妄想)과 분별과 기억한 생각[憶想]으로 순리에 맞지 않게 저 아(我)가 당연히 있다고 사유하고 , 

행(行)과 견(見)을 함께 끊고, 

전도(顚倒)와 무명(無明) 등에 얽히면 이와 같은 것을 번뇌에 얽히고 집착된 것이라 한다. 

만약 망상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기억한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순리에 맞게 피아를 헤아려 행과 견이 함께 무명 등에 전도되어 얽히는 것을 끊는 것을 멸번뇌(滅煩惱)라 하며, 

억상과 구경조복(究竟調伏)이 없는 것을 천자여, 

이것을 구경조복이라 하느니라.

 

만약 보살이 지혜로써 이와 같이 알면 번뇌가 아주 작아서, 

거짓되고 헛된 것에 끌리지 않고, 

공하여 주체가 없으며 나가 없고 예속되는 바가 없고, 

좇아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으며, 

이르는 곳도 없고 방처(方處)도 없느니라.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양쪽의 중간도 아니며, 

쌓고 모으는 물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형태도 아니며, 

형상도 아니고 얼굴도 아니며, 

처소도 아니니, 

이와 같이 번뇌를 근본적으로 멸하게 되느니라.

 

천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독사의 종류와 성질과 독이 어디에서 나는지를 알면 곧 독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만약 번뇌의 종류와 성질과 생겨나는 바를 알면 번뇌를 소멸할 수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어떤 것이 번뇌의 종류이며 성질이며 생겨나는 바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망상으로부터 번뇌가 생기느니라. 

만약 망상이 없으면 번뇌도 없느니라. 

번뇌가 없기 때문에 곧 선굴(禪窟)이 없으며, 

선굴이 없으므로 곧 머무는 바가 없으며, 

머무는 바가 없으므로 뇌해(惱害)가 없으며, 

뇌해가 없으므로 곧 구경조복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번뇌가 있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 

번뇌가 없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꿈 속에서 독사에게 물려서 고통스러워하다가 곧 해독시키는 약을 먹었는데, 

약을 먹었기 때문에 독기가 없어졌다고 하자. 

천자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이 사람이 실제로 뱀에게 물린 것인가?”

 

천자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저 독이 실제로 제거된 것이냐?”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실제로 뱀에게 물린 것이 아니므로 독을 제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일체 현성이 조복하시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천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번뇌가 있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 

없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고 하였거니와, 

천자여, 

‘아(我)’와 ‘무아’와 같이 번뇌가 있음이나 번뇌가 없음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아’와 ‘무아’도 역시 없는 것처럼 번뇌가 있음이나 없음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아’이면서 곧 ‘무아’이기 때문에 번뇌가 있는 것이나 번뇌가 없는 것이, 

이곳이나 다른 곳에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복할 수 있느니라.

 

왜 그런가? 

온갖 법이 고요하고 고요한 것[寂靜]은 애착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적정(寂靜)한 것은 취할 게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구경(究竟)에 적정한 것은 생겨나는 것[生]이 아니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다함없는 것은 생겨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생겨남이 없는 것은 성취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성취가 없는 것은 행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을 행하는 이가 없는 것은 무아이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이 무아인 것은 무주(無主)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무주인 것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옴이 없는 것은 의지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감이 없는 것은 선굴(禪窟)이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머물지 않는 것은 안립(安立)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에 안립하지 않는 것은 생하는 것이 곧 멸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무위(無爲)인 것은 무루(無漏)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을 받는 경우가 없는 것은 구경 조복이기 때문이니라.”

 

적조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모든 법은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생사를 익히는 데[生死所習] 있어서는 잘 수순[善順]하지 않음이 으뜸이고, 

열반의 경계에 나아가는 것은 잘 수순함이 으뜸이다. 

장애 가운데는 정진하지 않음이 으뜸이고, 

정각(正覺) 중에는 정진이 으뜸이 된다. 

