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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

영구기관과 무량행문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9. 5. 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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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xx--영구기관과 -무량행문.txt

http://buddhism007.tistory.com/

● 이하 글은 단상_조각글 내용을 주제별로 '편집중'인 상태의 글입니다.

>>>


무량행문작전에 임해서 

연구성과가 너무 분량이 적다는 지적이 있다.  


곡수가 10000 곡을 넘는데 

하루에 1 곡씩 올리면 

언제 다 올리는가. 


산수를 잘 하는 이는 쉽게 계산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하루에 1 곡씩 올리면 적당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는데 

그래도 안정적으로 하루에 여러 곡을 올리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는 입장도 있다. 



그래서 무리가 된다고 보는 측면도 있지만, 

무량행문의 본질에 부응해서 

무량한 연구작업에 임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식량 문제와 미세먼지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고 

이 기회에 무한동력 영구기관 이런 것을 

본 연구소에서 연구하기로 하였다


원래부터 있던 영구기관을 어떻게 
다시 새로 만들어내는가. 
그래서 
이 문제가 자체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입장도 
있지만, 그러니까 가능하다고 하는 입장도 있다. 

이론적인 검토부터 해보자. 

자신의 꿈이 그대로 실현된 경우를 
하나 뽑아 보자. 

그것이 무엇이던 살면서 
그런 순간을 뽑아 
정지화면으로 만들어서 
본 연구소에서 관찰 검증을 해본다는 의미다. 

본 연구소에서 지적하는 바는 
다음이다. 

그 정지화면에서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그 실재 본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을 가장 기본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지화면에서의 문제인가 하면 
꿈을 그리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 당사자가 자신의 꿈이 성취되었다고 
확인하고 사인을 마친 그 장면이 
그렇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수행자의 서원이 무엇인가하면 
모든 번뇌와 생사고통을 제거해 벗어나고 
깨달음(보리)를 얻고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제시하는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그 내용이 성취되었다는 장면을 놓고 
앞과 같은 내용을 가장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는데 그것이 원칙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수행자가 갖는 
서원이 원만히 성취된 상태인 것이다. 

깨달음의 정체는 그런 것을 얻을 것이 
없음을 얻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머지가 다 같다. 

제거할 번뇌가 본래 없음을 깨닫는 것이고 
생사현실이 곧 니르바나의 상태임을 깨닫는 것이고 
나머지가 다 마찬가지다. 

그것을 잘 이해하고 수행을 정진하면 
그래서 그런 까닭에 그렇게 
그 서원을 모두 뜻과 같이 성취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

왜 그런가는 앞의 내용이 그 사정을 
다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A + B => C 의 관계식을 제시할 때 
그래서 그것이 
C 가 무상하고 고통의 내용이고 
무아, 무자성이고 그것이 곧 
청정한 니르바나임을 의미하고 
그것이 곧 실재가 공함을 의미한다고 제시하였을 때도 
그 사정이 같다. 

그래서 c 가 위와 같이 얻어진다고 
제시한 것이다. 

금강경이나 반야바라밀다경전의 표현으로 
이 사정을 표현하면 

본래 얻을 것이 없다. 그래서 
그런 까닭에 수행을 하면 
그 서원을 모두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행하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성취하게 된다. 

이런 내용을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다. 


prince 님은 앞 부분은 
그래서 수행할 필요가 없고 
수행해도 성취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고 

뒷 부분은 그래서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제시한 것 같다고 이해하고 
자체모순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A + B => C 의 관계식이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 내용임을 
위에 설명을 붙인 것이다. 

그 식이 그 내용을 다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가.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는데 
중생을 얻을 수 없다. 

보시하는 이나 받는 이 물건 보시하는 행위 
보시를 통해서 이 물건이 여기에서 없어지고 
사라진다는 결과도 얻을 수 없고 
생멸이나 증감도 얻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얻을 것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하여 
집착을 갖지 말고 상을 취하지 말고 
상에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해야 하고 

그렇게 행하면 무량한 복덕을 얻는다. 

금강경이나 반야경전에서 제시하는 핵심 내용은 
이 두 측면이고 
이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부처님이 하라고 가르쳐준대로 
그대로 행하라고 주의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본래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음(불생불멸)의 측면은 
삶에서 집착으로 만들어 갖는 
번뇌 생사 고통을 제거하는 측면이고 

그런 가운데 수행을 하라고 제시한 것은 
그래서 무량한 선업을 통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원만히 
성취하고 
중생제도 불국토장엄 성불을 
성취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이 두 내용이 서로가 서로의 근거가 되고 
바탕이 되는 내용인데 
prince 님은 오해를 하고 
양쪽의 부정적인 측면을 자꾸 붙잡고 
임하는 것이다. 

집착을 제거해서 무량한 선법을 닦는 것을 제거하려고 
하거나 

무량한 선법을 닦는 수행에 집착을 가져 
전도몽상상 편집증을 일으켜 
자체적으로 지옥의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는 상태를 
치료하는 이가 
이를 위한 수행을 놓고 집착을 일으켜 
자신부터 병에 걸린 상태로 
임하려고 하는 것이다. 


보시를 할 때 
수행자가 보시를 행하면 
사회내 전체 부의 증가가 없이 공연히 
이전소득만 발생한다거나 
건전한 근로정신을 해친다. 
그리고 재원을 마련하려면 
성실한 근로자에게 세금부담만 늘리고 
더 나아가 소신공양 수행을 하는 수행자에게 
담배값만 자꾸 부담시키는 폐해가 있게 된다는 
이런 시각도 있다. 

이런 엉터리 견해가 왜 나오는가. 

이들이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는 광장심 관찰을 행하지 않고 

무언가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서 대충 생각하고 넘어가는 
협단천 관찰을 하고 임하기에 
그런 것이다. 

부처님은 공한 가운데 
무량한 복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무량한 지옥의 고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제시한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수행자의 선택사항이다. 

그 내용이 앞 내용이다. 

그래서 원래 무량한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영구 기관 무한동력 무한 에너지 
이러한 것을 제공해줄 필요가 없다. 
 
이미 있고 없앨 도리가 없는 것을 어떻게 없애고 
새로 다시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마치 이것을 새 연구주제로 제시하니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시각을 갖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담배를 끊기 위해서 
담배를 태우지 않는 이가 
새로 담배를 피워 끊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말꼬리만 붙잡고 늘어지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서 얻는 니르바나 
이계과는 
수행을 통해 얻는 결과로 보이지만, 
본래 앞의 성격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다고 제시되는 사정도 그런 것이다. 

원래 있는 것이고 갖추고 있는 것인데 
어느 순간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온갖 생사 고통은 다 갖추어 받아가고 있으니 
그것을 제거해서 다시 사용하면 
마치 수행을 통해서 새로 얻는 내용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갖게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원인이 없지만, 
결과라고 제시되는 것이 
이계과라는 표현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계(繫)란 얽어 맨다는 의미다 .

같은 일인데 
같은 일을 하면서 
무언가에 얽어 매임을 당하고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는 상태가 
좋은가. 
아니면 그런 것을 떠나는 상태가 좋은가. 
단순한 이야기다. 

세계를 3 계로 분류할 때 
그 안에 아무리 하늘이 있다고 해도 
이 3 계에 묶여서 얽어매인 상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야 지옥부터 하늘까지 
모든 상태에서 청정한 니르바나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좋음에 집착하면 그 집착 때문에 
자연히 나쁨을 받는 것이 두렵고 
그래서 불안해지고 
그래서 좋음을 얻어도 평안하지 못한 상태로 
전전긍긍하면서 매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꼭 하늘에 자신은 가야겠다 
안 가면 큰일이다. 
행여나 지옥에 가면 큰일이다. 
이렇게 마음을 가질 때 부터 
큰 일인 것이다. 

그 내용이 문장 안에 적혀 있다. 


[...]


없어도 좋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경우와는 달리 

없으면 생존 자체가 힘든 문제는 


수행자가 무량행문에 임하는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원칙적인 수행에서 

옷 세벌 숲이나 무덤가 거처 

발우(밥그릇)  

이런 것을 최소한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확보되어야 


그 이후 수행자가 수행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것만 구비되면 

이후에는 수행에 전념하고 이런 생존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아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량행문에 임하는 수행자는 

조금 또 사정이 다르다. 


수행자 자신만 고려해서는 곤란하고 

전체 사회가 최소한의 생존문제를 

잘 해결할 뿐만 아니라 

중생들이 집착하는 바를 

잘 성취시켜 주면서 [요익중생]


그런 가운데 수행에 진입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또 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식량자급률 자체가 20 % 대에 머물고 

에너지를 거의 외국에 의존하고 

안보와 관련해서도 사정이 비슷한 것은 


상당히 취약점이 많은 상태임을 

나타낸다. 


비상시에는 이것이 모두 다 

문제가 되게 마련이다. 


현재는 세계 무역질서가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데 

절대량이 부족하면 

그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래서 무량행문 첫 부분에서

이 방안들을 일단 생각해보는 것이다. 


7 층농장을 건설해 

농산물을 경작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별로 효용이 없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내용이었는데 


요즘은 경제적 기술적으로 

쉽게 실현가능하다고도 보게 된다. 


각 층에 방수시설을 할 필요도 없이 

층을 분리시켜서 


위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추고 

맨 위층에 물을 공급하면 

차례대로 전체 층 농작물에 

물이 공급되게 하면 

된다고 본다. 


7 층은 상징적이다. 

왜 7 층만 되겠는가. 


그러나 자급률이 20 % 대라고 놓고 

농작물은 최선을 다해도 

기상 조건 등에 좌우되는 바가 크므로 

7 배 정도로 버퍼를 만들어서 

약간 여유를 두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고려할 것은 

이런 건축물이 

자체적으로 예술적인 건물이 되게 하여서 


관광산업 기능도 동시에 갖추고 


농작물이 과잉되면 그것도 문제이므로 

때로는 다른 시설로 전용도 쉽게 

이뤄질 수 있게 

미리 잘 고려해서 건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게 된다. 



