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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6-08-01_전법륜경우바제사_00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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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6-08-01_전법륜경우바제사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12. 18. 11:58



®

『전법륜경우바제사』
K0569  
T1533

우바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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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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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있는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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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전법륜경우바제사_K0569_T1533 핵심요약





♣0569-001♧
『전법륜경우바제사』




우바제사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전법륜경우파제사




전법륜경우바제사(轉法輪經憂婆提舍)2)

 

천친보살(天親菩薩) 지음

비목지선(毘目智仙) 한역

김호성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바가바께서 왕사성의 기사굴산 가운데 머무셨는데, 


대비구승(大比丘僧)ㆍ대보살(大菩薩)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지원대해요설변재보살(智員大海樂說辯才菩薩)에게 말씀하셨다.

“지원대해요설변재여, 

두 가지의 머무름[住持]이 있으므로 여래는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중생에 머무르는 것이며, 

둘째는 법에 머무르는 것이다. 

지원대해요설변재여, 

이러한 두 가지에 머무름이 있으므로 여래는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수다라3)가 다하도록 말씀하셨다.

 

이 올바른 법륜의 뛰어난 수다라4)는 무슨 까닭에 저 모니왕(牟尼王)의 생각할 수 없고, 

칭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비유할 수 없고, 

마치 허공처럼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고, 

인연에 수순해 들어가고[順入], 

적정(寂靜)하고, 

잘 적정하며[勝寂靜], 

가장 잘 적정하며[最勝寂靜], 

제일 적정하며[第一寂靜], 

진실한 진리처럼 허망하지 않아서 여래께서 위없는 법륜을 굴려 이 수다라를 말씀하시는가? 

여래의 제자ㆍ성문의 사람ㆍ성문의 제자ㆍ모든 선인(仙人)들이 칭찬하는 바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내가 이제 해석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량없는 공덕의 대모니왕(大牟尼王)은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생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가장 적정하며, 

훌륭하며, 

더러움이 없는 법륜을 굴리시는가?

첫 번째, 

무슨 까닭에 ‘뛰어난 수다라’라고 부르는가? 

두 번째, 

무슨 까닭에 세존이라고 부르는가? 

본래 세 번째는 없다.5) 네 번째, 

여래는 무엇 때문에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시면서 두 가지에 머물러 지니며[住持] 이 법륜을 굴리셨고 다른 곳에는 계시지 아니하였는가? 

다섯 번째, 

무슨 까닭에 여래라고 부르는가? 

여섯 번째, 

무슨 까닭에 법륜이라고 부르는가? 

일곱 번째, 

또 다시 세존께서는 몇 번 굴리시고 몇 번 행하면서 법륜을 굴리는가?

 

여덟 번째, 

또 다시 세존께서는 여기서 법륜을 굴림을 설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여래의 나지 않는 법문’에는 모든 법을 굴리지도 않으며 돌리지도 않는다[不轉不廻]고 말하는가? 

마땅히 이와 같이 안다면 끝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굴리는 것이라면 어떻게 저 수다라를 피할 수 있는가? 

저 수다라는 피해서는 안 된다.6) 아홉 번째, 

또한 만약 여기에서 중생의 주지(住持)를 말한다면 법의 주지란 것은 어떠한가? 

『반야바라밀경』7) 중에서, 

“여래는 저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설사 겁을 지나도록 중생을 말하더라도 중생이 자못 있어서 중생이 생하고 멸하는가?’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청정합니다.’”

 

여래가 다시 『무구명칭수다라(無垢名稱修多羅)』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법상(法想)에 머무른다면 이것은 큰 병이다.”8)

만약 중생과 법을 모두 얻을 수 없다면 세존께서는 어떻게 주지하면서 법륜을 굴리는가? 

이것이 해석되어야 한다. 

열 번째, 

또 다시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저 넓고 갖가지 뛰어나며 오묘한 꽃과 나무로 장엄된, 

한량없이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버리고서 바라나(波羅奈)의 사람이 적은 곳인 파타리수(波吒離樹) 그림자 아래의 사슴동산에서 법륜을 굴리시는가? 

이러한 인연 역시 해석되어야만 한다. 

열한 번째, 

또 다시 세존께서는 어느 곳에 처음 앉으셔서 법륜을 굴리시는가? 

열두 번째, 

또다시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실 때에 얼마나 많은 중생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였는가? 

열세 번째, 

요점만 말하면 어떻게 중생의 주지와 법의 주지를 나타내 보이는가? 