온갖 번뇌[蓋]가운데는 의심의 그물[疑網]이 으뜸이고, 

여러 가지 상(相) 가운데는 해탈관(解脫觀)이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번뇌 가운데는 망상이 으뜸이고, 

번뇌 없는 것 가운데는 망상이 없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깨달음 가운데는 일 많음[多事]이 으뜸이고, 

멸심(滅心) 가운데는 선정(禪定)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견해[見] 가운데는 증상만(增上慢)이 으뜸이고, 

공법(空法) 가운데는 증상만이 없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착하지 못한 법 가운데는 악지식(惡知識)이 으뜸이고, 

온갖 착한 법 가운데는 선지식(善知識)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괴로움의 법[苦法] 가운데는 사견(邪見)이 으뜸이 되고, 

온갖 즐거움의 법[樂法] 가운데는 정견(正見)이 으뜸이 되느니라. 

빈궁 가운데는 간탐이 으뜸이 되고, 

큰 부귀 가운데는 보시가 으뜸이 되느니라. 

악취(惡趣) 가운데는 파계가 으뜸이 되고, 

승취(勝趣) 가운데는 지계(持戒)가 으뜸이 되느니라.

 

때 묻은 마음[垢心] 가운데는 화냄[瞋恚]이 으뜸이고, 

깨끗한 마음[淨心] 가운데는 인욕이 으뜸이 되느니라. 

선법에서 물러나는 데는 게으름이 으뜸이고, 

선법을 닦는 데는 정진이 으뜸이 되느니라. 

산란한 것 가운데는 온갖 깨달음이 으뜸이고, 

일심 가운데는 선정(禪定)이 으뜸이 되느니라. 

지혜가 없는 것 가운데는 어리석음이 으뜸이고, 

삽십칠조도법(三十七助道法) 가운데는 반야가 으뜸이 되느니라.

 

자심(慈心) 가운데는 걸림 없음[無礙]이 으뜸이고, 

비심(悲心) 가운데는 전념하여 속이지 않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희심(喜心) 가운데는 법락을 즐기는 것이 으뜸이 되고, 

사심(捨心) 가운데는 애증(愛憎)을 여의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염처(念處) 가운데는 숙세의 선근을 잊지 않는 것이 으뜸이 되고, 

정근(正勤) 가운데는 올바른 방편이 으뜸이 되느니라.

 

여의족(如意足) 가운데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으뜸이 되고, 

온갖 근(根) 가운데는 믿음을 머리로 하는 것이 으뜸이고, 

온갖 힘[力] 가운데 번뇌를 꺾어 항복받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각지(覺支) 가운데 평등을 깨닫는 것이 으뜸이 되고,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聖道] 가운데 온갖 삿된 길을 건너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부처님의 교법 가운데 보리심이 으뜸이 되고, 

섭수하는 법 가운데 재법(財法)이 으뜸이 되느니라. 

중생을 인도하고 교화하는 데는 설법이 으뜸이고, 

방편 가운데는 처비처(處非處)의 지혜가 으뜸이 되느니라.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일체 중생의 심행의 상속[心行相續]을 알아서 피안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으뜸이 되고, 

육바라밀 가운데는 대승이 으뜸이 되느니라. 

공(空)을 구하는 것 가운데는 혜명(慧明)이 으뜸이 되고, 

법인(法忍)에서 출리(出離)하는 데는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적조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법계는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법계는 평등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법계는 무엇을 세계[界]로 삼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법계는 일체 중생계를 세계로 삼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법계에 한계가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그대의 뜻에는 어떻다고 여기느냐? 

허공계[空界]에 한계가 있겠느냐, 

없겠느냐?”

 

천자가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허공계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법계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한계가 없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법계가 만약 그러하다면 인자께서는 어떻게 법계를 알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법계는 곧 법계가 없으며, 

법계는 법계를 알지 못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만약 그러하다면 인자께서는 무슨 법을 아시고 이와 같이 변론하시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하냐?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가 어떤 법을 알아서 소리에 응하는 것이냐?”