먹지 않고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7년간 이상하게 전 세계적으로 

흉작이 되면 

별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첫 시나리오는 

갖고 있는 무기로 

생존을 해결하자고 

식량이 여유있는 곳으로 

죽기살기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코 없을 일을 놓고 걱정하는 경우는 

지나친 걱정인데 

가능성이 있는데도 대비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조선시대 선조대왕이 

조선에 지옥을 구현한 근본 바탕이기도 한 것이다. 



자다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생존에 필수품도 해결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무엇을 믿고 그렇게 

여유를 갖는지는 제 3 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주변 이웃을 너무 믿는 것이다. 


연애를 해본 입장에서는 

이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상대가 아무 핸디캡이나 약점이 없고 

완벽하면 

오히려 상대에 대해 

자신이 해줄 것이 없다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끼기가 쉬운 것이다 


나중에 보면 각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독립생활이 가능한 경우는 

사정이 그렇기에 

독립해서 살아갈 가능성도 

높다고 보게 된다. 


즉 다른 이의 도움이 아쉽지 않기에 

결합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장님이면서 다리가 건강한 이와 

다리가 불편하면서 눈이 건강한 이는 


오히려 서로 떨어지지 않고 

오래 같이 지내면서 

또 상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지낼 수가 있는데 


각기 핸디캡이 없으면 

그런 결합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 혼자 다 잘 할 수 있다고 

자만하면서 지내다 보면 

다시 라이터 화두의 교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혼자서 무엇이던 다 잘 할 수 있다고 해도 

너무 무리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러면 라이터를 직접 만들어서 

각기 사용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의 문제인 것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모두 내맡기고 

아무 대책도 없이 

나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면 되겠는가. 


그래서 안보와 식량자급 

그리고 에너지 자급 방안을 

무량행문에서 우선 해결해야 하는데 


알고 보면 부족한 것은 이것이 아니고 

반야 지혜와 

소원 성취의 취지가 문제인 것이다. 


이웃을 무시하고 

혼자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경우는 

조금 더 라이터 화두를 놓고 

삼매를 닦아나갈 필요가 

있기도 한 것이다. 






앞에서 

소원이 성취된 한 정지된 단면을 놓고 

아무리 관찰해도 

그것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했는데 


그러나 소원이 성취된 경우와 

그 소원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여하튼 

소원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상황에서 

그 상황에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측면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끝내 얻을 것이 없다는 측면 하나와 

그렇기에 그런 내용이 성취도 된다는 측면이다. 


이 내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배경화면에 터미네이터 ii 의 모습이 있다. 

터미네이터 ii 를 그려 놓고 싶다고 한 희망이 있었다면 

그래서 다른 부분과 달리 이 부분에 

그 희망이 실현된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이 그대로 생각한 내용인가. 

그리고 그 실재가 그대로 감각현실인가를 

묻는 것이고 


그런데 

감각현실을 떠나서 그런 생각을 일으킨 것인가. 

실재를 떠나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가를 

묻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넓은 벌판에 7 층의 예술적인 

농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생각이라고 보는 경우가 있다. 


말이 쉽지 그것이 내일 당장 

건설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그 만큼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에너지도 그렇고 

또 안보의 문제도 성격이 같다는 것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앞의 문제가 쉽다면 

뒤의 문제도 쉽다고 할 만한데 

그렇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일단 현실에서 쉽게 가능한 일부터 

하나씩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자신의 몸을 놓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심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각 기관 및 세포에 필요한 

에너지와 식량을 공급해주는 일을 

심장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심장이 이것을 다 처음부터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지만, 

피를 통해 각 부분에 공급해주기에 

심장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심장만 일을 하게 하면 

점차 심장이 비대해지게 마련이다. 


여기서 지나치기 쉬운 것은 

아주 말단부의 말초혈관이 담당하는 

기능이다. 


말초혈관 부분에 피가 공급이 잘 안 되므로 

심장이 더 세게 보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점점 압력을 높여 내보내는데 


그러나 심장만 압력을 높인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신체의 각 미세한 말초혈관이 

사실은 심장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반절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이 있다. 


피가 순환하지 않을 때 

따뜻한 물에서 목욕을 하거나 

술을 마셔서 순환을 돕거나 

하는 방안도 있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한 방안이고 

그리고 말초혈관부위를 

마찰하거나 진동을 일으키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그러면 피가 순환이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같은 자세로 

하루 종일 있으면 

어느 부분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고 

그래서 그 부분은 결국 괴사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경우 전체로 보면 

그 부분은 대단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장도 아니고 

간도 아니고 

없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방치하면 

이제 전체 부분이 결국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담배를 많이 태우고 

운동을 잘 하지 않는 본인은 

그런 위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앞에 방안이 나열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운동은 별로 

즐겨하지 않으려 하기 쉽다. 


보통은 그다지 재미없고 단조롭기만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단지 재미만 있고 즐겁기만 하기에 

그렇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는 이제 삼매를 통해서 

전신 각 세포부분을 활성하시키는 

훈련이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가능한가는 

전신에 소름을 돋게 하는 것을 놓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고 본다. 


무엇때문에 소름이 전신에 돋는가.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통해서 

각 부분을 활성화시키는 활동을 

숨쉬기 동작을 통해서라도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이런 삼매를 통해서 

신체에 무기물을 통한 광합성 작용도 가능하게 만들고 

신체내에 핵발전소도 만들어서 

아톰형 신체를 만들어 나가면 

더 좋으리라고 보는데 

이런 것이 수행과정에서 익혀 나가게 되는 

신족통 의성신 여환삼매의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터미네이터 II 가 화면에 보여서 

너무 오버하는 감도 있는데 

여하튼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행은 

결국 이런 상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빠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지내는 경우에는 

당장 한 순간이라도 짬을 내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집중시키는 것 조차도 힘들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숨쉬기를 하면서 

육체의 숨쉬기 동작에 

마음을 쏟아 

심신을 함께 결합시키고 


그 상태에서 정려 수행을 해나가면 

그렇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숨을 쉬는 이상 어느 상태에서나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중환자 상태가 된 

임종 직전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의외로 이 수행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숨을 쉬는 한 그리고 주변에 보호자가 아무도 없더라도 

당황하셨나요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수행을 하는 동안 

익힌 다라니도 외우고 

념, 혜, 행을 도로로 삼아서 

그리고 지와 관 ( 정려, 선정)을 수레로 삼아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 무상 무원무작 해탈문을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젊을 때는 자신은 그럴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경험상 대부분 그런 상태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역시 그런 때 당황하셨나요?

이런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수행방안에 충실히 임하면 

되는 것이다. 


왜 움직이지 못하는데 

전신 세포를 활성화하는 수행이 기본적으로 

필요한가는 

책상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날 때 

발이 저리는 경험을 하는 경우는 

그 차이가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발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행하는 것과  

전혀 안하는 것은 차이가 큰 것이다. 




순환이 갖는 의미는 또 하나가 있다. 



a 란 부분이 중요하다고 하자. 

그런데 전체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나 식량이 

한정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것을 잘 순환시키면 

전체가 다 함께 건강해질 수 있는데 


그것을 잘못 행하면 

A 는 과잉이 되어서 문제가 발생하고 

다른 부분은 부족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금융이론을 이해하는 이는 

상식이라고 보지만, 

쉽게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한국은행에서 10 억원을 지폐를 찍어 

유통시켰는데 

어떤 이가 이 돈을 수입으로 얻은 다음 

배추밭에 비닐로 

묻어 두었다고 하자. 


그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그는 자신이 10 억원을 그렇게 

보유해서 기분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만큼 순환이 안 되고 


그리고 그 자금이 필요한 부분은 

공급이 안 되어서 괴사상태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이 은행에 들어가면 

무슨 차이가 있게 되는가하면 

이론상 무한대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은 순환의 힘이다. 


너무 남용하면 

일시에 예금자가 한꺼번에 

몰려 들어 금액을 청구하게 되면 

당연히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양 측면에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원래 한국은행에서 시장에서 공급한 금액은 

10 억으로 같은데 


그것이 사회안에서 순환이 되는 경우와 

한 부분에 머물고 있는 경우는 

그 상태가 서로 의미가 다르다고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하게 다 같다고 여기는 것은 

처음 재료가 같기에 같다고 하는 측면이다. 


본래 지옥이나 극락이나 

다 청정한 니르바나다라고 제시하는 측면과 같다. 



그런데 이런 기본 상태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얻어낼 수 있는 상태와 

또는 무량한 고통을 받는 상태가 

다 가능하다고 제시하는 것은 


그 상태에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업을 행해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제시하는 측면이다. 


무언가 몸을 움직여서 행하는 것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행하는 목적과 그 방향에 따라서 

의미가 다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각기 하루 종일 

열심히 무언가를 했는데 


한 사람은 계속해서 

도자기를 만들고 그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여서 

도자기 하나당 몇 천만원씩 수입을 얻을 수도 있는데 반해 


어떤 이는 계속 망치로 

그렇게 만들어 놓은 다른 이의 도자기를 

부수는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비유인데 

현실에서 그런 성격을 갖는 일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이런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A 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서 

A 가 하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1 억의 자금을 공급해주려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도 앞의 문제가 같이 문제된다. 


직접적으로 A 에게 바로 전해주는 경우와 

순환을 통해 전해주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신체를 비유로 놓고 

심장 부분에 1 억을 전해주고자 할 때 

심장에 바로 전해주는 경우와 


피가 잘 안통하는 말초혈관에 전해주는 경우 

어떤 것이 더 나은가 

이런 문제와 관련된다. 


