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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번뇌 본문
[한문]煩惱
[팔리]kilesa
[범어]kleśa
[티벳]nyon mongs pa
[영어]affliction
망념(妄念).
심신을 괴롭히고 번거롭히는 정신 작용의 총칭.
탐,진,치라는 3독에
만(慢),
의(疑),
악견(惡見)을 추가한 6종을 근본번뇌라고 하고,
이로부터 파생된 것들을 수번뇌라고 한다.
번뇌를 표현하는 다른 말로는
개(蓋),
결(結),
계(繫),
구(垢),
누(漏),
박(縛),
사(使),
소해(燒害),
액(軛),
전(箭),
조림(稠林),
주올(株杌),
취(取),
폭류(瀑流) 등이 있다.
[동]혹(惑) , 수면(隨眠).
● From 고려대장경연구소 불교사전
번뇌
[한문]煩惱
【범】Kleśa 길례사(吉隷舍)라 음역.
혹(惑)ㆍ수면(隨眠)ㆍ염(染)ㆍ누(漏)ㆍ결(結)ㆍ박(縛)ㆍ전(纒)ㆍ액(軛)ㆍ폭류(暴流)ㆍ사(使) 등이라고도 함.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앞의 고와 낙에 미(迷)하여
탐욕ㆍ진심(瞋心)ㆍ우치(愚癡) 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 하는 정신 작용.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되는 근본번뇌와
이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수번뇌가 있으며,
또 이것을
사사(邪師)ㆍ사설(邪說)ㆍ사사유(邪思惟)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분별기(分別起)의 번뇌와,
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몸과 함께 있는 구생기(俱生起)의 번뇌가 있고,
또 사(事)에 대한 정의(情意)의 미(迷)인 수혹(修惑)과,
이(理)에 대한 지(智)의 미인 견혹(見惑)이 있으며,
혹은 세용(勢用)의 이둔(利鈍)에 나아가서
5리사(利使)ㆍ5둔사(鈍使)를 세우기도 하고,
혹은 3루(漏)ㆍ3박(縛)ㆍ3혹(惑)ㆍ
4류(流)ㆍ4액(軛)ㆍ4취(取)ㆍ
5상분결(上分結)ㆍ5하분결(下分結)ㆍ
9결(結)ㆍ
8전(纒) ㆍ
10전ㆍ
108번뇌ㆍ
8만 4천번뇌 등으로도 나눔.
● From 운허 동국역경원 불교사전
<참고>
[본 페이지]
DICT--번뇌
https://buddhism007.tistory.com/12539
sfx--dict/번뇌.txt
sfd8--불교용어dic_2564_06.txt ☞◆vhqe8059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affliction.html
htmback--번뇌_불기2564-06-24-T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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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affliction-cf0.html#affliction-c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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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d8--기타_2556_06.txt ☞◆affliction-c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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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d8--기타_2564_06.txt ☞◆affliction-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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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적 불교사전 상세 참조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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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던 번뇌를 불러 일으키는 번뇌에 대한 연구
Lab value 불기2564/06/24/수/17:06
번뇌란 무엇인가. 목차 I. 서 II. 고통의 현실의 원인으로서의 번뇌 III. 번뇌에 대한 대처방안[修行] 1 불교의 수행과 번뇌의 대처 2 구체적인 적용 방안 IV. 번뇌의 종류 1 번뇌의 개념 2 번뇌의 분류 [1] 근본번뇌 [2] 지말번뇌(枝末煩惱) 1) 대번뇌지법(대수혹)에 드는 지말번뇌 2) 소번뇌지법(소수혹)에 드는 지말번뇌 3) 기타의 지말번뇌 4) 근본번뇌와 지말번뇌의 관계 <표> 근본-지말번뇌 상의 번뇌에 대한 다양한 용어 및 분류 I. 서 번뇌(煩惱, kleśa)란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괴롭히고 어지럽혀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한다. [惑-業-苦 三道]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런 고통의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끊어 벗어나고[心解脫], 어리석음[無明]을 밝은 지혜의 깨달음[菩提]으로 깨뜨림[慧解脫]으로서 안온한 해탈 열반[涅槃]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여기서는 이와 같이 고통의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고 따라서 수행을 통해 끊어야 할 대상이 되는 번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불교의 최종목적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각 경전과 논서 안에는 번뇌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근본불교시대 이후 부파불교시대를 거쳐 대승의 여러 경전과 유식사상, 여래장사상, 중관사상 등이 나타나는 가운데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결과, 불교 경전과 논서상에서 나타나는 번뇌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모두 나열해 살피게 되면 복잡하여 오히려 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씩 차이나는 이들 내용들은 사실상 번뇌의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 번뇌를 끊어 해탈 열반에 이르는 수행과정에 체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데 그 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서술하기로 한다. 즉 번뇌의 자세한 의미를 살피기 전에 번뇌가 삶의 현실에서 왜 문제되고 또 이를 어떻게 현실에서 받아들여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여러 경전과 논서상에 나타나는 번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파악 그리고 다양한 분류방식 등에 대해서 그 간략한 줄거리를 정리하여 봄으로서 마음의 병인 번뇌 및 그 치료법에 대한 석존의 가르침의 그 대강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고통의 현실의 원인으로서의 번뇌 우리는 보통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가운데 자신의 희망들이 모두 뜻대로 이뤄지는 삶을 꿈꾸며 산다. 예를 들면 건강한 가운데 높은 지식과 학문을 갖추고 얻기 힘든 명예와 권력을 갖고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자유롭고 물질적으로 호화롭고 풍요롭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며 자신의 자손들까지 모두 그와 같이 안정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꾼다. 물론 많은 사람가운데 실제로 이런 꿈을 모두 이룬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꿈을 성취한 소수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사람이 현실에서 가지가지의 고통의 현실을 피하지 못하고 번뇌에 쌓여 살아가고 있다. 우선 삶의 고통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이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 채 고통스런 울음을 시작으로 낯선 환경에서 삶을 처음 시작한다. [生] 그러다 어느덧 늙게 되고 몸과 마음이 젊을 때와 같지 않아서 한탄하게 된다. [老] 또 어떤 이는 살아가다 불행한 사고를 당하거나 치유하기 어려운 병마를 만나 고통을 겪는 이도 있다. [病]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피하지 못할 죽음에 직면하여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에 싸여 있거나, 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족들이 있게 된다. [死] 현실의 이러한 고통스런 모습은 비록 자기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이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런 현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살펴보면 삶에서 부딪히는 고통과 번뇌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당장 눈을 돌려 보면 가난, 생계, 등등의 생활 문제나 재난 전쟁등의 불안한 미래로 인해 걱정하거나 두려움에 싸여 있는 이도 많다. [憂苦] 또는 원치 않는 일들을 당해 깊은 슬픔에 젖어 있거나[悲苦], 불쾌한 일로 고통받거나[苦苦], 세상의 가지가지 문제로 인해 고민하며 번민에 싸여 있는 이들도 있다. [惱苦] 또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가운데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게 되어 번민하는 이도 있고 [愛別離苦] 또 어떤 이는 미운이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마음으로 번민하는 이도 있다. [怨憎會苦] 또 한편으로 현실에서 제각기 품고 있는 욕구와 희망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런 수 없이 많은 희망 하나하나가 나타날 때마다 매번 이들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민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求不得苦] 따라서 색수상행식 오음(五陰)으로 이루어진 생명은 이 모든 고통들이 모여 총체적인 고통을 주게 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五陰熾盛苦, 大苦聚] 물론 이처럼 본래 고통을 주는 일[苦苦]들도 많지만, 세상에는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것들도 많고 또 때때로 희망이 이루어져 성취감을 맛보는 즐거운 순간도 많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좋은 것들이나 그 성취의 기쁨은 짧고 영원하지 않아 곧 허물어지곤 만다.[壞苦] 그리고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변화하는 것이어서 이로 비롯되는 고통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行苦] 또 한편으로는 삶의 현실이 뜻과 같이 이루어져 고통이 비록 적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근본적인 어리석음[無明]에 싸여 있어서 무엇이 참된 진리의 모습이며, 무엇이 올바른 선이고, 실현시켜야 할 참된 목표인가. 또 이는 어떻게 실현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알지 못하고 또 이에 대해 많은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나란 어떤 존재인가. 또는 삶과 우주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이며, 또 그 가운데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또 이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등등에 대해 사람들이 희망하는 가지가지 환상적인 내용에 끼워 맞춘 옳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어리석은 내용들을 진리라며 제시하며 가지가지 삿된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어리석은 이들은 이런 견해들을 취하고 [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 또 이런 견해에 이끌려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여 수 없이 많은 고통의 현실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석존께서는 일찍이 엄연히 존재하는 생사윤회의 고통을 설하고[苦諦] 그 고통이 가장 근본적으로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등의 번뇌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밝히고[集諦]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사윤회의 고통을 멸하고 벗어나 도달하는 안온한 해탈 열반의 상태를 제시하고[滅諦] 이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번뇌를 없애고 밝은 깨달음을 얻올 수 있는 올바른 수행의 길[道諦]을 무수히 많은 방편으로 설하시었던 것이다.