열네 번째, 

이는 모두 어렵다.9)

이제부터는 해석이니, 

저 법을 이제 말한다.

 

무슨 까닭에 그렇게 가장 뛰어나며, 

더러움이 없으며, 

넓고 헤아릴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없으며, 

무너뜨릴 수 없으며, 

매우 깊고, 

움직이지 않는 정각(正覺)인가? 

세존께서 이 경전을 말씀하신 뒤에 또 다시 이제 뛰어나고, 

더러움이 없으며, 

넓으며, 

헤아릴 수 없음을 말씀하시니, 

삼계의 중생이 찬탄하는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헤아릴 수 없고 모든 허물을 여읜 뛰어난 수다라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이 뜻을 이제 해석한다. 

세존께서는 저 모임 중에 있었던 천ㆍ아수라ㆍ사람ㆍ용ㆍ야차ㆍ구반다 등이 법륜 굴리심을 듣고서 세존께서 몇 가지의 주지(住持)로 법륜을 굴리시는지 알지 못할까 마음으로 의심을 낸 것이다. 

세존께서는 중생의 의심을 관찰하시고 그 의심을 끊으려 하시니, 

이 때문에 두 가지 주지를 말씀하셔서 법륜을 굴리시는 것이다. 

이러한 뜻은 어떤가? 

게송으로 말한다.

 

세간의 사람 및 천(天)이

의심스런 마음으로 법주(法主)를 바라보니

의심스런 뜻을 끊어 주려는 뜻으로

이 수다라를 말씀하시네.

 

또 다시 세존께는 크게 자비로운 힘이 있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므로 이 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어떻게 세존의 크게 자비로운 힘이 이러한 뜻을 말씀하시는가? 

이제 해설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는 중생이 없으며,10) 모든 법이 모두 건달바성(乾闥婆城)11)과 같음을 아신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의 주지와 법의 주지를 아시고 나서 법륜을 굴리신 것이다. 

이러한 뜻은 어떤가? 

게송으로 말한다.

 

세간에는 아(我)가 없으며

허깨비ㆍ건달바와 같은 줄 아시고

중생과 법에 주지하면서

여래는 큰 자비로 말씀하시네.

 

자력(自力)을 나타내 보이므로 능히 뜻을 말씀하신다. 

‘세간에는 더욱 능히 주지하는 자가 없다’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두 가지의 주지를 지을 수 있지 어떤 사람도 능히 법륜을 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굴린다’라는 것은 다시 다른 뜻이 있다. 

게송으로 말한다.

 

하늘의 궁전도 아니고

아수라의 집도 아니며

사람 사는 곳이나 용궁도 아닌데

이러한 중생이 있네.

 

으뜸인데다 헤아릴 수도 없으며

허물을 여의고 세 가지 괴로움을 없애어

천인(天人)이 공경하며 예배하시니

제일륜(第一輪)을 잘 굴리시네.

 

또한 한량없는 괴로움을 한량없이 갖춘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처음 행하는 보살이 이를 들으면 마음으로 겁을 낸다. 

여래는 그들의 겁을 제거하고자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더러움이 없으며 깨끗한 깨달음이 만약 한량없는 괴로움을 한량없이 갖추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면, 

한량없는 공덕도 이러한 법륜을 나타낸다. 

게송으로 말한다.

 

금 구슬과 진주 등과

처자(妻子)와 나라를 보시하고

머리ㆍ눈ㆍ골수와

손과 발 등을 보시하네.

 

갖가지 괴로움 속에서도 계율 지키며

드물게 불신(佛身)을 얻으시네.

공덕이 가히 말할 수 없으므로

의심하고 겁내는 사람 위하여 보여 주시네.

 

부처님께서는 증상(增上)의 뜻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관찰하시고 한량없는 공덕으로 법륜을 굴리신다. 

또 다시 아직 보리심을 내지 않은 사람이나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이 열반의 집에 들어가고자 하면, 

대승에 주지하여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또 다시 뛰어난 뜻으로 어떤 성문승이나 연각 등이 열반의 집에 들어간다면 다시는 위없는 법륜을 굴리지 않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작은 마음으로 자비 등을 여의고

두 가지 열반에 들고자 하므로

성자12)께서 이 경전을 말씀하셔서

제일승(第一乘)에 머물게 하네.