당장 효능을 생각하면 

중요 기능을 담당하는 곳에 바로 

공급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지만, 


순환의 과정을 생각하면 

같은 자금으로 전 부분이 

다 함께 그 혜택을 받고 

건강해지게 된다는 측면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부위가 통증을 느낄 때 

그 부분에 바로 약을 투여하고 

그 해당 부분에 직접 마사지를 하는 것도 방안이지만, 


그 부분 주변을 마사지하고 약을 발라야 

더 효과가 좋은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문제를 대하면 

곤란하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문제를 보면 이렇다. 


어떤 회사가 망하려고 하는데 

국가적으로 중요한 회사라고 하자. 


이 때 그 회사를 살려주기 위해서 

회사에 직접 자금을 융자해줄 수도 있고 

세금을 감면해줄 수도 있고 

직접 투자를 할 수도 있고 등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차피 결과는 같다고 하지만, 

그것을 그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수요자 측에게 쿠폰을 발행해주어서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형을 단순화해서 이렇게 두 방안을 놓고 

볼 때 어느 것이 더 나은가. 


그런데 주체도 수없이 많고 

순환의 횟수도 수없이 많은 경우는 또 어떤가 


이론상 1 에서 무한까지 이것을 

늘려 놓을 수 있는데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0 에서 00 (무한)) 까지를 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경전에서 처음 시작은 물방울 하나인데 

그로 인해 무량한 기간 무간지옥에 갇히는 주체가 있고 

또 반대로 무량한 기간 하늘의 복덕을 받는 주체가 있게 된다고 

제시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자동차를 다른 공간으로 옮겨 

주차시키는 문제가 제출될 때 


왜 바퀴를 붙들고 굴리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엔진축을 붙잡고 마구 돌리려고 하지 않는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럴 것 같은데 

운전을 하는 이는 

키를 꼽고 

시동을 걸어서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방안을 택해야 

원하는 결과를 잘 얻는가는 


단순하게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서 접근하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종이를 태우면 재가 나오는데 

그 재를 아무리 변화시켜도 

종이를 다시 보기는 힘들다. 


어떤 동력기관을 만들어 작동시켜도 

작동과정에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이런 것이 과학계의 상식이다. 


그래서 얼음 - 물 - 얼음 - 물 

이런 식으로 무한히 사용하거나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영구기관을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 

과학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적어도 부처님의 법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런 내용이 이미 반야심경에서도 

제시되고 있는데 


부족한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지혜이고 

그런 내용을 성취하고자 하는 

취지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확보되면 

그런 문제는 본래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게 된다. 


누구나 무한한 시간에 걸쳐 

터미네이터 II 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터미네이터 II 초기에는 바탕화면의 형태로 활동했는데 

요즘은 한국인으로 변해 활동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



무량행문과 라이터 


무량행문은 말 그대로 무량한데 

이것이 모두 다라니와 삼매의 형태가 됨을 

앞 조각글에서 제시했다. 


그래서 무량행문에 대한 내용은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 무량행문의 과정에서 

겪는 위험이나 어려움은 

모두 최극단 지점에서도 

생사를 벗어나 

청정한 니르바나에 늘 머문다는 점을 

본전으로 확보하여 진행되는 내용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라이터 화두는 여기에서 늘 

무량행문의 구체적 주제와 관련해 

그것이 갖는 가치를 평가하게 해준다. 


라이터는 

시장에서 구하려면 쉽고 

만들려면 힘들다. 

과거 원시시대라면 추장이 될 수단일 수도 있다고 보지만, 

요즘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여전히 이 라이터는 수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라이터 화두의 최대 핵심은 

LIGHT 가 의미하는 바에 따라 

무량하게 확대된다는 점이다. 


수행자에게는 LIGHT 는 주로 

지혜 광명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LIGHTER  라는 한 단어에 

모두 담아 놓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을 다함이 없는 무진등으로 삼아 

수행자에게 제공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숙왕화님이 마실을 다녀오자고 제의해서 

갔다 왔다가 

분노 게이지만 높이고 

따로 돌아왔다. 


동네 구경을 다니는 것을 마실이라고 하고 

마실을 전문으로 다니는 이를 마실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최근 외운 다라니에도 나오는 단어이다. 


61 번대에 마실사 파사 자사파 사나 

이런 구절이 여기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마실을 다녀오는 것은 좋은데 

왜 이렇게 보폭이 빠르고 

또 왜 이야기를 나누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이런 가운데 걷다보면 

얼마 안 지나 한 10 m 씩 계속 앞서 가려면 

무엇하러 같이 마실을 갔다오자고 한 것인가. 


결국 중간에 각기 자신이 갔다 올 곳을 

다녀오자고 하고 

혼자 한참 걸어다니다가 돌아왔는데 

조금 기분이 언쨚다. 


연구 분야가 조금 다르더라도 

한 동안 연구한 내용을 보고해주면 

조금 고개라도 끄덕이고 

무슨 반응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 등산화를 신고 가야 하는가. 

그냥 평범한 샌들을 신고 가야 하는가 

물어 볼 때 

등산화가 좋다고 해서 

등산화를 신고 갔는데 


오랜만에 등산화를 신어서 그런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공연히 발에 물집만 생기고 

발만 무척 아프다. 


알고 보니 등산코스도 아니고 

그냥 동네 언덕 정도로만 된 코스를 놓고 

그렇게 하니 발은 발대로 아프고 


계속 혼자 앞서 가버리고 

그리고 중간에 쉴 틈도 안 주고 

조금 쉬려면 계속 재촉을 하니 

사람이 견딜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결국 중간에 각기 혼자 가기로 하고 

헤어져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오게 된 것이다.















마실 다니는 동안 저렇게 거리를 두고 

혼자 쉬지 않고 가니 

어떻하는가. 




생사에 관한 중요 사항을 

보고해준다고 


참고로 들어보라고 하니 

바로 무시하고 누어 잠을 자는 자세 

[...]


운동을 보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원래 좋음에 해당하는 것을 베푸는 것이 보시이므로 

좋음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보시 항목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돈이 없어서 보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부처님이 아무 것을 갖고 있지 못해도 

보시할 수 있고 

또 우주를 차지할 수 있음을 

많이 보여주신 바가 있다. 


가난한 이가 공양하기 위해 돈을 빌려서 등을 공양한 경우 

다른 부자들이 공양한 등이 바람에 다 꺼졌을때도 

계속 켜져 있었고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부처님께서 

그가 가까운 장래 성불한다는 수기를 해주었다는 것이 

바로 빈자의 일등 이란 내용과 관련된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어서 

복덕을 쌓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말씀해준 것이 무재칠시라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일곱가지를 들고 있는데 

일곱가지는 

과거 칠불 

동방의 칠불 이런 식으로 나열할 때의 

일곱과 같은 의미라고 본다.  


돈없이 베풀 수 있는 좋음이 무량한데 

다만 그 가운데 일곱가지를 나열한 것이라는 

의미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양한 문제가 있고 

그 하나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사실은 무량행문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아무리 잘 되어도 

방편일 뿐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좋음을 주는 방안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 방편이 끝내 무여열반에 그 당사자를 

이르게 하지 못하면 

그것은 비록 그것이 성취되어도 

그에게 여전히 다른 문제를 가져다 주는 바탕이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무여열반을 주면 

그 바탕에서 그 문제들을 모두 잘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런 것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아도 

역시 해결된 것 이상으로 좋음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문제 해결이 

현실의 무량한 문제를 해결되는 상태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생노병사란 병목현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힘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재벌은 병에 안 걸리고 죽지 않는가. 

또 재벌은 돈이 그렇게 많기에 

세상의 모든 문제가 다 잘 해결되고 

그래서 평안한가.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몸에 지방이 많고 살이 많다고  

그가 건강한 것이 아닌 것처럼 


방편으로 제공하는 무량행문의 내용이 

많고 풍부하다고 해서 

그가 평안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생사고통을 받지 않게 되어 

무여열반에 이르면 


오히려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문제되는 것을 오히려 

잘 해결할 수 있을 뿐더러 


설령 그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해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가 

방편지혜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복덕자량을 얻어내는 것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닌 것이다. 

이는 동가 홍상에서 홍상의 의미도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좋음을 얻으려면 

아주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데 


그 좋음을 복잡하고 번잡한 경로를 통해 얻어낸다고 해서 

이 상태가 같은 값에 더 좋은 상태를 얻은 상태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같은 모자를 

한 경우는 거저 얻었는데 


한 경우는 백만원을 주고 얻은 경우에 


백만원을 주고 얻은 경우를 

더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복덕자량을 얻는 것이 

필요한가는 

그 수행자 자신때문이 아니고 


이런 방편을 통해서만 

무여열반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보는 중생들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는 그에 접착된 

중생들이 수행에 진입할 계기가 마련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뤄지기 힘들기에 

그것이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여하튼 수행자에게 

그런 사정으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로만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다. 



[...]



마실을 다녀와서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고 해서 

오랫동안 누어 쉬었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의 덫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공원에서 의자에 앉아 쉬는데 

어떤 이가 다가와 자신에게 침을 뱉으면서 

그 자리가 자기 자리이니 일어나라고 하고 


그래서 일어나면 

이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고 


그래서 그렇게 사과하면 

이제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손해배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그래서 손해배상을 해주면 

이제 앞으로 자신의 생계를 다 책임지라고 한다면 

어떤가. 



대부분은 첫부분에서 

저렇게 나아가지 않고 

곧바로 덫에 걸려들 것이다. 


첫 부분부터 당장 

도저히 그 상황이 이치에 맞지 않고 

억울하다고 여기고 

그런 가운데 분노가 치밀어 올라  

왜 공원 의자가 당신의자인가하고 

따져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것을 놓고 

누가 잘했는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임할 것이다. 



이 가운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이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백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다른 이가 잘못했다고 문제삼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공 무상 무원해탈문에서는 제시하게 된다. 