 

천자가 말씀드렸다.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인연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곧 소리가 나게 됩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천자여, 

중생을 인연하여 경계를 삼기 때문에 모든 보살이 곧 거기에 응하여 변론하시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인자께서는 어느 곳에 머물러서 법을 설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여래가 변화로써 만든 사람[化人]이 머물러서 설법하는 것과 같이 내가 설법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여래께서는 교화하심에 머무심이 없기 때문에 설하심이 있습니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그러하여서 머무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설하는 바가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만약 일체처에 머무는 바가 없다면 인자께서는 어느 곳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나는 무간(無間)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저 무간에는 다시 어떻게 머물 수가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무간이라는 것은 근본도 없고 머무는 바도 없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무간업을 지은 이에게는 여래께서 무간지옥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무간업이 있는 이는 여래께서 무간지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은 다섯 가지 무간에 머물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만약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는 데에 전념할 때는 그 중간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다시 온갖 소유(所有)를 버리는 마음을 일으킬 때 그 중간에 질투심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다시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구제하리라고 할 때 그 중간에 하열한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다시 일체법은 생겨남이 없음을 알고 나서 생겨나는 법 중에서 법인(法忍)을 얻고 그 중간에 모든 견해와 더불어 함께 하지 않느니라.

 

다시 마땅히 알고, 

보고, 

증득하고, 

올바로 깨닫고 난 뒤에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모두 일심과 한 찰나의 부지런한 방편의 지혜이니라. 

바로 깨닫고 나서 일체지를 얻음에 이르게 되면 그 중간에 결코 나태하지 않으리라.

 

천자여, 

이것이 다섯 가지 무간이니라. 

보살이 이 무간에 머물 때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무간죄에 머물면 무간지옥에 나아가게 되는데, 

보살은 곧 이 무간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가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머물 수가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일체법은 모두 공이 공함[空空]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생(無生)ㆍ무기(無起)ㆍ무작(無作)ㆍ무위(無爲)이며, 

연기(緣起)에 수순하기 때문에 곧 이것이 보리(菩提)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이 법은 볼 수가 없는 것인데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만약 부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문을 믿을 수 있겠느냐?”

 

천자가 말씀드렸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만약 ‘나’를 행하지 않는 이나, 

온갖 번뇌를 받지 않는 이나, 

다시 이러한 경전을 받아 지니는 이나, 

큰 자비로 일체 중생들에게 진리의 손길[法手]을 베풀어 주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느니라.”

 

“그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은 음(陰)ㆍ계(界)ㆍ입(入)의 모습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들은 무엇을 행하고자 합니까?”

 

“그들은 공ㆍ무상ㆍ무원을 행하려고 하느니라.”

 

“그들은 어떤 곳을 향하고자 합니까?”

 

“그들은 일체지(一切智)를 향하여 나아가고, 

일체 중생의 심행(心行)을 향하여 나아가느니라.”

 

“문수사리시여, 

보살에서 퇴전하는 이는 어떠합니까?”

 

“천자여, 

보살에서 퇴전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느니라.”

 

“어떤 것에서 퇴전하는 것입니까?”

 

“온갖 번뇌와 성문과 벽지불지에서 퇴전하느니라.”

 

“어떤 것이 퇴전하지 않는 것입니까?”

 

“평등 등과 같은 것이니라.”

 

“문수사리시여, 

평등이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이 저것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니라.”

 

“문수사리여,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일체법의 차별을 알 수 있습니까?”

 

“천자여, 

평등을 알지 못하는 이는 평등한 속에서 차별을 내느니라. 

차별을 행하기 때문에 차별에 나아가게 되느니라. 

만약 평등을 알게 되면 곧 차별을 행하지 않게 되며, 

차별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곧 평등에 나아가게 되나니, 

이것을 차별 없음에 나아간다고 말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번뇌가 있는 보살에게 보리가 있을 수 있습니까?”

 

“있느니라.”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번뇌가 없어서 성문과 같은 이는 곧 생을 받지 않느니라. 