 

또한 이 복인(福人)을 기쁘게 하며 이익하게 하고자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모든 세간의 가장 뛰어나며 비할 데 없는 전법륜사(轉法輪師)도 우리 스승만 못하다.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면

지금 귀의하고, 

마땅히 다시 귀의하라.

성자[牟尼]께서 그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이러한 수다라를 말씀하시네.

 

만약 다른 외도에 의지하는 사람을 장차 인도하여 이익하게 하고자 하면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더러움이 없는 공덕으로 장엄하신 오묘한 몸으로 법륜을 굴리시니, 

그대의 스승13)은 비교할 수 없다. 

그대의 스승은 그대가 무루(無漏)의 선법(善法)을 얻도록 할 수 없다. 

게송으로 말한다.

 

악지식(惡知識)에 의지하면

여래가 세간을 보시고

그 사람을 인도하고자

이 보배경전을 말씀하시네.

 

일체지(一切智)의 교만을 고요하게 하고 이롭게 하고자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일체지로서 이제 새롭게 위없는 법륜을 굴린다. 

어떻게 그대가 일체지의 사람인가? 

게송으로 말한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시니

능히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전도됨을 제거하시네.

청정한 법륜 굴리지 못하면

그는 일체지가 아니네.

 

넓고 뛰어난 과보를 구하는 위없는 복전(福田)의 이익과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과보를 나타내 보여서 능히 시여(施與)한다. 

위없는 법륜을 굴릴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위없고 올바른 법륜을 굴릴 수 있다면

이러한 사람에게 조금만 보시하여도

비교할 수 없는 과보를 얻게 되리라.

 

또한 보살행이 과보의 이익을 얻으므로 이러한 뜻을 나타내 보인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러한 법륜으로 크게 이롭게 할 수 있다. 

이미 한량없는 억(億) 나유타(那由他) 백천(百千)의 고행을 행하였으며,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렸다. 

비유컨대 바닷물을 다 퍼 올릴 때까지라도 마음은 휴식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本生) 때에 마나바14)가 되어서 몸과 처자를 나는 모두 보시하였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범득왕(梵得王)이 되어서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내가 보시하였지만, 

마음에 후회하지 않았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선아왕(善牙王)이 되었는데, 

가장 단정한 여인 중에서 이름을 손타리(孫陀利)라고 하는 여인이 뛰어나고 묘했지만 바라문에게 보시하였다.”

또 말씀하셨다.

“덕장왕(德藏王)이 되어서 다라니를 얻었다. 

나는 7천 년 동안 한 번도 옆구리를 대고 누워 잠자지 않았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부사의공덕보덕왕(不思議功德寶德王)의 태자가 되어서
어린 몸으로 모든 논의들을 내가 모두 터득하고 나서 중생을 위하여 말하였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신즙선(身汁仙)이 되어서 몸ㆍ손ㆍ발 등이 잘렸지만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으며 인욕법을 말하였다.”15)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월광왕(月光王)이 되어서 머리를 내버려 보시하였으나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일체중생소희견왕(一切衆生所喜見王)의 동자가 되었는데, 

나는 12년 동안 향식(香食)16)을 하였으며, 

몸을 태워 불법에 공양하였으나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다.”

 

또 말씀하셨다.

“본생 때에 요병왕(療病王)의 몸이 되어서 모든 염부제(閻浮提) 사람들의 모든 병고를 치료하였다.”

이와 같이 갖가지 한량없는 고뇌를 모두 이미 크게 이익된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미 이와 같은 보살의 갖가지 고행이 과보를 얻음을 나타내 보였으며, 

이익이 됨을 나타내 보였다.

세존께서 이러한 수다라를 말씀하시고 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이와 같은 초인(初因)17)이

고행을 하여 널리 몸을 버리고

가난하여 구걸하는 자에게

호응하는 것에 따라 베풀어 주네.

 

모든 허물을 여의고서

제일의 적정륜(寂靜輪)을

훼손할 수 없는 제일이라 말씀하시니

그러므로 나는 이제 법륜을 굴리네.

 

무슨 까닭에 세존이라고 부르는가? 

감히 공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세존이라고 한다. 

다시 다른 뜻이 있으니 『보리심우바제사(菩提心憂波提舍)』 속에 나타내 보인 것과 같다.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시면서 두 가지의 주지(住持)로 법륜을 굴리시는가? 

다른 곳에 계시지 않음은 어려워서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 계시느냐에 따라서 이 어려움은 끝이 없는 것이다. 