[四聖諦法] 그러나 이런 석존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앞의 고통들이 지금 당장 자신의 현실은 아니라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며 당장의 탐욕에 이끌려 석존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살아가기 쉽다. 지혜가 깊지 못하여 당장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번뇌가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 가는가를 알지 못하고 결국 고통의 윤회의 바다로 이끌려가는 모습은 마치 불이 자신의 몸을 태울 때까지 불빛의 유혹에 끌려 들어가 결국에 타 죽고 마는 불나비의 어리석음과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석존은 중생들이 쉽게 번뇌의 해악을 망각하고 당장의 즐거움에 이끌리겨가는 이런 뒤바뀐 착각 망상[顚倒]에 대한 집착을 다음과 같이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석존이 일찍이 승광왕(勝光王)에게 든 비유는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래서 독한 용과 네마리의 독사가 있는 우물로 숨어들어 나무를 붙잡고 숨었다. 그런데 검고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 뿌리를 번갈아 갉아 먹고 있었으며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 사람을 쏘며, 또한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다.” 이런 비유와 같은 상황에서 조그만 벌꿀 맛을 탐해 엄연히 닥쳐올 커다란 위험을 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승광왕도 “그런 상황에서 벌꿀맛을 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사실 눈앞의 작은 벌꿀 맛을 탐내 이런 위험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의 우리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뒤이어 석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게송으로 덧붙이고 있다. 넓은 들판은 무명(無明)의 길이요 달리는 사람은 범부의 비유며 큰 코끼리는 무상(無常)의 비유요 그 우물은 생사(生死)의 비유니라. 나무뿌리는 목숨의 비유요 두 마리 쥐는 밤과 낮의 비유며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로 줄어드는 것이요 네 마리 뱀은 네 가지 요소[地水火風-四大]다 떨어지는 꿀은 오욕(五欲)의 비유요 벌이 쏘는 것은 삿된 생각[邪見]의 비유며 들판을 태우는 불은 늙음[老]과 병[病]의 비유요 사나운 용은 죽는 고통[死]의 비유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생각하여 생(生)의 재미를 곧 싫어한다. 다섯 가지 쾌락에 집착 없어야 비로소 해탈한 사람이라 하나니 무명의 바다에 편한 듯 있으면서 죽음의 왕에게 휘몰리고 있나니 소리와 빛깔을 즐기지 않으면 범부의 자리를 떠나는 줄 알라.1) 석존 자신도 이와 같이 일반 사람들과 동일한 현실에 처해서 이를 직시하고 출가를 결심했었으며 그 후 수행을 하여 해탈과 열반을 얻었음을 『중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나도 옛날 아직 정각을 깨닫기 전에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는 실로 병드는 존재[法]이다. 그러나 허물이 없으면서 병드는 존재를 구하자. 나는 실로 늙고․죽으며․근심하며․더러운 존재다. 그러나 허물이 없으면서 늙고․죽으며․근심하며․더러운 존재를 구하자. 그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 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죽음․근심․더러움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라고 생각하였다. ......... 그래서 나는 병이 없는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고, 늙음․죽음․근심․더러움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이를 얻었다. 그래서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틀림없는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모양을 알았느니라.2) 그리고 석존은 이와 같은 고통의 현실에 대해 벗어날 방안을 사성제 및 8정도 37도품등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고통의 문제를 동일하게 느낀다 하더라도 석존이 제시하는 방법과는 다른 해결방안을 생각하는 다른 입장들도 생각할 수 있다. 『숫타니파타』에는 목동 다니야와 석존 그리고 악마 파아피만[波旬]이 서로 게송을 읊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이와 같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치는 다니야는 석존에게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는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이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방에는 불이 켜졌습니다. 그러니 신(神)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 라는 게송을 읊고 이어 아내가 온순하고 자식이 건강하며 소들이 많다는 내용 등의 게송들을 연이어 읊는다. 다니야는 이런 게송을 통해 일반 범부가 바라는 세속적 희망을 충족시켜 평온하고 안정되며 행복한 삶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석존은 자신은 성냄과 미혹(迷惑) 탐욕의 불이 꺼져 피안(彼岸)에 이르렀고, 마음은 자신에 순종하여 해탈해 있으며 소유물도 없으며 다시 모태(母胎)에 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고 도달한 안온한 해탈과 열반의 상태를 게송으로 읊는다. 이에 대해 욕계의 최상의 하늘[第六欲天]의 주인인 악마 파아피만[波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이 집착하는 근본은 바로 기쁨이다. 집착할 데가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석존은 이에 대해 다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는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참으로 사람이 집착하는 근본은 근심이니라. 집착이 없는 이는 근심할 것도 없느니라."3) 비교적 간결한 형태로 서로 대응되어 나타나는 이 짧은 시구의 내용에서 우리는 고통과 번뇌의 문제에 대해 서로 달리 생각하고 대처하는 대표적인 세 입장을 만나 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번뇌에 마주처 이를 해결하고자 추구하는 방안의 모습들도 대강 이들과 같다. 현대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다니야가 읊은 상태와 같이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세속에서 실현시키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약간의 지위와 부가 삶에서 안정된 의지처가 된다고 믿고 이것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얻으면 이에 의지하면서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한편 또 몇몇은 욕구의 성취의 상태가 비록 유한한 삶에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더라도 그 욕망의 극한을 실현시키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이는 마치 타화자재천왕[Pāpīyas, Pāpman, 波旬]처럼 다른 대상들을 변화시켜서 자신의 욕망의 극대를 실현시키기를 추구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실현시키는 욕계의 하늘에서의 최상의 상태가 바로 타화자재천의 세계인 것이다. 석존은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로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를 비롯하여 인간 아수라 하늘세계의 3계 6도의 세계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 가운데 대부분의 중생이 원하는 상태는 모든 욕락을 뜻과 같이 이루고 오래오래 삶을 누리는 하늘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욕심을 갖고 추구하는 세계[欲界]에서 가장 능력이 강하고 높은 상태는 자신의 욕구의 실현을 위해 타 대상을 변화시켜 욕락을 성취시키는 데 자유자재한 욕계의 여섯째 하늘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自在天, Para-nirmita-vaśa-vartin)이다. 육욕락을 마음껏 향유하며 그 수명에 대해서는 『잡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인간의 1천 6백 년은 타화자재천의 하루낮 하룻밤이다. 이와 같이 30일을 한 달, 열두 달을 1년으로 하여 타화자재천의 수명은 1만 6천 년이다.”4) 따라서 이런 자재천의 복락과 삶의 기간을 인간이 추리해 생각하는 것은 마치 잠깐 살다가 사라지는 세균이 인간의 복락과 삶의 기간을 생각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 범부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하늘에 태어나 끝 없이 긴 기간동안 자신의 욕락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따라서 마땅히 이런 상태를 도달해야 할 최종목적으로 삼고자 할지도 모른다. 또한 사실상 오늘날 현대인들이 종교생활을 할 때, 그 대부분은 사후에 행복한 삶이 무궁하게 이어지길 바라며 종교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석존 자신은 이처럼 수승한 복락을 누리는 자재천 그리고 이외에도 예를 들어 화락천, 도솔천, 야마천 등등의 무수히 많고 많은 좋은 하늘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欲界6天,色界18天,無色界4天등] 그와 같은 하늘에 태어나 복락을 누리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하늘을 포함한 삼계 육도 모든 곳의 생사윤회의 얽매임을 벗어난 열반과 해탈을 위해 수행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희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일반인이 번뇌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과도 차이를 갖는다. 따라서 석존의 번뇌에 대한 이와 같은 가르침은 무엇 때문인가하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석존이 이와 같이 해탈과 열반을 가르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이다. 