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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1-04_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_006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1-04_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_006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1. 4. 16:50



®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
K1481
T0400

제6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_K1481_T0400 핵심요약





♣1481-006♧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




제6권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 제6권



유정 한역



“다시 해의여, 

보살이 그 어떠한 갈래에 태어나더라도 희망하는 생각 없이 계행을 잘 수호한다면 온(蘊)의 마원(魔怨)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어디에도 나라는 견해를 의지하는 일 없이 계행을 잘 수호한다면 번뇌의 마원을 항복받을 수 있고, 

그 청정한 계행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에 벗어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계행을 수호한다면 죽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이러한 생각으로써 파계하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청정한 계행에 편히 머물게 하기 위해 스스로 계행을 수호한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다.


다시 보살이 자신에게 아무런 소득 없이 인욕을 행한다면 온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중생들에게 아무런 소득 없이 인욕을 수행한다면 번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으며, 

생사에 아무런 소득 없이 인욕을 수행한다면 죽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열반에 아무런 소득 없이 인욕을 수행한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다.


다시 보살이 몸이 고요함으로써 정진을 일으킨다면 온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함으로써 정진을 일으킨다면 번뇌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고, 

생멸 없음을 요달함으로써 정진을 일으킨다면 죽음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고, 

언제나 생사 속에서라도 게으름 없이 중생을 성숙시키고 바른 법을 섭수하기 위해 정진을 일으킨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다.


다시 보살이 그 어떠한 온에도 의지함이 없이 선정을 닦는다면 온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고, 

어떠한 경계에도 의지함이 없이 선정을 닦는다면 번뇌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고, 

어떠한 처소에도 의지함이 없이 선정을 닦는다면 죽음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고
어떠한 선정에서라도 그 낱낱의 생각을 다 보리에 회향한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초월할 수 있다. 


다시 보살이 그 바른 지혜로써 모든 온을 잘 안다면 온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모든 경계를 잘 안다면 번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으며, 

모든 느낌을 잘 안다면 죽음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고, 

인연 생기의 법을 잘 알면서도 그 실제(實際)에 취증(取證)하지 않는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항복 받을 수 있다.



다시 보살이 모든 법이 공함을 깨닫는다면 저 온의 마원이 침해할 기회를 노릴 수 없고, 

모든 법이 상(相) 없음을 믿어 수순한다면 저 번뇌의 마원이 침해할 기회를 노릴 수 없으며, 

모든 법이 원(願)없음을 안다면 저 죽음의 마원이 침해할 기회를 노릴 수 없고, 

모든 법이 조작할 바가 없고 의혹할 바도 없음을 알지만 더욱 그 수행함 있어서 만족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저 자재천의 마원이 침해할 기회를 노릴 수 없다.


다시 보살이 그 몸〔身〕에 수순하여 신념처(身念處)를 닦되 몸에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온(蘊)의 마원을 깨뜨릴 수 있고, 

그 느낌〔受〕에 수순하여 수념처(受念處)을 닦되 느낌에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번뇌의 마원을 깨뜨릴 수 있으며, 

그 마음〔心〕에 수순하여 심념처(心念處)을 닦되 마음에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죽음의 마원을 깨뜨릴 수 있고, 

그 법(法)에 수순하여 법념처(法念處)을 닦되 법에 애착을 일으키지 않고 또 보리심에 흔들림이 없다면 자재천의 마원을 깨드릴 수 있으리라.



다시 해의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이러한 모든 마업(魔業)이 다 나를 말미암아 근본이 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그 근본이 되는 나에 집착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곧 나에 나가 없어지고 그 중에 어떠한 법도 생길 수 없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곧 현량[現量:비판과 분별을 떠나서
외계(外界)의 사상(事象)을 그대로 깨달아 아는 것]의 지혜로 마업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보살이 또 저 지혜 없는 중생을 위해 대승의 갑옷[鎧]을 입는다면
그 보살로서는 응당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다 의지하지 않기 위해 그 갑옷을 입되 곧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만 이 견고한 갑옷을 파괴되지 않게 할까? 

또는, 내가 입고 있는 이 갑옷을 믿기 때문에 도로 내가 파괴되거나 중생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혹은 수자(壽者)와 사부(士夫), 양육자(養育者)와 그 밖의 유정들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혹은,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중생이라든가 수자라든가 유정이라든가 하는 그러한 견해에 의지하지나 않는가? 

이러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나 이제 그 모든 의지함을 다 버리겠노라’고.


그 어떤 것에 의지하느냐 하면, 

이른바 온(蘊)을 말미암아 모든 대경의 전도됨에 의지함이니, 

전도됨이란 바로 중생들이 그 무상(無常)을 상(常)으로 생각하고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으로 생각하고 무아(無我)를 아(我)라고 생각하며, 

청정하지 않음을 청정하다고 생각함이라. 