세존께서 만약에 다른 곳을 유행(遊行)하셨더라면 역시 이러한 어려움이 끝없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 다른 뜻이 있는데, 

『보리심우바제사』, 

그곳에서 나타내 보인 것과 같다.

 

무슨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부르는가? 

그 뜻을 이제 말한다. 

실답게 왔으므로 ‘여래’라고 부른다. 

어떤 법을 ‘여(如)’라고 하는가? 

열반을 ‘여’라고 한다. 

중생과 법(法:涅槃)이 둘이라면 ‘여’는 아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비구들이여, 

제일의 성제(聖諦)이며 허망하지 않은 법을 열반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알기 때문에 ‘온다[來]’라고 이름한다. 

성론(聲論)18)의 세계나 지자론(知字論)의 세계처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사람이 와서 태어나는데, 

이는 어떤 뜻을 밝히는 것인가? 

이는 지혜가 갖추어짐을 밝힌다. 

오는 뜻이 이와 같으니, 

열반을 ‘여’라고 하며 지해(知解)를 ‘래’라고 한다. 

올바로 열반을 깨달으므로 여래라고 부른다.

 

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여’라고 한다. 

그러한 모든 행과 같으므로 ‘여’라고 한다. 

또한 4성제를 ‘여’라고 한다. 

다른 사람은 그러한 모든 행을 보지 않으므로 여래라고 부른다. 

또 다시, 

모든 이와 같은 불법을 ‘여’라고 하니, 

거기서 이 사람이 오기 때문에 여래라고 부른다. 

또 다시 ‘여’는 6바라밀이라고 부르니, 

정각이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반야에서 오기 때문에 여래라고 부른다. 

진실한 버림[實捨]ㆍ고요한 지혜[寂慧]의 안주(安住)가 ‘여’이니, 

그러한 위없이 높고 올바른 지혜[無上正遍知]19)가 오기 때문에 여래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보살들의 모든 계위20)를 ‘여’라고 하니, 

그와 같은 위없이 높고 올바른 지혜가 오기 때문에 여래라고 부른다. 

8정도와 같이 오기 때문에 여래라고 부른다. 

반야바라밀이 갖추어지고 방편이 갖추어져서 오기 때문에 여래라고 부른다. 

혹은 여거(如去)21)라고도 부른다. 

‘여거’라고 말하는 것은 혹은 여(如)로써 말하기 때문에 여거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여거라는 것은 가서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여거라고 부른다.

 

무슨 까닭으로 법륜이라고 부르는가? 

그 뜻을 이제 말한다. 

법을 본체로 삼는 수레바퀴이므로 법륜이라고 부른다. 

비유하면, 

세간에서는 동(銅)을 본체로 삼는 병을 동병(銅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나무를 본체로 삼는 수레바퀴를 목륜(木輪)이라고 부르니,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법을 본체로 삼는 수레바퀴이므로 법륜이라고 부르며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어떤 것이 법인가?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말한다. 

이러한 법이 수레바퀴가 되기 때문에 법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모든 법의 자체각(自體覺), 

이것이 법륜의 뜻이다. 

또 모든 법의 뛰어난 장엄, 

취하고 버린다는 뜻을 법륜이라고 부른다.

 

어떤 것을 버리느냐? 

유위법을 버린다. 

어떤 것을 취하느냐? 

열반을 취한다. 

또한 능히 모든 번뇌를 부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바퀴라고 한다. 

여시운륜(如時運輪)ㆍ법왕치륜(法王治輪)ㆍ여륜(如輪)ㆍ왕륜(王輪)ㆍ일체세간광명조륜(一切世間光明照輪)ㆍ여성수륜(如星宿輪), 

또 설법륜(說法輪)ㆍ부단상륜(不斷常輪)ㆍ이변부정우불생륜(二邊不定又不生輪)ㆍ여인연생우불이륜(如因緣生又不二輪)은 눈과 색(色)이 같으며 더 나아가 뜻과 법(法)이 둘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불가득륜(不可得輪)은 3세의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시 공륜(空輪)은 모든 견해를 여의기 때문이다. 

또 무상륜(無相輪)은 모든 모습을 관찰하여 모든 모습을 여의기 때문이다. 

또한 무원륜(無願輪)은 삼계를 여의기 때문이다. 

일체분별불별이륜(一切分別不別異輪)은 모든 법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아나바달다용왕수다라(阿那婆達多龍王修多羅)』 중에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현면용왕(賢面龍王)22)이여, 

또한 법륜은 진실로 무너지지 않는 행이다. 