천자여, 

보살이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해서 대비심을 일으키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이에게 보리가 있다고 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보살에게 간탐이 있어도 보리가 있습니까?”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며 온갖 법을 섭수하면 이 보살은 간탐이 있으면서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계를 버리고도 시라(尸羅)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이 된다면, 

이 보살은 계(戒) 없이도 시(尸)바라밀을 성취하였다고 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인욕을 버리고서도 찬제(羼提)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보살이 온갖 외도의 길을 버리고 부처님의 법인(法忍)을 인욕하고 닦으면 이 보살은 인욕을 버리고 찬제바라밀을 성취하였다고 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정진을 버리고서도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보살이 성문ㆍ벽지불의 정진을 버리고 등정각(等正覺) 보리로 나아가면 이 보살은 정진을 버리고서도 비리야바라밀을 성취하였다고 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망념을 가지고서도 선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보살이 꿈 속에서라도 성문ㆍ벽지불의 생각을 내지 않고, 

항상 결정코 정등각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이 보살은 망념을 가지고서도 선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지혜가 없으면서도 반야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있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어떤 방편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보살이 일체 세간에 고도기시(蠱道起尸) 하는 모든 나쁜 주술 가운데는 지혜가 없고 오직 일체지를 섭수하는 것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 보살은 지혜가 없으면서도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 법왕자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해야 할 바와 하지 않아야 할 바를 잘 말하였도다. 

또한 문수사리여, 

내 마땅히 그대에게 비유를 말하여 이 뜻을 거듭 분명히 하리라.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 파리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차라리 기갈을 참을지언정 끝내 독약이 섞인 음식은 먹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먹으면 죽을까 두렵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보살은 차라리 간탐과 질투로 계를 파하여 나쁜 이름이 퍼지고 게으르고 망념으로 지혜가 없게 될지라도 끝내 성문ㆍ벽지불지를 희구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두렵기 때문이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은 번뇌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번뇌를 두려워하지만, 

성문ㆍ벽지불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하느니라. 

또 천자여, 

내 이제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그대의 뜻에 따라 대답할지니라.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즐거운 곳에 태어나려는 사람이 어느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머리가 베이는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몸의 마디[支節]가 베이는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머리가 베이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몸의 마디는 베이더라도 능히 복업을 닦아 수승한 곳에 태어날 수 있지만 그 머리를 베이면 목숨이 없어져 버리므로 능히 복을 닦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보살도 차라리 금계를 훼범할지라도 끝내 견(見)을 버리지 않으며, 

차라리 번뇌가 있을지라도 끝내 성문의 결정지(決定地)에 오르지 않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행하는 바는 세상에서 믿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문은 계를 지키고 정진하지만 보살은 계를 깨뜨리고 게으릅니다.”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마치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이 전륜성왕에게는 독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성문이 계를 지키고 정진하는 것은 곧 보살이 파계하고 나태한 것이니라.

 

천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고용되어 일하는 것으로 스스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여러 권속을 도와서 쾌락을 얻게 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다시 다른 사람이겠는가?

 

이와 같이 천자여, 

성문이 정진하는 것은 자신의 결박은 끊을 수 있으나 이 정진으로 능히 염부제 사람들이 안락을 얻게 할 수도 없거늘, 

하물며 나머지 일체이겠느냐? 

천자여, 

마치 큰 상인들의 우두머리가 재보가 많고 넉넉하여 항상 베풀어 주어도 정진을 쉬지 않고 곧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이 전심으로 정진하여 자비로움과 애민함[悲愍]을 성취하면 곧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즐거움의 인을 짓고 세간과 출세간에 즐거움을 주느니라.”

 

그때 장로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성문은 무위법(無爲法)을 증득하고 보살은 유위(有爲)에 도달합니다. 

유위에 도달한 이가 어찌 무위에 도달한 이를 경멸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땅히 그대를 위해 비유로 말하여 이 뜻을 분명히 하리라. 

가섭이여, 

비유컨대 사방의 큰 바다[四大海]에 생우유[生酥]가 가득 차 있는데, 

어떤 사람이 털 한 개를 백으로 나누어서 그 한 조각의 털로 한 방울의 생우유를 찍어낸다면, 

가섭이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한 가닥의 털로 찍어낸 것이라 하여 사해(四海)에 가득찬 생우유를 가벼이 할 수 있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가벼이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뜻은 어떠하냐? 

이 두 우유 가운데 어느 쪽을 많다고 하고, 

어느 쪽의 값이 귀하다고 하겠느냐?”