우선 각 세계의 중생들은 번뇌에 차서 욕구에 집착함으로서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근심과 걱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비록 그 욕구를 이룬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오래도록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또 그와 같이 이룬 성취의 결과는 영원한 상태를 이루어 머무를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기간의 차이는 있더라도 모두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법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최종적으로는 근심과 걱정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 아무리 타화자재천과 같이 오랜 기간 수승한 하늘의 삶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 끝은 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끝 역시 우리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것과 같은 고통과 두려움을 주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 끝나면 또 다시 윤회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일시적으로 한정적인 복락을 이룬다 하더라도 번뇌의 근본을 끊지 못하는 한 끝없는 생사윤회에서의 고통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석존은 오직 번뇌에서의 해탈과 깨달음을 통한 열반만이 생사윤회에 대한 진정한 근본적 해결방안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더욱이 다른 하늘과 달리 타화자재천과 같은 경우는 자신의 욕략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른 대상을 변화시키는 방안[他化]을 취하기 때문에 자신과 타존재에게 모두 오래 오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 수가 있다. 마치 한 군주가 절대권력을 갖고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할 때 그는 비록 즐거움을 받을지라도 많은 다른 백성들이 자신의 희망과 어긋나는 사태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이를 원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번뇌에 대해 타화자재천이 취하는 해결방안이 이처럼 근본적으로 불법과 서로 대치되기 때문에 욕계의 다른 하늘과 달리 타화자재천은 특히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방해하며 따라서 마천(魔天)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석존도 중생들이 선업을 쌓아 하늘의 복락을 받게 되는 것을 막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석존은 10 가지 선업을 쌓으면 하늘에 태어남을 설하고 이를 마땅히 행해야 한다고 가르친다.5)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존은 이처럼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번뇌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으로 보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이를 최종목적으로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석존은 하늘 중생이건 인간 세계 중생이건 근본적으로 번뇌의 잠시간의 해결에 만족하지 않고 윤회의 전기간에 걸친 총체적인 고통을 근본적으로 끊어내는 데 그 목적을 두어 수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설법을 다시 찾아볼 수 있다. 타화자재천에 있어서도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다시 지옥․축생․아귀 속에 나게 된다. 그러나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들은 그곳에서 목숨을 마치더라도 지옥․축생․아귀 속에는 나지 않느니라."6) 석존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모든 번뇌는 악마의 경계이다. 만일 비구로서 악마 경계에 있으면 그는 남, 늙음, 병,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근심, 걱정, 고통, 번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또 만일 어떤 비구로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번뇌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걱정, 고통, 번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7) III. 번뇌에 대한 대처방안[修行] 1 불교의 수행과 번뇌의 대처 위에서는 번뇌가 있을 때 그 번뇌에 집착하고 탐욕의 실현을 통해 번뇌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번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보았다. 그대신 깨달음을 얻고 번뇌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번뇌의 발생 근원을 끊어 해탈과 열반에 이르라고 석존께서 가르치는 그 이유를 대략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이에 따라 불교에서 번뇌를 끊는 수행방안의 대강을 살피고자 한다. 끊어야 할 대상으로서 번뇌의 종류와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살피는 것처럼 수없이 많고 다양하게 분류하여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번뇌는 모두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가장 근본으로 하여 나타난다. 그것은 중생이 외부대상이나 자신을 대할 때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최종적으로 각각 ① 좋다 ② 나쁘다 ③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라는 세가지 형태로 판단하게 된다는 사정에 그 기초가 있다. 그리고 이 각각에서 ① 탐욕, ② 성냄 ③ 어리석음이 그 각각에서 가장 나쁜 마음의 형태[三毒]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8) 따라서 이런 각 대상에 있어서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일으키지 않고 또 이를 바탕으로 행위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경계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들 각 대상을 대해 가장 올바른 마음 상태라 할 수 있는 깊고 밝은 지혜[明]인 깨달음[菩提]의 상태를 얻어야 한다. 크게 이 두 방향의 장애[煩惱障, 所知障]를 극복하는 것이 수행의 근본 목표가 된다. 따라서 불교에서 제시하는 제 수행방안이 모두 마음의 병인 번뇌와 어리석음에 대해 하나하나의 훌륭한 치료방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방안에 대한 가르침으로는 고(苦)와 그 원인[集] 그리고 고가 멸(滅)한 상태와 그 길[道]을 제시한 사제법(四諦法)의 설법이 이를 대표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수행방안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를 크게 묶는다면 계율[戒] 선정[定] 지혜[慧]의 삼학(三學)의 방안으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본다면, 계율의 내용으로서 살생(殺生), 도둑질[偸盜], 사음(邪淫), 거짓말[妄語], 음주(飮酒)를 금하는 5계(戒) 및, 8재계(齋戒), 10계(戒), 비구 비구니의 구족계(250, 348 具足戒)를 들 수 있고 선정의 방안으로 색계(色界)4선(禪) 무색계(無色界) 4선 그리고 37도품(四諦法)의 내용으로서 4념처, 4정근, 4여의족, 5근, 5력, 7각지, 8정도 그리고 널리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마음을 갖는 사무량심(四無量心), 그리고 대승에서 6 바라밀행(波羅蜜行)으로 강조되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그리고 다시 이에 원(願) 력(力) 방편(方便) 지(知)를 더한 10 바라밀행(波羅蜜行) 등이 불교에서 제시하는 수행의 구체적인 방안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세간에서는 이런 수행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오해를 하기 쉽다. 그것은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석존의 가르침은 일반 세속이나 자재천의 욕구 추구 방향과는 반대되는 가르침이므로, 불교의 수행은 오직 세간을 등져 모든 욕구 및 모든 일체를 외면하여 끊어 버리고, 마치 죽음과 같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허무주의적인 가르침만으로 일관된다고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탐욕을 끊음을 곧 일체 모든 욕구를 갖지 않아야 함으로 단순하게 이해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이해는 실제로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현실에서 번뇌를 끊고자 노력하는 이에게도 많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면을 갖는다. 또는 모든 일체의 욕심을 다 끊어야만 하는 것이 번뇌를 끊은 길이라 여기고 이는 매우 곤란하므로 처음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번뇌를 끊으려는 의지를 아예 갖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석존이 말하는 탐욕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석존은 욕심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욕심이란 이른바 다섯 가지 욕심의 번뇌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눈에 의한 의식[眼識]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빛깔을 보면 탐욕을 자라게 한다. 이와 같이 귀․코․혀도 그러하며, 몸에 의한 의식[身識]도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감촉에 닿으면 탐욕을 자라게 하나니, 이것을 욕심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붓다가 말하는) 욕심이 아니다. 그것을 탐(貪)해 집착할 때 그것을 욕심이라 하느니라.”9) 한편 대상이 즐거움을 주는 것과 이로 인해 갖는 번뇌의 상태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물질[色]은 한결같이 괴로운 것이 아니며 또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즐거움을 따르고 즐거움을 자라게 하며 즐거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까닭에 중생들은 물질에 더러워져 집착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얽매이고 이로 인해 번뇌가 있느니라. (... 느낌 생각 행위 의식[受想行識]도 이와 같다. ) .. 이를 일컬어 인과 연이 있어 번뇌의 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10)” 이처럼 석존이 탐욕을 문제삼을 때 어떤 대상에 좋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로 인해 이에 ‘더러워져 집착하고’ 또 이에 ‘얽매이는’ 마음을 문제삼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무엇이 좋고 나쁘다를 판단하거나, 실제로 무엇이 좋아서 기쁨을 갖거나, 또는 무엇이 좋아 그것을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는 것 일체를 탐욕이나 욕심에 넣어 끊어야 한다고 석존이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상태가 좋음으로 인해 그를 구하여 달라 붙는 마음[貪], 그리고 그런 상태가 반드시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하여 집착하여 추구하고 얽매이는 마음[貪欲]이 번뇌의 독(毒)을 일으키게 됨을 경계하여 가르친 것이다. 따라서 어떤 희망이 집착심 없이, 자신과 타 중생 모두에게 처음과 끝이 모두 오래 오래 좋은 상태를 주는 선(善)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 희망일 때 이를 탐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가르침 안에는 오히려 다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원(願), 욕(欲)등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예를 들어 근본 수행방안만을 보더라도, 이미 생긴 악을 끊어 없애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악을 생겨나지 않게 하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을 새로이 나타나게 하며, 이미 생겨난 선을 더욱 키우도록 희망하여, 이의 실천을 위해 근면 정진할 것을 가르치는 사정근(四正勤,四意斷)의 내용이 있으며 이는 곧 바른 희망, 욕구를 적극적으로 가져야 함을 가르치는 내용 바로 그것이다.11) 또한 욕(欲)은 4 여의족(如意足, 神足)의 하나에 들어간다.12) 또한 대승불교안에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비롯하여 보살이 실현시키기를 희원하는 수 없이 선한 희망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십바라밀 가운데 원(願)바라밀다가 제시되고 있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선한 희망이나 선정을 추구하여 얻게되는 기쁨이나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탐욕 또는 애욕의 범위에 넣는 것도 옳지 않다. 