그렇게 제시하면 

이 내용을 아주 엉뚱한 내용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상황에서 

각 당사자가 이런 덫에서 풀려나려면 

참-서-현 참-미-원-용-사를 

다 함께 행하되 


한편 상대가 그것을 하거나 안하거나를 문제삼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면 

더 엉뚱하다고 여긴다. 




원래 가해자입장이라면 

참회하고 

온 생명을 모두 좋고 좋게 만들겠다고 서원을 일으키고 

그 내용을 하나하나 실현해가야 하고 


피해를 당한 입장이라면 

평안히 참고 

미움과 원망을 제거하고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인데 


어느 경우나 이 한 지위만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형태로 그 지위가 

그렇게 중접되어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내용을 한 주체가 

다 방면으로 동시에 다 행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와 관련된 다른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고 

그것을 조건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자가 안인 수행의 덫을 

원만히 성취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표준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안인 수행교관으로 임하는 MUN 님을 

놓고 보면 이 문제의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서 어떤 이가 

병에 걸리게 하려면 

그 앞에 기침을 콜록콜록하는 장면을 넣어야 

자연스럽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 없이 

어떤 주인공이 

노숙자로 지내다 

어느날 갑자기 회장으로 나타나고 

다음날 병에 걸리고 

이런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 

대부분 이해를 못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골격이 그렇다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내용을 

앞 뒤로 넣으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초보 수행자가 안인의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게 임하게 하려면 

어떻게 문수보살님 같은 대력보살이 다가가는가는 

이런 사정과 그 내용이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에게 하는 가운데 

상대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놓고 보면 

대부분 예외없이 하게 마련인 반응을 해나가게 

마련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수행자가 덫에 걸린 상태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관하면서도 

앞과 같이 자세를 취해야 

그 수행이 원만히 성취되어 마치고 

더 높은 단계의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원칙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무생법인의 증득과 

불퇴전위에 오르는가 못 오르는가의 

고비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앞처럼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것을 그렇게 넘겼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것은 도저히 못참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수행자는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초보 수행자가 

고급수행자가 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고비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 세계는 이 세계를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던간에 

이 세계는 안인을 수행하는 세계로서 

그 명칭자체가 '사바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 임하면서 

그런 고비를 못 넘으면 어떻게 되는가하면 

원칙적으로 

그것을 넘을 때까지 무한하게 

전보다 더 증폭된 형태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받게 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대력보살이 수행자를 

상대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아이를 하나 납치해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경우마저도 

그 구조나 사정이 같은 것이고 


사람이 짐승을 사로잡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는 

먼저 어떻게 하면 그 상대가 

자신이 상대를 마음대로 할 상태까지 

묵어 끌고 올 수 잇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하면 

상대는 거의 예외없이 어떻게 

반응하게 마련이다라는 내용을 놓고 

그처럼 덫을 만들어 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뻔한 내용이지만, 

상대가 집착하는 탐욕과 

분노를 일으킬만한 내용을 재료로 

그런 덫을 만들어 놓으면 


상대는 

덫을 놓은 입장에서 기대하는 그 반응을 

할 도리 밖에는 없다고 보게 되고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그 상대가 그렇게 행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는가하면 

그렇지 앟고 

바로 그 덫을 시설한 이가 

의도하는 대로 묶이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뻔한 내용이지만, 

이런 문제가 제출되면 

대부분 그것을 그렇게 넘어서지 못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서지 못하면 

일단 최소한 미륵보살님이 하산하는 

56 억년까지 

그 과정을 계속 증폭된 형태로 

반복해 나갈 도리 밖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유형은 

어떤 특별한 비밀이 아니고 

이미 다 경전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비밀도 아니고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금강경에서 제시되는 가리왕의 문제란 

이런 것이다. 


수행자가 그냥 가만히 수행을 하고 있는데 

이유도 없이 억울함을 느낄 상태로 묶어가고 

사지를 잘라대고 코와 귀를 자르는 것이다. 


당시 그 수행자가 가리왕에게 무슨 욕을 했다거나 

쓰레기를 버렸다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당시 가리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가리왕이 후궁들을 데리고 야외로 놀러 왔는데 

후궁들이 이 수행자 주변에 몰려가서 

관심을 표명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인 것이다. 



핵심은 문제 유형이 이렇다는 의미다. 


이유도 없고 억울하다고 여길만 한데 

상대가 그렇게 고통을 주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때 어떻게 하겠는가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수행자나 일반의 경우나 

다 마찬가지다. 




이 유형의 문제가 자신에게 제출될 때 

이 문제에 안 결려드는 경우는 

대단히 희박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렇게 넘어서지 못하면 

그 덫으로부터 고통에서 벗어날 도리도 없고 

그런 상태가 원칙상 무한히 증폭되어 나가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문제는 사실은 어떤가하면 

그렇게 처음부터 자신의 전도망상에 바탕해 

초래한 것이기도 하고 

또 한쳔 자신이 그렇게 

시설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신도 수없이 

그렇게 하면서 생활을 해온 것이다. 


낚시를 하나 하더라도 

물고기라면 물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을 

놓고 

또 한 번 물면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올 도리 밖에 없다는 바늘을 만들어서 

그렇게 행한 것이다. 


행하는 이는 좋다고 보고 하는 것이고 

상대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설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렇게 하면 

상대는 거의 예외없이 

어떠어떠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신은 또 어떻게 한다. 

그러면 또 상대는 어떻게 하게 마련이다. 

만일 그 경우수가 둘이 있으면 

다시 그 경우마다 

각기 자신은 이렇게 한다. 

이렇게 놓고 시설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바둑을 하나 두는 이도 

그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임하는 것이고 

현실에서 여기에 예외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해야 한다. 


수퍼마켓에 가면 

공짜로 맛을 보라고 주는 

음식도 사실은 그 사정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대력보살인 선배 수행자가 

초보 수행자를 대할 때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문제는 

새삼스런 비밀이 아니고 

이미 경전에 예고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앞과 같은 상황에서 

상대가 자신을 묶어 놓고 아무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손과 발을 톱으로 자르는데 

자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 문제다. 


몸부림치고 소리지르고 

또 억울하다고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욕하고 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거의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의 과정도 

또 마찬가지다. 




그것이 56 억년으로 끝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보아야 하고 

56 억년으로도 안 되면 

다시 무한 겁을 놓고 그렇게 나아가게 된다고 

보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보자. 


상대가 자신을 묶어 놓고 

톱으로 손을 잘랐다. 


이 하나의 상황을 놓고 

관계된 이들이 

각 입장따라 제각가 다른 보고를 하는 것이다. 


자른 이는 잘랐다고 자백하고 

잘려진 이는 자신의 손이 상대에 의해 

잘려졌다고 고발을 하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인데 왜 이렇게 달리 표현하는가. 


물론 같은 의미라고 이해하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다. 


던지다와 던져지다가 어떻게 같은 표현인가.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이들이 

여기에서 지금 정상이 아니고 

전도망상을 일으켜서 그런 상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런 이도 얻을 수 없고 

행위나 그 행위를 받는 대상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끝내 

이 증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역시 그런 상황에서 그가 

앞과 같은 반응을 하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러면 그로 인해 연이어 나타나는 

내용도 역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경전에 

이미 공개가 되었는데 

그 문제가 출제되면 

그 문제를 대하는 이 99.99 % 가 

그대로 예외없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자신이나 

남이 특별히 그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차체가 

사실은 대단히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무한 겁을 놓고 보아도 

그렇게 그렇게 현실이 전개되어간다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이 이것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수행자던 일반인이던 

지옥 아귀 축생 세계를 벗어나거나 

또는 더 높은 단계의 수행자의 단계로 

옮겨 가는 것도 함께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고사가 있다. 

장량이란 이가 걸어가는데 

노인이 시비를 걸면서 

다리에 신발을 던지고 그것을 줏어오라고 했다는 등 


또는 어떤 이가 가는데 

가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사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구체적 유형은 다 다른데 

이 각 문제의 핵심은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상대가 도저히 행하기 힘든 것을 

요구하고 그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나가게 되는가가 

그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은 

다음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주체가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고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문제를 풀 도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그가 

묶임에;서 풀려날 도리가 없게 하는 그 접착은 

바로 그가 갖고 있는 

망상분별에 바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현장이던 어느 상황이던 

그 각 주체가 무언가를 대하면서 

그것이 무엇이라고 볼 때 

그것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앞 상황에서 

톱으로 다른 이의 손을 자른 이는 

자신이 그렇게 잘랐다고 자백하고 


그 상대는 또 상대대로 

그렇게해서 자신의 손이 톱으로 잘려졌다고 

고발을 한다면 


이들이 다 

기본적으로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근본 문제부터 반복해 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한 정지된 상태를 하나 놓고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는데 

그 어떤 부분을 놓고 

예를 들어  톱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부터가  

근본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반복해서 

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그 감각현실 그대로가 생각한 내용 그것인가.  


이것이 첫번째 질문이고 


그 다음 

그 감각현실을 떠나서 그런 생각을 일으켜 갖게 된 것인가. 


그것이 두번째 질문인 것이다. 



그리고 실재에 관해서도 

똑같은 형태로 다시 물어 보는 것이다. 



우선 여기서 문제삼는 실재가 무엇인가하면 

이들 내용을 얻는 본바탕이 무언가를 놓고 

그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을 뜨면 톱이 보이겠지만,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그런데 눈을 감던 뜨던 

그와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실재는 

앞의 두 내용 가운데 어떤 내용이겠는가.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답을 찾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처럼 자신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을 

실재라고 할 때 


자신이 감각한 현실내용이 그대로 그러한 실재인가를 

처음에 묻고 


다시 

그런 실재를 떠나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었는가를 

또 묻는 것이다. 



이렇게 물어서 그 문제를 놓고 

각 존재의 정체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보라는 의미다. 