 

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한 대해(大海)의 생우유의 억백천 분의 일도 많고 수승하온데, 

하물며 다시 사해의 것이겠습니까?”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백으로 나눈 털 한 개에 있는 우유 방울처럼 성문의 무위지(無爲智)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사대해의 생우유처럼 보살의 유위 선근은 백천 아승기겁토록 일체지에 회향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가섭이여, 

비유하건대 개미가 곡식 한 알 취하는 것을 가을에 곡식이 완전히 성숙되었을 때 일체 대지에 있는 온갖 곡식에 비교한다면 가섭이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이 두 곡식 중에 어느 쪽이 더 많고 수승한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가을에 곡식이 성숙되었을 때는 무량한 중생이 제각기 얻어서 수용하더라도 이쪽이 더 많고 수승합니다.”

 

“이와 같이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개미가 취한 한 알의 곡식처럼 성문의 해탈과(解脫果)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마치 가을에 일체 대지의 온갖 씨앗이 성숙하는 것처럼, 

보살이 육바라밀을 갖추고 사섭법(四攝法)의 선근이 성숙되면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가섭이여, 

비유하건대 백천 개의 수정을 그릇에 담아 싣고 성 안에 들어오는 것과, 

다시 한 개의 값을 헤아릴 수 없는[無價] 유리 보주를 큰 바다에서 배에 싣고 편안히 염부제의 세계에 도착하고 나서 곧 능히 사람들의 가난을 없애려고 할 때, 

가섭이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모든 수정 그릇으로 이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유리보배를 가벼이 할 수 있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감히 가벼이 할 수 없습니다.”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수정을 싣고 성읍에 들어오는 것처럼, 

성문의 무위(無爲)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큰 보배 유리처럼 마땅히 알라. 

보살이 삼보의 종성을 이어서 단절되지 않게 하고 일체지의 보배로운 마음이 나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그때 장로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하나의 일체지심[薩婆若心] 보배에 대하여 잘 말씀하신 것처럼, 

보살은 일체 성문ㆍ벽지불보다 뛰어납니다.”

 

그때 보상여래의 국토에서 온 모든 보살들이 이 법문을 듣고 모두 희유한 생각을 가져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말씀하신 바는 모두 희론입니다. 

갖가지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고, 

온갖 이설(異說)이 일어납니다. 

저 보상여래의 국토에서는 오직 보살의 불퇴전법만 말씀하시며, 

번뇌에 얽히거나 희유하여 미치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석가ㆍ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는 능히 이와 같은 번뇌를 잘 참고 견디시어 분별이 없는 한 맛의 법 가운데서 상ㆍ중ㆍ하를 말씀하시고 삼승(三乘)의 차별과 다름을 나타내십니다.”

 

그때 모든 보살과 모든 하늘들이 꽃으로써 여래께 공양하고 나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저희들은 보주세계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마땅히 때를 알아서 할지니라.”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인자(仁者)께서는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온갖 국토[刹土]는 평등하며, 

불법과 중생도 평등하느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마땅히 나아가고자 하는 곳도 이곳이니라.”

 

모든 보살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어떠한 방편으로 그렇게 됩니까?”

 

문수사리가 말했다.

“일체 찰토가 평등하여 다함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등정각도 불가사의 하느니라. 

일체법이 공하고 중생의 자성도 무아(無我)이니라. 

모든 선남자들이여, 

나는 이와 같은 평등성을 관하므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니라. 

일체 찰토는 평등하며 일체 불법과 중생도 평등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니라.”

 

바로 그때 문수사리가 곧 삼매에 들어가니 이 세계가 보주세계처럼 변하였다. 

일체 대중이 모두 함께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것을 보았으며, 

또한 석가모니ㆍ세존의 색상과 모습과 형체가 보상여래와 같았고, 

모든 성문들이 모두 저곳 보살의 색상과 모습과 형체가 같음을 보았다.

 



그때 모든 보살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나서
모두 보주세계에 도달하여 함께
석가모니불이 곧 보상여래라고 말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누가 저희들을 이 세계로 되돌아오게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너희들이 갈 때 누가 너희들을 데리고 갔느냐?”