예를 들어 7각지의 내용 안에는 선정과 지혜로 정법을 기억하고 법을 선택하여, 정진하는 가운데, 올바른 법을 얻어 희열(喜悅)을 갖고 신심이 경쾌하고 안온함에 이르는 기쁨(喜)과 경안(輕安)각지(覺支)가 들어 있다. 또한 다른 중생을 무량하게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며, 타인이 깨달음이나 좋은 과보등을 얻을 때 이를 따라 기뻐하는 마음 등을 강조하는 사무량심[慈悲喜捨]이나 수희(隨喜)의 마음에도 기뻐함의 마음이 들어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 끊어야 할 내용으로 제시하는 탐욕[愛欲, 貪著心] 및 쾌락을, 선을 향한 올바른 희망[發願, 誓願]과 이를 통해 얻는 기쁨[遊戲, 慈悲, 隨喜, 輕安]과 서로 혼돈하여, 이 모두를 다 버리고 일체 세간에 대해 희망과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곧 올바른 수행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석존의 가르침의 본 뜻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제자의 악행을 꾸짖어 계율을 제정하는 석존의 마음을 성냄의 마음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부정(不淨)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관하는 사념처(四念處)의 수행, 일체개공(一切皆空)의 깨달음을 구하는 반야바라밀의 수행, 또는 멸진정(滅盡定)에 도달하고자 수행하는 선정 및 삼매수행등에 대해서도 간혹 세간에서는 이들을 멍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이 없이 바위와 같은 몽매함에 이르러 이에 마냥 빠져 있는 상태로 생각하거나, 가라앉은 마음[惛沈]으로 졸음이나 깊은 수면의 상태와 같이 되어야 곧 무아 공(空)에 대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인 것처럼 수행의 방편을 자칫 오해하는 것도 이와 같은 잘못과 같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에서 끊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모든 악행과 어리석음에 국한되는 것이며, 선의 경우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행하고자 하고, 한편으로 마음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맑게 하려 노력하는 것이 불교의 본 가르침의 내용인 것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義 是諸佛敎- 七佛通戒] 결론적으로 석존은 계정혜(戒定慧)를 닦아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으며 또한 이를 기초로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으로 다른 중생 모두를 이와 같이 안온한 해탈 열반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무수히 많고 많은 착한 희망[誓願]을 이루는 길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성취시킬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 구체적인 적용방안 그러나 이와 같은 수행은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의 각 입장별로 이를 벌려 세우는 체계와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나며 그 세세한 내용이 어렵고 복잡한 감이 있어서 오직 전문 불교수행자들만의 수행방안으로 멀리 여기기 쉽다. 따라서 구체적인 현실의 삶에서 실제로 탐욕심이나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 번민하거나 또는 어리석음에 싸여 벗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있을 때 일반인의 입장으로서도 불교의 수행방안과 체계의 도움을 받아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인가를 오늘날 번뇌의 현실상황에 실제로 적용하기에 적절하도록 근본불교 및 대승불교의 가르침 곳곳에서 그 내용을 추려 뽑아 나열하여 제시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생각해보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로서 석존보다 소유물을 많이 갖지 못했거나, 좋은 옷을 입지 못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그럼에도 석존보다 더 많이 번뇌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이 또한 드물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현실의 번뇌의 문제를 생각하는 가운데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탐욕이 일어날 때 이에 집착해 갖은 방편을 다해 실현시키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진정한 지혜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추구하느라 노력하는 현대인들이 그 뜻을 일부 이루고 못이루고에 관계 없이 처음 뜻했던 바와 같이 진정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가 또 진정 밝은 기쁨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석존께서 실제 살았던 상태와 자신의 상태를 비교하여, 현실의 가장 적은 상태에서부터 기본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知足]이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탐욕심이 일어나고 또는 성내는 마음이 일어날 때 우선 이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방안[修行]으로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탐욕등을 위해 쉽게 행하기 쉬운 악행들을 그것이 초래하는 나쁜 과보를 생각하여 이들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戒, 持戒波羅蜜] 그리고 그런 가운데 탐욕심이 일어날 때는 그 대상이 깨끗하지 못함을 생각하여 이를 끊어내고자 노력한다.[不淨觀 aśubhā-smṛti] 그리고 성냄이 일어날 때는 이를 달게 받아들이는 한편 이를 견디어 참고[忍辱波羅蜜] 또 한편 그 대상에 대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길 만한 점들을 생각해 내도록 노력한다. [慈悲觀 maitrīsmṛti] 또한 어리석음에 싸여 있다고 생각될 때는 사물이 변화하는 과정의 관계를 반복하여 살핌으로서 지혜를 얻어낸다.[緣起觀 idaṃpratyayatā-pratītyasamutpāda-smṛti]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해 번뇌가 일어날 때는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가 지수화풍공식(地水火風空識)과 같은 요소[六界]들의 화합의 결과에 불과하며 이런 화합된 결과인 자신이나 외부존재들에는 집착을 가질만한 영원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음[無我, 無自性]을 깨달아 집착을 끊어내도록 한다.[界分別觀 dhātu-prabheda-smṛti, 또는 般若空觀] 그리고 번뇌들로 마음이 들떠 산란하게 될 때는 자신의 들숨 날숨을 세면서 집중하여 마음을 가라앉힌다.[數息觀] 또 때로 너무 가라앉고 우울하며 어두운 마음이 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고, 외부 경계가 자신을 핍박하는 등의 경우에는 부처를 생각하며 이를 본받고 의지하는 마음을 갖는다. [念佛觀, 또는 五根 五力의 信]13)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주는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이 깨끗하지 못하고[不淨] 고통을 주는 것이며[苦] 또한 그 자체가 영원하지 못하며[無常] 그 안밖에 영원불변한 실체가 없는 존재임[無我, 無自性, 空]을 관하여 이에 대해 갖는 집착의 마음을 근원적으로 끊어내고자 노력한다. [四念處, 般若波羅蜜多, 空觀] 이처럼 노력한다면 조금씩 번뇌의 마음들을 끊어 없앨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등에 대해 이를 직접 상대하여 끊어 없애는 것도 한 방안이지만, 이 대신 번뇌의 마음이 차지 하는 곳에 다른 깨끗하고 밝은 지혜의 마음을 채워넣고 이에 집중함으로서 자연스레이 번뇌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방안도 있다. 그것은 어둠이 가득할 때 대신 밝은 빛을 채워 넣음으로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실례를 든다면 잡념이 많을 때 이를 하나하나 상대하면 잡념은 더욱 많아지고 더 커지지만, 대신 하나의 올바른 생각에 집중할 때는 반대로 그 모든 잡념이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수 많은 잘못된 견해들로 번뇌가 일어날 때는 그들 견해를 일일이 따라 가지 않고 삶에서 가장 근본이 되고 가장 요익(饒益)을 주는 사제법, 연기법, 사념처의 진리와 같은 내용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이에 집중하여 생각을 하므로서 잡념을 없애고[禪定波羅蜜, 七覺支, 三昧] 깊은 지혜를 얻는다. 그런 가운데 모든 고통이 어떻게 나타나고 그 고통들이 어떻게 해야 사라지는가의 문제[四諦法, 緣起法]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또 이런 결과, 가지가지 부질 없는 견해의 다툼으로부터도 벗어나올 수 있다. [見(苦,集,滅,道)所斷] 더 나아가 앞에서 본 것과 같은 부정 고 무상 무아 공등의 깨달음을 통해 나와 외부에 집착을 가질 만한 실다운 실체가 있다는 생각[我執-煩惱障, 法執-所知障]을 함께 끊어 근본무명의 어두움을 없애고 깨달음의 맑고 깨끗함을 대신 채워넣는 것도 이와 같은 방안이다. 또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상태는 이 마음안에 악을 끊고 선을 키우는 선한 희망 [四正勤]을 대신 채워 넣고 이에 정진함으로서 이들로부터 벗어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다함이 없는 번뇌를 끊어내고자 하고, 무량한 법문을 배우고자 하고, 모든 다른 이들을 이와 같이 만들어 고통으로부터 건져내도록 하고, 또 이로써 자신과 타인이 모두 다 함께 번뇌를 완전히 끊고 가장 높은 깨달음을 얻는 성스러운 부처와 같은 상태가 되게 하고자 하는 큰 서원[四弘誓願]을 일으켜 이에 대한 신념을 갖고 이에 정진을 기울인다면[精進, 願, 力, 方便, 知波羅蜜, 四如意足, 五根, 五力,] 이전의 어지러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욕구들은 반대로 자연스레이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해서는 가장 적은 상태에서 만족을 느끼고[少欲知足] 그럼으로써 자신에게는 불필요한 재물등에 집착하여 아끼는 마음을 벗어나, 자신의 재물이나 지식등을 진정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이를 베풀어 나누어 주는 마음을 일으키고[布施], 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보다 못한 이를 보고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으며 또한 상대를 차별 비하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또 한편 자신보다 나은 타인을 보고 불쾌해하거나, 그 타인에 대해 시기하거나 질투의 마음을 갖지 않고,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베풀어 주고 두려움과 손해를 덜어주려는 마음을 갖고 이의 방편을 생각하며 [慈悲] 다른 이가 선행을 하고 행복 공덕 깨달음등을 얻음에 자신도 따라 기뻐하며 때로는 자신도 이와 같이 성취시킬 것을 발원하고 또한 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隨喜, 願樂, 喜捨] 그리고 자신이 어떤 공덕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에는 자만심을 갖지 않고 이를 주위에 함께 나누고 그 공덕을 일체지(一切智)를 갖춘 부처님이나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리는 마음으로 자만과 교만의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올 수 있다.[廻向] 또한 앞으로의 번뇌의 근본을 미리 막는 근본방침으로는 지혜를 밝히면서 모든 방면에서 올바른 행위를 하는 삶의 자세를 기본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근본방침이 될 것이다. 