이와 같이 윤이라고 부르는 것은 3세에 동등하기 때문이다. 

무자체륜(無自體輪)은 유와 무의 두 가지 견해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이륜(離輪)은 몸에 오염이 없기 때문이다. 

또 불착륜(不著輪)은 심ㆍ의ㆍ의식 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무처소륜(無處所輪)은 모든 행함이 있는 생을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실륜(實輪)은 크게 진실하게 보기 때문이다. 

또한 체륜(諦輪)은 올바로 닦아서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부진륜(不盡輪)은 다하지 않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또 법계륜(法界輪)은 모든 법이 모두 행해지기 때문이다. 

또 실제륜(實際輪)은 전후제(前後祭)가 제(際)의 윤(輪)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여여륜(如如輪)은 모든 법의 자체(自體)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무위륜(已無爲輪)은 모든 의심과 관찰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상륜(常輪)은 성스러운 성품이 모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공륜(空輪)이니, 

안과 밖의 모든 물건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무상륜(無相輪)은 모든 상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무원륜(無願輪)은 모든 법에 반연(攀緣)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무위륜(無爲輪)은 모든 언어로 말하는 것은 모두 공하여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륜, 

이런 것들이 모두 법륜23)의 뜻이다.

 

또한 다시 세존께서는 몇 번 굴리시며 몇 번 행하면서 법륜을 굴리시는가? 

그 뜻을 이제 말한다. 

세 번 굴리며 열두 번 행함이 있다. 

이것은 고의 성제이며, 

이것은 집의 성제이며, 

이것은 멸의 성제이며, 

이것은 고의 멸도의 성제이다. 

이는 첫 번째 굴림이다. 

이것은 고의 성제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며, 

이것은 고의 집이니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고의 멸이니 마땅히 증득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고를 멸하는 도이니 마땅히 닦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굴림이다. 

이러한 고의 성제를 이미 알았으며, 

이러한 고의 집을 이미 끊었으며, 

이러한 고의 멸을 이미 증득하였으며, 

이러한 고를 멸하는 도를 이미 닦았다. 

이것이 세 번째 굴림이다. 

이렇게 세 번의 굴림을 말하는 것은 이와 같다. 

고의 지혜ㆍ집의 지혜ㆍ멸의 지혜ㆍ도의 지혜는 이와 같다. 

고제에도 세 번 굴림의 지혜가 이와 같이 있으며, 

집제도 이와 같으며, 

멸제도 이와 같으며, 

도제도 세 번 굴림의 지혜가 있다. 

그것[四聖諦]을 이와 같이 말하여 12행이 있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은 이행(異行)은 고제 중에서 세 번 굴리는 지혜가 있게 된다. 

이행의 집제와 이행의 멸제, 

이행의 도제가 모두 세 번 굴리는 지혜가 있으니, 

이와 같이 말하여 12행이 있는 것이다.

 

‘고(苦)’라고 한 것은 5음(陰)을 일컫는다. 

5음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고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한 고의 모습은 공(空)하다. 

이러한 공함을 통달하는 것을 고지(苦智)의 성제라고 한다. 

그러한 5음의 인(因)과 애(愛)ㆍ사(使)ㆍ견(見)의 인을 집(集)이라고 하며, 

만일 분별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아서 취하지도 않고 감촉하지도 않으면, 

애의 인[愛因]과 견의 인[見因]을 집지(集智)의 성제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그 같은 5음이 마침내 다 소멸해 버려서 전제(前際)는 오지 않으며 후제(後際)는 가지 않았으며 중제(中際)는 얻지 못함을 멸이라고 부른다.24)

 

그것을 이와 같이 아는 것을 멸지(滅智)의 성제라고 한다. 

만약 도를 얻고 나면, 

고지ㆍ집지ㆍ멸지를 반연하면서도 그것은 평등상(平等相)이며 그것은 불이지(不二智)이니, 

이것을 고멸도지(苦滅道智)의 성제라고 한다. 

또 다시 어찌하여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가? 

저 성제를 설함이 이와 같이 분별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또한 다시 이와 같이 4성제를 알면 해탈하게 되니, 

이른바 고ㆍ고의 인ㆍ고의 멸을 알고 난 뒤에야 방편을 얻는다. 

이처럼 4성제는 이와 같은 뜻을 차례대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평등상은 무엇인가? 