그러므로 보살이 그 중생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알아야만 응하는 대로 그 법의 요체를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생각을 올바르게 앎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받는 것이 없으므로 가질 것이 없음을 아는 그것이 바로 올바르게 앎이니, 

왜냐 하면 피차가 받지 않으므로 가질 수 없고 가지지 않으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 

이렇게 안다면 곧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벗어나 그 중생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알 수 있으리라.”




해의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어떤 생각을 알아야 합니까? 

과거의 생각이옵니까, 

미래의 생각이옵니까. 

혹은 현재의 생각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ㆍ현재도 아니노라. 

왜냐 하면 과거의 생각은 이미 다 되었고
미래의 생각은 아직 이르지 않았고
현재의 생각은 머묾이 없기 때문이라. 

이 때문에 알아 두라. 


3세에 걸쳐 그 생각은 아무런 소득이 없나니, 

이렇게 알아야만 그 생각을 올바르게 알 수 있고
또 생각을 올바르게 알므로 말미암아 보살의 일체 그 소행의 행을 청정케 하는가 하면
다시 일체 중생의 갖가지 행을 분명히 알게 되느니라.



해의여, 

만약에 보살이 보살의 행을 청정케 하지 못한다면 중생의 행을 알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의 모든 행을 알려면 먼저 보살의 행을 청정케 해야 하리니, 

이와 같이 중생의 행을 분명히 알므로써 곧 중생을 위해 여실하게 응하여 설법할 수 있고
또 중생들의 움직이는 마음에 따라 그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을 모두 알게 되느니라.





해의는 알아 두라. 

어떤 중생은
탐내는 뜻이 있는 가운데 성내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성내는 뜻이 있는 가운데 탐내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어리석은 뜻이 있는 가운데 성내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어리석은 뜻이 있는 가운데 탐내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탐내는 뜻이 있는 가운데 어리석은 일을 행하기도 한다. 

또 성냄과 어리석은 뜻이 있는 가운데 탐내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어리석음과 탐내는 뜻이 있는 가운데 성내는 일을 행하기도 하며

또 어떤 중생은
겉으론 탐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성내는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성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탐내는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성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어리석은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어리석은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성내는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어리석은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탐내는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탐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어리석은 뜻을 갖기도 한다.

또 겉으론 탐냄과 성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어리석은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성냄과 어리석은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탐내는 뜻을 갖기도 하고, 

겉으론 어리석음과 탐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으론 성내는 뜻을 갖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먼저 탐내고 뒤에 성내거나 먼저 성내고서 뒤에 탐내기도 하고, 

먼저 성내고서 뒤에 어리석거나 먼저 어리석고서 뒤에 성내기도 하고, 

먼저 어리석고서 뒤에 탐내거나 먼저 탐내고서 뒤에 어리석기도 하고, 

먼저 탐내고 또 성내고서 뒤에 어리석거나 먼저 성내고 또 어리석고서 뒤에 탐내기도 하고, 

먼저 어리석고 또 탐내고서 뒤에 성내거나 먼저 어리석고 또 성내고서 뒤에 탐내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물질에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소리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소리에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물질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냄새에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맛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맛에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냄새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접촉에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법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법에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접촉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물질을 떠났기 때문에 조복되기는 하여도 소리를 떠나지 못했거나
소리를 떠났기 때문에 조복되기는 하여도 물질을 떠나지 못했기도 하고, 

냄새를 떠났기 때문에 조복되기는 하여도 맛을 떠나지 못했거나
맛을 떠났기 때문에 조복되기는 하여도 냄새를 떠나지 못했기도 하고, 

접촉을 떠났기 때문에 조복되기는 하여도 법을 떠나지 못했거나
법을 떠났기 때문에 조복되기는 하여도 접촉을 떠나지 못했기도 하다.

또 어떤 중생은 몸을 떠남으로써 조복되기는 하여도 마음을 떠나지 못했거나
마음을 떠남으로써 조복되기는 하여도 몸을 떠나지 못했기도 하고, 

몸을 떠나고 마음을 떠남으로써 조복되기도 하려니와
몸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떠나지 않고서 조복되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무상의 소리를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고(苦)ㆍ무아(無我)ㆍ적정(寂靜) 따위의 소리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고, 

고의 소리를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무상ㆍ무아ㆍ적정의 소리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고, 

무아의 소리로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무상ㆍ고ㆍ적정의 소리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고, 

적정의 소리를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무상ㆍ고ㆍ무아의 소리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는다. 