그것은 8정도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과 같이, 자신과 외부의 모든 대상이 모두 부정(不淨)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하다는 이치와 연기의 이치나 사제법의 이치등을 올바로 봄[正見]을 시작으로 하여,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벗어나 올바른 지혜를 갖춘 사유를 행하며[正思惟] 거짓말, 사람을 이간시키는 말, 나쁜 말, 기이한 말들을 하지 않고 오직 진실된 말만을 하며[正語] 살생이나, 도둑질, 음행을 하지 않고 올바르고 깨끗한 행을 행하며[正業] 깨끗치 못한 직업을 떠나, 법답게 의식주를 얻는 일을 선택하여[正命] 올바른 수단과 방편으로 노력을 기울이며[正精進] 올바른 진리에 대해 올바로 기억해 지니고[正念] 올바로 선정을 행하여 산란한 마음을 떠나는 동시에 지혜를 개발하는 [正定] 삶의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해 나가는 것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14) 그리고 이와 같은 행(行)은 수승한 하늘의 과보를 얻는 십선법의 내용이 정사유 ,정어, 정업의 내용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 바라는 복락을 얻는 방침으로서도 충분할 뿐만 아니라,15) 불교의 근본가르침이 최종목적으로 하는 해탈과 열반을 얻는 가장 기본적인 길도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올바르고 선한 길 및 이를 통해 얻는 과보라고 하더라도 다시 이에 대해서 집착하고 그런 가운데 이들을 추구한다면 이는 과거의 번뇌의 행위와 하등 다르지 않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반야바라밀다경과 같은 경우에서는 이를 경계하여 이런 모든 수행의 방안을 실천함에 있어서 이로써 어떤 실체적인 어떤 결과를 얻는다는 생각[分別]없이 그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가운데 모든 가르침에 따른 올바른 수행을 행하라고 경전의 전반에 걸쳐 반복 설법하고 있음을 끝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16) 이와 같이 올바른 수행에 있어서조차 모든 집착을 떠나 행하는 이러한 자세의 편린(片鱗)은 가장 기본적 경전이 되는 『수타니파타』에서도 이미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난다여, 이 세상 진리를 통달한 사람은 견해나 학문이나 지식을 보고 성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번뇌인 마군을 깨뜨려 고뇌가 없고, 욕망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성자라고 나는 말한다."17) 이하에서는 끝으로 이와 같이 번뇌를 끊어 도달하는 열반의 상태란 과연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가에 대하여 간단히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잡아함경』에서는 열반에 대해 “열반이라는 것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성냄이 영원히 다하고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하고 일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것이니, 이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라고 열반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18) 그리고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이는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능히 스스로 증득하게 된다.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라고 서술하는 표현도 경전상에 매우 빈번히 나타나는 표현이다.19) 그런데 이런 열반과 해탈의 의미에 대해 근본불교 이래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견해의 대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앞의 표현이 ‘번뇌가 다하면 당장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을 받지 않고 떠날 수 있다라고 설하는 것인가’ 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런 의문에 대해 열반은 그런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며 현생에 태어난 이는 무상한 존재로서 노병사(老病死)는 깨달음을 얻은 존재인 붓다를 포함하여 어떤 존재도 피할 수 없는 법임을 석존 자신이 밝히고 있다.20) 그러므로 이것은 육체의 불사(不死)를 열반의 경지라고 보는 것이 아니며 열반이란 노병사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것에 구애받지 않음을 가리킨 것이다. 또 다른 오해로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이제 결정코 아무런 존재도 절대적으로 없는 상태에 이른다거나[斷滅, 無爲] 또는 영원한 부처의 존재가 되어 머물르게 된다[常]’라는 식으로 견해를 갖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항상함[常]과 아주 없어짐[斷] 양쪽을 모두 떠나 무아(無我)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가르침을 통해서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무아 무자성 공의 사상을 심화 발전시킨 대승의 입장에서는 열반이라는 상태에 별도의 다른 영원불변한 실체가 있어 이런 실체를 얻어 증득할 수 있다거나, 또는 반대로 아주 없음의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견해들을 바로잡기 위하여 깨달음(菩提)등을 얻은 열반의 상태와 번뇌의 상태가 서로 어떤 고정불변한 실체적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며[無自性, 空] 따라서 이들이 어떤 실체[自性]의 차원에서 차이나는 법이 아님을 밝히기 위하여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표현을 통하여 이를 밝히고 있다.21) IV. 번뇌의 종류 이제 끝으로 이런 수행의 방편을 통해 끊어야 할 번뇌의 자세한 의미는 무엇이며 또한 그 구체적인 내용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를 되도록 간략하게 살피고자 한다. 1 번뇌의 개념 번뇌(煩惱)는 그 어원을 통해 살펴본다면, ‘kleśa’ 또는 ‘kileśa’를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이를 음역하여 번뇌를 길예사(吉隸舍)라고도 표현한다. 번뇌에 해당하는 ‘kleśa’는 ‘괴롭히다’라는 말의 어원에서 파생되었고 또 ‘kileśa’는 ‘물들이다, 더럽히다’라는 말의 어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을 의역하여 번뇌(煩惱)라 표현한 것이다.22) 이 밖에도 번뇌는 그 작용, 특성, 구체적인 내용들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또 이 각각의 다른 명칭은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번뇌의 내용과 이 명칭을 통해 묶어 제시하는 구체적인 번뇌의 내용들에 있어서도 조금씩 차이를 갖게 된다. 번뇌가 어떤 내용을 갖는 점에서 그 명칭이 지어졌는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번뇌의 특성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번뇌의 내용과 종류는 다음 항목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① 우선 번뇌는 이치에 어둡고 현상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혹(惑)이라고도 표현한다. 또 외부대상을 사랑함으로써 집착하여 구하는 상태를 취(取, upādāna)라고 하여 번뇌를 의미하는 데에 사용한다. 또는 이는 사물에 대해 참다운 진리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도록 지혜의 눈을 가려 버리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집착하여 대상에 대하여 모습을 취(取)하여 집착하므로 ‘취(取 upādāna)’라고 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23) 따라서 취라는 용어로는 외경에 대한 탐욕 및 삿된 견해를 취해 갖는 번뇌를 일컫는데 주로 사용한다.[四取] ② 또 번뇌는 사람을 채찍질하여 미혹한 세계에 돌게 만드는 까닭에 사(使) 또는 정사(正使)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번뇌는 대상, 마음[心], 마음작용[心所]과 서로 영향을 가지고 더욱 늘어나고 강하게 된다[隨增] 또 번뇌는 사람을 따라 묶어 버리고[隨縛] 한편 궁지에 몰아 넣어서 몸과 마음을 잠들게 하고 그 활동하는 상태는 아주 미세하여 알기 어렵다[眠] 따라서 이런 면을 가리켜 번뇌를 수면(隨眠, anuśaya)이라고도 표현한다. 사(使)나 수면(隨眠)이란 용어는 주로 근본번뇌와 관련하여 사용하며, 분류에 따라서 6수면 7수면 10수면 또는 98수면을 세우기도 한다. 또 사(使)는 근본번뇌에 있어서 그 번뇌의 성질의 날카로움과 둔함등을 나눠 오견(五見)에 이사(利使)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둔사(鈍使)라고 나누어 표현할 때에도 사용한다. 한편 수면은 그 표현에 잠[眠]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점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고 숨어서 잠자고 있는 번뇌의 씨앗[種子]을 일컬어 수면(隨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랑부, 유식학파의 입장] 그리고 이런 입장 중 경량부는 번뇌가 잠재한 상태가 아니라 나타나 활동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마음을 얽어 묶어 선을 닦는 것을 방해한다는 의미로 전(纏-얽어묶다,, paryavasthāna)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경량부의 입장] 그리고 전(纏)은 보통 번뇌의 상태에 얽혀들어 그 상태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특징이 있는 지말 번뇌 8가지를 표현하는 데에 주로 사용한다. [八纏, 十纏] 한편 번뇌의 본체를 정사(正使 또는 使)라고 하고 이런 번뇌의 본체가 소멸한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번뇌의 남은 기운을 습기(習氣)라고 별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습기는 마치 향 담았던 그릇이 향을 비었어도 향기가 남아 있는 것과 같음에 비유한다. 또는 이와는 달리 번뇌의 종자를 습기라고도 표현한다. ③ 번뇌는 다시 중생을 미혹된 생사의 고통의 상태에 매듭지어 단단히 동여매 묶는다는 의미에서 결(結, saṃyojana 또는 bandhana) 또는 결사(結使)라고도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결은 중생을 욕계에 매어 두는 번뇌, 색계와 무색계에 매어두는 번뇌와 같이 근본번뇌와 지말번뇌가 중생을 묶어 두는 세계나 상태와 관련지어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된다. [五下分結, 五上分結, 三, 四, 五, 九結등] 구속시킨다는 박(縛, bandhana) 매어둔다는 뜻의 계(繫, grantha)도 함께 사용한다.[四結, 四縛, 四身繫] ④ 그리고 번뇌는 착한 마음을 덮어 가로막기 때문에 개(蓋, nīvaraṇa)라고도 한다.24) 많은 번뇌 가운데 주로 깨끗한 수행(戒 定 慧)를 덮는 작용을 하는 번뇌를 묶어 부를 때 사용한다. [五蓋] ⑤ 번뇌로 인해 중생들이 항상 눈귀 등의 6 감관들로부터 과실과 재난을 흘러 내보내[漏泄] 생사 가운데에 3계를 흘러 도는 것이기 때문에 번뇌를 루(漏 범 āsrava)라고도 표현 한다. 그리고 번뇌는 큰 물이 사람 가축을 모두 떠내려 보내듯 착한 성질을 흘러 보내기 때문에 폭류(暴流, ogha) 또는 류(流), 폭하(暴河)라고도 한다. 주로 번뇌를 욕계의 번뇌, 색계무색계의 번뇌, 그리고 이 삼계모두에서의 무명의 번뇌 등으로 나눠 묶어 부를 때 사용한다. 멍에를 의미하는 액(軛)이라는 표현도 폭류와 함께 사용한다.[四漏, 四暴流 四軛] ⑥ 번뇌는 더럽고 거친 마음의 때 먼지와 같다는 의미에서 구(垢, mala), 번뇌구(煩惱垢), 티끌처럼 다른 물건에 부착하여 그것을 오염시킨다는 의미에서 진구(塵垢), 구예(垢穢), 혹구(惑垢), 염구(染垢)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구(垢)는 주로 지말번뇌를 일컫는데 사용한다. 