성제이므로 허망하지 않은 법을 부르는 말이다. 

허망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諦]라고 부르는 것이다. 

각각의 자상(自相)이 모두 허망하지 않으며, 

이와 같이 허망하지 않은 법이 평등상이다.

 

또한 다시 승상(勝相)이니, 

무엇이 승상인가? 

고는 궁핍한 모습[逼迮相], 

집은 능히 생산해 내는 모습[能生相], 

멸은 적정한 모습[寂靜相]이며, 

도는 벗어나는 모습[出相]이다. 

또한 12행은 역관(逆觀)이거나 혹은 순관(順觀)으로서 열두 가지 인연의 생함과 변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다시 『광보수다라(廣普修多羅)』에서는 올바른[正] 분별과 능한[能] 분별을 말하고 있다. 

“잘 관찰하지 못함은 무명에서 나오지만 생겨나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25) 이와 같이 나아가서 큰 고의 덩어리가 모이는 것이니, 

저 유와 멸은 이처럼 법륜 12행으로 구른다. 

거린야(居隣若)26)여, 

3보가 구족함을 알아라.”

 

또한 다시 세존께서는 여기서 법륜을 굴리시는 것을 말씀하신다. 

무엇 때문에 ‘여래의 불생(不生) 법문’에서는 모든 법을 굴리지도 않으며 돌리지도 않는다[不轉不廻]고 말하는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필경 일어나지 않음과 이와 같은 차례[次第]를 알아야 한다. 

그 뜻을 이제 해석한다. 

전자는 진제(眞諦)를 말한 것이고, 

후자는 세제를 말한 것이다. 

또한 후자는 때에 맞는 말[時說]이고, 

또한 믿고 받아들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이러한 뜻을 말한 것이다. 

이미 이를 설하였으므로 이제 말한다. 

또한 다시 이는 초업보살(初業菩薩)27)을 위하는 까닭에 이와 같이 말한다. 

대지(大地)를 얻은 사람은 이와 같이 다투지 않는다.

 

만약 중생과 법을 모두 얻을 수 없다면, 

세존께서는 어느 곳에 주지하시면서 법륜을 굴리시는가? 

그 뜻을 이제 해석한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써 중생을 취하지도 않고 법을 취하지도 않으면서 항상 중생과 법을 주지하셨으므로 법륜을 굴리신다. 

또한 다시 세존께서 『용왕문수다라(龍王問修多羅)』에서 말씀하셨다.

“허공과 같이 굴리는 것을 법륜이 구르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는 세존의 방편이니, 

모든 법은 이름이 없는데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법은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마련해서 법이라고 부르네.

 

세존께서는 법대로 중생을 취하지 않으면서 중생을 다스려 그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니, 

비록 법을 취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널리 모든 법을 말씀하신다. 

또한 다시 『반야바라밀경』ㆍ『무구명칭수다라』에서 말하기를, 

“진제를 알기 위해서 속제를 말한다”고 하니, 

이와 같이 하여도 허물이 없다.

 

또한 다시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 넓고 갖가지 뛰어나며 오묘한 꽃과 나무로 장엄된, 

한량없이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버리고서 바라나(波羅奈)의 사람이 적은 곳 파타리수(波吒離樹) 그림자 아래의 사슴동산에서 법륜을 굴리는가? 

그 뜻을 이제 해석한다. 

세존께서는 과거에 이미 그곳에서 60천억 나유타회(會)에 널리 보시를 행하였으며, 

또 그곳에서 이미 일찍이 60천억 나유타의 부처님을 공양하였으며, 

또한 그곳에는 이미 91억천 부처님이 계시면서 법륜을 굴리셨고, 

그곳은 언제나 적정하여 선인(仙人)들이 많이 계셨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공덕이 있으니, 

이 때문에 세존께서 그곳에 계시면서 법륜을 굴리시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이미 해석했지만 이제 다시 해설한다. 

또한 『광보경(廣普經)』에 게송이 있다.

 

나는 60천억 나유타회에

보시하였고

60천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네.

 

바라나 뛰어난 곳에

뛰어난 옛 선인들 계셨으니

으뜸가는 천룡(天龍)들이

설법하는 곳을 언제나 찬탄하였네.

 

91억 부처님 앞에서

나는 위없이 뛰어남을 억념하였으니

이 묘한 숲속에서

위없는 법륜을 굴리리라.