그래서 앞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 그 상황이 있다면 

문제되는 한 내용의 한 단면을 그대로 정지시켜 놓고 


자신이 문제삼는 그 내용이 

어떤가를 그렇게 음미해보라는 의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문제삼는 것을 그런 한 현실단면에서도 

그렇게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지금 그런 덫에 걸려 있는 것을 

그렇게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나오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못하고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는데도 

자신이 분별을 일으킨 내용이 

그 상황에 그렇게 있다고 망상을 일으킨 다음 



그 상황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임해서 

망상속의 그 톱을 치운다고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거의 대부분 그렇게 보지 못하기에 

예외없이 다 걸려들고 

고통의 세계에 묶여서 들어간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당장 지금 현재의 어떤 내용을 

그렇게 정지시켜 놓고 

그 한 단면을 놓고도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제 오고 간다 

만든다 이런 동작이나 변화나 

그 외의 모든 내용을 놓고는 

더욱더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다시 앞의 경전 내용과 같이 

가리왕이 자신을 묶고 

손을 톱으로 잘랐다는 상황에 처하면 .  


이제 그런 상태의 정체를 올바로 관하지 못하고 

그런 가운데 

자신은 가리왕에 의해 묶여 

톱으로 손이 잘리워졌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걸리면 

그 상태에서는 

생사를 벗어나 임할 도리도 없고 

또 앞과 같이 그 상황에서 풀려날 수 있는 

올바른 수행방안을 취할 도리도 없는 것이다 .

 

그래서 거의 예외없이 하게 마련인 

반응 외에는 

다른 반응을 할 도리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대력보살님이 

후배 수행자를 상대로 할 때도 

문제 사정이 같고 

파순이 수행자를 상대로 할 때도 

문제 사정이 같다. 


어느 경우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문수보살님은 사정을 조금 봐주고 

다른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식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왜 사정이 그런가하면 

어느 경우나 

그 문제 성격이 다 같기 때문이다. 




그 문제 성격은 이미 경전에서

다 제시된 것이다. 


그런 것 자체를 얻을 수 없는데 

그것을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반응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다만 사정을 그렇게 이론상 이해한다해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그렇게 잘 안 된다는 것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안 되면 

그 이후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된다는 것도 

미리 다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부처님 가르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경전도 사정이 같고 


또 그에 해당하는 그 사례들은 

현실에 곳곳에 가득하다고 보아야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술취한 이가 몬 자동차가 

거리의 행인을 치었는데 

그래서 그는 평생 장애자로 지내게 되었다. 


이런 경우 그 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가 앞 문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끝으로 하나만 더 살펴보자. 


[...]


수행과정에서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 공 무상 무원무작해탈문에 들어서서 

망상분별과 집착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하면 


그 상태에서 어떤 문제를 잘 풀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다 그 반대임을 

잘 헤아려야 한다. 

그 순간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맛있다고 잠깐 여기는 것과 사정이 같은 것이고 


아이가 저 아저씨를 따라가면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고 

잠시 여기는 것 뿐이다. . 


넒고 길고 깊게 보면 그것이 

사정이 그렇지 못함을 나중에 비록 알더라도 

그 상태를 벗어나지는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각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앞의 해탈문을 들어섰을 경우에만 비로소 

그런 묶임에서 풀려날 수 있고 

그처럼 반응해나가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행자가 그렇게 

묶임에서 풀려난 다음에 


다시 생사의 고통에 묶인 생명들을 

그 묶임에서 풀려나게 하고자 할 때 


그 각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가가 그 다음 

무량행문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경우 현실에서 

전도몽상 상태에서 

대부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고 반응하게 되는 

그 내용이 답이 아니고 


무엇이 답인가는 바로 그런 의식을 갖고 

그 문제를 대할 때 

그 바른 답을 알게 되는 것이다. 


처음 전도몽상과 집착과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자체가 가능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행에 임하는 가운데에서도 

처음 고비가 되는 

안인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해서 

불퇴전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또 취할 수 있는 방편은 

다시 한계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스스로 

자신의 손을 톱으로 잘라도 

안인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상태에서는 좀 더 무량한 방편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무량행문은 

그런 입장에서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안인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은 힘들다 하더라도 


일단 이론적으로라도 

자신이 무엇에 묶여 있고 


그렇게 묶여서 반응해나가면 

그로 인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을 빨리 파악하려면 

자신이 집착하는 상태를 

빨리 성취해 놓고 

그 상태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문제가 무엇인가가 

그 상태에서 보이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신과 다른 입장을 두루두루 오가면서 

넓고 길고 깊게 그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 각 경우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비로소 그 안목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99 % 대부분 

그 전도몽상과 집착의 묶임으로 인해 

지옥에 묶여 회감이 되어서 

고통을 받는 고문대에 올려지게 마련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 


구체적 경우를 놓고 

대부분 묶여서 행하게 마련인 것을 중지하고 벗어나온다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닌데 


그러나 각 경우에 

무엇이 정답이 아닌 것만이라도 정확히 파악해서 


그것만 기본적으로 중지해도 

수행의 반은 성취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

○ 술취한 사공의 봉작전 

술취한 사공의 봉작전 



무량행문에 들어서서 

시작하자 마자 

다라니 삼매란 글자만 써 놓고 

끝을 선언하니 

허탈해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다고 정말 연구원이 

연구를 같이 끝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 

이것이 바로 실질적인 무량행문의 수행인 것이다. 


무량하게 수행을 해나간다고 해서 

무량한 내용을 기재해 갈 수는 없는데 


최소한 현재 마련된 노래 1 곡당 

1 주제씩은 연구발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prince 님 스크립트를 사용하면 

일요일이 되면 목록에 올려진 각 파일의 수를 

출력해주는데 

사진은 매번 조금씩 증가해가는데 

노래는 오랫동안 정체상태다. 


현재 출력 결과가 이렇다. 

photo=13714

art=2131

song=11883

flower=306

artist=3180

 

이것을 보면 공양올리는 품목은 증가가 

안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수행자가 타성이 생기고 매너리즘에 빠져 

게을러서 그런 것이다. 


노래가 11883 곡이 있으니 

여하튼 무량한 가운데 이 정도는 

연구를 하기는 해 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쉬는 동안 기지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다음 곡이 중요한 메세지를 

전해 주어서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결과를 보고하기로 한다. 




mus0fl--Images - Corps À Corps.lrc 



술취한 사공의 봉작전 

이렇게 정해 보았는데 


우선 봉의 문제를 보기로 하자. 


동네에 모든 술값을 다 부담하고 

돌아다니는 술취한 봉이 있다고 해보자. 


반대 유형은 놀보나 스크루지란 표현으로 

불리우는 유형도 동네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동네에 인기가 높은 것은 

봉이라고 할 만한데 

그러나 또 아쉬울 때마다 쩔쩔매면서 

부탁을 하게 되고 

또 무언가 친근해지려고 노력하고 잘 보이려고 하고 

자주 찾아 보게 되는 쪽은 

또 그 반대다. 


그 사정이 그렇다. 



현실에서 부자가 자신에게 잘 해주는 것은 아닌데 

부자와 가난한 이가 있다면 

이왕이면 친해지고 싶은 쪽은 부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도 

부자는 막상 인색해서 

돈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명절 때 자주 가는 쪽은 

아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가난하고 투병생활하는 친척보다는 

이런 유형에 방문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 연구원생들은 

자신의 어머니 생신은 건너 뛰어도 

자신의 지도교수 어머님 생신은 

다 챙기는 경우도 많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런 상대의 기대에 다 부응해주면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므로 


부자는 또 그런 기대만큼 

다 들어 주지 못하고 

그런 결과 그에 비례해서 

잠재된 원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속마음으로 인기투표하면 

부자가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얼이 좀 빠지고 봉 노릇하는 이인데 


그러나 또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형태는 

봉은 아닌 것이다. 


이 내용이 이상한가. 



오늘 들은 노래의 제목인 

corps 는 잘 사용하지는 않는데 

어릴 때 영어 단어공부할 때부터 

자주 보면서 정리가 잘 안되는 단어의 하나다. 


대충 신체 기관, 군단, 시체, 송장 

이런 의미와 관련된 단어인데 

발음부터가 이상하면서 

글자 형태도 이상하고 

뜻도 여러가지로 복잡한 단어다. 


영어에서는 corps 는 발음은 '커'이고 군단인데 

CORPES 는 발음은 커프스 이고 시체 송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불어는 또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불어 노래를 듣고 있지 않은가. 

불어는 이 단어가 그대로 이뜻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찾아보면 

Corps À Corps 란 말은 

『펜싱』용어로 코르 아 코르라고 읽고 

의미는 

.양 선수가 너무 접근하여 규칙대로 검(劍)을 다룰 수가 없고,

또 떨어질 수도 없는 상태.

이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래는 그런 노래가 아니고 

골이 아픈데 

누가 스티븐스인가 

누가 이 사람을 데려왔는가. 

구해주면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에 

하나님과 석가모니 부처님을 관련시키는 것으로 

시감상을 하게 되고 


여하튼 이런 분야에 대한 문제에 대해 

짧고 쉽게 결론을 제시해달라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본인이 이 단어를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손자병법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은 핵심만 1 줄씩 보고 

그 내용을 다 본 것처럼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짙어서 

이 분야에서 

본 연구원에게 그런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렇게 처음 제시되는 그 첫줄 앞 부분만 살피고 

책을 덮는 것이 대부분 

그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세히 살펴나가면 

그 안에도 다시 정규 비정규방안 이런 식으로 해서 

그 안에 자체적으로 무량행문이 들어 있는데 

그렇다고 정말 그 분야로 들어가면 

그 분야의 하수로 취급받게 된다고 

제시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구체적 방안을 떠나서 

이 분야에서 최고 목표가 무언가만 일단 잘 살펴보자.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어떻게 그것을 쉽고 빠르게 이루는가를 살피기로 하고 


그것은 또 곧바로 

그 연구를 하는 이가 

그 소원성취를 왜 바라는가. 