또 마음의 본래 모습은 청정하지만 손님과 같은 번뇌로 인해 더럽혀진 상태일 뿐이라는 의미를 뜻하기 위하여 객진(客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상을 기반으로 별도로 붙여진 표현이다.25) ⑦ 번뇌가 성스런 수행의 길[聖道]를 막고 방해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장(障, āvaraṇa)이라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26) 부파불교에서는 번뇌를 멸한 다음에도 멸진정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있다 하여 번뇌장과는 별도로 해탈장(解脫障, 定障)을 별도로 세워 번뇌장 해탈장등의 구별을 세운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부파불교가 법체의 항유[法體恒有]를 주장하고 나의 실체적 존재를 주장하는 견해[我執]만을 깨뜨리는 점을 비판하고 반대하여, 깨침을 이루는 데 장애함에는 아집(我執)에 기초하여 열반을 장애하는 번뇌장 이외에도, 깨달음[菩提]을 얻음을 장애하는 법집(法執)의 소지장(所知障-앎의 장애)이 별도로 있다고 하고, 소지장[法執]까지 멸하여야만 부처를 이룬다는 사상적 기반에서 소지장을 번뇌장과 함께 벌여 세운다. ⑧ 그외 번뇌를 나타내기 위하여 물들인다는 뜻의 염(染), 화살을 뜻하는 전(箭), 다툼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쟁근(諍根: 다툼의 근본) 및 주올(株杌) 소해(燒害) 등등의 표현도 나타나고 있다. 2 번뇌의 분류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다양한 표현들이 경전과 논서상에서 모두 번뇌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표현으로 나타내는 번뇌의 구체적인 내용들과 그 표현의 용법에는 넓은 뜻 좁은 뜻 등으로 달리 사용하고 있고 또 각 입장에서 이들을 묶어 분류하는 내용들간에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게 된다. 따라서 이들을 모두 단순히 나열해 본다면 각 분류에서 번뇌의 내용들이 반복하여 중복되거나, 때로는 빠지고 또 서로 달리 분류됨으로서 매우 복잡한 내용이 된다. 그리고 유부의 논서들이나 유식학의 논서들에서 5위 75법[俱舍]이나 5위 100법[唯識]과 같은 분류를 통해 마음작용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걸쳐 체계적이고 세세한 분류를 세우고 논술을 행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번뇌에 대해서도 좀 더 체계적인 분류가 나타난다. 그외 불교 경전과 논서상에서 행해진 각종의 분류방법은 복잡한 감은 있으나, 참고로 아래에 별단으로 대강 나열해 보기로 한다. 번뇌에 대해서는 ① 먼저 번뇌의 ‘본질’이 다른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인가 아니면 근본에서 파생된 번뇌인가를 따져 본혹과 수혹으로 나누기도 한다. ② 또 근본번뇌를 다시 그 번뇌가 갖는 ‘작용 및 성질’에 있어서 추리하고 살피는 작용을 갖고 그 작용이 날카로운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이사(利使), 둔사(鈍使)로 나누기도 한다. ③ 또 그 번뇌가 나타나는 ‘대상 및 그 성질’을 기준으로 이치에 미혹되는 이성적인 번뇌인가 아니면 사물에 미혹되는 감성적인 번뇌인가에 따라 미리(迷理)의 혹(惑) 미사(迷事)의혹(惑)으로 나누기도 한다. ④ 또 그 번뇌를 일으키는 ‘대상’이 자신에 관련된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 대한 것인가를 기준으로 내착번뇌(內著煩惱) 외착번뇌(外著煩惱)를 세운다. ⑤ 또 번뇌의 ‘대상 및 그 원인등’을 기준으로 자신과 외부에 대해 자신의 실체가 있다는 집착[我執]을 갖음으로서 열반을 이룸을 방해하는 번뇌인가, 외부대상이 실체적 존재로 존재한다고 보는 집착[法執]으로 갖는 무명의 어리석음에 기초하여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인가를 기준으로 번뇌장 소지장의 구분을 행하기도 한다. ⑥ 또 번뇌를 갖는 ‘대상’이 대상의 구체적인 자체의 모습[自相]인가 추상적인 공통된 모습[共相]인가를 기준으로 해서 자상의 혹, 공상의 혹으로 나누기도 하고 ⑦ 또 번뇌를 서로 늘리는 대상[有漏法;고제 집제에 드는 법]에 대한 번뇌인가[有漏緣의 惑] 그렇지 않은 무루법[멸제 도제에 드는 법]에 대한 번뇌[無漏緣의 惑]인가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한다. ⑧ 또 번뇌가 일어나는 ‘시기 및 원인’를 기준으로 하여, 날 때부터 갖고 일으키는 번뇌[俱生起의 惑], 잘못된 스승이나 잘못된 분별을 시작함으로서 일으키게 되는 번뇌[分別起의 惑]로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10수면 가운데 의(疑)․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금취견(戒禁取見) 넷은 분별기 번뇌에만 든다고 한다. ⑨ ‘수행단계’와 관련해서는 삼결이 다하면, 예류과에 든다고 하여 삼결과 예류과를 관련짓는다. 한편 오하분결은 주로 욕계에 메이게 하는 번뇌로 제시하나, 『잡아함경』에서는 오하분결을 끊으면 아나함과[不還果]를 얻는다고 설하여 수행단계에 관련시키기도 한다.27) ⑩ 또 ‘수행단계’를 사성제의 고집멸제에 대한 깨침을 얻는 과정인 견도(見道)와 그 이후 수행과정인 수도(修道)로 나누고, 이에 상응하여 욕계 색계 무색계의 각 세계에서 각 상태의 수행과정을 통해 끊을 수 있는 번뇌를 벌려 세우기도 한다. 이에 따라 견도 수도에 따라 견혹 수혹을 세운다. 유부에서는 앞의 미리(迷理)의 혹(惑) 미사(迷事)의혹(惑)이 이에 각기 상응하고, 유식종에서는 분별기의 혹, 구생기의 혹이 이에 각기 상응하여 조금 차이가 있게 된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끊을 수 있는 번뇌로 벌려 세우는 내용도 유부는 견혹88 수혹10을 세워 98 수면(사)을 세우고, 이에 대해 유식종은 견혹112 수혹16을 세워 128 번뇌를 세운다. ⑪ 한편 『승만경』에 나오는 견일처주지의 혹 애번뇌의 혹도 이와 같은 ‘수행단계’와 관련된 분류의 일종이다. ⑫ 또 천태종에서는 ‘수행 주체’별로 삼승에 공통되는 통혹(通惑) 보살만이 끊은 별혹(別惑)을 세우고 통혹에는 앞의 見思,修惑(思惑)을 들고, 별혹에 진사혹(塵沙惑)과 무명혹(無明惑)을 든다. 그리고 진사혹(塵沙惑)은 현상에 대한 차별적 모습에 대한 지혜[假觀]로 끊고, 무명혹(無明惑)은 공(空) 가(假)에 대한 중도 제일의제를 관하는 중관(中觀)을 통해 끊는다고 설한다. ⑬ 또 번뇌가 소재하는 ‘영역’을 기준으로 하나의 세계(욕계등)에서의 5 수행지위[‘4제+수도’의 5부]에 모두 작용하는 번뇌인가를 기준으로 변행혹(遍行惑) 비변행의 혹으로 나눈다. 앞의 98사등이, 각 수행단계를 가지고 끊어낼 수 있는 번뇌인가를 기준으로 분류함에 대하여 이 분류는 각 수행단계에 어떤 형태의 번뇌가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는가를 기준으로 나눈 분류이다. 따라서 사제법 가운데 고제(苦諦)의 이치(理)에 미혹된 오견(五見) 및 무명, 그리고 집제(集諦)의 이치에 미혹된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의(疑) 무명(無明)을 변행혹으로 든다. 또 이 변행혹을 다시 구분하여 보다 넓게 하나의 세계에서만 영향을 주는 번뇌를 자계연(自界緣)의 혹이라 하고[身見, 邊見], 타계까지 영향을 주는 나머지 번뇌를 타계연(他界緣)의 혹이라고 한다. ⑭ ‘삼계’의 번뇌와 관련해서는 또 달리 삼루(三漏)의 분류가 있다. 즉 번뇌를 유루(욕계에 계박된 무명을 제외한 번뇌) 무루(색계 무색계에서 무명을 제외한 번뇌) 무명루(삼계의 모든 무명)등으로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⑮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삼계’안에서 일으키는 번뇌[界內의 惑]와 삼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번뇌[界外의 惑] 그리고 이 둘에 모두 통하는 번뇌[界內外의 惑]를 분류하고 진사혹과 무명혹 견수혹[見思惑]을 위 순서대로 각기 분류해 넣는다. ⑯ 또 번뇌가 일으키는 ‘결과’를 기준으로 할 때는 업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혹[發業의 惑]과 삼계윤회를 받게 하는 혹[潤生의 惑]으로 나눈다. 앞에서 분별기의 혹 특히 제 6의식에 상응하는 무명을 발업의 혹이라 한다. ⑰ 또 욕계에 매이게 하는 ‘결과’를 낳는 번뇌와 색계 무색계에 메이게 하는 결과를 낳는 번뇌로 구분하여 오하분결(五下分結), 오상분결(五上分結)으로도 분류한다. 이들을 각 분류에 따라 자세한 내용을 모두 살핀다면 그 내용은 한층 더 복잡함을 더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음작용에 대해 비교적 체계적인 분류를 행한 부파불교시대의 논서와 유식교학상의 논서에 나타나는 근본번뇌와 지말번뇌의 분류방식에 의거하여 다양한 번뇌를 나열하고 이를 간략하게 살피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 분류에 있어서도 각 논서의 내용이 통일된 형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각 논서의 분류가 행해지는 근본 입장의 차이점이나 체계문제에 대해 상세한 서술을 하는 것을 피하고 또한 어떤 하나의 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나열하지 않고 되도록 많은 번뇌요소를 포함시켜 나열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분류 방식 자체보다는 많은 번뇌가운데 어떤 개별적인 번뇌들이 주로 거론되고 문제되는가를 살펴보는 데 주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근본번뇌 많은 번뇌 가운데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을 본혹(本惑), 또는 근본혹(根本惑) 혹은 단순히 번뇌라고 부르며, 유부에서는 수면(隨眠)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여러 번뇌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번뇌로는 탐(貪)․진(瞋)․만(慢)․무명(無明)․견(見)․의(疑)의 여섯가지를 든다. 이 가운데 탐(貪)을 욕탐(欲貪)과 유탐(有貪)으로 나누어 칠수면(七隨眠)을 세우기도 하고, 견(見)을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금취견(戒禁取見)등 5종으로 나누어 십수면(十隨眠)을 세우기도 한다. 또 이를 각 수행단계에서 끊을 번뇌의 형태로 다시 나눠 98 수면 128 수면등으로 세분하여 세우기도 한다. 혹은 십수면 중에서 탐을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 욕탐 색탐 무색탐으로 하고 십이 수면(십이사)이라고도 한다. 또 탐진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모든 악을 낳게 하는 가장 근본(因)이 되며 대표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다시 삼불선근(三不善根) 삼독(三毒) 삼구(三垢) 삼박(三縛)등 이라고도 표현한다. 이제 이 각각을 간단히 살펴본다. 탐(貪, lobha, rāg, abhidhyā,)은 색깔 소리 향기 맛 촉감에 대해 집착하고 또는 명성․재물등을 바라고 구하여 싫어함이 없는 정신작용을 뜻한다. 이를 탐욕(貪欲)․탐애(貪愛)․탐착(貪著) 또는 간단히 욕(欲)․애(愛)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진(瞋, pratigha, dveṣa , 팔리어 paṭigha, dosa)는 자신의 감정에 거스르는 것에 대하여 미움과 성냄을 일으켜 몸과 마음을 뜨겁게 괴롭혀 평안을 얻지 못하는 정신작용을 뜻한다. 진에(瞋恚)․진노(瞋怒)․에(恚)․ 노(怒)등으로도 표현한다. 진(瞋)은 오직 욕계에만 있으며 색계․무색계에는 없다고 한다. 또한 이 진(瞋)은 그 허물이 극히 심하여, 삼독 가운데 가장 중하다고 경론 가운데에서 늘 이를 경계시키고 있다.28) 무명(無明 avidyā․mūdha, 癡)은 진실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치와 사물에 대해 어두운 정신을 의미한다. 『성유식론』권6 에서는 모든 번뇌의 일어남에는 반드시 치(癡)가 결부되어 일어난다고 한다. 만(慢 māna)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과 비교하여 갖는 마음의 오만한 상태를 뜻한다.29) 이 만은 다시 ① 자신보다 열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서 동등하다고 하여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만(慢) ② 자신과 동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하는 과만(過慢) 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만과만(慢過慢) ④ 자신을 구성하는 다섯요소[五取蘊]을 영원한 나(我)다, 나의 것[我所]이다라고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아만(我慢) ⑤ 아직 예류과(預流果) 등의 뛰어난 과를 증득하지 못하였으면서도 이미 증득했다고 하여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증상만(增上慢) ⑥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만 열등하다고 하는 비만(卑慢) ⑦ 없는 덕을 있다고 하는 사만(邪慢) 등 일곱으로 다시 나누기도 한다.30) 이들은 모두 자기와 타인의 높고 낮음등을 따져 타인을 경멸하며 자신의 저열한 상태에서 자만에 빠져 보다 높은 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므로 근본 번뇌로 삼는다. 