 

여기는 나유타의

적정하고 뛰어난 선인들이

언제나 사슴동산에 있기 때문에

선인들 사는 곳이라 말하네.

 

이와 같은 뛰어난 숲속에서

위없이 높은 법륜 굴리리라.

 

이와 같이 굴린 뒤에, 

또 법과 사람을 위해서 이와 같이 굴렸다.

또한 다시 세존께서는 어느 곳에 처음 앉으셔서 법륜을 굴리셨는가? 

그 뜻을 이제 해석한다. 

세존께서는 저 대원전(大圓殿)의 한량없이 청정하고 묘한 색깔의 진귀한 보배로 장엄한 사자좌 위에 앉아서 법륜을 굴리셨다. 

이는 어느 경에서 말씀하셨는가?

 

『광보경』 중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여, 

모든 하늘과 땅이 있다. 

바라나에서 법륜을 굴리고자 하니 큰 이익이 있음을 알고 대원전을 설치하라.”

갖가지의 장엄이 넓고 화려하니, 

그 전(殿)은 길이와 넓이가 7백 유순이 되며, 

허공의 여러 하늘은 보개(寶蓋)와 당번(幢幡)으로써 장엄하였다. 

허공 위에서 욕계(欲界)의 천자(天子)들이 8만 4천의 사자좌(獅子座)를 여래께 받들어 보시하였고, 

보시한 뒤 일일이 청해 말씀드렸다.

“원하건대, 

여래께서는 이 사자좌에 앉으셔서 법륜을 굴리소서.”

하나하나의 천자가 저마다 세존께서 그 보시 받은 사자좌 위에 앉으셔서 법륜을 굴리심을 보았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모든 천자들의 뜻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또한 다시 세존께서 법륜을 굴렸을 때 얼마나 많은 중생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게 되었는가? 

그 뜻을 이제 해석한다.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와 다시 모든 천(天)의 60억의 수가 있었으며, 

다시 색계천(色界天)의 80억과 다시 84천억의 사람이 있었다. 

이는 어느 경에서 말씀하셨는가? 

저 『광보경』에 게송이 있다.

 

아야거린28) 등

이와 같은 다섯 비구

60억의 여러 천들이

모두 법안(法眼)이 청정해짐을 얻었네.

 

80억의 색계천은

깨끗하고 위없는 법안을 얻었고

깨끗하고 뛰어난 법안을 얻은 사람은

8만 4천억이네.

 

요점을 말하면, 

중생의 주지는 중생에게 설함을 보임이며, 

법의 주지란 것은 설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또한 다시 뜻이 있으니, 

중생에 주지하며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중생의 마음가짐[心行]이 8만 4천 가지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법의 주지에서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8만 4천의 법이 모인 광명이 이롭게 하는 것이 많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다시 뜻이 있다. 

중생에 주지하는 것은 이것이 중생의 평등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법의 주지란 것은 법의 평등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다시 이 두 가지29)는 속제(俗諦)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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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륜경우바제사번역기[轉法輪經憂婆提舍飜譯之記]

 

『전법륜경』은 여래가 처음으로 말씀하신 경전이다. 

우바제사1)는 해설서[義門]의 이름으로 천친보살이 개시(開示)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교진여 등을 위해서이니, 

그 뜻이 이 땅(중국)에 행해지려면 반드시 그 사람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 

위(魏)의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어사중위(御使中尉) 발해(渤海)의 고중밀(高仲密)이 올바른 인사를 잘 구해서 참된 것을 선택하고 거짓된 것을 가려냈기 때문에 법사 비목지선(毘目智仙)을 청하였으니, 

그 제자 구담류지(瞿曇流支)와 함께 업성(鄴城) 안에 있는 금화사(金華寺)에서 이 해설서 우바제사를 번역한 것이다. 

흥화(興和) 3년 세차(歲次) 대량(大梁) 건유(建酉)의 삭차(朔次) 경자(庚子) 11일에 번역하였으며 3,942자이다.

사문 담림(曇林)이 대역(對譯)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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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스크리트 upadésa의 음역어이다. 

뜻으로 옮기면 분별ㆍ논의ㆍ논의경(論識經) 등이 된다.

2 『전법륜경』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첫 설법을 기록한 경전이다. 

초전법륜의 내용은 대장경의 여러 경전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전법륜경우바제사』의 경우, 

‘경본은 없다’고 되어 있으니, 

저본이 된 경전은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3 산스크리트 sūtra의 음역어. 