또 어떤 중생은 설법의 신변(神變)을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교계(敎誡)의 신변으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고, 

교계의 신변을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설법의 신변으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고, 

신통 경계의 신변을 인하여 조복되기는 하여도 설법과 교계의 신변으로 인하여 조복되지 않으며, 

또 어떤 중생은 설법의 신변을 인하여 신심을 내기도 하고, 

교계의 신변을 인하여 번뇌를 멀리하기도 하고, 

신통 경계의 신변을 인하여 해탈하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영리한 근기로 부지런히 수행하여 우둔한 근기로 해탈하거나 우둔한 근기로 부지런히 수행하여 영리한 근기로 해탈하기도 하고, 

우둔한 근기로 부지런히 수행하여 우둔한 근기 그대로 해탈하거나 영리한 근기로 부지런히 수행하여 영리한 근기 그대로 해탈하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인(因)을 말미암아 해탈할 뿐 연(緣)을 말미암아 해탈하지 않고 연을 말미암아 해탈할 뿐 인을 말미암아 해탈하지 않는가 하면 인과 연을 말미암아 해탈하기도 하고 인과 연을 말미암지 않고서 해탈하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바깥으로 과실(過失)을 관찰하지 않아도 안으로 과실을 관찰하기 때문에 해탈하기도 하고, 

안으로 관찰하지 않아도 바깥으로 과실을 관찰하기 때문에 해탈하기도 하고, 

안팎으로 모든 과실을 관찰하기 때문에 해탈하기도 하고, 

안팎으로 모든 과실을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고(苦)를 수행하지 않고 낙(樂)을 수행함으로써 해탈을 증득하기도 하고, 

낙을 수행하지 않고 고를 수행함으로써 해탈을 증득하기도 하고, 

고와 낙을 모두 수행하거나 고와 낙을 다 수행하지 않고서 해탈을 증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중생은 경발(警發)하는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안지(安止)하는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항복하는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잘 포섭하는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착한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착하지 않은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성내는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한다.

3세의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인연 생기의 법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수순하는 행을 인하여 조복되기도 하고, 

말없이 잠잠한 행을 인하여 해탈하기도 하고, 

차별하는 행을 인하여 해탈하기도 하고, 

4념처법(念處法)의 소리와 4정단(正斷)의 소리와 4신족(神足)의 소리와
5근(根)의 소리와 5력(力)의 소리와 7각지(覺支)의 소리와
8정도(正道)의 소리와 사마타(奢摩他)의 소리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의 소리와 4성제(聖諦)의 소리를 인하여 해탈하기도 하느니라.



해의여, 

이와 같이 중생들의 소행이 불가사의하고 중생들의 마음이 불가사의하고 중생들의 경계가 불가사의하므로
보살이 또한 그 불가사의한 지혜에 들어가야 하며, 

그 지혜에 들고는 곧 일체 중생의 불가사의한 경계에 들어가야 하리라.



해의여,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주위의 사방에 두루 노끈으로 그물을 얽어 두고서
그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홀연히 그 그물 속에 들어갔다 하자. 

그 그물을 잘 풀고 나오려면 그 사람이 훌륭한 주문[呪]을 외움으로써 주문의 힘으로 그물이 모두 풀림에 따라
그 사람이 마음대로 아무런 장애 없이 나오게 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훌륭한 방편을 갖춤으로써 일체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들어갈 수 있고, 

또 들어가서는 곧 반야바라밀다의 밝은 주문의 힘으로써 일체 중생들의 그 얽매인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느니라.

그러나 보살이 그렇다 해서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중생들을 위해 일체의 불사(佛事)를 일으켜 나타내야 하리라.”







그 때 사리자(舍利子)가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중생들의 그 한량없는 심행과 내지 부사의 한 부처님의 지혜를 말씀하심은 전에 없던 일이옵니다. 

그리고 또 매우 기이한 일이옵니다. 

그 한량없는 중생들의 심행과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혜를 듣고서도 어찌 놀래거나 겁내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예컨대 갓난 사자의 새끼가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서 놀래거나 겁을 내겠는가?”

“놀래거나 겁을 내지 않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리자여, 

처음 발심하는 보살도 그와 같이 여래의 사자 부르짖음을 듣고
놀래거나 겁을 내지 않음은 물론
한량없는 중생들의 심행을 듣고서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사리자여, 

마치 조그마한 불의 광명일지라도 저 일체의 초목에 대해 겁내지 않을 뿐더러, 

그 불이 ‘나는 저 모든 초목을 태울 능력이 없노라’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처음 발심하는 보살도 그와 같이 지혜의 광명은 매우 적을지라도 일체 중생의 번뇌에 대해 놀래거나 겁을 내지 않을 뿐더러, 

보살이 또한 ‘나는 저 중생들의 번뇌를 그치게 할 능력이 없노라’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보살이 그 견고한 뜻을 발기할 때엔 그가 성취한 지혜로써 여실하게 관찰하여 곧 중생들의 번뇌를 그치게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여, 

다시 그 불이 저 온 땅의 초목과 그 밖의 숲ㆍ꽃ㆍ열매를 더불어 겁(劫)이 다 될 때에 같이 싸우기를 약속하고서
과연 7일이 지나 싸움을 시작할 무렵에 저 온 땅의 초목과 그 밖의 일체 초목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서로 이르기를, 

‘네가 나를 원조해 줄 능력이 있겠는가?’라고 할 때에 모든 초목들이 그 쌓아 모은 넓이와 수량이 수미산처럼 많다 하자. 