그 소원이 성취된 상태에서는 그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잘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 

바로 그 방안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내용을 잘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CORPS 의 구성원이나 지휘자의 

최대 목표는 무엇이겠는가. 


자신의 CORPS 는 자신부터 최하급병사까지 

일체 손톱하나도 다치지 않는 가운데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CORPS 를 온전히 접수해 

자신의 CORPS 에 편입시키고 


다시 상대의 국토를 접수하고 

상대의 국토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평안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이후 죽 그렇게 하는 것이 

CORPS 의 이상적 목표인 것이다. 


목표는 이것인데 

이것이 잘 안 되어서 그렇지 

목표가 다른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목표를 가장 가깝게 잘 하는 이가 

최고수고 

그렇지 못하고 

전투마다 다 잘하는 데 

결국 최종 승부에서 패배하고 

사라지는 항우와 같은 인물은  

역사적 조롱감으로 기록되고 마는 것이다. 


동양에서 각 동네마다 장기를 둘 때마다 

하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항우를 놓고 

시합을 하게 하는 사정도 그런 것이다. 


항우가 대표적으로 조롱을 당한 것은 

진나라에서 항복한 군사 수십만명을 

생매장시킨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항우의 상대 유방은 어떻게 했는가는 

이 반대인 것이다. 


또 매 전투의 승률은 어떠했는가도 

극과 극이다. 


전투에 임하는 스타일도 또 

극과 극이다. 


항우와 유방이 전투에 임하고 

유방이 대패하고 

혼자 우물안에 숨어 피하다가 

유명한 척부인 

나중에 여씨 부인에게 

손발이 잘리운채 뒷칸에서 

살게 된 여인을 만난 것도 

그 무렵으로 전해진다. 


여하튼 전투는 지는데 

나중에 보면 이기고 

중국을 차지한 이는 유방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후손들이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장기에 초나라 한나라 왕을 배치시켜 

장기를 매번 두는 것은 

그런 사정이라고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앞의 CORPS 의 이상적 목표를 

살필 때 

CORPS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손톱이 빠지거나 

발톱이 뽑히거나 하면 

문제라고 보는 것은 

그 CORPS 의 최고사령관이 그렇게 되었을 때 

큰 문제라고 보는 것과 사정이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CORPS는 아무리 구성원 수가 

많아도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를 해보자.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두는데 

나머지 한국사람 가운데 

프로바둑기사를 포함해 

한국사람 전체가 다 함께  

다 모여서 

매 수마다 수를 연구하면서 

합의하여 바둑을 둔다고 해보자.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사람수가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닌 것이다. 



태권도 선수들의 시합을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다. 


각 부위가 얼마나 튼튼하고 

전체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것을 한마디로 표현해서 

1 이 되어서 그 1이 

현란하게 각 상황마다 대처해서 

해결해내는 것이 

바로 CORPS 의 목표인 것이다. 


이것이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무엇이라고 제시되는가 하면 

심일경성을 통해서 

삼매에 들어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돋보기로 초점을 맞춘 다음 

그 상태로 레이저를 만들어서 

유리든 쇠든 뚫어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일과 

상황이 같은 것이다. 


이것이 이 분야에서 1 의 의미인 것이다. 


이 사정이 원효대사가 저술한 

금강상매경론에서도 

자세히 제시되고 있다. 


삼매를 잘못 이해하면 

공원에서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멍하니 앉아서 조는 상태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불난 호떡집 사장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온갖 것을 다 살피면서 

한없이 산만하기만 한 상태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집중해서 쓸데없는 것을 

다 제거해버리고 

그 상태로 레이저 빔을 만들어 

그것으로 예술품을 조각해내는 

그런 활동이라고 비유활 수 있는 것이다. 



태권도 시합이나 

바둑시합이나 

장기던 무엇이나 

그 성격이 같고 


수많은 인원으로 구성된 

CORPS 에게 요구되는 내용도 

그것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은 

공원에서 멍하니 앉은 이나 

한없이 산만하기만 한 호떡집 사장이 

수천만명이 다 모여서 

서로 지혜를 모으고 

그런 상태에서 


이세돌 9단과 상대하면 

바둑을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태로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는가에 대해서 

그 내용을 모르거나 

그 내용이 적절하지 않으면 

또 항우가 되어버리고 

동네의 조소거리가 순간 되어 버리고 

스스로 알아서 창피해서 

나중에 동네로 귀환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누가 이것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에 

엉터리로 임하는가를 

현실에서 대부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도와달라고 하는데 

도와준다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상대방 집에 들어가 

상대방 집을 다 태우면서 

도와주는 이가 가끔 있는 것이다. 



손빈이 손자병법을 놓고 

어떻게 그런 상황에 도와주는가. 


알고 보면 쉽다. 

우주를 어떻게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시키는가. 

자동차를 어떻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가의 문제와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런 요청을 받으면 

바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A 란 나라가 b 란 나라를 공격해서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데 

B 왕이 손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손빈은 어떻게 했는가. 

도와달라는 곳으로는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러니까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같은 성격의 문제인데 

손빈이 아닌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 

되는가. 


유사사례가 대단히 현실에서 많다. 


대표적으로 쿠웨이트란 나라가 

그런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현장을 지휘하는 장군은 

손자병법을 갖고 다닌다고 알려져 있었고 

그 장군에게 명령을 내린 이는 

성경을 놓고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책과는 전혀 엉뚱한 내용들만 

계속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알고보니 그 사람이 아프리카 출신 부시맨이었다고 

전해져서 그 부자가 똑같은 일을 

똑같은 형태로 반복하고 있다고 해서 


병법계에서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하튼 당시 

쿠웨이트는 

도움을 그런 이들에게 요청한 결과 

그 쿠웨이트 유전이 다 불타고 

한 동안 하늘에서 검은 비만 쏟아지는 

상태에 처했다고 하는데 

여하튼 도와주느라 애쓴 것은 사실 아닌가. 


이것이 자동차를 저 쪽으로 치워달라고 요청할 때 

이치를 모르는 이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키를 꼽아 몰고 가지 않고 


바퀴를 붙잡고 늘어지는 형국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런가는 

도와주는 이의 입장과 

도움을 요청하는 이의 입장이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 문제가 어느날 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하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 


친구들이 회포를 풀려고 

술집에 몰려가서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거나 


또는 종업원과 시비가 붙거나 

다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도움을 친구에게 

요청하는데 

친구가 현명하고 정말 

친구 입장에서 도와주려고 하는 이는 

어떻게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가 

다 다른 것이다. 


변호사 친구는 이 사건을 

법정으로 몰고 가게 마련인데 

그것은 도와주면서 

수입도 얻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의사 친구는 

병원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임하게 되는데 

장의업이 전문인 친구는 더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친해도 친구가 

도와주겠다는 의미는 제각각 

다른 의미 다른 내용인 것이다. 


자신이 다른 이를 도와줄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가지고 

상대를 도와주려 하는 것이지, 


변호사가 아닌 의사가 

친구가 도와달라고 해서 

법률공부를 갑자기 해서 도와주겠는가. 


사정이 그런 것이다. 


참고로 부부싸움을 하고 

각각 자신이 친한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각기 이상한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하루 쉬고 다음날 초심으로 돌아가 대하면 

잘 살아갈 경우도 

대부분 법정에 가서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 


어떤 전문 검투사 싸움 전문가가 개입해서 

각 상대를 만나 다른 쪽 상대의 입장을 

대변해서 대하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연구 분야 전공이 

병법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생사를 벗어나서 

원하는 불국토로 

수행자에게 티겟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임무로서 사공인데 

아직 배를 저어 본 경험이 없는 

신임 견습 사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술취한 사공인데 

그래서 연구주제명이 이상하게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 목표와 

그 실현방안을 이미 다 제시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조금 더 쉬고 살피기로 하자. 


어떻게 손톱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원하는 국토는 원하는 대로 차지하는 가운데 

마음껏 사용하고 


그런 가운데 10 억 세계를 한 번에 

장악하는가. 


이런 것이 바로 사공의 주 전공 분야인 것이다. 



10 억세계에는 사정이 있다. 


무색계 색계 욕계 3 계의 하늘과 

욕계내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이 갖추어진 한 단위를 한 세계라고 하고 

그런 세계 1000 를 소천세계라고 하고 

다시 1000 소천세계를 중천세계라고 칭하고 

다시 1000 중천세계를 대천세계라고 칭하게 된다. 


1000이 3 번 곱해졌다고 해서 

삼천대천세계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잘못 이해하면 

3 조 세계를 일컫는가보다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1 대천 세계 즉 10 억 세계를 

삼천대천세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중요한가하면 

사공이 수행자의 불국토를 안내할 때 

그 단위로 여행지를 안내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1 부처님이 10 억 세계를 관장해 

가르침을 베푸는데 


부처님과 부처님이 불구대천의 관계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럴 필요가 없기에 부처님들끼리 

그렇게 서로 나누어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기에 

그런 것이다. 


한 클래스에 수업을 진행하는데 

수학을 가르치는 시간에 

선생님이 두 분이 가르친다고 좋겠는가. 

앞의 문제와 사정이 똑같다. 


또 수학 선생님이 가르치는 장소에 

영어 선생님도 같이 나타나 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동시에 수업을 하면 좋은가. 


역시 마찬가지 문제인 것이다. 


왜 전국민이 합의체를 구성하고 

각기 피플미터와 같은 장치를 장착해 다수결로 

매번 바둑을 둔다고 해도 

이세돌 9 단을 못 이긴다고 보는가는 

그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여기서 피플미터란 생소한 단어는 무엇인가. 

드라마 제작자가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드는데 정작 그 수많은 작품 가운데 

어떤 작품이 인기가 있고 시청률이 높은가는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시청률을 조사하기 위해 

가정에 그런 장치를 해서 

자동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를 

조사하는 자동 장치 기계라고 보고를 받는다. 


