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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연구

일체지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4. 25. 07:27



®

일체지 

[한문] 一切智

[범어] sarvajñatā

[티벳] thams cad mkhyen pa nyid

[영어] perfect knowledge



● From 운허 동국역경원 불교사전

일체지


[한문] 一切智

     【범】sarvajña 【팔】Sabbaññū 3지(智)의 하나. 

일체 제법의 총상(總相)을 개괄적으로 아는 지혜. 

천태(天台)에서는 성문ㆍ연각(緣覺)의 지혜라 하고, 

구사에서는 부처님의 지혜라 함.




○ [pt op tr]




■ 불교사전 링크 및 불교 사전 출처 종합 안내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blog-post_21.html


■ 본 페이지 ID 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entry/일체지
http://buddhism007.tistory.com/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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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정보 사용페이지



sfd8--불교단상_2563_04.txt ☞◆vdau1493

sfed--도행반야경_K0006_T0224.txt ☞9. 각품(覺品) 

http://buddhism007.tistory.com/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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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체지







◆vliv6683

◈Lab value 불기2563/04/25/목/20:00


♥ 잡담 ♥불교용어공부 조각글 코너는 다른 조각글 코너와 달리 
해당 불교 용어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적기로 했다. 
일일단상코너 조각글=> 그날 있는 일 + 잡담 + 계속 이어지는 주제 논의 
경률논코너 조각글=> 니르바나 행복론 주제 

불교용어코너 조각글=> 해당 용어와 관련된 내용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일체지란 용어를 놓고 사전풀이를 참조하는데 
이는 도종지(道種智)ㆍ일체지(一切智)ㆍ일체종지(一切種智).
또는 도혜(道慧), 도종혜(道種慧), 일체지(一切智), 일체종지(一切種智)
이런 여러 표현과 함께 사용된다. 
그외에도 경전과 논서 상에서 표현되는 지와 관련된 표현이 대단히 많고 
이들도 자세히 살피면 복잡하다. 

그리고 모든 단어나 표현과 마찬가지로
전후 맥락에 따라서 좁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사전에 나오는 풀이는 일반적인 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전마다 또 조금씩 설명 내용이 다르기도 하다. 

그리고 연구인 입장에서는 이런 사전 내용은 일단 참조하고
연구에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연구과정에서 이것을 절대적인 내용으로 보면 곤란하다. 

그래서 하나하나 내용을 놓고 잘 검토해나가야 할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설명을 보면 총상과 별상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사전 풀이에 사용되는 용어가 또 어려운 용어여서 
또 사전을 참조해야 하고 그 풀이를 보면 
또 낯선 용어가 나와서 또 참조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 용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총상 별상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전체와 부분의 관념과 관련된다고 이해하면 쉽다. 


전체로 묶어서 보면 하나의 집인데 
각 부분을 나누어서 보니 
이 부분은 기둥이고 
저 부분은 문이고 
저 부분은 벽이고 이런 식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전체도 또 다른 큰 부분과 관련시켜 대하면 
또 다른 큰 전체의 부분으로 대할 수가 있고 

또 한 부분도 또 그보다 더 작은 부분과 관련시키면 
하나의 전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적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전체로 묶어 보면 사람이고 영희인데 
각 부분을 나누어 보면 손이고 팔이다. 


그런데 이 총상과 별상의 관념은 
자칫 공상과 자상의 관념과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영희를 놓고 생각해보자. 

영희가 100m 앞에 서 있다가 자신 앞으로 뛰어 오는 경우를 놓고 보자. 
처음에는 콩알 만한 크기였는데 점차 커지면서 자신만한 크기로 보이게 된다. 
그 매순간 동작이나 모습도 다르다. 

또 영희는 공부할 때 영희도 있고 잠잘 때 영희도 있고 
영화를 볼 때의 영희도 있고 다 제각각 다르다. 