 

모든 보살들이 말씀드렸다.

“문수사리 법왕자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역시 그가 데리고 돌아왔느니라.”

 

그때 문수사리가 삼매로부터 나와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제각기 삼매를 생각할지니라.”

 

모든 보살들이 각각 생각하고 나서 얻은 삼매를
현재의 바로 앞에 나타내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희유하고 희유하도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 있거늘 오히려 이미 보주세계에 이른 것 같도다.’

 

모든 보살들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괴이하게 여기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이상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 법왕자는 능히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신통과 선정의 힘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모든 중생이 신통력을 얻는 것도 문수사리와 같아지기를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비유컨대 금ㆍ은ㆍ파리(頗梨)ㆍ금강ㆍ전단 등의 보배그릇 및 질그릇 등
이 모든 그릇들을 모두 공계(空界)에서 수용하며
공계는 모든 그릇에 편재해 있나니, 

공계가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들이여, 

법도 제(際)와 공(空)과 같나니
이들 모든 법은 곧 하나로서 차별 없이
제일의공(第一義空)에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저 중생이 여러 가지 행을 하기 때문에
갖가지 생을 받아 천 가지를 나타내 보이느니라.

 

내가 나누는 것이 약간 천 가지 색으로 화성(化成)하되,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ㆍ천(天)의 색(色)과 성문ㆍ벽지불ㆍ보살ㆍ불(佛)의 색(色)을 받게 되나니, 

이러한 모든 차별된 색을 비록 모두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색이 평등하여 색과 공이 평등하고 하나이어서 차별이나 다름이 없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이와 같은 뜻이므로 마땅히 이와 같이 알지니라.”

 

문수사리 법왕자가 말하였다.

“일체 찰토가 평등하여 차별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일체 부처님이 평등하고 일체 법이 평등하며, 

일체 중생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그때 모든 보살이 세존께서 법답게 가르치는 법을 받고
깊이 마음 속으로 사바세계에 염리심(厭離心)을 내고
희열을 얻고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세존을 떠나고 난 뒤
곧 사바세계에 나타나지 않고
보주세계에 되돌아가 이르렀다.

 





그때 세존께서 존자[慧命]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아난타여, 

이 뛰어난 경전을 그대는 마땅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이롭게 할지니라. 

왜냐하면 이 경전을 널리 사람들을 위해 말하거나, 

짐짓 듣고 받아들이는 이는 곧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의 무더기를 얻게 되느니라.”

 

아난타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받아 지니었으나, 

마땅히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할 것이며, 

어떻게 받들어 지닙니까?”

 

■ 부처님께서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마땅히 적조음소문(寂照音所問)이라 이름하고, 

이와 같이 받아 지닐지니라. 

또한 여래소설청정조복수지(如來所說淸淨調伏受持)라고 이름하느니라.”

 


부처님께서 경을 다 설해 마치시니
적조음 천자와 문수사리 법왕자와 장로 마하가섭과 존자 아난타 및
그때에 모인 모든 대중들과 천룡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와 호세(護世)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1 범어로는 Bhagavat이며 팔리어로는 Bhagavant이다. 

일반적으로 한역으로는 세존(世尊)으로 의역되며 바가바(婆伽婆), 

박가범(薄伽梵) 등으로 음역된다.


○ [pt op tr]




◆vwus8755

◈Lab value 불기2556/07/01

댓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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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적조음소문경_K0540_T1490.txt ☞소문
sfd8--불교단상_2556_07.txt ☞◆vwus8755
불기2556-07-01
θθ
 


■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자기의 의견과 차이가 있을 때 소견을 고집하여 다툼. 『사분률』에는 언쟁(言諍)ㆍ멱쟁(覓諍)ㆍ범쟁(犯諍)ㆍ사쟁(事諍)이 있다. 쟁론을 화해하는 것을 화쟁(和諍)이라 하며, 원효가 지은 『십문화쟁론』이 있다.

답 후보
쟁(諍)
전단(栴檀)
전법륜(轉法輪)

전식(轉識)
절대(絶待)
점교(漸敎)
정각(正覺)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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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 ~~ 201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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