그 때 어떤 사람이 불을 보고 말하기를, 

‘초목은 그 무리가 많고 너는 혼자이다. 

너는 이제 원조를 구하지 않고서 어찌 초목의 무리를 당적할 능력이 있겠는가?’라고 타이를 때에 그 불이 대답하기를, 

‘나는 이제 원조의 힘을 구하지 않겠노라. 

왜냐 하면 저 초목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나의 힘으로 당적하여 남김 없이 모두 사라지게 하리라’고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저 한량없는 중생의 일체 번뇌를 따라 한량없는 지혜의 불을 방출한다면
그 힘의 대적으로 승리할 수 있고, 

또 보살이 그 깊고 굳은 뜻을 발기한다면 그의 성취한 지혜로써 일체 중생의 번뇌 덩어리를 여실하게 관찰하여
곧 그들의 번뇌를 그치게 하리라. 


그러나 보살이 만약 번뇌를 여의는 법을 증득했다고 고집한다면
그는 번뇌를 버리기는 하였지만 곧 성문ㆍ연각의 지위에 빨리 떨어지느니라.


사리자여 이 때문에 너는 알아 두라. 



보살이 만약 일체 번뇌 덩어리의 속을 따라 그의 깊고 굳은 뜻으로써 여실하게 관찰한다면
그는 곧 일체의 번뇌를 다 힘으로 굴복시켜 이길 것이며, 

또 이러한 말을 듣고서도 놀래거나 겁내지 않는다면
그 또한 훌륭한 방편을 갖춘 보살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또 마치 독사(毒蛇)가 원조해 주는 벗 없이 제대로 모든 것을 깨물어 상해를 입히는 것처럼
처음 발심하는 보살도 그와 같이 보리의 법을 수집(修集)하되
원조해 주는 벗 없이 다만 혼자의 힘으로 그 보리의 법을 수집하기 마련이다. 

또 마치 반딧불이[螢火]가 저 백천의 태양과 같은 광대한 광명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일체의 번뇌도 그와 같이 보살의 지혜 광명을 당적할 수 없기 마련이며, 

또 마치 독기를 제거하는 약품이 그 분량은 매우 적을지라도 광대한 독기를 다 제거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지혜의 약이 비록 적을지라도 모든 번뇌의 독을 다 풀어주기 마련이다.

또 하늘이 한 가지 맛의 비[雨]를 내리기는 하지만, 

그 떨어지는 곳에 있어서는 그릇의 차별에 따라 갖가지 맛을 이루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한 가지 맛인 해탈의 지혜를 수집하되
중생들의 갖가지 근성에 따라 갖가지의 설법이 각각 다르기 마련이며, 

또 염부단(閻浮檀)의 금이 세간에 출현함에는 그 일체의 다른 값진 보배를 다 비추어 덮는 것처럼
보살의 큰 보배가 세간에 출현함도 그와 같이 일체의 성문ㆍ연각을 다 비추어 덮기 마련이다.

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세간에 출현함에는 그 일체의 작은 국왕들이 다 전륜성왕에게 귀의하는 것처럼
법왕(法王)의 아들인 보살도 그와 같이 큰 보리심을 낸다면
일체의 천상ㆍ세간사람들과 아수라 따위들이 각각 높이 받들어 귀의하기 마련이며, 

또 박복한 중생은 비록 보배 비[寶雨]를 만나더라도 이익을 얻음이 없는 것처럼
선근(善根)을 심지 못한 중생들도 그와 같이 보리심을 내더라도 성취되는 것이 없기 마련이며, 

또 세간에 사탕수수[甘蕪]의 종자가 없다면 단 맛을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큰 보리심의 종자가 없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果)를 성취할 수 없느니라.”





○ [pt op tr]









◆vjva9029

◈Lab value 불기2564/01/04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andree-in-yellow-turban-and-blue-skirt-1917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rophytum_flower_340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land_Levinsky_building


♡France ,Marseille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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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_K1481_T0400.txt ☞제6권
sfd8--불교단상_2564_01.txt ☞◆vjva9029
불기2564-01-04
θθ
 


보조 

불기2563-01-04_인명정리문론_001

http://buddhism007.tistory.com/5319



광찬경 제8권_핵심

불기2562-01-04_광찬경_008

http://buddhism007.tistory.com/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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