그런데 이 각 순간 매번 일정한 부분을 영희로 묶어서 대한다면 
그 주체는 이 각 부분을 하나의 공통된 내용이 있다고 여기고 
또 그것을 통해서 이 각 내용을 다 영희라고 대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각기 다른 각 내용을 하나의 영희라고 본다면 
그렇게 보게 하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있어서 그렇다고 보는 한편 
이런 부분을 공상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이에 반해서 그런 내용도 갖지만, 그 각각의 내용이 다른 내용과 다르다고 본다면 
그렇게 같고 다른 내용을 다 함께 갖고 있는 매 순간의 모습을 자상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그것을 영희라고 보게 하고 
바위나 책상이라고 보지 않는 것은 
그 부분이 영희라고 보게 하는 영희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라고 
여기면서 그런 특성은 곧 영희라고 보게 하는 영희의 자성이라고 또 표현하게 된다. 

물론 영희라고 보는 부분은 그런 특성만 갖는 것이 아니고, 
영희나 바위나 나무 책상 이런 것이 다 함께 갖는 특성도 함께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특성을 가지고 그 부분을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게 된 것은 아니므로 
그것을 영희의 영희만의 제 성품[자성]이라고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하튼 어떤 부분에 대해서 
그 부분의 본 정체가 무언가를 파악하는 것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것을 파악하는 상태가 바람직하고 
특히 그것을 가장 올바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만일 이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잘못 파악하면 
문제가 된다. 
그 자체가 옳지 않은 내용이어서 문제지만, 
그에 바탕해 무언가 또 생각하고 행동을 하게 되면 
그 바탕이 되는 잘못된 견해나 판단으로 말미암아
원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로서 실패와 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에 처한다. 
이것이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과 대단히 밀접하다. 

어떤 것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하는 것은 
반드시 그 주체의 희망과 부합하지 않을 수는 있다. 

눈 앞에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황금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긴다고 해보자. 

그가 희망하는 내용에 맞추어서 
그것은 바위가 아니고 값비싼 황금덩어리였으면 좋겠지만, 
정확히 잘 판단하면 그것은 그냥 바위일 뿐이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제시하면 
그 내용이 그 주체의 희망과는 맞지 않아서 
실망을 줄 수가 있다. 

그렇지만, 비록 희망과는 부합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면, 앞과 같은 문제와 바로 관련된다.

단지 노란 빛을 띄는 바위일 뿐인데 
그것이 황금이라고 여기고 
이것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심하게 싸운다거나,
그것을 잘 보관하려고 온갖 신경을 다 쓰고 
관리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파산하고 고통 속에 지내게 되었다. 

이런 예는 현실에서 차트를 놓고 매 순간 
각 종목이 어떻게 가격이 변동될까를 놓고 
투자를 행하면서 차트의 변동과 함께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마치는 
차트맨의 삶과도 관련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처음 그런 활동을 하게 된 그 바탕이 된 판단 자체가 
잘못되고 부정확한 판단이기게 
그 정도에 비례헤서 그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처음 무언가를 추구할 때는
가치 저울을 마련해서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각 가치를 측정하는 모든 가치의 표준추로 삼고 
최소한 이것보다 같거나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자신의 생명이 대략 100 년정도가 되면 죽음을 맞이해서 
사망에 이르고 
그 이후 자신이나 자신이 보유한 것은 
최소한 자신을 기준으로 하면 모두 0 의 상태가 된다는 것을 
먼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재화 가운데에서는 자신의 생명과 생존에 밀접한 생계비와 관련된 부분이 있고 
그 범위를 넘는 부분이 있어서 
이들이 외관은 같지만 그 성격이 각 경우 따라 다르다는 것도 
또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이 생명이나 신체를 우주와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는가도 잘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 현금 469 조원과 비교할 때
가치 저울 한쪽에 놓여 있는 자신의 심장과 두눈 
또 한쪽에 놓여 있는 현금 469 조원 가운데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어느쪽이 더 가치가 있다고 보고 
선택해야 되는가 이런 문제도 먼저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를 갖는 자신의 신체나 생명이 
100 년 정도 지나면 
마치 새 자동차가 시간이 오래되어서 
고철 수집상만 겨우 가치를 인정하고 구매하고 
페차 상태가 되는 것에 준해서 
매 기간마다 가치가 소모되고 줄어들어간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 당사자 입장에서는 최후 1 분만 남은 그 상태에서도 
여전히 우주보다 소중하다고 여기겠지만 
여하튼 사망에 이르면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에 관계없이 
0 상태가 된다고 일단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매 기간별로 그런 가치가 점점 없어져 가는 상황인데 
처음 바위 하나를 놓고 
그 정체가 무언가부터 잘못 판단하면 
이 모든 내용이 다 엉터리가 된다. 