매번 여론 조사를 하기 힘든데 

오늘날 핸드폰을 다 갖고 있으므로 

만들고자 하면 뚝딱 만들 수는 있다고도 보는데 

문제는 이렇게 해서 매 수마다 수를 찾아서 

바둑을 이세돌 선수와 두면 

피플미터를 달고 임하는 쪽은 수천만명이고 

상대는 1 선수인데도 

결과는 대패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꼭 그렇게 두어보고 결과를 확인하고 싶으면 

그 비용을 다 부담하면 쉽게 확인가능하다고 본다. 

실험과 명확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는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사정으로 

10 억 세계를 1 부처님이 관할하고 

그래서 불찰 불국토 이런 표현은 

이런 단위로 하나씩 세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약사여래님 국토를 가고자 하는 수행자와 

아미타부처님 국토를 가고자 하는 수행자는 

일단 방향부터 달리 잡아야 하는데 

여하튼 1 불찰 단위로 행선지를 

잡아 나가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그 성격이 같다고 보는 것이다. 


봉타래 수행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수행자들에게 봉노릇을 하는 

약사여래님이나 아미타부처님이 세운 

불국토 즉 10 억 세계를 

약사여래님이나 아미타부처님이 행한 수고를 

하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손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그것을 다 차지하고 

또 동시에 아미타 부처님이나 약사여래님의 국토도 

하나도 훼손시키지 않고 

그 좋은 것을 모두 그대로 놓고 

자신 마음대로 평안하게 사용하는가. 

그리고 심지어 더 좋고 좋게 사용해 가는가. 


이런 것이 다 같은 성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아미타 부처님이나 약사여래님이 

그런 불국토를 장엄하게 건설한 취지도 

방편이고 

그처럼 수행자들에게 봉노릇을 해주시는 봉부처님에게 

올라타 쉽게 수행하려는 봉타래 수행자가 

그렇게 쉽게 뜻을 이루는가도 

역시 같은 방편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성격이 앞의 문제와 

다 같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무량행문은 다라니와 삼매로 시작해서 

다라니와 삼매로 정리하고 끝을 내게 된다고 

제시하는데 

그 사정과 본 취지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보면 그것이 핵심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의 

두번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사실은 그 핵심은 간단한 것이다. 


왜 그런 소원을 갖는가. 

그 소원을 성취한 상태에서는 그 이후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답을 잘 작성해서 

봉 부처님에게 제출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봉 부처님의 취지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려운가. 


어렵기로 말하면 

봉 부처님이 그런 국토를 세우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어렵고 

쉽다면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연구주제명을 

술취한 사공의 봉작전이라고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LIGHTER 화두와 그 성격이 

같다고 할 수도 있다. 


직접 만들려면 라이터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용하고자 한다면 

없어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안을 잘 모르면 

라이터를 무량하게 만들 수 있는 

라이터 공장 사장이라고 해도 

한 순간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그래서 어떻게와 관련한 

핵심내용인 것이다. 



그러니 다라니 삼매가 중요하다고 해서 

다라니 삼매 수행에 당장 임하기 보다는 

앞의 문제에 대해 답을 잘 작성하는 

훈련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면 관련된 다라니를 제공받게 마련인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수행자가 

기본으로 만나게 되는 다라니가 

다 그런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약마다 다 그 약을 사용하는 

질병이 다르고 방식이 다르듯 

다라니마다 다 그런 효용과 

사용방식이 다 다른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 내용이 

다 경전에 제시되는데 


여기서는 일단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주를 하나 소개하고 

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지장보살님의 구족수화길상대기명주총지 이런 

긴 이름의 다라니가 

이 주제와 밀접하다고 보게 된다. 



그렇지 않고 방대한 경전을 

어떻게 한 순간에 다 지닐 수 있는가가 

주제인 경우는 

또 문수보살님의 아라바자나 다라니 

이런 것을 소개해야 한다고 보는데 

여하튼 


약 모르고 약을 복용하지 말고 

약은 약사에게 이런 표어가 있듯 

약사여래님 다라니는 약사여래님의 다라니를 

소개하는 경전을 참조해야 하고 


문제 성격따라 사용할 다라니를 

조금 달리해야 한다는 사정은 

기본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노래 동영상을 보면 

굳이 다라니를 소개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감상하는 입장에서 

정작 구출해 준 이가 

최종 장면이 조금 안타깝게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조금 더 추가를 해서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면 

그것이 다라니가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지장보살님 다라니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외국어를 어떻게 읽어야 마땅한가를 놓고 

일으키는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근거가 빈약한 판본보다는 

고려 대장경과 이에 근거한 

표준 번역본을 참조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보게 된다. 


119 와 911 

또는 11 이런 것의 사소한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예민하게 대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하튼 지장보살님 다라니는 

참포 

참포 

참참포 

아가샤 참포 

이런 식으로 내용이 나열되는 다라니로서 


그 효용이 명기되어 제시되고 있다. 


본인의 시감상으로 

아가샤 참포는 어떤 시감상을 하게 되는가하면 

아가씨를 일단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대하면 

일반적으로 어떻게 되는가. 


나이가 90 세라고 해도 

수명이 연장되고 

청혼해서 결혼하면 

대부분 나이든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 

예측하지만, 

그러나 지켜 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도 

쉽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장보살님이 나열하는 

다라니가 갖는 효용에 

바로 그런 내용이 역시 

나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라니의 본질은 

어디에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세상에서 전도몽상을 바탕으로 

무언가 집착을 일으키고 

그런 상태에서 

각종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입장에게 


일단 방편으로 그가 집착하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를 통해서 끝내 수행자가 도달해야 하는 

상태로 이끌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시설되는 것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알고보면 그것이 본 목표가 아닌데 

그러나 그것을 확실하게 해결해주어야 

본 목표에 쉽게 진입하게 되므로 

그 상태로 신속하게 이끌어 주는 것이 

다라니가 갖는 효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현실에 임해서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삼매의 방안인 것이다. 


주제를 놓고 

목표 상태를 놓고 

집중하여 일심의 상태를 만들고 

그 상태로 넓고 길고 깊게 샅샅이 두루두루 다 관찰하고 살펴보고 

헤아려 방안을 끌어 내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핵심 부분의 스위치만 하나 찾아 

그 레이저의 힘으로 가리키면 

리모컨이 작동이 되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쉬운가. 



[...]


과거에 다 제작했는데 
어느날 그 제작기법을 몰라서 
제작과정이 불가사의한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고려 청자가 있다. 

오늘날 훨씬 좋은 도자기 제품을 많이 만드는데 
고려 청자는 과거에 만든 것인데도 
아직 유사품을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받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 상 가운데에서도 
본인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몇 있다. 


아래 사진은 

무우최승길상여래님의 상과 
이우보살님의 상이다. 


유리에 모습을 새기고 
글자도 새기고 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는가는 
잘 모르는 것이다. 

대강 레이저를 이용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고 
구체적인 방안은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 주문만 하면 쉽게 구한다고 
누구나 보지만, 
어느 순간 그 제작방안이 소실되고 
시간이 흘러서 
본인과 같은 상태로 있는 이들만 
수억명 가득하면 
이들이 모여서 회의하면 
이런 불상을 만들어 수가 있을까. 

이것은 고려청자의 문제와도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무우최승길상여래님은 
사바세계에서 7 항하사의 수만큼 
세계를 건너가야 계시는 부처님으로 
경전에 제시된다. 

이 분은 라이터 화두와 대단히 
밀접한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부처님의 불국토는 
현재 기지에서 전구로 장식 중인데 
깨진 전구로 장식해 놓고 있는 상태다. 

깨진 전구는 누구에게 걱정을 가져다 주는가. 
바로 전구를 그렇게 대하는 이에게 
걱정을 주는 것이다 .
깨진 것은 깨져서 그렇고 
안 깨진 전구는 깨질까봐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여래님의 명칭이 무엇인가. 
무우 최승길상여래님인 것이다. 

그래서 깨진 전구로 장식을 하는데 
이 부처님이 수행 할 때 가진 서원이 
바로 이 전구가 상징하는 내용과 
대단히 관계가 깊은 것이다. 


그리고 이 부처님은 
수행자에게 봉노릇을 해주시겠다고 임하는 
아미타 부처님과 비슷한 부처님인 것이다. 


그런데 또 경전을 보다보면 
명칭이 비슷한데 
표준적이고 원칙적인 부처님으로 여겨지는 
부처님도 계시다. 

안인 수행을 강조하는 
사바세계의 석가모니 부처님과 

엄격하고 굳건한 수행을 강조하는 
아촉부처님과 

자비롭고 편한 수행을 도와주는 
아미타 부처님은 조금씩 
그 상태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봉타래 수행자 입장에서는 
어느 부처님이 더 좋다고 여겨지게 되는가. 

그래서 무우최승길상여래님이 좋다고 보는데 
그러나 알고 보면 
처음부터 원칙적이고 표준적인 수행을 제시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더 좋다고 볼 측면이 
많은 것이다. 

수행 당시 가진 서원의 수를 놓고 보아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500 서원이라면 
아미타 부처님은 48 대원 
이렇게 제시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 
엄격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좋은가 
자애롭게 대하는 어머니가 좋은가 
이렇게 물을 때 
아이가 어려워 하듯 

수행자도 사정이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아미타 부처님과 비슷한 
봉 부처님에 무우최승길상여래님이 계시다면 
표준 부처님으로 무우덕 여래님이 또 계신 것이다. 

그런데 무우덕 여래님을 보좌하는 보살님가운데 
이우 보살님상을 위와 같이 정해서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과 관련되는가. 

중생들이 걱정을 하고 
임하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주고자 하는 념이 
여래님의 명칭이나 
보살님의 명칭을 통해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초점이 
불상을 유리로 저런 형태로 만들듯 

수행자가 다라니 삼매 수행에 임하면 
된다고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초점인 것이다. 