의(疑, vicikitsā)는 불교의 사제법 및 인과의 이치등에 대해 의심하고 미혹되어,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정신작용을 일컫는다. 넓은 뜻의 의(疑)에는 일반적으로 번뇌의 성질이 아닌 형태로 단지 처음 보는 대상들에 의문을 품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물 모두에 갖는 의문들은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하면 독각(獨覺)이상에서 끊어진다고 하며 아라한이 끊은 번뇌로서의 의(疑)는 사제법에 관련한 이치에 대한 의심을 주로 의미한다고 한다. 5가지 견[五見]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유신견(有身見, 薩迦耶見 satkaya-dṛṣṭi)은 색수상행식의 5요소가 화합한 몸에 항상된 실체적인 나의 존재를 세우고 고집하는 견해를 뜻한다. ② 변집견(邊執見 anta-grāha-dṛṣṭi)은 나와 나의 것에 대해 아주 없어짐[斷滅] 또는 항상함[常住]등의 극단의 견해를 세워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③ 사견(邪見 mithyā-dṛṣṭi) 이라 함은 사성제 및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고 삿되게 뒤바뀐 견해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유식학파에서는 이외에도 나머지 사견을 제외한 삿된 견해들에 집착함을 말한다. ④ 견취견(見取見 dṛṣṭiparāmarśa)은 앞에서 나열한 유신견 변집견 사견등 이치에 맞지 않는 견해를 집착하여 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⑤ 계금취견(戒禁取見 śīla-vrata-parāmarśa)은 계금등취견(戒禁等取見) 계취견(戒取見) 계도견(戒盜見)이라고도 한다.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라 하고 올바른 도(道)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고집하는 등으로 계율(戒律)등에 일으키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예를 들어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개나 소의 흉내를 내어야 한다는 식으로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31) [2] 지말번뇌(枝末煩惱) 앞에서 본 근본번뇌에 따라서 파생되어 일어나는 번뇌를 지말번뇌 지말혹(枝末惑) 또는 수번뇌(隨煩惱), 수혹(隨惑) 등으로 부른다. 구사종에서는 지말번뇌로 다음과 같은 것을 나열한다. 즉, 치(癡, 무명)를 제외한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으로서 방일(放逸)․불신(不信)․해태(懈怠)․혼침(惛沈)․도거(悼擧)의 5 번뇌를 들고 그리고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인 무참(無慚)․무괴(無愧)의 2 가지번뇌와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에 드는 분(忿)․부(覆)․간(慳)․질(嫉)․뇌(惱)․해(害)․한(恨)․첨(諂)․광(誑)․교(憍)의 10 가지 번뇌, 그리고 부정지법(不定地法) 가운데에서 수면(睡眠)․악작(惡作)의 2 가지를 들어 이를 합하여 19 가지 번뇌를 지말번뇌로 든다. 유식학파에서는 위의 19 가운데 부정지법에서 둘을 빼고 대번뇌지법에서는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의 셋을 더하여 20 종으로 하고, 이를 20 수번뇌라고 부른다. 그리고 유식종에서는 구사종의 대번뇌지법에 해당하는 것을 대수번뇌[大隨惑], 대불선지법을 중수번뇌[中隨惑], 소번뇌지법을 소수번뇌[小隨惑]라고 달리 부른다. 이와 같은 대중소의 구별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구별한 것이다. 즉 수번뇌 가운데에서 오염된 마음[染心]가운데 불선(不善)과 유부(有覆,허물있음) 모두에 항시 함께 있는 번뇌요소를 대수번뇌라 하고, 오염된 마음 가운데 불선(不善)의 경우에만 항시 있는 요소를 중수번뇌[구사에서는 대불선지법]라 하며, 이들에 항시 있는 것은 아니며 단순히 각자 별도로 일어나 존재하는 번뇌를 소수번뇌라 이름하여 분류한 것이다. 1) 대번뇌지법(대수혹)에 드는 지말번뇌 대번뇌지법으로 드는 번뇌에는 ① 4제법 3보(寶)등에 대해 사랑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지 않은 불신(不信, āśraddhya), ② 근면하지 않고 게으름피우는 마음을 의미하는 해태([懈怠, kausīdya) ③ 명백히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상태인 망념[失念, musita-smṛtitā) ④ 마음이 대상에 대해 흩어져 어지럽게 되는 심란(心亂, vikṣepa) ⑤ 여실(如實)하게 알지 못하고 진리에 통달하지 못해 사물도리를 명백히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상태로서 무명(無明, avidyā, 또는 癡, moha) ⑥ 대상에 대한 오해(誤解)를 갖는 마음상태를 의미하는 부정지(不正知, asamprajanya) ⑦ 더러움에 물든[染汚] 의식을 기울이는 작용[作意]을 의미하는 비리작의(非理作意) ⑧ 잘못된 견해를 일으킨 상태인 사승해(邪勝解) ⑨ 마음이 들떠 안정되지 못한 정신상태인 도거(掉擧, auddhatya,) ⑩ 착함을 닦아 익히는 것을 방치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는 정신상태인 방일(放逸, pramāda)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번뇌지법[유식학의 대수혹]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각 논서상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앞의 내용은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32) 『계신족론』33)과 『대비바사론』에서 들고 있는 10 가지를 나열한 것이다. 그러나 『구사론』에서는 이 가운데 5요소(失念 心亂 不正知 非理作意 邪勝解)가 빠져 제시되고34) 혼침(惛沈)이 추가되어 6대번뇌지법으로 제시된다. (무명은 우치(愚癡)로 바꿔 표현한다.) 또 한편 유식교학에서는 이러한 『구사론』의 6대번뇌지법을 수번뇌(隨煩惱)로 분류해 포함시킨다. 그리고 이 가운데 치(癡,무명)는 이를 근본번뇌에 넣고, 제외시킨다. 그리고 『구사론』에서 제외된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를 다시 이 안에 넣고 있다. 그리고 『유식삼십론송』 『성유식론』에서는 이들은 수번뇌 가운데에서 8 대수혹(大隨惑)으로 세분하여 분류한다. 그러나 『유가사지론』에서는 사승해(邪勝解)를 포함한다. 이와 같이 지말번뇌 가운데 대번뇌지법의 내용은 그 구체적인 내용과 분류에 있어서 각 논서가 취하는 체계별로 많은 차이가 있어서 혼돈을 일으키는 부분이 된다. 여기서는 『품류족론』에서 든 10가지를 모두 들어 설명하였다. 2) 소번뇌지법(소수혹)에 드는 지말번뇌 다시 10 소번뇌지법[十小煩惱地法] 또는 소수혹(小隨惑)으로 분류되는 지말번뇌의 내용은 ①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분개를 일으키는 분(忿, krodha) ② 노여움이 될 만한 일을 자주 생각하여, 원망하며 버리지 않는 마음상태(한恨, upanāha) ③ 명예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죄악을 은페하고 숨기는 마음상태를 뜻하는 부(覆, mrakṣa , 팔리어 makkha) ④ 그리고 스스로 잘못임을 알지만 타인이 반성을 권하는 것을 듣지 않고 마음을 번민하는 상태를 뜻하는 뇌(惱, pradāśa)35) ⑤ 남의 잘되는 일에 대하여 마음에 기뻐하지 않고36) 시기하고 꺼리는 마음을 뜻하는 질(嫉, īrṣyā) ⑥ 재물과 법과 솜씨등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집착하여 아끼는 마음인 간(慳, māṭsarya.) ⑦ 다른 이를 유혹하거나37) 속이는 광(誑, śāṭya) ⑧ 속마음을 숨기고 아양을 부리면서 비위를 맞추는 첨(諂, māyā) ⑨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마음을 뜻하는 만(慢)과는 달리, 자신 스스로 자신의 장점들에 대해 그릇되이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하게 되어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성질을 뜻하는 교(憍, mada)38) ⑩ 타생명[有情]을 괴롭게 만들고 해치는 해(害, vihiṃsā) 등이다. 이들은 구사 유식학의 대부분의 논서상에서 공통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 기타의 지말번뇌 i. 그 다음 ① 무참(無慚, āhrīkya) ② 무괴(無愧, anapatrapaya)를 구사론에서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유식교학에서는 수번뇌 가운데 중수혹(中隨惑)이란 명칭으로 분류하여 지맡번뇌로 든다. 무참 무괴에서의 참(慚)과 괴(愧)의 의미구별에 대해 『구사론』 권4에서는 여러 공덕 및 덕이 있는 자를 높이어 공경하는 마음을 참(慚)이라고 하고, 죄를 두려워 하는 마음을 괴(愧)라고 한다는 하나의 해석과 함께, 또 다른 해석으로 지은 바를 스스로 반성해 돌보아 살펴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참(慚)이라 하고 자기가 지은 죄로서 타인을 상대하여 대할 때 갖는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괴(愧)라고 한다는 해석도 들고 있다.39) ii. 한편 구사종에서는 부정지법(不定地法) 가운데에 포함시키는 수면과 악작을 지말번뇌에 포함시켜 든다. ① 의식이 깊이 잠자서[睡] 캄캄하여 작용하지 않는[眠] 상태를 수면(睡眠 middha)이라고 한다. 수면은 심신의 상태를 능히 자유로이 간직하지 못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여 대상에 대해 작용하지 못하게 하므로 이 역시 더러움에 물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40) 그외 ② 이미 지은 것을 싫어하고 나쁜 일을 지은 뒤에 되돌이켜 뉘우치는 마음을 악작(惡作, 또는 悔, kaukṛtya]41)이라 한다. 수면(睡眠)과 악작[悔]를 구사론과 유식학에서 모두 부정지법(不定地法)안에 넣어 분류하는 것은 같으나 구사종에서는 이를 다시 지말번뇌에 포함시킨다. 경전에는 수면(睡眠)은 대번뇌지법 가운데 혼침과 함께 혼면(惛眠)이라 부르고 악작도 도거와 함께 도회(悼悔)라고 표현하여 오개(五蓋)의 하나에 넣어 이를 혼침수면개(惛沈睡眠蓋), 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라고 하여 번뇌로 분류하고 있다. 4) 근본번뇌와 지말번뇌의 관계 지말번뇌는 근본번뇌로부터 나온 번뇌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각 지말번뇌가 어떤 근본번뇌와 구체적으로 관련되는 것인가에 대해 『구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즉 ① 탐(貪)으로부터는 무참(無慚)․간(慳)․도거(掉擧)가 일어나고, ② 진(瞋)으로부터는 질(嫉) 분(忿), ③ 그리고 무명(無明)으로부터는 무괴(無愧) 수면(睡眠) 혼침(惛沈)이, 그리고 ④ 의(疑)로부터는 회(悔)가 각각 일어난다고 밝힌다. 42) 그러나 유식학 논서인 『성유식론』에서는 수번뇌 가운데에서도 무참(無慚)· 무괴(無愧)· 도거(掉擧)· 혼침(惛沈)· 불신(不信)· 해태(懈怠)· 산란(散亂)의 일곱은 별도로 체가 있으며 이를 제외한 번뇌들은 근본번뇌의 부분으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따로 체(體)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① 탐애(貪愛)의 부분에서 간(慳) 교(憍)가 나타나고 ② 진(瞋)의 부분을 체(體)로 하여 분(忿) 한(恨) 뇌(惱) 질(嫉) 해(害)가 나타나며 ③ 탐(貪)과 치(癡)의 부분을 체로 하여 부(覆) 광(誑) 첨(諂)이 나타나며 ④ 혜(慧)와 치(癡)의 부분을 체로 하여 부정지(不正知)가 나타나고 ⑤ 염(念)과 치(癡)의 부분을 체로 하여 실념(失念)이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43) 기타 『유가사지론』 권55 에서는 앞에 든 부(覆)․광(誑)․첨(諂)․부정지(不正知)․망념(妄念)․외에 혼침(惛沈) 산란(散亂) 등이 모두 치(癡)의 일부분을 그 본체로 한다고 설명한다. 이상과 같이 번뇌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개관하여 마치고, 끝으로 번뇌에 대하여 경전과 논서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분류의 명칭과 내용을 표로 만들어 제시하여 이를 마치기로 한다. 근본-지말번뇌 상의 번뇌에 대한 다양한 용어 및 분류 三界분류와 번뇌의 관련형 三求 欲求․有求․梵行求. 長阿含經 卷8(大正藏 1권, p.50상)『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83상) 三愛(1) 欲愛, 色愛, 無色愛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83중) 三愛(2) 欲愛, 有愛, 無有愛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83중) 三怖 病怖, 老怖, 死怖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84상) 四軛 欲軛․有軛․見軛․無明軛.