경전의 뜻이지만, 

이 글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쓴다.

4 이 ‘정법륜승수다라(正法輪勝修多羅)’는 천친이 저본으로 삼은 경전 이름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5 원문은 ‘본원소제삼법(本元少第三法)’이라 되어 있다. 

경전 원본에서 셋째 문제가 탈락되었던 것 같다.

6 이 여덟 번째 문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전법륜경』에서 부처님께서는 4성제의 법륜을 굴린다. 

그런데, 

다른 경전 ‘여래의 불생의 법문’에서 여래께서는 법륜을 굴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컨대, 

『능가경』에서 “한 글자도 설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들 두 가지 이해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회통시켜야 할 것인가? 

뒤에서 제기되는 해설을 살펴보면, 

천친은 진제와 속제의 2제설(諦說)로서 회통한다. 

즉 여래 불생의 법문은 진제이며, 

여기 『전법륜경』의 입장은 속제라는 것이다.

7 원문에는 ‘반야바라밀’로 되어 있으나, 

경전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인 출전은 알 수 없다.

8 『무구명칭수다라』는 『유마경』을 가리킨다. 

『유마경』의 「문수사리문질품」의 말씀이다.

9 ‘열네 번째’ 다음에 제기된 문제의 내용이 탈락된 것 같다.

10 중생이라고 해서 따로 중생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한 것이다.

11 산스크리트로 gandharva-nagara이다. 

신기루로 생긴 성을 말한다.

12 원어는 모니(牟尼, 

muni)이다.

13 다른 외도의 스승을 말한다.

14 mānava의 음역어이다. 

뜻으로는 유동(儒童)이라 옮긴다.

15 『금강경』에서 설해지는, 

부처님께서 과거 인욕선인(忍辱仙人)이셨을 때의 이야기와 같다.

16 사람은 덩어리를 먹으며[段食], 

귀신은 촉식(觸食)을 하며, 

부처님께서는 향식(香食)을 하신다.

17 본생 당시의 인행(因行)이므로 ‘초인’이라 하였다.

18 인도 6파철학의 하나인 미맘사학파를 가리킨다.

19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한다.

20 환희(歡喜)ㆍ이구(離垢)ㆍ명(明)ㆍ염(焰)ㆍ난승(難勝)ㆍ현전(現前)ㆍ원행(遠行)ㆍ부동(不動)ㆍ선혜(善慧)ㆍ법운(法雲) 등의 10지(地)이다.

21 산스크리트 tathāgata는 tathā+gata의 합성으로도, 

흑은 tathā+agata의 합성으로도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여거(如去)외 의미가 되고, 

후자는 여래(如來)의 의미가 된다.

22 현수(賢首)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 원어 mukha는 ‘얼굴‘도 되고 ’머리‘도 된다.

23 신수대장경(T.1533.26, 

p.3s7c.)의 ‘법론(法論)’은 ‘법륜(法輪)’의 오자이다.

24 과거를 잡아당기지도 않으며, 

미래에 미리 달려가지도 않으며, 

현재에 집착하지도 않는다는 의미. 

이렇게 시간에 대한 집착을 떠나는 것이 열반이라는 것이다. 

화엄사상의 무시간론(無時間論)에 통한다.

25 무명에서 생기지만, 

생김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체 없이 생하는 것, 

그것이 연기(緣起)다.

26 교진여(憍陳如)를 말한다.

27 초발심 보살을 가리킨다.

28 ‘아야교진여’의 의미이다.

29 중생과 법을 말한다.


○ [pt op tr]





◆vsta1909

◈Lab value 불기2556/08/01

댓글내용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tistory.com/3805#1909
sfed--전법륜경우바제사_K0569_T1533.txt ☞우바제사
sfd8--불교단상_2556_08.txt ☞◆vsta1909
불기2556-08-01
θθ
 






■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기신론(起信論)』 4경(鏡)의 하나. 여실은 진여를 말함. 진여의 자체는 공적(空寂)하여 온갖 망상ㆍ망념을 여읜 것이, 마치 깨끗한 거울에 한 점 티끌도 없는 것 같으므로 여실공경이라 함. 곧 공진여(空眞如)를 말함.

답 후보
여실공경(如實空鏡)
역죄(逆罪)

연각장(緣覺藏)
연려심(緣慮心)
연화(蓮華)
열반(涅槃)
열반종(涅槃宗)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10gfl--2012-08월_댓글보전.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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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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