그래서 비록 정확하게 정체를 파악하는 내용이 
그 주체가 희망하는 내용과 하나하나 일치하는 내용은 아닐지라도 
우선 자신이 놓여 있는 세계의 정체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각 부분의 정체부터 
하나하나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결국 이런 판단을 기초로 해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열쇠나 문도 올바로 찾아낼 수가 있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올 수 있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요구되는 지혜 가운데에서도 
다시 다양한 종류가 나열되는 사정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오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므로 
그에 관련된 내용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나중에 생사묶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다른 중생을 또 그렇게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우선 다른 중생이 갖는 소원부터 하나하나 잘 성취시켜 주면서 
이를 계기로 점차 수행부분으로 이끌어 들여야만 
각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다는 생사 현실과 각 중생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 

본래 각 중생이 자신이 생사에서 벗어난 것처럼 
그 내용만 바로 취해서 곧바로 수행에 진입해 들어올 수 있다면 
처음에 제시한 그런 내용만 올바로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것만 충족한 상태로는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하다. 

또 한편 수행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도 
각 수행자마다 다양한 수행방안을 놓고도 
또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무량하게 제각각 다른 소원을 놓고 집착하고 임하는 
각 중생을 다 잘 제도할 수 있으려면 
그에 따라 요구되는 지혜도 다시 무량하게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이런 수행목표에 따라서 
충족해야 한다고 보는 지혜가 제각각 달리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여기서 일체지는 
그 표현을 사용한 맥락에 따라서 
어떤 경우는 부처님이 중생제도를 위해 충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그런 지혜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단지 한 주체가 일단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오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한다고 보는 지혜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뒤의 경우라면 
그것은 결국 일체에 대해서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판단 내용과 
깊게 관련된다. 

그런데 그 일체를 놓고 
어떤 방식으로 대하기에 
그 일체가 ~~ 하다라고 다 판단할 수 있게 되는가와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지 그 일체를 전체로 하나로 묶어서 대하는 가운데 
그에 대해 판단을 잘 했다고 해서 
그 주체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가. 

아니면 일체를 전체든 부분이든 모두 다 나열한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이 다 함께 갖는다고 보는 내용을 
잘 파악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그 일체에 대해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에 잘 임하게 되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이 부분이 문제다. 

그래서 잘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여하튼 총과 별이라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앞에서 제시한 공상과 자상의 구분과도 
거의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이것은 언어 표현이 본래 갖는 다의성과 애매함의 문제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 표현과 관계없이 
각 내용을 어떤 입장에서 대하는 가운데 
어떤 내용을 파악한 상태가 
일체지를 얻는 상태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불교의 법인설의 내용과 
가장 기본적인 실상의 공함과 
생사현실에 적용되는 연기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들이 일체와 관련되어서 
어떤 형태로 제시되는가를 잘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일체는 공하다. 
이 말은 
우주를 전체로 묶어서 볼 때만 그 우주가 공하다고 제시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경우도 그렇지만, 
그렇지 않고 영희 철수 책상 바위 이렇게 나누어 살펴도 그렇고 
다시 더 나누어서 손 팔 다리 이렇게 나누어 살펴도 그렇다. 
그런데 여하는 주어 부분에 무엇을 놓고 살펴도 다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다. 

그런 상태를 총상을 살폈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공상을 살폈다고 할 것인지는 
또 다른 언어 표현과 그 의미 이해와 관련되는 내용이지만, 
앞과 같은 내용이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기본적으로 요구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것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또 그에 따라서 그 주체는 그런 망집에 묶이지 않고 
풀려난 상태가 또 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얻어야 하는 수행목표점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 망상분별과 엉터리 견해를 갖고 현실에 임하던 상태에서 
그런 것을 모두 제거하고 
이런 지혜를 증득한 상태로 변화되면서 
점차 중생제도나 수행과 관련해 필요한 지혜가 하나하나 더 갖추어지는 것이 
결국 수행과정에서 향해 나갈 목표점이 되는 사정이다. 

이는 수행에서는 전식득지, 이런 표현과도 또 관련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blog-post_18.html
sfx--dict/일체지.txt ☞◆vliv6683
sfd8--불교용어dic_2564_04.txt ☞◆voqc6614 
불기2563-04-25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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