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99중)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7중) 四暴流 欲暴流․有暴流․見暴流․無明暴流 『集異門足論』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7상) 二漏 無明漏, 有愛漏 (譬喩者의 설) 『大毘婆沙論』 卷47 三漏 欲漏, 有漏, 無明漏, 長阿含經 卷8(大正藏 1권, p.50상) 『集異門足論』 (大正藏 26권, p.383상)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3하) 四漏 欲漏, 有漏, 見漏, 無明漏 『大毘婆沙論』 卷48 六漏 漏自性, 漏相屬, 漏所縛, 漏所隨, 漏隨順, 漏種類, 『大乘阿毘達磨雜集論』 卷3 . 七漏 見漏,修漏,根漏,惡漏,親近漏,受漏,念漏, 『北本大般涅槃經』 卷22, 卷23 三界繫 欲界繫, 色界繫, 無色界繫 근본번뇌 분류형 ( 貪瞋癡, + 慢疑見 분류계통) 三毒(三垢) 貪․瞋․癡. 長阿含經 卷8(大正藏 1권, p.50상) 三火 貪․瞋․癡.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84하, 385상) 三不善根 貪不善根․瞋不善根․癡不善根.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76중)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1상) 三不善尋 欲尋․恚尋․害尋.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77상) 二縛(1) 相應縛(作相惑), 所緣縛(粗重惑) 二縛(2) 子縛,果縛 三縛 貪․瞋․癡 四縛(1) 貪欲身縛, 瞋恚身縛, 戒盜身縛, 我見身縛 長阿含經 卷8(大正藏 1권, p.50하) 二取 能取, 所取. 四取 欲取․見取․戒禁取․我語取.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99 하)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7중) 四種繫(結,身結,縛) 貪欲身繫․瞋恚身繫․戒禁取身繫․此實執取身繫『大乘阿毘達磨雜集論』 卷7『集異門足論』 (大正藏 26권, p.399하)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8하) 五煩惱 欲貪·色貪·無色貪·瞋·疑 界身足論品類足論 六隨眠(根本煩惱,使) 貪․瞋․慢․無明(癡)․見(惡見)․疑, 七隨眠 欲貪 有貪, 瞋․慢․無明(癡)․見(惡見)․疑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39상) 七使 貪欲使․瞋恚使․見使․疑使․憍慢使․欲世間使․ 癡使. 增壹阿含經 卷34(大正藏 2권, p.738하) 十隨眠 貪, 瞋․慢․無明(癡)․疑․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 十二使(隨眠) 欲貪 色貪 無色貪 瞋․慢․無明(癡)․疑 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 五利使 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 五鈍使 貪․瞋․癡․慢․疑 八十八使 3계*(苦集滅道)*(貪․瞋․癡․慢․疑․薩迦耶見․邊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120 - 3계(集滅)(薩迦耶見․邊見․戒禁取見)18 - 3계(道)(薩迦耶見․邊見)6 - (색계․무색계)(苦集滅道)(瞋)8 = 88 九十八隨眠 욕계(苦諦10+集諦7+滅諦7+道諦8)색계(9,6,6,7)무색계(9,6,6,7)+修惑(욕계4,색계3,무색계3)(상세생략) 百八煩惱(1) 九十八隨眠+十纏, 百八煩惱(2) (眼耳鼻舌身意)6*(好,惡,平)3*(染,淨)*2(過去,現在,未來)3=108 百八煩惱(3) (眼耳鼻舌身意)6*(苦,樂,捨,+ 好,惡,平)6*(過去,現在,未來)3=108 百四惑 3계*(苦集滅道)*(貪․瞋․癡․慢․疑․薩迦耶見․邊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120 + 修惑[3계*(貪․瞋․癡․慢.)]12 - 3계(集滅道)(薩迦耶見․邊見)18 - (색계․무색계)(苦集滅道修)(瞋)10 瑜伽師地論의 「攝決擇分」 百二十八煩惱 3계*(苦集滅道)*(貪․瞋․癡․慢․疑․薩迦耶見․邊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120 + 修惑[3계*(貪․瞋․癡․慢․薩迦耶見․邊見.)] - (색계․무색계)(苦集滅道修)(瞋)10 瑜伽師地論 「本地分」 근본 + 지말번뇌 분류형 二結 慳․嫉 『中阿含經』 卷33 三結(1) 身邪結(有身見結)․戒盜結(戒禁取見結)․疑結 『增一阿含經』卷17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37하) 三結(2) 愛․恚․無明 『阿毘曇甘露味論』․『阿毘達磨俱舍論』卷21 等 三結(3) 貪身․狐疑․毁戒 『光讚般若經』 卷2 四結(1) 欲結․瞋結․癡結․利養結 『增一阿含經』卷20 四結(四身結․四縛) 貪嫉身結․瞋恚身結․戒取身結․貪著是實身取身結(見取身結) 『成實論』 卷10․『鞞婆沙論』 卷2 ․ 『大乘義章』 卷5本 . 五結 貪結․瞋結․慢結․嫉結․慳結 五下分結(順下分結) 欲貪․嗔恚․有身見․戒禁取․疑. 『雜阿含經』 (大正藏 1권, p.16하) 長阿含經 卷8(大正藏 1권, p.51중)『中阿含經』卷56․『阿毘達磨發智論』卷3 『集異門足論』卷12 (大正藏 26권, p.419하 -420상)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53상 254중) 『阿毘達磨俱舍論』卷21 (大正藏 29권, p.109상) 五上分結(順上分結) 色貪結․無色貪結․掉擧結․慢結․無明結 長阿含經 卷8(大正藏 1권, p.51중)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20상중)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 254 중-하) 『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29권, p.109 상) 七結 欲愛․有愛․瞋恚․慢․見․疑․無明. 增壹阿含經 卷34(大正藏 2권, p.738하) 長阿含經 卷9(大正藏 1권, p.54중) 九結 愛․恚․慢․無明․見(身․邊․邪)․取(見取見,戒禁取見)․疑․嫉․慳 雜阿含經 卷18(大正藏 2권, p.127상)․『集異門足論』(大正藏 26, 446상) 『阿毘達磨發智論』 卷3․ 『辯中邊論』 二十一結 瞋心結․恚害心結․睡眠心結․調戲心結․疑是心結․怒爲心結․忌爲心結․惱爲心結․嫉爲心結․憎爲心結․無慚心結․無愧心結․幻爲心結․姦爲心結․僞爲心結․諍爲心結․憍爲心結․慢爲心結․妬爲心結․增上慢爲心結․貪爲心結. 增壹阿含經 卷6(大正藏 2권, p.573하) 五蓋 貪欲蓋(愛欲蓋), 瞋恚蓋, 惛沈睡眠(惛眠)蓋, 掉擧惡作(掉悔)蓋, 疑蓋, 增壹阿含經 卷24(大正藏 2권, p.674) 長阿含經 卷9(大正藏 1권, p.58상)『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16상) 大毘婆沙論 卷46, (大正藏 27권, p.249중) 개별번뇌의 세분형 四愛 因衣服愛, 因飮食愛, 因臥具愛, 因有無有愛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00하) 五慳 住處慳․家慳․色讚慳․利養慳․法慳. 『集異門足論』 (大正藏 26권, p.415중) 三慢類 我勝慢․我等慢․我劣慢.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84하) 五心縛 (第一心縛[身], 第二心縛[欲], 第三心縛[樂相雜住], 第四心縛[正論], 第五心縛[於後勝所作]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18상-419하) 六諍根 忿恨諍․覆惱諍․誑諂諍․邪見諍․倒見諍․自見執諍.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31상) 번뇌 단순나열형 二法(1) 無明․有愛.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69하) 法蘊足論, (大正藏 26권, p.505하) 二法(2) 無漸․無愧.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69하) 二法(3) 匱戒(破戒)․匱見(破見)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373하) 三法(1) 老·病·死, -이하 삼법(10)까지 雜阿含經 卷14(大正藏 2권, p.95하-96중). 三法(2) 貪·恚·癡, 三法(3) 身見·戒取·疑, 三法(4) 不正思惟·習近邪道·懈怠心, 三法(5) 失念·不正知·亂心, 三法(6) 悼·不律儀·不學戒, 三法(7) 不信·難敎·懈怠· 三法(8) 不欲見聖·不欲聞法·常求人短, 三法(9) 不恭敬·戾語·習惡知識, 三法(10) 無慚·無愧·放逸 雜阿含經 卷14(大正藏 2권, 95하-96중). 七十九法 瞋․癡․忿․恨․覆․惱․嫉․慳․誑․諂․無慚․無愧․慢․過慢․慢過慢․我慢․增上慢․卑慢․邪慢․憍․放逸․傲․憤發․矯妄․詭詐․現相․激磨․以利求利․惡欲․大欲․顯欲․不喜足․不恭敬․起惡言․樂惡友․不忍․耽嗜․遍耽嗜․染貪․非法貪․著貪․惡貪․有身見․有見․無有見․貪欲․瞋恚․惛沈․睡眠․掉擧․惡作․疑․瞢憒․不樂․頻申․欠呿․食不調性․心昧劣性․種種想․不作意․麤重․觝突․饕餐․不和軟性․不調柔性․不順同類․欲尋․恚尋․害尋․親里尋․國土尋․不死尋․陵蔑尋․假族尋․愁․歎․苦․憂․擾惱. 法蘊足論 卷9 (大正藏 26권, p.494하) 근본_지말번뇌 나열형 七非妙法 不信․無慚․無愧․懈怠․失念․不定․惡慧. 『集異門足論』(大正藏 26권, p.436하, 437상) 八纏 無慚․無愧․嫉․慳․悔․睡眠․掉擧․惛沈 - 8隨煩惱, 品類足論 卷1(大正藏 26권, p.693하), 俱舍論 卷21(大正藏 29권, p.109중), 十纏 (無慚․無愧․嫉․慳․悔․睡眠․掉擧․惛沈) + 忿․覆, 俱舍論 卷21(大正藏 29권, p.109중), 三垢 貪․瞋․癡 (五)心垢(五蓋) 欲貪․瞋恚․惛眠․掉悔․疑 『舍利弗阿毘曇論』 卷14 六垢 惱․害․恨․諂․誑․憍 十一心垢 疑․不思惟․怖․悲․惡․睡眠․過精進․軟精進․無能․若干想․著色 『舍利弗阿毘曇論』 卷14 十六心垢 不法欲․瞋․忿․恨․覆․惱․嫉․慳․諂․誑․剛復․報復心․慢․過慢․憍․放逸. 二十一心垢. 希望․瞋恚․睡眠․掉悔․疑․惱害․常念怨嫌․懷恨․燋熱․嫉妬․慳惜․詭詐․奸欺․無慚․無愧․矜高․諍訟․自高․放逸․慢․增上慢, 十六穢心 欲貪․邪․貪瞋․忿恨․覆․惱․嫉․慳․詐瞞․誑․頑迷․性急․慢․過慢․憍․放逸. 二十一心穢 邪見心穢, 非法欲心穢, 惡貪心穢, 邪法心穢, 貪心穢, 恚心穢, 睡眠心穢, 悼悔心穢, 疑惑心穢, 瞋纏心穢, 不語結心穢, 慳心穢, 嫉心穢, 斯誑心穢, 諛諂心穢, 無慙心穢, 無愧心穢, 慢心穢, 大慢心穢, 慢慠心穢, 放逸心穢 中阿含經 卷23 「水淨梵志經」 卷23(大正藏 1권, p.575상-576상). 지말번뇌 분류형 三大有覆無記地法 無明·惛沈·掉擧 大毘婆沙論 五大不善地法 無明·惛沈·掉擧·無慚·無愧 大毘婆沙論 大不善地法 無慚․無愧. 十大煩惱地法(1) 不信,懈怠,失念(妄念),心亂,無明,不正知,非理作意,邪勝解,掉擧,放逸, 『阿毘達磨品類足論』「辯七事品」 (大正藏. 26권, p.698하) 『阿毘達磨界身足論』 「本事品第一」 (大正藏, p.614중) 『品類足論』 『大毘婆沙論』(失念을 妄念으로 표현) 六大煩惱地法 無明(愚癡)․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 小煩惱地法 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 , 界身足論,品類足論大毘婆沙論 不定地法(1) 惡作․睡眠․尋․伺․ - 『阿毘達磨俱舍論』, 不定地法(2) 惡作․睡眠․尋․伺․(貪․瞋․ 慢․疑.) - 俱舍論記 卷4(大正藏 41권, p.78중) 俱舍論疏 卷4 (大正藏 41권, p.530하) 四惑 我癡․我見․我慢․我愛. (本)煩惱(本惑) 貪․瞋․癡(無明)․慢․疑․惡見(見). 『瑜伽師地論』顯揚聖敎論大乘百法明門論唯識三十論頌 隨煩惱(22) 忿·恨·覆·惱·嫉·慳·誑·諂·憍·害·無慚·無愧·惛沈·掉擧·不信·懈怠·放逸·[邪欲·邪勝解]·忘念·散亂·不正知 『瑜伽師地論』 隨煩惱(20) 忿·恨·覆·惱·嫉·慳·誑·諂·憍·害·無慚·無愧·惛沈·掉擧·不信·懈怠·放逸·失念·心亂·不正知 顯揚聖敎論大乘百法明門論唯識三十論頌 小隨惑 忿․恨․覆․惱․嫉․慳․誑․諂․害․憍. 成唯識論 中隨惑 無慙․無愧. 成唯識論 大隨惑 掉擧․惛沈․不信․懈怠․放逸․失念․散亂․不正知. 成唯識論 不定心所 惡作(悔), 睡眠, 尋, 伺 -유식『瑜伽師地論』顯揚聖敎論大乘百法明門論唯識三十論頌成唯識論 번뇌장_소지장 분류형 八種分別(妄想) 自性妄想․差別妄想․攝受積聚妄想․我妄想․我所妄想․念妄想․不念妄想․俱相違妄想 菩薩地持經 卷2(大正藏 30권, p.895중) - 所知障의 체성 二障(1) 煩惱障(惑障) 解脫障(定障) 『阿毘達磨俱舍論』(大正藏 29권, p.15상) - 慧解脫방해, 滅盡定(俱解脫)방해 二障(2) 煩惱障, 所知障(智障) 『成唯識論』(大正藏 31권, p.1상) - 我執, 法執 二障(3) 煩惱障[四住地煩惱], 智障[無明住地] 『大乘義章』 권5 二障(4) 煩惱障, 三昧障 -世親,『金剛般若波羅密經論』권상 煩惱障(見思惑)-三昧障(無諍三昧執着) 三種煩惱(1) 見惑, 修惑, 所知障 三種煩惱(2) 見道所斷煩惱, 修道所斷煩惱, 非二(究竟道)所斷煩惱(二障習氣, 煩惱碍의六種染心, 智碍의 根本無明) 九客塵 隨眠貪欲煩惱․隨眠瞋․隨眠癡․貪瞋癡等極重上心惑․無明住地․見諦所滅․修習所滅․不淨地․淨地惑. 『佛性論』 卷4 二種煩惱 住地煩惱, 起煩惱(起惑) 釋元曉 撰, 二障義(韓佛全 1권, p.801상), 二住地煩惱 生得(性得,見一處,一切見)住地, 作得(有愛數)住地 四住地煩惱 生得住地, 欲愛住地, 色愛住地, 有愛住地 四住地=(無始無明住地,心不相應無明住地)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大正藏 12권, p.220상), 菩薩瓔珞本業經 卷下(大正藏 24권, p.1021하-1022상) 五住地煩惱 生得住地, 欲愛住地, 色愛住地, 有愛住地, 無明住地 三惑 見思惑(界內惑, 通惑), 塵沙惑, 無明惑 1) 『佛說譬喩經』1권. (大正新脩大藏經 4권, p.801-) 이하 大正新脩大藏經을 大正藏으로 약칭.
2) 『中阿含經』 제56권 (大正藏 1권, p.777하)
3) 『숫타니파타』 2. (18-34게)
4) 『雜阿含經』 「他化自在天經」 (大正藏 2권, p.219중) 『大智度論』 권9 (大正藏 25권, p.122상, p.99중)
5) 『雜阿含經』 「十善經」(大正藏 2권, p.357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