방안이 너무 쉬운가. 


그런데 이렇게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면 
조금 허무하게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은 그런 문제가 아닌데 
왜 그런 문제를 무량행문의 한 내용으로 
연구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비슷한 성격의 문제는 널려 있고 
살아가면서 늘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나는 문제로 
바꾸어 놓고 보자. 


자신은 가난하고 재주도 별로 없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있는데 
얼굴은 지극히 아름답고 몸매도 좋고 
기타 등등 다 조건이 좋다. 
그리고 심지어 그 아버지가 한 국토의 왕이다. 

이렇게 놓고 보자. 

여성도 또 상황이 마찬가지다. 
같은 내용은 생략하자.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상태에서 
곧바로 그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도 
제시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례이기도 하고 
다이에너비와 찰스 황태자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동화 신델렐라의 내용과 비슷한 것이다. 

결국 내용을 보면 
온달은 재주가 없고 어리석어 보이는데 
단지 어머니만 홀로 모시고 
정성스럽게 모시고 지낸다. 
이런 것 뿐이다. 

다이애너비도 알고 보면 
그저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이 정도다. 

신델렐라는 그저 옷을 차려 입고 
춤을 한 번 춘 것 뿐이다. 

이런 식이다. 

현실은 동화와 달리 
길게 이어 보면 
약간은 불행한 사건을 다시 다 
떠올리게 되는데 

동화는 생략해버린다. 

그런데 생략하던 않던 
그런 문제가 있다고 예상되면 
그것마저도 제거해버리면 되지 않는가. 

그것이 현실에서 
재주도 없고 
라이터를 사용할 수는 있다지만, 
만들 방법도 모르고 
그런 가운데 

라이터가 필요하면 
그 때 그 때 잘 구해서 
사용하는 입장과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 자세한 내용은 
다라니와 삼매 수행으로 넘어가야 
앞과 같은 현실적 부작용이 
온전히 제거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가운데 
정반대의 사례를 찾아 제시하자면 
얼마나 또 많이 나열할 수가 있겠는가. 

가장 어리석고 엉터리 방안은 
이 모든 문제를 
장발쟌식 또는 루팡식 또는 욱형 내지 
목표를 향해 용맹 돌진하기만 하는 투우형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입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종합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일단 그런 상대가 보이면 
교묘하게 유인해서 
감금한 다음 
저돌적으로 처리하고 
이후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에 족쇄를 채우고 
일일히 살아가면서 
자신의 지시에 따라 행하도록 
지시를 해가면서 
그리고 그 상대와 상대 부모의 재산을 
장발쟌처럼 몰래 몰래 다 가지고 
자신의 금고로 옮겨 놓는다. 

대강 이런 형태를 
세속에서 그 당사자들이 
감옥에 가기 직전까지는 
상당히 효용이 좋은 방안이라고 
이해하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그렇게 행한 이들이 
나중에 법정에 들어서고 
감옥에서 이후 무한히 생활하기 직전까지의 기간이 
한 500 년 정도가 되면 
그것을 대단히 좋은 것이다라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몽고의 사례도 보고 
여진족의 사례도 보고 
최근에는 일본군의 사례도 보고 
다양하게 살펴보고 하는 것이다. 
지혜를 그렇게 단순하게 
초점을 맞추고 사용할 때 
그에 일사분란하게 따라 다니는 이들이 
다 함께 행하게 되는 행위의 
실질 의미가 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례는 
손오공의 사례가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00 년 돌무덤에 갇혀 지내면 
좋은 것 아닌가 

그것은 돌성 밖으로 나오면 
불안해서 도저히 못 돌아다니는 상태로 
갇혀 지내면 
그래도 손오공이니까 
좋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렇게 보고 각 문제를 대하는 것이 
세상의 두통거리의 원인이고 

그 당사자들이 
나중에 앞으로 무한한 기간 
말로만 듣던 지옥이 드디어 내 집이 되었다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에서 공짜로 강간범처럼 
쑥 들어가 차지한 사례로 
일본의 사례와 
중국의 티벳 사례가 있다고 한다면 
그로 인한 두통거리가 얼마나 
많아지는가도 함께 보아야 한다. 

누르는 힘만 약하면 
나중에 다 원상복구되는 것도 
반복해서 보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면 
손오공 재주 피우는 격이라고 보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좋다고 보는데 
10 억 세계를 놓고 보면 
돌 덩어리 하나 놓고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손오공이 받아야 할 
온갖 형벌과 정신적 고통을 
그 안에 갇혀서 
그로 인해서 다 받고 
온갖 사역을 다 맡아 하게 되는 것이다. 
평안하게 자기도 힘들고 
밖에도 경호원없이 함부로 못 다니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먼 외계의 불국토를 
여행을 할 수는 있겠는가. 

곤란한 것이다. 

비자 발급부터가 안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고 보면 
근본적으로 전도망상을 바탕으로 
어리석음과 탐욕과 분노에 접착된 재료를 놓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지혜를 사용하고 임하기에 그런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강간범처럼 티벳에 쑥 들어가 
동거 감금 동거생활을 하는 입장이 
또 정작 타이완은 그렇게 하지 않거나 못하는가. 

현재 현실을 놓고 잘 헤아려 볼 필요가 있는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여하튼 그래도 무언가 어려움이 있거나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편 팔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영국이 신사라고 여기면 
좋을텐데 영국도 상당히 고생많이 했다면 
한 것이다. 
일일히 나열하면 가슴이 아플 수도 있는데 

인디언 멸족시키고 
도로 곳곳에 닦고 
흑인들 데려와 일시키고 
그래서 좋게 된 현 상태에 
누가 가장 멋있는 폼으로 
살고 있는가. 

화투를 연상시키는 분이라고 본다면 
그 정체가 무엇일까를 
대충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면 
백인이라고 보기 쉬운 것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 대표가 
자신의 적이나 원수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현실에 많다. 

그런데 전혀 힌트가 없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보면 척 그 정체를 알아볼 
힌트가 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고르바초프가 
요즘엔 러시아에서는 원망을 받기도 한다고 하는데 
한국인은 대강 척 보면 그 정체를 안다고도 보게 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들은 
자세히 알고보면 
유명하지 않는 수많은 분들과 다 함께 
알고 보면 다 장차 부처님이 될 분들인 것이다. 

이것이 답인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을 함부로 대하면 되겠는가. 

현실에서는 
부처님의 엉덩이에 똥침을 놓으면 무사하고 
잠자는 사자나 고릴라에 다가가 똥침을 놓으면 
대단히 이후 힘들게 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그러니 동네에 술취한 고릴라가 다니고 
부처님이 다니면 
어느 쪽을 더 신경써야 한다고 보겠는가. 

상대가 정상이 아닌 쪽을 더 신경을 써서 
대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가섭부처님이 지나갈 때 
선비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선비는 가섭부처님이 진흙에 발을 묻히지 않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풀어 깔았다는 분이 있는데  

이 때 그 친구는 
같은 선비인 친구가 
행색이 남루한 거지로 보이는 
수행자가 지나간다고 
자세를 낮추어 그렇게 한다고 
속으로 비웃었다고 하는데 

그 뒤의 결과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알고보면 경범죄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한 쪽은 
세세생생 인간의 왕 하늘의 왕만 반복하다가 
최종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어 나타나셨다고 
소개되고 

그 상황에서 
선비로서 수행자를 너무 지나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비웃은 이는 
그 이후 다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게 될 때까지 
흉칙한 바다의 물고기로만 세세생생
살았다고 하는 내용이 제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과거의 그 인연으로 
비로소 인간의 형태로 태어나 
부처님 제자가 되어 지냈는데 

그렇게 죽 지내다가 
아라한이 되어 자신의 과거 생을 관하고 나서 
그 사정을 스스로 깨닫고 
부처님에게 가서 오랜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인사를 건네서 
화제가 되었다는 내용이 경전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매일 부처님을 대하는 
제자가 갑자기 그런 인사를 하니 
그것이 대단히 이상한 것 아닌가하고 
다른 제자들이 여겼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늘 기본문제를 잘 해결하고 
무량행문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하나부터 시작해서 
일체 생명에 대해 
제한이나 차별을 두지 않고 
존중해가면서 
수행에 임해야 한다고 제시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두 장차 부처님이 될 분들이기 때문이다. 

가섭부처님이 수행할 당시 
이로 생활했던 분이 
나중에는 부처님이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 하나를 놓고 
잘못 대처한 경우는 
자신의 몸 전체의 기관을 다 부수면서 
나중에는 산소도 섭취하지 못하게 되어 
피를 빼내서 넣어 시술해야 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도대체 무엇이 대단하길레 그렇게 되는가는 
처음에 제시한 문제를 놓고 
잘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마다 다 상태가 다른데 
그 환자의 각 부분을 그런 형태로 반응하게 
하는 왕은 누구인가. 

이 퀴즈도 함께 풀어야 한다. 

자신이 매사에 짜증을 내고 
스트레스로 대하고 걱정하면 
어느 부분이 그렇게 되어서 
그에 따라 
신체 각 기관이나 점막이 
다 궤양을 일으키고 헐게 되는가. 

어떻게 하면 피부에 전체 소름이 
돋게도 되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무엇이 그렇게 하는 
왕인가 이것을 먼저 헤아리면서 

자신의 몸 하나를 놓고도 
이 문제를 잘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해결사에게 의뢰하면 
당장은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간단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300 년을 그렇게 이어가면 
몽고가 차지한 땅이 몽고 것이 되던가 
이런 문제와 같다.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본군을 놓고 그 문제를 자신이 헤아려 보면 
그 답을 쉽게 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보지 못하면 
그것이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문제에 임하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 것이다. 

투우장의 소가 은퇴후 
논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다니며 
길을 만들어 내는 상황이나 
사실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공연히 농부 좋은 일만 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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